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대의 빼어난 예술이 덕을 가리었네 - 실학자 공재 윤두서 이야기
김영주 지음 / 열화당 / 2020년 9월
평점 :
예술가 윤두서를 드러내는 내용에 걸맞게 한국화를 표지로 만든 책이 운치있다. 책 표면이 코팅되지 않아 관리가 힘들 것 같다. 책에 뭐가 묻어 물티슈로 닦아냈더니 겉면이 금방 울었다.
김홍도 [씨름도]를 좋아해 가끔씩 이 그림이 실린 책을 찾아 찬찬히 보며 흐뭇하게 웃는다. 김홍도가 그린 그림들은 마음을 온통 흔들어놓는다. 옛날옛적에...로 시작해 곶감을 보고 울음을 뚝 그친 아이 이야기같아 친근하고 꾸밈없어 자연스레 웃음이 나온다. 그 길을 김홍도 보다 윤두서가 먼저 걸었구나. 윤두서를 그저 강렬한 눈빛과 수염 한 올 한 올 살아있는 자화상을 그린 화가로만 알고 있었다.
윤두서 인생 여정을 따라가니 그 자화상이 괜히 나온 게 아님을 알겠다. 실력을 갖추고도 정쟁에 신물을 느껴 정계에 입문하지 않고 이 땅에 사는 평범한 이들을 위해 뚜벅뚜벅 걸어나갔구나. 누구라도 뇌리에 박힐 형형한 눈빛을 보노라면 그이가 자기 삶을 철저히 살아왔음을 느낄 수 있다. 끊임없이 자아를 탐구해 온 사람이 뿜어내는 기운이 담긴 그 그림을 실물로 보고 싶다.
예술가는 일탈, 비도덕, 불행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행복한 예술가가 좋은 작품을 내는 일이 드무니까. 래퍼 김진표도 이혼 무렵에 "사랑 따위 part2" 라는 명곡을 내지 않았던가. 그 뒤에 재혼해서 행복하게 지내며(?) 낸 음반은 건더기가 빠진 맹숭맹숭한 국물 맛이 난다. 처절하게 내팽개쳐져 망가지고 서럽고, 지독하게 외로워야, 고통이 극에 이른 뒤에야 진짜 예술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예술가 개인에게는 불행이지만 그 예술을 향유하는 우리에게는 행운인 씁쓸한 현실. 불행과 죽음 냄새가 가득 밴 예술가는 그깟 도덕이나 규칙 따위 내던져버려도 되지 않을까. 일생을 걸 만큼 위대한 작품과 평범한 행복과 편안함을 바꾸는 건 그 사람 몫이니.
'드높은 덕이 예술을 가리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라고 잠깐 생각해 봤는데 예술이 덕을 가릴 수는 있어도 덕이 예술을 가리기는 힘들지 않나. 덕이 더 두드러진다면 그이가 가진 예술은 덜 재미나고 덜 파격이고 그저 무난할 것 같다. 덕이라는 틀에 갇힌 예술은 이미 예술로서 힘을 잃었다고 본다. 내 뒤틀린 예술관(?)이 그렇다는 얘기다.
제목이 참 예스러워 멋스럽다 하였더니 이 책 제목이 윤두서가 죽은 뒤 어릴 적부터 벗이었던 이서가 지어 올린 애사 가운데 한 구절이었구나. "그대의 절륜한 예능은 오히려 덕을 가리었고..."
지상에 내려와 제 할 일을 다한 윤두서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자화상을 그릴 무렵 이미 몸이 쇠약해져 돌아갈 때를 말해준 듯하다. 깨어있는 자가 보여준 마지막 몸부림에 우리는 전율한다.
이영주,『책쾌』가 재미는 없었지만 문장이 단순하고 명쾌해서 소리내 읽기 좋아 다른 책도 읽고 싶어 집어든 책이다. 무척 재미난 소설은 아니지만 시도가 좋다. 작가가 이렇게 숨은(?) 인물들을 찾아내는 일을 계속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