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여행
아멜리 노통브 지음, 허지은 옮김 / 문학세계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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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여행> 아멜리 노통브 / 허지은 / 문학세계사 (2015) [원제 : Le Voyage d'hiver (2009)]

[My Review MMCCI / 문학세계사 10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서른 번째 리뷰는 누가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천재 작가로 불리는 아멜리 노통브의 <겨울 여행>이다. 세월이 흐르면 달라지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고 하는가 보다. 내가 노통브의 소설을 처음 접했던 것이 2003년이다.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흥분이 잦아들지 않던 시절에 그녀의 첫 소설 <살인자의 건강법>을 처음 읽었는데 너무 강렬했다. 그런 장르의 소설을 읽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감상이 자리 잡기도 전에 주위에서 극찬과 호평이 난무했다. 그래서 나도 덩달아 그런가보다 싶었다. 첫 느낌은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주 좋지도 않았지만, 그러다 조금 텀을 두고서 <오후 네 시>란 소설을 읽었는데, 정말 센세이션 했다.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말이다. 정말 강렬한 느낌과 인상을 받았는데, 전반적으로 '묘한 불쾌감'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고 있다. 그 뒤로도 틈틈이 <로베르 인명사전>, <공격>, <적의 화장법>, <사랑의 파괴> 등등을 읽었는데 점점 의문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도대체 아멜리 노통브의 '무엇' 때문에 천재로 불리는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묘하게 '재미'는 있었다. 그래서 '그 맛'에 그녀의 소설을 읽는가보다 싶었다. 그런데 좀 찜찜하다. <겨울 여행>에서 그 찜찜함을 풀어보자.

<겨울 여행> 관점 포인트 : 좋다. 먼저 '인정'하는 것부터 풀어본다면, 그녀의 소설은 재미가 있다. 그래서 계속 읽게 만든다. 그리고 이야기 '전개'가 정말이지 기발하다 못해 기똥찼고 더불어서 기가 찼다. 이를 전문용어로 '어이 없다'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언어학의 전문가인 아멜리 노통브 앞에서 '전문가' 운운하면 실례가 될테니, 그냥 기발하다로 퉁치고 싶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아, 사회문제가 될만한 주제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식이 간간히 담겨 있어서 '생각할 꺼리'를 만들어줘서 심심하지 않았다. 이런 문제를 저렇게 바라보니 '문제의식'을 새롭게 생각할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신선한 느낌을 종종 받는다. 여기까지가 아멜리 노통브 소설의 장점이랄 수 있겠다. 이건 인정하는 바다.

그런데 '문제의식'과 '비판'은 있는데 그걸 살살 비꼬는 식으로 풀어내는 모양새가 좀..'진지함'이 없어서 '가볍다'는 느낌을 받는다. 강한 펀치력으로 상대를 인사불성으로 만들고 코를 납작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옆구리를 살살 간지르는 정도의 느낌이라 기분만 상하고 만다는 점이 아쉬웠다. 물론 여성작가라는 점을 감안해서 '직접적인 비평'보다 '간접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이라고 지레짐작을 하더라도 '정곡'을 콕 찌르는 느낌이 아니라 '비아냥거린다'는 느낌이 너무 강해서 전반적으로 가벼워지고 말았다. 사회비평이란 날카롭고 묵직한 맛이 있어야 제맛인데 말이다.

그리고 이야기 전개에서 '기발한 점'은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만, '예상밖의 전개'라는 것을 빼고는 딱히 줄게 없는 것이 아쉬웠다. 그리고 '반전'이란 것도 충분한 개연성이 바탕이 되어야 '그래 그럴 수 있어'라며 이야기에 '몰입'하고, 등장인물에 '감정이입'할 수 있을텐데, 몰입과 이입이 전혀 동반되지 않은 '기발함'만으로 얼마나 만족감을 느낄 수 있겠느냔 말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안타까운 점은 이야기의 소재가 너무 '부정적인 것'들이라 다 읽고 난 뒤에 뒷맛이 찜찜할 수밖에 없었다.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에서 주로 만나는 것들을 보라. 살인, 자살, 테러, 마약, 정신병 등등 죄다 '불법'이고, '변태적'이며, '비이성적'인 소재들밖에 없다. 심지어 '사랑'이란 주제를 내세우면서도 '정상'적인 것들이 거의 없을 정도다. 그나마 볼만한 주제가 '아름다움'인데, 그녀는 이 아름다움마저 '추악한 속내'를 포장하는 껍데기 취급을 하는 일이 잦아서 제정신인가 싶을 때가 많다. 이런 것들을 다 제하고 나면 남는 것이 딱 하나 '섹스(성욕)'밖에 없는데, 이마저도 상식적인 선에서 아름다움을 느낄만한 '정사 씬' 하나 찾아보고 힘들다.

자, 이제 <겨울 여행>을 한마디로 표현해보련다. 사랑에 실패한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미련만 뚝뚝 남아서 자신이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비행기 테러'를 꿈꾼다. 그것도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을 향해서 말이다. 정말 이게 다다. 사랑이란 '공식'이 정말 어렵고 복잡하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바다. 그러니 두 남녀가 만나서 진정으로 사랑을 나누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며, 수없이 지지고 볶는 과정을 '극복'한 뒤에야 겨우 사랑에 성공하고 마는 지난한 과정을 보여준다면, 얼마나 진부하겠냐는 심보가 아멜리 노통브 소설들에 가득하다. 그래서 정말 신선하게도 '사랑의 실패', 그래봤자 고작 '섹스'를 못한 것 뿐이다. 그런데 속좁은 남자는 그 길로 비행기 운전을 익혀서 비행기 납치를 기획하고 그걸 실행에 옮기려 한다. 그리고 목표 대상은 그녀의 이름 '아스트로라브'의 앞글자인 'A'를 형상화한 '에펠탑'을 향해 비행기를 납치해서 돌진하려 한다. 이게 제정신으로 할 법한 일인가?

