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사진이 가르쳐준 것들
천명철 지음 / 미진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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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고수가 아니고서는 카메라를 들고 나서면 무엇을 찍을 것인가 막연하게 생각이 될 때가 있다. 

이 사진책은 그러한 생각을 접게 한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겨울 들판에서 찾아낸 많은 주인공들의 모습들이다. 

사진정보도 꼼꼼하게 적어놓았다.  

사진가는 아무래도 평범한 것을 특별한 것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가진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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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0-11-13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하고 읽지 않은 책에서 기대밖의 뭔가를 읽었을 때 기쁜 것처럼,
사진도, 평범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에서 기대밖의 뭔가를 찾아내는 순간의 기쁨을 가진 예술이겠지요.
그 보이지 않는 것은, 평범한 눈에도 다 보이는 건데, 볼 수 없는 것들인...

gimssim 2010-11-14 07:13   좋아요 0 | URL
맞아요. 마음의 문을 연다는 말을 실감하는 요즈음입니다.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 김선주 세상 이야기
김선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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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글쓰기는 '자기성찰' 위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 책은  이런저런 사회의 부조리나 문제점, 구조적인 모순, 제도적인 장치의 미비, 인간성의 상실, 인간에 대한 배려나 예의의 부재 등 많은 문제점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래도 따뜻하게 읽히는 것은 저자도 그런 사회의 문제점을 야기시킨 일원이라는 자기성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자기의 감정 위에 지극히 객관적인 서술들로 이야기들을 풀어가고 있지만 주관적인 의미를 얻고 있고, 세상을 염려하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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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0-11-12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변잡기 적으로 흘러갈 수 있는 얘기들이 힘을 얻는 방법은 '따뜻한 시선'이군요~

전 이 책이 이상하게 손에 안 잡혀요.
김선주 앞에 붙는 '조선일보'라는 수식어 때문인 듯 해요~^^

gimssim 2010-11-13 07:52   좋아요 0 | URL
이이는 아마 조선일보 해직기자이고 한겨레신문 창립멤버일걸요.
 


아, 끊을 수 없는 사랑 




 

 

 

 

 

내가 근래에 들어서 잘한 일 중 하나가 ‘사진찍기’를 배운 일이다.
물론 남편은 좀 불만이지만.
남편은 내가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점심도 같이 먹고, 책도 같이 읽고, 또 저녁도 같이 먹고, 텔레비전도 같이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나는 혼자하는 것을 좋아한다. 같이 무엇을 하면 집중하기가 어렵다.

결혼하기 전, 남편은 나처럼 영화감상이 취미라고 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취미는 커녕 외국영화는 옷만 갈아 입고 나와도 사람을 구별하지 못한다. 그러면서 옆에서 끊임없이 물어댄다. ‘저 사람은 누구냐? 왜 저러느냐? 빨간불인데 길을 건너도 되냐? 왜 비를 맞고 돌아다니느냐? 저렇게 밤늦은 시간까지 놀면 내일 아침 출근은 어떻게 할 것이냐?……’ 끝이 없다.
그러면서도 영화를 보러 간다면 꼭 따라나선다.

잠시 옆길로 샜다.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길로 새는 것은 아무래도 나이 탓인 것 같다.
우리 아파트에 내가 주차하는 곳에 나무를 사랑하는 담쟁이가 있다.
오후면 햇빛을 받아서 단풍이 든 담쟁이 잎이 무척 아름답다.
그 옆에 서 있는 나무 - 사실 나무가 아니고 나무처럼 튼튼하게 자란 해바라기 이다 - 에 다가가기 위해 날마다 조금씩조금씩 키를 더한다.
지난 이틀 동안 세상의 모든 바람이 이곳에 놓인 듯 바람이 몹시 불었다. 나는 담쟁이 걱정에 잠을 설쳤다.
아침 일찍 내려가 보니 이런 모습이었다(아래 사진). 그나마 있던 해바라기 잎도 다 떨어지고 담쟁이도 앙상한 모습이다. 
그래도 사랑은,
담쟁이의 사랑은 여전하다. 

