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세상의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흔적들은 옅어지고 분해되어서 소멸의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특별히 주목할 만한 일도 없이 그냥 사라져버리는 것 같은 하루하루가 모여 일주일이 되고, 한 달이 되고 한 해가 되면서 한 사람의 생애가 된다.
우리 시대의 많은 트렌드들도 생겨났다가 얼마간의 시간을 풍미하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 시대의 단면으로 남아있어서 그것이 시대의 역사가 된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순창에 들렀다. 차량이 뜸한 대로여서 말하자면 불법 유턴의 현장이다. 이렇듯 세상의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
사진을 보며 나 스스로 좀더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생각 하나, 몸짓 하나가 흔적으로 남아서 ‘나’를 이루어 가는 것이겠기에.

*** 휴가를 떠나면서 열 장의 사진을 찍으리라 마음먹었습니다. 물론 사진을 그보다 몇 배 더 찍을 터이지만 내게 의미로 남을 그런 사진을 열 장 쯤 건졌으면 하는 희망사항을 가지고 출발했었습니다.
집에 와서 살펴보니 열 장은 될 것 같습니다. 글 쓰는 훈련 삼아 짧은 글을 덧붙입니다.
첫 번째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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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8-23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하자면 여행의 흔적이신 거네요, 사진이~^^

처서래요,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쌀쌀해요.
감기 조심하세요~!

gimssim 2011-08-23 20:24   좋아요 0 | URL
네 여행의 흔적이지요.
세월은 정말 빠르죠? 벌써 처서라니요.
양철나무꾼님도 감기조심^^
모든 병원 근원이니까요.

pjy 2011-08-23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사진이라도 프레임에 따라서 느낌이 달라질거 같아요^^
금속에 은색으로 반짝거리면서 날카롭다면? 원목과 자갈이 섞인듯 성글게 포근하다면?

gimssim 2011-08-23 20:26   좋아요 0 | URL
많이 달라지지요.
다른 듯 하면서 조화를 이루는 것...그런 사진 찍고 싶어요.
곧 구월... 그리고 가을이 올 듯 합니다.
조금만 더 견디면요.
시간이 가고나면 이번 여름도 기억에 많이 남겠지요.

자하(紫霞) 2011-08-23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자꾸 밑에 양파밭사진이 생각이 나더군요. 에이 참~그러면서 스크랩해놓았어요.
중전님 사진을 보고 있으면 뭔가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ㅋ

gimssim 2011-08-24 07:34   좋아요 0 | URL
제 사진은 어쩌면 사진으로서의 매력은 덜할런지도 몰라요.
사진기법, 노출, 셔터속도를 말하라면 자신없어요.
그러나 제가 추구하는 것은 베리베리님의 말씀처럼 메시지가 있는 사진이에요.
생각하게 하는...
그렇게 봐 주시니 감사해요^^

순오기 2011-08-24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법 유턴의 흔적을 보면서 멋진 사진과 근사한 생각을 하셨군요.
중전님의 휴가 흔적에 끄덕이는 심야!^^

gimssim 2011-08-24 07:38   좋아요 0 | URL
늦은 시간까지 불을 밝히고 있는 순오기님을 존경합니다.
오래 전 결혼도 하기 전, 새벽까지 불을 켜고 책을 읽다가 문득 건너편 아파트에 불 밝힌 창을 보고 나처럼 잠들지 못하는 사람이 있구나, 가슴 싸아했던 기억이 있어요.
예수쟁이라 새벽기도에 가느라 그런 기억은 그저 추억으로만 있네요.
원래 야행성인 제가.
사진은, 매일 한 장씩 열 장쯤 올릴 생각입니다.
 

  

며칠 전(8월 9일), 한겨레 신문에 실린 사진입니다. 

초여름 전주 한옥마을에 갔다가 오는 길에 찍었습니다. 

마이산을 둘러보고 오는 어느 들판풍경입니다. 

양파를 수확하고 나면 모내기를 할 겁니다. 

*** 저는 15일부터 휴가입니다. 희망사항은 수필 두 편 쓰고 사진 열 장쯤 건지는 겁니다.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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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3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3 2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하(紫霞) 2011-08-13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봤어요. 신문에서~
중전님 사진이었군요!

gimssim 2011-08-13 21:04   좋아요 0 | URL
네 저였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찍어보도록 할께요.