나가는 글 : 소설은 '허구'의 세계인지라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수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는 유명 작가의 소설은 그렇지 않다. 소설속의 내용을 '현실'에서도 반영할 수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프랑스아즈 사강이 법적으로 금지된 마약복용으로 기소되자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식의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키지 않았느냔 말이다. 작가의 말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하물며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할 말'을 대신하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자기 소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런데도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은 너무 '방종한 면'이 없지 않다. 사회적으로 '금기'되고 '터부'시 되고 있는 소재로 강렬하게 쓰면서도 매우 '무책임'한 행동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래서 나는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이 재밌긴 하지만 누군가에게 권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특히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내 관점에서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은 저질로 평점을 매길 수밖에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선생'이란 관점에서 내린 결론이다. 그런데 선생이 아닌 '독자'로서 평점을 매기라면 뭐랄까? 뭔가 있긴 있는 것 같다. 그걸 찾기 위해서 좀 더 읽어보려 한다. 단순한 '재미' 말고 더 의미심장한 것, 그 잡히지 않는 무엇의 정체를 밝혀내지 못해 찜찜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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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한 형태
아멜리 노통브 지음, 허지은 옮김 / 문학세계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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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한 형태> 아멜리 노통브 / 허지은 / 문학세계사 (2011) [원제 : Une Forme de Vie]

[My Review MMCC / 문학세계사 9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스물아홉 번째 리뷰는 논란의 주인공 아멜리 노통브의 <생명의 한 형태>다. 과연 아멜리 노통브는 천재 작가가 맞는가? 아니, 이것보다는 그녀의 소설에 열광하는 독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질문을 이렇게 바꾸는 것이 더 적확한 질문이 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녀의 소설을 '극찬'하는 쪽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그녀의 소설에 흥미를 끌만한 '뭔가'가 분명히 있다는 확신은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녀가 문단에서 호평을 받고, 수많은 상을 휩쓸었으며, 출간하는 책마다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를 설명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그녀의 소설에서 굉장한 '반감'을 느끼곤 한다. 도대체 왜 이런 소설을 쓰는 것인가? 어떻게 제대로 된 등장인물이 없을까? 정말이지 이런 괴팍한 소설을 좋아라하며 읽는 독자들은 왜 이리 많은 것인가?...이런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듯 계속 이어진다. 이 참에 국내에 출간된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을 몽땅 리뷰해볼 마음을 먹었다. 가능하면 2월 안에 다 읽고 써보려 한다. 얼추 헤아려보니 가능할 듯도 싶다. 자, <생명의 한 형태>다.

<생명의 한 형태> 관점 포인트 : 그나마 노통브의 소설에서 '인정'하는 바는 괴팍한 이야기 형태속에 나름의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생명의 한 형태>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문제의식'은 이라크 전쟁에 파병된 미군 병사의 고뇌를 엿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세상의 모든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메시지'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반전 메시지'를 읽기 위해서 몸무게가 무려 18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이등병을 등장시켰다는 점이다. 사람이 이 정도로 살이 찌게 되면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 그런데 전투원으로 파병을 나간 미군 병사가 180킬로그램의 몸을 하고서 '현역생활'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 완전군장의 무게가 보통 40킬로그램이다. 거기에 소총과 실탄을 휴대하고, 수류탄이나 방독면과 같은 개인휴대물품까지 모두 착용하면 이 병사는 전체 무게가 230킬로그램이 넘게 된다.

보통 일본 스모선수의 평균 몸무게가 120킬로그램 정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신장 184센티미터에 몸무게 180킬로그램이 넘는 선수가 등장해서 스모 경기를 휩쓸었다고 한다. 스모는 체중이 많이 나갈수록 유리한 경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스모선수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옷도 남이 입혀줘야 하고 씻는 것도 혼자서 할 수 없다. 심지어 용변을 본 뒤에 밑을 닦는 것도 남이 대신해준다. 그나마 스모선수는 '선수단' 안에 규칙과 서열이 엄격하게 적용되어 '후배'가 선배의 모든 것을 뒤처리 해준다고 한다. 그런데 현역군인은 누가 해준단 말인가? 120킬로그램만 되어도 혼자서 처리하기 힘든 부분이 발생하는데, 180킬로그램이 넘게 되면 불가능하다. 물론 미국인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아멜리 노통브는 이메일도 전화기(요즘에는 스마트폰이겠지만)도 쓰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유일하게 팬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편지'를 이용한다고 하는데, '답장'하지 않기로 유명한 작가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주인공으로 아멜리 노통브가 등장하고, 그녀가 심지어 '미지의 미군 병사'와 자필 편지를 주고 받는 내용이 담긴 일종의 '서간문' 형태로 소설을 구성했다. 그럼에도 아멜리 노통브가 아주 '답장'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니 그렇다 셈치고 읽어나가면, 아주 가관이다. 실제라면 절대 '펜팔(?)'을 주고 받을 상황이 아닐텐데, 소설속 아멜리는 일면도 없는 '미군병사'와 친밀한 편지를 주고 받게 된다. 편지 말미에는 늘 '우정을 담아~', '진심을 담아~'라는 문구를 써가면서 말이다.

편지의 내용도 별개 없다. 미군 병사의 편지를 우연히 읽게 된 아멜리가 답장을 하면서 '인연'을 쌓기 시작했고, 처음엔 '오해'도 했다가 나중에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개인적인 비밀까지 나누며 서로의 '속마음'도 내비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순전히 '작가와 독자'로서 말이다.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싶다가 '특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멜빈 매플이라는 병사가 가난 때문에 '입대'를 하게 되었는데, 사람이 죽고, 사람을 죽이는 '전장의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폭식을 일삼았고, 먹다보니 '중독'이 되어 점점 더 먹게 되었는데, 점점 불어나는 체중으로 스스로를 감당하지 못하다가 '저항의 의미'를 담아 점점 더 폭식을 하게 되면서 '반전의 마스코트(?)'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는 처지로 전락하게 된다. 그래서 입대 전 50킬로그램이었던 몸무게는 이라크 파병 이후 130킬로그램이 불어나 현재는 180킬로그램이 되었고, 앞으로 더 살이 찔 예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멜빈 매플의 현재 외모는 추악하다 못해 인간의 형상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비만'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런 말도 안 되고 역겹기까지 한 묘사속에서도 이 소설을 참고 읽을 수 있던 까닭은 다름 아니라 '반전의 메시지'로 읽을 만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몸으로 '합법'적인 저항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혼자가 아니란다. 부대원 가운데 일부가 동참을 했고, 똑같이 폭식과 비만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메시지를 보이고 있다면서 말이다. 근데 말이다. 폭식이나 비만 같은 것으로 어떻게 '저항'을 하고, '반전'이라는 구호를 외칠 수 있다는 것일까? 이게 또 아멜리 노통브를 '천재'라고 부르는 근거로 사용되기도 한다. 아무튼 '기발'하기 때문이다. 폭식을 함으로써 '미군 내 식비'를 대폭 늘려서 미행정부를 향해 '반전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뭐 대충 그런 메시지다. 몸무게를 130킬로그램을 찌우기 위해 얼마나 먹어댔겠냔 말이다. 남들 햄버거 1개, 비스킷 몇 조각, 초콜릿 1개를 먹을 때 멜빈 매플은 그냥 쓸어담듯 먹었단다. 식판 가득 햄버거를 쌓아놓고 흡입하듯 먹어치우고, 좁은 식판에 최대한 많이 담아야 하기 때문에 모든 음식은 한데 섞여 뒤범벅이 된 상태로 먹어치웠다고 한다. 게걸스럽다는 표현을 하던데, 우리식 표현으로는 '꿀꿀이죽'이라는 훌륭한(?) 표현이 있을 것이다. 또한, 이렇게 먹는 모습이 혐오스럽다보니 동료장병들의 '사기저하'를 가속시켜서 미군사령부가 이 무의미한 전쟁에서 하루빨리 '철군'할 수 있도록...암튼,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좋은 의미'란 의미는 다 빼려박아 전달하고 있다.

