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교양 - 일상에서 나를 살리고 살리는 최소한의 지적 무기
이용택.김경미 지음 / 한빛비즈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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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절실하게 느끼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표현력'이다. 학부모들의 걱정도 "선생님, 있잖아요. 우리 아이가 '아는 것'은 많은 것 같은데, 글쓰기나 발표를 하는 것을 보면 영 시원치 않아요. 왜 그럴까요?" 이런 식으로 '표현력'이 부족한 것에 대해서 토로하곤 한다. 그럴 때마다 설명해주곤 하는 것이 바로 '이해어휘'와 '사용어휘'의 차이점에 대한 이야기다. '이해언어'란 듣거나 읽으면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어휘를 말하고, '사용어휘'란 그렇게 이해하고 있는 어휘 가운데 말이나 글로 표현되어서 실제로 쓸 수 있는 어휘를 말한다. 실제로 성인들이 100개의 어휘를 알고 있다면 주로 쓰는 어휘는 고작해야 20개 남짓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서, 이해어휘에 비해서 사용어휘는 고작해야 20%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니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인간은 '망각'을 유용하게 쓰는 존재이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것 모두를 사용하는 이들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일반인의 뇌도 100%의 능력 가운데 고작해야 1% 남짓을 쓴다고 한다. 천재과학자로 유명한 아인슈타인도 고작해야 3%를 썼다고 하니 더 많이 쓰려고 노력하는 것은 하릴없는 짓일 것이다. 그런 점에 비춰보면 인간이 표현을 하기 위해서 전체의 20%나 쓴다는 것은 대단히 많이 쓴 셈이다. 그렇다면 '사용어휘'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내가 아는 100개의 어휘를 모두 사용하려는 욕심을 부려서 30~50%로 끌어올리는 방법은 너무 비효율적이면서 동시에 과부하를 일으킬 부작용이 너무 심하다. 애초에 한정된 인간의 능력이 고작 그 정도라면 차라리 '아는 어휘'를 100개에서 200개로, 300개로 늘리는 것이 더 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1000개의 어휘를 익히게 되면 그 가운데 20%인 200개의 어휘를 사용하는 셈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대화에 써먹는 어휘가 하루 평균 80~100개라고 한다. 아무리 수다쟁이라고 해도 120개를 넘기지 못한다고 한다. 의심스럽다면 자신이 하루에 쓰는 말을 녹음을 해서 일일이 단어를 세어보아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의외로 '사용어휘'를 적게 사용한다.

 

  그런데 '사용어휘'를 꽤나 많이 사용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자기 분야에서 쓰는 어휘만 추려도 하루 평균 200개를 훌쩍 넘긴다고 한다. 그렇지만 '교양 있는 사람들'은 이보다 훨씬 많은 하루 평균 500개의 어휘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야 말로 때와 장소를 가려가며 알맞은 어휘를 적절히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들이다. 이렇게 교양 있는 사람들이 '사용어휘'를 많이 쓰는 까닭이 무엇일까? 그건 바로 '아는 어휘'가 정말로 많기 때문이다. 단순히 뜻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래'와 '정보지식'까지 그야말로 모르는 것이 없는 '걸어다니는 백과사전'과 같은 지식을 담고 다니는 분들인 셈이다.

 

  그리고 '교양 있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말을 참 쉽게 하고 알아듣기 쉬운 말만 골라서 한다는 점이다. 정말로 유식한 분들은 절대로 어려운 말을 하지 않는다. 대화의 상대를 배려하며 상대방의 표정을 살피며 대화가 조금이라도 자연스럽게 흐르지 않으면 쉽게 풀어가며 '같은 뜻'이라도 다양한 표현으로 이해를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양이 철철 넘치는 이와 대화를 하면 정말 기분이 좋아지고, 대화를 끝없이 이어가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끝없는 대화'를 이끌어가고 싶은데도 원치 않게 끊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생긴다. 그건 바로 자신의 교양 수준이 현저히 떨어질 때다. 상대방의 교양 수준에 주눅이 들어서 말 한마디 건낼 때마다 '모르는 내용'이 나올까봐 불안해지고, 시쳇말로 쪽팔리는(기죽는) 기분마저 들게 되면 서둘러 대화를 마치고 도망가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아니면 말 한마디 건내지 못하고 그저 듣기만 하던가 말이다. 그렇다고 '교양'을 하루 아침에 닦을 수도 쌓을 수도 없는 일이니 정말 기를 펼 수조차 없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교양을 갖춘 이들은 절대로 상대를 무시하지 않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럴 땐 차라리 '좋은 말씀'을 한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서 '경청'하는 자세를 보이면 된다. 정말로 아쉬운 것은 그렇게나 좋은 말씀인데 '알아 들을 수 없는 경우'일 것이다. 모르면 질문을 하면 정말 좋은데, 염치가 발동하게 되면, 질문도 서너 개를 넘기면 멈추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라고 문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교양'을 빠르게 쌓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간절히 바라면 길이 저절로 생기기 마련이다. 교양을 빠르게 쌓을 수 있는 좋은 교양책이 요즘에는 정말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생존 교양>은 우리가 알아야 할 '최소한의 교양'을 익힐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책이다. 그래서 제목도 '생존'시켜준다고 하지 않은가. 책속의 목차를 보면 책의 구성이 어떨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것이다. [나만 몰랐을 것 같은], [어디서 보고 들은 것 같은], [알아두면 쏠쏠할 것 같은]...'하나의 어휘'에 관련된 유래와 정보지식을 이야기하듯 설명을 곁들여서 어디를 먼저 읽어도 좋은 독서법이 될 것이다.

