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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먼저 살려야 할까? - 깐깐한 의사 제이콥의 슬기로운 의학윤리 상담소
제이콥 M. 애펠 지음, 김정아 옮김, 김준혁 감수 / 한빛비즈 / 2021년 2월
평점 :
이렇게 결정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아니면 저렇게 하는 것이 정의로운 것일까? 의료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들 가운데에는 결정을 내리기 곤란한, 아니 어쩌면 답은 정해져 있는데 의료인이기 때문에 곤란한 문제들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는 책이다. 우리 사회에서 의료인들을 존경하고 사회지도층으로 당연시하는 까닭은 그들이 자타공인 똑똑한 인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똑똑한 이들조차 곤란에 빠지게 만드는 문제란 무엇일까?
이를 테면, 이런 문제들이다.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다가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어떨까? 그 결과 결혼까지 하게 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스승과 제자가 사랑에 빠져 연인관계가 되거나 혼인을 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경우에는 사회적인 지탄을 받곤 한다. 근래에는 법적인 문제로까지 불거져서 처벌을 받기도 한다. 의사의 경우에도 내담자와 진료상담을 하다보면 환자의 개인정보를 속속들이 알게 되고, 의사 자신의 명성과 부를 이용해서 환자를 적극적(?)으로 보살피다가 사랑이 싹터서 연인관계를 지속하다 결혼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윤리적인 또는 법적인 문제점은 없을까? 물론 있다. 미국에서는 정신과 의사가 상담을 이어온 환자와 성관계를 하는 것만으로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정신과 상담의 경우에 환자가 의사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는 경향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환자는 의사가 자신을 돌봐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치료가 되고 있다고 믿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욱 쉽게 사랑의 포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신과 상담을 종료한 지 5년 이내에 성관계를 하거나 결혼을 하게 되면 의사 면허를 박탈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을 하는 연인 관계로 자연스럽게 발전하는 것까지 법이 막을 수 있을까? 아무런 조건도 따지지 않고 어떠한 방해로도 막을 수 없는 사랑의 힘을 막을 윤리도덕과 법적절차가 있느냔 말이다. 단지 의사와 환자로 만났을 뿐인데, 악용될 사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을 해서는 안 되는 사이가 되어야만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있느냔 말이다. 물론 어렵게 딴 의사면허를 기꺼이 반납하면 아무런 문제도 없는 좋은 해결방안이 있긴 하지만, 의사와 환자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랑에 빠지면 안 되는 사이가 되어야만 하는 것도 논란의 여지가 분명해 보인다.
어디 이뿐인가. 미국에서는 금지된 의학실험을 개발도상국에서 실행에 옮긴다면 괜찮냐는 물음에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 인권의식이나 인권법이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당연히 금지하는 의학실험을 상대적으로 인권이 뒤쳐져서 아직 법이 미흡한 개발도상국에서 합법적(?)으로 의학실험을 하는 것이 옳은 일이냐는 물음이다. 신약개발과 같은 의학실험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위험한 부작용이 예상되어서 충분한 임상실험이 불가능할 때가 있다. 그럴 때에 예상되는 부작용이 있더라도 '허용해주는 나라(!)'에서 실험을 진행함으로써 신약개발에 성공을 하거나 엄청난 비용절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윤리적으로 해도 될 일이냐는 물음이다.
예전에는 '인종차별'도 서슴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던 터라 미국 사회에서도 '흑인'을 대상으로 하는 반인권적인 의학실험이 자행되곤 했다고 한다. 지금에야 '인종차별'이 철저히 금지되고 '인권의식'도 상향이 되었기 때문에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을 인간이하의 취급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상식으로 여기지만, 한때는 인간으로 생각지 않았던 흑인을 대상으로 온갖 실험을 자행했다고 한다. 그랬던 미국이 지금에는 인권보호 차원에서 '임상실험'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위험한(?) 실험을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다른 나라에서 실험을 대신하고 달콤한 결과만 취하겠다는 심보는 정말이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인류를 위해서 꼭 만들어야 하는 의학실험의 경우에도 막아야만 할까? 고민스런 문제지만 개인적으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의학실험이고, 그런 위험한 실험은 어느 곳에서도 결코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인간이 인간을 위해서 동물실험을 하는 것도 끔찍한 일인데, '인간실험'을 허용한다면 아무리 좋은 취지라 하더라도 희생을 치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코로나19 치료제'와 같이 인류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실험까지 막자는 것은 아니다. 특정 국가나 기업의 이득만을 보장하는 임상실험을 반대한다는 의미다. 인류 모두의 보편적 의료복지를 위해서만 허용해야 하는 위험한 실험이라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살인자나 독재자를 살려야만 할까? 또는 범죄자나 살인자가 의사면허를 따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사는 죽어가는 생명을 아무런 조건도, 차별도 없이 기꺼이 살리겠노라고 선서를 한다. 그런데 자신이 살려야 하는 이가 연쇄살인범이라면? 또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몬 악명 높은 독재자라면? 기꺼이 살려야만 할까? 만약 의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에 기꺼이 살려낸다면, 다시 살아난 살인자와 독재자가 더 많은 사람들을 또다시 죽음으로 내몰 가능성이 아주 높은데도 말이다. 한편, 과거에 범죄를 저지르거나 살인을 저지른 이가 엄청난 공부를 해서 의사면허를 취득한다면? 당연히 의사면허를 내주어야만 할까? 의사가 되어 또다시 범죄를 저지르고 살인을 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또는 환자들이 그와 같은 사실을 알고도 기꺼이 자신의 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그 의사에게 진료를 받거나 수술을 받으려 할까?
결코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다. 이 책에는 미국 사회에서 윤리적으로 금기되고 있거나 법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의료적 문제에 대한 논란거리를 담아 놓았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추려서 위에 열거해보았는데, 당신은 명쾌한 답을 내놓을 수 있었는가? 때로는 쉽게 답을 낼 수 있었지만 대다수의 논란거리는 정말 답을 내놓기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 이를 테면, '진상 환자'에 대해서 치료 거부를 하는 것이 옳으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답하는 의료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봐야 하겠는가? 의사도 사람인지라 감정이 개입될 수 있지만 꺼져가는 생명을 눈앞에 두고서 망설이는 이를 의사라고 할 수 있느냐는 물음이 되어 버리면 '또 다른 문제'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세상에 쉬운 문제란 결코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딱 한 가지다. 수많은 문제에 대해서 우리 모두 함께 고민해보는 것이다. 물론 갑론을박이 이루어질테고 명쾌한 답을 내놓기보다는 더욱 심한 혼란속으로 빠져버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원하는 해답에 다가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만 할 것이다. 이때 '공리주의'나 '다수결 원칙'으로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다. 어쩌면 '똑같은 문제'에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서로 다른 해법'을 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완벽한 인간은 없다'는 당연한 진리를 마주하게 되면 그런 혼란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지혜로움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지혜를 나눌 때에야 비로소 밝은 사회로 한발짝 더 나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렇게 나누는 지혜를 더욱 빛내기 위해서 꼭 필요한 자세가 바로 '경청'일 것이고 말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