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마음

내 서재를 가끔 방문해 댓글도 달아주시고, 나도 가끔 방문하는 마녀고양이님의 페이퍼를 보고 내내 가슴 한 켠이 아렸다. 아이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도 대부분의 부모들처럼 다른 부분에서는 씩씩하고 용감해도 아이 문제에서만은 그렇지 못하다. 남편이 하던 일을 그만 두고 다른 일을 하느라 우리 가족은 숱하게 이사를 다녔다.
아들은 초등학교를 네 곳, 중학교를 세 곳이나 거쳐서 졸업을 했다.
그러니 마음을 놓고 친구 한명 사귈 시간적, 마음적 여유가 없었을 터이니 지금도 생각만 해도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아들은 전학을 한 학교에서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우쳤던 것 같다.
거친 아이들이 많으면 자기는 더 거칠어지고, 보통의 아이들이 많으면 자기도 그 수준으로 적응했던 것 같다.
이런 사실은 내가 나중에 안 일이고 그 당시 아이는 나에게 힘들다는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보다 옮겨앉은 자리에서 힘들어하는 남편에게 더 집중했었다. 남편은 좋게 말하면 표현하는 데 선수다.
나는 근래에 들어서야 이 사실을 알고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부모가 왜 있는가, 자식이 힘들 때 울타리가 되어주지도 못했다는 자책에 참 많이 시달렸다.
우리 아들은 성실하고 착하지만 창의성이 부족하고 무슨 일을 새로 시작하는 데에 많은 두려움이 있는 듯 보였다.
물론 성실한 자세가 살아가는 데에 밑거름이 되는 자산이겠지만 우리 아이들 세대는 다양성과 창의력이 주목받는 세상이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노란 색 표지 공책을 보여주며 “내일 밑줄만 그어진 공책 한 권씩 가져오세요.”하면 우리 아들은 노란색 표지 공책을 사느라 대구 시내 문방구를 다 뒤지는 그런 스타일이다. 그 만큼 고지식한 녀석이다.
그런데 아이만 탓할 일이 아니다. 융통성이 없는 것로 따지면 부모인 우리 부부도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아이를 떼어놓기로 했다. 우리 품에서는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는 아이로 키우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좀 더 너른 세상에서 다양한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 수 있는 길을 택했다.
집에 오려면 차를 다섯 번이나 갈아타야 하는 시골학교로 아이를 보냈다.
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때, 빚을 얻어 3주짜리 호주 어학연수를 보냈다. 짧은 기간이라도 좀 더 너른 세상을 보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2년간 호주 워킹을 다녀왔다. 아이는 학업을 빨리 마치고 싶어서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겉으로는 별 군말없이 갔다. 처음 일년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생활을 했다. 다음 일년은 우리가 학비와 생활비를 보내주었다.
다행히 아들은 자립심이 강해지고, 긍정적이며, 영어는 신경쓰지 않아도 될 만큼을 실력을 갖추어 돌아왔다. 그 기간동안 충분한 영어공부와 따야 할 자격증들을 따 갖고 왔다. 우리 사회에서 영어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모든 출발에 여유가 있다는 뜻이 된다. 무엇보다도 두려움 때문에 몸과 마음을 움츠리지는 않는다.
내 친구들은 아들을 잘 키웠다고 한다. 그만하면 성공작이라는 거다.
나도 거기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한 가지가 좋으면 다른 한 가지는 희생을 해야 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떼어놓은 아들이라 아이를 곁에 두고 키우며 느껴야할 많은 사연들은 내게 없다. 부모와 자식으로 청소년시절을 지내면서 함께 공유해야 할 많은 사연들이 있어야 하는 데 우리에게는 그것이 없다. 나는 그게 아쉽다. 지금도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친구관계는 어떤지,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은 무엇인지.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둘 다 가질 수 없으면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만 옳은 선택이었음을 확신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복학을 하여 이제 내년 봄이면 졸업을 하고 ROTC로 임관을 할 터이다.

그러나 지금도 내 아이들에게 나는 최선의 엄마였을까 하는 의문은 늘 남아있다. 
 
