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 한국사 :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 - 조선 2 민음 한국사 2
한명기 외 지음, 문사철 엮음 / 민음사 / 201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민음사에서는 한국사 시리즈로 [민음 한국사]를 출간하기 시작한 바 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에게 조금은 익숙한 시대인 조선 시대의 역사부터, '100년'을 하나의 시대로 한 독특한 방식의 역사 서술을 시도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15, 16, 17, 18세기, 총 네 시대의 시리즈를 출간하였습니다. 조선 시대는 일견 이해가 되는 것이, 조선 건국이 1392년, 임진왜란(정유재란)의 종료가 1598년, 정조의 승하가 1800년 등 조선 시대는 주요한 시대에 대한 맺고 끊음이 세기말인 경우가 많다는 것을 예시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여하튼, 첫 시리즈인 [민음 한국사: 조선 01-15세기 조선의 때이른 절정]은 세종대왕 시기를 중심으로 왕조 초기에 활짝 피어버린 조선 시대의 르네상스에 대한 이야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는 역사상 최고의 암군 - 연산군 - 을 시작으로 하여 네 번의 사화를 거쳐 왜의 침략으로 세기말을 맞이하는 16세기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민음 한국사]를 읽으면서, 특히 이번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 같은 경우에는, 이 책을 통해서 한국사를 시작하기에는 무리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서술 자체가 흔히 우리에게 익숙한 시대별 방식이라든지, 인물/사건별 방식이 아니라, 주제별 방식이라서 그렇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 말은 즉, 지금까지 보아오던 역사 서술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책이기 때문에, 주요한 역사적 사건을 어느정도 머릿 속에 둔 상태에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16세기 한국사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겠지만, 이 책이 처음이라면 당시 시대를 머릿 속에 하나의 선으로 바라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아온 사건별/인물별 줄기 위에 사건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첨언하는 형태의 역사 서술보다는 조금 더 생각할 여지를 많이 주는 역사 서술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에서 주로 다루는 주제는, 성리학이라는 이념을 국가 경영에 적용하면서 왕이라고 하는 절대 권력 조차도 성리학 속에 묶어두려는 성리학자들의 분투와 좌절, 4전 5기의 과정을 다루면서, 중국 같으면 왕조가 교체될 수도 있었을 사건이 '반정'이라는 절차를 거쳐서 조선왕조에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주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세조와 중종, 두 명의 '둘째 아들'이 왕위에 즉위하면서 정권의 정당성을 위한 장치로써의 역할을 부여받았던 척신 세력이, 다른 방식으로 왕에게 권위를 부여하고자 했던 - 그러면서 왕 또한 이상 속에 포섭하려고 했던 - 사림 세력과 부딪치면서 사림 세력을 배척하게 되었는지 - 네 번의 사화 -, 그러면서 다섯 번째로 재기에 성공한 사림 세력이 결국 선조 연간에 완전한 성리학 중심의 정권을 확립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붕당을 구성하게 되는지를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헌부/사간원/홍문관, 이 삼사가 그 가운데 역할한 것을 자세하게 부연하고 있으며, 정암 조광조의 도학정치와 그 좌절에 대한 이야기도 자세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종 연간에 벌어진 조선왕조의 쇠퇴와 척신 정치의 마지막 불꽃, 그리고 그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닥친 일본의 급변하는 정세와 그로 인한 임진왜란의 추이 또한 자세하게 살피면서 16세기에 대한 서술을 종료하고 있습니다. 


