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 글자 세계문학산책 15
너대니얼 호손 지음, 붉은 여우 옮김, 김욱동 해설 / 지식의숲(넥서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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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물론 실수의 경중을 따져서 무거우면 벌을 받고 가벼우면 용서를 받아 '잘못'을 뉘우치는 이에게는 새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뉘우치지 않고 또 다시 실수를 저지른다면 엄벌을, 심하면 사형에 처하거나 완벽한 격리를 시켜서 우리가 사는 사회에 해악을 끼치지 못하도록 사회시스템을 만들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는 '바람직한 사회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실수를 하는 사람들', 다시 말해, 죄를 저지른 이에게 패널티(불이익)를 주는 것은 마다하지 않는다. 무겁든 가볍든 말이다.

 

  그렇다면 '남편이 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았다'면 어떤 벌을 주어야 마땅할까? 흔히 말하는 '간통죄'를 저지른 부정한 여자다. <성경>에는 십계명이 나오는데, 일곱 번째 계명이 '간음하지 말라'고 했다. 이 책의 배경이 17세기 미국 뉴잉글랜드인데, 청교도 신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인 까닭에 청렴하고 경건하며 엄숙하며 독실한 신앙만을 믿고 따르는 사회에서 '제 7계명'을 어긴 여인은 사형을 처해 마땅한 죄를 저지른 셈이다. 하지만 이 여인은 사형을 면했다. 왜냐면 '남편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저지른 죄였기 때문이다. 만약, 남편이 살아있다면 사형판결이 마땅하지만, 남편이 이미 죽은 상황이라면 정상참작을 할 여지가 남겨졌다고 중지를 모은 결과다. 그럼에도 중죄인 것은 묵과할 수 없기에 사형을 대신해서 평생토록 가슴에 '부정한 짓을 저질렀다는 징표'인 'A' 글자를 달고 살 것을 주문했다. Adultery의 앞글자인 셈이다. 이렇게 이 책의 이야기는 '부정한 여인'인 헤스터 프린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가슴에 '낙인'을 달고 나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헤스터가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하고 모욕적인 언사를 감내하는 형벌을 받을 때, 그녀를 감싸주는 이가 있다. 바로 아서 딤즈데일이라는 목사다. 그는 헤스터에게 '죄의 무거움'을 혼자서 감내하지 말고, 사생아(펄)의 아버지를 밝혀서 불륜남도 똑같은 죄를 받게 하라고 조언한다. 그것이 '죄의 무게'를 덜게 할 수는 없지만, 당신이 당하는 수치와 모욕을 똑같이 앙갚음 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헤스터는 끝내 불륜남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아니 밝힐 수 없다고 한다. 끝내 까닭은 말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독자들은 궁금증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워낙 유명한 소설이기도 하고, 명석한 독자들이라면 그 불륜남이 다름 아니라 '목사'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불륜남녀의 등장으로 충격적인 상황에 '진짜 남편'이 등장하면서 막장(?) 드라마의 구성요건은 모두 갖추게 된다. 헤스터는 펄을 가슴에 꼭 안고서 남편을 만난다. 2년만에 나타난 남편은 불륜의 상징인 'A' 글자와 사생아를 함께 바라보면서 담담히 말할 뿐이다. 못난 남편으로서 당신의 죄를 묻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신의 삶을 수치스럽게 만든 '그 남자'는 용서할 수 없으니 밝히라고 말한다. 헤스터는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자신이 '당신의 남편'이라는 사실도 함께 말하지 말아 달라고 협박(?)한다. 그리고 불륜남을 꼭 찾아서 복수를 하겠다고 말하고 헤스터 곁을 떠난다.

 

  이 책의 이야기는 이렇게 '세 남녀'를 주목하며 작가는 각자의 세계를 펼쳐보일 뿐이다. 아빠 없이 사생아로 자라는 펄의 모습도 간간히 보여주지만, 세 남녀의 죄를 부각하거나 깊게 고뇌하게 만들거나 형언할 수 없는 순진무구함을 보여주는 '감초 역할'을 할 뿐, 작품의 주제와는 살짝 비켜서 있으니 이번 이야기에서는 논외로 하련다. 암튼, 간통녀와 간통남, 그리고 원래 남편의 삶을 주의깊게 관찰하는 것이 독자가 해야 할 역할이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독자들은 '원래 저지른 죄(결과)'보다는 '죄 지은 뒤의 삶(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헤스터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직시'하고, 주어진 시련을 '감내'하고, 끝내 '극복'한다. 가슴에 '낙인'을 달고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고 지나간 상처를 다시금 헤집어서 기어코 피를 본 뒤에 아물기도 전에 또 상처를 파헤치는 '고난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헤스터는 자신의 죄를 감내할 뿐이다. 오히려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기꺼이 도와주며,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고, 검소한 삶을 살며, 그렇게 아낀 재산을 더 배고픈 이들에게 선뜻 나눠주는 '청교도적 신앙'을 몸소 실천하는 삶을 살아간다.

