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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사랑한다 세트 - 전3권
김이령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1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몇 년 전에 1권을 읽다 뻔한 내용이라 생각해 읽기를 그만두었는데 요즘 중고로 팔 책들을 살펴보다가 이 책이 눈에 띄어 다 읽고 팔 생각에 꺼내들었다. 읽다보니 팔기가 아깝네. 단순한 로맨스 소설이 아니잖아. 역사적 사실에 아주 조금(?) 허구를 버무려 놓았다. 작가가 실감나게 그려낸 인물들이 지나치게(?) 매력적인 거야. 작가가 쓰는 어휘도 다양해서 부지런히 사전을 찾아가며 읽었다.
이를테면 엄부럭(어린아이처럼 철없이 부리는 억지나 엄살 또는 심술), 사날없다(붙임성이 없이 무뚝뚝하다)라는 단어와 앙탈은 잘 알지만 앙살(엄살을 부리며 버티고 겨루는 짓)이라는 단어는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그렁저렁(그럭저럭:충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로)이 그럭저럭과 같은 뜻인 것도 알게 됐다. 이응 받침이라 어감이 더 부드럽고 좋다. 일부만 예를 들었지만 책을 읽을 때 이렇게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되는 것이 기쁘다. 일일이 사전을 찾아가며 읽는 수고마저 즐겁다.
한가지 작가에게 좋지 않은 버릇 또는 문체라고 불러야 하나. 아무튼 문법적으로도 잘 맞지 않는 느낌인데 "~하니 ~하다" 가 상황에 맞지 않게 반복된다. "~하게 ~하다" 라고 해야 맞을 표현들인데 1권부터 3권까지 어색한 문장이 많아 거슬린다. 교정, 교열한 사람은 분명히 알았을 텐데 그런 문장을 그대로 실었다는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깊은 흉터가 뚜렷하니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했다" 얼핏 보면 맞는 것 같지만 어색하기 그지 없다. "깊은 흉터가 뚜렷해~"가 더 자연스럽다. "그는 반듯하니 앞만 본다" 는 "그는 반듯하게~"가 더 어울리고. "두 손이 어정쩡하니 허공에 떴다가~"는 "두 손이 어정쩡하게~"가 맞는 표현이다. 아무튼 옥의 티 라고 할 만한 문장들이 너무 많아 답답하다.
등장인물들 이름이 적절하고 성격에 딱 맞아 작가의 작명능력도 뛰어나다 생각했다. 여러 사람의 사랑 얘기들이 나오지만 주인공 세 사람의 얘기보다 무석과 비연의 얘기가 좋았다. 작가가 감당이 안 돼 그런 것인지 무석을 너무 일찍 죽여버린 것이 아쉽다. 현실세계에서 만나는 '남자입네~' 하는 사람들은 유치한 인간형이 많아 가까이 하기 껄끄럽지만 책에서 그려내는 무석처럼 태생이 전사인, 사내다운 인물은 몹시 끌린다. 김혜린, 『불의 검』의 주인공 산마로와 닮았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너무나 원했던 이상세계에서 살게 된 것, 그것이 결말이 될 것임을 암시한 부분부터 작가에게 반해버렸다. 오아시스 마을 얘기를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에서 본 것 같은데 꿈같은 이상향이 이 책에서 나온다. 욕심없이, 최소한의 물건을 가지고 아주 적은 양의 음식을 먹으며 마을공동체와 함께 살아가는 세계. 뉴질랜드 오지에 있다는 어느 원주민 마을같은 곳에서 언젠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살 수 있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