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잠을 잘 못자니 "웬갖 잡생각만 날아든다.~♬"

밤뱃놀이가 얼마나 운치있었는지 갑자기 그 여름 그 밤, 어둑어둑한 빛깔이 떠오른다.

맑은 물냄새와 어둔 하늘, 배의 흔들림이 가만히 날 위로해준다.

 

탈패 여름전수, 그땐 회장을 맡고 있어서 모든 게 너무 버겁고 힘들어 정신없고 지쳐있었다.

내가 직접 학습을 할 때 빼고는 학습하는 도중에  후배가 보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끄떡하면 졸기 일쑤였다. 절에서 수도하는 어린 스님이 법회 중에 꾸벅꾸벅 조는 게 이해가 간다.

탈춤을 추던 연습장 주변에 버려진 것처럼 누군가의 손길만 바라고 있는 듯 보이는 조그만 거룻배 한 척을 우린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고, 연습에 찌들어 있던 우리를 짠하게 여기던 선배들이 어느 밤 크게 인심 써 밤배를 태워주기로 했다.

 

서툴게 노를 젓고 밤뱃놀이를 부르며......

밤뱃놀이는 누구라도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다시 세상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온 우주를 사랑하게 된 그 밤.

 

밤뱃놀이

 

검은 산만 떠가네 검은 물에 떠가네

하늘도 바람도 아득한데 오는 지 가는 지 우리밸세

이고 지고 떠가네 메고 보듬고 떠가네

우리네 인생 한밤 중의 뱃놀이만 같으네

 

형님 아우님 어딜 갔소 고운 임도 어딜 갔소

만나보면 간 데 없고 헤어지면 만나는가

뱃머리에 부서지네 배꽁무니에 매달리네

우리네 사랑 뱃놀이의 노젓기만 같으네

 

하늘 아래 큰 것 없네 땅 위에 새 것 없네

거슬러가는 우리배냐 흘러가는 우리배냐

이리 가자 조르네 저리 가자 성화로세

이리로 갔다 저리로 가니 할 일 없이 고달프네

 

내가 새내기 땐 사랑가를 먼저 배우고 제일 좋아했는데 후배들은 밤뱃놀이를 먼저 배웠다.

그냥 제일 쉬워서. 그랬는데 노랫말도 고우니 제일 좋은 노래라 믿고 줄창 불러대는 거였다.

김민기가 지었구나. 그땐 몰랐네. 그리워라 그 날들이. 또 할매처럼 회상씬 찍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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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모둠 달걀말이.

채소를 9가지(마늘, 파, 양파, 부추, 깻잎, 청양고추, 당근, 파프리카, 양송이버섯) 넣고 오랜만에 힘 좀 줘서 달걀을 말아보았다. 그러고보니 집에 채소가 9가지나 있었잖아? 귀찮아서 요리를 하지 않았을 땐 채소를 몽땅 사다가 냉장고에 쟁여두고 시들고 말라붙어서 결국 버리는 일을 반복했는데(정말 몹쓸 일을 잔뜩했지) 채소를 잘 써먹는 요즘 무척 뿌듯하다.

 

어릴 땐 꼭 마늘을 넣는 엄마표 달걀말이가 싫었는데 언제부턴가 그 맛이 그리워져서 달걀말이에 마늘을 넣게 된다.

 