 

  반면, 불륜남인 아서 딤즈데일 목사는 나날이 초췌해져 간다. 자신이 저지른 죄를 차마 밝히지는 못하면서 '자신의 고뇌'를 경험담 삼아 설교를 해나가며 수많은 청중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겉으로는 온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목사님이지만, 홀로 남겨진 시간에는 스스로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를 자학하는 삶을 '선택'했기 때문에 병들어가는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된 것이다.

 

  한편, 로저 칠링워드라는 '가명'으로 살기를 선택한 '복수남'은 해박한 의학지식으로 온 마을의 존중받는 지식인이자 의사로 거듭나지만, 오직 '복수'밖에 모르는 삶을 살아가는 못된 심보로 인해 그의 외모는 나날이 '추악'해져만 간다. 그래서 그가 마을에 처음 나타났을 때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헤스터마저 '저 사람이 내 남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외모가 달라져서, 그가 헤스터의 원래 남편이었다는 사실을 굳이 감추지 않아도 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렇게 세 남녀는 각자 죄를 저질렀다. 헤스터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은 죄'를, 딤즈데일은 '자신의 죄를 스스로 밝히지 않은 죄', 그리고 칠링워드는 '법의 심판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심판하려는 죄' 말이다. 하지만 죄는 중요하지 않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죄를 지은 '다음'이 더 중요한 법이다. 다시 말해,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는 마음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작가는 이런 주제를 담아 세 남녀의 마지막을 그렸다.

 

  자신이 지은 죄를 뉘우치고 오히려 죄를 짓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더 훌륭한 행동을 몸소 실천한 헤스터에겐 '해피 엔딩'을, 자기 죄를 고백하지 못한 고통으로 몸과 마음이 병들어가며 겉으로는 '존경받는 목사'지만, 속으로는 스스로를 '고행의 도구'로 삼는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다 죽음 직전에야 자신의 죄를 고백한 뒤에야 겨우 평안한 안식을 받은 딤즈데일에겐 '새드 엔딩'을, 그리고 남편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못난이가 권리만은 놓을 수 없다며 '복수의 일념'으로만 살다가 추악한 행동에 걸맞는 추악한 외모를 갖추고서 삶에 아무런 의미도 담지 못한 '초라한 지식인의 삶'을 산 칠링워드에겐 '허무한 엔딩'을 보여 주었다.

 

  이 책이 주는 교훈은 간단하다. 실수는 누구나 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뉘우치고 참된 삶을 살아가는 건 아무나 못한다. 종교적 관점에서 봐도 '원죄의 극복'을 위한 경건한 삶의 실천이야말로 '최고의 삶'이라는 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자신이 지은 죄를 나타내는 글자 'A'를 전혀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존경할 수밖에 없는 상징 'A'로 만드는 삶을 살아간 헤스터 프린이 아주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자신의 치부를 선명한 '주홍빛'과 찬란한 '금빛'으로 수를 놓아 가슴 한복판에 장식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 용기에 걸맞는 넓은 아량과 이타적인 삶은 처음부터 잘난 사람보다 자신의 잘못을 성찰한 사람이 더 위대하다는 진리를 깨우치게 한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실수에 관대해야 한다.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뉘우쳐서 더욱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으므로.

 