라로 2011-08-13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봤어요. 신문에서~
중전님 사진이었군요!
열심히 하시니 좋은 결과도 있네요!!
제목이 의미심장해요~~~~.^^
휴가 잘 보내시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뵈어요~~~.

gimssim 2011-08-13 21:05   좋아요 0 | URL
사실 제목이 좀 그렇지요.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행복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좀 더 겸손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건강한 여름 되세요!

순오기 2011-08-13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못봤어요, 신문에서~~~~하지만 서재에서 봤으니 복받았네요.^^
휴가 잘 지내시고 목표달성하고 돌아오시길...

gimssim 2011-08-13 21:07   좋아요 0 | URL
잘 지내시죠?
올해는 제가 좀 띄엄띄엄입니다.
그럴 때도 있지, 하며 넘어갑니다.
그동안 너무 제 자신을 뽂으며 살아와서요.
목표달성은 해야지요.

하양물감 2011-09-07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보고싶어요, 신문에서 ~~~~~
전 신문을 안받아봐요.

gimssim 2011-09-10 07:22   좋아요 0 | URL
신문 안받아보시는 용기...대단합니다!
저는 뻑하면 신문끊는다고 남편에게 엄포를 놓긴 합니다만...
 

*** 아, 칭찬은 정녕 고래도 춤 추게 하는 거...맞습니다, 맞고요. 
pek0501님의 칭찬에 오래 전의 습작노트를 뒤적였습니다.
한 이십년은 족히 되었을 듯 합니다.
사실, 이 남자와 찢어져 말아, 잠시 고민했었는데 이 짧은 글을 쓰고 헤어져야겠다는 생각을 접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후 십년간 봉직한 일을 버리고 자리를 바꿔앉았지만 이후의 삶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여전히 ‘견원지간’의 삶을 살아오고 있지요.
물론 ‘픽션’이긴하지만 우리 부부의 삶의 근간이 깔려있겠지요. 

         
 

 

 

 

 

 

 

 

 

 

 

 

 

 

 

천만에요

한수와 정애는 결국 헤어지기로 합의를 보았다. 십 년 동안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마침내 돌아눕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들의 이혼 결정은 너무나 갑작스럽게 이루어져서 가까운 친구들조차도 소문의 진상에 대해 긴가민가할 정도였다. 그들 둘은 개성이 강해서 사흘이 멀다 하고 티격태격할 지경이었지만 장장 구년 동안의 연애기간이라던가 한수가 와병 중이었고 대학교 2학년 재학 중에 주위의 모든 만류를 뿌리치고 용감무쌍하게 결혼을 한 그들이고 보면 쉽사리 헤어질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 혹시 그것 때문이 아닐까, 잠자리 말이야, 흐흐흐. 한수란 놈은 약탕기를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사는 놈인데 정앤 바야흐로 삼십대니 한창 완숙할 나이 아냐? 정애가 작년부터 테니스라던지 수영에 열을 올리는 걸 보면 남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닐까. 흐흐흐. -
학창시절에 유난히 함께 몰려다닌 탓에 이제 모두 결혼을 하여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니는 학부형이 되었어도 친구들은 여전히 한수놈이었고 정애걔였다.

그들 부부는 이혼 절차를 밟을 동안 별거에 들어갔다. 한수의 직업이 교사인지라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인지 별거래야 정애는 그냥 안방을 쓰고 한수가 정애의 화장대 서랍에 넣어두었던 면도기 나부랭이를 챙겨 이부자리와 함께 서재방으로 옮긴 것이 고작 이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들은 한 지붕 아래에서 남남으로 돌아섰다. 정애는 더 이상 한수를 위해 새벽밥을 짓지도 않고 그의 점심 도시락도 준비하지 않았다. 그것 하나로도 정애는 날아갈 것만 같았다.

연애시절의 남자들이 대부분 그럴 터이지만 한수도 정애가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정도였다. 영화를 좋아한 정애가 개봉관을 빠지지 않고 순례를 하여도 군소리 한번 하지 않았다. 군소리가 다 뭔가 한술 더 떠서 영화감상이 취미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막상 결혼을 한 그날부터 한수의 태도는 돌변했다 영화감상이 취미는커녕 공연한 시간 낭비라고 펄쩍 뛰었다. 학교의 리포트 작성은 전적으로 정애의 몫이었고 교직에 있는 지금도 한 무더기로 쏟아지는 학생들의 성적표정이, 생활기록부의 작성, 학습지도안의 정리, 성적표 기록도 모조리 정애 앞으로 미루었다.
밤을 새워 일을 마쳐놓으면 한수는 수고했다는 말 한 마디는 커녕 혹시 한두 군데라고 틀린 곳이 있으면 버럭 화를 내곤 했다.

