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의 미래 - 디지털 시대, 지적재산권의 운명
로런스 레식 지음, 이원기 옮김, 윤종수 감수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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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예시는 디즈니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디즈니 사는 신데렐라, 백설공주 같은 애니메이션을 통하여 큰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권리 없는 그 이야기들을 가지고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서는, 그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권리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입니다. 현대 사회가 이루어낸 혁신의 바탕에는, 마치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해아래 새 것은 없나니', 이전부터 존재하던 무언가가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가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바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루어낸 혁신에 대하여 저작권이라는 재갈을 물림으로써, 더 나은 혁신으로 나아갈 돌파구를, 우리는 막아버리고 있다는 것이 저자가 말하려는 요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줄곧 이야기합니다. 저작권이라는 법적 권리를 없애자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다만 혁신을 막아버릴 정도로 과다한 통제에 대하여 고민해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즉, 이것은 진보 대 보수의 논쟁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아니, 차라리 모든 규제에 대하여 자유로움을 주장하는 보수적인 사람이라면 저작권이라는 굴레가 가지고 올 자유에 대한 제약을 강력하게 반대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가 결국은 조금 먼저 혁신에 도달한 댓가로 상업적인 권리를 모두 취하겠다는 이들에 대한 반대라고 보아도 무방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자는 자신의 논지를 강화하기 위해서 이해하기 쉬운 여러가지 예를 들고 있습니다. 우분투나 아파치 서버 같은 예시가 그것입니다. 처음부터 오픈소스로 개방된 소프트웨어가, 댓가 없이 소프트웨어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노력해 온 사람들에 의해서 얼마나 쓸모있는 것이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 말입니다. 댓가 없는 혁신은 창의성을 죽일 것이다, 라는 외침이 실은 아주 설득력있는 주장은 아니라는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마치 도심 속 녹지 공원 옆에 자리잡은 주택이 더 높은 댓가를 얻는 것과 다를바 없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기도 합니다. 인류의 많은 혁신이 바로 이런 도심 속 녹지 공원과 같은 '공유재'에 기반하여 그 나래를 활짝 펼칠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 현재 저작권법의 효력 기간을 지속적으로 연장해가면서 저작물을 보호하는 추세는 공유재의 기반을 줄이는 것이고 따라서 혁신의 기반을 축소시키는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저자는 결코 저작권법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쓴 이 [아이디어의 미래]가 통째로 복사되어 여기저기 공유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의 저작물에 대한 보호는, 저작물이 일정 기간 이후에 공공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유재로써 인류에게 제공되어야 인류가 그에 기반하여 새로운 혁신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저작물에 대한 강력한 보호가, 인터넷이라는 도구가 인류가 사용함으로써 이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더 강력하고 더 효율적인 혁신과 함께 성장하였음을 저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이러한 혁신도 없었겠고, 이러한 보호도 없었을 것이다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저자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어마어마한 정보가 오고가는 사회 속에서, 냅스터 같은 도구가 어떻게 혁신을 이루어냈고, 이러한 혁신이 어떻게 철퇴를 맞았는지를 보여주면서, 과연 이러한 보호가 인간의 삶의 편리함을 높여주는 기제가 되는지에 대한 의문도 피력하고 있습니다. 


결국,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조치는 인터넷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력에 비례하여 더욱더 강력해지고 세밀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 조치는 얼마나 효과적으로 저작물을 보호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저자는 지속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논지는 언제 어디서나 혁신과 창의성에는 자유 자원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이다. 자유 자원이 없으면 창의성은 죽고 만다. 따라서 특히 지금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핵심 질문이 '자원을 통제하는 주체가 정부냐, 시장이냐?'가 아니라 '자원이 과연 통제가 돼야 하느냐?'는 것이 돼야 마땅하다. (51쪽)