  이렇게나 훌륭한 작품을 담은 책인데도 평점이 후하지 못한 까닭은 '뒤침(번역)'이 어색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청소년을 위한 책인데, 직역을 한듯 매끄럽지 못하고 읽기에도 딱딱한 문장들은 어른이자 선생인 나조차도 읽다가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울컥할 정도였다. 같은 뜻이라도 더욱 아름다운 문장으로 다듬을 수도 있었을텐데 하면서 말이다. 이 책 덕분에 '같은 제목'을 다른 책을 섭렵할 수 있어서 좋은 것 빼고는 후한 점수를 줄 수 없어서 안타까울 뿐이다. 반면에 <작품해설>은 매우 수준급이었다. 청소년을 위한 책에 걸맞는 이해하기 쉽고 깔끔한 분석이 '고전명작'을 즐기는 보람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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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4 - 1926-1930 학생 대중아 궐기하자 (박시백의 일제강점기 역사만화) 35년 시리즈 4
박시백 지음 / 비아북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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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시백의 <35년>을 읽으면서 새삼 놀랐던 내용이 있다. 학창시절에는 배우지 못했던 '독립운동가'들이 너무도 많다는 사실 말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여러 사상들이 봇물처럼 밀려들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친일파'도 '독립운동가'도 저마다 다양한 이념과 사상, 신념, 그리고 이해타산의 결과로 행동하였다. 그 여러 사상 가운데 1920년대 이후 급성장하고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사상은 바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였다.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뒤 '소비에트 연방'이 들어설 즈음에 전세계인들은 '마르크스'와 '레닌'에 열광을 했더랬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의 재건'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챙긴 미국에서 '대공황'이란 먹구름이 스물스물 올라왔기 때문에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더욱 크게 부각될 수밖에 없었다. 그 문제점이란 바로 '부의 불균형'이고, '실직자의 증가'였다. 자본주의는 경기가 호황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불황이 찾아오면 가장 먼저 '무산자(노동자, 빈자, 프롤레타리아 따위로 불리는 이)'들에게 큰 타격을 안겨준다. 반면에 '사회주의'는 기본적으로 개인보다 공동체를 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앞세우기 때문에 부를 '공평하게' 나누고, 모두가 '근면성실'하면 모두가 함께 행복해지는 사상이라고 널리 알려진 덕택에 수많은 무산자들을 들뜨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모두 '실패'하였다는 것을 다 안다. 소련은 해체 되었고, 동유럽 공산국가들은 '자유시장경제'로 체제를 바꾸었고, 중국도 '흑묘백묘'를 핑계대며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고서는 '사회주의 사상통제'를 병행하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이렇듯 '공산주의'를 표방한 나라들은 거의 모두 못 사는 나라의 대열에 선착순 한 셈이다. 땅덩이가 크고 자원과 인력이 풍부한 러시아와 중국은 예외가 되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1920년대에는 상황이 달랐다. 지식인들에게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서구 열강이 내세우는 '제국주의(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심지어 더 큰 힘을 발휘하며 '대공황'이라는 경제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멋진 사상으로 보였던 것이다. 이런 사상들이 '식민지' 처지로 전락한 조선인들에게는 일제(제국주의,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빛나는 희망으로 보였을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마르크스레닌 사상'은 조선의 지식인과 학생, 그리고 노동자와 농민들과 온갖 차별과 멸시를 받던 여성과 백정 들에게까지 손쉽게 파고 들었고, 그 가운데 '독립운동가'로 혁혁한 업적을 남긴 이들이 꽤나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내용을 '역사책'에서 배운 적이 없다. 남북으로 분단되어 처절한 전쟁까지 치룬 뒤에 '공산당'과 '공산주의', 그리고 '마르크스레닌'이라는 이름은 입밖에도 내어서는 안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른바 '반공주의'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우리는 '공산계열의 독립운동가'를 잊고 살아야 할까? 굳이 알 필요가 없는 것일까? 내 생각에는 '반쪽짜리 역사책'을 배우는 것은 엄마 아빠 가운데 '한쪽'만 선택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둘 사이가 아무리 철천지원수 사이라고 하더라도 부모의 자식이라면 두 분 모두를 알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언젠가 반드시 통일은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도 평화로운 방식으로 말이다. 그러려면 서로 갈라서게 된 까닭도 알아야 하고, 서로 힘을 합쳐 '독립의 꿈'을 실현시키려 노력했던 것도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

 

  '신간회'의 등장은 서로 갈라졌던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하나의 힘'으로 뭉쳐 독립운동을 앞장섰던 대표적인 사건이다. 신간회의 지원으로 원산총파업, 광주학생항일운동 등이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는 점은 우리의 독립운동이 '소수의 항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3·1혁명'과 같은 대동단결과 전국적인 조직망으로 일제의 혹독한 탄압속에서도 우리 민족의 저력과 독립 의지를 보여준 크나큰 사건이었다.