 

  물론, 원하는 교양을 쌓기 위해서 꼴랑 이 책 한 권으로 만족하는 어리석음은 저지르지 말길 바란다. 우리 시대에 교양은 '인공지능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미터란 '고도계'란 뜻이지만, '척도, 잣대'라는 뜻도 있다.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지인들의 전화번호도 몇 개 외우지 못하는 '디지털 치매'를 앓고 있는 현대인에게 '인공지능'은 최소한의 암기력조차 쓸 일이 없는 일상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아리야~ 비오는 날에 듣기 좋은 노래, 틀어줘"라면서 '자기 결정권'조차 인공지능에게 넘기게 될 것이다. 심지어 '데이트 코스'나 '연애 방법'까지 인공지능에게 의존하다보면 머지 않은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맺어준 사람과 중매를 하는 일도 벌어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인공지능이 빅데이터를 활용해서 '개인의 취향'까지 속속들이 알아채고 인간들을 길들이다 보면 어느 순간에 자신이 '노예'가 되어 버렸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놀라게 될 것이다.

 

  그럴 때 진정한 교양을 갖춘 이들만이 인공지능의 길들이기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만끽할 것이다. 어차피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식이 총동원되어서 만들어진 기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정교하게 만들어도, 인간을 흉내내어도, 인간을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책 <생존교양>에 담긴 지식만 달달 외우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 책에 담긴 지식을 '일상 속의 지혜'로 풀어내어서 써먹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뭔소리냐고? 예를 들면, '가스라이팅'이 뭔뜻인지 알았으면 절대로 해서도 안 되고, 당하고 있어서도 절대 안 된다는 말이다. 지식은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옮길 수 있어야 밝게 빛이 나기 때문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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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진리 - 삼성전자를 사야 하는 이유
이영주 지음 / 원앤원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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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에 주식열풍이 불고 있다. 주식투자는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원동력이 되므로 바람직한 일이지만, 자칫 투기로 변이되어 패가망신하는 지름길이 된다는 이야기도 참으로 널리 퍼져있어서 조심스러울 따름이다. 그러나 이 책에 내용을 그대로 전한다면 '주식투자는 반드시 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 왜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버는 일은 언제나 옳은 일이고, 돈이면 뭐든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솔직히 말하면, 이 부분이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황금만능주의를 연상케 하는 '돈이면 뭐든 할 수 있는 세상'이라는 표현은 우리가 부정적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솔직해지자면 '돈으로 못할 일도 그닥 많지 않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단지 '갑질'이 아닌 '품위'를 지키며 기왕이면 허투루 쓰지 말고 '가치'를 높여서 쓴다면 절대로 나쁠 것도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주식투자로 수익을 내는 것은 범죄도 아니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저자는 '일을 해서 돈을 벌면 노예이고, 돈으로 돈을 벌면 주인이 된다'는 극단적인 표현을 즐겨 쓰고 있다. 이를 [삼성전자에 입사하면 노예가 되고 삼성전자 주식을 사면 주인이 된다]고 애둘러서 표현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성실하게 일을 하는 사람들을 노예취급하고 있을까? 그건 자본주의 사회가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심화되기 때문이다. 막말로 성실하게 직장에 다니며 한 달에 400만 원씩 번다고 해도 번듯한 아파트를 평생동안 장만할 수 없는 세상이다. 1년 동안 모으면 4천 만원, 10년을 모으면 4억 원을 모을 수 있을지언정 10년 뒤에 아파트 가격은 그보다 훨씬 더 올라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 달에 100만 원씩 우량주식에 투자를 하면 늘어나는 보유주식 수에 의해 수익률은 껑충 뛰어오르고 배당금은 차곡차곡 쌓이기 때문에 10년 뒤에는 엄청난 수익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주주'가 되었기 때문에 엄연한 우량회사의 주인의 권리를 누릴 수도 있단다.