 

 

사진은 이렇게 그냥 지나쳐버릴 것도 한 번 더 눈여겨보게 만든다.
작은 것을 사랑하게 하고, 생각하게 하고, 여러 가지 색깔로 그림을 그리게 한다. 내 인생이라는 그림을.

그래서 나는 사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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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0-11-10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래도 사랑은, 담쟁이의 사랑은 여전하다... 참 멋진 말이네요...
영원한...하는 건 거짓말이지만, 여전한... 이건 가능하죠. ^^
중전님, 행복한 하루 지으시길...

gimssim 2010-11-10 08:23   좋아요 0 | URL
글샘님의 포스가 느껴지는 댓글입니다.
열심히 '강의'하시는 분이시라.
'영원한' '여전한'을 구별해서 써야겠습니다.
글샘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마녀고양이 2010-11-10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사진 배우고 싶어요.
언니 말씀대로, 사진을 찍으면 세상을 파인더를 통해 다시 한번 보게 되겠죠?
새로운 눈으로 보면, 더 아름다울거 같아요.

영화 감상 말인데요, 저희 신랑두 그러더라구요.
그런데 첨 같이 '타이타닉'을 보러가서, 자고 있지 머예요!
그날 피곤했나.. 그 이후에는 자는건 못 봤지만, 영화 감상이 취미가 아닌건 확실해요.
그때 차버렸어야 하는뎅... 큭큭큭.

gimssim 2010-11-10 22:17   좋아요 0 | URL
사진은 우리의 삶을 좀 더 풍성하게 하는 것은 사실이에요.
나중에 사진에 관한 페이퍼 하나 쓸까 생각중입니다.

저도 영화엔 관한한 '이건 아니잖아' 눈치챘었습니다.
근데 결혼하고 싶어서 눈치 못챈척 넘어간거지요.
혹시 마녀고양이님도?

sslmo 2010-11-10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리 엄마를 따라 다녔을 아기 백조가 생각나요.

아웅~ㅠ.ㅠ
액자해서 책상 위에 올려놓고 싶어요.

gimssim 2010-11-10 22:18   좋아요 0 | URL
이 담쟁이의 사랑은 짝사랑이죠.
눈치채셨나요?

blanca 2010-11-10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담쟁이...안그래도 요새 혼잣말처럼 자꾸 저 담쟁이가 넘 이쁘다고 그러고 다니는데 중전님이 담쟁이에는 댈 바가 아니군요. 옆지기님 귀여우세요...중전님을 많이 사랑하시나봐요^^

gimssim 2010-11-10 22:20   좋아요 0 | URL
중년의 부부라 그냥 무덤덤합니다.
몸에 잘 맞는 옷같다고나 할까요?
그게 행복이겠지만 좀 슬플 때도 있답니다. ㅋㅋ

비로그인 2010-11-14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멋진 담쟁이입니다. !!

중전님의 시선도 멋지고요 !!! ^^

gimssim 2010-11-14 07:16   좋아요 0 | URL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 담쟁이 사진을 몇장 더 찍어볼까 합니다.
어제 아침, 산책하다가 보아둔 곳을 다시 가서 담쟁이 사진을 몇장 찍었어요.
오후에 일이 있어 바닷가에 갔는데 거기에도 파란 양철지붕위에 담쟁이가 지고 있었어요.
시간 내어서 가볼 참입니다.
이렇게 그전부터 있었는 것인데 제가 마음을 두니 비로소 보이는 것이겠지요.
 

