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교육 현장에서 하는 말이 이런 것이다. 투입 대신, 혼자 무언가를 조정할 기회를 갖자.

좋은 성적을 위해, 약을 쓰겠다, 와 뭐가 다른가. 스스로의 탐색과 고민 없이 투입되는 사교육이.

병원에 갔는데 의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고 상상해보자.
"약을 써보기 전에 먼저 환자분 스스로 설탕, 곡물, 씨앗기름은 드시지 마세요. 결핍된 영양을 바로잡고 독소를 제거하면서 근력 운동과 수면 개선 훈련도 조금씩 해나가 보죠. 그렇게 했는데도 안 되면 그 때 약을 드리겠습니다."
제약회사는 나에게 뒷돈을 찔러주고 효과도 없는 알츠하이머병 약 물에 대해 환자 앞에서 떠들게 만들 수 있다. 그 약품을 처방하면 이번 에는 또 보험회사가 나에게 보상해줄 터다. 하지만 환자에게 생활습관을 바꿔서 증세를 개선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면 진료비 말고 내게 돌아오는 돈은 없다. - P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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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을 왜 사용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관계망의 유지, 발전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혹은 내 아젠다의 설파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요 근래에는 내 사유의 편린을 아카이빙하는 공간에 가까운 듯하다.

만약 페이스북 친구를 모두 떠나보낸다면? 그래도 계속 사용할까? 아마도 그렇다면 사용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전적으로 ‘일기장’을 위해 사용하지만은 않으니까… 그래도 누군가에게 읽힐 수 있는 여지를 원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그것이 과연 의미를 가지는 걸까…?

페이스북 같은 소셜 미디어는 지금은 금지된 살충제 DDT와 같다. DDT는 병을 옮기는 모기를 죽이지만(좋은 점) 새알의 껍데기를 약화시켜서 알 속의 새끼 새를 살아남지 못하게 했다. 페이스북과 같은 플랫폼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과 연락을 유지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제공하지만(좋은 점) 그 과정에서 우리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과 기꺼이 감정적 위험을 감수하려는 마음 등을 약화시킨다. 작가 카엘리 울프슨 위저는 전화를 통한 대화에서 점점 멀어진 자신에 대해 글을 썼다. "화면이나 글로 소통을 하면 감정적 위험이 적다. 그러니 이를 선호하는 것은 본능적 반응이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다."
반면에 공감은 상상력과 의지가 필요한 행위다.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공감은 물리적 신체를 통해 다른 사람의 움직임과 표정을 관찰해야 가능하다.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말했다. "다른 사람의 다리나 팔에 타격이 가해지려는순간을 포착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 자신의 다리나 팔을 뒤로 뺀다. 그리고 타격이 가해지면 타격을 받은 사람뿐 아니라 우리도 어느 정도 충격을 느끼고 고통을 겪는다." 다른 사람이 온라인에 올린 경험을 소비할 때와는 다르게 말이다.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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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사업의 결합에서 이윤이 차지하는 위치는… 이를 어느 정도로 중시하느냐에 따라 교육의 방향이 달라지지 않을까…? 공교육은 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회의론자들은 학생이 교사보다 화면과의 상호작용에 많은 시간을 보낼 경우 장단점이 무엇일지 의문을 제기한다. 그들은 이런 교육 기기를 내놓는 곳이 대부분 교육기관이 아닌 영리 기업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비디오게임 디자이너이자 학자인 이언 보고스트는 "벤처 캐피털의 지원을 받는 실리콘밸리의 영리 기업이 목표로 하는 것은 최대한 빨리 성장하고 투자금을 회수해서 투자자들에게금전적 이익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목표가 교육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라고 주장한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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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 - 나를 살리기도 망치기도 하는 머릿속 독재자
데이비드 이글먼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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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268쪽에 잘 요약되어 있다. 우리는 뇌에 자리잡은 시스템에 접근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자연스레 몸과 생각에 익은 것들은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우리 몸과 생각을 이끌어 간다. 아마 이걸 의식하려고 시도할 수는 있겠지만, 금새 무의식의 강력한 루틴이 우리를 다시 지배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조금 더 나아가고 있는 듯 싶다. 그래서, 결국 그런 무의식에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느냐는… 역린을 살짝 터치하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의식은 무기력하게 그 자리를 무의식에 양보하여야 하는가. 모든 것이 결정되어 버린 채 달려가는 인생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곰곰히 생각해보면, 결국 의식이 해야하는 일은 무의식의 루틴에 대한 메타적 인식을 의도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의식을 무의식과 싸우도록 하는 것이 아닌, 무의식을 의식이 관찰하게 함으로써 내가 가는 방향을 성찰하도록 하는 일.

독서가 너무 드문드문 길게 이어지는 바람에 중간중간 사유의 흐름을 놓친게 아쉽다. 영미권에 출간된지 오랜 책을 최근 번역하여 내었는데, 왜 그런지 궁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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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용어의 탄생 - 역사의 행간에서 찾은 근대문명의 키워드
윤혜준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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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빈적인 기대는 고 남경태 저자의 개념어 사전이었다. 처음 속도를 내지 못하다가 저자가 가진 박학다식함 덕택에 마지막을 너무 재미나게 마무리했고, 이 책도 그런 기대를 좀 갖고 있었다.

그러나 영문학 교수인 저자는 주로, 영어 저작물을 토대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내었고, 아무래도 1차 레퍼런스가 중복되다보니 조금은 루즈한 감도 느껴졌다. 어원에서 시작하여 이런저런 이야기 흐름을 잡아가는 장면이 계속 기시감에 루즈함을 일으키는. 그래도 어쨌든 끝을 보았는데…

독서 말미에, ‘5.16 혁명’ 표현은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

‘[표준국어대사전]이 제시한 ’혁명‘의 첫번째 뜻은 “헌법의 범위를 벗어나 국가 기초, 사회 제도, 경제 제도, 조직 따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이다. 헌법의 범위를 벗어났거나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낸 경우가 4.19혁명과 5.16혁명에는 확실히 해당된다.(p257-258)’

저자가 혁명의 뜻을 너무 나이브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5.16은, 아무리 관대하게 보아도 군사정변 이상으로 평가할 수 없다. 시민의 손으로 헌법 상의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수립된 정부를, 헌법 상 허용되지 않은 군대의 무력을 사용하여 전복한 것을 혁명이라고 한다면, 이는 혁명의 의미를 너무 나이브하게 여기고 있다는 판단 밖에는 서지 않는다. 혁명이 저항권 개념과 맞닿아 있다고 볼 때, 혁명의 반대항에는 민주적 의사결정체가 아닌 것이 놓여진다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루즈하던 독서에, 이건…? 이라는 평가를 붙이지 않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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