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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에 돌직구를 던져라
정성식 지음 / 에듀니티 / 2014년 11월
평점 :
교육과정이라고 하면 학교 현장에서는 크게 두 가지 의미를 혼용하여 쓰는 듯 합니다. 첫째로는 교수-학습되어야할 내용을 일컫습니다. 흔히 (핵심) 성취기준이라고 하는, 각 학년군에서 학생들에게 교수되고 학생들이 학습하는 내용을 성취라는 틀로 제공하는 것을 교육과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교육과정이 개정된다'고 하면 이러한 교수-학습의 내용이 새롭게 변화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로는 교수-학습되는 일련의 상황을 말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1년간 국어를 몇 시간, 수학을 몇 시간 가르치며,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는 어떤 활동이 이루어지며, 주제체험학습은 언제 가고, 학사 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모두 묶어서 '교육과정'이라고 합니다.
이 책은 두 번째 의미의 '교육과정'에 대한 문제의식을 독자들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보통의 독자들은 아마 쉽게 공감하시기 어렵겠고, 교사라면 아마 굉장히 쉽게 공감하리라 생각하는 내용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결국 이 책은, 요즘 교육현장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주제별 교육과정 재구성', 더 나아가서 '프로젝트 학습'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학교 교육과정-학년 교육과정-학급 교육과정을 짠다고 하면, (말 그대로) 틀에 박힌 내용을 답습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경우가 많았습니다. 저만해도 매년 대동소이한 학교 교육과정 아래에서, 별반 다를 것 없는 학년 교육과정을 엮어, 작년 자료에서 적당히 고치고 자른 학급 교육과정을 만든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 책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문제의식에 상당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저자도 지적하고 있다시피 이지에듀와 아이스크림에 의존하는 타성에 젖은 교수-학습이 주를 이루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듯 싶습니다. 이지에듀라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1년의 시간표를 짜면 지도서를 바탕으로 한 학습목표가 자동으로 1년의 수업을 배치해주고, 실제 수업은 아이스크림을 통해서 (흔히 클릭 수업이라고 말하는) 일방향적인 보여주기 식의 수업을 하고 있는 것이 아직도 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수-학습의 모양이자, 교육과정 수립의 단면이니까요.
이런 방식의 교수-학습이라면, 과연 교사는 만족할 수 있으며, 학생은 만족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가능하고, 실제로 아마 학생들은 만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교실에는 다양한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하루 반나절 가까운 시간을 함께 생활하고 있는데, 특색없이 짜여진 지도서에 의존한 일방향적인 보여주기 수업이 그 학생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으며, 점차로 많아지는 교사 재량의 교수-학습 시간 - 창의적 체험활동 - 을 인디스쿨 등에서 그 때 그 때 고민없이 눈에 띄는 활동거리로 때우기 식의 수업을 하는 것에 얼마나 큰 만족감을 얻겠습니까.
그래서 교육과정에 대한 고민은 매일 대여섯 시간씩 이루어지는 교수-학습에 대한 고민이며, 학생들의 행복과 만족에 대한 고민이며, 또한 교사의 수업 전문성에 대한 고민이며, 학생들의 성취에 대한 고민이나 다름 없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이 책을 찾을 교사들이라면 분명히 교육과정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하고 있을텐데, 읽을만한 문제제기를 하고는, 그에 대한 대답이 주관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저자가 저자의 학교에서 해낸 교육과정의 재구성이 책의 후반부에 담겨져 있는데, 이런 부류의 책을 많이 읽은 바로는, 그러한 재구성은 결코 교사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교수-학습에 참여하는 교사와 학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교육과정 재구성은, 재구성을 수립하는 교사의 교육철학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교육관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각양각색의 모양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문제점이 있는데, 이렇게 하니까 되더라. 그러니까 이렇게 해봐'는 곤란합니다. 문제점은 같아도, 교육현장에서의 처방은 말 그대로 백인백색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학교가 도시냐 촌락이냐에 따라 다르고, 관리자와 동료 교사가 어떤 사람들이냐에 따라 다르며, 학생들의 생활 수준 및 삶의 배경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체험 중심, 활동 중심의 교육과정 재구성을 해답으로 내어놓는 것이 아니라, (핵심) 성취기준을 면밀하게 분석하여 최대한 범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재구성 자료를 제시하는 것이 해답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2부를 빼고, 1부의 문제제기를 더 심도있게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결국, 이 책을 찾고 읽을 많은 교사들이, 천편일률적이며 고민없는 교육과정에 대한 문제의식을 확장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책이 집필되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한 편으로는, 이번 방학 동안에 차기년도의 교육과정을 '제대로' 짜보려는 저와는 생각이 조금 다른 부분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분량만 많이 차지하는 교육과정이라도, 한 번쯤은 교사의 손으로 제대로 짜보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2015학년도를 마치면서 해보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쓸데없는 것이라고 생각되더라도, 한 번쯤은 지도서에 담겨있는 교수-학습 모형도 고민해보고, 교육과정 재구성을 (분량이 늘어날지라도) 짜임새 갖추어 계획하여 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계획으로 한 해를 보내보니, 그래도 계획이 있었으면, 반성도 일목요연했겠다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여러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던지고 있는 문제에는 한 번쯤 눈을 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1년을 준비없이 시작하는 교사(가 이 책을 읽을지는 모르겠지만)에게 던지는 의미있는 메시지이며, 변화와 도전을 꿈꾸지만 그에 대한 적절한 단어와 개념을 알지 못하는 교사에게 사용할만한 무기가 되어 줄 것입니다.
지난 1년을 학급 교육과정없이 - 제가 다니는 학교는 학급 교육과정을 관리자들이 검사(!)하지 않았습니다. 내라는 말은 있었는데... 냈는지 확인도 안하길래 그만... (쿨럭) - 보낸 제게도 유의미한 지침서가 되어줄 듯 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