책은 관련 전문가 집단에 의해서 쓰여지고 있는 듯 합니다. 사건과 인물을 관통하는 주제와 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당시 시대에 대한 이해를 확연하게 높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물론, 역사의 해석에는 견해는 있을지언정 정답은 없겠지요. 그러나 이 정도의 논거를 가지고 펼치는 견해라면, 쉽게 수긍할 수 있을만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6세기는, 저자들의 견해를 맞게 이해하였다면, 때이른 르네상스 뒤에 찾아온 쇠퇴를, 성리학이라는 이상을 통하여 어떻게든 늦추어가려는 몸부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둘 사이의 순서가 뒤바뀌었다면 더 나았을 것을, 조선왕조는 희대의 명군주를 왕조 초기에 너무 몰아서 가져버린 탓에, 길고 지루한 중후기를 보내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왕조의 생명줄을 연장시킨 것은, 아마도 임진왜란/정유재란과 정묘호란/병자호란이 되겠지요. 어떤 분들의 평가대로, 조선 왕조는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앞과 뒤가 전혀 다른 왕조인 듯 보이는 부분도 있으니까요. 



책의 미덕은, 16세기 당시 세계사적 흐름을 책의 첫머리에 밝힘으로써 시대에 대한 전체적인 조망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울러 일반 역사 서술에서 볼 수 있는, 정치/경제사회/문화사가 각각 분리되어 있는 서술에서 벗어나,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그러한 요소가 정치적으로, 경제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서술함으로써 시대 전체를 분절이 아닌 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15세기 조선의 때이른 절정]을 볼 때보다 더 밀도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나올 시리즈를 기대하게 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국가는 잘사는데 왜 국민은 못사는가 - 부자를 위한 정책은 어떻게 국민을 추락시키는가?
도널드 발렛 외 지음, 이찬 옮김 / 어마마마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원제는 [The Betrayal of American Dream]입니다. 국역하면 아메리칸 드림의 배신, 정도가 되겠지요. 원제를 통해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책은 미국의 현재 경제상황을 야기한 (소위) 정책결정자들에 대한 비판이자, 그들이 수호하(ㄴ다고 여겨지)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고발입니다. 미국의 중산층이 어떻게 신자유주의의 미명하에 몰락하고 있는지를 통렬하게 고발하고 있으며, 그로 인하여 미국 대중이 잃어버리는 '아메리칸 드림'을 도대체 누가 가지고 가고 있는가에 대한 르뽀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니, 요즘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양극화, 분배정의의 실현 등에 관심이 있는 독자가 이 책을 골랐다면, 이 책은 미국의 상황만을 잔뜩 보여주게 될 것이고, 눈 밝은 독자는 미국의 상황과 우리나라의 상황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저자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독자인 우리의 몫일 뿐입니다. 그러니, 책의 제목은 독자를 우선 '낚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듯 싶습니다. 



그럼에도 책은, 쉽게 읽히기도 하므로, 한 번쯤은 쭈욱 읽어볼 만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우선 미국 중산층의 몰락이 우리나라의 상황과 묘하게 오버랩되는 것이 그렇습니다. 저자들이 생각하기에,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를 미국 경제에 도입하면서 '규제 완화'라는 키워드를 강력하게 밀어붙여왔다고 봅니다. 그렇게 강조된 규제 완화는 기업을 제약하던 여러가지 올무를 벗겨주어, 특히 일하는 노동자를 위해 부여된 많은 규제들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하였고, 그로 인해 노동자의 근로 조건이 악화되고, 퇴직 후를 책임지는 연금 등의 여러 안전장치도 벗겨지는 방향으로 작동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많은 다국적 기업들이 자신들의 공장을 해외 - 특히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 - 로 이동하게 되었고, 벌어들인 수익은 여러가지 규제 완화 - 법인세 유예, 비용 처리 등 - 로 말미암아 기업 내부에 고스란히 쌓이면서 최고 경영자들의 몫을 키우는데 일조하게 된다고 저자들은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NAFTA에 대해서도 비판적입니다. 미국이 멕시코와 NAFTA를 맺음으로써, 중산층의 일자리였던 것이 모조리 멕시코 인들의 일자리로 바뀌게 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일자리는 점차로 줄어들고,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임금 수준은 물가상승률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심지어, 노동력 중심의 일자리가 저개발국가에게 가더라도 고부가가치의 일자리는 미국 사회를 단단하게 뒷받침할 것이라고 정책 결정자들이 말했지만, 실제로 그러한 고부가가치의 일자리 또한 노동력 우위의 저개발국가 - 중국이나 인도 같은 - 의 몫이 되고 있다는 것이 저자들의 견해이기도 합니다. 