 

  딴에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만 늘어놓았기에 솔깃하기까지 하다. 특히, 은행예금 이자와 주식투자 수익을 비교하는 대목에 들어서면 당장에라도 은행에 든 적금을 깨서 주식투자에 올인하고 싶을 정도다. 허나 '투자'란 말 그대로 '돈을 던진다'는 뜻이다. 원금 보장이 되지 않고 쪽박을 찰 수도 있는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주식투자'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며 어릴 적부터 경제공부와 더불어서 올바른 투자공부가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이 대목에서는 깊이 공감하는 바다. 자본주의에서 사는데 왜 경제공부를 시키지 않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허나, 아이들 학원비를 내지 말고 그 돈으로 차라리 주식투자를 해서 아이들에게 돈을 남겨 주라는 대목에서는 알쏭달쏭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저자는 자녀에게 공부를 하지 말라고도 했단다. 대학을 나올 필요도 없다고도 말했다. 어차피 전교1등을 하지도 못할 바에야 천문학적인 학원비는 낭비에 불가하고,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를 가지 못할 실력이라면 차라리 일찍부터 돈이나 벌어서 '돈의 힘'을 과시하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아무리 '돈이면 뭐든 할 수 있는 세상'이라지만 자녀에게 학업을 등한시하고 돈 벌 궁리만 하라는 교육신념을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막말로 공부를 대충하고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었다고 치더라도, 머리(학업)가 따라주지 않으면 악착같이 번 돈을 '가치'있게 쓸 수나 있겠느냔 말이다. 물론 엄청난 부를 쌓아 유능하고 똑똑한 부하직원을 두고 부려먹으면 그만일 수도 있다지만...어쨌든 이런 내용들은 깊이 공감하기 힘든 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은 주식투자를 바람직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 더 매력적인 책이므로 초점에서 빗나간 비판은 사양하려 한다. 올바른 주식투자 방법을 간략히 정리하자면, 첫째는 "은행에 예금/적금 하기보다는 주식이 훨씬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이고, 둘째는 "주식으로 짧고 굵게 많은 수익을 내려고 욕심을 부리면 투기에 빠지기 쉬우니 장기적인 안목으로 꾸준히 투자하라"이다.

 

  은행의 연이율이 1% 미만인 시대에 무조건 예금과 적금을 드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반면에 주식에 투자하면 평균적으로 20%의 수익을 내는 경우와 20%의 손해를 보는 경우가 생기곤 하는데, 한 달에 100만 원씩 적금을 넣으면 만기에 원금 1200만 원과 연이자 약 8만 원(세금납부 후)을 받을 뿐이지만, 20%의 수익을 낸 경우라면, 원금 1200만 원에 240만 원의 수익을 얻게 되고, 20%의 손해를 본 경우라면, 원금 1200만 원에서 240만 원을 뺀 960만 원이 남게 된다. 주식투자로 손해를 본다고 해도 그리 큰 손해는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단기적으로 수익을 내려고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을 발휘해서 오랫동안 꾸준히 '보유주식 수'를 늘려나가면 은행 연이자보다 더 많은 이득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또한, 기왕에 하는 주식투자라면 '우량주식'에 투자를 하라고 권장하고 있다. 저자는 '단기투자의 위험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주식투자자의 기본 성향으로 봤을 때, '묻지마 투기'로 빠져들 위험성이 많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꾸준히 투자하는 방법을 제시했는데, 바로 '우량주식'에 꾸준히 배팅하는 방법이었다. 이미 대한민국은 '돈의 힘'을 갖고 있는 부자들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밑바탕을 깔아놓았다. 그리고 돈이 돈을 벌어다주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무르 익을대로 익었기 때문에 '돈(자본)이 많은 곳'으로 쏠리는 현상을 어쩔 수 없다고 진단하였다. 따라서 내가 부자가 아니라면 부자들이 많은 곳에서 놀아야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기업에 투자를 하려면 자산이 풍요로운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이 얘기는 곧 "삼성전자만 한 우량주식이 없기 때문에 바람직한 투자처는 '삼성전자'다"라고 썰을 풀었다. 하지만 쉬운 투자처는 결코 아니다. 일단 비싸기 때문이고 거래량도 많지 않은 우량주인 탓에 매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알뜰살뜰하게 차곡차곡 '삼성전자 주식'을 매입해두면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단다.

