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 여행 - 역사기행으로 읽는 일본사
하종문 지음 / 역사비평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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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갖기가 쉽지 않았던 개인적인 까닭을,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여러 차례의 침략과 그를 대하는 무례함이라고 설명하고 싶습니다. 1592년의 임진왜란, 1876년의 운요호 사건을 기점으로 한 국권의 침탈, 그리고 왜구의 긴 기간에 걸친 약탈 등이, 명확한 사과와 재발 방지 의지를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일본은 아직도 우리나라에게는 가깝고도 먼 나라임에 분명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이유가 일본과 일본 역사에 대한 저의 무지함의 변명이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기껏해야 [일본은 있다(서현섭)], [일본은 없다(전여옥 씨의 표절작품으로 드러난)] 정도의 일본 개설서 - 게다가 [일본은 없다]의 경우에는 저자의 표절이라는 윤리적 흠결까지 - 를 가지고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알 수도, 알기도 어렵다는 생각을 요 근래에 해보게 되었습니다. 


직접적으로는, 벌써 2년째 공염불에 그치고 있는 일본 교토 여행 준비의 목적도 있을 것입니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일본편]을 읽으면서, 일본 역사에 대한 대체적인 흐름을 알 필요를 느꼈고, 이런저런 인터넷 상의 추천글을 보고 이 책, [일본사 여행]을 선택했습니다. 



책이 쉽게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책의 서술 구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선,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첫 부분은, 일본의 43개 현을 훗카이도부터 오키나와까지 주욱 훑으면서, 각 현의 주요한 장소와 그에 따른 사건을 간략하게 안내하는 '답사로 찾는 일본' 부분입니다. 예컨대, 어느 현의 어느 도시에는 이런 사건이 있었는데, 이런 유적들을 살펴볼 수 있다, 식인 것이죠. 이 부분이 굉장히 어렵고 집중력이 떨어졌습니다. 일본 역사에 대한 좁고 부분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지리적인 특징에 따라 분절적으로 제시되는 역사적 사실을 받기가 버거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집중력 없이 읽으면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일본 역사를 기술한 두 번째 부분인 '역사로 찾는 일본' 부분과 첫 부분인 '답사로 찾는 일본' 부분이 바뀌면 어땠을까에 대한 생각을 했더랬는데, 막상 책을 다 읽고 나니, 책의 배치가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역사로 찾는 일본' 부분이 앞부분에 오고 '답사로 찾는 일본' 부분이 뒤에 자리잡았다면, 아마 뒷부분에 자리잡은 '답사로 찾는 일본' 부분은 사족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부분을 모아 전체를 조망하는데 사용하는 책의 서술방식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초보 독자에게는 어렵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책의 분량에 비해 독서 시간은 굉장히 오래 걸렸습니다. 


하지만, 시도는 참 좋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실 한 나라의 역사는 땅에서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삶의 총합일텐데, 막상 역사를 배우면서도 어디에서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인지 제대로 모르면서 받아들이는 삶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그 이해의 폭이 완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첫 부분의 '답사로 찾는 일본'이, 뒤이은 '역사로 찾는 일본'을 읽는 내내 오버랩되면서 일본사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역사를 다룬 두 번째 부분이 굉장히 알찼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다룬 여러 책을 읽어본 편이지만, 이 책은 정치사와 주요 사건을 주요한 맥으로 하면서도, 각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에도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특징을 드러냅니다. 당시 기층민의 삶의 양상을 드러냄으로써, 당시 시대 상황을 입체적으로 알 수 있도록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모여서 역사의 흐름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을 어느 정도 반영하여 책이 이벤트에 치우치지 않도록 배려한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저자의 일본 역사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저자 약력대로라면 저자의 전공 분야는 현대사 쪽인데도 불구하고, 고대사와 중세사의 다양한 사건들에 대하여,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려는 의도를 글에서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400여쪽에 이르는 많지 않은 두 번째 부분이지만, 알차게 실어내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일본편]을 먼저 읽은 입장에서, 유홍준 교수의 책과 일본의 지명/인명에 대한 표기법이 달라서 - 예컨대, 유홍준 교수는 '어소', 이 책의 저자는 '고쇼' - 혼란스러움이 있었지만, 이 책의 저자는 표기 옆에 한자를 병기하여서 혼란이 덜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는 다양한 사진 자료가 - 비록 흑백이지만 - 포함되어 있어서 이해를 더할 수 있었습니다. 딱 적절한 크기와 분량의 사진과 그림, 도표 자료는 일본사에 대한 이해를 적절하게 도왔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분량은 적당하지만, 내용의 밀도는 읽기에 조금 버거운, 그럼에도 좋은 책을 통해서 일본사의 큰 흐름을 놓치는 부분 없이 알게 되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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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선생님도 몰래 보는 분수 나눗셈 사이언스 Why? 시리즈
이타바시 사토루 지음, 전선영 옮김 / 아르고나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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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목적은 간단합니다. 개념을 알고 문제를 풀지 않으면...


