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붉은 돼지가 어젯밤에 꾼 꿈이야기다. 꿈이라서 앞 뒤 맥락이 없다. 나는 그녀와 어딘가에 서 있었는데, 사람들이 많은 장소였고 길게 줄을 서서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여자였지만 손을 잡아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손을 뺄 듯 약간 꼼지락 거렸지만 이내 가만히 있었다. 나는 가슴이 설레었고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또 둘이 어디론가 걸어가다가 잠에서 깻다. 그녀는 아내는 아니었다.

 

잠에서 깨어나서 늘 하듯이 소생이 몸 운동은 거의 안하지만 장 운동은 활발한지 매일 아침 용무를 잘 보고 있다. - 화장실에 앉아 으라차차차 밀어내기 한판을 할려고 하는데, 손 끝이 아리싸리한 것이 손 끝에 그녀의 감촉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가슴 한 구석에도 그 약간은 설레이고 고양된 느낌이 아리싸리하게 남아 있었다. 꿈을 꿀 때는 그녀가 누군지 분명히 알고 있었는데 꿈에서 깨고 나니 누군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슴 속에 그리고 손 끝에 남아있는 그 아리싸리한 느낌이 좋아서 밀어내기 한판은 잠시 중단하고 변기통 위에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덕분에 사무실에 10분 지각했다.

 

이건 뭐 불륜도 아니고 외도도 아니지만, 아내가 이 글을 읽으면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쿨하게 이럴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짓도 참... 여러 가지 가지가지 하고 있네...흥흥흥  또 누군가가 그건 돼지 니 놈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잠재되어 있던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한다면 백보 양보해서 그럴 수도 있겠으나, 일찌기 예수도 설파하지 않았던가. “누구든지 마음으로 간음하지 않은 자가 있다면 이 여인을 돌로 쳐라.” 그 여인을 돌로 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유일한 자였던, 마음으로도 간음하지 않았던 유일한 자 예수도 그녀를 돌로 치지 않았다. 그녀는 용서받았다.

 

생각해 보면 어젯밤 꿈은 달달했고 짧고 허무했다. 아쉬웠지만(무엇이???? 몰라...) 진짜로 그냥 손만 잡았을 뿐이다. 이렇게 말하니 무슨 드라마에 단골로 등장하는 대사 같다. 꿈이란 그런 것이다. 어쩌면 인생이란 것도 한가지인지 모른다. 헛되고 헛되니 우리가 해아래에서 하는 이 모든 수고가 과연 누구에게 이롭단 말인가.

 

옛날에 누구는 낮술을 마시고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다. 자신이 일국의 부마가 되고 재상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외적과의 전쟁에서 패하고 아내인 공주도 죽게되자 상심하여 낙향하게 되느데, 이때에 이르러 문득 깨어나니 어느 나무 남쪽가지 아래였다. 나무의 뿌리 부분을 가만히 살펴보니 거대한 개미집이 있었다. 결국 그 개미집이 꿈속의 그 나라였다는 말이다소생이 즐겨 읊조리는 정비석의 산정무한의 한 구절 " 천년사직이 남가일몽 이었고 태자 가신지 또 다시 천년이 흘렀으니 유구한 영겁으로 보면 천년도 수유던가" 에 나오는 그 '남가일몽'이다. 

    

옛날 옛적 어느 절에 조신이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불공을 드리러 온 태수의 딸과 사랑에 빠져(이런 땡중이 있나!!!)  두 사람은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고 수십년을 함께 살았다. 하지만 살림이 어려워져 자식이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어쩔 수 없이 명을 부지하기 위해 두 사람은 생이별을 하게되는데...문득 깨어보니 꿈이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조신의 꿈이다. 이광수가 이를 각색해 소설 <>을 썼고 배창호는 영화 <>을 만들었다. 안성기가 조신으로 황신혜가 태수의 딸로 등장했다. 일전에 배창호가 지하철 선로로 뛰어들었다가 구조되었는데 자살하려고 한 것이다. 아니다 실족이다. 말이 많았다.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지세이가 생각난다. “몸이여 이슬로 와서 이슬로 가나니 오사카의 영화여 꿈속의 꿈이로다.” 토요토미 쯤이나 되는 사람에게도 인생이 꿈이라고 한다면 소생같은 필부에게 이르면 인생이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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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5-08-04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붉은돼지 님의 뭔가 약간은 아리송한 `꿈 이야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고전 읽기 경시대회`에 등떠밀려(?) 출전하느라 무지 고생하면서 억지로 여러번 읽었던 책 가운데 하나가 <삼국유사>였는데, 그 책 속에서 읽었던 `두 처녀가 꿈을 사고 판 얘기`도 새삼 생각나네요. 서양 철학자들이 `꿈`에 대해 풀어놓은 인상적인 얘기들을 (생각난 김에) 덧붙여 봅니다.

* * *

우리는 잠자며 잠 깨어 있고, 잠 깨어서 잠자고 있다.

우리 인생을 꿈에 견주어 본 자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옳게 본 것이리라. 우리가 꿈을 꿀 때의 심령은 잠이 깨어 있을 때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살며 행동하며 모든 소질들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좀 무르고 흐리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차이가 분명히 밤과 환한 대낮 사이 만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 밤에서 그늘까지의 차이는 있다. 저 편에서는 심령은 잠자고 있다. 이 편에서는 다소간 졸고 있다. 그것은 언제나 암흑이다. 킴메리아 인의 암흑이다.

