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은 종교다." 라는 글귀를 나렌드라 자다브, 『신도 버린 사람들』에서 보았는데, 선배에게 얘기해줬더니 너무 좋아했다. 학원 강사를 하다가 건강검진에서 상태 삐악으로 나오는 바람에 건강하지 못 하다는(?) 이유로 일주일 만에 잘렸다. 그러고 나서 당장 급전(?)이 필요해 식당알바를 시작했다. 홀서빙 정도나 하려고 했는데 채용정보에 "주방"이라는 글자가 함께 있다. 통화해보니, 주방일은 아침에 달걀말이 좀 만들고 반찬담고 설거지 하고 채소 썰기 정도라고 한다. 나머지는 서빙이라며. 달걀말이는 내 특기(?)이기도 하고 설거지 또한 그렇고 채소썰기는 자신 없지만...시간도 짧고(5시간) 할 만하다 싶어 시작한 일이다. 김치찌개집 주방 및(?) 서빙.

 

 

같이 서빙하는 언니는 "나는 이런 일 하는 사람이 아닌데..." 가 입버릇이다. 나도 예전에 저런 말들을 했었나 돌아본다. 남의 얘기를 듣는데 내가 부끄러워진다. 그래도 난 초딩 때부터 신문배달도 했는데(겨우 열흘이었지만.) 길게는 저얼대 못 하고 고된 일들을 꽤 여러가지 해봐서 서빙쯤 어느 정도 자신 있었다.

 

어느 곳이나 사장들은 다들 갑질을 해대기 마련인데 이곳은 그러질 않아서 이상할 정도였다. 짧게 일하는 알바에게도 예의를 갖춰 얘기하고 자잘한 잔소리도 없이(그 전에 일한 만화방에서는 사장이 처음부터 그만두는 날까지 잔소리를 해댔다. 노이로제 걸릴 만큼) 웬만한 건 다 배려해주고 서빙만 하는 다른 알바언니도 솔직하고 편했다. 겨우 일주일 하고 며칠 지난 것 뿐인데 워낙 체력이 약해 고된 것 말고는 다 좋았다. "육체노동은 정직해서 좋다."고 했더니, 선배 왈, "니가 아직 고생을 덜 해봤구나" 그것도 노동이라고 깝죽대냐는 것일테지. 맞는 말이기도 하고. 그래도 사무실에서 홀랑헐렁(?)하게 일 할 때는 배도 안 고프면서 밥 때 되면 당연히 밥을 먹었지만 몸쓰는 일을 하고 나면 배가 고프고 밥 맛이 좋다.

명절 대목 때 며칠 동안 10시간 넘게 육체노동의 최고봉(최고가 아니더라도 그 언저리쯤 되는)인 떡집 일을 하고 나서 먹은 저녁밥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손님이 오기 전 조금 느긋한 시간에 세월호 얘기가 나와, 300여 명이 죽고... 이번에 캡사이신 대포에 맞아 쓰러진 백남기씨 얘기까지 하면서 이놈의 정부가 사람 죽이는 정부라고 열을 내 말했더니 싸장님 왈, "공권력에 도전"하는 행위라며 그건 좀 아니지 않냐고 한다. 아, 좋은 사람도 생각은 안 좋을 수 있구나. 싶다. 그러면서 나더러 흥분하지 말란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흥분 안 하게 생겼어요? 하고 말았는데, 그런 사람들이 우리같은(?) 사람을 볼 때 곧잘 쉽게 흥분한다는 둥, 감정적이라는 식으로 몰아가곤 한다는 생각이 들어 정말로 똑똑한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을 논리로 사로잡을 수 있겠다 싶어 내 무지와 모지람과 약함을 반성했다. 그러고 보니 이 싸장님 채널A 뉴스를 찾아서 보더라. 하다 못해 같은 종편채널인 jtbc뉴스라도 좀 봐주면 안 될까요?

