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인더스 키퍼스 - 찾은 자가 갖는다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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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장르소설이라고 불리우는 글이 가지는 전형성을 생각해 본다면, 흔히 장르소설이라고 하는 글을 쓰는 작가의 어려움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상 가능한 이야기의 전개, 결말, 그 후. 그러다보니 이제 소설 장르의 이쪽 편과 저쪽 편에 있는 글들이 조금씩 그 경계를 허물고 섞여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위 순수소설이라고 하는 글들은 장르의 문법을, 혹은 문체를 따라가고, 장르소설이라고 하는 글들은 이야기의 흘러가는 모양새 뿐만 아니라 그 뒤에 웅크리고 있는 사유의 너비와 깊이에 조금은 더 신경을 쓰는. 그래서, 한 2~30년 전만해도, 김영하 같은 작가가 흔치 않았으며, 어슐리 르 귄 같은 작가가 특히 주목받아왔는데, 요즘은 딱히 그렇지도 않은 듯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과 기름인줄 알았는데, 조금씩 서로의 좋은 점을 나눠가지는 모습.


그런데, 이 책, [파인더스 키퍼스]는 그런 장르의 전형성이라는 한계를 제대로 돌파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느낌을 진하게 갖게 됩니다. 어중간하다고나 할까.


인상깊은 장면이 있다면, 주인공인 피트 소버스의 영어(문학) 선생님인 하워드 리커 선생님이 펼치는 문학론, 또다른 주인공인 모리스 벨러미의 어머니인 애니타 벨러미가 언급하는 작중 베스트셀러인 [러너] 3부작에 대한 간략평, 그리고 작중 베스트셀러 작가인 존 로스스타인의 [러너] 3부작과 미출간 작품인 [러너]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2부작에 대한 작중 주인공들의 내용 언급과 간략평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다만 너무 짧고, 정말 간단합니다. 조금 더 길었으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 중에 한 사람인 스티븐 킹이 가지고 있는 '소설론'을 주인공들의 입을 빌어 보여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물론, 작가인 스티븐 킹이 그의 다른 소설들에서 이미 충분히 보여주었을 수도 있고, 그것을 제가 놓치고 있는 것일 수도 - 스티븐 킹의 책을 즐겨 읽지는 않는 편이니까요 - 있겠지만, 이 책에는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저, 주인공들의 매력 - 혹은 마력 - 과 내러티브의 힘으로만 이야기는 흘러가려고 하지만... (전작인 [미스터 메르세데스]로부터 이어진) 주인공들의 매력은 전작을 읽지 않았다면 - 저는 읽지 않았습니다 - 매력들의 조각을 얼기설기 이어붙여 그 빈 여백을 최대한의 호의로 덧칠하여 보아야지만 알 수 있는 것이며, 전작과 상관없는 주인공들로부터의 매력이라면 나이들어서도 변함없는 치기어림과 나이어린 사려깊음에 대해서 충분히 호감을 가질 수 있는 경우에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러티브야말로 이 소설이 가진 가장 큰 약점인데, 어쩔 수 없겠지만,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결말과, 예측을 피해보고자 노력했겠지만 지나친 해피앤딩과 지나친 새드앤딩 사이에서 줄타기를 심하게 하느라고 어려움에 빠진 듯 한 그 후의 이야기마저도 마음을 울리는 구석은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이제 장르의 전형성이 작가를 잡아먹는 모양새가 되어가는 듯 합니다. 스티븐 킹은 자신의 역량을 쏟아부어 신선한 내러티브를 창조하려고 노력한 듯 보이나, 저라는 독자를 납득시키는데에는 실패한 듯 합니다. 막장에 막장을 얹음으로써 드라마의 문법에 신기원을 마련해가고 있는 드라마 작가들과는 차별화되었다는 것에서 만족해야할까요? 전작을 읽지 않았지만, 이 작품 [파인더스 키퍼스]에서 엿본 전작이 더 나아보인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다고 전작을 읽고 싶지는 않네요. 다 알아버려서.


