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떡살 무늬
김규석 지음 / 미술문화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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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미술품', 우리의 아름다운 떡살무늬를 이야기한 책! 
 
  친분이 있는 일본신문사의 한국특파원은 일본으로 돌아갈 때 마다 종로에 들러 '떡'을 사간다고 한다. '너희들도 모찌餠 라는 찹쌀떡이 있잖냐?'고 물었더니 대답없이 그냥 웃기만 했다. 그 웃음이 마치 나를 '바보'로 보는 듯 해 기분이 꽤 상했었다. 몇 개월 후 다시 만난 자리에서 그 친구는 내게 한국에서 떡을 사는 이유를 말해 줬다. "한국에는 떡에 예술작품이 들어 있거든. 너무 아름다운...내가 선물한 일본의 어느 지인은 먹지않고 굳혀서 벽에다 걸어놓기도 했어."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나도 모르는 것을 외국인인 네가 아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재차 물어봤더니 "모르냐? 한국의 떡에는 조각이 가득하다."는 마치 선문답을 하듯 하는 거였다. 나중에야 알았다. 우리 떡에 새겨진 '떡살무늬'를 말한 것이었다. 그 후엔 나도 종로를 들르면 항상 새로운 무늬의 떡이 있던가, 색은 무엇이든가 살피곤 했다. 그전엔 인식하지 못하던 것을 알고 먹으니 맛도 느낌도 새로웠다. 그리고 우리 떡에 새겨진 무늬들은 무엇인가 알고 싶어졌다. 그러던 차에 반가운 책을 만났다. 광주시 무형문화재 남도의례음식장으로 지정되실 정도로 남도음식의 대가셨던 이연채 선생은 떡살과 다식판 제작에 한평생을 바쳐 오다 지난 1994년에 타계하셨는데, 그 분과 함께 떡살과 다식판을 연구,제작해 오고 있으며 전통음식에 대한 뜻도 이어가고 있는 제자 김규석 선생이 꾸민 책 [아름다운 떡살무늬]를 만난 것이다.
 
 


 




































  이 책은 떡살 제작 기능보유자 김규석이 근 20년을 전통떡살 제작에 쏟아부은 정성을 정리한 책으로 전통무늬를 새겨넣은 떡살을 각각의 특징을 중심으로 분류한 책이다. 떡살의 정의, 각 떡살 무늬의 의미와 쓰임새에 관한 이야기가 저자가 직접 깎고 다듬어 새겨넣은 떡살과 어우러져 떡살의 모든 것을 집대성한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규식선생께서 이렇게 책을 만들 정도로 우리의 꽃살 무늬에 온 힘을 다하신 이유문양(무늬)이 개인적으로는 각자의 삶을 통해 발현되는 창조적 산물이며, 언어나 문자와 마찬가지로 사용 주체인 민족과 그 민족이 처한 역사적 배경에 따라 고유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물의 재료 차이에 따른 점이나 선 등의 질감에서부터 공예·회화·건축 등의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에 이르기까지, 문양은 단순히 장식적인 기능에 국한되지 않고 인간 본연의 기원과 욕구를 다분히 종교적 성격을 띠면서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문양(무늬)는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에서 문양이란 일반적으로 물건의 겉 부분에 여러 가지 형상이 어우러져 이룬 모양을 뜻한다. 우리말로 '무늬'라 하며 한자로는 '문양(文樣)' 혹은 '문양(紋樣)'이라고 표현한다. '문(文)'은 글자(書契, 사물을 표시하는 부호), 꾸밈(飾), 아름다움(美), 빛남(華), 아롱짐(斑), 빛깔(文彩) 등을 뜻한다. 한편 '문(紋)'은 직물의 문채(織文) 즉 '비단무늬', '꽃무늬' 등을 의미한다. 문양(文樣)과 문양(紋樣)에는 각각 문화적인 소산과 문명적인 소산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그러므로 문양은 삶을 통한 문화 활동의 소산이자 창조적 문명의 산물이라 하겠다. 이와 같은 문양은 언어·문자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인류가 이루어 놓은 회화·조각·공예 등 모든 조형미술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문양(무늬)는 단지 아름다운 것 뿐 아니라, 그 이전에 우리의 역사와 정신과 혼이 담겨 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일본인 친구가 우리의 떡 무늬에 매료되고, 그것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그것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떡살 무늬에는 우리민족의 모든 마음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비례미가 물씬 느껴 지는 點과 線에서부터 원앙, 나비, 목단, 물고기, 잉어, 거북이, 연꽃, 국화, 매화, 포도열매 등등 그 무늬들은 곧 기도하는 마음, 간절한 소망이기도 한 것이다. 그 의미에 있어서는 모든 무늬마다 특별한 의미가 있고 또 사용하는 시기가 다르다. 즉, 백일이나 혼인 회갑때 사용하는 문양이 다르고 의미가 다른데, 예를 들어 백일에는 기쁨을 의미 하는 물고기나 파초를, 결혼에는 원앙이나 꽃위를 날아다니는 나비, 석류나 복을 가져다준다는 한쌍의 박쥐 등 아들 딸 많이 낳고 복받기를 기원하는 무늬를, 회갑 에는 壽福문자나 태극 팔괘무늬 그리고 장수를 의미하는 잉어나 거북이 등의 무늬를 새겨 넣었다. 그런가하면 스님들의 불공에는 연꽃무늬 완자형의 무늬를 넣었고, 일반 가정에서는 장수(長壽)나 다복(多福), 부(富貴) 등의 간절한 바람을 숨김없이 솔직하게 글자 무늬로 나열했던 것이다.
 