 

  어찌보면 이 책은 워렌 버핏과 존리의 조언을 한데 섞어놓은 듯한 책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자본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경제현상을 분석한 내용을 읽을 때면, 나름 독창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분석한 결과는 '주식투자'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청렴결백하게 살아도 경제적 노예가 될 뿐이고, 성실하게 살아도 노예로 살아가게 되고, 대기업에 취직을 해도 결국 노예로 살아가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오직 '주식투자'만이 유일한 경제적 대안이며, 주식투자에 대한 예찬마저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하지만 서민이 주식투자에 성공을 해도 부자가 될 수는 없다. 이것이 현실인 셈이다. 물론 그렇게 대대로 주식투자를 이어가면 워렌 버핏처럼 세계적인 부자가 될 수 있을지언정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극복해낼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주식투자의 붐에 편승하라는 조언은 그닥 내키지 않았다. 고작 은행 적금이자보다는 많이 벌 수 있다면서 말이다.

 

  이 책의 저자가 노골적으로 '부자의 편'에 기승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들여야 하고 있기 때문에 반감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우리 사회의 자본주의가 '빈익빈 현상'에서 허우적거리고 있기에 '주식투자 열풍'에 뛰어들어 돌파구를 마련하라는 얘기에는 공감이 가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국 '삼성전자'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말에는 불편함이 한가득 몰려왔다.

 

  이렇게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독서는 난생 처음이었다. 적어도 난 주식투자에 큰 관심이 없다. 하지만 '돈이 돈을 버는 세상'에는 무척 관심이 간다. 대한민국에서 자본력으로 으뜸인 '삼성전자'를 가지고 있기만 하는 것으로도 수익이 난다는 것에 관심이 간다는 것이 아니라 돈이 돈을 벌어다주는 지혜를 수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이 펼쳐지길 바라기 때문에 관심이 갔던 것이다. <부의 진리>란 개인적인 부유함만 추구하기보다는 보편적인 풍요로움이 보장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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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를 위한 정의, 모두를 위한 정의 - 존 롤스가 들려주는 정의 이야기 위대한 철학자가 들려주는 어린이 인문교양 13
오채환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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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아이들에게 '철학수업'은 매우 힘들었다. 웬만큼 독서실력이 된다고 여겼기에 과감히 도전을 했는데 예상은 쉽게 벗어나고 말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이들에게 '정의감'과 같은 깊은 가치관을 설명하는 일은 더욱 어렵기 그지 없었다. 그저 착하고 남을 도와주는 것을 '정의롭다'고 여겼고, 영화속에서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이 하는 일을 막연하게나마 정의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 주변에서 소방대원이나 경찰관을 떠올리며 '정의'에 대한 생각을 조금을 떠올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또 역사수업에서 공부했던 4·19혁명이나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6월항쟁을 떠올리며 독재정권이 함부로 휘두르던 불의에 맞서서 당당히 자유와 평등을 외치던 수많은 민주항쟁운동가들을 떠올리며 막연하게나마 정의란 무엇인지 가늠하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떠올린 아이들은 없었다.

 

  현실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장했던 '공리주의'조차 무엇인지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대한민국 초등학생의 철학수준이라는 점이다. 도무지 '생각'이라는 것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 교육현실이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4차 산업혁명이 닥쳐왔다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달달 외우는 지식에 만족하고 마는 것이 대한민국의 백년대계라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아이들 나름대로 괴리감을 느낄 것이다. 자신이 배우고 평가를 치루는 내용과 자신이 직접 경험하는 현실이 매우 다르다는 점을 말이다. 그런 현실에서 적절히 타협하며 공부는 공부대로 사회현실은 현실대로 따로따로 배우고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였던 것이다. 이대로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을 대신하는 생각이 도래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현명한 이들은 그런 미래를 최대한 늦추려 들겠지만, 언젠가는...결국 '그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그러면 '생각할 줄 모르는 인간'은...다시 말해, '창의성을 발휘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인공지능 로봇에게 밀려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삶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

 

  바로 이것 때문에 초등학생일지라도 '철학수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부터 '생각하는 힘'을 길러서 스스로 인생의 가치관을 형성할 줄 알고,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현명한 사람으로 거듭나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미래 사회에서 '인공지능 로봇'이라는 유용한 도구(!)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결코 '인공지능 로봇'의 노예가 되어 모든 의사결정과 선택권마저 내어주고 길들여지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 될 것이다. 편리함과 안락함이 나태와 굴종으로 변질되는 것을 용납해서도 안 되고 말이다.