다만 이후 작품을 염두에 둔 것인지, 전작으로부터 이어지는 이야기의 흐름이 하나 있습니다. 그러나 제 개인적인 취향과는 맞지 않아서, 저는 이후 작품을 읽지는 않을 듯 합니다. 



아쉽네요. 은둔한 천재 작가. 문학을 좋아하고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더할나위없이 좋은 시작이었는데...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몰입도가 떨어지고, 결말을 '확인'하기 위해서 책장을 듬성듬성 넘기는 그런 느낌, 아쉬웠습니다. 바로 이전에 읽었던 책인 하인라인의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은 결말에 다가설수록, 글자 하나하나를 더 집중해서 읽도록 만들어주는 힘이 있었는데 말입니다. 제가 스티븐 킹의 소설과는 그닥 맞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11/22/63]도 중간에 흠뻑 빠져들었다가, 마지막에서 탁, 놔 버리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제가 스티븐 킹의 이야기의 매력을 잘 모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그래서, 요즘 한창 출간 전 서평 이벤트가 많은데, 쉽사리 응모를 하지 못하겠습니다. 일전에 응모하여 읽었던 [셜록 홈즈: 모리어티의 죽음]도, 독후의 느낌이 별로여서, 독후감상문을 제대로 쓰지 못했던 기억이 있네요. 이 책, [파인더스 키퍼스]에 대한 서평 이벤트도, 그래서 응모를 못했고, 덕택에 제 값 치루고 책을 읽은 후에, 얽매임 없는 독후감상문을 두드려 보네요.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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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최세진 옮김 / 아작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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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부터 읽기 시작해서, 실은 빨리 읽어버리고, 알라딘에 돌려 줄 생각이었습니다. 


그저께 책을 잡고 읽기 시작하는데, 처음 부분에 클리퍼드 러셀(이하, 킵)이 오스카를 만날 때까지 시원시원스레 진행되는 이야기의 흐름 덕택에 조금씩 조금씩 몰입감이 고조되다가, 피위 레이스펠트 - 와 벌레머리 종족 - 가 사건에 끼어들고 나서부터는 집중력이 뚝 떨어져 버렸습니다. 아마도 킵이 피위와 겪는 일련의 사건과, '엄마벌레'와의 에피소드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덕택에, 백 몇 십 쪽에서 읽기를 멈추고는, 마저 읽어서 알라딘으로 치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오늘 다시 책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341쪽에 도달해서야, 이 책이 읽고 치워버릴 정도의 책은 아니라는 생각에 도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344쪽부터, 이 책은 비로소 읽을만한 것이 되었습니다. 꽤나.


("그들의 행성을 너와 내가 인지하고 있는 시공간 밖으로 90도 돌린다는 의미란다.") -340쪽 

("착한 킵, 넌 판결을 이해하지 못한 거야. 그들은 자기네 별을 가져가지 못한단다.") -341쪽

저도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별을 가져가지 못한다는 것. 우리가 사는 공간이 2차원의 - 평면의 - 공간이라면, 우리의 공간을 90도로 돌리면, 더 이상 우리의 공간은 이 세계에 존재할 수 없겠지요. 그런데, 행성을 이 공간 바깥으로 쫓아내는데, 만약에 항성 - 별 - 을 가지고 가지 못한다면, 그 행성은 생명의 원천을 잃어버리게 되겠지요. 그리고 인류는 자신의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전 우주적인 형벌의 대상이 되어야할지를 깊이 고민해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어찌보면 인류의 역사는 악덕을 끊임없이 쌓아올린 그런 일련의 과정을 살아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어떤 학자는 우리 인류가 본성에 선한 천사를 하나 정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단 일백년 안에 하나의 민족이 다른 민족을 절멸하려는 시도를 거의 성공시킨, 그리고 지금도 끊임없이 벌어지는 소규모/대규모의 폭력과 린치의 역사가, 과연 인류의 번영이 전 우주적으로 보자면 축복이 될지 슬픔이 될지에 대한 의문과 회의를 가지게 됩니다. 한 사람의 선의가 모이고 모여서 인류가 선함을 향하여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엄마생물'의 말대로, 인류는 '자신의 본성을 거슬러서 행동(289쪽)'할 수 있는 존재이니까. 우리의 선한 본성이 모였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 그런 종족이 바로 인류이기도 하지요.