 






































 
  떡살은 절편의 표면에 무늬를 찍어내는 판이며 떡에 살(文樣)을 부여한다는 뜻으로 예부터 절편에 떡살로 무늬찍는 것을 `살박는다'고도 했다. 떡살은 떡손이라고도 하는데, 떡손이라고 할 때는 원형 문양에 손잡이가 대체로 양 가장자리에 있는 것을 말한다. 장방형의 긴 떡살은 가래떡처럼 긴 떡에 연속무늬이거나 단독무늬라도 연이어 있는 떡살을 양쪽에서 눌러 찍은 다음 떡을 적당한 크기로 떼내거나 썰어서 먹었지만, 떡손의 경우는 떡을 일정한 크기로 먼저 떼내어 그 위에 떡손으로 눌러 찍었다. 절편에 살을 박아 넣은 것은 단순히 배불리 먹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녔던 것이다. 이 떡살에서 우리는 보는 즐거움을 누리고 더 나아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 조상들의 미의식과 심미안을 느낄 수 있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은 바로 아름다운 무늬의 떡살로 찍은 절편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재질에 따라 나무떡살과 자기떡살로 나눌 수 있는데, 단단한 소나무·참나무·감나무·박달나무 등으로 만드는 나무떡살은 1자 정도의 긴 나무에 4∼6개의 각기 다른 무늬를 새겼다. 사기·백자·오지 같은 것 등으로 만드는 자기떡살은 대개 보통 5∼11㎝ 정도의 둥근 도장 모양으로, 손잡이가 달려 있어서 잡고 꼭 누르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은 떡살무늬는 일반적으로 가문에 따라 독특한 문양이 정해져 있다. 그 문양은 좀처럼 바꾸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집안에 빌려 주지도 않았다. 부득이하게 떡살의 문양을 바꾸어야 할 때에는 문중의 승낙을 받아야 할 만큼 집안의 상징적인 무늬로 통용되었다. 이 책에서는 김규석 선생이 직접 제작하신 나무떡살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는 우리의 떡살무늬들이 십장생문 十長生文, 사군자문 四君子文 을 시작으로 다식판 무늬까지 80여 종의 떡살무늬들이 저마다의 모습에 설명을 더해 소개되고 있다. 특히 한쪽에는 영문을 두어 외국인들도 우리의 떡살 문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눈에 띄었다. 명절 때마다 만날 수 있었던 눈에 익은 떡살무늬도 있었지만, 전혀 보지 못한 아름답고 섬세한 떡살무늬가 대부분이었다. 이것이 과연 우리나라의 문화란 말인가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문양들에게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떡살무늬를 보기 쉽게 하기 위해 낙관을 찍는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갓 뽑아낸 떡에 모양을 새겼다면 그 입체감과 모양에 더 반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최근에 생일이나 행사때 케익을 대신해서 우리 떡으로 된 케익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어느 커피전문점에서도 떡을 취급하는 곳도 있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 뿐 아니라, 옛날의 재래식 방앗간을 대신해 우리 떡 전문점이 프랜차이즈화 되어 동네마다 떡집이 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곳에 우리의 떡살무늬들이 액자에 담겨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작은 틀에 담겨진 수많은 그림과 기호, 그리고 글자들은 목판화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입는 티셔츠에 새겨넣어도 훌륭한 디자인이 될 것도 같았다. 그 활용도는 너무나 무궁무진해서 생각을 거듭하다가 그만 둘 지경이었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는 말이 있듯, 우리네는 한번 먹고 나면 없어져 버릴 떡 하나라도 보는 즐거움으로 구미를 돋구었다. 평면의 떡이 아닌 음과 양의 요철을 지녔고, 들어가고 나온 부분마다 떡을 씹는 식감funnylion도 다른 우리의 떡에 새겨진 떡살은 먹는 조각품이 아닐 수 없었다. 이렇듯 생활의 사소한 것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치장하기를 즐기던 우리 문화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떡살은 선조들의 격조 있던 음식문화를 대변하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문화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고, 아름다운 우리미술의 멋을 즐길 수 있었다. 이제 활용하고 대중에 알리는 일이 남은 것 같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기록된 이 책은 음식을 다루는 요리사나 경영자, 그리고 다양한 디자인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아이디어와 활용도를 알려줄 책이다. 그리고 우리문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잊고 있는 우리문화유산을 이야기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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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현대 산수화의 대가 이가염
장정란 지음 / 미술문화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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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동적인 힘'을 노래한 산수화가 이가염의 작품세계 ! 
 