 

  이처럼 노동자(농민)와 학생들에게까지 독립운동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은 바로 '공산주의'였다. 하지만 초기의 공산주의자들의 활동이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총독부의 탄압과 밀정의 방해로 제대로 된 활동도 하지 못하고 발각되어 해산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련의 코민테른에 '조선공산당'은 인정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그마저도 여러 계열로 쪼개져서 갈등과 반목만 일삼을 뿐이었다. 코민테른의 지적은 하나로 모아진다. "조선공산당은 몇몇 지식인들의 모임일 뿐, 무산자(프롤레타리아)들과 함께 하지 않는 한 활동을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속빈 강정처럼 지식인들의 모임으로 사상만 뽐내지 말고 힘들고 어려운 이들과 함께 부대끼며 '실천'하는 사상가로 거듭나라는 뼈 아픈 지적이었던 셈이다.

 

  실상 마르크스도 잘 나가는 변호사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한 이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맹점'을 신랄하게 공격하며 이론적으로 악랄한 자본가들의 약탈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데 앞장 선 '실천가'였기 때문에 그 당시 젊은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것이다. 따라서 조선공산당 지식인들은 계열을 불문하고 일제로부터 온갖 차별과 수탈, 약탈을 당하는 약자들의 편에 서서 도움을 주고 일제의 '제국주의(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독립운동가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했더랬다.

 

  이 가운데 학생들의 항거는 독립운동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3·1혁명 때부터 학생들의 항거는 활발했지만, 일제와 총독부의 철저한 탄압에 이렇다 할 운동을 펼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일본인 학생들과 차별을 두고 '식민지 교육'으로 제대로 된 대우마저 받지 않은 상황에 처하자 학생들의 분노는 날이 갈수록 커지고 날카롭게 벼려진 셈이다. 그런 와중에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시작되었다. 광주라는 좁은 지역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연대의 힘'까지 보여준 것은 앞서 설명한 '신간회'의 공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에 앞서 조선학생들이 일본학생들보다 더 우수하고 뛰어나다는 자긍심이 저변에 깔려있었던 탓에 일찌감치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버린 '교장 이하 선생님 일동'에게 빅엿을 먹이는 '동맹휴학'으로 실력행사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학생들은 독립운동가로 성장하기 위한 발판으로 수많은 '독서회'를 조성했다. 말 그대로 독서를 하고 토론을 나누는 모임인데, 이런 모임에서 가장 많이 회자된 사상이 바로 '마르크스레닌 사상'이었다. 이른바 '공산주의 이론'을 공부한 셈인데, 일제와 총독부는 '공산주의'에 대한 철저한 탄압을 시행하였고, 단 한 명의 공산주의자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색출과 검거를 철저히 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제국주의(자본주의)'에 가장 활발히 저항한 세력들의 이념이 바로 '공산주의'였던 탓에 자칫 공산주의자들의 혁명으로 제국주의가 흔들리는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목적도 컸던 탓이다. 그 결과, 일본에서의 공산주의자 활동은 '제로'에 가까운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달랐다. 일제가 탄압하면 할수록 '공산주의자'는 더욱 똘똘 뭉쳤고, 조선에서 활동이 힘들어지자 만주와 연해주, 중국, 소련까지 활동범위를 넓히면서 독립운동의 기치를 결코 내려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제의 식민지 탄압이 가혹해지면 가혹해질수록 우리의 항거도 만만치 않았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는 친일파들의 뻔한 변명을 변변치 못한 핑계로 삼을 수 있는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우리는 이름도 남김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독립운동가 이토록 많았음을 새삼 깨달아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죽은 자의 말없음'을 기억하지 못하고 '살아남은 자의 비겁한 변명'만 듣고서 독립운동가들의 염원을 잊고서 친일적폐들의 무도함에 기죽어 지냈던 셈이다. 그러나 이제는 알아야 한다. 그들의 변명이 결코 '필연'이 아니었으며 '대한민국'이 애초부터 약한 나라가 아니었음도 기억해내야 한다.

