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 쉬었던 부부이야기 다시 시작합니다. 

어느 날 아침 풍경. 

남편은 신문을 보고, 아내는 아침식사 준비를 합니다. 

두 식구 밖에 없는 터라 별로 분주하지는 않습니다. 

어제 먹던 반찬에 한 가지 정도 '새로운 반찬'이라는 원칙을 세워두고 있습니다.  

사실 끼니 때 마다 '한가지 새로운 반찬'도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 

그냥 받아 먹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져도 말이지요. 

아무튼 그 한가지 반찬을 만들고 있는데 남편이 불렀습니다. 

신문에 웰빙이다 해서 요즈음 뜨고 있는 막걸리 사진이 실렸더군요. 

남편은 술을 안마십니다. 타의에 의해서. 

아니 그것보다 평생 마셔야 할 술을 고등학교시절과 재수 시절에 다 마셨다고 하더군요. 

일년에 한 번 휴가를 가면 혼자 막걸리 한 병 쯤은 마십니다. 

그리고 가끔 와인 한 잔 하는 정도이지요. 

남편은 아내에게 묻습니다. 

"여보, 지난 번 휴가 때 마신 막걸리가 어느 것이지?" 

목소리 톤이 높아지는 것이 꼭 조만간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가지게 되는 일곱살 소년 같습니다. 

아마 머릿속으로는 이번 휴가 때는 어느 것을 마셔볼까, 궁리 중이겠지요.  

그래도 아내는 묵묵부답입니다. 

마침내 사진에 필이 꽂혀있는 아내의 일성 

"으흠, 막걸리 병을 이렇게 줄세워 찍을 수도 있구나!" 

여성 호르몬이 왕성하게 배출되고 있는 남편은 아마 하루 정도 삐져 있을 겁니다. 

아낸들 왜 모르겠습니까. 

남편이 기다리고 있는 말을요. 

'으응, 당신이 지난 번에 마신 막걸리는 이것이고 이번엔 이걸 마셔봐. 이게 맛있겠네. 당신은 어느 것을 마시고 싶어?'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밥하다 말고 곁에 붙어서 맞장구를 쳐주기를 바라겠지요. 

그러나 남성호르몬이 왕성하게 배출되고 있는 아내는 이제 그런 것 그만두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고 싶습니다. 

머릿 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그대로 말하고 싶다는 거지요. 

그날 하루 아내는 갑옷을 입고 벗지 못했답니다. 

언제 날아올지 모를 화살을 피하느라...


신문에 실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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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1-07-15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우리집 풍경과 비슷합니다~~~~~~~ ^^
아래 글을 늦게 봤네요~~~~~ 늘 건강하십시오!

gimssim 2011-07-15 21:18   좋아요 0 | URL
하늘 아래 어디 새로운 것이 있겠어요?
두껑을 열고 보면 다 거기에서 거기지요.

조금 부대끼는 것도 행복이라 생각하고 살아야겠지요.
순오기님도 책 많이 읽으시고 건강하세요.
저는 사진 열심히 찍어볼랍니다.

마녀고양이 2011-07-15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 아이고 저런.
중전 언니의 페이퍼를 읽으니, 저희 집은 아직 남편이 남성 호르몬을 저는 여성 호르몬을 내뿜고 있는 중인가 봅니다... ㅋㅋ. 휴가 중에 드실 막걸리 종류를 고르고 계시다니 옆지기님 멋지신걸요. 줄세워 찍힌 사진에 필 꽂힌 언니는 더 멋지시구요. ^^

gimssim 2011-07-15 21:40   좋아요 0 | URL
언젠가 목포를 여행하는 중에 '삼합에 막걸리 한 잔' 하는 것을 못들어 줬지 뭡니까?
조만간 그 원을 풀어드려야겠어요.

양철나무꾼 2011-07-15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새벽에 깨어있지 않으려고 일부러 술을 한잔씩 해요.
소주와 맥주는 메이커 별로 두루 섭렵하고 있는 중인데...
이젠 막걸리로 종목을 바꿔 볼까요?^^

오랫만에 들렀지만 종종 중전님 생각을 했어요.
프레임처리가 돋보이는 사진을 본다던지, 전에 양동마을이 회자됐을 때라던지...
아프지 마세요~^^

gimssim 2011-07-15 21:22   좋아요 0 | URL
이젠 건강이 많이 좋아졌어요.
사진 땜에 가슴앓이는 하는 중이구요.

저는 새벽시간이 좋습니다.
예수쟁이라 새벽기도에 가지요.

pjy 2011-07-15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아빠는 요즘 여성호르몬이 뿜어내고 있습니다~
말끝마다 "내가 그걸 꼭 말을 해야알어? 알아서 잘 알아들어야지~~" 이러면서요^^;
아빠, 말을 해야알지, 그것도 제발 제대로 말씀을 하셔야 알지요!!! 제가 심령술사 소머즈인가요?

gimssim 2011-07-15 21:25   좋아요 0 | URL
piy님 어쩌겠어요.
백년의 중간을 뚝 자른 세월위에 서면 본인의 의지와는 다르게 그렇게 되는 것을요.
'품위있고 아름다운 중년'이 물 건너갈 것 같아 전전긍긍합니다^^

페크pek0501 2011-07-18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재밌게 읽었어요. 잘 썼어요. 제가 보기에 중전님은 사진보다(그건 제가 잘 모르므로 비교 못함) 글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글쟁이의 재능이 있어요. 글을 요리할 줄 안다는 뜻이에요. 이 글을 잘 썼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문장 때문입니다.

1. 여성 호르몬이 왕성하게 배출되고 있는 남편은
2. 그러나 남성호르몬이 왕성하게 배출되고 있는 아내는
3. 그날 하루 아내는 갑옷을 입고 벗지 못했답니다.
언제 날아올지 모를 화살을 피하느라...


gimssim 2011-07-18 20:58   좋아요 0 | URL
호호호...그런가요?
제가 글은 좀 재미있게 쓸려고 노력하는 편이지요.
재미있는 것이 별로 없는 세상인 것 같아서요.

pek0501님의 칭찬에 힘입어 열심히 써야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