  "너, 수업 끝나고 미술실로 오너라." 중학교 2 학년 따뜻한 봄의 어느 날, 미술 수업시간에 넌지시 건낸 미술 선생님의 이 한 마디의  말씀 때문에 난 '한국화'를 알게 되었다. 새로 생긴 중학교에 선배가 있을 턱이 없는데, 석 달 후에 있을 '도내 학생 미술대회'를 위한 '시군구 학생 미술대회'를 위해 우리 학교는 부랴부랴 빈 교실 하나에 미술부를 만들었고, 나를 비롯한 대여섯명을 미술부원으로 뽑힌 것이다. 그 중 내가 맡은 부문은 '한국화'. 말 그대로 동양화라고는 '화투장' 밖에는 모르는 완전 '초급'이 급조되어 졸지에 붓을 잡게 된 것이다. "한국화의 기본은 동양화요, 동양화의 생명은 여백이다."는 말씀과 함께 건내신 것은 중국 현대 산수화의 대표주자로 알려진 이가염 선생님의 그림 몇 장이었다. 그리고 말씀을 덧붙이셨다. "그대로 보고 베껴라." 달력 그림 몇 장, 이것이 나와 이가염 선생의 첫 조우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 미술선생님의 전공분야는 '유화'셨다. 여백이 생기면 절대로 안되는 미술분야를 전공하신 선생님이 내게 한국화를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지금 생각해도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실력도 되지 않는 먹물 값도 못하는 그림이지만, 하루에 다섯 장씩 베껴서 검사를 받아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붓을 잡고 선을 그리는 것도 쉽지 않던 내가 두 달여를 그렇게 하자, 화선지에 얼핏 산도 보이는 것 같고, 초라하지만 나무도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출전한 '시 대회'의 성적은 2위. 세 명 출전해 두 번째가 된 것이다. 그 해 도대회에서는 거의 모두가 받는 '입선'도 받았고, 그 다음해에는 꽤 많은 학생들 가운데 운 좋게도 '금상'을 받게 되었다. 동양화를 전공하신 선생님이 계신 1시간 거리의 여고를 매주 '과외수업'을 받게 해주신 유화전공의 미술선생님 덕분이었다. 그림 실력은 여전히 베끼는 수준이었지만, 먹향을 좋아하게 되었고, 붓의 날림과 먹빛 가득한 그림 속 여백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것이 인연이 되고 그것들이 좋아서 지금도 '한국화'를 보러 다닌다. 흐린 주말이면 어김없이 인사동을 찾아 점포 한 곳 한 곳 뒤지듯 그림쳐다보는 맛을 즐긴다. 딱히 흐린 날을 좋아하는 이유는 유리창 넘어 멀찌기서 봐야하기 때문에, 맑고 푸른 날은 선과 색이 진하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흐리거나 비오는 날은 인사동에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 더 이상 '지겨운 밥벌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그 때가 오면 또 다시 붓을 잡으리라 마음을 먹고 있는데, 그 때까지는 '보는 맛'으로나마 위안을 삼으려 노력 중이다. 오늘 소개하는 책, 장정란의 [중국 현대 산수화 대가, 이가염]은 그런 나를 위로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가염의 이강산수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장정란씨가 십년 전 북경의 서비홍 기념관에 있는 이가염의 인물화와 소 그림을 보고 마치 중국화된 마티스를 보는 기분같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서 그에 대해 연구를 하게 되면서 만들어진 책이다. 그녀의 이가염에 대한 의문은 하나였다. "왜 이렇게 검게 그러야 했을까? 묵에 대한 찬미인가, 절망인가?" 서구문물의 많은 유입으로 용도폐기 되었던 '산수화'가 사회주의국가인 중국에서 여전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아름다운 조국강산을 그려내어 인민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대상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가운데 이가염의 산수화가 있다. 전국의 명산대천을 어행하고 사생하면서 그려낸 그의 산수느 인민들이 살고 있는, 인민을 키워내는 생활 속의 산수화이다. 그가 그려내는 산과 기세 넘치는 폭포들, 기이하고 환상적인 구름과 안개는 그가 바라보는 조국의 웅장한 기상이었다. 어릴 적 동양화를 처음 만났을 때, 베끼던 그의 달력 그림 산수화는 사람사는 집과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었던 생활산수 몇 점이었다. 이 책 속에서 만나는 그의 산수들은 내가 보고 상상했던 그 이상을 초월하는 놀라운 장관들을 보여주었다.
 


























 
   이 책의 구성은 크게 중국 근대산수화의 동향, 이가염의 회화관, 대단한 정신과 화법의 이가염, 수묵으로 연주한 산수의 세계(이강산수)로 구분된다. 중국 근대산수화의 동향에서는 서비홍, 고검부, 임풍면, 유해속 등의 개혁파와 황빈홍, 반천수, 부포석 의 전통파 들을 작품을 소개하며 작품속에서 말한 두 파벌의 갈등을 이야기해주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 놀랍고 기함하는 작품들을 보게 되는 부분이었다. "그림은 정감이고, 생활의 반영이다."고 말한 이가염의 화론을 이야기한 이가염의 회화관 역시 그의 작품이 있게 한 이가염의 역사와 생각을 알 수 있게 하는 부분이었다.
 