 

  이제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은 세계를 선도해나가기 위해서 힘찬 날개짓을 하려 한다. 창공을 훨훨 날기 위해선 두 날개가 힘을 모아야 한다.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 따위로 갈려서 갈등은 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서로의 생각의 다른 것은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1920년대 독립운동가들도 무수히 많은 파벌로 갈려 반목했더랬다. 그러나 그런 그들도 자신의 생각과 신념이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염원에 공감하고 함께 힘을 모았다. 바로 '독립'이라는 하나의 꿈을 위해서 말이다. 지금 대한민국도 서로의 생각과 신념을 고집하며 반목하고 있지만, '세계를 선도할 대한민국'이라는 자긍심으로 힘을 모아야 할 때다. 파벌로 나눠서 서로 갈등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갈등의 끝이 '파국'으로 끝나서는 절대로 안 된다. "내가 아니면 안 돼!"라는 식은 절대로 곤란하다. 누구든 대한민국을 선진국에서 끌어내려선 안 된다. 바로 그런 심보를 가진 이들이, 대한민국은 약소국이니 미국에 의지하고 일본을 따라하고 중국과 러시아, 심지어 북한까지도 눈치보며 살아야 한다는 '적폐들'을 솎아내야 한다. 반드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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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3 - 1921-1925 의열투쟁, 무장투쟁 그리고 대중투쟁 (박시백의 일제강점기 역사만화) 35년 시리즈 3
박시백 글.그림 / 비아북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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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눈다. '무단통치-문화통치-민족말살기'로 말이다. 하지만 이는 그저 '표면상'의 구분일 뿐, 일제의 목적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세계속에 '조선'이라는 나라를 아예 없애는 것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아니, 지금까지도 일본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아예 없는 것처럼 여길 뿐이다. 그저 '필요'에 따라 '이용'해먹을 가치쯤으로 여길지는 몰라도 여전히 '무시 일변도'라는 점은 달라진 것이 없다. 이는 1920년대 이후에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 저지른 만행을 보면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일제는 '3·1혁명'을 겪으면서 조선을 철저히 '식민지화'하기로 본색을 드러낸다. 허나 '무단통치기'에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부드러운 정책'을 앞세웠다. 그것이 바로 '친일파 키우기'였다. 이 당시의 친일파들은 '3·1혁명'을 지켜보면서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들이 보기에도 '조선인'들은 저항을 상실하고 일본제국의 충실한 신민으로 거듭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고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매국을 하고 변절을 한 까닭도 '조선의 무능'을 분명히 보았기 때문이고, 청일전쟁, 러일전쟁, 그리고 세계대전에서도 승리를 거두는 일제의 우월함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독립'을 바라는 조선인들이 이토록 많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탓이다.

 

  그럼에도 일제는 튼튼했다. 서구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제국주의'로 팽창해나가는 일제의 강력함을 여실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조선인'은 두 갈래 길목에 서게 되었다. 임시정부와 독립군으로 험난한 길을 걸을지, 아니면 변절과 앞잡이 따위의 친일파로 달콤한 길을 걸을지 말이다. 물론 일제의 교활한 수법은 '인간이길 포기한 것'처럼 악랄해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그래서 '친일파의 길'을 걷게 된 이들이 씁쓸하게도 많아졌다.

 

  친일파들의 변명은 한결 같다. 강력해진 일본을 상대로 조선은 절대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내세운 것이 '참정권'을 얻어내서 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없애자는 것이었고, '자치'를 허락받아 조선인을 위한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었으며, '민족실력(문화운동)'을 키워서 추후에 독립을 이루자는 '그럴 듯하고 미적지근한 주장'만 늘어놓기 일쑤였다. 하긴 독립운동 진영에서도 이승만 등의 '외교론'과 안창호 등의 '실력론'이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 점이 없지 않아 있다. 심지어 '반봉건', '반외세'를 외치던 동학의 후예인 '천도교' 가운데 변절자가 많이 생긴 것도 일제의 혹독한 탄압과 회유에 따라 '동조'한 이들이 많은 것을 보면 '독립의 꿈'이 얼마나 멀고도 험한 시절이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험난한 독립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간 이들이 있었단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그 시절엔 다들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밖에 없었어"라는 친일파들의 뻔한 변명이 무색할 정도로 당당히, 그리고 기꺼이 고통스런 가시밭길을 걸어간 '독립운동가'들이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이들이 '무장투쟁'만이 독립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외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우리 민족 스스로의 힘을 보여주어야 온전한 독립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도 함께 말이다. 그 결과,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청나라, 러시아, 그리고 서구열강과 싸워서 승리를 거둔 일제가 부끄러워서 '패배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일부 폭도들의 만행이었고 일제의 피해는 미미했다고 '사실 왜곡'마저 할 정도로 말이다.