<책 속의 한 장면>


이렇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지요. 실제로 많이 벌어지는 일이며, 많은 분들이 경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우선은, 학교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주지 교과목을 중심으로 단원평가를 실시한 후, 일정 점수에 미치지 못하면 특별 보충을 실시하여 일정 점수 이상에 도달하도록 만듭니다. 일정 점수를 위하여 학교에서는 저런 식으로 아이에게 같은 문제를 지속적으로 풀립니다. 그래서 일정 점수 이상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학생은... 아마도 수학에 대한 흥미나 관심이 늘어나는 경험은 하지 못할 것입니다. 


학원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만, 학교와 다른 점은 일정 점수 이상에 도달하도록 하는 과정이 생략될 가능성이 큽니다. 틀린 문제를 맞출 때까지 풀리지만, 학교보다 점검은 덜 하게 됩니다. 학교는 어쨌든, 아이에게 성실함이나 책임감을 가르칠 필요도 있는 전인교육 기관이지만... 제가 학원에서 일하면서 느낀 것은, 학원에서 아이들의 성실함이나 책임감을 강조하면 아이들도 힘들어하고 학원 원장님도 힘들어하시고 학부모들도 힘들어합니다. 학교는 효율성이 최고의 가치가 아니지만, 학원은 효율성이 최고의 가치이니까요. 어쨌든.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벌어지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저자는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방법 이전에 '왜 이렇게 되는지'에 대한 개념이나 원리를 먼저 생각하고, 문제를 풀기 위한 공식을 먼저 찾기 보다는 문제가 가진 의미를 먼저 생각해보며, 수학이 실생활에서 유용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실생활 맥락을 놓치지 않는다면 수학이 그리 어려운 과목은 아니라는 말을 저자는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을 우리의 아이들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자녀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인내가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책은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수학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책을 읽은 분들 중에는, 이 책의 '방법'대로 적용해보다가 효과가 미미하다고 생각하면 다른 '방법'을 동원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방법'들의 적용이 아이들의 수학 역량을 깎아먹는지는 않는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 초등학교 6학년 1학기의 '분수의 나눗셈', 중학교 1학년 1학기의 '(음수) 곱하기 (음수)', 방정식을 배우면서 등장하는 '거리/속력/시간'을 활용한 문장제 문제, '(소)인수분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네 부분 다 우리나라 교육 환경에서는 유의미한 주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1학기의 '분수의 나눗셈' 설명 부분은, 나눗셈을 곱하기 역수로 고쳐서 풀어내는 것에 대한 원리를 설명하면서, 나눗셈의 의미와 원리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나눗셈의 기본 원리 및 분수/소수의 나눗셈을 분절하여 학습할 뿐만 아니라, 그 원리보다는 방법적인 측면에서 학습하는지라, 많은 학생들이 나눗셈의 의미와 양상을 알지 못한채 기계적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어떤 어린이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어떤 어린이들에게는 기계적인 사용이 오개념의 고착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나눗셈의 의미와 분수의 의미를 연관지으면서 분수의 나눗셈이 이루어지는 원리를 파악한다면 시간은 오래 걸리더라도 확실하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게 되겠지요. 


'(음수) 곱하기 (음수)'도, 단순하게 외워 풀이하는 것보다는 음수가 가진 실생활에서의 의미와 함께 (음수) 곱하기 (음수)가 이루어지는 양상을 설명함으로써 학생들에게 유의미한 이해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문장제 문제에 대한 설명은, 현재 우리나라에서의 수학 교육이 이루어지는 부분과 묘하게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수학 수업에서 우리는 필사적으로 공식을 외워서 더욱 빠르게 문제를 푸는 요령을 익혔다. 문장제의 몇 가지 패턴을 익혀서 통째로 암기한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공식을 외우는 것부터가 당찮은 일이다.