 



그의 산수화들은 검다. 그것에 대해 저자는 그의 묵접은 적묵(묵을 쌓는 것)이 주류인데, 이것은 근대화단의 황빈홍이 연구한 전통적인 묵법이라고 했다. 그리고 고원으로 본 웅장한 산들의 모습이나 대소로 운용되는 경물들의 배치, 특히 산수를 치밀하게 탐구하는 자세는 곽희의 작화태도를 본받았다고 말한다. 이가염에 있어서 산수화는 조국을 그리는 것이고, 검고 검은 묵색은 쌓고 또 쌓아가는 혁명정신과 같은데, 혹자는 그런 그의 작품들이 사회주의적 산물이라고 하지만 전통산수화가 지닌 완벽한 필묵의 아름다움과 이 시대의 현장성을 결합하여 독창적인 화면을 창출해 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이가염의 회화사적 공로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자신의 이름보다는 의미있는 단어나 글귀들을 즐겨 사용한 이가염의 수집 종에 달하는 인장들을 보고, 읽는 것은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소牛를 즐겨 그렸던 그가 '사우당師牛堂' 즉, '소에게 배우는 집'이라 하여 소의 희생정신을 높이 샀는가 하면, '일일학지사日日學之始' 라 하여 '날마다 처음 배운다는 자세로 그림을 그리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식결재識缺齋' 역시 '결점을 아는 서재'라 하여 자신의 결점을 알아야 진보할수 있다, '스스로 결점이 많은 사람임을 언제나 자각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책을 좋아하는 내가 언젠가 꾸밀 서재의 이름을 이가염 선생의 인장의 말을 빌어 '식결재識缺齋' 로 해야겠다는 생각했다. 그의 산수를 대표하는 인장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산수지음山水知音'이 그것이다. 그는 산수를 말하면서 전체적인 흐름과 작품속에서 '음악'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늘 강조했는데, 그것을 아우르는 인장의 글귀가 아닐 수 없다. 이 밖에도 훌륭한 인장 속의 단어와 글귀들을 통해 동양화라는 것은 그림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화가의 생각과 사상과 음악적 상상들이 그림으로, 글로, 작은 인장으로까지 표현된 '종합예술'임을 알게 한다.
 




































  이 책의 백미는 제 2부 이가염이 이룩한 현대 산수화 이다. 대담한 정신과 화법으로 표현된 이가염선생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보게 되는데, 전통의 정신을 이어서 배우는 학습시대와, 자유로운 개성을 연출하여 다양한 화법을 시도하는 사생시대, 그만의 화풍이 굳건하게 만들어지는 완성시대 이렇게 세 부분으로 이가염의 작품세계를 보여준다. 특히 '이강산수' 편은 따로 두어 이강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수십년 간의 그의 작품들을 따로 감상할 수 있게 해 두었다. 이가염선생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책이었다. 특히 번역작이 아니라 십수 년간 그를 연구한 우리 학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작품집이라 이해 면에서 공감하는데 충분하지 않았나 싶다.
 

 

 

 

 




 

 


















































 
  알랭 드 보통이 쓴 책 [여행의 기술] 에서 그는 '진정한 여행의 참맛은 실제로 여행을 통해 여정 속에 생긴 복잡다난함을 경험하면서 도착한 여행지에서 느끼는 맛보다는 그런 것들이 모두 걸러진 후 여행지에 집중한 이미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와 사진, 그림을 보면서 상상하는 것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책을 보고 읽으면서 느끼는 내 기분이 그랬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만지고 만끽하면서 중국의 어느 미술관에 온 듯, 감히 이가염 선생을 가이드삼아 중국을 여행하고, 이강에서 머물며 풍류를 즐긴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어제 읽은 '옛시읽는 CEO'를 읽은 탓일까? 그림을 보면서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생각나 시를 짓고 싶다는 충동까지 일게 한다. 이제 막 찾아온 서늘한 가을 주말을 만끽하게 한 정말 멋지고 훌륭한 작품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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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글쓰기
셰퍼드 코미나스 지음, 임옥희 옮김 / 홍익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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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생긴 마음병病, 일기써서 고치세요!
 
  "연인들이 서로 사랑하면서도 사소한 일에 다툼을 벌이듯이 나는 평생 나의 일기와 다퉈왔다. 고통으로 첨철된 삶에서 벗어나는 방편으로 일기 쓰기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던 시절, 나는 일기장 속에서 나와 끊임없이 다투면서 새로운 나를 찾으려 했다. 일기는 그만큼 나에게 친구 이상의 존재였던 것이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프랭크 맥코트의 말이다. 책을 읽는 것 만큼이나 글을 쓰는 것도 중요한데, 책을 읽어 지식과 지혜를 얻고, 내가 모르는 세상 사람들의 삶을 배운다면, 글을 쓰는 것은 나의 내면에 대한 성찰을 통해 스스로를 키워낸다는 것이다. 더우기 글을 쓰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물리적, 정신적 질환도 치료할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그것을 구체적으로 이야기 한 책이 있다. 50여 년을 일기를 써오면서 스스로 체험을 한 셰퍼드 코미나스 박사의 책, [치유의 글쓰기Write For Life]이다.
 
 저자는 1955년 어느 날, 원인을 알 수 없는 편두통에 시달리게 되었는데 "규칙적으로 일기를 써보세요." 라는 70대 전문의의 뜻밖의 제안에 따라 일기를 쓰게 되었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모든 것을 일기쓰듯이 쓰게 되면서 그날 하루를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시작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가슴속에 있는 찌꺼기들을 탁탁 털어놓고 나면 모든 것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느낌이고, 그것이 그를 편안하게 했는데 편두통 또한 증세가 많이 호전되게 되었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육체적, 정서적, 정신적, 영적인 잇점을 얻는데 이를 종합해 보면 첫째 글쓰기는 자신이 성취한 것들을 가치있게 받아들이게 하고, 둘째 인생의 전환기를 더 주의 깊게 성찰하게 하며, 셋째 과거를 탐구하는 데 도움을 주고, 좀 더 창조적으로 생활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말한다.
 
