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번째 대멸종 시그널, 식량 전쟁 - 기후 변화와 식량 위기로 포착하는 파국의 신호들 서가명강 시리즈 34
남재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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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VII / 21세기북스 33번째 리뷰] <대멸종>이란 제목의 책들이 심심찮게 출간되는 요즘이다. 제목만으로도 경각심이 높아지는 책들이지만, 하도 많이 읽어보니 이젠 그러려니 하고 있다. 이 책도 그런 책들 가운데 하나다. 대한민국 '식량 자급률 20.9%'라는 놀라운 데이터에도 심드렁할 뿐이다. 식량 자급률이란 자국민들이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서 먹거리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기도 하다. 그런데 선진국가 평균 곡물자급률이 102%인데, 대한민국은 그에 1/5 수준인 셈이란 말이다. 이는 다른 나라가 '식량을 무기화'했을 때, 우리는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는 단적인 지표인 셈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 나라도 얼마든지 '식량위기'를 겪을 수 있다는 인식을 하고,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에 집중해야 할 때란 말이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문제점들이 피부에 와닿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과연 우리는 '먹거리 문제'로 인해 고통을 느끼게 될까? 그게 언제쯤이면 실감하게 될 것인가?

그런데 식량위기 못지 않게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다시 말해 실감하지 못하는 위기가 또 있다. 바로 '기후위기'다. 90년대만해도 '기후변화'라는 말을 썼다. 그때는 기후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을 뿐, 그것이 큰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과학자들조차 의견이 분분할 정도였다. 하지만 불과 30년만에 기후변화는 '위기'를 넘어서 '인류종말'을 예고하는 끔찍한 단어를 서슴지 않고 쓰고 있다. 이런 경고성 발언에 대해서 과학자들도 90% 이상 동의하고 있는 바다. 이제 '기후위기'는 예고를 넘어서 경고를 하고 있고, 아주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한목소리로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위험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각국의 지도자들도 '기후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천문학적인 액수의 정책들을 추진하길 꺼려한다. 심지어 미국의 트럼프 같은 지도자들은 '기후변화' 자체를 믿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예측은 '사기'라는 것이다. 전세계 과학자들이 '사기'를 쳐서 각국 정부의 예산을 축내어 파티를 벌이려는 속셈으로 한목소리를 내고 있기라도 한단 말인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노력으로 '일회용품 덜 쓰기', '에너지 아껴 쓰기',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전환하기', '대중교통 이용하기'와 같은 일상 생활 속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게 정부예산 축내는 사기란 말인가?

그리고 '기후위기' 문제는 '식량위기'와 맞물려 있다. 기후가 '변화'하는 까닭에 안정적인 식량 생산에 차질이 생겨 버렸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곡물 가격 상승'은 이제 가난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선진국들도 얼마든지 겪을 수 있는 문제이며, 오래지 않아서 '풍요로운 먹거리'를 즐기던 시대가 저물어가고 다시 중세시대처럼 배고픈 시절을 겪게 될 것이다. 우리 나라도 불과 100년 전...70년대 '통일벼'가 등장하기 전까지 '보릿고개'를 겪었던 나라다. 그런데 불과 50년 만에 다시 '식량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굶주릴 수밖에 없는 처량한 국가로 전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 이런 위기가 도래할 것이라고 심각한 경고를 하는 걸까? 그건 바로 '농업'을 하루이틀 만에 일으켜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구호 아래 '식량자급'을 위해서 부던히도 노력했지만, 끝끝내 해결하지 못하고 왕조가 멸망하고 말았다. 농사일을 평생토록 했어도 '쌀밥'을 배불리 먹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더 크게 작용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식량 생산이 뒤따르지 못했기에 벌어진 문제였다. 그래서 70년대 '통일벼'로 쌀생산량을 크게 높이는 '농업혁명'을 성공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여지껏 '먹고 사는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나라로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런 농업혁명으로도 '쌀생산량'만 높였을 뿐, 다른 먹거리는 여전히 자급률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를 대체하기 위해서 '국외에서 값싼 농산물'을 수입하는 것으로 의존하고 있는데, 이는 '기후위기'가 심각해지기 전에는 별 문제가 생기지 않겠지만, 전세계적으로 '곡물 가격상승'이 붐을 이룬다면, 우리 나라처럼 '식량 자급률'이 현저히 낮은 나라들은 곧바로 '식량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식량 생산'을 자국 내에서 충족할 만큼 해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좁은 땅덩이로 인한 농경지 미확보에, 농업인구는 갈수록 줄어들고, 그로 인한 농업기술력도 형편없이 뒤떨어졌다.