처음에는 아멜리도 긍정적으로 수긍했지만, 점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지껄이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서 그저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이듯 '답장'을 보냈을 뿐이다. 그러다 멜빈 매플이 자신의 폭식과 비만의 몸이 '예술행위'가 될 수 있지 않겠냐는 아멜리의 조언(?)을 덥석 받아서 자신의 몸, 그러니까 '예술행위'를 전시할 수 있는 전문가를 소개해줄 수 있느냐는 부탁을 하기에 이른다. 아멜리는 똥 밟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자신이 한 조언이었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는 심정으로 멜빈 매플의 소원(?)을 들어주려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한 주점을 '갤러리' 삼아 예술행위를 전시할 계획을 짜고 멜빈 매플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는데, 그 뒤로 연락이 끊겼다. 아멜리가 보낸 편지에 '답장'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과연 멜빈 매플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고 있었지만, 여전히 뉴스에서는 미군병사의 사망소식을 전달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멜리는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그 뒤의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나가는 글 : 아쉽게도 이 소설의 결말은 기발하면서, 동시에 그녀의 다른 소설에서 이미 보여준 '패턴'이었기에 예상한 범위였었다. 뭐, 이런 '반전'을 두고서 기발하다, 천재적이다..라며 호평을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딴에는 '작가의 무책임'을 따져 묻고 싶은 심정이다. 도대체 이따위 '열린 결말(?)'로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냐고 말이다. 애써 구색 맞춘 '반전 메시지'도 이런 식의 결말이라면 '진정성'이 사그라들지 않느냐면서 말이다. 또한 제목에서 전하는 <생명의 한 형태>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도 그저 그런 평범함 속에 묻혀버리고 말지 않았느냐고 말이다.

사실 '생명의 한 형태'라는 표현은 미생물인 아메바 같은 '단세포 생물'을 일컬을 때 쓰는 용어다. 그런데 이런 표현을 '사람'한테 쓰질 않나. 심지어 초강대국인 '미국인'을 상대로 자극적인 메시지를 담은 것과 동시에 미군을 상대로 '반전'이라는 저항의 메시지를 전하는 숭고한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비판'을 무색하리만치 '무성의'한 결말로 끝내버리면 어쩌란 말인가? 마치 성난 군중을 몰고 중무장을 한 경찰 앞까지 행진한 '지도부'가 시위가 격해지고 일촉즉발의 심각한 사태가 닥칠 것으로 예상되자 기꺼이 동참한 시위대를 등지고 '발걸음'도 가볍게 냅다 도망친 것과 마찬가지라고 느꼈다. 다시 말해, 심한 배신감마저 들었다는 얘기다. 도대체 이런 작가의 소설을, 아니 이 소설 <생명의 한 형태>를 읽고서 극찬을 아끼지 않는 독자들의 뇌구조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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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독서평설 2026.2 독서평설 2026년 2월호
지학사 편집부 지음 / 지학사(잡지)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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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독서평설 2026년 2월호> 지학사 편집부 / 지학사 (2026)

[My Review MMCXCIX / 지학사 2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스물여덟 번째 리뷰는 대입논술 글쓰기 교재로 탁월한 <고교 독서평설 2026년 2월호>다. 원래 잡지책 출간이 월말에 있기 때문에 늦어도 지난주 1월 마지막주에는 리뷰를 올렸어야 했는데, 1월호 교재를 늦게 접하고 리뷰도 늦게 쓴 바람에 2월호도 조금 늦게 리뷰를 쓰게 되었다. 3월호부터는 빠르게 리뷰를 올릴 것을 약속 드린다.

<고교 독서평설 2026년 2월호> 관점 포인트 : 사실상 '탁월한 논술 교재'로 정평이 나있기 때문에 논술 글쓰기를 하기 위해서 꼭 읽어야 할 잡지임에 틀림없다. 웬만한 논술학원비용은 가히 천문학적이라 얘기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말씀은 굳이 드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런데 그걸 '잡지 1권 값'으로 뽕을 뽑을 수 있다면 얼마나 '가성비'가 높겠느냔 말이다. 특히나 고3수험생들은 그저 부르는게 값이다. 그러니 본격적인 '대입논술시험'을 대비하기 위해서 시험직전 한두 달은 다닐 생각을 하더라도 '기본기'를 익히기 위해서, 틈틈이 글쓰기 연습을 하기 위해서라도 이 교재를 적극 활요하시길 바란다.