 

  또, 의열단의 투쟁도 불을 뿜었다. 이들은 정의로운 일을 불꽃처럼 행하겠다고 선언한 이들로서 매국노와 친일파, 그리고 누구를 막론하고 일제협력자 등을 '칠가살'로 정하고 폭탄투척, 사살 등을 거리낌없이 행동으로 옮겼다. 가장 유명한 사건을 꼽으라면 일본경찰 40명의 추격을 쌍권총을 들고서 홀로 대적했던 김상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의열단의 투쟁은 변화를 주어야만 했다. 마땅히 죽어야 할 이들뿐 아니라 '무고한 희생자'도 속출했기 때문이다. 던져진 폭탄과 총구를 벗어난 총알은 '나쁜놈'만 골라 죽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이 있었기에 조선은 독립의 꿈을 계속 꿀 수 있었다. 비록 당장은 일제의 압제에 눌려 기를 쓰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먼저' 쓰러져간 독립운동가의 뒤를 쫓아 독립운동의 길을 걸어간 이들이 '끊이지' 않은 것이다. 그런 까닭에 '대한민국의 독립'은 누가 뭐래도 독립운동가들에게 공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한편, '3·1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약도 잊어선 안 된다. 물론, 초기부터 임시정부 운영에 삐걱거리는 면이 없지 않으나, 다양한 '독립운동노선'의 변화속에서도 끝까지 남아 독립운동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승만 탄핵, 이념에 따른 파벌다툼 등등의 혼란은 오히려 임시정부가 제대로 활동하였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온당할 것이다. 나라를 빼앗긴 마당에 파벌싸움이나 하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비난도 들어 마땅하지만, 그런 혼돈도 없이 일사분란하게 독립운동을 했다면 오히려 일제의 철통같은 압제와 악랄한 탄압에 의해 쉽게 발각이 되어 일망타진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분열된 만큼 큰 힘을 발휘하기는 힘들었지만 분열되었기에 '다양한 독립운동의 방향'을 탐색할 수 있었고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꺾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해나갈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혼란속에서 꽃피운 것이 바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이었고, 이들의 도움으로 깨어난 노동자, 농민, 여성 들이 노동·농민·여성운동으로 활발하게 성장할 수 있었으며, 일제의 '제국주의'에 대항해서 국가와 국경을 초월한 '무정부주의(아나키즘)'가 독립운동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성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무정부주의자는 단재 신채호와 우당 이회영 등이다. 암튼, 이들의 활약은 다음 권에서 더욱 자세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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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주식투자가 처음인데요 : 투자전략편 - 2022년 개정판 처음인데요 시리즈 (경제)
강병욱 지음 / 한빛비즈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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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듭 말하지만, 난 주식을 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매우 심한 '안정성(원금보장)'을 추구하며, 없어도 그만인 '밑천(여윳돈)'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투자'를 해야 할 '필요성'은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리고 조만간 '(주식) 투자'를 하겠다는 결심도 섰다. 그럼에도 그 결심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주식에 대해서 아는 것이 그닥 없기 때문이다. 변명을 덧붙이자면 주식공부를 좀더 한 뒤에 안전(?)하게 시작하고 싶다.

 

  그런 까닭에 '주식 관련책'은 여러 권 읽어보았다. 그 유명한 '존 리'의 책도 직접 구해다 읽어보았다. 그래서 배운 지식은 '주식투자는 일찍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량주를 소액이나마 꾸준히 투자해놓으면 10년 뒤, 20년 뒤, 30년 뒤,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예금/적금'을 들어놓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액수의 목돈을 만들 수 있다는 지식이었다. 이를 테면, 돌잔치 때  금반지 대신에 10만 원 상당의 우량주에 투자를 해놓으면 20살 청년이 되었을 때 몇십 곱절의 수익을 얻게 되니 돌반지 20개 가량을 받은 셈 치고 우량주에 묻어두면 '대학등록금' 정도는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마찬가지로 20대 청년이 40년 가까이 장기투자를 했을 경우에도 '노후자금'은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니 주식투자는 망설이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하라고 말이다. 정말 일리 있는 지식이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보면 그런 방식으로 주식투자를 해서 성공했다는 훈훈한 이야기보다 주식투자에 손을 잘못 대서 쫄딱 망했다는 얘기를 더 많이 듣곤 한다. 그건 무엇 때문일까? 수많은 '주식책'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워렌 버핏과 조지 소로스 같은 핑크빛 성공담밖에 없는데 말이다. 이 책에서 적절한 지적을 해준 것 같다. 그 까닭은 바로 주식투자에 대한 '전략'도 없고, '철학'도 없이 무작정 '수익'만 바라보고 섣불리 뛰어들었다가 패가망신을 당한 경우라고 말한다.