정애는 한수와 헤어지기로 결정을 하고 나자 이상하게 마음이 낮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얼마나 긴장을 한 채 살아왔던가, 한평생을 남편의 영양식이나 만들고 건강이나 체크하며 살순 없지 않는가. 아름답고 향기롭게 한 생애를 살고 싶었거늘. 예감도 없이 눈물이 났다.

홀가분한 것은 한수도 마찬가지였다. 죽어서 저승까지 따라올 것 같은 마누라의 잔소리에서 해방되어 양말을 한 번쯤 더 신어도, 밥을 먹지 전에 손을 닦지 않아도, 하루쯤 저녁 양치질을 걸러도 누가 무어라 할 사람이 없었다.
또 지금까지 참을 수가 없는 것은 한수가 일찍 잠자리에 드는 데에 반해 정애는 새벽녘까지 불을 켜놓기 일쑤였고 집에서 살림을 하는 여자가 영화평론이라도 쓰려는지 <주말의 명화>다, <토요명화>다, <명화극장>은 거의 빠뜨리지 않고 보면서 또 읽는 책은 시사성이라고는 없는 소설책만 탐독하는 것이었다.

떠도는 말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집을 장만하고 한수가 우겨서 들어놓았다던 더블침대를 처분 했다는 소문을 듣던 말 친구들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 걔들 정말 일 내는 거 아냐? -
소문이 돌고나서 처음으로 친구들은 말을 아꼈다. 친구들이 한무더기로 몰려온 것은 한수가 그들의 집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는 날이었다. 오밤중에 쳐들어온 친구들을 보며 한수와 정애는 속으로 ‘어이구 저 웬수들’ 했다. 비록 중간에서 어긋나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영화에서 본 것처럼 포도주라도 한 잔씩 마시며 근사한 이별을 하고 싶었는데 불청객들이 산통을 다 깨어놓고 있었다.
정애는 그들에게 드러내놓고 눈을 흘겼다.

친구들이 반갑지 않은 것은 한수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밤을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며 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래도 괜찮은 마누라였는데, 그까짓 영화를 좀 즐기면 어떠랴. 국회에 가서 정치를 할 것도 아닌데 시사에 좀 둔감하면 또 어떠랴. 초저녁부터 잠에 취해 있는 것보다 밤늦도록 불을 밝히고 소설책이라도 읽는 편이 옆에서 보기에 낫지 않았을까. 

한수는 술상 건너편에서 친구들의 술시중을 들고 있는 정애를 찬찬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정애도 친구들 속에 섞여 그들의 잡담을 들으며 잠간씩 생각에 잠겼다. 다소 이기적이고, 경상도 남자 특유의 무뚝뚝함에 집안일이라면 벽에 못 하나도 건사할 줄 모르고, 경제적인 문제나 아이를 키우는 일등 신경 써야하는 일은 모조리 정애에게 미뤄버리긴 해도 성실하고 반듯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잖아. 왜곡된 사회현실이나 구조적인 모순에 부딪힐 때마다 피하지 않고 ‘양심적인 소수’가 되고자 하지 않았던가.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한 집 건너 한 쌍씩 이혼을 하는 세상이 되었더라도 그들의 ‘1호부부’를 그냥 일 내게 버려둘 수는 없었다. 참으로 치기어린 이십대 초반이었을 때 약혼식이다, 결혼식이다. 아이 백일이다, 돌이다 하며 줄기차게 구실을 만들어 몰려가서는 그들 가난한 부부의 한 달 생활비를 온통 들어먹곤 했었다.
이제는 사회의 한 분야에서 뒤돌아볼 틈도 없이 바쁘게 뛰어야 하는 세월 위에 서고 보니 그 시절이 그리워졌다. 다시는 그 때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 그들 부부와 친구들이 은밀한 비밀처럼 가슴에 묻어두고 공유하고 있는 그 한조각 향수 때문에 한수 부부는 여느 부부와는 다른 의미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혼이라니.