먹거리 소비는 어느 선진국보다 뒤떨어지지 않는데, 먹거리 생산은 선진국 발끝조차 따라가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누가 '안전'하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기후위기가 점점 심각해지면 곧이어 '식량 전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자명한 사실 아닌가.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이런 불안한 미래에 얼마만큼 준비하고 있으며, 대책을 마련할 여력이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궁금증'조차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 당장에도 마트의 상품 물가가 높아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고 있으면서, 그 물가가 왜 오르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물가도 못잡는 정부탓만 하고 있을 뿐이다. 이게 정부탓만 하고 있다고 해결된 문제 같은가? 당장 '식량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면, 그 여력을 마련할 수 있는 시간이라도 벌어두어야 한다. 바로 '곡물 재고 비축량'을 충분히 확보하고, '안정적인 국외 곡물 조달 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이다. 막상 '식량 전쟁'이 벌어지면 강대국들은 약소국에게 절대로 값싸게 식량을 팔지 않는다. 강대국에게 농수산물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결국엔 '힘의 논리'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인데, 그만큼 우리도 국방력을 길러 절대 손해보는 일이 없어야 한다. '기후변화'가 '국방력 강화'까지 논의해야 할 대상이라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식량 문제라서 그렇다. 인간은 먹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식량 주권'을 빼앗기면 절대 안 된다. 그리고 우리도 얼마든지 '식량 난민'이 될 수 있고, '식량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결코 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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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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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VI / 이봄 5번째 리뷰] 중학생이었던 수짱(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이 서른네 살의 노처녀로 바뀌었다. 이 책이 '수짱 시리즈의 1편'이라고 한다. 책표지에 그런 것을 좀 적어두면 좋으련만 웬만한 '마니아'가 아니면 알아 볼 수 없게 만드는 이런 것을 좀 좋아하진 않는다. '입문자'들에겐 여간해선 넘기 힘든 벽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걸 '넘사벽'이라고 하던가. 이제 좀 '마스다 미리'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싶었는데, 뭔가 알아야 할 것들이 넘쳐날 때 '입문자'들은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물론 '팬덤 현상'이 주류가 되었을 땐 그런 '일정 선'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 '선'을 넘어야만 볼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것이 있어야 기꺼이 지불할 용의(?)도 생기는..뭐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진입장벽'은 좀 낮춰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발을 넣고 빼고 하는 것도 쉬워질테고, '특권의식(갑질)'도 애초에 생기질 않을 것이고 말이다. 암튼 이 책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가 '수짱 시리즈 1편'이란다. 참고로 '개정판'이다.

서른네 살의 여성은 과연 '노처녀'일까? 21세기 '현대'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절대 '늙은 여자'가 아니다. 초중고 12년에 대학교육 4년까지 마치면 도합 16년간 '기본교육'을 다 마치면 만 23세에 대학을 졸업하게 된다. 곧바로 취업활동을 하고 직장에 들어간다면 24살에 '신입사원' 2년 뒤 '주임'을 달고, 또 2년 뒤에 '대리'를 달고, 5년 뒤에 '과장'을 달면 초고속 승진을 한 셈이다. 그렇게 어느 정도 '사회생활'에 커리어를 달게 된 나이가 서른네 살인 셈이다. 나름 경력직 사원으로 손색이 없는 당당한 커리어 아닌가? 그런데 왜 '서른네 살의 여성'을 노처녀 취급하는 걸까? 반대로 남성의 경우에 똑같은 '경력'을 쌓아 서른여섯 살(군대2년을 보탬)의 노총각을 떠올려보자. 따져 볼 것도 없이 한창 나이 아닌가? 근데 왜 여성의 경우엔 '늙은 여자' 취급을 하느냔 말이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생물학적 나이'를 감안할 수밖에 없다. 남성의 경우엔 어른이 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자녀가 생겨도 '열심히 일하는데' 방해요소가 전혀 없다. 오히려 어른이 되었으니 '직장 구해야'하고, 연애하니 '어엿한 직장생활 해야'하고, 결혼할라치면 '당당한 샐러리맨이 되어 있어야'하며, 자녀가 생기면 '당당한 가장이 되어야 하니 더욱더 격려 차원에서 승진까지 고려 대상이 되어야'한다고 여긴다. 이렇듯 남성의 경우엔 '생물학적 나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 심지어 외모 따윈 그닥 중요하지도 않다. 오직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만을 따질 뿐이다.