 

  암튼, 이 책은 '무지의 장막'으로 유명한 존 롤스의 <정의론>을 쉽게 풀어쓴 책이다. '무지의 장막'이란 공정한 원칙 잘 지켜질 수 있도록 모두가 동의하는 절차를 통해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훌륭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인 '자유'와 '평등'은 모두를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결정될 수 없기에 불평등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불평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선천적인 능력과 지위를 모르는 '원초적 입장'에서 가장 불리한 사람에게 최대한 이익이 돌아가도록 원칙을 정한다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공정한 원칙'이 세워질 거라는 이야기다.

 

  이를 테면, 무지의 장막 안에 있는 사람이 '모든 흑인은 백인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는 법안에 찬성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자신이 백인이라면 손해 볼 것이 없지만, 만에 하나라도 장막을 걷고 나와보니 흑인이었다면 자기 스스로 노예가 되어 버리는 법안에 찬성할 꼴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지의 장막을 이용하면 애초에 '불공정한 일'을 사전에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존 롤스의 주장이다.

 

  허나 이는 너무 낙관적이고 안일하다는 비판에 놓이게 된다. 왜냐면 어떤 사람들은 기꺼이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결정을 내리길 좋아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이 손해볼 위험성이 아무리 높더라도 '엄청난 이득'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그런 결정을 내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복불복 게임'이 그렇다. 상품을 차등적으로 나누고 1등이 독차지하고 나머지는 빈털터리가 된다는 규칙에 쉽게 동의한 다음 '승자독식'의 즐거움을 만끽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가 그런 복불복 게임을 조장하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승자가 전부를 가질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뛰어드는 '주식투자'가 좋은 예이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어리석은 사람으로 치부하는 현실에서 존 롤스의 주장은 너무나 이상적인 허상을 쫓는 어리석은 짓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현실이 그렇다고 해도 그런 세상을 '바람직한 사회'라고 말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돈을 맹목적으로 쫓으라고 해도 많은 사람들은 돈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것에 가치를 부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돈을 엄청나게 갖고 있는 부자도 그렇다. 자본주의가 아무리 '돈'이 전부라고 가르쳐도 말이다. 물론 돈에 쪼들리면 비참한 삶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어서 '돈이 전부인 삶'을 최고의 가치로 여길 테지만 말이다.

 

  그래서 존 롤스도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길 좋아하는 비합리적인 사람은 논외로 놓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정한 게임'을 원할 것이라는 이상적인 결론에 다다른 셈이다. 따라서 완벽한 정의가 지켜지지 않는다고 해도 손해가 최소화될 수 있다면 비교적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공정함'이 바로 설 거라고 존 롤스는 말했다.

 

  이처럼 존 롤스의 <정의론>을 따르면 '공리주의'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최대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희생을 강요 당하는 소수의 불행을 미연에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왜냐면 '무지의 장막'이 자신을 다수의 행복에 속한 사람인지 소수의 희생을 당할 사람인지 원초적으로 가려주어서 한 사람이 받을 불행을 최소화하려고 누구나 노력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렇게 '소수의 의견'도 반영하고 배려할 줄 아는 믿음이 널리 퍼진 사회에서는 불우한 사람이 적어질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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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 - 깐깐한 의사 제이콥의 슬기로운 의학윤리 상담소
제이콥 M. 애펠 지음, 김정아 옮김, 김준혁 감수 / 한빛비즈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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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결정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아니면 저렇게 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일까? 의료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들 가운데에는 결정을 내리기 곤란한, 아니 어쩌면 답은 정해져 있는데 의료인이기 때문에 곤란한 문제들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는 책이다. 우리 사회에서 의료인들을 존경하고 사회지도층으로 당연시하는 까닭은 그들이 자타공인 똑똑한 인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똑똑한 이들조차 곤란에 빠지게 만드는 문제란 무엇일까?

