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빛깔있는 책들' 책을 모두 가지겠다는 꿈이 있었는데 겨우 3권밖에 구하지 못했다. 헌책방 어딘가에 먼지옷을 잔뜩 입은 채로 꽁꽁 숨어있을지 모르겠다.
1학년 겨울방학 때 전국대학 탈패 출신들을 대상으로 '탈꾼대학'이 열렸다. 경주에서 마당극 워크샵 형식으로 3박 4일(?)-얼마 전 학창시절부터 써왔던 일기장들을 몽땅 버려서 그때 기록을 알 수가 없다.-동안 치러졌다.
고성오광대를 추는 학교가 대부분이었고, 봉산탈춤을 추는 학교가 드물어 각 지역 탈춤을 추어보는 시간에 긴 머리를 풀어헤친 채 미친년(?)처럼 탈춤을 추는 바람에 동아리에서 춤 못 추기로 소문난 내가 탈춤으로 처음 박수를 받아보기도 했다. 탈꾼대학에서 뭘 했었는지 거의 생각나지 않고 즐거웠던 기억만 남아있다. 그때 알게 된 경상대 탈패 동기 녀석과는 동아리 공연이나 전수 때 서로 참여하고 지금까지 연락하며 지낸다.

탈꾼대학에서 처음 만난 채희완 선생과 탈꾼들 몇이 밤새 토굴(경주 어느 폐교였던 것 같은데 도자기 굽는 가마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기억이 가물가물하다.)에서 술을 마셨던 기억이 있다. 그 채희완 선생을 저번 주에 다시 만났다. 채희완 선생 대동굿 강의 일정을 보고 어찌나 반갑던지. 강의 마치고 탈춤 책을 들고 작가 싸인을 부탁드렸는데 뒤풀이 자리에서 책에 싸인해 주는 거 처음이라고 하셔서 다들 웃어댔다. 그랬겠다, 누가 탈춤 책을 갖고 싸인해달라 했을까 싶기는 하다. 탈패 출신들이 그렇게 했을 리도 만무하고.
'축제' 라는 일본식 한자조어 대신 '대동굿', '마당굿' 이라는 말을 쓰자는 용어의 쓰임에 대한 설명으로 수업을 열었다. 교정할 때나 사람들에게 늘 열올리며 강조하는 얘기라 동지를 만난 것 같았다. 제일 기막힌건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이다. 안동도, 탈춤도 다 우리식인데 거기에 페스티벌이 뭐냐고. 안동국제탈춤 큰잔치 라는 말로 바꾸었으면 좋겠다. 세계인과 함께한다는 뜻을 담으려면 괄호 열고 페스티벌 하면 될 텐데.
1988년 지리산에서 처음 장승굿을 연 이후로 벌써 9차례 치러졌다가 10년 넘게 장승을 세우지 못했다며 봄이 오면 무등산에서 장승굿을 열자는 제안을 하신다. 수령(樹齡)이 80~100년이며 키가 큰 나무여야 한다는 장승의 조건이 퍽 까다로워 나무 구하는 일이 가장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탄핵도 됐고 정권도 교체될 5월(어쩌면 6월) 광주, 무등산에 장승을 세워 통일의 염원을 담아 신명나게 놀아볼 대동굿판이 뜻깊게 다가온다. 봄에 무등산으로 장승굿보러 오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