앞서 1월호 리뷰에는 '개요짜기'의 요령과 중요성에 대해서 잠시 설명을 드렸다. 그럼 개요짜기를 한 뒤에 논술글을 쓰는 요령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평상시 글쓰기 연습을 할 때에는 1000자 분량의 글을 쓰는 연습을 하면 좋다. 기본적인 개요는 [서론 (200자)-본론 1, 2, 3 (각 200자씩)-결론 (200자)]로 구성하면 좋다. 200자 원고지 5매 정도의 분량이니 각각 1장씩 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게 습관이 되면 자연스럽게 서론-본론-결론의 완성된 글 한 편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한 문단에는 '중심 문장'이 한 개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뒷받침 문장'으로 채우면 된다. 대개는 [중심 문장-뒷받침 문장1-뒷받침 문장2-뒷받침 문장3]으로 보통 3~4개의 문장을 쓰면 200자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각각의 문단에 뭘 써야 할지가 난감할 것이다. 어떤 주제에 대한 '나의 생각(주장)'을 정리해서 글을 써야한다는 것은 잘 알지만, 막상 쓰려고 들면 써지지 않는 것이 글(논술)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월호 '글로벌 경제정책 이모저모'에 실린 '중국의 도약과 한계 : 흑묘백묘'에 관한 제시글로 한 편의 글을 쓴다면 어떻게 쓰겠는가? 먼저 '흑묘백묘'가 뭔지 알아야 할 것이다. 이를 '배경지식'이라고 한다. 배경지식을 쌓기 위해서는 엄청난 독서량과 더불어서 '최신 뉴스/이슈'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야 한다. 먼저 제시글에는 중국의 경제성장 배경으로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를 꼽고, 현재 중국의 경제정책으로 '시진핑의 일대일로'와 대비시켜 미래의 중국 경제성장을 전망하고 있다. 보통 이런 제시글에는 '비판적인 논설문'보다 '배경지식을 넓힐 설명문' 형식으로 작성하는 것이 낫다. 물론 논술글에는 '나의 생각'이 담겨야 하기 때문에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로 마오쩌둥의 경제실패를 극복하고 중국 경제가 '두 자리 성장'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만, 현재에는 중국의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암울한 현실만 보일 뿐이다. 그 이유로 '시진핑의 일대일로'가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바로 '자신의 생각'을 담아서 비판을 하면 좋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전망하기를 써내려간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그럼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란 무엇인가? 직접적인 뜻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마오쩌둥 시절에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굶어죽는 인민들이 너무 많아진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마오쩌둥에 이어 주석 자리에 오른 덩샤오핑은 '공산주의' 체제에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하여 굶주린 인민들을 살려낼 묘안을 내놓는다. 그러자 중국 경제는 매년 '두 자리 수' 성장을 거듭하며 빠르게 정상화가 되었고 90년대에는 중국 경제가 선진국을 넘볼 정도로 급성장하게 되었다. 이를 실현가능케 한 것이 바로 '자본주의' 체제의 도입으로 중국은 '전세계의 공장'이라는 수식어로 불릴 정도로 수많은 선진국의 기업들이 앞다퉈 중국에 '제조공장'을 지어 생산에 박차를 가했던 것이다.

허나 이렇게 경제성장에 성공한 중국은 '시진핑의 일대일로'를 야심차게 준비하고 시작하지만, 이로 인해 중국 경제는 다시 휘청거리게 되었다. 영어로는 'One Belt One Road'로 쓰이며, 우리말로는 '하나의 벨트, 하나의 길'을 뜻한다. 이는 과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것처럼 21세기 경제 벨트를 '중국으로 향하게' 만들고, 전세계 모든 물량을 하나의 길, '중국을 중심으로' 모이게 만들겠다는 야심을 내비친 것이다. 이는 과거 중국과 서양을 연결했던 '실크로드'를 다시 재건함과 동시에 '해상 실크로드'까지 구축해서 '제2의 실크로드'까지 활성화하여 전세계 경제 중심국으로 새로워진 중국을 내세우겠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이다. 그래서 시진핑은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비롯해서 중남미까지 범위를 확대하여 강력한 '경제권'을 내세우려 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중국은 '일대일로 참여국'을 날로 늘여나갔고, 참여를 희망하는 국가에게 엄청난 '경제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일대일로 참여국가'는 하나같이 경제침체를 겪었고, 이로 인해 중국은 엄청난 지원금을 회수조차 하지 못해 '파산'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런 경제적 부채는 고스란히 '중국 인민들'에게 전가되어, 과거 마오쩌둥 시절과 마찬가지로 헐벗고 굶주리는 중국 인민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이런 '흑묘백묘'와 '일대일로'는 묘한 대비점을 비춘다. 전자는 중국 경제성장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후자는 중국 경제에 비상등을 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대로 중국 경제는 폭망하고 말 것인가? 우리는 흔히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고 말한다.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이웃나라가 망하면 우리나라가 득을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한다. 진짜 그럴까? 결과는 정반대다. 우리를 둘러싼 나라들이 다들 선진국이고 잘 사는 나라라면 우리는 어떤 혜택을 볼까? 전쟁을 대비할 것 없이 평화체제에서 오직 경제발전에만 올인하며 성장가도를 달릴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전세계의 이목과 물량이 잘 사는 우리 주변국가들을 향할테니, 우리나라도 별다른 홍보 없이도 덩달아 이득을 챙길 수 있게 된다. 중국을 방문한 관광객이 자연스레 한국과 일본을 방문할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더구나 평화로운 시국이라면 자유로운 왕래는 더욱더 활성화 될 것이다. 그런데 중국 경제가 폭망해서 거지꼴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 여파가 이웃나라인 우리에게도 끼치게 된다. 중국에서 살기 힘든 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우리나라에 들이닥칠 것이며, 경제침체로 인한 중국내 사회불안으로 시위와 폭동이 연일 일어나게 된다면 이웃나라에도 그 불똥이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경제가 폭망한다고 우리가 박수를 치며 좋아할 일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중국의 경제가 정상화되고 성장가도를 달리는 것이 훨씬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일대일로'가 이대로 폭망하는 것을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마냥 '시진핑의 일대일로'가 성공하는데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까? 시진핑이 '독재자'가 아니고,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위험이 없다면 상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시진핑의 속내가 괘씸하기 때문에 마냥 협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시진핑의 독재와 중국의 독주를 막고 엇나가지 않도록 '조율'을 할 수 있는 카드를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중국 경제의 정상화는 '대한민국의 협력' 없이는 힘들다는 말이다. 더구나 중국이 '대만침공' 등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를 억지할 수 있는 실력도 '대한민국'이 갖고 있다. 물론 대한민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중국을 압도할 만큼은 아니지만, 적어도 중국이 '정상국가'로서 해서는 안 될 법한 행동을 취했을 때, 대한민국이 그 반대에 서서 중국의 견제할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중국이 필요로 하는 '반도체'와 'LNG선' 등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첨단기술력으로 만든 제품을 중국이 공급받지 못한다면 중국 경제의 숨통은 점점 조여올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중국의 시진핑은 현재 대한민국과 긴밀한 협조를 아끼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전망인 것이다.