부모의 마음

내 서재를 가끔 방문해 댓글도 달아주시고, 나도 가끔 방문하는 마녀고양이님의 페이퍼를 보고 내내 가슴 한 켠이 아렸다. 아이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도 대부분의 부모들처럼 다른 부분에서는 씩씩하고 용감해도 아이 문제에서만은 그렇지 못하다. 남편이 하던 일을 그만 두고 다른 일을 하느라 우리 가족은 숱하게 이사를 다녔다.
아들은 초등학교를 네 곳, 중학교를 세 곳이나 거쳐서 졸업을 했다.
그러니 마음을 놓고 친구 한명 사귈 시간적, 마음적 여유가 없었을 터이니 지금도 생각만 해도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아들은 전학을 한 학교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우쳤던 것 같다.
거친 아이들이 많으면 자기는 더 거칠어지고, 보통의 아이들이 많으면 자기도 그 수준으로 적응했던 것 같다.
이런 사실은 내가 나중에 안 일이고 그 당시 아이는 나에게 힘들다는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보다 옮겨앉은 자리에서 힘들어하는 남편에게 더 집중했었다. 남편은 좋게 말하면 표현하는 데 선수다.
나는 근래에 들어서야 이 사실을 알고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부모가 왜 있는가, 자식이 힘들 때 울타리가 되어주지도 못했다는 자책에 참 많이 시달렸다.
우리 아들은 성실하고 착하지만 창의성이 부족하고 무슨 일을 새로 시작하는 데에 많은 두려움이 있는 듯 보였다.
물론 성실한 자세가 살아가는 데에 밑거름이 되는 자산이겠지만 우리 아이들 세대는 다양성과 창의력이 주목받는 세상이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노란 색 표지 공책을 보여주며 “내일 밑줄만 그어진 공책 한 권씩 가져오세요.”하면 우리 아들은 노란색 표지 공책을 사느라 대구 시내 문방구를 다 뒤지는 그런 스타일이다. 그 만큼 고지식한 녀석이다.
그런데 아이만 탓할 일이 아니다. 융통성이 없는 것로 따지면 부모인 우리 부부도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아이를 떼어놓기로 했다. 우리 품에서는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는 아이로 키우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좀 더 너른 세상에서 다양한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 수 있는 길을 택했다.
집에 오려면 차를 다섯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시골학교로 아이를 보냈다.
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때, 빚을 얻어 3주짜리 호주 어학연수를 보냈다. 짧은 기간이라도 좀 더 너른 세상을 보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2년간 호주 워킹을 다녀왔다. 아이는 학업을 빨리 마치고 싶어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겉으로는 별 군말없이 갔다. 처음 일년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생활을 했다. 다음 일년은 우리가 학비와 생활비를 보내주었다.
다행히 아들은 자립심이 강해지고, 긍정적이며, 영어는 신경쓰지 않아도 될 만큼을 실력을 갖추어 돌아왔다. 그 기간동안 충분한 영어공부와 따야 할 자격증들을 따 갖고 왔다. 우리 사회에서 영어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모든 출발에 여유가 있다는 뜻이 된다. 무엇보다도 두려움 때문에 몸과 마음을 움츠리지는 않는다.
내 친구들은 아들을 잘 키웠다고 한다. 그만하면 성공작이라는 거다.
나도 거기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한 가지가 좋으면 다른 한 가지는 희생을 해야 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떼어놓은 아들이라 아이를 곁에 두고 키우며 느껴야할 많은 사연들은 내게 없다. 부모와 자식으로 청소년시절을 지내면서 함께 공유해야 할 많은 사연들이 있어야 하는 데 우리에게는 그것이 없다. 나는 그게 아쉽다. 지금도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친구관계는 어떤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은 무엇인지.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둘 다 가질 수 없으면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만 옳은 선택이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복학을 하여 이제 내년 봄이면 졸업을 하고 ROTC로 임관을 할 터이다.

그러나 지금도 내 아이들에게 나는 최선의 엄마였을까 하는 의문은 늘 남아있다. 
 