그런데 여성의 경우엔 다르다. 어른이 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할라치면 '나이'부터 따지고 든다. 우리 사회가 그렇다는 말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은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을 통해서 당당히 인권을 누리고, 그에 따른 혜택을 누리게 되었는데도, 이상하게 '손해보는 장사'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이다. '똑같은 교육'을 받았는데, 왜 여성은 예뻐야 하고, 정절을 지켜야 하고, 일부종사를 해야 하고, 가사일은 기본적으로 '만능'이어야 하고, 맞벌이는 '필수'여야 하며, 임신과 출산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왜 육아까지 '독박'을 써야하는지...이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 이어진다. 그래서 현대여성들은 이런 '고단함'에서 벗어나고자 연애도 기피하고, 결혼도 기피하고, 육아도 기피하며, 그나마 만만한(?) '직장여성'으로 살아가려 한다. 그런데 또 그러면 안 된다고 '사회구조적인 압박'이 가해진다. 어쩌란 말인가?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시몬 드 보부아르는 <제2의 성>에서 주장했다.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강제로 짊어지게 한 압박에 의해서 여성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현대여성에게 얽매어 있는 이런 '구속'을 스스로 벗어던질 수나 있는가? 있긴 하지만, 그렇게 하면 스스로 '여성'임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맹점이다. 여성이 여성이길 원하면 여성임을 포기해야 한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아니, 말이 된다. 현대여성은 '결혼, 임신, 출산, 육아'를 포기하면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강요하고 있다는 얘기다. 과연 이런 사회를 요구하고도 우리 인류가 '존속 가능한 사회'를 이루며 유지할 수 있다고 보는가? 단언컨데 '절멸'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사회구조적으로 완전한 '여성해방'을 이루어야만 한다. 30대 여성들이 전혀 고민을 하지 않고 마냥 즐겁고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들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여성들에게 '의무'만 요구하지 말고, 누릴 수 있는 '권리'도 보장해주어야만 한다. 만약 '이대로' 30대 여성들의 고민만 산적해간다면 인류는 끝내 비참한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작 30년동안 '한 세대'만이라도 30대 여성들이 '결혼,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모든 의무와 권리마저 포기해버린다면, 그 사회는 결코 유지는커녕 '존속'조차 불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고민'에 빠져들게 하지 않아야 한다. 삶을 즐길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인류는 답이 없게 된다.

이런 시선으로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에 등장하는 서른네 살 동갑내기 '수짱과 마리코의 삶'을 지켜보면 우울해진다. '잃어버린 20년'을 관통하고 있던 당시의 일본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수짱은 '연애'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프리타(알바)' 형태의 직장에서 '정직원'으로 채용되어 일을 하고 있다. 물론 만족스럽지 않은 삶이다. 친구인 마리코는 '영업사원'으로 경력을 인정받고 있는데, 역시 미혼이다. 그러나 '유부남'과 불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왜냐면 외롭기 때문이다. 여성으로서 '사랑'받고 '인정'받고 '행복'해지고 싶지만, 삶이란 무게가 그녀들을 녹록치 않게 만들고 있고, 그녀들은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며 그저 살아가고만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수짱에게도 '연애'하고 싶은 대상이 생겼다. 같은 직장에 새로 온 매니저가 '훈남'이기 때문이다. 젊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 남성과 달콤한 연애를 꿈꾸지만 '사귀자'는 솔직한 말을 전할 용기는 없다. 그렇게 미적미적거리다가 같은 직장의 어여쁜 동생뻘 여직원이 '훈남 매니저'와 사귀고 있고 곧 결혼도 할꺼라고 고백을 받는다. 얼마 있으니 '임신'도 했단다. 수짱이 달콤한 상상에 빠져 있을 때 이미 그 둘은 사귀고 있었고, 수짱은 혼자서 헛물만 들이킨 셈이다. 속상하다. 더 외로워졌다. 삐뚫어지고 싶어질 찰나에 '점주'로부터 '점장을 맡아서' 해보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는다. 사랑엔 실패했지만, 일에는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이게 정말 괜찮은 걸까?