한수의 짐인 듯 거실 한쪽에 놓여있는, 이제는 그들 부부의 이혼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몇 개의 상자와 두 개의 여행용 가방을 보며 그들은 자꾸만 술을 들이켰다. 왠지 빈 가슴 위로 마구 바람이 쓸며 지나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한수와 정애의 결혼식에 주례를 서신 은사님이 아파트의 벨을 누를 것은 새벽 두시가 훨씬 넘은 시각이었다. 시골에 계시는 탓에 가까스로 연락이 닿았는데 한수와 정애의 소식을 듣고 급히 올라오시는 길이었다.
거실로 올라서자마자 왕년의 주례선생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 김군, 한군, 자네들 정말 이혼할 셈인가? -
제 삼자의 입에서 나온 ‘이혼’이라는 말에 한수도, 정애도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외쳤다.

- 천만에요, 선생님. - 


오늘의 컨셉 - 친한척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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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7-19 2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섯번째 추천은 접니다~ ^^

gimssim 2011-07-20 08:03   좋아요 0 | URL
그래요? 감사합니다.
연일 더운 폭염이라는데 제가 사는 곳은 태풍 영향인지 시원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마녀고양이 2011-07-20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몇년 전에 이혼 이야기 한번 했거든요.
제가 이제 신랑에게 애정을 못 느끼겠다 평생 이렇게 살수는 없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알았다고 동의하는거예요. 그리고 그날부터 집안 구석구석을 사진으로 담더라구요.
밤에 아이 얼굴을 지긋이 보고, 쓰다듬기도 하고.... 음... 그 모습을 보며
말을 물르고,, 그 담에는 그런 말 다시는 안 하고 있어요.. ^^

천만에요,,, 언니, 더운데 건강 조심하시구요~

gimssim 2011-07-20 22:38   좋아요 0 | URL
ㅎㅎ
누구나 가끔은 그런 꿈들을 꾸며 살아오지 않을까요?
친한 척 하면 정말 친해질 수 있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한 사람...진부한 소리 같지만 맞는 말이죠?
마녀고양이님도 건강 조심하세요.
오래 전에 강유일의 소설을 읽는 적이 있는데 '팔월을 헛되이 보내면 구월엔 앓아눕는다'고요.
여름 헛되이 보내 가을에 앓아눕지 않도록 해요, 우리!

페크pek0501 2011-07-23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읽고 갑니다. 9번째 추천은 pek입니다. ㅋㅋ
 

*** 오래 쉬었던 부부이야기 다시 시작합니다. 

어느 날 아침 풍경. 

남편은 신문을 보고, 아내는 아침식사 준비를 합니다. 

두 식구 밖에 없는 터라 별로 분주하지는 않습니다. 

어제 먹던 반찬에 한 가지 정도 '새로운 반찬'이라는 원칙을 세워두고 있습니다.  

사실 끼니 때 마다 '한가지 새로운 반찬'도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 

그냥 받아 먹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져도 말이지요. 

아무튼 그 한가지 반찬을 만들고 있는데 남편이 불렀습니다. 

신문에 웰빙이다 해서 요즈음 뜨고 있는 막걸리 사진이 실렸더군요. 

남편은 술을 안마십니다. 타의에 의해서. 

아니 그것보다 평생 마셔야 할 술을 고등학교시절과 재수 시절에 다 마셨다고 하더군요. 

일년에 한 번 휴가를 가면 혼자 막걸리 한 병 쯤은 마십니다. 

그리고 가끔 와인 한 잔 하는 정도이지요. 

남편은 아내에게 묻습니다. 

"여보, 지난 번 휴가 때 마신 막걸리가 어느 것이지?" 

목소리 톤이 높아지는 것이 꼭 조만간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가지게 되는 일곱살 소년 같습니다. 

아마 머릿속으로는 이번 휴가 때는 어느 것을 마셔볼까, 궁리 중이겠지요.  

그래도 아내는 묵묵부답입니다. 

마침내 사진에 필이 꽂혀있는 아내의 일성 

"으흠, 막걸리 병을 이렇게 줄세워 찍을 수도 있구나!" 

여성 호르몬이 왕성하게 배출되고 있는 남편은 아마 하루 정도 삐져 있을 겁니다. 

아낸들 왜 모르겠습니까. 