거창고등학교 직업 선택의 십계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가, 약혼자가 결사 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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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11-08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아드님 거창고등학교를 나왔군요.
제가 거창고등학교를 쬐금 압니다~
거창의 직업십계는 정말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모범이죠.

gimssim 2010-11-09 06:20   좋아요 0 | URL
네. 사실은 제가 우겨서 보냈는데 우리 아들은 어느 글에서 부모님이 저를 거창고등학교로 보내신 것 만으로 부모의 의무를 다했다고 하셔도 군말하지 않겠다고 썼더군요.
지금은 본래의 정신이 많이 희석된듯 보이지만 참 특별한 학교이지요.

세실 2010-11-08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거창고등학교의 십계. 창의성은 확실히 키울듯 합니다.
부모나 아내가, 약혼자가 결사 반대하는 곳? 어디일까요?

gimssim 2010-11-09 06:22   좋아요 0 | URL
거창고등학교의 십계명처럼
언젠가는 '역설의 저력'이 나타나리라 믿습니다.

sslmo 2010-11-09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학교 얘기 여러 곳에서 들었어요.

말로 하기는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죠.
저는 중전님 내외 분의 결단이 부럽습니다.

gimssim 2010-11-09 06:29   좋아요 0 | URL
맞아요.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는 않았어요.
제가 잃은 것도 만만치가 안찮아요.
현실적으로 내신을 잘 받기가 어려운 학교이고, 다니던 중학교에서 원서를 써주지 않고 회유하기를 자기 재단 안의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면 학교장 추천으로 서울대에 가게해주겠다고 했는데(그 당시에는 그런 특별전형이 있었어요) 사실은 그것도 포기를 했어요.
전국에서 모인 아이들 -해외에서, 연변에서 온 아이들도 있었어요 - 과 함께 다양하고 풍성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기는 했는데 잃은 것도 있지요.

BRINY 2010-11-09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창 고등학교 보내시고 호주 워킹 보내신 거 만으로도 정말 충분히 부모의 역할 다 하셨다고 할 만 하네요. 주변에서 자식이 해외 워킹홀리데이 가는 거 반대하는 경우는 봤어도 자식이 탐탁치않아하는데 보내는 부모는 처음 봤습니다. 남자아이인 경우, 특히 해외 나가거나 무슨 일 벌리는 거 귀찮아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에는 역시 부모가 등 떠미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gimssim 2010-11-10 07:21   좋아요 0 | URL
저도 등 떠밀어서라도 보낸 것...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제 졸업을 하고 사회인이 되면 부모가 코치를 해야 할 일은 줄어들겠지요.
가끔은 저에게는 '애끓는 모정' 이지만 아들에게는 '부담스런 모정'이 아닐까 점검을 해 보기도 합니다.

비로그인 2010-11-09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들 사랑하는 중전님의 마음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가슴이 터질 거 같다.."


gimssim 2010-11-09 15:23   좋아요 0 | URL
그래요.
저에게는 흐뭇한 아들이 아니라 마음 애잔한 그런 아들이지요.
근데 우리 아들은 '용감한 엄마'로 기억하고 있어서 그게 좀 마음에 걸립니다.

마녀고양이 2010-11-09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왜 제가 눈물이 글썽하는걸까요.

요즘 여기저기서 그런 조언 들었어요. 아이를 너무 끼고 있으면 안 된다고.
어느 정도 크면, 자립시켜야 한다고. 그나마 딸이라 조금 다행이지,
아들이면 더욱 내보내야 한다고. 옳다는걸 아는데, 가슴이 아렸어요...