 글쓰기의 시작은 가급적 줄이 쳐진 비싸거나 화려하지 않은 평범한 일기장을 선택하고, 펜 또한 특별한 것을 정할 것이 아니라 평범한 것들, 모양도 색깔도 가지각색인 여러 개의 볼펜을 마련해 기분에 따라 특별한 느낌이 있는 단어나 문장에 별도의 색깔을 넣거나 한다. 글을 쓰는 장소는 가장 편한 곳일텐데 틈나는 대로 공간이 허락되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다. 글을 쓰기에 적당한 시간 또한 자신에게 편한 시간일텐데, 어느 때가 되었건 약 20분 간 할애할 수 있는 때를 고르는 편이 낫다. 무엇을 얼마나 쓸까 하는 것은 오늘 가장 나를 놀라게 한 일은 무엇인가? 오늘 나를 가장 감동시킨 일은 무엇인가? 오늘 내가 가장 기어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하는 점을 고려해 편하게 써내려 가라고 조언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글을 쓴 노트 즉, 일기장을 둘 장소인데 아무도 모르는 곳에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모든 상념이 들어간 일종의 화장실같은 글을 남들이 읽을 수 있을 만한 데 둔다는 것은 그들이 볼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어 함부로 글을 쓸 수 없거나, 가식이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개인적인 공간에 둘 수 있어야 글도 마음껏 쓸 수 있고, 가족들 또한 그 글을 읽고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글쓰기를 계속하다보면 자신을 치유하는 데 필요한 것인 무엇인지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되고, 시작할 때는 잘 모르지만 인내와 일관성을 가지고 꾸준히 하다보면 그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고 말한다. 개인적인 고민이나 문제를 그냥 방치하는 것은 걱정이 늘어나게 만드는 원인이 되어 심리적, 육체적 문제(질환)으로까지 심화할 수 있는데, 글을 쓰게 되면 자기가 쓰는 것에 주목하게 되고, 그것만으로써 자기 인생을 관리할 능력이 생기고, 그것이 문제의 방향을 전환시킬 수 있다. 자신과 화해하는 길이기도 한 글쓰기는 스스로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하고, 고백이기도 하며, 기도일 수도 있다. 미리 쓰는 유언일 수도 있고, 부치지 않은 편지일 수도 있으며, 혼자서 떠나는 여행일 수 있다. "행복하게 사는 것은 영혼의 내적인 힘"이라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말했듯이 내면과의 조화를 통해 스스로에게 용기와 기운을 불어넣어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행복으로 다가가는 초대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버리고 갈 것이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라는 제목으로 유언을 남기듯 시집을 두고 떠나신 고 박경리선생처럼 내면으로 비롯된 기록이야말로 후회없는 행복한 죽음도 맞이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업 초기 어린 나이에 겁없이 사업을 확장하다가 실패를 보고 '우울증세'를 띤 적이 있었다. 모든 것이 불만스럽고, 작은 말에도 서러운 것이 마치 14세에 경험한 '사춘기'의 그것과 크게 다를 수 없었다. 이미 성인이기에 마음껏 분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오히려 악이 되어 많은 실수와 오류를 경험하면서 1년여의 시간을 보냈다. 어느 날, 우연히 잡지에서 알게 된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쓸데없는 상념들을 글로 그림으로 표현하며 시간을 보냈다. 무언가 토해내고 싶은 충동으로 밤을 새워 매달린 적도 있고, 부질없다 생각하고 6개월동안 한 번 들여다 보지 않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6년 째 블로그를 계속하고 있고, 그 때의 우울함을 이제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누구에도 말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을 알게 되면서 '혼자'라는 고독감과 남들과는 다르다는 '상실감'이 똘똘 뭉쳐져 풀어낼 방법이 없는 실타래가 되어 혼란스러웠던 것 같았다. 결국 스스로에게 생긴 문제인 만큼 스스로가 풀어내는 방법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무엇이든 쓰는 것, 그 글쓰는 행위는 배설이 되고, 글이 담긴 노트(블로그)는 정신의 해우소가 된 것이었다. 혼자서만 느끼던 것을 50여 년동안 일기를 써 온 저자를 통해 공감하게 되고, 이 또한 혼자서 경험한 것이 아니라는 연대감에 위안이 된다.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리고 얻어야 할 것이 많은 책이었다. 인생은 산과 같아 깊고 깊은 계곡을 추락할 날이 오지 말란 법이 없다. 그런 때, 이 책을 다시 펴서 도움을 얻고 싶다. 스스로 할 뿐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말처럼 "인생의 무거운 짐을 양 어깨에 짊어지고 끝을 알 수 없는 길을 걸어가는 나그네의 여정"과 같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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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e & Winery 와인 & 와이너리
송점종 글, 장영준 사진 / 생각의나무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와인의 고향, 와이너리를 찾아 떠나는 세계 여행!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특별한 순간에 딸 거에요."
"당신이 1961년산 슈발블랑을 따는 날, 그날이 바로 특별한 순간일 거에요."
 