 

  주식투자를 처음에 시작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소소하지만 분명히 달콤한 수익을 얻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렇게 단맛에 중독되고 나면, 자신의 투자방식에 대한 '맹신'을 하게 되고, '잘못된 정보판단'조차 자신만의 성공투자방식이라고 '고집'을 부리다 끝내는 깡통을 차게 된다는 서글픈 스토리 쓰게 된다고 말이다. 내 주변에도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주식투자'에 뛰어든 이들이 있었다. 이들의 모양새는 한결같이 최신 노트북을 들고 가까운 까페로 출근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전장'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주식을 사고 팔고, 점심시간은 간단히 해결하고 '오후장'에 또 '사자/팔자'를 열심히 하면서 오후 네 시에 정확히 퇴근을 했더랬다. 주식거래 마감시간이 오후 3시30분이므로 마지막 30분 동안 손익계산을 한 뒤에 결산을 한 것이다. 그리고 지인들에게 전화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한다. "오늘은 30만 원을 벌었으니 10만 원어치 술값을 쏘겠다며 어디어디로 나오라는 자신감 충만하고 행복에 겨운 목소리로 말이다.

 

  그러나 그런 친구들도 길어야 3달이었다. 단기투자로 수익을 내는 것은 딱 거기까지이고, 이후로는 '하락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주식거래를 멈추며 다시 주식이 오르길 바라며 '장기레이스'에 빠져버리곤 했다. 이들이 계산했던 '하루 30만 원 X 20일 = 월 600만 원 수익'은 오래지 않아 원금까지 까먹으며 버티고 또 버티는 나날만 보랬더랬다. 분명 이들의 손에는 '워렌 버핏' 등의 투자전문가의 저서들이 들려 있었는데, 왜 '개미'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 궁금증, 또한 이 책에서 풀 수 있었다. 투자실패를 하게 되는 '행동심리학'이 있었다고 말이다.

 

  이 책, <저는 주식투자가 처음인데요 - 투자전략편>은 크게 세 가지 구성으로 되어 있다. 첫째는 '투자전문가의 전략을 보고 나만의 투자 전략을 세우자'이고, 둘째는 '투자에 실패했다면 행동심리학을 통해 원인을 분석해보고 극복해보자'이며, 마지막은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투자를 위해선 또 다른 투자방법을 배우자'였다. 꽤나 알찬 구성이지만, 이 책의 목표가 '투자 따라하기'가 아니라 '자신만의 투자전략 짜기'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물론, 주식초보자라면 '대가들의 투자방식'을 따라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으나, 버핏의 방법은 버핏에게 맞는 방식이었고, 그 방법이 당신에게도 딱 맞을 것이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참고'만 한 뒤에 자기에게 딱 맞는 전략을 짜고, 자기만의 '투자철학'을 세워서 흔들리지 않는 탄탄한 '투자의 길'을 가라는 것이 이 책을 쓴 저자의 참뜻일 것이다.

 

  물론, 말처럼 쉬우면 누구나 부자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분명 '주식투자'는 어렵다. 해야할 '주식공부'도 굉장히 많다. 그리고 투자경험이 많고, 주식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반드시 '투자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 열린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적어도 '자기만의 전략과 철학'으로 주식투자를 하다보면 '팔랑귀'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해야 주식투자로 성공을 해도 '내탓', 실패를 해도 '내탓'을 해야 '투자성공 노하우'를 터득하게 된다고도 한다. 모쪼록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올바른 주식투자방법을 터득하길 바라는 저자의 바람이 잘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했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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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주식투자가 처음인데요 : 기본편 - 2022년 개정판 처음인데요 시리즈 (경제)
강병욱 지음 / 한빛비즈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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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식은 잘 모른다. 솔직히 말해, '경제'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돈을 벌어서 쓰고, 물건을 만들어 팔고, 세금을 걷어 나라살림에 쓴다는 것을 대충은 이해할 나이가 되었지만,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이 정상인지, 나빠진 경제상황을 어떻게 좋게 만드는 건지, 심지어 경제상황이 좋아지는 지표가 무엇인지도 정확히는 잘 모르겠다. 이 나이를 먹도록 그저 돈을 벌어서 저축하고 알뜰하게 쓰다 목돈이 필요할 때 쓰는 평범한 경제를 누려 왔을 뿐이다.