책을 읽게 된 계기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저작권 강좌를 준비하던 중에, 저작권(지적재산권)에 대하여 한 번 쯤 생각해 볼 계기를 가지기 위해서였습니다. 학교에서는 매년 저작권 관련 수업을 몇 시간 이상씩 의무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2014학년까지는 한국저작권협회에서 나오는 강사들에게 저작권 관련 수업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이 수업이라는 것이, 저작권법 위반 사례 모음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남의 저작물을 댓가없이 함부로 사용하면 도둑질, 이 저작권 관련 수업의 전부라면, 어쨌든 이건 의미있는 교수-학습이라고 보기에는 무방하니까요. 그래서 조금 다른 수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기왕에 법학을 전공한 터에 전문성(이라는 것이 있다면)을 살려서 아이들에게 유의미한 수업을 제공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제가 만든 수업용 자료도 저작권법 위반 사례 이상을 넘어서진 못하였지만, 이 책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그래도 마지막 부분에 생각할 거리를 하나 정도는 던질 수 있는 계기를 얻었습니다. 


과연 저작권법이 인류를 혁신에 도달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저작물을 석유나 기타 유형의 자원과 다르지 않은 하나의 자원으로 여긴다면, 이러한 비경쟁성 자원인 무형의 저작물에 대하여 혁신을 꿈꾸는 사람들이 조금 더 나은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혁신을 실현할 수 있도록, 과거의 혁신이 조금 덜 제한됨으로써 자유롭게 이용될 수 있는 자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입니다. 어쨌든, 아인슈타인은 'E=mc2'에 대해서 저작권을 행사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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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에 돌직구를 던져라
정성식 지음 / 에듀니티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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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이라고 하면 학교 현장에서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혼용하여 쓰는 듯 합니다. 첫째로는 교수-학습되어야할 내용을 일컫습니다. 흔히 (핵심) 성취기준이라고 하는, 각 학년군에서 학생들에게 교수되고 학생들이 학습하는 내용을 성취라는 틀로 제공하는 것을 교육과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교육과정이 개정된다'고 하면 이러한 교수-학습의 내용이 새롭게 변화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로는 교수-학습되는 일련의 상황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1년간 국어를 몇 시간, 수학을 몇 시간 가르치며,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는 어떤 활동이 이루어지며, 주제체험학습은 언제 가고, 학사 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모두 묶어서 '교육과정'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두 번째 의미의 '교육과정'에 대한 문제의식을 독자들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보통의 독자들은 아마 쉽게 공감하시기 어렵겠고, 교사라면 아마 굉장히 쉽게 공감하리라 생각하는 내용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결국 이 책은, 요즘 교육현장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주제별 교육과정 재구성', 더 나아가서 '프로젝트 학습'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학교 교육과정-학년 교육과정-학급 교육과정을 짠다고 하면, (말 그대로) 틀에 박힌 내용을 답습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만해도 매년 대동소이한 학교 교육과정 아래에서, 별반 다를 것 없는 학년 교육과정을 엮어, 작년 자료에서 적당히 고치고 자른 학급 교육과정을 만든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문제의식에 상당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저자도 지적하고 있다시피 이지에듀와 아이스크림에 의존하는 타성에 젖은 교수-학습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듯 싶습니다. 이지에듀라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1년의 시간표를 짜면 지도서를 바탕으로 한 학습목표가 자동으로 1년의 수업을 배치해주고, 실제 수업은 아이스크림을 통해서 (흔히 클릭 수업이라고 말하는) 일방향적인 보여주기 식의 수업을 하고 있는 것이 아직도 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수-학습의 모양이자, 교육과정 수립의 단면이니까요.


이런 방식의 교수-학습이라면, 과연 교사는 만족할 수 있으며, 학생은 만족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가능하고, 실제로 아마 학생들은 만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교실에는 다양한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하루 반나절 가까운 시간을 함께 생활하고 있는데, 특색없이 짜여진 지도서에 의존한 일방향적인 보여주기 수업이 그 학생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점차로 많아지는 교사 재량의 교수-학습 시간 - 창의적 체험활동 - 을 인디스쿨 등에서 그 때 그 때 고민없이 눈에 띄는 활동거리로 때우기 식의 수업을 하는 것에 얼마나 큰 만족감을 얻겠습니까.


