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앞전(이건 잘못된 표현같다. 역전앞 같은....그래도 흔히 ‘요 앞전에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 많이 쓰고 있어 고치지 않았다. 잘못 된 줄 알면서 고치지 않는 것은 선비의 자세가 아니다.) 페이퍼에서 소생이 신영복이 현자같이 생각된다는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이 책 〈담론〉을 읽다보니 역시 내 짐작이 맞았다. 신영복에게 선지자와 같은 능력이 있는 것이다.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나는 오랜 수형(처음에 소생은 수형을 수행으로 읽었다. 사실 수형이 곧 수행일 것이다.) 생활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지하철에서 누가 어느 역에서 내릴 것인가에 대해서 거의 정확하게 예측합니다.” (이건 수형생활과는 별로 상관없는 듯 하다. 하지만 이게 장시간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대단한 능력임에 틀림없다. 일찌기 이런 은사를 입은 선지자가 없었다.)

 

이건 신영복이 지하철에서 직접 겪은 일이라고 한다. 언젠가 신도림역에서 내릴 사람을 골라 그 앞에 서 있었다. 전철이 신도림역에 도착하자 아니나 다를까 그 사람이 일어섰다. 신영복이 그 자리에 앉으려고 하자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분이 잽싸게 그 자리로 옮겨앉고 앞에 서있던 친구를 자기 자리에 앉혔던 것이다. 그 순간 신영복의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 ‘이양역지(以羊易之)’ 였다는 것이다. 상상해보면 조금 웃긴 시추에이션이다. 선생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분통했겠지만 어쩔 수 없다. 

 

신영복은 이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나름대로 신도림역에서 내릴 사람의 정면에 서서 누가 보더라도 그 자리에 대한 연고권이 내게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불법적(?)으로 차지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것이지요”(108쪽)

 

‘이양역지(以羊易之)’는 맹자에 나오는 이야기로 전에 한번 이야기 했었는데 제선왕이 제물로 끌려가는 소를 보고 불쌍하게 여겨 소를 양으로 바꾸라고 했다는 이야기다. 지하철 자리 이야기에서 왜 맹자의 이양역지가 나왔는지 사정을 이야기하려면 복잡하니 생략한다. 궁금하신 분은 이 책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소생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옵고 바로 지하철 좌석 소유권이랄까 점유권이랄까 하여튼 지하철에서 좌석을 이미 선점하고 앉아 있던 사람이 일어났을 때 그 빈 좌석의 승계권은 누구에게 있나하는 뭐 그런 이야기다. 신영복같은 현자도 역시 소생의 생각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소생이 뭐 현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책을 전국 지하철에 비치해서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한다. 

 

 

 

 

 

 

 

 

 

 

 

'담론'에는 이런 대목도 나온다. “‘삼십폭공일곡(三十輻共一轂)’은 수레의 바퀴살 30개가 한 개의 홈통에 모여있다는 뜻입니다. 서안에 갔을 때 진시황이 타던 수레의 모형을 보았습니다. 노자의 이 구절이 생각나서 바퀴살을 세어봤습니다. 일행에서 뒤쳐져 가면서 세어 봤습니다. 정확하게 30개였습니다.”(123쪽) 

   

‘삼십폭공일곡(三十輻共一轂)은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뒤에 당기무(當其無) 유거지용(有車之用)라는 문구가 이어 나온다. 수레의 바퀴살 30개가 한 개의 홈통에 모여있는데 그 가운데가 마땅이 비어있기 때문에 수레의 쓰임이 있다는 뜻으로, 말하자면 그릇은 속이 비었기 때문에 그릇으로 쓰임이 있다는, 결국은 ’없음‘이 '쓰임'이 된다. '유용'한 것이 된다는 뭐 그런 이야긴데...역시 소생이 하고자하는 이야기는 그런 것이 아니옵고......

 

신영복이 서안의 진시황 병마총에 갔을 때 수레를 보고 도덕경의 이 구절을 생각해낸 것도 놀랍고 또 직접 세어본 것도 놀랍다. 그리고 그 수레 바퀴살이 정확하게 30개 인것도 놀랍다. 노자가 춘추전국시대 사람이고(노자가 실존 인물인지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고 하지만 어쨌든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일가이니....) 진나라가 춘추전국을 일통하게 되니 시대적으로 동시대가 맞다. 뭔가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할 때 이렇게 아귀가 착착 맞아주면 참 신기하고 기분이 좋은 것이다. 소생 혹시나 해서 인터넷에 병마총 수레 이미지를 찾아 바퀴살을 세어봤다. 맞다. 30개다.

 

수레 사진은 <최선의 세계일주>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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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4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4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5-10-24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담담하게 쓰신 서평 잘 읽었습니다.

붉은돼지 2015-10-24 22:55   좋아요 0 | URL
다이제스트님 ~~서평은 아니구요 그냥 페이퍼로 쓴 글이어요^^
요즘은 페이퍼에 중구난방으로 되나마나한 글만 쓰다보니
조금 정리된 서평같은 글은 잘 못 쓰겠더라구요ㅜㅜ

북다이제스터 2015-10-25 17:55   좋아요 0 | URL
아, 페이퍼는 서평의 형식, 틀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봅니다. 제가 잘 못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ㅠ

붉은돼지 2015-10-25 21:58   좋아요 0 | URL
아! 페이퍼는 서평의 형식, 틀이라는 님의 말씀도 맞다고 생각해요
저는 글쓰기 처음 작성할 때 리뷰가 아니고 페이퍼로작성했다는 그런의미였어요^^

해피북 2015-10-25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요앞전`이란 표현이 잘못된 표현이였군요 ㅎㅎ 잘못된 표현인줄도 모르고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ㅋㅂㅋ. 신영복선생님의 글도 참 신통방통했지만 그 모든 이야기를 이해하시는 붉은돼지님 글 역시 놀라웠어요 ㅎ 저는 `담론` 읽으며 아, 그렇구나 정도로 읽곤했는데 말이죠. 이 글 읽고나니 다시 펼쳐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ㅋㅂㅋ~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붉은돼지 2015-10-25 10:04   좋아요 0 | URL
`앞전` 이란 말은 `역전앞`처럼 내용이 중복되는 말이라 잘못된 표현이 아닌가 하는 제생각이에요^^
저도 사실은 지하철 자리 이야기와 이양역지가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그 대목을 다시 읽어봐도 잘 이해가 안되더라구요ㅜㅜ

보물선 2015-10-25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하철 신공을 터득하려면 `수행`을 해야겠네요^^

붉은돼지 2015-10-25 10:1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근데 이게 왠만큼 정진한다고 되는 건 아닐거예요 신영복선생님쯤은 되야 도가 터질듯요 ^^

서니데이 2015-10-26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진속 수레의 바퀴살을 세어봤습니다^^
붉은돼지님, 좋은하루되세요

붉은돼지 2015-10-27 11:31   좋아요 1 | URL
바퀴살은 30개 맞는데 홈통 가운데가 비어있지는 않아요....
전쟁용 수레여서 그런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