문장제를 푸는데 공식은 필요 없다. 문장제가 어려운 것은 문제를 읽고 그 내용을 제대로 해석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실생활에서의 장면을 떠올리고 그림으로 그려보면 문장을 읽고 해석하기가 편해진다. (50쪽) 

저는 유형별로 접근하는 몇몇 문제집을 굉장히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유형을 연습시키고 비슷한 문제를 묶어서 풀리는 문제집. 그런 문제집은 학생 관리의 측면에서는 편리하지만 - 오답 유형이 정해지므로 그 부분만 따로 풀리면 되니까 - 아이들에게 문제가 지닌 의미를 파악하게 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특히 문장제 문제가 나오는 경우에, 유형별 방식으로 학습한 학생들은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잘 해결해내기도 하지만, 어떤 학생들은 유형이 섞여서 나오거나 유형과 다르게 나오는 경우에 도통 갈피를 못잡고 문제해결을 못해내게 됩니다. 잘 해결해내는 학생들 중에서도, 자신이 해결한 문제만 잘 해내지 그렇지 않은 문제들은 해결하기 어려워하는 경우들을 겪습니다.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되는 것이죠. 


이야기가 조금 옆으로 샜지만, 이 책은 초등학교 5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사이의, 자녀의 수학 교육에 대한 소신과 철학 - 아이의 역량을 믿고 개념과 원리를 중심으로 아이가 학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 - 을 가진 학부모님들과 교사들이 보면 어느 정도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학교 현장에서도, 일정 성취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수학적 개념과 원리를 차근차근 되짚어줌으로써 학생의 근본적인 수학적 역량의 성장을 도울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어주는 책이기도 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수학의 궁극적 필요성에는 동의하기 어려웠다는 생각을 밝힙니다. 


인수분해뿐만 아니라 수학 문제를 풀 때의 두뇌사용법, 즉 '수학적 사고'는 실제로 일상생활에 두루 쓸모가 있다. 수학적으로 사고하면 남을 능숙하게 설득할 수 있고, 문장을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가게를 번창시킬 방법도 생각할 수 있고 집안일도 척척 할 수 있다. (3쪽) 