그래서 교육과정에 대한 고민은 매일 대여섯 시간씩 이루어지는 교수-학습에 대한 고민이며, 학생들의 행복과 만족에 대한 고민이며, 또한 교사의 수업 전문성에 대한 고민이며, 학생들의 성취에 대한 고민이나 다름 없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이 책을 찾을 교사들이라면 분명히 교육과정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하고 있을텐데, 읽을만한 문제제기를 하고는, 그에 대한 대답이 주관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저자가 저자의 학교에서 해낸 교육과정의 재구성이 책의 후반부에 담겨져 있는데, 이런 부류의 책을 많이 읽은 바로는, 그러한 재구성은 결코 교사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교수-학습에 참여하는 교사와 학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교육과정 재구성은, 재구성을 수립하는 교사의 교육철학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교육관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문제점이 있는데, 이렇게 하니까 되더라. 그러니까 이렇게 해봐'는 곤란합니다. 문제점은 같아도, 교육현장에서의 처방은 말 그대로 백인백색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학교가 도시냐 촌락이냐에 따라 다르고, 관리자와 동료 교사가 어떤 사람들이냐에 따라 다르며, 학생들의 생활 수준 및 삶의 배경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체험 중심, 활동 중심의 교육과정 재구성을 해답으로 내어놓는 것이 아니라, (핵심) 성취기준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최대한 범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재구성 자료를 제시하는 것이 해답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2부를 빼고, 1부의 문제제기를 더 심도있게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결국, 이 책을 찾고 읽을 많은 교사들이, 천편일률적이며 고민없는 교육과정에 대한 문제의식을 확장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책이 집필되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한 편으로는, 이번 방학 동안에 차기년도의 교육과정을 '제대로' 짜보려는 저와는 생각이 조금 다른 부분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분량만 많이 차지하는 교육과정이라도, 한 번쯤은 교사의 손으로 제대로 짜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2015학년도를 마치면서 해보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쓸데없는 것이라고 생각되더라도, 한 번쯤은 지도서에 담겨있는 교수-학습 모형도 고민해보고, 교육과정 재구성을 (분량이 늘어날지라도) 짜임새 갖추어 계획하여 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계획으로 한 해를 보내보니, 그래도 계획이 있었으면, 반성도 일목요연했겠다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여러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던지고 있는 문제에는 한 번쯤 눈을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1년을 준비없이 시작하는 교사(가 이 책을 읽을지는 모르겠지만)에게 던지는 의미있는 메시지이며, 변화와 도전을 꿈꾸지만 그에 대한 적절한 단어와 개념을 알지 못하는 교사에게 사용할만한 무기가 되어 줄 것입니다. 


지난 1년을 학급 교육과정없이 - 제가 다니는 학교는 학급 교육과정을 관리자들이 검사(!)하지 않았습니다. 내라는 말은 있었는데... 냈는지 확인도 안하길래 그만... (쿨럭) - 보낸 제게도 유의미한 지침서가 되어줄 듯 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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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순례 유홍준의 미를 보는 눈 1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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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산지는 꽤 되었는데, 이제서야 읽게 되었습니다. 연말에, 가볍게 읽을만한 책을 찾았고, 이 책이 답이 되어 주었습니다.