그렇다면 '시진핑의 일대일로'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시진핑은 '경제지원'을 한다는 핑계로 지원국의 경제 뿐만 아니라 정치, 군사, 안보 등등 모든 면에서 '중국의존도'를 높이려는 꼼수를 부리려 하고 있다. 그 꼼수가 '악의적'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거대한 중국 자본으로 대대적인 사업을 펼쳤지만, 그 사업으로 인해 전혀 수익을 얻지 못하고 '부채'만 늘어나서 중국에게 경제적 의존만 더욱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를 간파한 국가들이 '중국의 자금'을 빌려쓰긴 했지만 '중국'을 싫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식의 '일대일로'가 제대로 진척될 턱이 없다. 중국은 다른 나라에 경제지원을 한만큼 지원 받는 국가의 경제성장까지 보장하는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일대일로'가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성공한 덕을 우리나라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세계의 이목과 물량이 중국으로 쏠리는데, 그 '경로'에 있는 대한민국을 그냥 스쳐지나갈 리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류열풍은 전 세계적인 흐름이 되었고, K-팝, K-뷰티, K-방산, 그리고 K-한식에 이르기까지 '한국'이란 브랜드가 트랜드가 되어 버렸다. 이런 흐름에 중국도 경제성장으로 보탬을 한다면 전세계의 중심은 유럽과 미국에서, 다시 한국과 중국이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중국은 정신 차리고 전 세계의 '신뢰'를 얻는데 이바지해야 한다. 야심과 탐욕만 가득한 '일대일로'를 걷어내고, 인류공영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공생일로(共生一路)'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나가는 글 : '배경지식'의 중요성과 '배경지식 쌓는 방법'을 일깨우기 위해서 분량이 넘치도록 글을 써보았다. 어떤가? 하나의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아서 글을 쓰는 연습을 해본다는 것에 감이 조금 왔는지 모르겠다. 논술글쓰기는 '교과서적인 지식'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함을 느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지런히 '배경지식'을 쌓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정돈해서 차곡차곡 '주제별'로 쌓아놓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대입논술시험'에 임박해서 부랴부랴 논술학원에 등록한다고 '고득점'과 '합격'을 보장받을 수는 없다. 진짜 한달 전에 논술학원에 등록하고 '명문대 합격했다'는 성공사례는 철저히 '논술준비'를 해온 학생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다. 결코 '논술학원'이 우수하기 때문에 합격률이 높은 것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논술만큼 '명강사', '일타강사'라는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는 것도 없다. 논술 성적은 '연습'과 '노력'에 정비례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꾸준히 쓰고 또 쓰는 연습을 해보길 바란다. 그래야 실력도 쑥쑥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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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길 - 소년공에서 대선후보까지, ‘그들의 악마’ 이재명이 걸어온 길
박시백 지음 / 비아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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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길 : 소년공에서 대선후보까지, '그들의 악마' 이재명이 걸어온 길> 박시백 / 비아북 (2025)

[My Review MMCXCVIII / 비아북 22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스물일곱 번째 리뷰는 박시백 화백의 <이재명의 길>이다. 현재는 21대 대한민국 대통령인 이재명의 일대기를 엿볼 수 있는 만화책이다. 솔직히 역대 대통령을 역임한 이들의 만화책을 잘 보지 않는다. 왜냐면 대부분 그들을 '미화'하는데 중점을 둔 만화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특히 보수를 자칭하는 이들의 만화는 더더군다나 안 본다. 물론 전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웬만하면 거르려고 한다. 허나 '박시백 화백'이 쓴 책이라서 이 책을 골랐다. 비록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서 내놓은 책이라서, 비상계엄에 이은 탄핵정국이란 혼란한 시점에 내놓은 책이어서 자칫 '편파적'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멈칫했지만, '박시백' 세 글자만 믿고, 늦었지만, 읽었다. 그리고 '이재명'이란 인물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동안 그의 정치행보를 보면서 '노무현'을 떠올리곤 했지만, 너무도 많은 구설수 때문에 '진의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재명'을 절대적 신뢰도 하지 못하고 망설였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면서도 그들의 정치행보에 전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다. 당시에 나의 정치이해도가 많이 떨어졌고, 기존의 정치인(3김 시대)과는 사뭇 행보를 보면서 '저게 맞나?' 싶어서 의심부터 했기 때문이다. 허나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진심'을 보이기 위해서 하나 뿐인 목숨을 내놓았을 때 많이 부끄러웠다. 믿어야 할 사람을 전적으로 믿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앞섰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 내 마음속 유일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남았다. 이제 그 뒤를 이어 '이재명'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올 수 있을 것인가? 지켜볼 일이다. 나는 '정치인'을 전적으로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책속으로 들어가보자.

<이재명의 길> 관점 포인트 : 이 책에 앞서 이재명의 <결국 국민이 합니다>를 읽었다. 그리고 비상계엄부터 탄핵정국까지 그가 한 '연설' 모음을 하나하나 들여다 보았다. 마음에 들었다. 정치인은 '국민을 위한 머슴'이라는 말을 올곧게 실천한 듯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 말만 듣어 어떻게 온전한 믿음을 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말본새'라는 것이 있다. 사람 말을 경청해서 듣다보면 그 사람의 '진심'이 묻어나는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인'들은 더더욱 그렇다. 워낙 말이 많고 길게 하다보니 끝까지 듣다보면 '본심'을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재명의 연설 가운데서 '진심'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은 그의 연설에서 '주어'가 늘 '국민'이기 때문이다. 대개 '권위적이며 권력에 찌든 정치인'들의 말본새에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법이다. 자신의 기분이 나쁘고, 자신의 이익에 심대한 손해를 끼친다면 불같이 화를 내고 자신의 감정을 거칠게 표현하기 십상이다. 특히 정치초보자(입문자)들이 그렇다.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 없어서 흥분하고, 횡설수설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재명의 연설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오직 '국민의 기분',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거침없이 발언한다.

