정말 왠일로 그동안 알라딘 굿즈에 무심하게 아니 무심한 척 세월을 보냈던 것인데, 그 무심한 태평성세가 역시 그리 길지는 않았다. ‘틴케이스’가 등장했다. 소생 이런 거 너무 좋아한다. 소탱크 탈출 표지에도 이 비슷한 게 나온다. 이런 비밀스럽고 은밀한 느낌. 좋아한다. 본인은 알지만 남들은 바로 코앞에 있어도 깜쪽같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내 소중한 보물들을 남들에게 뺏기지 않고 잘 간직하기 위해서는 이런 게 꼭 필요하다. 유년의 추억 중 시골동네 뒷산 바윗틈에 만들었던 우리들의 아지트도 이 비슷한 느낌이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20세기 소년>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유년의 아지트 이야기에 눈물을 질질 흘리며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하여 소생은 틴 케이스를 구입하기 위하여 대상도서 4만원치를 선정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2,600원, <시간의 장벽을 넘어> 18,000원, <여자는 허벅지> 11,520원 요렇게 더하니 42,100원. 아시겠지만 4만원 넘으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5만원 구입에 제공되는 2,000원 마일리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또 한 권을 추가했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7,920원, 이렇게 하니.....아아아아아아아아!!! 50,040원. 꺄오오오~ 오만 한계에 꾸준히 도전해온 붉은 돼지가 신기록을 수립했다. 언젠가는 '똑이니까니 딱이야요' 똑딱 떨어지는 50,000원을 맞추고야 말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렇다고 되나마나 아무 책이나 갖다붙여서는 곤란하다. 수단이 목적을 전복시켜서는 안된다고 말하려고 하니, 굿즈를 사고 책을 사은품으로 받는 주제에 할 말이 아닌 것 같다.
위 언급한 4권 중에서 <여자는 허벅지>가 너무 기대된다. 저자인 다나베 세이코는 연애소설 작가로 유명하다고 한다. <조제와 물고기와 호랑이들>이라는 그녀의 책 제목은 들어봤다. 소생은 처묵처묵하는데 급급하여 연애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다. 사실은 돼지도 한때는 어찌할 수 없는 정욕에 살진 몸을 부르르 떨고는 했으나 그 정욕들의 대부분은 끝끝내 정상적으로 충족되지 못했다. 처리되지 못하고 가을날 깊은 숲 속의 낙엽처럼 수북하게 쌓인 정욕들은 그래도 썩어 없어지지않았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식욕으로 수렴되며 변태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아아아아!!! 어쩔 것이냐!!! 정욕 대신에 식욕이 겁나게 활활 불타올랐던 것이다. 무슨 분풀이를 하듯이 말이다. (더 비기닝. 불타는 붉은 돼지의 탄생이다.) 아쉽다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뭐 그리 비참한 결말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 잡스런 글을 쓰면서 처음에는 ‘정욕’ 이 아니라 ‘성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려고 하였으나 연애에서 성욕으로는 너무 비약적이자 집약적인 발전 같기도 하고 또 성욕이란 단어는 세수도 안한 민낯의 느낌이어서 약간의 분칠이 된 듯한 ‘정욕’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던 것이다. 뭐 단어의 뜻은 그놈이 그놈이다. 다음 국어사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이성의 육체에 대한 성적 욕망’
소생은 이 책의 제목 <여자는 허벅지>를 보고 그만 내 살진 허벅지를 ‘찰싹찰싹’하고 때리고야 말았다. 세이코씨의 통찰력에는 정말 깜짝 놀랐다. 세이코씨는 스고이데쓰. 맞다. 여자는 얼굴도 아니고 가슴도 아니고 엉덩이도 아니다. 바로 허벅지인 것이다. 소생의 심장 속에서도 뜨뜻미지근하나마 정욕이란 것이 간혹 꿈틀거려 부질없이 소생의 살들을 부들부들 떨게하던 그 시절에, 소생은 특히 ‘비욘세의 허벅지’를 숭배했었다. 아!!!!!!!!!! 그 굵고 탄탄하고 매끄럽고(축생의 축축한 촉수로 직접 접촉하여 보지는 못하였으나, 뭐 꼭 맛을 봐야 된장인 줄 아는 것이 아니듯 그냥 보기만해도 척 알아 볼 수 있는 것이 있다) 검게 반짝이며 빛나는 그 살과 근육이여! 아아! 생각하니 갑자기 허기가 진다. 뭐라도 쑤셔 넣어야겠다. 꿀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