 

  이를 테면, 이런 문제들이다.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다가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어떨까? 그 결과 결혼까지 하게 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스승과 제자가 사랑에 빠져 연인관계가 되거나 혼인을 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경우에는 사회적인 지탄을 받곤 한다. 근래에는 법적인 문제로까지 불거져서 처벌을 받기도 한다. 의사의 경우에도 내담자와 진료상담을 하다보면 환자의 개인정보를 속속들이 알게 되고, 의사 자신의 명성과 부를 이용해서 환자를 적극적(?)으로 보살피다가 사랑이 싹터서 연인관계를 지속하다 결혼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윤리적인 또는 법적인 문제점은 없을까? 물론 있다. 미국에서는 정신과 의사가 상담을 이어온 환자와 성관계를 하는 것만으로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정신과 상담의 경우에 환자가 의사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는 경향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환자는 의사가 자신을 돌봐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치료가 되고 있다고 믿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욱 쉽게 사랑의 포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신과 상담을 종료한 지 5년 이내에 성관계를 하거나 결혼을 하게 되면 의사 면허를 박탈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을 하는 연인 관계로 자연스럽게 발전하는 것까지 법이 막을 수 있을까? 아무런 조건도 따지지 않고 어떠한 방해로도 막을 수 없는 사랑의 힘을 막을 윤리도덕과 법적절차가 있느냔 말이다. 단지 의사와 환자로 만났을 뿐인데, 악용될 사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을 해서는 안 되는 사이가 되어야만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있느냔 말이다. 물론 어렵게 딴 의사면허를 기꺼이 반납하면 아무런 문제도 없는 좋은 해결방안이 있긴 하지만, 의사와 환자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에 빠지면 안 되는 사이가 되어야만 하는 것도 논란의 여지가 분명해 보인다.

 

  어디 이뿐인가. 미국에서는 금지된 의학실험을 개발도상국에서 실행에 옮긴다면 괜찮냐는 물음에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인권의식이나 인권법이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당연히 금지하는 의학실험을 상대적으로 인권이 뒤쳐져서 아직 법이 미흡한 개발도상국에서 합법적(?)으로 의학실험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이냐는 물음이다. 신약개발과 같은 의학실험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위험한 부작용이 예상되어서 충분한 임상실험이 불가능할 때가 있다. 그럴 때에 예상되는 부작용이 있더라도 '허용해주는 나라(!)'에서 실험을 진행함으로써 신약개발에 성공을 하거나 엄청난 비용절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윤리적으로 해도 될 일이냐는 물음이다.

 

  예전에는 '인종차별'도 서슴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던 터라 미국 사회에서도 '흑인'을 대상으로 하는 반인권적인 의학실험이 자행되곤 했다고 한다. 지금에야 '인종차별'이 철저히 금지되고 '인권의식'도 상향이 되었기 때문에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을 인간이하의 취급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상식으로 여기지만, 한때는 인간으로 생각지 않았던 흑인을 대상으로 온갖 실험을 자행했다고 한다. 그랬던 미국이 지금에는 인권보호 차원에서 '임상실험'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위험한(?) 실험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다른 나라에서 실험을 대신하고 달콤한 결과만 취하겠다는 심보는 정말이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인류를 위해서 꼭 만들어야 하는 의학실험의 경우에도 막아야만 할까? 고민스런 문제지만 개인적으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의학실험이고, 그런 위험한 실험은 어느 곳에서도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인간이 인간을 위해서 동물실험을 하는 것도 끔찍한 일인데, '인간실험'을 허용한다면 아무리 좋은 취지라 하더라도 희생을 치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코로나19 치료제'와 같이 인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실험까지 막자는 것은 아니다. 특정 국가나 기업의 이득만을 보장하는 임상실험을 반대한다는 의미다. 인류 모두의 보편적 의료복지를 위해서만 허용해야 하는 위험한 실험이라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살인자나 독재자를 살려야만 할까? 또는 범죄자나 살인자가 의사면허를 따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사는 죽어가는 생명을 아무런 조건도, 차별도 없이 기꺼이 살리겠노라고 선서를 한다. 그런데 자신이 살려야 하는 이가 연쇄살인범이라면? 또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 악명 높은 독재자라면? 기꺼이 살려야만 할까? 만약 의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에 기꺼이 살려낸다면, 다시 살아난 살인자와 독재자가 더 많은 사람들을 또다시 죽음으로 내몰 가능성이 아주 높은데도 말이다. 한편, 과거에 범죄를 저지르거나 살인을 저지른 이가 엄청난 공부를 해서 의사면허를 취득한다면? 당연히 의사면허를 내주어야만 할까? 의사가 되어 또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살인을 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또는 환자들이 그와 같은 사실을 알고도 기꺼이 자신의 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그 의사에게 진료를 받거나 수술을 받으려 할까?