 

 
 
  영화 [사이드웨이Sideways, 2004]에서 1961년 슈발블랑을 애지중지 보관하고 있는 마일즈에게 마야가 대답한 말인데요, 와인을 따는 날이 특별한 순간이 된다는 말이 정말 멋들어지지 않습니까? 이 영화는 영화속에 녹아든 감독의 해박한 와인지식들이 대사로 그대로 옮겨져 수많은 와인애호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영화인데요, 이혼의 후유증을 와인으로 달래는 와인 애호가인 영어 교사 마일즈(폴 지아매티)는 자신이 쓴 소설을 출판사에 보낸 후 결정을 기다리면서 단짝친구인 잭(토마스 헤이든 처치)의 총각파티를 겸해 산타 바바라 지대의 와인농장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서로가 매우 친하면서도 외모나 성격은 정반대인데요, 마일즈가 생산이 까다롭고 맛 또한 복잡하기로 유명한 와인 '피노'처럼 까탈스럽고 예민하다면, 결혼을 앞두고 다른 여자와의 만남에 열을 올리고 매사 고민 없는 잭은 어디서도 생산될 수 있고 돌보지 않아도 잘 자라는 '카베르네'에 가깝다고 할 수 있죠.
 
  영화 내내 티격태격 입씨름하는 두 친구를 보는 것도 즐겁고, 소개되는 와인을 보는 것도 즐거웠지만, 좁은 시골길과 햇빛에 얼룩진 포도밭, 와인 농장이 갖추어진 미국 중부 전원 도시와 샌타 마리아, 롬팍, 샌타 바버라, 골레타 등 이 지역의 명소들을 구경하는 맛은 최고였죠.  좋은 사람들과 오붓하게 마시는 와인이라면 장소가 어디든 상관없겠지만, 마일즈와 잭처럼 와인을 만드는 곳, 와이너리에서 저희들의 와인을 마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게 했습니다. 
 
  얼마전 우리나라에 와인에 관한 책이 나왔습니다. 와인 전문가와 사진 작가가 힘을 합해 독일,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에스파냐, 포르투갈, 슬로베니아/헝가리, 미국, 칠레, 아르헨티나,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본/중국 등 세계의 와이너리를 돌며 그곳을 한눈에 내려다 보듯 사진으로 옮기고, 나라마다 다른 와이너리를 소개한 책입니다. 각국 와인과 와이너리에 대한 친절한 설명과 와인문화와 비즈니스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는데요, 외국인도 볼 수 있도록 영어로도 옮겨 놨습니다. J.J.Song 와인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송점종씨와 사진작가 장영준씨가 손을 잡고 만든 책, [와인& 와이너리Wine & Winery]입니다.
 
 


 






 
  책의 첫장에 소개된 [와인 그리고 인생]이 눈에 띱니다. 한 병의 와인을 탄생시키기까지 포도의 일생이 우리를 닮아서 와인은 인생이고, 아이콘 상품이자 관광문화 상품이 되어버려 와인은 문화도 되고, 기원전 7000년 전후 신석기시대로 추정되는 와인의 시작은 우리와 함께 했기에 와인은 역사이며, 땀으로 얼룩진 농부의 고단함이 1년 내내 계속되기에 와인은 사계Four Season 이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예찬하고, 삶의 중요한 순간을 와인과 함께 채색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와인은 예술이다."라고 명명한 저자의 글이 흥미롭습니다. 그후에 펼쳐지는 그림들은 그야말로 예술인데요, 마치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사진을 보듯, 각 나라의 포도밭과 와이너리의 사계절을 그려낸 그림들은 한 장 한 장이 장관이었습니다. 수 년간 저자 둘이 세계의 와이너리를 돌며 작품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들이 경험한 것처럼 각국의 와이너리의 사진에서 소개되는 와인들 모두 마셔보고 싶은 충동이 일더군요. 그럴 수 있다면 이 그림들을 보는 독자들 모두 세계의 와이너리를 보는 마일즈과 잭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후반부에 소개된 [와인 문화와 비즈니스]는 약 20여 페이지 남짓인데도 와인에 대한 모든 것을 컴팩트하게 잘 요약을 했습니다. 와인산업과 문화, 와인의 역사, 와인의 종류, 와인의 재배지역과 출시와인들, 와인별 보존기간까지 도식과 함께 어울어져 있어 보고 익히기에 충분하게 정리가 되었습니다. [와인문화의 이해] 편에서는 와인 주문하는 요령과 요리와 어울리는 와인들, 그리고 테이스팅을 설명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와인 에티켓과 마시는 순서, 나라별 라벨읽기도 그림들과 함께 친절하게 소개했습니다. 우리가 즐겨 마시는 와인이 어느 나라에서 만든 것인지는 익히 알고 있지만, 어느 와이너리를 통하는지는 직접 가보지 않고서는 상상하기가 힘들겠죠. 이 책은 우리가 사랑하는 와인의 고향을 소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그리고  각국 와이너리의 특징을 통해 나라마다 차이가 있는 와인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전반적인 이해를 돕도록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한장 한장 작품같은 포도밭과 와이너리의 풍경들입니다. 즐겨 마시는 와인을 옆에 두고, 이 책과 함께 한다면 [사이드웨이] 못지 않는 훌륭한 와이너리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즐거운 여행, 눈이 맛있는 책, 지금까지 [Wine & Winery]의 이야기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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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 1 : 얼굴을 보고 마음을 읽는다 - 허영만의 관상만화 시리즈
허영만 지음, 신기원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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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값'하는 사람되기를 권하는 허영만 선생의 충고!
 