저자는 이러한 관점 아래에서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수학적 사고의 실제를 보여주고 있지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벤 다이어 그램과 인수분해를 이용한 유형별 분류의 방법이 정말 수학적 사고의 결과물인지... '수학을 잘하면 땡땡땡을 잘 할 수 있다'와 같은 수단으로서의 수학적 사고를 강조하기보다는, 수학 자체가 가진 매력과 흥미를 강조할 수 있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수학은 충분히 재미있고 가슴 설레이게 하는 학문이 맞거든요. (참고로, 저는 수학을 좋아하는 법학도이자 영문학도입니다. 꾸벅.)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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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평가 - 잃어버린 20세기에 대한 성찰
토니 주트 지음, 조행복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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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인 토니 주트는 얼마전에 타계한 역사학자입니다. 저는 [포스트워 1945-2005]라는 책을 통해서 저자를 처음 만났습니다. 저자는 [포스트워]에서 약간은 냉소적으로, 유럽의 좌와 우에 대하여 공정하게 기술했더랬는데, 느낌에는 우를 조금 더 냉정하게 봤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타계한 토니 주트의 유작 격인 [재평가]는, 부제처럼 20세기의 역사 위에 놓여졌던 여러 인물들에 대하여 조금 다른 - 혹은 반대의 - 시각으로 바라보는 책이며, 20세기의 주요한 사건들에 대한 조금 다른 - 혹은 반대의 - 시각을 묶어놓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방법으로 '서평'이라는 도구를 사용하고 있는 바, 이 책은 서평 모음집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에, 무언가에 대해 다루어진 책에 대해서, 토니 주트는 그 책의 서평을 통해 20세기의 일반적인 견해에 대해서 조금은 다른 방식의 관점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유태인인 저자가 이스라엘의 자기기만적 행사 -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배척하는 행동 - 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자신의 어릴적 유태인으로써의 경험을 바탕삼아, 공동체를 지키려는 의지가 어떻게 다른 공동체를 파괴하는 괴물로 변해가고 있는지를 차갑게 이야기하는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책의 주 내용이 인물에 대한 서평이다보니 잘 알지 못하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의 경우에는 저자의 견해 속에서 헤아려 다른 견해까지 살펴야한다는 어려움이었습니다. 어쨌든, 20세기 서유럽과 미국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한 번에 살펴내려가기에는 어려운 책이었으며, 제게는 굉장히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마지막 스무 페이지 조금 넘는 결어 부분은, 그 역할을 다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서유럽의 사회민주주의가 - 자신들이 독점하던 이슈가 이제는 보편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으므로 - 국가의 기능 전환과 함께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할지를 코치하는 부분으로,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도 한 번 쯤은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20세기에 대한 단편적 이해가 자리잡으면, 다시 한 번 숙독할만한 책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역자가 여러 좋은 책들 - [포스트워 1945-2005] 도 - 을 번역하신바 있지만, 가독성이 떨어지는 이유를 역자에게 물어야할지 원저자에게 물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어려워도 잘 읽히는 책도 간혹 있는데, 이 책은 어렵기도 하지만, 그 어려움 만큼이나 잘 읽히지 않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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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1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안영옥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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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우리 시대에 넘치는 비판주의와 회의주의와 불신주의의 종언을 고하는 신화 시대로부터의 철퇴였다. ([폴라리스 랩소디] 2권, 10쪽)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워낙에 유명한 소설입니다. 풍차와의 결투는 돈키호테 이야기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에피소드이며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돈키호테]의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광인 돈키호테와 맹목적인 헌신의 시종 산초 판사는 저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책을 읽기 전에 알고 있는 돈키호테에 대한 편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돈키호테에 대한 다른 무언가가 더 있을 것이라는 기대 - 혹은 의심 - 를 가지고 있으면서, 막상 너무 많이 들어왔고 그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 - 착각 - 하기 때문에 실제로 책을 읽게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겠지요. 그래서 [돈키호테]에 대해서 이것저것 주워들은 이야기가 많아서 막상 읽게 된 것은 비로소 이번에서야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어디에선가 본 이야기들이다, 라는 기시감이었습니다. 뭔가 흔한 내러티브를 지닌 이야기들,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 이야기 구성들, 팔백여쪽의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들었던 생각은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의 모험담이 그렇다기보다는, 책 속의 또다른 이야기들인 얽히고 설킨 남여간의 이야기들이, 익숙하게 다가온다고나 해야할까요. 그래서 그 익숙함에 대해서 생각해보니, 아마도 [돈키호테]를 먼저 읽지 않고 그 이후의 이야기들을 먼저 읽게 된 까닭이 크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즉, 다른 이들의 표현대로, 


[돈키호테] 이후에 쓰인 소설은 [돈키호테]를 다시 쓴 것이나 그 일부를 쓴 것이다. -르네 지라르

와 같은 느낌인 셈이죠. 사실, 우리나라 고전 소설도 그렇지만, 근대 이전의 소설들은 틀 안의 이야기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16세기 영문학을 배울 때, 크리스토퍼 말로의 [닥터 파우스투스]를 배웠던 것이 기억 납니다. 셰익스피어의 여러 희곡들을 배웠던 것도 기억 납니다. 그런 소설들과 희곡들이 영문학사에서 의미있었던 까닭은 이야기의 틀이 예전과는 조금 다른 방식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존의 틀 - 내러티브이든, 구성이든 - 에서 벗어난 이야기들, 그 이야기의 시초가 된 작품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이기에, 그 이후의 이야기들이 [돈키호테]에 빚진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의미이겠지요. 


그래서, 편력 기사로서의 돈키호테의 삶은, 그 이전의 편력 기사들에 대한 이야기와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무릇 편력 기사라면, 사랑의 충성(어감이 조금 이상하지만)을 맹세한 자신의 여인에 대한 지고지순함을 발판삼아, 세상과 자신에게 닥치는 거친 세파를 이겨내야하는데, 돈키호테는 그딴건 없습니다. 덤벼드는데 풍차고, 겁먹는데 물레방아고, 정의의 칼이랍시고 휘두르는데 은혜 모르는 강도들이고 그렇습니다. 블랙코미디나 다름없는 상황.