중전 언니, 쪼옥~

gimssim 2010-11-09 20:26   좋아요 0 | URL
마고님. 힘 내세요^^
아들이 다닌 중학교에는 같은 재단 내에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가 있어서 원서 쓰기가 쉽지 않았어요.
사흘동안 교무실 교감선생님 책상 옆에서 버텼어요.
원서를 써주라는 교장선생님의 지시가 떨어졌는데도 교감선생님은 과잉충성하는 그런 분인것 같았어요.
그 BJR 선생님을 항복하게 만든 말이 있었어요.
교감선생님께서 학교나 학생을 사랑하시는 마음은 알겠다. 그러나 교감선생님은 나를 이기지 못한다, 단언을 했지요.
"원서 써주세요. 교감선생님은 저를 못이기십니다. 저는 엄마입니다. 세상에서 엄마를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2

도서관에 갔다.
알라딘에는 좀 미안한 소리이지만 연말까지 긴축재정으로 살아야 해서 당분간 책사기는 좀 어려울 것 같다.
대신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소장할 가지가 있다고 판단되면 다 읽은 후에라도 사곤 한다.
이미 뒤에 있는 약속 시간을 넘긴 터라 마음이 바빴다.
검색대에서 청구번호를 출력해서 그 자리에 가서 찾았지만 책을 찾을 수가 없었다.
출발하기 전, 집에서 도서관으로 전화를 걸어서 책이 있다는 확인까지 했는데 말이다.
이삼십 분 사이에 벌써 대출이 된 것 같지는 않았다.
나이가 들면 순발력이 떨어진다. 마음이 급하니 더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내가 낑낑거리는 것보다 도움을 받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이 섰다.
나이가 들면 상황적응력은 높아진다.
암기는 어려워도 논리에 따른 글쓰기는 오히려 쉬워지는 것이 그 때문이다.
노란색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가 바로 옆에 있었다.
청구번호쪽지를 보여주며 분명 이 근처인데 책을 못 찾겠다며 찾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녀도 쪽지를 보더니 여기가 맞는데 책이 없다고 했다.
다시 앞쪽에 앉아있는 젊은 사서에게 갔다.
좀 전에 책이 있다는 확인을 했다. 근데 아무래도 책이 제 자리에 꽂혀있지 않은 모양이다.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 고 물었더니 사서의 대답은 ‘No’였다.
하는 수 없이 다른 책 두 권을 빌려서 무인대출기계 앞에 섰다. 『어느날 사진이 가르쳐준 것들』『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나는 이런 기계가 너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바쁘지만 않으면 사서에게 가서 책을 대출한다.
도서관에서는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서 속삭이는 맛도 있어야 한다.
보통 때는 앞에 두어 사람이 대출을 하고 있어도 기다린다.
그래서 순서가 되면 소리를 죽여서 “이거 대출할게요.” 한다.
그러면 사서 역시 낮은 목소리로 반납일이 며칠이에요, 알려준다.
나는 요즈음 낯선 사람이지만 한두 마디 말을 건네보려고 노력한다.
어떤 날은 멀리 움직이지 않거나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하루 종일 열 마디의 말도 하지 않을 때가 있다.
지독한 길치인 내가 버틸만큼 버티다가 이번 여름 휴가 때 내비게이션을 마련했다. 여행은 가다가 막히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묻는 맛도 있어야 한다. 그게 낯선 지방을 여행할 때 갖는 맛이다.
그런데 요즈음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길을 물어보면 좀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한다.
그리고 내비게이션이 보편화 되어선지 가르쳐 주는 사람도 길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낭패를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자랄 때, 그 때는 전화 있는 집도 드물었다.
친구에게서 전화가 오면 우리 아버지는 나를 바꿔주기 전에 온갖 것을 시시콜콜 물으셨다. 술 한 잔을 기분 좋게 걸치신 날에는 친구들은 그야말로 고문을 당하는 것이었다.
이름이 뭐냐, 어디 사냐, 우리 딸 하고는 친하냐, 아버지는 뭐하시냐, 형제는 몇이냐, 그러고는 기어이 공부는 잘 하냐, 까지 물으셨다. ‘
내 친구들은 ‘아버지 교육’ 좀 시키라고 아우성이었다.
오늘 나는 그런 아버지가 그립다.

