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탈춤에서 취발이가 소무를 보며 "앵도를 똑똑 따는 구나." 라는 대사를 친다. 그때는 그 뜻을 몰랐는데 진옥섭이 이 책에서 그 설명을 한다. 이번 씻김굿 공연을 보며 나도 같은 대사를 읊는다. "앵도를 또옥똑 따는 구나" 이 말을 큰소리로 내뱉고 싶었으나 추임새로는 너무 길어 속으로만 삼켰다.

 

 

자주 보기 힘든 진도씻김굿을 한다기에 차비가 더 드는 한양까지 댕겨왔다. 그 주말에 돌아오려던 일정이 늘어져서 다른 공연 핑계 만날 사람 핑계로 머문 것이 열흘 남짓 됐다. 아들(?남편)을 내팽개치고 미친 듯이 싸돌아다닌 덕에 발바닥이 아파서 걷기도 힘든 족저근막염에 걸렸다.

진도씻김굿 표가 매진 돼서 볼 희망이 없었는데 마침 네이버 책문화 이벤트에 당첨(이런 일에 당첨되는 일이 내게는 잘 일어나지 않는데 세월호 사건 있은 해, 진도씻김굿을 보고 난 뒤에 쓴 글이 있어서인지? 하고 짐작해본다. 그 글을 링크시켜둔 댓글을 단 게 어쩌면 영향을 주었을까? 이벤트 요건이 진도씻김굿에 대한 기대평이었으니 말이다.)되어 날 긍휼히 여기는 언니의 후원으로 차비도 굳히고 공연도 공짜로 보고 오호호. 철없는 백수가 호사를 잔뜩 누렸네. 표가 1인 2매짜리라 이런 쪽에 관심없을 조카를 꼬드겨서(?) 데려갔다.

굿은 역시나 뭉클하다. 내가 왜 진짜 무당이 되지 못 했을까 한탄할 만큼 훌륭하다.(난 노려보기만 특기인 가짜 무당이었으니) 차기 주무가 될 법한 사람의 카리스마에 녹아난다. 재작년에 봤던 주무도 그 분이었는데. 걸판지다고 할까? 구성지다고 말하기에도 부족한, 굿에 빠져들게 만드는 힘을 지닌 그 사람이 언젠가 큰 일(?) 낼 것 같다. 씻김굿을 보노라면 왜 이리 가슴이 미어지는지. 세월호 생각도 나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아주 어릴 때 보았던 우리식 장례가 생각나 그 기억에 빨려들 것 같다. 그런데도 굿이 경쾌하다는 데 또 다른 맛이 있다. 우리식 장례가 그저 엄숙하기만 한 게 아님을 이청준은 ˝축제˝ 란 말로 표현했으니. 이왕이면 일본식 한자조어인 축제 대신 ˝잔치˝라 하였다면 좋았을 것을. 어쩌면 '제사', '제의'의 뜻을 더하기 위해 쓴 말일 수도 있겠구나.

국립극장 공연은 늘 비싸다는 인식이 있어 여태 가보지 못 하다가 저녁에 바쁜 절친(방년 60세.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을 실감하게 하는 멋진 분)에게 낮공연이라도 보여드리고 싶어 찾았다. 로열석이 만 오천원이라 싼 값이다 생각하고 예매를 했는데 공연을 본 뒤엔 그 값도 못 한다는 느낌이 들어 아쉽다. 그래도 내 절친이 이런 공연 처음이라 무척 좋았다 하셔 그나마 다행이다. 해오름극장은 오전 공연하는 곳인가 보다.

다음날 민속극장 풍류에서 여는 판소리 공연 표를 예매해 뒀는데 국립극장 내 다음날 춤공연 팜플렛을 보고 만 거다. 우왓, 춤공연 자체도 좋은데 춤을 여덟팀이나 춘다니 그저 오지고 반가워 당장 판소리 공연을 취소하고 춤공연을 예매했다. 그 과정에서 주최자분과 연락이 닿아 이런 저런 문자를 주고 받다가 공연가격도 할인(?) 받았다.