그래서 [돈키호테]에는 그런 이야기들이 계속 나옵니다. 미친 돈키호테.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편력 기사의 삶을 흉내내려는 돈키호테. 현실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돈키호테와 그의 시종 산초 판사. 돈키호테만 빼고는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기사도는 소설일 뿐이고, 지고지순함은 소설 속의 미덕일 뿐인, 현실은 그와는 전혀 다른 세계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비웃습니다. 돈키호테를 통해 거짓 이야기들을 비웃습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들.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사람살이와는 관계없는 별종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비웃고 있습니다. 수백만의 적들을 무찌르고 거대한 거인들을 단칼에 베어버리는 그런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에 가려진 사람들의 허위와 위선은 어찌할 것이냐는 말입니다. 


그래서 [돈키호테]에 나오는, 돈키호테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세속적'입니다. 비도덕적이기도 하고 몰상식적이기도 하며, 비굴하기도, 무례하기도 한 사람들입니다. 돈키호테의 편력 기사들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진짜 사람사는 곳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사는 곳을 바라보지 못하는 돈키호테를 통해서 날것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 이야기는 신화와 이상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냉소어린 삶에 던지는 작은 파열음 같은 것이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돈키호테를 만난 모든 이들이, 돈키호테의 장래를 궁금해하는 것은, 신화와 이상의 지고지순함 속에서 살아가는 돈키호테의 삶에 대한 동경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차갑고 냉정한 사람 삶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습니다. 신화와 현실은 레테의 강 만큼의 간극을 가지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삶은, 돈키호테 같은 삶이라는 이야기를 작가는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미련하고 멍청해보이지만, 미친 것 같은 삶이지만, 사람과 삶에 대한 지고지순함을 잃지 않는 태도는, 인간이 잃지 말아야 할 지향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책은 꽤나 재미나게 읽힙니다. 팔백여 쪽에 이르는 분량이 만만치 않지만,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는 탓에 쉽지 않을 듯 보였던 독서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그래도... 한 스무 날 정도 걸려서 읽긴 했습니다. 이야기가 옛것이라 그런지, 빡빡하게 읽히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언어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번역으로 되살리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번역의 미숙이 아니라, '진달래꽃' 같은 시를 영어로 번역할 때, 율격이나 단어가 가진 힘까지 번역하지 못하는 그런 아쉬움이라고나 할까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배웠던 기억이 나는데... 작품이 언어를 통해 보여주는 매력까지 번역해내기에는... 아무래도 어려움이 있겠지요. 소설 속에 나오는 여러 사랑의 소네트들을 읽으면서 드는 약간의 아쉬움은 번역본을 읽을 수 밖에 없는 독자의 처지에서는 감내해야 할 부분이겠지요. 


결국, [돈키호테]의 의미는, 현실과 별도로 존재했던 이야기를 현실 속으로 끌어온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가 현실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현실과 이야기사이에 어떻게 다리를 놓아 통하게 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화가, 기독교와 기독교적 사유의 영향으로 인간으로부터 별개의 것으로 되었다면, 그 신화를 다시 인간의 곁에 돌려준 것이 이 작품의 의미가 아닌가,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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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 사진과 기록으로 읽는 한글의 역사 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 4
김주원 지음 / 민음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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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난 5월에, 민음사 패밀리 세일 당시에 구매했더랬습니다. 구매한 이유는... 6학년 국어 교과서에 훈민정음과 관련한 글들이 자주 나오기 때문입니다. 


찌아찌아족과 관련한 글도 있고, 유네스코가 지정한 '훈민정음언해상'에 대한 설명과 그 상의 제정 까닭을 담은 글도 있습니다. 뉴스 방식으로 외국어 남용 사례를 소개하며 우리말을 바르게 사용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에서 한글에 대한 정체성을 강조하는 글은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한 편으로, 우리가 당연하게 사용하는 언어인 한글 - 이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부연하기로 하죠 - 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부분은 분명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습득하여 사용하는 한글은, 그렇기 때문에 그에 대한 지적 호기심의 발생이라든지, 그에 대한 의문점 등을 가지기 어려운 측면도 있습니다. 이미 잘 쓰고 있는데, 굳이 더 알아야 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렇다보니, 우리는 한글에 대한 별다른 지식에 대한 필요성이나 호기심 없이 그냥 사용하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는 다양한 글을 통해 그러한 상황을 바꾸어보려고 하는 것이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는 조금 더 넓고 깊게 안 연후에 아이들을 가르쳐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그래서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책은 서울대 교수인 김주원 교수의 '서울대 인문강의'를 책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강의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들 정도로 자세하고 전문적인 내용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제가 중요하게, 인상적으로 받아들였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훈민정음'이라는 말의 뜻은 '백성을 깨우치는 바른 소리'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훈민정음은 소리는 아닙니다. 말은 아니죠. 글입니다. 그러나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이전에도 우리말은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말을 표기할 수 없는 글이 없었던게지요. 그래서 신라 시대, 설총이라는 학자는 이두문을 고안했습니다. 우리말의 발음과 같은 발음이 나는 한자를 씀으로써 우리말을 표기한 것이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자주 드는 예가 하나 있습니다. 