거창고등학교 직업 선택의 십계

1.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2.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3.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4.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5.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6.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7. 사회적 존경 같은 것을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8.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9. 부모나 아내가, 약혼자가 결사 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10.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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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11-08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아드님 거창고등학교를 나왔군요.
제가 거창고등학교를 쬐금 압니다~
거창의 직업십계는 정말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모범이죠.

gimssim 2010-11-09 06:20   좋아요 0 | URL
네. 사실은 제가 우겨서 보냈는데 우리 아들은 어느 글에서 부모님이 저를 거창고등학교로 보내신 것 만으로 부모의 의무를 다했다고 하셔도 군말하지 않겠다고 썼더군요.
지금은 본래의 정신이 많이 희석된듯 보이지만 참 특별한 학교이지요.

세실 2010-11-08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거창고등학교의 십계. 창의성은 확실히 키울듯 합니다.
부모나 아내가, 약혼자가 결사 반대하는 곳? 어디일까요?

gimssim 2010-11-09 06:22   좋아요 0 | URL
거창고등학교의 십계명처럼
언젠가는 '역설의 저력'이 나타나리라 믿습니다.

sslmo 2010-11-09 0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학교 얘기 여러 곳에서 들었어요.

말로 하기는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죠.
저는 중전님 내외 분의 결단이 부럽습니다.

gimssim 2010-11-09 06:29   좋아요 0 | URL
맞아요.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는 않았어요.
제가 잃은 것도 만만치가 안찮아요.
현실적으로 내신을 잘 받기가 어려운 학교이고, 다니던 중학교에서 원서를 써주지 않고 회유하기를 자기 재단 안의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면 학교장 추천으로 서울대에 가게해주겠다고 했는데(그 당시에는 그런 특별전형이 있었어요) 사실은 그것도 포기를 했어요.
전국에서 모인 아이들 -해외에서, 연변에서 온 아이들도 있었어요 - 과 함께 다양하고 풍성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기는 했는데 잃은 것도 있지요.

BRINY 2010-11-09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창 고등학교 보내시고 호주 워킹 보내신 거 만으로도 정말 충분히 부모의 역할 다 하셨다고 할 만 하네요. 주변에서 자식이 해외 워킹홀리데이 가는 거 반대하는 경우는 봤어도 자식이 탐탁치않아하는데 보내는 부모는 처음 봤습니다. 남자아이인 경우, 특히 해외 나가거나 무슨 일 벌리는 거 귀찮아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에는 역시 부모가 등 떠미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gimssim 2010-11-10 07:21   좋아요 0 | URL
저도 등 떠밀어서라도 보낸 것...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제 졸업을 하고 사회인이 되면 부모가 코치를 해야 할 일은 줄어들겠지요.
가끔은 저에게는 '애끓는 모정' 이지만 아들에게는 '부담스런 모정'이 아닐까 점검을 해 보기도 합니다.

비로그인 2010-11-09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들 사랑하는 중전님의 마음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가슴이 터질 거 같다.."


gimssim 2010-11-09 15:23   좋아요 0 | URL
그래요.
저에게는 흐뭇한 아들이 아니라 마음 애잔한 그런 아들이지요.
근데 우리 아들은 '용감한 엄마'로 기억하고 있어서 그게 좀 마음에 걸립니다.

마녀고양이 2010-11-09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니, 왜 제가 눈물이 글썽하는걸까요.

요즘 여기저기서 그런 조언 들었어요. 아이를 너무 끼고 있으면 안 된다고.
어느 정도 크면, 자립시켜야 한다고. 그나마 딸이라 조금 다행이지,
아들이면 더욱 내보내야 한다고. 옳다는걸 아는데, 가슴이 아렸어요...

중전 언니, 쪼옥~

gimssim 2010-11-09 20:26   좋아요 0 | URL
마고님. 힘 내세요^^
아들이 다닌 중학교에는 같은 재단 내에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가 있어서 원서 쓰기가 쉽지 않았어요.
사흘동안 교무실 교감선생님 책상 옆에서 버텼어요.
원서를 써주라는 교장선생님의 지시가 떨어졌는데도 교감선생님은 과잉충성하는 그런 분인것 같았어요.
그 BJR 선생님을 항복하게 만든 말이 있었어요.
교감선생님께서 학교나 학생을 사랑하시는 마음은 알겠다. 그러나 교감선생님은 나를 이기지 못한다, 단언을 했지요.
"원서 써주세요. 교감선생님은 저를 못이기십니다. 저는 엄마입니다. 세상에서 엄마를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