얼마 전에 고깃집에서 달걀찜 달라고 했더니 아줌마가 어디에서 왔냐며 "달걀"이 사투리가 아니냐고 한다. 그때 얼마나 놀랐던가. 달걀. 닭의 알이란 있는 그대로의 뜻을 가진 예쁜 말이고 되도록 우리말을 쓰려고 하는데, 한자어인 계란이 일상이 된 세상이란 이렇게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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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나물
자연을 담는 사람들 지음 / 문학사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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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나물 맛에 빠져 산다. 그렇다고 매끼 먹지는 못하고 여전히 고기에 환장하는 호랭이과지만(고기를 하도 좋아해서 어릴 때 언니들이 '정육점 아들한테 시집가라.' 고 할 정도였다.). 어릴 땐 나물맛을 몰랐다. 맛없고 싱겁고 시퍼렇기만 한 풀을 대체 왜 먹는 걸까. 투덜대곤 했다. 요즘 맛들인 말린 나물은 조리 전에도 후에도 차향이 나서 조리하는 동안(조리과정이 많아 조금 고되지만)콧노래가 나올 만큼 기분이 좋아진다. 차를 즐겨마시는 수행자가 된 기분에 혼자 취해본다.  

 

 책 크기가 예상 외로 작아서 놀랐다. 보통 책의 3분의 2 정도 되는데, 이 크기여서 좋다. 무겁고 두껍고 큰 책은 안그래도 무거울 가방에 넣고 몸에 지니고 산에 가기가 부담스러울테니.

 

우리가 알게 모르게 먹어봤을 나물들을 그 유래에서부터 먹는 부위, 조리법, 채취장소, 시기, 등등 자세히 소개해놓았다. 약재로도 쓰이는 나물이 꽤 있다. 참 버릴 것 없는 기특한 존재다. 재미난 이름을 가진 나물얘기를 읽다 보면 풋, 웃음이 난다. 사진도 여러 장 찍어서 이파리, 줄기, 뿌리, 꽃까지 알아보기 쉽게 실어놓았다. 이런류의 책은 읽다가 금방 질리기 마련인데 소책자라 보통 도감에 비해 값도 저렴할 뿐더러 도감처럼 지루하지 않고 잘 읽힌다. 책 자체도 가볍고 표지가 퐁신퐁신해 감촉이 참 좋다.

 

이렇게 많은 나물들이 있나 신기하고 전세계에서 먹을 수 있는 나물을 찾아보면 또 얼마나 많은 먹거리가 생기게 되는지 세계인들이 서로의 먹거리를 공유하는 것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흔히 그냥, 잡초라 여겼던 풀들이 죄다 먹을 수 있는 나물이라는 사실에 놀라며 머리 나쁘고(?) 게으른 우리에게 먹을 수 있는 나물을 알려주기 위해 이것저것 잡수어보셨을 조상님들께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그러다가 여러번 탈도 나셨겠지. 그분들의 지혜와 실험 정신에 존경을 보낸다. 보릿고개를 넘어 그저 살아남기 위해, 굶주림과 싸우다 발견한 먹거리가 대부분이었을지 모르지만.

 

나물의 잎 모양은 얼마나 다양한지, 그리고 꽃들은 어찌나 고운지. 흔하디 흔하다 여겼던 풀들이 제각기 독특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겉모양이 꽤 닮아 보이는 나물 중 독초도 꽤 있어서 주의도 해두었는데 나물 좀 캐본 사람 아니면 구분하기 어려워 보인다. 봄이 오면 이 책을 들고 산과 들과 갯가로 가서 심봤다! 소리치며 새로운 나물을 찾아 볼 생각에 설렌다. "이산, 저산 나물이 나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노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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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를 팝니다 - 대한민국 보수 몰락 시나리오
김용민 지음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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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작년 이맘 때다. 며칠 동안 공허와 허탈과 좌절로 헤어나오지 못하게 했던 대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도무지 믿기지 않았던, 석연치 않은 결과와 머릿속에서 들고 일어나는 각종 음모론들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누군가 살짝만 건드려도 눈물이 툭 떨어지고 세상이 끝난 것 같고 억울하고 화나고 진정하기 힘든 나날, 그리고 1년은 체념과 포기와 실망의 연속이었다. 그러면서도 촛불을 들어본다. 엊그제 그 추운 날에도 촛불이 언 손을 녹여주어서 버틸 수 있었다. 그래도 우린 이땅에서 살아가야하니까.