나는 젊은 시절을 '3김 시대의 끝물'즈음에 보냈다.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을 일컫는 말인데, 그 가운데 두 명이 대통령을 지냈다. 그 가운데 김영삼은 군사독재시절 민주화운동을 이끈 주역이었는데도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변절'하고 말았다. 집권욕이 너무 강해서 '나 아니면 안 돼'라는 의식이 너무 강했던 것이다. 그래서 노태우에게 정권을 빼앗기고, '3당 합당'으로 대통령을 꿰찬 야욕을 숨기지 않았다. 그나마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의 안위보다 대한민국의 안위를 더 걱정한 빼어난 정치인이었다. 허나 '가까운 사람의 비리'를 눈감아 주려다 함께 나락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정치인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았으나 '주변 정리'에 철저하지 못해 끝내 대한민국에 폐를 끼치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내 기준으로는 '반쪽짜리 대통령'이다.

그러다 뜻밖에 만난 인물이 바로 '노무현'이었다. 5공 청문회 때 살인마 전두환을 향해 일갈을 던졌던 바로 그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정치인'으로 눈여겨 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정치인의 표본'으로 삼을 만한 준걸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허나 그동안에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유형'의 정치인이라 온전히 지지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가 내뱉는 말 하나하나에 '국민'을 주어로 내세우는 것을 보면서, 올바른 정치인이라면 노무현 대통령처럼 해야 한다는 계산이 섰다. 아주 뛰어나게 잘 했다는 이미지로 강렬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에 없던 새로운 스타일이라 '적응'하는데 오래 걸렸다. 주위에 시기하는 무리들도 너무 많았고, 너무 앞선 정치스타일에 따라오지 못하는 이들도 천지빼깔이었다. 그렇게 우당당거리며 국정을 운영하는데도 꽤나 잘 이끌어가고 '대한민국 정치'에 새 바람을 불어 일으켰던 것이다. 그런데 퇴임 직후에 어이없는 '논두렁 시계'로 인해 너무 일찍 서거하고 말았다. 더러운 정치가 펼쳐지고 있는 현장을 여실히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 뒤를 잇는 이명박근혜 정권은 말할 것도 없다. 부패와 무능으로 점철된 부끄러운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기어코 박근혜는 탄핵 당하고 말았다.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부패정치인, 그리고 종교(신천지)가 국정에 개입하는 시작을 알리는 비극적 사건이었다. 탄핵 이후에 대통령이 된 문재인은 제법 잘했다고 평가한다. 인수위조차 없이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나름 최선을 다해 국정을 정상화시키고 노무현이 못다한 꿈을 친구이자 동료였던 문재인이 이룬다는 '국정과제'도 나름 선방했다. 새로운 대한민국은 이래야 한다는 스타트를 잘 끊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재인을 둘러싼 인물들 가운데 '제대로 된 인물'이 없었다. 이른바 문재인을 지지하는 정파인 '문파'가 다음 대통령 후보로 제대로 된 인물을 지지하지 못하고 만 것이다. 이런 오판은 윤석열이라는 희대의 막장 개또라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거든 셈이 되었다. 왜 문파들은 '이재명'이란 인물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일까?

이 책에서 본 이재명의 어린시절은 지금의 50대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추억'내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대부분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을 살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가난해서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없고, 당연히 누려야 할 것조차 '당연히' 누릴 수 없게 만든 가난을 경험했던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재명은 그런 점에서 친숙한 인물이다. 그런데도 참 똑똑하고 올곧게 성장했다. 불우한 시절을 보냈음에도 삐뚫어지지 않고 올곧게 성장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그 시절을 겪어본 이들은 다 알 것이다. 그럼에도 그 시절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재명처럼 '깨끗하게' 살아가는 것을 자부심으로 생각했다. 비록 '가난'해서 가진 것은 하나 없었지만, 깨끗한 '양심'과 콩 한 쪽도 나눠 먹으려는 착한 '마음'을 자긍심으로 삼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가려 무던히도 애썼기 때문이다. 이재명은 그런 올곧은 성정에 '똑똑한 머리'까지 타고난 셈이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가족들을 위한 돈벌이를 하는 '소년공'으로 살며 공장을 전전했을텐데도 '검정고시'로 고등학교까지 졸업을 하고, 대학진학은 물론 '사법고시 패스'까지 성공했기 때문이다. 웬만한 수재가 아니었다면 해내지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 이재명이 대학을 진학하고 사법고시를 패스하던 시절이 바로 '전두환/노태우' 시절이다. 다른 동료 학우들은 독재타도를 외치며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재명은 '가난'에서 간신히 벗어나 겨우 '자기 인생'을 살고자 첫 발을 내딛었는데 그 모든 것을 내놓고 시위에 참여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런 '마음의 빚'을 사법연수를 우수한 성적으로 패스한 이재명이 무겁게 느꼈기 때문에 '판검사'가 아닌 '변호사의 길'을 선택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의 진심을 무엇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가 변호사 시절의 행보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힘이 없어서 억울한 처지에 놓인 이들을 변론해주는 '인권 변호사'로 거듭 났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청년 이재명이 노무현을 만난 인연을 소개하고 있다. 노무현의 한마디가 이재명을 '판검사'가 아닌 '변호사'로 이끌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변호사는 뭘 해도 밥 안 굶습니다"라는 말이었단다. 어린 시절 가난이 사무쳤던 이들에겐 구원같은 말이었을 것이다. 뭘 해도 굶을 일이 없다니 얼마나 기뻤겠느냔 말이다.

그렇게 변호사의 삶을 살다 '정치'로 발을 내딛는 사건이 생겼다. 성남시민들이 발의한 '성남의료원 요구'가 정치권의 횡포로 인해 무산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세상 일은 '정의감'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마음에 새겼을 것이다. 그래서 정치판에 뛰어들었단다. 국민들의 열망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뭐라도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국민들이 원하는 것', '국민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꼭 필요한 '힘'이었던 것이다. 이걸 '권력욕'으로 오해사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언제나 주어를 '나'가 아닌 '국민'으로 삼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이 바라는 것, '국민'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재명은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 '성남시장' 시절부터 무던히도 애를 썼던 모양이다.