 

  결코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다. 이 책에는 미국 사회에서 윤리적으로 금기되고 있거나 법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의료적 문제에 대한 논란거리를 담아 놓았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추려서 위에 열거해보았는데, 당신은 명쾌한 답을 내놓을 수 있었는가? 때로는 쉽게 답을 낼 수 있었지만 대다수의 논란거리는 정말 답을 내놓기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 이를 테면, '진상 환자'에 대해서 치료 거부를 하는 것이 옳으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하는 의료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겠는가? 의사도 사람인지라 감정이 개입될 수 있지만 꺼져가는 생명을 눈앞에 두고서 망설이는 이를 의사라고 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 되어 버리면 '또 다른 문제'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상에 쉬운 문제란 결코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딱 한 가지다. 수많은 문제에 대해서 우리 모두 함께 고민해보는 것이다. 물론 갑론을박이 이루어질테고 명쾌한 답을 내놓기보다는 더욱 심한 혼란속으로 빠져버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원하는 해답에 다가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만 할 것이다. 이때 '공리주의'나 '다수결 원칙'으로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다. 어쩌면 '똑같은 문제'에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서로 다른 해법'을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완벽한 인간은 없다'는 당연한 진리를 마주하게 되면 그런 혼란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지혜로움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지혜를 나눌 때에야 비로소 밝은 사회로 한발짝 더 나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렇게 나누는 지혜를 더욱 빛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자세가 바로 '경청'일 것이고 말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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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짝 심리학 - 현대 심리학의 초석을 다진 3인의 천재들 한빛비즈 교양툰 7
이한나 지음 / 한빛비즈 / 2020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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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덧 <교양툰>시리즈를 10권이나 읽었다. 이 시리즈가 매력적인 까닭은 무엇보다 어려운 인문학 교양을 재미난 만화형식으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만화형식이 가져다주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때로는 독으로 다가오곤 하지만 '가벼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짬짬이 <고전>을 함께 읽어주는 센스(?)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에 어렵기만 한 <고전>도 한결 가볍게 읽어내는 깜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교양툰>은 어려운 심화문제를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모범답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낸 <교양툰>일수록 그 아우라가 더욱 영롱할 수밖에 없다.

 

  혹시 프로이트의 저서들을 읽어 본 적이 있는가? 칼 융의 책도 읽기 거북하기는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쉽다고 여겨지는 아들러의 저서들도 읽다보면 맹해지는 느낌을 받기 십상이다. 왜냐면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짜깁기한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긴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심리)'을 연구하는 학문이니 설명을 하다보면 막연해지기 일쑤일 법도 하다. 또한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도 저마다 천차만별이니 이를 '한 가지 이론'으로 꿰뚫어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에 심리학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일 테다.

 

  이를 테면, 유명한 심리학책 가운데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이 있다. 물론 이 책은 '자기계발서'에 더 가까운 책이지만 남자의 심리와 여성의 심리를 밑바탕에 깔고서 풀어낸 책이기에 심리학책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학문적 근거는 '경험'에서 비롯하였다는 썰로 풀어냈기 때문에 매우 빈약하지만 누구나 읽기만 해도 쉽게 공감이 갈 정도로 남녀의 심리묘사를 적절히 해냈기 때문에 더욱 유명해진 책이기도 하다. 암튼 이 책이 남자와 여성의 심리를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기는 하지만 100%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자라고 무조건 동굴로 들어가길 좋아하고 여자라고 무조건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폭력적인 성향을 내보이는 남녀도 있을 것이며, 당황하거나 놀라서 두서 없이 행동을 일삼는 경우도 참 많다.

 

  이처럼 '심리학'은 매우 다양한 사례를 토대로 원인을 밝혀내고 해법을 제시하는 학문이기에 대충 그럴 것이라는 식으로 두루뭉술한 결론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경험'에 근거한 자기계발서와는 수준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은 매우 깊이 있게 '마음'을 분석하고 결론을 내리기까지 복잡다단한 과정으로 풀어낼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엄청나게 복잡하고 난해하기까지 한 학문인 셈이다.