저자들은 '효율성'을 앞세우는 금융자본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지역 주민들과 공생하여가던 탄탄한 중소기업이, 금융자본에 의해서 어떻게 망가지는지에 대한 사례들을 줄곧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자들은 또한 '규제 완화'가 기업의 창조성을 북돋울 것이라고 말하는 정책 결정자들이 국민을 위한 판단을 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국적 기업이라 할지라도 미국 국내에서 노동을 소비하고, 비용을 지출하며, 그렇게 소비하고 지출된 비용들이 세금으로, 또다른 소비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며, 정책 결정자들의 해외 선호 성향은 국내의 산업과 가계를 몰락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들의 해결책은, 의회 권력의 교체로 귀결됩니다. 우선 의회가 국내 산업을 육성하고 보호하며, 그를 통해 국내의 노동력이 소비되고 그 댓가가 국민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정책 결정자들을 뽑아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중국이나 인도 같은 국가들의 자국 무역 보호 조치에 맞선 보복의 필요성, 증세, 실직자들에 대한 보호 강화 등을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책이 미국 경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상황에 빗대어 볼 여지도 충분히 있습니다. 중국에 생산 공장을 두고 있는 애플 사에 대한 이야기는, 외국에 다양한 공장을 설립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여러 대기업들에 대한 이야기와 오버랩되기도 합니다. 콜럼비아 장미에 화훼산업의 점유를 빼앗겨버린 미국의 이야기는, 점점 외국 농산물에 설자리를 잃어가는 우리나라 농산물의 이야기와도 유사합니다. 


그렇게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규제 완화와 더불어 일자리를 잃어버리고 있는 미국의 중산층이 점차 저임금의 계약직으로 전락하는 것은, 흔히 치킨집사장으로 대변되는 우리나라 자영업의 과도한 팽창과도 겹쳐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규제 완화를 부르짖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의 대안은 마뜩찮아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자들이 주장하는 바대로, 의회권력를 교체하는 것이 해답으로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그러하더라도, 결국 현재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실제적으로 닥치고 있는 문제인 중산층의 몰락은, 결국 사회에서 꿈 dream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것을 해결하기에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는 답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제통합수업, 아이들을 수업의 주인공으로! - 초등5-6학년 교육과정 재구성 길잡이
이윤미 외 11명 지음 / 살림터 / 201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교육과정과 교과서


우리나라는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을 편성, 운영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교육과정이란, 학생들이 해당 학년에서 배워야하는 것을 명시한 것으로, 예컨대 초등학교 6학년 국어 같은 경우에는


문학(3) 작품에 나타난 비유적 표현의 특징과 효과를 이해한다. 


라는 성취 기준이 있고, 초등학교 6학년의 해당 단원을 이수한 어린이에게는 평가를 통해 해당 성취 기준을 달성하였는지의 여부를 알아봅니다. 우리나라는 교육과정을 국가 - 교육과정평가원 - 에서 편성하여 이를 기준으로 학교에서 교수-학습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교육과정이라하면, 다른 의미로는 일련의 학교/학년/학급운영 전반을 일컫기도 하지만, 명확하게는 학생들이 도달해야할 성취 기준의 목록을 교육과정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교육과정이 편성되면, 교육부에서는 교육과정을 실제 교수-학습 과정으로 구현한 교과서를 편찬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소위) 주지과목의 경우에는 국정으로, 예체능과목의 경우에는 검인정으로 교과서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국정은, 말 그대로 교과서를 국가에서 정하여 사용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국가에서 연구진/집필진/심의진을 선정하여 교육과정에 걸맞는 교과서를 만들도록 하겠지요. 검정은, 민간에서 자체적으로 연구진/집필진/심의진을 구성하여 교과서를 만든 후, 교육부의 인정을 얻은 경우에 일반 학교의 교과서가 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검인정 교과서는, 6~8종 정도가 있으며, 각 학교에서 교과서 선정 위원회를 열어 어떤 교과서를 사용할지 선정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는 시행하지 않는 제도이지만, 인정 교과서도 있습니다. 이 경우는, 국가가 중간에 개입하지 않고, 교과서를 만든 민간과 학교가 다이렉트로 연결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일본의 우익교과서가 인정 교과서로 편찬되었다고 하죠. 