  우리 할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다. 너무나 좋아하신 덕에 1년을 술을 드시면 뒷산이 없어지고, 또 다음 해 일년을 술을 드시면 쌀지어 먹을 논 한 마지기가 없어졌다고 할머니가 말씀하시곤 했다. 어릴 적엔 몰랐지만 술을 드시면서 옆에 친구도 앉히고, 새악시도 앉히고, 손에는 '패'를 잡으셨던 모양이다. 아무튼 이십 수년을 그렇게 술을 드셨으니 '부락에서 내 땅 안밟고 읍내 못간다'고 말씀하셨던 선조의 땅은 모두 남의 손에 넘어가고, 소작을 부렸던 세대의 어르신이 이젠 소작을 붙여먹어야 할 형편이 되어 부끄러워 저멀리 남쪽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단다. 가족중 더이상 할아버지 옆을 있으려 하지 않자 이제 막 유치원을 다니던 내가 당신의 유일한 동무가 되었다. 할아버지는 당신의 무릎팍에 앉혀놓고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람은 꼴값을 해야 하는겨. 제 생긴대로도 채 복을 받지 못하고 죽는 것이 사람이여. 그런께 꼴값만 허고 죽어도 여한이 없는겨. 세상을 봐라. 제 꼴이 언쩐 줄도 모르고 위로 뛰고 아래도 뛰는 것들이 월메나 많어. 눈 뜨고 봐줄 수가 없을 만큼이여. 그렇게 꼴값을 떨어뜨리는 것들을 보고 '꼴값을 떤다(떨어낸다)'고 하는겨."
 
  지금와서 생각하면 팔자八字로, 또 아래로 수염을 늘어뜨린 팔순의 우리 할아버지는 '집안 재산을 모두 거덜을 낼 꼴'을 하셨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는 그렇게 충실하게(?) 당신을 역할을 할 수가 없을테니까. 아무튼 그 덕에 당신의 자식들은 모두 열심히 일해야 목구멍에 풀칠을 하는 상황이 되셨고, 또 그 덕에 지금도 부런하고, 검소한 자식들이 된 것 같다. 할아버지께서야 어떠셨든, '꼴값을 하라'는 그 말씀 하나 만큼은 요즘과 같은 '외모지상주의 시대'에 다시금 새겨야 할 말씀인 것 같다. 우리 할아버지 말고도 또 '꼴값'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났다. 예전에는 그리 큰 빛을 발하지 못하다가 최근에 들어서 '천하의 이야기꾼'으로 명성이 자자하신 만화가 '허영만 선생님'이 최고의 힛트작 '식객食客'에 이어 다시 펜을 잡으셨다. 새로운 만화, [꼴]이 그것이다.
 
 

 
 

 


 
  외모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할 말이 참 많다. 중국에서 들어온 '관상학'이 꽤 널리 알려지면서 외모의 생김이 성공과 출세를 좌우한다는 관념이 꽤 깊숙히 자리잡혀 있는 터. '허우대만 멀쩡'해도 밥굶는 일은 우리나라에서 좀처럼 없다. '곱다, 예쁘다, 여자답다, 사내답다, 호걸같다' 등 외모에 대한 평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고, 최근에는 '훈남,완소남,완소녀'등 신조어가 생길 지경이니 우리의 외모사랑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이다. 그래서 일게다. 암암리에 시술되어 오던 '성형수술'이 이젠 내어놓고 상품으로, 심지어 남을 위한 미덕으로까지 여겨지는 사회가 되어버렸으니 '유교로 평생을 살다가 돌아가신 선조'들이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내가 이 책을 잡으며 가장 먼저 알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다. '성형수술하면 관상이 변하는가?'
 
   







 

 





 
  일찌기 공자께서는 신체발부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 , 즉, '사람의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이것을 손상시키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효경]의 첫장인 [개종명의()]장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이 말씀의 시작은 선왕께서 온 백성이 화목하게 살도록 하여 위 아래가 원망하는 일이 없도록 하신 방법중 하나로 대답하신 것인데 아울러 효의 끝은 '몸을 세워 도를 행하고 후세에 이름을 날림으로써 부모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함께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따라 우리의 선조들은 댕기를 따고, 상투를 틀어 부모님이 물려주신 모발을 하나라도 온전히 지키려 노력했고, 일제강점의 시기에 내려진 단발령斷髮令에 대해 많은 선비들은 ‘손발은 자를지언정 두발()을 자를 수는 없다’고 분개하여 정부가 강행하려는 단발령에 완강하게 반대하였다. 우리에게 그런 때도 있었다. 세월은 흘러 시대는 많이 변했고, 하늘과 함께 부모가 만들어주신 몸뚱이를 일부러 보기 좋게 만드는 의술이 서양의 몇몇 나라에서 횡횡하더니 세계 제일의 유교儒敎 국가인 우리나라에 도입되고 급기야 되려 서양에 그 기술을 파는 상황에 이르렀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말도 안되는 말을 앞세워 선남선녀를 즐겨하는 우리사회가 만들어낸 신풍조, '성형수술Plastic Surgery' 이 그것이다.
 