 I love you. 를 우리는 아이 러브 유라고 말하고 I love you. 라고 쓴다. 이 때 아이 러브 유, 라고 말하는 것은 말이고, 이것을 I love you. 라고 쓰는 것은 글이다. 전 세계적으로 말은 3천여 종류가 있지만, 그 말을 표기할 수 있는 글을 가진 것은 50여 종류 밖에 없다. 만약에 훈민정음이 창제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마 '나는 너를 사랑해'를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고 nanun nourul saranghea. 라고 썼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말은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의 말을 표기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던 것이죠. 훈민정음은 표기수단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말은 이 전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어'와 '한글'을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많은 경우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할 때 한글을 통해서 배운다. (15쪽) 

우리는 한국어를 먼저 배웁니다. 그 수단이 되는 것이 한글인 것이죠.


이 책에서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인도네시아의 찌아찌아족에 대한 것도 위와 같습니다. 찌아찌아족은 자신들의 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표기할 글이 없으니, 한글을 이용해서 표기하기로 했다는 것이죠. 물론, 찌아찌아족의 한글 사용에 대해서는 과장되거나 왜곡된 내용의 보도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일단 찌아찌아족의 한글 사용은, 글로써의 한글 사용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첨언하자면, 따라서 '훈민정음'이라는 명칭 자체도 글로써의 한글을 의미하는 바른 명칭은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훈민정음은 소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런 부분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2. 

저자는 '한어 학습의 백태'라는 소제목으로, 당시 외교에 사용되었던 한어, 즉 명나라에서 사용하던 언어를 당시에 어떻게 익혔는지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영어라는 언어를 위해서 온 나라가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서 몰입하고 있지만, 조선 초기에는 명나라의 한어는 역관이라고 하는 특수한 계층에서 담당하였습니다. 모두가 그 말을 알 필요는 없었던 것이지요. 국가의 외교를 위해서 한어를 꾸준하게 학습하였던 역관들의 학습 방법, 저자는 그것을 요약하여 주고 있습니다. 


1) 외교문서 작성이 가능한 자이면 외국인도, 포로도 중용

2) 외교문서 전문가는 부친상도 제대로 못 마친다

3) 이문(한어) 전문가는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4) 외국어 학습을 위해서는 우리말을 하면 안 된다

5) 외국어 학습은 기숙 학원 식으로

6) 외국어는 외국에서 배워야

7) 북경에는 못 보내니 요동에라도 보내야

8) 한어 학습을 평가하여 상벌을 줌

9) 외국어 공부는 젊을 때 해야

10) 언어만 배울 것이 아니라 교양도 쌓아야


이와 같은 내용 중에, 우리에게 의미있는 부분은 4), 5), 6) 정도가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이 명심해야 할 부분인 것이죠. 영어 몰입 교육이 맞느냐. 그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영어 교육이 부질없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필리핀이나 인도 같이 제 1언어로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가 아닙니다. 영어의 숙달을  위해서는 영어만을 사용할 수 있는 바탕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살면서 한국어를 사용하면서 한글을 쓰는 우리나라 사람이, 도대체 영어를 그렇게 과도하게 공부할 필요는 있으며, 그렇게 한다고 해서 영어의 숙달이 가능하느냐는 말이죠. 영어를 쓰고 싶으면,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로 가야합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영어를 사용하면서 계속 살아야죠.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사용할 필요는 극소수입니다. 그 사람들만 숙달해도 될텐데, 우리나라는 모든 사람이 영어를 숙달하기 위해서 영어에 과도한 투자를 아끼지 않으나, 문제는 영어에 숙달된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일 것입니다. 