SF의 미덕이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하는 듯 싶습니다. 객관자연 하여 주관을 구축함으로써 얻는 묘한 설득력. 한 크레타인이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장이이다'라고 외쳤을 때, 그 진실성에 대한 탐구보다는, 순환 논리의 오류부터 지적할 수 밖에 없는 셈이기에, SF의 쓸모와 매력이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지요. 인류가 인류의 악덕을 고발하는 모순 대신, 온 우주인의 입을 빌려 다시 한 번 성찰하게 되는 우리 인류의 슬픈 모습. (특히 이 책이 쓰여질 당시에 무기에 무기를 쌓아올리며 무력에의 억지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던 그 모습) 그 덕택에, 온 우주인으로부터 지적당하는 인류의 악덕에 대해서는 묘한 공감과 슬픈 되새김을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이야기의 마지막은, 다시 처음의 유쾌함으로 돌아옵니다. 킵이 자신의 인생을 조금 더 잘 살아갈 수 있게 되어서 기쁘지만, 결국 킵은 '꼼꼼하게 준비했을 때만 따라오는(384쪽)' '행운'을 만난 셈이니, (좋은 의미의) 인과응보를 경험했다고 봐야겠지요. 


하인라인의 다른 작품인 [여름으로 가는 문]보다는 그 몰입감이나 재미가 떨어지지만, 그리고 이야기의 중간 부분을 읽을 때에는, 이야기가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어서 구닥다리라는 생각을 내내 하긴 했지만, 누군가가 그랬던가요. '끝이 좋으면 모든게 좋다'고. 이 책도 끝이 좋아서, 제게는 무언가를 두드리지 않으면 안될 여운을 주어서, 좋은 책이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결국 알라딘으로 되돌려주지는 않을 듯 합니다. 가지고 있다가, 생각날 때 끝부분만 다시 읽어도 좋을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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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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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렀다가 대학원 수업 가는 길에, 오고가며 편하게 읽으려고 집어들었는데, 정말 편하게 읽히더군요. 


기본적인 이야기 얼개는 영화 [13 몽키즈] 같은 영화와 비슷합니다. 꼭 뫼비우스의 띠 같지요. 혹은 (보지는 않았지만) 영화 [동감]과의 접점도 있습니다. 이야기의 구성은 에피소드 식이지만, 독자는 다 알고 있습니다. 어느 지점에서 연결고리가 있겠구나, 라고. 


다행히(?) 이 책은 추리소설 류는 아닙니다. 아마도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가 가진 추리소설과의 접점 때문에, 책의 띠지에의 소개도 그렇게 '추리'라는 단어를 넣은 듯 하지만, 이 소설의 본류는 추리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사십 줄에 접어서면서 살아낸 나날에 대한 추억을 되짚어보는 일들에 특히나 예민을 떠는, 저같은 이들이 읽으면 참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시절을 추억하는 줄거리는 아닌데, 이야기가 이야기이다보니, 끊임없이 옛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느새 독자인 저의 옛날과 자꾸 맞닥뜨려집니다. 그리고, 항상 기억은 왜곡되고 미화되는지라, 항상 저의 옛날이 아름답지만은 않았을텐데, 이런 책이 자꾸 지난 삶을 아름답게 덧칠합니다. 그게 싫지는 않네요. 이런 류의 책이 그래서 많은 이들의 - 저의 - 호감어린 평가를 받게 되는가 봅니다. 