가장 기대했던 승무와 살풀이가 별로여서 민속극장 공연 취소한 것이 후회되기 시작할 무렵 판이 무르익기 시작한다. 국가와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취지의 태평무 자체에 반감이 있는데 태평무 추시는 분의 몸짓이,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이렇게 움찔움찔 신나는 태평무는 처음이다. 그 뒤로 이어진 춤들이 우와우와아~ 우아하기도 하여라. 마구 소릴 질러대고 박수치고 추임새를 넣었다. 앞자리에 앉은 뭣(멋?)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꾸 날 째려본다. 조용히 하라는 무언의 욕설같은 건데. 그러든 말든 우리식 공연의 예에 충실했다. 우리공연은 본래 마당(판)에서 하던 굿이라 연희자와 관객이 따로 없는 것이 특징이다. 같이 춤추고 노래하고... ˝함께 노는˝ 것이 우리 공연을 대하는 법도다. 뭣 모르는 이들에게 일일이 말해줄 여유도 없고. 춤에 빠져들어 좋아서 눈물이 났다. 얼시구나 좋구나 좋아.

저녁공연이라 달오름극장이었는데 무대가 둥근 우리식 판에 가까워 연희자와 관객의 거리가 더 가깝다. 달오름극장은 정말 잘 만들었다. 민속극장 풍류도 이런 식이어서 무척 좋아하는 공간인데 이 곳도 괜찮구나.

주최자분이 뒷풀이에 초대해 주셨다. 평균연령 아마도 70대(?). 내가 왜 이런 자리에 이러고 있나 하면서도 어디든 사람들 모임엔 잘도(?) 끼어서 이런저런 얘길 듣는 것이 좋은, 아직도 새내기 마음을 가진, 철딱서니 없는 나도 이제는 거의(?) 중년이다. 기대(그날 춤추신 모든 분들을 만날 줄 알았으나) 와 달리 한량무 추신분과 음향 담당하신 분 그리고 인천지역에서 공연쪽 일을 하시는 분과 주최자분.
한량무 추신 분과 의기투합해 공연에서 두번째로 나와 살풀이 추신 분을 마구 까댔다. 내가 본 살풀이 중 최악이었는데 의상마저 금박에 무늬까지 들어가 있어서 경악했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구나. 금박이 아니고 공단이란다. 게다가 자기 춤출 때 안개까지 깔아달라고 했단다. 그분들과 3차까지 가서 쓸데없는(?) 얘기들을 잔뜩 나누고 돌아왔다.

볼 거리 많고 만날 이 많았던 서울나들이. 재작년 서울을 떠나 이곳으로 올 때 딱 하나 아쉬웠던 게 공연이었다. 역시나 고 아쉬운 놈 때문에 비싼 차비를 들여 기어이(속없이) 서울엘 다녀왔지만 조만간 또 이 철없는 짓거리(?)를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좋은 판이 벌어지면 또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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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6-04-14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습니다 멀지않은 곳에 살면서도 이소식을 몰랐네요 양주랑 한량무는 흉내내기도 실패했던지라 꼭 더 나이들기 전에 배워보고 싶네요

samadhi(眞我) 2016-04-14 00:03   좋아요 0 | URL
나이들어 배우는 맛도 있는 듯해요. 이번에 한량무 추신 분이 50대에 시작하셨던 것 같아요. 일단 몸은 건강해야 하겠지만요. 춤출 수 있을 만큼은 짱짱하게요. ㅋㅋ
마음이 있는 곳에 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춤 배우셔서 공연 올리시게 되면 꼭 불러주세요 ㅎㅎㅎ 승무랑 한량무는 맛 내기에 오래 걸린다고 하더군요. 그분들과 뒷풀이할 때 나온 얘기예요.

기억의집 2016-04-14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 오신다고 페이퍼에 올리시지.... 커피라도 마시고 싶었는데요. 다음엔 오시면 연락 주세요. 초면이어도 아줌마들은 금방 친해더군요^^

samadhi(眞我) 2016-04-14 00:08   좋아요 0 | URL
에헤헤 그럴걸 그랬나요 ㅎㅎ 곰발님한테는 살짝 연락해보려다 바쁘실 것 같아 망설였습니다. 다음에 올라갈 땐 꼭 만나서 폭풍수다를 떨어봅시다^^

기억의집 2016-04-14 00:08   좋아요 0 | URL
꼭이요~

samadhi(眞我) 2016-04-14 00:10   좋아요 0 | URL
네. 제가 오지랖이 심해서 언니 대학친구들도 만나고 언니아들 친구 엄마들도 만나고 다니는데요. 좋은 공연 소식 있으면 후딱 날아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