 

  그런데 <교양툰>에서는 어려운 설명은 다 재껴두고 프로이트는 '변태', 아들러는 '열등생', 융은 '도덕군자'라는 핵심어로 아주 쉽게 풀어냈다. 이런 핵심낱말만으로도 얼마든지 그들의 심리학을 '분석'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다. 마치 '일타강사'의 강연을 들은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만들어버린 것처럼 아주 쉽고 재미나게 심리학자의 이론을 마스터해버리게 된 셈이다.

 

  이를 테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기초는 '무의식의 세계'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근원은 바로 '무의식'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무의식은 우리가 인식할 수 없지만 '꿈의 대화'를 통해서 들여다 볼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 핵심 포인트다. 이때 '무의식의 세계'에는 인간의 온갖 욕망이 담겨 있는데, 그 가운데 '성적인 욕망(성욕)'이 99%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석한 것이 바로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핵심이다..라고 깔끔하게(?) 설명하였다. 원초아-자아-초자아...뭐 이딴 식으로 설명한 프로이트의 저서를 읽는 것보다는 매우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는가. 바로 이 책이 매력적으로 읽히는 까닭이다.

 

  한편, 아들러는 어린 시절에 겪은 열등감을 노오오오력으로 극복한 사례를 보여주면서 <아들러 심리학>의 핵심에 정곡을 찔러 넣었다. 사실 아들러 심리학은 오랫동안 주목 받지 못하다가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이 인기를 끌면서 새삼스럽게 주목 받게 된 '심리학계의 역주행'을 잘 보여주었다. 암튼 아들러 심리학은 '열등감 극복'이 행복한 삶의 원천이라는 다소 뻔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정신분석학을 온통 '성적인 이미지'로 더럽혀 온 프로이트에게 질려 버린 수많은 '반 프로이트 심리학자들'에 의해서 탄탄히 이론을 다져온 결과 현대 심리학계에 주류로 인정받는 영광을 얻게 된다. 오늘날 '미투 운동'으로 여성의 인권운동이 다시금 주목을 받으며 여성이 마음에 상처를 받게 된 원인이 '남근 상실' 때문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해석을 할 수 없는 시대에 딱 어울리는 이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칼 융은 프로이트의 제자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지만 전혀 근거 없는 소문일 뿐이다. 융의 심리학이 '무의식'을 다루고 있어서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유사한 것은 사실이나 칼 융의 무의식에는 '변태적 성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아름답고 도덕적이며 성인군자의 아우라를 가득 담고 있고 있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프로이트과 같을 수가 없다. 마치 상어와 돌고래의 겉모습이 비슷하기는 하지만 상어는 어류이고, 돌고래는 포유류인 것만큼이나 프로이트와 칼 융은 서로 다르다는 점을 알고 접근해야만 한다.

 

  이렇게 이 책에서는 현대 심리학의 3대 거장인 프로이트와 아들러, 그리고 칼 융의 심리학을 핵심만 콕콕 분석해서 선보이고 있다. 어렵디 어려운 심리학이 한결 쉽고 재미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프로이트와 칼 융의 심리학은 낡은 이론으로 치부하곤 한다. 이 둘의 정신분석학의 공통점인 '무의식의 세계'를 오늘날에는 거의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긴 꿈을 해석하는 일이나 가면(페르소나)을 쓰고 내면을 감추려 한다는 이론이 한물 가긴 했다. 아들러는 뒤늦게 주목을 받은 탓에 오늘날에 새삼 인기를 끌고 있긴 하지만, '열등감 극복'이라는 주제는 '자기계발서'에 딱 어울리는 주제가 되었기에 최근 심리학계의 주류와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최근의 심리학은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호르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도파민'이나 '세로토닌'과 같은 호르몬의 이름을 들어본 일이 많을 것이다. 살짝 시간을 거슬러가면 '엔돌핀'이라는 행복 호르몬 이야기도 참 많이 들었을 것이다. 이처럼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 버린 현대 심리학은 정신분석에서 많이 벗어났다는 느낌을 받고 있지만, 사람의 마음을 해석하는 일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만은 않을 것이다. 설령 사람의 마음(또는 기분)이 호르몬에 의해 결정(!)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결정에 저항하고 호르몬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지는 것 또한 우리의 마음일 것이다.

 

  최신 심리학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고 해서 '정신분석학의 3대 거장'의 이야기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인류가 학문을 연구하는 까닭은 낡은 것에서 새로운 점을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 지나간 옛날 학문이라도 다시 들여다보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 '온고지신의 정신'을 잊지 않는다. 특히나 '심리학'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마음을 연구하는 학문이기에 더욱 그렇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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