제목은 [국보순례]이지만, 여기에서의 '국보'라는 말은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문화재위원회에서 지정한 문화재의 의미가 아니라, 저자가 생각하는 우리나라의 뛰어나고 기억할만한 국가적 보물로써의 '국보'입니다. 따라서 이 책은 '국보', '보물', '사적' 등에 초점을 맞추었다기보다는, 작가의 견문에 따라 작가에게 의미있는 보물들을 모아서 쓴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자인 유홍준 교수의 안목을 믿는다면 한 번 쯤 읽어볼만한 책이 될터이고, 저는 유홍준 교수의 안목에 항상 경탄을 금치 못하는 편이라, 가볍게 읽는 독서 중에서도 인상적인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림/글씨', '공예/도자', '조각/건축', '해외 한국 문화재'가 바로 그것인데요. 아무래도 '국보'나 '보물' 등 문화재로 지정되어 네임밸류를 가지고 있는 작품 중심이라기보다는, 저자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른 다양한 작품들이 소개되다보니,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오는 부분이 꽤나 많았습니다. 


신라의 주요한 릉/총에 대한 소개라든지, 보길도 부용동에 대한 소개, 안동 묵계서원이라든지 굴산사터 당간지주 같은 곳은 신선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유홍준 교수의 안목이 빛난다고 할까요. 저자의 유명한 책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도 그런 곳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지요. 정선 아우라지 같은 곳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도 그런 소개가 틈틈히 등장하여 독자의 역마살을 자극하네요.


그 중 주요한 부분은 '해외 한국 문화재'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국보'나 '보물' 등에 초점을 맞추는 책의 경우, 아무래도 해외 문화재에 대해서는 소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책은 그런 해외 소장 한국 문화재에도 관심을 가지고 소개하고 있으며, (저자 특유의 서술 방법인) 유물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슬쩍 담아둠으로써 조금 더 넓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아쉬움이 있다면, 신문 지상에 연재하던 글이라, 사진 한 면에 글 한 면으로 총 두 면의 지면을 하나의 문화재에 할애하고 있다는 측면입니다. 조금 더 길었으면 좋았겠다 싶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아쉬움은 없습니다. 짧은 글은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으니까요.


함께 실린 사진들이 시원시원하고 볼만합니다.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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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리스 랩소디 세트 - 전5권 (양장) 폴라리스 랩소디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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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순위권! 앤드...

다이어리를 따로도 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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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63 - 1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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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글의 스포일러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포함될 수도 있습니다.>









시간 여행을 다룬 이야기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이 나는 것은 [백투더퓨처] 시리즈입니다. 얼마 전에 디지털 버전으로 다시 개봉되어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기도 할만큼 어마어마한 시리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앎이 짧아, 언제부터인지 알 수는 없지만, 시간 여행을 다룬 이야기에서는 항상 패러독스가 발생하는 듯 합니다. 돌아간 과거가 바뀌면서 현재에 영향을 미치며, 그 영향은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에게까지 이르릅니다. [백투더퓨처]가 그러잖습니까. 사랑의 대상이 바뀌는 순간, 당연히 과거에 터한 현재는 바뀌게 되고, 현재에 발딛고 살아가는 등장인물도, 비록 몸은 과거에 있지만 현재의 영향을 고스란히 받게 되는 셈이지요. 언뜻 이치에 맞는 이야기이지 싶습니다. 


