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
로버트 A. 하인라인 지음, 최세진 옮김 / 아작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그제부터 읽기 시작해서, 실은 빨리 읽어버리고, 알라딘에 돌려 줄 생각이었습니다. 


그저께 책을 잡고 읽기 시작하는데, 처음 부분에 클리퍼드 러셀(이하, 킵)이 오스카를 만날 때까지 시원시원스레 진행되는 이야기의 흐름 덕택에 조금씩 조금씩 몰입감이 고조되다가, 피위 레이스펠트 - 와 벌레머리 종족 - 가 사건에 끼어들고 나서부터는 집중력이 뚝 떨어져 버렸습니다. 아마도 킵이 피위와 겪는 일련의 사건과, '엄마벌레'와의 에피소드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덕택에, 백 몇 십 쪽에서 읽기를 멈추고는, 마저 읽어서 알라딘으로 치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오늘 다시 책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341쪽에 도달해서야, 이 책이 읽고 치워버릴 정도의 책은 아니라는 생각에 도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344쪽부터, 이 책은 비로소 읽을만한 것이 되었습니다. 꽤나.


("그들의 행성을 너와 내가 인지하고 있는 시공간 밖으로 90도 돌린다는 의미란다.") -340쪽 

("착한 킵, 넌 판결을 이해하지 못한 거야. 그들은 자기네 별을 가져가지 못한단다.") -341쪽

저도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별을 가져가지 못한다는 것. 우리가 사는 공간이 2차원의 - 평면의 - 공간이라면, 우리의 공간을 90도로 돌리면, 더 이상 우리의 공간은 이 세계에 존재할 수 없겠지요. 그런데, 행성을 이 공간 바깥으로 쫓아내는데, 만약에 항성 - 별 - 을 가지고 가지 못한다면, 그 행성은 생명의 원천을 잃어버리게 되겠지요. 그리고 인류는 자신의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전 우주적인 형벌의 대상이 되어야할지를 깊이 고민해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어찌보면 인류의 역사는 악덕을 끊임없이 쌓아올린 그런 일련의 과정을 살아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어떤 학자는 우리 인류가 본성에 선한 천사를 하나 정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단 일백년 안에 하나의 민족이 다른 민족을 절멸하려는 시도를 거의 성공시킨, 그리고 지금도 끊임없이 벌어지는 소규모/대규모의 폭력과 린치의 역사가, 과연 인류의 번영이 전 우주적으로 보자면 축복이 될지 슬픔이 될지에 대한 의문과 회의를 가지게 됩니다. 한 사람의 선의가 모이고 모여서 인류가 선함을 향하여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엄마생물'의 말대로, 인류는 '자신의 본성을 거슬러서 행동(289쪽)'할 수 있는 존재이니까. 우리의 선한 본성이 모였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는 그런 종족이 바로 인류이기도 하지요.


SF의 미덕이 이 지점에서 빛을 발하는 듯 싶습니다. 객관자연 하여 주관을 구축함으로써 얻는 묘한 설득력. 한 크레타인이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장이이다'라고 외쳤을 때, 그 진실성에 대한 탐구보다는, 순환 논리의 오류부터 지적할 수 밖에 없는 셈이기에, SF의 쓸모와 매력이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지요. 인류가 인류의 악덕을 고발하는 모순 대신, 온 우주인의 입을 빌려 다시 한 번 성찰하게 되는 우리 인류의 슬픈 모습. (특히 이 책이 쓰여질 당시에 무기에 무기를 쌓아올리며 무력에의 억지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던 그 모습) 그 덕택에, 온 우주인으로부터 지적당하는 인류의 악덕에 대해서는 묘한 공감과 슬픈 되새김을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이야기의 마지막은, 다시 처음의 유쾌함으로 돌아옵니다. 킵이 자신의 인생을 조금 더 잘 살아갈 수 있게 되어서 기쁘지만, 결국 킵은 '꼼꼼하게 준비했을 때만 따라오는(384쪽)' '행운'을 만난 셈이니, (좋은 의미의) 인과응보를 경험했다고 봐야겠지요. 


하인라인의 다른 작품인 [여름으로 가는 문]보다는 그 몰입감이나 재미가 떨어지지만, 그리고 이야기의 중간 부분을 읽을 때에는, 이야기가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어서 구닥다리라는 생각을 내내 하긴 했지만, 누군가가 그랬던가요. '끝이 좋으면 모든게 좋다'고. 이 책도 끝이 좋아서, 제게는 무언가를 두드리지 않으면 안될 여운을 주어서, 좋은 책이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결국 알라딘으로 되돌려주지는 않을 듯 합니다. 가지고 있다가, 생각날 때 끝부분만 다시 읽어도 좋을 듯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