  '요즘 들어서 신종 전염병이 유행을 하지 모두가 빚을 내서라도 성형을 하려고 자기가 본래 본 바탕이 예뻤던 것처럼 그렇게 성형미인들은 거리를 활보하지만 어릴적 사진들은 모두 없애고 겉으론 당당하게 결혼하지만 2세가 태어나면 모두 놀라고...꼭 그렇게 까지라도 해서 모두가 미인이 되고플까 똑같은 얼굴 똑같은 성형미인만을 꿈꾸며...하늘이 주신 관상까지 돈으로 고쳐가고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는 듯이 그렇게 성형미인들은 신에게 도전하지만 TV를 켜면 성형미인들 세상 더욱더 예뻐지려는 여자의 욕망 그런 미인을 즐기려는 남자들...' 이라며 남녀를 비웃던 당시 최고의 댄스그룹 노이즈의 노래 [성형미인]은 1996년에 최고의 히트를 했던 노래인데,  노래가 말하듯 그당시만 해도 성형 수술은 암암리에 시행되는 비밀스러운 수술이었는데, 수술을 받은 성형미인은 수술사실을 들킬까 두려워 했고, 의심을 받으면 극구 부인했었다. 12년이 지난 지금은 거리낌없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무뎌져 명실공히 미녀들의 필수품이요, 입사필기시험을 능가하는 무기요, 있는자의 특권이요, 남보다 앞선 출세의 히든카드가 되어버렸다. '세상일은 정말 살고 볼 일'이란 말이 틀리지 않다.  

  카메라 한 대 없는 사람이 없고, 수줍음없이 '직찍'을 하고, 얼굴을 보면서 전화를 하는 영상통화세상이 된 지금의 세상이다 보니 남자들도 색조화장을 하고, 대통령도 주름살 제거 수술을 받는 바야흐로 비주얼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보이는 그 자체'만으로 성형의 진위여부를 넘어 성형 수술한 사실을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노력'으로 보고 그것을 가상히 여기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외모를 중시하는 시대가 되고 보니 '원판불변의 법칙'이란 자연법칙은 '성형 수술'이라는 인간의 의술로 인해 무참히 깨어져 버렸다. 혹자는 '이젠 큰 키 만드는 기술만 남았다(불가능이 없다는 중국은 다리뼈를 자르고 붙여 키를 키우는 수술도 한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세태의 변화로 자연스레 '성형을 권장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가 대처해야 할 것은 '수술을 원하는 사람들이 '안심하고 수술받을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성형수술에 관련된 뉴스들을 보면 값비싼 수술비와 무면허업자들의 시술행위, 그리고 성형수술에 대한 정보부족으로 인한 문제들이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이 변화만을 추종해 '수술결과에만 관심을 두는 모순된 사회의 시선' 때문은 아닐까 싶다.
 
  허영만 선생님의 이 책을 보면 '성형수술을 한다고 해서 관상이 바뀌진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처럼 서양사람들처럼 코를 높이 세우는 것은 사진에는 어울리고 보기에는 좋을 지 모르지만, 관상학적으로는 가장높은 산이 더욱 높은 격이 되어 복이 박해지고, 외로워 진다는 것이다(성형외과 선생들도 읽어 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사람의 생김이라는 것이 어느 하나 가지고 관상이 좋거나 나쁘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역사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인상보는 법'이 지금껏 전해지게 된 것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을 읽기 위함'이라며, 마음이 안이라면 얼굴을 바깥이라 그래서 그것으로 우선 사람을 엿보려 하는 것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마음이 흉포한데 상이 좋으니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반대로 마음이 너그러운데 상이 나쁘니 나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결국 시간을 두고 살펴야 할 인간의 마음을 모두 알 수 있을 때까지 참고 두고 볼 수 없는 인간의 조급함이 '인상보는 법'을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보면 제 아무리 화장을 하고, 수술을 해서 인상을 좋게 한다고 해도 결국 드러나는 '마음'에 의해 제 '꼴값'이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만화를 읽는 것'이라고 어떤 독서가가 말한 적이 있다. 빈 손이면 허전하다고 느껴질 만큼 한 권의 종이묶음이 제 손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라면 만화를 읽는다고 누가 뭐라할텐가? 더구나 양질의 콘텐츠가 영화 드라마 만화등 다양한 매체를 빌어 재창조되는 '원소스 멀티유즈의 시대'인 만큼 그 시작이 만화라면 나같은 만화광에게는 더욱 반가운 일이다. 허영만 선생님의 최근 활약이 반가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 막 1편을 끝냈다. 그래서 아직은 모르겠다. 얼마나 많이 남았는지 모르지만 그 끝을 함께 하면 '꼴값'하는 늠이 될 수 있는 건지, 여전히 '꼴값'을 떨어내는 놈으로 남을 건지가 의문이다. 흥미로운 시작, 그 후 이야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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