그런데, 이 책 [11/22/63]에서의 시간 여행은 조금 다릅니다. 과거와 현재의 연결은 일회적입니다. 주인공의 단골 가게 사장인 앨 템플턴은 이렇게 말합니다. 과거로 돌아가 영향을 끼친 후 돌아오면, 현재는 그 영향을 받아 변화를 일으키더라. 그런데 다시 과거로 돌아가 이전에 끼친 영향을 끼치지 않고 돌아오면, 현재가 받았던 영향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더라.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앨 템플턴은, 실수로 사냥꾼의 총에 맞아 평생 휠체어 신세가 된 한 여자 어린이가 총에 맞지 않도록 한 후에 다시 현재로 돌아옵니다. 돌아온 현재에서 여자 어린이의 미래도 바뀐 것을 확인했는데... 다시 과거로 갔다가 여자 어린이 사건에 개입하지 않은 채 돌아오니, 사건은 원래 예정되어 있던대로 흘러가게 되고, 비로소, 바꾸고 싶은 사건이 있다면 과거로 갈 때마다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가 더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일회적인 듯 싶지만, 과거가 바뀔 때마다 그 과거에 연결된 현재는 하나씩 하나씩 더 늘어납니다. 과거에 연결된 현재와의 끈이 하나 두 개라면 조금 밋밋합니다. 끈이 여섯 개라면 마치 기타같은 화음을 만들 수 있겠지요. 끈이 열 두 개라면 가야금 같은 선율을 만들 수 있을까요? 그런데 끈이 백 개, 천 개가 된다면 그들이 이루는 화음은 더 이상 화음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존 F. 케네디의 암살을 막아버려 과거를 지금과 다르게 바꾸어버리는 것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어마어마하게 두껍고 튼튼하며 큰 영향력을 끼치는 줄을 하나 만들어버리는 셈입니다. 제이크 에핑은 그 일을 이룹니다. 그래서 세계는 화음대신 불협화음에 시달리게되고, 그 때문에 에핑은 자신의 사랑을 포기합니다. 세계가 더 큰 불협화음 때문에 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죠. 사랑 뿐만 아니라, 해리 더닝이 잘 자라 베트남 전에서 전사하는 일도, 캐롤린 풀린이 휠체어에서 내려 서는 일도, 모두 포기합니다. 이 책은 시간 여행에 대한 책이 아닙니다. 조금은 차가운, 조금은 사랑과 열정에 조심스러운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입니다. 다만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인물을 끌어옵니다. 존 F. 케네디.


따라서 이 책을 읽고 나면 존 F. 케네디에 대해서도, 시간 여행에 대해서도 아무 생각도 안하게 됩니다. 다만, 너무나 사랑했던 자신의 연인을 잃는 한 남자가, 마치 영화 [사랑의 블랙홀]처럼 - 물론 [사랑의 블랙홀]은 주인공의 선택과 무관하게 항상 2월 2일 아침 여섯 시로 돌아오지만 - 언제라도 인생을 리셋하여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기에 자신의 사랑을 다시 시작하기를 선택하는 대신, 세계의 불협화음을 조금이라도 덜 하기 위해 자신의 사랑을 놓아버리는 그 선택에 조금은 달뜬 기분을 느끼면서 책을 덮게 되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기적같은 사랑으로 온 몸과 마음 속이 천천히 균열을 일으킨다기 보다는, 이야기의 어마어마한 스케일 속에서 이루어지는 두 남녀의 사랑을 한껏 즐기다가, 불현듯 이야기가 끝났음을 느낄 때의 한껏 상기된 기분을 느낀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요는, 여운이 길지도, 깊지도 않은 사랑 이야기라는 것이겠지요. 킬링 타임 영화를 한 편 본 듯한 느낌입니다. 시간 여행의 외피가 조금 덜 아귀가 맞는다는 느낌. 존 F. 케네디라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인물 이야기로 겉을 잔뜩 꾸민 탓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는 것. 괜찮은 남자와 괜찮은 여자가 괜찮은 사랑을 하는 모습을 어마어마한 이야기와는 조금 결이 다르게 그렸다는 것. 한 마디로 몰입감 있게 빠져들 수 있는 킬링 타임 소설 정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책의 가장 아쉬운 점은... 두 번의 독서가 필요 없다는 것이겠지요. 여운을 느낄 겨를이 없었으니, 여운을 다시 느끼기 위해 책장을 열 일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일껏 읽기 위해 구매한 책을 어찌해야하나 고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해리 더닝의 과거가 바뀐 후에 그의 미래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엿보는 부분과, 존 F. 케네디가 죽지 않은 후에 미국의 미래가 어떻게 바뀔지 작가가 예측하여 이야기에 담은 부분 정도. 항상 개연성 있는 상상력이 주는 짜릿함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는 듯 싶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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