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 글자 세계문학산책 15
너대니얼 호손 지음, 붉은 여우 옮김, 김욱동 해설 / 지식의숲(넥서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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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물론 실수의 경중을 따져서 무거우면 벌을 받고 가벼우면 용서를 받아 '잘못'을 뉘우치는 이에게는 새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뉘우치지 않고 또 다시 실수를 저지른다면 엄벌을, 심하면 사형에 처하거나 완벽한 격리를 시켜서 우리가 사는 사회에 해악을 끼치지 못하도록 사회시스템을 만들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는 '바람직한 사회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실수를 하는 사람들', 다시 말해, 죄를 저지른 이에게 패널티(불이익)를 주는 것은 마다하지 않는다. 무겁든 가볍든 말이다.

 

  그렇다면 '남편이 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았다'면 어떤 벌을 주어야 마땅할까? 흔히 말하는 '간통죄'를 저지른 부정한 여자다. <성경>에는 십계명이 나오는데, 일곱 번째 계명이 '간음하지 말라'고 했다. 이 책의 배경이 17세기 미국 뉴잉글랜드인데, 청교도 신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인 까닭에 청렴하고 경건하며 엄숙하며 독실한 신앙만을 믿고 따르는 사회에서 '제 7계명'을 어긴 여인은 사형을 처해 마땅한 죄를 저지른 셈이다. 하지만 이 여인은 사형을 면했다. 왜냐면 '남편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저지른 죄였기 때문이다. 만약, 남편이 살아있다면 사형판결이 마땅하지만, 남편이 이미 죽은 상황이라면 정상참작을 할 여지가 남겨졌다고 중지를 모은 결과다. 그럼에도 중죄인 것은 묵과할 수 없기에 사형을 대신해서 평생토록 가슴에 '부정한 짓을 저질렀다는 징표'인 'A' 글자를 달고 살 것을 주문했다. Adultery의 앞글자인 셈이다. 이렇게 이 책의 이야기는 '부정한 여인'인 헤스터 프린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가슴에 '낙인'을 달고 나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헤스터가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하고 모욕적인 언사를 감내하는 형벌을 받을 때, 그녀를 감싸주는 이가 있다. 바로 아서 딤즈데일이라는 목사다. 그는 헤스터에게 '죄의 무거움'을 혼자서 감내하지 말고, 사생아(펄)의 아버지를 밝혀서 불륜남도 똑같은 죄를 받게 하라고 조언한다. 그것이 '죄의 무게'를 덜게 할 수는 없지만, 당신이 당하는 수치와 모욕을 똑같이 앙갚음 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헤스터는 끝내 불륜남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아니 밝힐 수 없다고 한다. 끝내 까닭은 말하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독자들은 궁금증이 증폭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워낙 유명한 소설이기도 하고, 명석한 독자들이라면 그 불륜남이 다름 아니라 '목사'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불륜남녀의 등장으로 충격적인 상황에 '진짜 남편'이 등장하면서 막장(?) 드라마의 구성요건은 모두 갖추게 된다. 헤스터는 펄을 가슴에 꼭 안고서 남편을 만난다. 2년만에 나타난 남편은 불륜의 상징인 'A' 글자와 사생아를 함께 바라보면서 담담히 말할 뿐이다. 못난 남편으로서 당신의 죄를 묻지는 않았다. 하지만 당신의 삶을 수치스럽게 만든 '그 남자'는 용서할 수 없으니 밝히라고 말한다. 헤스터는 말할 수 없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자신이 '당신의 남편'이라는 사실도 함께 말하지 말아 달라고 협박(?)한다. 그리고 불륜남을 꼭 찾아서 복수를 하겠다고 말하고 헤스터 곁을 떠난다.

 

  이 책의 이야기는 이렇게 '세 남녀'를 주목하며 작가는 각자의 세계를 펼쳐보일 뿐이다. 아빠 없이 사생아로 자라는 펄의 모습도 간간히 보여주지만, 세 남녀의 죄를 부각하거나 깊게 고뇌하게 만들거나 형언할 수 없는 순진무구함을 보여주는 '감초 역할'을 할 뿐, 작품의 주제와는 살짝 비켜서 있으니 이번 이야기에서는 논외로 하련다. 암튼, 간통녀와 간통남, 그리고 원래 남편의 삶을 주의깊게 관찰하는 것이 독자가 해야 할 역할이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독자들은 '원래 저지른 죄(결과)'보다는 '죄 지은 뒤의 삶(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헤스터는 자신이 저지른 죄를 '직시'하고, 주어진 시련을 '감내'하고, 끝내 '극복'한다. 가슴에 '낙인'을 달고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고 지나간 상처를 다시금 헤집어서 기어코 피를 본 뒤에 아물기도 전에 또 상처를 파헤치는 '고난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헤스터는 자신의 죄를 감내할 뿐이다. 오히려 자신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기꺼이 도와주며,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고, 검소한 삶을 살며, 그렇게 아낀 재산을 더 배고픈 이들에게 선뜻 나눠주는 '청교도적 신앙'을 몸소 실천하는 삶을 살아간다.