한편, 뭔가 어리숙한 세 사람의 환상 체험 같은 이야기가 주는 묘한 울림도 있습니다. 불치하문이라 하였는데, 이 세 사람의 인생에 대한 즉시적인 대답은, 결국 이 세 사람에게 새로운 울림이 되어주기도 합니다. 사실 답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 우리는 자꾸 누군가에게 묻고, 자신이 이미 가진 답에는 귀 기울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답은, 나미야 잡화점의 주인인 나미야 유지와 같이 진중하게 구할 수 있기도 하지만, 뭔가 서툴러보이는 삼인조의 즉시적인 결론 속에도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그 속에 답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봅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에 대한, 우리에 대한, 모두에 대한, 옳다는 확신.


약간은 안타까운 이야기 하나. 다른 사람을 꿈꾸게하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을 모른채 흘러가버린 인생에 대한 뒤늦은 찬가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삶의 아름다운 국면만을 모아둔 책은 아니라는 점에서 좋은게 좋은 것이라는 그런 편안함은 덜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마지막은 그저 '끝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라는 경구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듯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 좋은 이야기의 틀을 가지고 이런 결말이라니. 꼭 인기 드라마의, 모두를 무난하게 만족시키기 위한 결말 정도라고 이해해야 할까요. 혹은 이러한 이야기의 플롯이 가진, 결국 직소 퍼즐의 마지막 퍼즐 조각을 끼울 수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만들어낸 결말인 듯 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래도, 재미있습니다. 특히, 모두의 말에 그 의미를 부여하는 나미야 잡화점 어르신처럼, 결국 누군가 한 사람의 삶을 존중한다는 것이 주는 엄숙한 의미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이야깃속 그 모습들이, 결국 독자 모두를 무난하게 만족시켜주는 해피 엔딩을 이끌어 냅니다. 뭐, 이야기의 짜임새나 진행 방향에 대한 마이너한 방향으로의 불만 정도는 접어둘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야기를 읽고 나서 나쁘지 않게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면, 만족인게죠.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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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인 2017-08-11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에도 나미야 할아버지가 있었어요!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도 ‘나미야 할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페이스북에 ‘나미야 잡화점을 현실로‘라고 검색하니 실제로 누군가가 익명 편지 상담을 운영하고 있더라구요.
namiya114@daum.net 여기로 편지를 받고 있고, 광주광역시 동구 궁동 52-2, 3층 나미야할아버지 로 손편지를 보내면 손편지 답장도 받을 수 있다고 하네요.
아마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대부분 저같은 생각을 한번쯤 해보셨을 거라 생각돼 이곳에 공유합니다.
 
미드나이터스 1 - 비밀의 시간
스콧 웨스터펠드 지음, 박주영 옮김 / 사피엔스21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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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매력


오늘 학교에서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기억에 남는 소설과 그 까닭을 말해보자고 하였습니다. 자유롭게 자신의 기억에 남아있는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감동적'인 혹은 '인상적'인 것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등장인물의 삶에 대하여, 사건 속에서의 등장인물의 선택에 대하여 감동을 받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혹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일어난 사건에 대하여, 사건 속에서의 인물의 모습에 대하여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혹은 둘 다에 대한 이야기를.


[미드나이터스]는, 작가의 다른 작품인 [어글리], [프리티], [스페셜] 보다는 덜 감동스럽긴 합니다. 역자의 언급대로, 이 이야기는 성장소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다고 독자까지 성장시키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기 때문에, 감동이 덜한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충분히 인상적입니다. 


자정을 살아가는 이들인 '미드나이터 Midnighter'가 있습니다. 인류 이전에 인류의 포식자로 군림하던 다클링들의 숫자인 12, 그 12의 배수가 겹치는 지역인 오클라호마 주의 벅스비는, 정확하게 자정에 태어난 아이들이 자정에 속한 푸른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신비의 장소입니다. 그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남들이 가지지 못하는 자정의 한 시간을 더 가집니다. 그들을 일컫는 말은 미드나이터. 그래서 벅스비에서는 미드나이터들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닌, 25시간입니다. 