이야기가 좀 엉뚱한 데로 흘렀다.
이것도 나이탓이다.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
아무튼 다른 두 권을 빌려 무인대출기 앞에 섰을 때, 아까 그 자원봉사자가 내가 찾던 책을 들고 내 옆으로 다가왔다.
공손하게 “아까 찾으시던 책 이거 맞지요?” 했다.
이런 세상에.
고마운 마음에 “어떻게 찾으셨어요?” 물었더니 역으로 추적을 해서 책을 갖다 꽂는 사람이 헷갈릴 만한 번호를 서너 가지 조합을 해보았다는 것이었다.
그런 수고까지 하지 않아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을 상황이다. 더구나 월급을 받는 직원도 아니지 않는가.
그 마음씀씀이가 너무 고마웠다.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도서관을 나와서 운전을 하고 가면서 느닷없이 가슴이 뭉클했다.
이름이라도 알아둘 껄, 하는 후회가 들었다.
월요일은 휴관이니 화요일쯤 다시 가볼 생각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마음이 씁쓸해지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 중 하나는 점점 사람을 믿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을 본능처럼 갖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몇 번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쉽게 말을 하거나,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경험하고 나면 다시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알게 모르게 마음의 벽을 쌓게 된다.
나 역시도 내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타인에게 그런 상처들을 주고 살아왔을 것이다.
내가 도서관에서 겪은 이 작은 일들이 가슴깊이 새겨지는 것은 바로 그런 상처들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 사이에서 인간관계로 인한 어려움을 확대해석 하지는 말일이다.
살다보면 이렇게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도 만나게 마련이다.

내게 이런 사연들은 안겨준 책은 한겨레신문 논설주간을 지낸 김선주의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집에 와서 책을 읽는 동안  에피소드 하나가 보태졌다. 다음 호를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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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11-08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도서관 이야기를 자꾸 보게되어,
저두 코알라와 주말에 한번 가보려구요, 즐거울 듯 해요.

얼마전 영화관 CGV를 갔는데,
표 파는 사람은 싹 사라지고, 몽땅 무인 발권기로 바뀐거예요.
하아- 하고 한숨이 먼저 나오더라구요. 물론 편한 부분도 있지만,
사람과 말하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고, 영화관 인력 고용도 줄어들 것이고.. 등등.
별별 생각이 휙 스쳐지나가더라구요.

좋은 한주되셔요, 중전 언니~

gimssim 2010-11-09 06:32   좋아요 0 | URL
마고님.
코알라 애칭 너무 귀여워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 많이 데리고 다니면서 함께 한 사연을 많이 만드시기 바래요.
세월은 얼마나 빠른지 금방 부모곁을 떠나게 되더라구요.
네 좋은 가을 되세요^^

순오기 2010-11-08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림의 가을에 이어 오늘은 도서관의 아름다운 꽃이네요~ 늘 감동스런 중전님의 글!
저는 반납일이 10일이라 모레 도서관 가야겠어요.^^

gimssim 2010-11-09 06:34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서민들이 살기엔 좀 빡빡한 세상이라 저는 글이라도 좀 미담을 쓸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저도 오늘 쯤 도서관에 갔다가 양동마을 은행나무가 물들었다는 전언이 와서 가 보려고 하는 데 바람이 엄청 부네요.
이 체중 유지한 거 잘한 일인 거 같습니다. ㅎㅎ

sslmo 2010-11-09 0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기저기서 도서관 얘기를 하니까,저도 도서관이 이용하고 싶어지는 걸요.^^

저 또한 씁쓸하지만,이 말이 와 닿아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을 본능처럼 갖고 있다."

서영은은 읽었구요,김선주는 읽고 싶어요~

gimssim 2010-11-09 06:36   좋아요 0 | URL
김선주는 참 따뜻한 시선을 가진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칼럼이니 세상을 보는 눈도 느낄 수 있는 거에요.

일이 년 뒤 스페인에 가볼까 생각중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