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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을 위한 시간 - 유럽 수도원 기행 ㅣ 봄날의책 세계산문선
패트릭 리 퍼머 지음, 신해경 옮김 / 봄날의책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 볼 것이다. 인생이라는 것이 허무하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무엇인가 이건 아닌데 하는 뜬구름잡는 생각이 들고 할 때, 세속의 소유와 애정과 미련과 욕망을 모두 버리고 세상을 등지고 출가하여 구도의 길에 나서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 말이다. 아닌가? 어쨌든 그렇다고 치고. 그런데, 석가탄신일 같은 날 TV를 보면 스님들의 생활을 보여주는데, 이게 한 겨울에도 캄캄한 새벽에 기상하여 찬물에 세수한 후 기도하고 식사라는 것도 고기는 일절 없고 온통 나물 천지고......보고 있자면 아... 탄식이 절로 나오는 것이 소생같이 아침잠 많고 식탐있는 인생은 구도와는 정녕 거리가 멀구나.. 그냥 이렇게 아무 생각없이 사는 대로 살아가는 수 밖에 도리가 없구나 하는 생각을 쓸쓸하게 하게 된다.
<침묵을 위한 시간>을 보니 수도원 수사들의 생활은 더하다. 수도회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불교에도 조계종, 천태종 등등 여러 종파가 있듯이), 고독과 침묵 속에서 기도하고 하느님에게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는 수도회는 <관상수도회>라고 하고, 세상으로 나아가 사도의 직분을 수행하는 수도회를 <활동수도회>라고 한다. 관상수도회에는 가르멜회, 트라피스트회(엄률 수도회) 등이 있다.
그중 트라피스트회 수사의 수도 생활을 소개해 본다. 수도자의 기상시간은 새벽 1시 아니면 2시다. 침묵의 명상을 하는데 하루 7시간을 쓴다. 남은 시간은 가장 원시적이고 힘겨운 형태의 들일을 하고, 순교자 열전을 읽으며 보낸다. 여름에는 저녁 8시 겨울에는 7시에 잠자리에 든다. 공동숙소의 맨 판자바닥에 짚을 채운 요를 깔고 잠을 잔다. 난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계절에 상관없이 늘 똑같은 무거운 옷을 입는다. 식단의 거의 근채류로 이뤄진다. 고기와 달걀, 생선은 금지다. 게다가 일년의 육개월은 엄격한 단식 규칙이 적용된다. 매주 금요일에는 <시편> 제51 편을 두 번 노래할 정도의 짧지만은 않은 시간동안 아홉 갈래 채찍으로 자신의 맨 어깨를 채찍질 한다. 실질적인 고행이라기 보다는 상징적 의미가 강한 의식이라고 한다. 침묵의 규칙은 절대적이어서 독특한 수화가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났다고 한다......음, 이건 인간의 삶이 아니다. 소명을 받은 사람이라도 견뎌내기 어려운 삶이다.
여기에 하나 더 있다. 수도자의 3대 서원은 청빈, 정결, 순명이다. 이 중 “정결”의 서원이 평생에 걸쳐 가장 혹독한 서원일 것이라는 작자의 의견에는 소생도 동의하는 바다. 김성동의 소설 만다라에도 욕정을 참지 못한 수도자 성기절단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강구하고 있고 실제로 18세기 제정러시아에는 모든 죄악의 근원이 성욕에 있다고 판단하여 성기를 절단한 ‘거세교도’도 있었다. 프란체스코회를 창건한 성 프란체스코도 한 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성욕을 참지못해 가시 장미밭에 발가벗은 몸을 던져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고 한다. 하느님이 차마 보지 못하여 장미의 가시를 모두 없애버렸다는 전설이 있다. 프란체스코의 고향인 아시시에 가면 가시없는 장미를 볼 수 직접 볼 수 있다.
생각해보면 성기는 욕망을 실현하는 도구일 뿐이고 욕망은 우리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형체없는 생각일진대 도구를 제거한다고 해서 그 생각이 홀연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유용한 도구를 제거하게 되면 욕망을 실현할 방법이 현격하게 제한되니 아무래도 도움이 되기는 될것이고 또 스스로에게 단호한 의지를 표명하여 경계하고 조심하는 마음을 더욱 굳히는 계기는 될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수고가 애닯고 애처롭다. 역시 구도의 길은 소명을 받은 수도자들의 몫이고 소생같은 필부에게는 토끼같은 자식새끼 끌어안고 여우같은 마누라 궁데이나 두드리면서 지지고 볶고 튀기고 끓이며 사는 삶이 적당할 것이다. 살다가 틈나면 가끔 이런 책도 읽어보고 또 그런대로 살만하면 오래된 수도원이나 절간을 둘러보면서 한숨 돌리고 그래저래 바람따라 흘러가는 구름처럼 그렇게 사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