그렇게 '경기도지사', '국회의원', '당대표', 그리고 '대선후보'까지 오로지 '국민'을 위해서 정치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찾아헤매던 '이재명의 길'이 이 책에 잘 나타나있다. 물론 모든 것을 다 신뢰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재명과 관련된 수많은 '구설수'도 마찬가지로 의심해 볼만하다. 이재명이 해낸 '성남시민'을 위한 것들, '경기도민'을 위한 행정결정들, 그리고 국회의원과 당 대표를 하며 '국민'들을 위한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없듯, 이재명을 둘러싼 각종 구설수도 마찬가지로 의혹을 품고 의심을 해봐야 할 일이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그렇게나 수없이 많은 '검찰조사'와 '사법부판결'을 받고 난 현재를 본다면, 이재명의 진심은 굉장히 높은 수준으로 신뢰할 수 있다고 보여진다. 그간 언론매체와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국민의힘'에서 얼마나 정치적 매도를 하고 질타를 했느냔 말이다. 그런데도 이재명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대장동에서도 살아남았고, 김부선 가짜뉴스에서도 살아남았고, 형수xx막말/친족정신병원행이란 인신공격에도 살아남았다. 수많은 정적들이 '이재명은 악마다'라고 외치지만 이재명은 '진실'을 밝히고 당당히 살아남았다. 그럼에도 이재명을 발목 잡기 위해 '전과4범'이라고 몰아갔지만, 이재명을 직접 겪어보고 지켜본 국민들은 이재명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이래저래 안 되겠다 싶은 '국민의힘'과 '신천지/통일교' 광신도, 그리고 '윤석열 정권'은 급기야 이재명을 암살할 목적으로 테러하기에 이르렀다.

나가는 글 : 그런데도 이재명을 살아서 돌아왔다. 결국 '21대 대통령'이 되어 대한민국을 세계에 우뚝 서게 만들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를 꼼짝 달싹 못하게 만들었고, 중국 시진핑과 일본의 다카이치 사나에를 함박 웃음 짓게 만들었고, 미중일 정상 모두를 '한국 없이'는 자국의 이익과 안위를 지키지 못할 정도로 단단한 위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콧대 높던 유럽정상들도 너나할 것 없이 '한국의 손'을 서로 먼저 잡으려고 안달나게 만들었다. 태국과 캅보디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주제 파악도 못하고 깝치던 동남아시아 각국에게 '자기 분수'를 깨치게 만들었으며, 윤석열 정권을 대놓고 까대던 북한마저 이재명 정부 앞에선 말을 아끼고 몸을 사리고 있다. 겨우 대통령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이런 변화가 찾아오고 있는 것일까?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이재명'이 아니다. 이재명은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그간 '윤석열 검찰독재'가 망가뜨린 대한민국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이재명'이란 도구가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셈이란 말이다. 이건 이재명 대통령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 자신을 '머슴'으로 부르며, '국민'을 떠받들며 모시겠다고 말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 같아도 결국 '국민'이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자신은 '머슴'이 되어 대한민국 국정에 최선을 다해 '정상'으로 바꿀테니, '국민'들 모두가 이재명이 잘 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감시하고 지켜봐 달라고 말이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은 똑똑해져야 한다. 훌륭한 머슴을 대통령 자리에 뽑아놓은 것으로 '국민의 책임'을 다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머슴이 제대로 국정 운영을 해서 대한민국을 더욱 빛내고 국민의 삶을 삐까뻔쩍하게 만들 수 있도록 제대로 부려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는 윤석열처럼 '자격'도 없고, 박근혜처럼 '무능'하고, 이명박처럼 '부패'한 정치인이 두 번 다시 발도 붙이지 못하도록 말이다. 어찌보면 현재의 시점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장미빛으로 바꿀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셈인 듯 싶다. 우리가 이재명 같은 대통령을 언제 또 겪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다음 대권주자로 꼽을 사람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재명이란 유용한 '도구', 똘똘한 '머슴'을 제대로 한 번 부려보아야 할 것이다. 이재명도 국민들이 그걸 바라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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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 끊기 - 반복된 문제를 부수는 최소한의 행동 설계법
빌 오한론 지음, 김보미 옮김 / 터닝페이지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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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페이지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관성 끊기 : 반복된 문제를 부수는 최소한의 행동 설계법> 빌 오한론 / 김보미 / 터닝페이지 (2026)

[My Review MMCXCVII / 터닝페이지 3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스물여섯 번째 리뷰는 오프라 윈프리가 극찬했다는 <관성 끊기>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오프라 윈프리 쇼'는 2011년에 막을 내렸기 때문에 이 책은 적어도 십여 년 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이 책은 무려 20년 동안이나 베스트셀러로 꾸준히 읽힌 유명한 책이라고 한다. 저자의 여러 책 가운데서도 꾸준히 출간되고 있는 책이기도 하고 말이다. 저자의 이력을 짧게 이야기하자면, '상담사'이자 '가족 치료 전문가'라고 한다. 실제로 '정신의학과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의사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재는 전문적인 치료에 앞장서기보다는 '문제해결'을 위해 상담치료와 강연을 더 많이 하고 있다. 특히 수많은 사람들이 '문제해결'에 큰 효과를 봤다면서 그가 강연을 할 때마다 늘 자신의 '상담경험'을 근거로 내보이고 있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수많은 성공사례 가운데 일부다.

<관성 끊기> 관점 포인트 : 우리는 '문제해결'을 하기 위해서 정식적인 절차를 따르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 권위가 있는 사람의 치료를 받기를 원한다. 즉,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번번히 '실패'를 경험한다면 어떤 절차를 따라야 할까? 해마다 새해를 맞이하면 '금연'을 다짐하고, 건강을 위해 '살빼기'를 결심하고 헬스장에 큰 돈을 아끼지 않곤 하는데,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담배를 피고, 살이 더 쪄 있는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이럴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애초의 목표를 '포기'하고, 예전처럼 살아가면서 '어차피 난 안 돼'라는 푸념만 늘어놓기 일쑤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새롭게 다짐을 하고 또다시 노력하지만, 또 얼마 못가서 담배를 피고, 살 빼기에 실패한 자신의 모습을 저주하며 분노하기에 이르기도 한다. 왜 자꾸 실패하는 걸까?