요즘, 교과서에 대한 기존과는 다른 견해들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교과서는 결국 교육과정 상의 성취 기준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 뿐, 학생들이 교육과정 상의 성취 기준을 달성할 수 있는 더 효율적인 도구가 있다면 그를 통하여 학생들을 교수할 수도 있다는 인식들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예전에는 '교과서 진도를 끝낸다'는 의미가 통용되었지만, 요즘은 굳이 교과서를 가지고 수업하지 않는 경우들도 점차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만해도, 2014학년도에 사회과 경제 단원을 교과서로 교수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만든 교수-학습 과정안을 가지고 학생들과 수업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교육과정 상의 성취기준을 교과서 이외의 도구로 만족시키려는 시도, 이러한 흐름에는 '학생 주도적'이라는 키워드가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생각합니다. 



2. 교육과정 재구성


교육과정 상의 성취기준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인 교과서의 경우, 가장 큰 어려움은 현장과의 괴리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명망있는 연구자들과 능력있는 교사들이 대거 참여하여 편찬한 교과서는 그 자체로 참 훌륭한 도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시와 촌락이 다르고, 농촌과 어촌이 다릅니다. 생활 수준의 격차도 다 다른 가운데, 전국의 모든 학교에서 하나의 교과서를 가지고 성취기준을 달성한다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임에 분명합니다. 


그래서 많은 교사들은 교과 내 재구성을 시도합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올해 수학 과목의 교과 내 재구성을 시도할 생각입니다. 2014학년도 아이들을 대상으로 치룬 여러 평가 및 과제 결과물을 분석한 후, 학생들의 선수학습과정 중 주로 드러나는 결손 요소를 추출하여, 2015학년도에 가르칠 아이들에게 이를 토대로 수업을 진행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6학년 성취기준을 분석하여, 학습 요소를 도출한 후에, 선수학습 결손 요소와 결합하여, 부진 학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교과서를 보완하는 보충지를 만들어 볼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등교사 커뮤니티인 '인디스쿨'을 살펴보면, 이미 많은 교사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학생들의 성취기준을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교과 내 재구성을 시도하고, 성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과 내 재구성은 이제는 어떻게 보면 교수-학습 과정의 필수적 요소로 자리매김하였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걸음 더 나아가 교과 간 재구성을 목적하는 많은 교사들이 있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교육과정 상에서는 이러한 교과 간 재구성이 이미 4차 교육과정부터 시도되어 온 바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배우셨던, '바른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이 바로 그것입니다. 1982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이러한 교과서는, 국어, 수학, 사회, 과학 등 각각의 교과목에 따라 교과서를 만든 것이 아니라, 한 군데 뭉뚱그려서 하나의 '주제'를 다양한 교과목 별로 살펴보는 방식으로 구현되었고, 2009 개정 교육과정 아래에서는 교과서 자체가 주제별로 편찬되어 학생들에게 실제로 교수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교과 간 재구성이 현재로는 초등학교 1, 2학년에게만 적용되고 있는데, 이러한 재구성을 초등학교 고학년까지 끌어올려 교과 간 '주제별' 재구성을 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번에 읽은 책, [주제 통합 수업: 아이들을 수업의 주인공으로!]는 전북의 한 학교에서 1년간 시도한 주제 통합 수업의 일련의 과정을 책으로 엮어낸 것입니다.