 

몸이 으스러질 것 같은 일주일 노동을 마치고 다음 주인 월요일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목이 따갑고 아파 기침을 해댔다. 묵직한 도시가스의 향기(?)에 숨이 막혀왔다. 환기 좀 시키자고 했더니 춥다고 환풍기를 틀지 않는 조리담당 싸장님. 하루종일 목이 아파 기침하고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 하고 밤새 앓았다. 다음날에도 환풍기 좀 틀자고(화력 강한 가스불 위에 냄비를 올려놓을 때만 잠깐 환풍기를 틀었다가 바로 꺼버리는 철저한 그 분) 말하기도 했는데 소용없고 내가 환풍기를 틀어도 어느 새 꺼버리고 만다. 다음날에도 고통을 호소하며 얘기했으나 듣지 않는다. 오늘 아침 진심을 담은 눈빛으로 강렬히(?) 부탁했다. 진지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환풍기 좀 계속 틀어주시면 안 되나요? 했더니

"나랑 안 맞는 사람이랑 일 못 하겠네요" 한다. 학원도 잘리고 알바도 잘렸다. 어딜가나 잘리는 인생이라니 올해 삼잰가? 어차피 환기 안 하겠다고 하면 그만둬야겠다 생각하고 얘기한 거라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계속 부드러운 태도로 웬만한 건 다 이해하고 인정해주던 갑이 갑자기 갑질하는 갑질자로 보인다. 냉정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얘기한다. 저런 표정이 있구나.

 

인간센서나 다름없는 내 목 기능(?)을 빌려서 저도 나도 건강하게 살면 좀 좋은가. 가스에 노출되면 폐가 얼마나 나빠지는지 주부들 폐암발병률 어쩌고 산재가 어떻고 노동법이 어쩌고... 따지고 싶지만 알바라서 그냥. 아니 사실은 채널A 애청자이며 공권력을 신성시 하는 사람이라 따지지 않기로 한다. 나도 나이 들었나보다. 한 살만 어렸어도 디지게 따지고 싸웠을 텐데 지친다. "우리가 지쳤다고 믿는다면 그건 하룻밤의 꿈이라는 걸~" 이런 노래를 부를 때만 해도 안 지친 척이라도 했는데. 사실 따질 힘도 없고 말발도 딸리고. 우라지게 아픈 목을 부여잡고 앞으로 2주를 더 버티기로 한다. 그 다음다음날이 카드사가 수금하는 날이라서. 아픈 것도 잘린 것도 목이네. 아이고 모가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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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12-04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성에서도 짤리는 마당에 알바야 알바도 없는 공화국이네요. 아 배려 없는 국민은 언젠가 배려 받지 못할 겁니다. 조금만 섬세히 신경 쓰면 좋으련만...주방의 탁한 공기는 조리할때 나오는 연기..이게 패암이 발생을 돕는다고 하던데 .....조리장 참 안타깝네요.

samadhi(眞我) 2015-12-04 01:23   좋아요 1 | URL
조리장이 주인장이예요. 사장이죠. 위험하다는 사실을 친절히(?) 제 한 몸 희생해서^^ 알려줘도 받아들이지를 않네요. 자기 몸에 탈이 나 봐야 알게 될른지. 그러고 나면 늦어버리는 건데. 답답~합니다. 계속 목이 따가워 2주도 못 버틸 것 같아요. 다음 사람(저보다 예민하지 않은 누군가. 아니면 저처럼 느껴서 사장에게 같은 요청을 할 누군가.) 구해지는 대로 그만둬야겠어요. 단순한 육체노동이 즐거웠는데. 쓸데없는 생각을 가득 채워 불면에 시달리는 제가 아무 생각 없이 일할 수 있어 좋았거든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4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채널 에이 시청자군요.... 가끔 어쩔 수 없이 식당에서 채널에이와 채널씨`를 보게 되는데
아, 정말 끔찍하더군요. 그중 한 새끼는 단골인데 정말 꼴도 보기 싫은 놈. 내가 알기로는 민주당 국회의원이었는데 아마도 공천권 탈락하니까 복수하는 느낌도 들더군요.... 정말 좆같은 나라예요...

samadhi(眞我) 2015-12-04 15:45   좋아요 0 | URL
채널 씨이 도 있습니까? 그 많은 채널 중에 굳이 그따우 걸 ˝골라˝ 보기도 쉽지 않은데 참 답없는 인생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5-12-04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cho- ) 일보이니 뭐 채널 씨 아니것습니까..

samadhi(眞我) 2015-12-04 16:42   좋아요 0 | URL
이름도 꼭 지같네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