 

  그런데 요즘엔 누구나 '주식투자'를 하는 모양이다. 나름 지인의 권유(?)로 '변액연금'에 가입해서 '펀드형식의 간접투자'를 하고는 있지만, 크게 수익이 난다는 느낌도 없고 좀더 지켜보다 별볼일 없다는 결심이 들면 해약을 할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진 난 직접적인 주식투자를 시작하지는 않고 있다. 그래도 다들 하고 있다는 생각에 '주식'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어보긴 했지만, 막연하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뿐..더 이상의 용기는 나질 않는다. 이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위험성이 높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탓이고, '매우 심한 안정성 추구 심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할 수 있겠다.

 

  맞다. 주식은 '투자'이고, 투자는 '원금손실'이라는 위험성을 저변에 깔고 있다. 그런데도 주식투자 전문가들은 말한다. "적금에 들 바에야 주식을 하라"고 말이다. 이유는 한결 같다. 유명한 '존 리'의 표현이 아니더라도 여러 전문가들이 [적금이자 10년 <<< 주식투자수익 10년]이 훨씬 더 큰 이익이라고 조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식투자에 뛰어든 사람들이 모두 돈을 버는 걸까? 아쉽지만 그런 건 아니란다. 기대 이상의 수익을 거둔 사람도 있지만 잘못된 투자로 인해 '가진 돈'을 몽땅 날리고도 모자라 '큰 빚'까지 짊어지게 된 이들도 부지기수라고 말한다. 특히, 개미라고 불리는 '개인투자자'의 피해는 생각보다 크다는 기사가 꾸준히 나오는 것을 보면 위험성에 대한 불안이 쉽사리 가시지 않는 것도 당연지사일 것이다.

 

  그런데도 왜 투자를 계속 권유하는 것일까? 경기가 호황일 때는 누구나 손쉽게 투자수익을 올리기 때문에 권유하는 것이 타당하다고도 보인다. 그러나 요즘 같이 경기 불황의 조짐을 보이며, 금리가 인상되어 시중 자금을 빨아들이는 상황에서 '주가'마저 하락세로 꺾였는데도 왜 투자를 자꾸 권유하는 것일까? 결론은 이 와중에도 투자수익을 쏠쏠히 챙기는 사람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경기가 호황일 때 수익을 내는 투자방식이 있고, 경기가 불황일 때도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방식이 분명히 있다는 말이다. 그런 까닭에 '올바르고 슬기로운 투자방식'을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는 것이다.

 

  이 책의 취지가 그렇다. 주식의 기본 중의 기본부터 차근차근 배워 '투자의 개념'부터 바로 세운 뒤에 '적절한 투자방법'을 착착 배워나가면 누구나 '주식투자'로 성공할 수 있고, 이 책은 바로 그 성공비법을 익힐 수 있는 <입문서>라고 자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읽어보면 정말 '친절한 기초 개념설명'을 해주고 있기에 '주식을 시작하는 이(주린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난 아직도 망설여진다. 기초를 익혔으면, '실전'을 통해서 '투자경험'을 쌓으며 해나가면 될 텐데도 여전히 망설여진다. '투자위험성' 때문이기도 하고, '안정성추구' 덕분이기도 하지만, 주식투자에 과감히 던질 '밑천'이 없는 탓이 크다. 다시 말해, '여윳돈'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주위에선 이런 나를 보면서, '소액투자'를 권하기도 한다. 한 달에 10만 원 정도라도 해보라고 말이다. '그 정도'라면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아주 적은 돈이 아니냐면서 말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내게 10만 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아직까지도 1000원짜리 물건을 살 때조차 손이 벌벌 떨리기 때문이다. 적은 수입(월급)으로 알뜰살뜰하게 살던 버릇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그렇다. 매달 10만 원 적금을 부어 꼴랑 1만 5천 원 이자를 챙길지언정 '원금손실'이 없는 안정적인 적금에 만족하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조만간 이 책을 다시 곱씹으며 '주식투자'를 시작하리라 다짐한다. 글쓴이도 말한다. "주식을 잘 모르겠으면 적금을 드는 것이 훨씬 낫다"라고 말이다. 워렌 버핏도 "투자의 기본도 모르고서 투자에 뛰어드는 사람이 가장 멍청하다"라고 말했단다. 이래저래 '투자는 기본을 탄탄히 한 다음에 뛰어드는 것이 정석'인 모양이다. 다른 <주식입문서>는 무작정 시작부터 하라고 권하는데, 이 책은 무작정 뛰어들지 말고 '준비운동'을 철저히 한 뒤에 뛰어들어도 늦지 않다고 권하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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