3. 학문의 엄밀함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의문은, 그러나 과연 이러한 주제별 재구성을 통한 교수-학습이 학문의 엄밀성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초등 수준에서 학생들은 여러 과목을 학습하게 됩니다. 국/도/사/수/과/음/미/체/영/실. 각각의 과목은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때문에 어느 시점에서부터 각각의 교과로 갈라져서 교과별로 교수-학습 과정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교과목의 교수-학습은 이론적인 깊이가 깊지는 않습니다. 위의 국어과 성취기준을 예로 들었지만, 작품에 나타난 비유적 표현의 특징과 그 효과를 초등학교 수준에서 배우다보니까, 은유/직유/의인법의 간단한 용례를 배울 뿐, 이를 통해 시적 화자와 공명하거나 작품 속에서의 화자의 처지를 헤아린다든지 등의 활동까지는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해서 이를 교수하는 교사의 수준까지 초등학생의 수준일 수는 없잖습니까. 교사는 문학 작품 속에서 이루어지는 비유의 양상을 통하여 시적 화자의 처지를 헤아리고, 왜 이러한 비유를 사용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면서, 시적 화자와의 내밀한 교감을 이룰 뿐 아니라, 이론적으로도 어느 정도의 이해의 수준에 도달해야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사회과의 경제 파트를 재구성한 부분이 나와 있었습니다. 그 부분('행복한 경제')을 보면서, 과연 이렇게 이루어진 주제별 재구성 수업이 학문적인 엄밀함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학문적으로 엄밀함을 가지고 주제별로 재구성이 되었는가. 과연 재구성에 참여한 교사들은 경제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교육과정 상의 성취기준을 기초로 한 학습 요소를 추출하여 이를 효율적으로 재구성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활동 중심의 프로그램이 여럿 소개되지만, 이러한 프로그램을 과연 우리 교실에서는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들었습니다. 책이 '왜 이런 프로그램을 구안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은 생략한 채, 프로그램 과정만을 나열식으로 소개한 것을 보면서 이것은 우리 교실에서는 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편으로는 초등학교 교사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어떤 초등학교 교사가 경제면 경제, 역사면 역사, 문학이면 문학을 체계적으로 배워서 그것을 자신의 교실에서 녹여낼 수 있겠습니까. 초등학생의 발달 과정 상의 특징을 생각할 때 초등학교 교실에서 교과 담임제를 구현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면, 초등교사의 학문적 엄밀함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초등교사는, 아이들을 학문적으로 잘 가르치는 것보다는, 아이들이 인격적으로 잘 성장하도록 안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제별 재구성은 교사의 역량에 걸맞는 정도의 최소한의 수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위에서 밝힌바대로, 요즘 초등학교 현장의 키워드는 '학생 주도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의 치명적인 약점은, 활동이 학습을 담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프래그머티즘 계열에서는 학생들의 다양한 활동이 학습으로 귀결된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그것이 모든 학생에게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면, 학생의 학습을 담보할 수 있는 교육적 처방도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학생이 활동하는 것 자체로 의의를 삼는 우를 범치 않으려면, '학생 주도적' 교육 활동을 통해 학생들이 성취기준 상의 학습 요소를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는 확실함이 있을 때에 그러한 활동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고민이 커졌습니다. 어쨌든, 교사 주도적인 교수-학습이 학생들을 수동적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분명한데, 학생 주도적인 교수-학습을 통해서 어떻게 학생들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뚜렷한 해결책이 없으니... 결국 교사의 할 일은 더 많은 공부를 통해서 교사 자신의 수준이 꽤나 높아지도록 하는 것부터 일단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인식 아래에서, 저도 2015학년도에 교과 간 주제별 재구성 수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학문적 엄밀성을 바탕으로 하여 학생 주도적 활동을 통하여 학생들이 인격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학문적 부분에서도 성장이 이루어지는 그러한 수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 어려운 시대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의 정체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이언숙 옮김, 오찬호 해제 / 민음사 / 2014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을 읽다가 불현듯, 세월호에서 스러져갔던 학생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참사 당시 많은 이들이 더 안타까와했던 것은, 그 많은 학생들이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청소년하면 가지고 있는 일탈, 반항, 탈주, 이런 이미지들이 참사 당시에는 전혀 드러나지 않은채, 그 학생들은 그 곳에서 잘못된 지시에 정확하게 참여하고 그렇게 스러져갔던 것입니다.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청소년에 대한 이미지, '젊은이'라는 말 속에 들어있는 고정관념들. 과연 그런 것들이 청년들에 대한 적확한 이해 속에서 나온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청년에 대한 몰이해가 기성세대에 의해 만들어지고 확산되는 현상 속에서, 이미 기성세대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 저의 경우에도 제가 가진 고정관념들을 깨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일본의 젊은 사회학자인 후루이치 노리토시가 일본 사회의 '젊은이'들에 대해서 쓴 책입니다. 우선 저자의 나이가 흥미롭습니다. 1985년생인데, 아무래도 젊은이가 쓴 '젊은이론'이라는 것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의미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 젊은이들이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기에는 참 힘이 든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어른들의 야유이겠지요. '너희도 더 커서 경험해보면 생각이 달라질거야'. 굉장한 폭력이자, 젊은이들의 삶과 선택에 대한 야유라고 할 수 있지요. 젊은이들의 삶이 어른들의 말 한 마디에 무너지는 것. 그러한 현상은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책은 묘하게 계속 우리나라와 일본이 오버랩됩니다. 우리나라보다 (경제적으로) 한 20년은 앞섰던 나라 - 도쿄 올림픽은 1964년, 서울 올림픽은 1988년 - 일본. 그 일본이 1990년대부터 장기불황에 돌입하여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장기불황의 전초가 보이는 상황에서, 일본의 젊은이들이 닥친 상황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닥친 상황과 엇비슷합니다. 가장 어두운데, 여명이 오리라는 기대는 전혀 되지 않는, 그냥 가장 어두운 그 상황. 젊은이들이 행복할 수 밖에 없는 까닭을, 저자는, 젊은이들에게 미래가 없기 때문이라고 단언합니다. 지금 이 상황에 최고의 상황이니까, 젊은이들은 만족하고 있으며, 그래서 젊은이들의 행복지수가 높을 수 밖에 없다는 저자의 상황인식. 