남편이 기다리고 있는 말을요. 

'으응, 당신이 지난 번에 마신 막걸리는 이것이고 이번엔 이걸 마셔봐. 이게 맛있겠네. 당신은 어느 것을 마시고 싶어?'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밥하다 말고 곁에 붙어서 맞장구를 쳐주기를 바라겠지요. 

그러나 남성호르몬이 왕성하게 배출되고 있는 아내는 이제 그런 것 그만두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고 싶습니다. 

머릿 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말하고 싶다는 거지요. 

그날 하루 아내는 갑옷을 입고 벗지 못했답니다. 

언제 날아올지 모를 화살을 피하느라...


신문에 실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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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7-15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우리집 풍경과 비슷합니다~~~~~~~ ^^
아래 글을 늦게 봤네요~~~~~ 늘 건강하십시오!

gimssim 2011-07-15 21:18   좋아요 0 | URL
하늘 아래 어디 새로운 것이 있겠어요?
두껑을 열고 보면 다 거기에서 거기지요.

조금 부대끼는 것도 행복이라 생각하고 살아야겠지요.
순오기님도 책 많이 읽으시고 건강하세요.
저는 사진 열심히 찍어볼랍니다.

마녀고양이 2011-07-15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 아이고 저런.
중전 언니의 페이퍼를 읽으니, 저희 집은 아직 남편이 남성 호르몬을 저는 여성 호르몬을 내뿜고 있는 중인가 봅니다... ㅋㅋ. 휴가 중에 드실 막걸리 종류를 고르고 계시다니 옆지기님 멋지신걸요. 줄세워 찍힌 사진에 필 꽂힌 언니는 더 멋지시구요. ^^

gimssim 2011-07-15 21:40   좋아요 0 | URL
언젠가 목포를 여행하는 중에 '삼합에 막걸리 한 잔' 하는 것을 못들어 줬지 뭡니까?
조만간 그 원을 풀어드려야겠어요.

양철나무꾼 2011-07-15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새벽에 깨어있지 않으려고 일부러 술을 한잔씩 해요.
소주와 맥주는 메이커 별로 두루 섭렵하고 있는 중인데...
이젠 막걸리로 종목을 바꿔 볼까요?^^

오랫만에 들렀지만 종종 중전님 생각을 했어요.
프레임처리가 돋보이는 사진을 본다던지, 전에 양동마을이 회자됐을 때라던지...
아프지 마세요~^^

gimssim 2011-07-15 21:22   좋아요 0 | URL
이젠 건강이 많이 좋아졌어요.
사진 땜에 가슴앓이는 하는 중이구요.

저는 새벽시간이 좋습니다.
예수쟁이라 새벽기도에 가지요.

pjy 2011-07-15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아빠는 요즘 여성호르몬이 뿜어내고 있습니다~
말끝마다 "내가 그걸 꼭 말을 해야알어? 알아서 잘 알아들어야지~~" 이러면서요^^;
아빠, 말을 해야알지, 그것도 제발 제대로 말씀을 하셔야 알지요!!! 제가 심령술사 소머즈인가요?

gimssim 2011-07-15 21:25   좋아요 0 | URL
piy님 어쩌겠어요.
백년의 중간을 뚝 자른 세월위에 서면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그렇게 되는 것을요.
'품위있고 아름다운 중년'이 물 건너갈 것 같아 전전긍긍합니다^^

페크pek0501 2011-07-18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재밌게 읽었어요. 잘 썼어요. 제가 보기에 중전님은 사진보다(그건 제가 잘 모르므로 비교 못함) 글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글쟁이의 재능이 있어요. 글을 요리할 줄 안다는 뜻이에요. 이 글을 잘 썼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문장 때문입니다.

1. 여성 호르몬이 왕성하게 배출되고 있는 남편은
2. 그러나 남성호르몬이 왕성하게 배출되고 있는 아내는
3. 그날 하루 아내는 갑옷을 입고 벗지 못했답니다.
언제 날아올지 모를 화살을 피하느라...


gimssim 2011-07-18 20:58   좋아요 0 | URL
호호호...그런가요?
제가 글은 좀 재미있게 쓸려고 노력하는 편이지요.
재미있는 것이 별로 없는 세상인 것 같아서요.

pek0501님의 칭찬에 힘입어 열심히 써야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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