이렇게 자꾸 반복되는 실패를 경험한 이들이 찾는 것이 '자기계발서' 같은 책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자기에게 딱 맞는 '계발서'를 찾아서 성공을 하고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기쁨을 만끽하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또다시 실패를 경험하며 애꿎은 '자기계발서' 탓만 하는 경우도 많다. 여기서 <관성 끊기>의 저자 빌 오한론은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결국 실패할 것을 뻔히 알고, 이미 실패한 경험도 했으면서 '같은 행동'만을 하고 또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를 테면, 담배를 끊겠다는 사람은 새해만 되면 늘 결심하지만, '담배가 피고 싶은 상황'을 제거할 생각은 못하고 그저 결심하고, 또 결심만 할 뿐이기 때문에 제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제대로 담배를 끊을 수 있을까? 저자는 무작정 결심만 하지 말고, 꼴초였더라도 '담배'를 순간적이나마 피우지 않았던 상황을 떠올려 보라고 권한다. 그러자 그 남자는 절대로 담배를 피우지 않는 순간이 있다면서 바로 '자신의 아내와 아기가 있는 장소'에서는 절대 피운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저자는 왜 피우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남자의 대답은 이랬다. "왜냐면 나는 아내와 이제 두 살이 된 아기를 정말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사실 아내가 담배연기를 무척 싫어하거든요. 그리고 아기에게도 담배가 해로울 것이 틀림없구요. 그래서 아내와 아기가 있는 집안에서는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정말 피우고 싶을 때에는 몰래 집밖으로 나가서 피우곤 했어요. 담배연기가 몸에 배지 않도록 조심도 했고요."

그러자 저자는 해결방법을 제시했다. 지금 당장 아내와 아기랑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라고 조언했다. 그럼 담배를 절대 피울 수 없을 것 아니냐면서 말이다. 또한, 담배가 피우고 싶을 때마다 '아내와 아기 사진'을 꺼내보라고 조언한다. 그래도 피우고 싶어진다면 아예 '담배케이스'에 아내와 아기 사진을 함께 넣어 자주 볼 수밖에 없게 만들라고 조언했다. 그렇게 하면 당신은 원하는대로 담배를 끊을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러자 그 남자는 그 방법은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며 당장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한 달 뒤, 그 남자는 다시 저자를 찾아와서 말한다. 지난 한 달 간 정말로 담배를 단 한 개피도 피우지 않았다고 말이다. 저자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고 되물었다. 그 남자는 아내와 함께 있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늘렸다고 한다. 퇴근시간이 되면 곧바로 집으로 향했으며, 주말에는 아내와 함께 가까운 여행을 떠나거나 가벼운 산책을 하면서 하루종일 함께 했단다. 물론 아기도 동행을 했고, 정말 담배가 피우고 싶을 때에는 아기를 품에 안고 놓아주질 않았단다. 처음 1~2주는 정말 힘들었지만, 이제는 정말 어렵지 않게 담배를 피우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했단다.

위의 사례는 책속에 있는 '실제 사례'가 아니다. <관성 끊기>에 나오는 핵심적 문구인 '해결 지향적으로 행동하기'라는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 나라에서도 쉽게 연상할 수 있는 소재로 살짝 바꿔서 재구성해 본 것이다. 책속의 내용은 유독 '성생활 문제'에 대한 사례가 정말 많이 나왔다. 이는 '서구사회'에서는 일상일 수 있겠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조금은 이질감이 느껴지는 대목들이 많아서 살짝 바꿔보았다. 하지만 핵심 포인트를 이해하는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어떤가? 이런 방식이라면 '금연'에 성공할 가능성이 정말 높아보이지 않는가? 새해가 되면 금연 결심을 하던 방식 그대로 '매해 결심'만 해서는 좀처럼 성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해결 가능성'이 높은 방법으로 실질적인 행동을 꾸준히 하게 된다면 분명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가? 이게 바로 저자가 말하는 '해결 지향적 행동하기'의 핵심이다. 물론 해결 방법이 '하나'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해결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면 얼마든지 다른 패턴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담배 생각이 간절할 때마다 좋아하는 취미생활에 흠뻑 빠지거나,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거나 말이다. 중요한 것은 '담배를 끊겠다'는 결심이 흔들리지 않고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구체적인 상황'을 떠올려서 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나가는 글 : <관성 끊기>가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가 된 데에는 높은 성공률에 있다. 책속에서 저자의 조언대로 했더니 문제해결에 성공했다는 사례가 끝없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너무 성공확률이 높아서 도리어 의심이 들고, 전형적인 사기수법과도 유사한 점이 없지 않다고 느껴질 정도로 많지만, 이처럼 성공확률이 높은 까닭은 딱 한 가지였다. 바로 '실행 가능성'이 높은 방법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보통의 의사였다면 자신을 찾아온 환자에게 '의학적인 조언'을 하고, 병증에 딱 맞는 '처방전'을 내주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 그것이 의사의 '직업윤리'에도 맞고 말이다. 그런데 저자는 달리 생각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학지식'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으면 과감히 배제하고, '실행 가능성' 높은 문제 해결방법을 제시하며 상황을 개선하는 것에 집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적중했다. 이게 저자가 의사 활동보다 '강연'과 '상담'을 더 많이 하는 까닭일 것이다.

이런 '해결 지향적 삶'은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다양하게 하고,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 '실행 가능성'을 따져 본 뒤, 가능한 큰 목표가 아닌 '최소한의 목표'를 잡아 꾸준히 실천할 수 있게 하는 삶이다. 책 제목인 <관성 끊기>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상황을 '관성'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그 관성을 단칼에 끊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어렵고 끊기 힘든 '나쁜 습관'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바로 '작은 실천'이 답이다. 최소한으로 '할 수 있는 행동'을 찾고, 그 행동을 꾸준히 반복함으로써 잘못된 방향으로 굴러가던 '관성'마저 올바른 방향으로 바꿀 수 있게 하는 힘이 바로 '작은 실천'으로 봤던 것이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작은 행동' 하나 바꿨을 뿐인데, 결국엔 '문제 해결'을 해내는 실마리로 작용한 셈이다.

엉망진창으로 뒤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는 방법은 '화려한 검술'을 힘들게 익혀서 단칼에 베어내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는 실타래를 제대로 풀 수 없고, 결국 잘려나간 실은 제대로 쓸 수도 없게 된다. 하지만 엉킨 실타래를 유심히 살펴본 뒤에 살짝 튀어나온 '실마리'를 붙잡고 끈기있게 차근차근 풀어내다보면 어느새 실오라기 하나 손실 없이 온전히 실타래를 풀 수 있고, 풀어진 실타래를 온전하게 다시 감으면 얼마든지 원하는대로 실을 써먹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관성 끊기>는 그렇게 뒤엉킨 실타래를 푸는 심정으로 읽어내면 좋을 것이다. 2026년 새해가 밝았다. 그간 절대 풀 수 없을 것 같았던 '나쁜 습관'이 있다면 이번엔 이 책으로 한 번 제대로 풀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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