더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젊은이들의 불행은 앞으로 10년, 20년 뒤, 지금의 젊은이가 더이상 젊은이가 아니게 된다면 격차로써 드러날 것이라는 저자의 예언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자는, 20대의 젊은이들은, 프리터 족으로 살던, 번듯한 대기업에 취업을 하던, 큰 격차를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받는 급여는 어쨌든, 프리터 족이든 대기업 신입사원이든 비슷할테니까요. 그러다가... 그들이 20년 더 그런 인생을 지속해가면, 더이상 젊은이가 아닌 시절이 오면, 그 때부터 격차가 벌어지겠지요. 지금의 젊은이들의 불행은, 더이상 그들이 젊은이가 아닐 때에야 비로소 체감할 수 있기 때문에, 현상의 개선은 요원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저자는 일본 인구 '1억명 모두가 젊은이가 되는 사회'라고 지금을 진단합니다. 기술의 발달이, 정보의 확산이, 젊은이가 선취할 수 있는 것들을 모든 인구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점차로 젊은이가 설 자리는 좁아지고 있습니다. 젊은이가 내세울 수 있는 카드도 점점 축소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렇습니다. 아니,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더 못한 상황이라고 봐야겠지요. 일본이 가진 사회안전망도 제대로 가지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젊은이들은 노인 세대를 부양해야할 몫까지 짊어져야하니까요. 