10)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뉘앙스, 라는 말이 있지요. 언어 자체의 것이 아니라, 언어를 둘러싼 환경이나 배경에 대한 것입니다. 결국, 영어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바는, 모두가 영어에 과도하게 몰입하고 있는 상황을 벗어나서, 영어를 제 1언어로 사용하지 않는 나라답게, 평상시에 영어를 쓸 일이 거의 없는 상황에 맞추어, 어느 정도의 영어 교육 정도라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지금처럼 아이들을 서너시간씩 붙들어두고 수십개의 영어 단어를 외우게 시키고, 실제 언어 생활에서 사용하지도 않는 문법 측면을 가르치느라 아이들을 소모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의 가벼운 회화, 그리고 영어로 된 책들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환경의 조성 등, 영어의 사용을 실제적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에 대한 측면은 다시 이야기 할 기회가 있겠지요. 


3. 

이 책은 훈민정음과 관련된 다양한 배경 지식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편집 방법으로 시작하여 간송본과 상주본의 차이 및 의미까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상주본에 대해서 그렇게 크게 호의적이지는 않습니다. 일단 해례본의 앞 여덟 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낙장도 많은 상태라 완성된 문서로써의 의미는 간송본보다 덜하지 않느냐는 의견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간송본은, 발견 후에 책을 손질하는 과정에서 원본에 대한 손상 - 책의 여백 부분을 잘라내는 - 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원본의 여백에 다른 책을 필사하기도 한 까닭에 책의 상태가 깔끔하지는 않지만, 책의 빠진 부분은 앞의 두 장 뿐이라, 훈민정음 창제 의도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보는 듯 합니다. 


빠진 책 앞 두 장을, 조선왕조실록을 참고하여 보사 - 메꾸어 넣는 - 과정을 거쳐 조악하게나마 원형을 가진 것이 간송본이라는 설명도 빼놓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상주본이 지금 이권 다툼에 휘말려서 그 위치를 제대로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그 아쉬움이 크지만, 저자는 간송본에 큰 의미가 있음을 은연중에 강조하고 있습니다. 


4. 

책에서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훈민정음 해례본에 기록된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와 그 운용 원리 부분은 두고두고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부분입니다. 


5. 

훈민정음은 세종대왕 단독의 작업일 것이라는 추측을 저자는 확인하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의 공동작업, 또는 집현전 학사들의 작업을 세종대왕이 독려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된 세간의 인식이었지만, 저자의 주장 및 여러 주장들을 통하여, 현재는 세종대왕이 단독으로 구상하여 훈민정음을 창제한 후, 집현전 학사들이 그 사용을 테스트하였을 - 용비어천가, 삼강행실도 등의 편찬 - 것이라는 의견이 주류로 떠오르고 있는 듯 합니다. 


아무래도 우리에게는, '숟가락 하나 얹는' 지도자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너무 크게 자리잡고 있는가봅니다. 세종대왕은 중국의 다양한 언어학, 철학 책을 통하여 세계의 이치와 언어 사용의 원리를 훈민정음 속에 담았다고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 나오는 훈민정음 창제와 관련된 부분을 분석하여, 저자는 훈민정음을 세종대왕의 주도도 아니고, 단독으로 구상하여 창제하였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세종대왕이 세째 아들이면서도 왕위에 오른 상황, 그 아버지인 태종이 거쳤던 왕권 투쟁 상황을 언급하면서, 대군의 세째 아들로 그냥 공부나 하면서 지냈을 수도 있는 왕족 한 사람이, 왕이 됨으로써 훈민정음이라는 글자 체계를 만든 것에 대한 안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역사는 위대한 한 사람에 의한 것은 아니지만, 위대한 한 사람이 현재의 삶에 기여하는 부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책은 저자의 표현대로,


훈민정음이 탄생하던 시대의 전후 사정을 독자들과 공유 

하면서


(1) 시대의 요구에 의하여, (2) 하늘이 내린 성인이자, 밤낮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세종 임금이, (3) 때마침 이루어진 송의 성리학을 받아들여 (4) 당대의 언어를 철저히 분석한 것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글자를 창제하고 (5)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6) 훈민정음을 반포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나누어 (268쪽)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늘상 사용하는 한국어, 그리고 한글에 대한 지식을 넓히면서, 우리의 언어 생활에 대한 자긍심과 우리의 언어를 조금 더 유의미하게 사용하려는 마음가짐을 위해서라도, 이 책은 한 번쯤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조금 난해한 부분은 적당히 넘어가면서 말이죠. (하하)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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