우리는 잠자며 잠 깨어 있고, 잠 깨어서 잠자고 있다. 나는 잠을 자면서 똑똑히 보지 못한다. 그러나 잠이 깨어 있을 때에도 언제나 흐리지 않게 충분히 또렷하게 보이는 적이 없다. 하기는 잠이 깊이 들 때에는 꿈을 잠재우는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잠이 깨어 있음은 결코 깨끗이 꿈을 씻어 흩을 만큼 깨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꿈은 깬 자들의 꿈이며, 꿈보다 더 나쁜 꿈이다.

우리의 이성과 심령은 잠자는 동안에 나오는 공상과 개념을 받아들이며, 심령이 낮의 행동에 대해서 인정하는 바와 같은 권위를 꿈속의 행동에도 주고 있는데, `어째서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다른 방식의 꿈꾸는 일이며, 깨어 있는 것이 어떤 종류의 잠이 아닌가` 하고 의문에 붙이지 않는가?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 * * * *

실생활과 꿈과의 친근성

흔히 있는 일이지만, 꿈이 현재와의 인과 관계와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아무리 해도 알아낼 수 없는 경우, 어떤 사건이 꿈이었는지 혹은 실제로 일어난 것인지 하는 것은 영원히 구별되지 않은 채 놓아둘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 있어서 실생활과 꿈과의 친근성이 실제로 우리에게 대단히 실감나게 다가온다. 게다가 이 친근성은 예로부터 많은 위대한 사람들에게 인정되었고 또 언급되었기 때문에, 우리도 그것을 떳떳하게 보증할 수 있는 것이다. 《베다》나 《푸라나》는 마야의 직물이라 불리는 현실계에 대한 모든 인식을 꿈과 유사한 것 이상으로는 인식하지 않고 있으며, 이런 표현이 자주 나온다. 플라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평범한 사람은 꿈속에서 살고 있는 것에 불과하지만, 철학자는 깨어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자주 말했다. ······ 마지막으로 칼데론은 이와 같은 견해에 완전히 매혹되어 형이상학적인 희곡 《인생은 꿈》에서 이것을 표현해 보려 했다.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붉은돼지 2015-08-05 10:27   좋아요 0 | URL
삼국유사의 꿈을 판 이야기는 김유신 동생들 이야기로군요...저도 얼마전에 제 딸이 돼지꿈을 꾸었다고 해서 1000원을 주고 그 꿈을 샀습니다. 딸은 엄청 좋아하더군요...다음에 또 꿀테니 사라고도하고..ㅎㅎㅎㅎ 저는 로또를 샀습니다. 딸은 아직 어려서 로또를 살 수없고 ..결과는 뭐, 꽝이죠....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딸에게 더 좋은 일이 있을 수도 있었는데 그 꿈을 제가 단돈 1000원에 사버리다니 제가 좀 잘 못한 것 같은 생각이 들더군요...뭐 꿈을 믿고 그러는 건 아니지만...


CREBBP 2015-08-04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러 이런 꿈 얘기가 나오니, 저도 오래전 꾼 `달달한` 꿈이 생각나네요. 그냥 아는 남자였는데 참 내 로맨스 비슷한 감정적 교환이 이루어졌다는 거 아니겠어요. 전 한 번도 그 아는 남자를 남자로 생각한 적도 없고, 만날 때는 주로 부부동반이었는데 말이죠. 그 이후로 뭔가 민망해져서 얼굴 보기가 꺼려지더라구요. 민망한 것의 문제는 스토리가 아니라 그 느낌 때문에 그래요. 너무 생생해서 꼭 진짜로 있었던 일 같은 망측한 감정 때문이죠. 그러고 보면 꿈은 연구할 가치가... 프로이트가 반할만 했던 주제에요.

붉은돼지 2015-08-05 10:30   좋아요 1 | URL
그런 경우는 간혹 있는 것 같아요....꼭 남녀사이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꿈 속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의외의 인물이 등장하는 경우가 있더라구요..평소에 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닌데 꿈에 떡!! 나타나면 이건 무슨 의미인가 생각해보게 되더라구요....뭐..생각해본들 별 뾰족한 해답도 없지만요^^

cyrus 2015-08-04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속의 여인과 단 둘이서 노는 장면이 나와야하는데 하필 꿈이 거기서 끊기고 말았군요. ㅎㅎㅎ

붉은돼지 2015-08-05 10:31   좋아요 0 | URL
저도 조금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한편으로는 그 정도에서 꿈이 깨어진 게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요 ㅎㅎㅎㅎㅎㅎ

북다이제스터 2015-08-04 2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보기엔 전혀 걱정 혹은 기대 안 하셔도 될 듯합니다. 꿈속의 그녀는 바로 붉은돼지님의 무의식에 있는 본인 다른 모습이라고 사료됩니다. ^^ 융 할아버지 말씀이세요. ㅎ

붉은돼지 2015-08-05 10:34   좋아요 0 | URL
자기가 자기의 손을 잡고,,아리싸리한 기분을.......무슨 변태같아요 ㅎㅎㅎㅎㅎ

후애(厚愛) 2015-08-05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저도 꿈을 자주 꾸는데 일어나면 생각이 안 나요..
예전에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잘 생각 나더니만... ㅎㅎ

저도 꿈 이야기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붉은돼지 2015-08-06 10:41   좋아요 0 | URL
저는 요즘 거의 꿈을 꾸지 않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전쟁하는 꿈, 쫓기는 꿈, 귀신나오는 꿈, 줄거리도 설명하기 어려운 황당한 꿈 등등등
꿈을 많이 꿨던 것 같은데,,,요즘은 기억을 못하는지 어쨋든 꿈이 거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