 

  반면, 불륜남인 아서 딤즈데일 목사는 나날이 초췌해져 간다. 자신이 저지른 죄를 차마 밝히지는 못하면서 '자신의 고뇌'를 경험담 삼아 설교를 해나가며 수많은 청중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겉으로는 온 마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목사님이지만, 홀로 남겨진 시간에는 스스로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를 자학하는 삶을 '선택'했기 때문에 병들어가는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된 것이다.

 

  한편, 로저 칠링워드라는 '가명'으로 살기를 선택한 '복수남'은 해박한 의학지식으로 온 마을의 존중받는 지식인이자 의사로 거듭나지만, 오직 '복수'밖에 모르는 삶을 살아가는 못된 심보로 인해 그의 외모는 나날이 '추악'해져만 간다. 그래서 그가 마을에 처음 나타났을 때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 오죽하면 헤스터마저 '저 사람이 내 남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외모가 달라져서, 그가 헤스터의 원래 남편이었다는 사실을 굳이 감추지 않아도 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렇게 세 남녀는 각자 죄를 저질렀다. 헤스터는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은 죄'를, 딤즈데일은 '자신의 죄를 스스로 밝히지 않은 죄', 그리고 칠링워드는 '법의 심판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심판하려는 죄' 말이다. 하지만 죄는 중요하지 않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죄를 지은 '다음'이 더 중요한 법이다. 다시 말해,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는 마음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작가는 이런 주제를 담아 세 남녀의 마지막을 그렸다.

 

  자신이 지은 죄를 뉘우치고 오히려 죄를 짓지 않는 사람보다 훨씬 더 훌륭한 행동을 몸소 실천한 헤스터에겐 '해피 엔딩'을, 자기 죄를 고백하지 못한 고통으로 몸과 마음이 병들어가며 겉으로는 '존경받는 목사'지만, 속으로는 스스로를 '고행의 도구'로 삼는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다 죽음 직전에야 자신의 죄를 고백한 뒤에야 겨우 평안한 안식을 받은 딤즈데일에겐 '새드 엔딩'을, 그리고 남편의 의무를 다하지 못한 못난이가 권리만은 놓을 수 없다며 '복수의 일념'으로만 살다가 추악한 행동에 걸맞는 추악한 외모를 갖추고서 삶에 아무런 의미도 담지 못한 '초라한 지식인의 삶'을 산 칠링워드에겐 '허무한 엔딩'을 보여 주었다.

 

  이 책이 주는 교훈은 간단하다. 실수는 누구나 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뉘우치고 참된 삶을 살아가는 건 아무나 못한다. 종교적 관점에서 봐도 '원죄의 극복'을 위한 경건한 삶의 실천이야말로 '최고의 삶'이라는 굵직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자신이 지은 죄를 나타내는 글자 'A'를 전혀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존경할 수밖에 없는 상징 'A'로 만드는 삶을 살아간 헤스터 프린이 아주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자신의 치부를 선명한 '주홍빛'과 찬란한 '금빛'으로 수를 놓아 가슴 한복판에 장식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그 용기에 걸맞는 넓은 아량과 이타적인 삶은 처음부터 잘난 사람보다 자신의 잘못을 성찰한 사람이 더 위대하다는 진리를 깨우치게 한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실수에 관대해야 한다.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뉘우쳐서 더욱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으므로.

 

  이렇게나 훌륭한 작품을 담은 책인데도 평점이 후하지 못한 까닭은 '뒤침(번역)'이 어색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청소년을 위한 책인데, 직역을 한듯 매끄럽지 못하고 읽기에도 딱딱한 문장들은 어른이자 선생인 나조차도 읽다가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이 울컥할 정도였다. 같은 뜻이라도 더욱 아름다운 문장으로 다듬을 수도 있었을텐데 하면서 말이다. 이 책 덕분에 '같은 제목'을 다른 책을 섭렵할 수 있어서 좋은 것 빼고는 후한 점수를 줄 수 없어서 안타까울 뿐이다. 반면에 <작품해설>은 매우 수준급이었다. 청소년을 위한 책에 걸맞는 이해하기 쉽고 깔끔한 분석이 '고전명작'을 즐기는 보람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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