 

저자가 이 글을 쓸 때만 해도 꽤 희망이 있었을 텐데. 나꼼수를 들으며 버스안에서, 전철안에서 나도 모르게 크게 웃어버렸던 그때만 해도, 당연히 정의가 바로 설 줄 알았다. 우리가 늘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상식이 통하지 않고, 상식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 책은 그게 바로 우리나라식 보수들이라는 걸 알려준다. 행정학적으로 보수의 행태를 낱낱이 파헤쳐서 분석해 놓았다. 진짜 보수는 상식이 통하는 사람들이건만 우리나라에서는 "꼴통", "불통"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안타깝다. 곳곳에 있는 진짜 보수들이 억울해 하고 있을게다. 여기서 북한빵공장 이사라는 언니 얘길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겨울이나 다름 없는 11월에도 이 빌어먹을 시국 때문에 길바닥에서 108배를 했다고 한다. 난 겨우 며칠 촛불집회 나간 걸로도 낑낑댔는데. 그런데 그 언니가, 자신은 사실 보수라고 했다는 얘기에 껄껄 웃었다.

 

이 책은 결국 꺼삐딴 리(기회주의 보수)와 꺼삐딴 리의 자식들(모태보수) 얘기를 하고 있는거다. 더불어 그들의 물주(자본주의 보수)까지. 내 식대로 정의한 거지만. 책 제목은 참 적절하다. 그렇지만 보수의 정의나 역사가 조금 언급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보수가 대체 무엇인지 정의를 내려놓고 우리나라 보수는 이러합네. 해야 하지 않을까. 제목은 좋은데 내용이 조금 빈약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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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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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월한 존재가 나타났다!!!

우리는 "미지(未知)의 존재"를 두려워하며 새롭게 받아들이기 보다 배척하기 일쑤다. 우리가, 특히 기득권을 가졌거나 힘을 가졌을 때에는 자신의 입지에서 밀려날 것을 염려해 자신보다 다르거나 뛰어나면 철처히 견제하고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도 한다.

 

소설 속 가정처럼 이 세계 어느 곳에선가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생물체가 존재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두렵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한번 만나보고 싶기도 하고 하지만, 그런 존재가 실재한다면 내 존재 따위(?)는 어차피 하등하기 이를 데 없는 숱한 인간'원숭이'들 중 한 마리에 불과하다 여길 수도 있겠다.

 

이야기의 구성 요소가 제각각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어 처음엔 정신이 없고 몰입이 힘들다. 어려운 약학, 의학, 유전자, 컴퓨터 용어들이 설명돼 있지만 그냥 눈으로 빠르게 읽어가는 그냥 까만 글자일 뿐이고... 그러다가 그 복잡한 상황과 인물이 인간을 초월한 어떤 존재에 의해  치밀하게 짜여진 각본인 것을 알게 되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머리가 하얘지는 충격과 수긍이 뒤따른다.  "그녀석(?) 손에 놀아났구나."

 

작가의 뛰어난 상상력과 모든 상황에 어울리는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들이 참으로 그럴 법 하다.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보편적인 감성을 읽는 작가의 통찰력이 돋보인다. 작가의 전작, 『13계단』을 무척 재미있게 읽어서 이 책을 망설임 없이 들었다. 이 책에는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작가의 반전(反戰)의식이 강하게 깃들어 있다. 그리고 이른바 문명의 눈으로 볼 때 "미개"하달 수 있는 피그미 족에게서 만물의 영장이라 믿어왔던 인간을, 미개하게 여기는 존재가 나온 것은 작가의 농담같지만 진지한 주장이다. 세계 곳곳에 우리가 모르는 학살들이 벌어지고 있음을 새삼 인식하고 놀란다. 책 속에서 언급했듯 징기스칸이 정복전쟁 당시 흩뿌린 잔인한 유전자가 남아 여전히 폭력성이 남아있다는 얘기, 되차. 말된다. 이것저것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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