그리고 벅스비에, 네 미드나이터를 찾아오는 아가씨가 있습니다. 제시카 데이. 시카고에 살다가 이사온, 그러나 시카고에서는 한 번도 겪지 않았던 그 자정의 푸른 시간을, 신비의 장소인 벅스비에서 만나게 되는 제시카 데이. 그리고 그녀가 마주하는 미드나이터들과 함께, 푸른 시간의 균열에 의해서 벌어지는 다클링들과의 숨막히는 결전이 벌어집니다. 


결말은 아쉽습니다. 다크한 앤딩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마도 작가는 열린 결말이라고 생각하면서 썼겠지요. 그래서 다 읽고 나면 약간의 허망함이 있습니다. 감동으로 꽉 차는 느낌은 아닙니다. 그러나, 충분히 인상적입니다. 자정과 함께 찾아오는 푸른 시간. 모든 것이 멈추어버린 사이로 중력과는 무관한 존재로써 세상을 주유하는 플라잉보이 조너선의 이야기만으로도 굉장히 즐겁습니다. 그 자유로움. 그것을 내러티브로써 구현하는 환상 소설. 다른 장르에 대해 환상 소설이 가지는 매력은 바로 그 인상적인 이야기의 얼개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머릿속으로 그려집니다. 다른 사람은 가질 수 없는, 푸른 빛이 도는 자정의 달이 떠올랐다가 지는 그 한 시간을, 만약에 내가 가질 수 있다면. 환상이 주는 매력은 바로 그 낮설기에 새롭고, 새롭기에 설레이고, 설레이기에 더 흠뻑 빠져들게 되는 느낌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미드나이터스] 3부작은, 작가의 다른 작품인 [어글리], [프리티], [스페셜]보다는 덜 감동적이지만, 충분히 인상적이며, 그 마지막의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푸른 시간'이라는 그 낮섦이 주는 느낌을 3권의 책을 읽어가는 내내 느낄 수 있습니다. 


아쉬움은, 인물의 변화에 대한 부분입니다. 역자의 말을 빌자면 이 책은 성장 소설이기 때문에, 10대 초반의 미드나이터들은 조금씩 조금씩 관계망 속에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 변화의 양상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이야기를 끌고 가는 '보는 자'인 미드나이터 렉스와, '마인드캐스터' 멜리사의 변화는 이야기로의 집중에 별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합니다. 


매력적인 캐릭터는 '수학 천재'인 데스데모나. 가장 설득력있는 등장인물이며,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혹은,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던 '하늘을 나는 자' 조너선. 자유롭게 삶을 누리는 그 플라잉보이는, 그 삶의 심플함 때문에 꽤나 즐겁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열쇠를 쥐고 있는 제시카 데이가, 조금 더 분명하게 표현되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끝, 그리고 끝을 향하여 나아가는 그 얼개가 약간은 어설프다는 느낌을 받지만, 책장을 덮는 순간, 이 책은 인상적이었다, 는 느낌은 잠시 멍하게 책등을 부여잡고 앉아있게 만들었습니다. 그 푸른 시간의 생경하고 새로운 느낌이 꽤나 오래갈 듯 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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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철학사 (양장) - 원효부터 장일순까지 한국 지성사의 거장들을 만나다
전호근 지음 / 메멘토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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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쉽게 읽히고,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조금 더 넓혀주는 책이다. 두께가 만만찮지만 워낙 잘 읽히는 책이라서 길잡이 이전 용도의 책으로 적절할 듯. 길잡이용으로 쓰기엔... 아무래도 사상 쪽보다는 인물의 생애 쪽에도 만만찮은 비중을 담아둔지라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그래도 인물의 삶과 생각이 잘 연결된 덕이 인상깊은 독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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