우리나라의 청년들에 대한 이해, 그리고 장년 세대로써 미래세대에 대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책임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래의 리더들을 위한 과학 입문 1 미래의 리더들을 위한 과학 입문 1
리처드 뮬러 지음, 전이주 옮김 / (주)하서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고등학교 때 과학을 잘 한 편입니다. 문과생이었지만, 모의고사 점수도 나쁘지 않은 편이었고, 내신도 좋은 편이어서, 대학교를 과탐 덕택에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성적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시험 성적은 좋은 편이었지만, 지식이 축적될수록 지식간의 연계는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래전 기억을 되살려보자면, 물리는 파동 파트가 나오면서부터, 화학은 여러 탄소 화합물이 나오면서부터 제정신(!)이 아닌채로, 암기에 의존하여 지식을 습득했던 기억이 납니다. 비단 저뿐이겠습니까.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이 자신이 다루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채, 시험을 위해 지식을 꾸역꾸역 넣는 것이 일반적이겠고, 고등학교를 떠나면 그렇게 넣은 지식들은 대뇌피질 어디에선가 굳어버려 끄집어낼 수도 없는 무엇인가가 되어버리겠지요. 


그렇게 고등학교를 떠나, 문과생으로 살아가던 나날에 다시 과학을 접해볼 기회를 가진 것은 교대 2학년때 수강했던 과학과교육 1 시간에서였습니다. 그 때 강의하시던 교수님께서 '열'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던 것이 기억에 납니다. '머리에서 열이 난다'라고 할 때 그 열의 정체는 뭐냐, 이런 식의 이야기였던 듯 싶은데, 그 때 그 '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열에 대한 오개념, 열과 에너지와의 관련성 - 결국 열은 에너지라고 할 수 있죠 -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느 정도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식이 분절적이라면 어쩔 수 없이 조각난 지식을 머릿속에 쌓을 수 밖에 없습니다. 체계적으로 정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테니, 분절적인 지식을 최대한 구조화하여 넣어야할텐데... 구조화하기 위한 유목화를 위하여 지식간의 연관성을 따진다는 것에서 부닥칠 수밖에 없는 근원적 문제를 맞닥뜨리는 순간, 우리에게 분절적 지식은 마치 조립하기 전 레고 블럭처럼 무의미한 더미에 불과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이 책 [과학 입문 1]은 고등학교 정도의 - 저 정도되는 - 과학 - 특히 물리와 화학 - 지식을 가진 독자가, 자신의 과학 지식을 실생활에서 확인하면서, 지식간 연련성을 강화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자는 대학교에서 과학의 문외한에 가까운 학생들에게 교양 수업으로 강의한 내용을 이 책으로 엮었는데, 과학을 처음으로 접하는 이들이 읽기에는 조금 버거운 책이라는 생각이 들고,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가진 독자들에게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책은 두 권으로 되어있고, 저는 1권을 먼저 읽었습니다. 1권을 읽어보고 2권을 구매할지 말지를 결정하려고 했는데, 1권의 3분의 1쯤을 읽는 시점에서 2권을 구매했습니다. 물리의 중요한 핵심지식인 일과 에너지에 대한 이야기, 화학의 중요한 핵심지식인 원자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다루고, 우리 생활에 밀접한 영향을 끼치는 방사능과 핵에너지, 전자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는 1권을 마무리합니다. 아무래도 숫자가 조금 벅찬 편이고, 주요 수식들이 복잡하게 엮여 있지만, 그런 것에 크게 개의치않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을 정도는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2권도 기대가 되네요.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기존에 알고 있던 과학 지식과는 조금 다른 방향의 이야기들도 있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과학 지식이 짧아서 책 속 내용 중 일부는 크로스체킹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부지런히 공부해서 여러 내용들을 명확하게 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