수짱의 친구 마리코는 나름 잘나가는 '영업사원'이다. 경력도 빵빵하고 수완도 좋아서 '성과'를 쑥쑥 올려서 여직원인데도 직장상사(늙은 남자)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는(?) 당당한 커리어우먼이다. 물론 예쁘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여성 영업사원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칭찬이지만, 예쁘다는 말이 늘상 칭찬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로 인해서 '관리해야 할 것'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서른네 살의 여성이 예쁘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 '메이크업(화장)'만으로는 부족하다. '피부관리', '헤어관리', '몸매관리', '의상관리', 그밖의 온갖 치장치장치장...해야 할 것들이 수두룩빽빽이다. 한 순간이라도 방심(?)을 했다간 바로 지적(!)이 들어오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해보지 못했다. 사랑이라 생각했던 남성은 '유부남'이었고, 비밀스런 연애를 이어나가다보니 '주말연애'는 할 수도 없다. 불륜남도 주말에는 '가정적인 남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헤어질 용기가 생기지 않는 것은 '외롭기' 때문이다. 맘에 맞는 남자와 밀담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친밀해지기 위해선 '새로운 만남과 충분한 시간'이 투자되어야 하는데, 서른네 살이란 나이가 그럴 용기를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일을 하고 있지만, 헛헛한 마음은 채워지질 않는다. 그러다 불륜남과 헤어지고 '중매결혼'을 하게 되었다. 어쩌다보니 말이다. 그런데 이게 정말 괜찮은 걸까?

수짱과 마리코는 각각 '승진'과 '중매결혼'으로 '제2의 인생'을 맞이하려 한다. 그게 또 어떤 '행복'을 맞이하게 해줄 것인지는 미지수로 남겨둔채 말이다. 어쩌면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변화'는 긍정적인 시그널이다. 변화하지 않고서는 인생을 살아간다고 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 변화는 누구나 마뜩찮게 여길 것이다. 행복을 어디에다 맡겨두고서 원할 때 꺼내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중한 행복을 믿고 맡겨주셔서 감사의 의미로 '이자'까지 꼬박꼬박 챙겨서 불려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고 말이다. 하지만 행복을 남에게 맡겨둘 수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내 안에 고이 간직했다가 꺼내 쓰는 것이다. 행복이란 말이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라는 물음은 얼마든지 해도 좋다. 하지만 지금의 난 행복하지 않다는 말을 단정적으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내 안에 있는 행복'을 찾아보지도 않고서 '없다'고 단정짓는 것만큼이나 어리석기 때문이다. 찾아보았는데도 잘 보이지 않는다면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럼 '보일 수도 있다'. 행복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잘 안 보인다면 잘 보이도록 크게 키우는 것도 오직 '자신의 몫'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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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소장판 전권 세트 - 전17권 (양장) 퇴마록 (반타)
이우혁 지음 / 반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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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소장판 전권 세트_17권>  이우혁 / 반타 (예약판매 6월 5일 출고 예정)

- 퇴마록 소장판 세트 구성 : 양장본 도서 17권 / 박스 2개 / 비하인드 스토리 특별 부록 / 퇴마 노트 -

3월 국내편 표지 공개 / 4월 전체 표지 공개, 박스 디자인 공개, 사은품 이미지 공개 / 6월 5일 '공식 출간'

[My Review MCMLV / 반타 1번째 리뷰] 아직 출고도 되지 않은 세트 구성품에 리뷰를 단다는 것이 조심스럽지만 이미 <퇴마록 애니메이션 영화>가 개봉되었기에 '퇴마록 작품'을 즐기시려는 분들을 위해서 몇 자 적어 올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금 영화도 감상하고 왔다. 이우혁 작가의 말, "이 영화는 '퇴마록'이 맞다". 이 말 한마디만 믿고 영화관으로 달려 갔다. 그리고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과거에도 몇 차례 <퇴마록>이란 제목을 달고 영화상영을 시도했지만, 그건 절대 '퇴마록'에 걸맞지 않는 작품이었다. 그런데 무려 30여 년만에 드디어 '한국형 오컬트 장르'의 선구자에 걸맞는 완전한 <퇴마록>이 영화화한 것이다. 그렇게나 오랜 시간이 걸렸어야만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원작'만큼의 퀄리티를 높이고, 완성도를 살릴 수 있기 위해서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이라고 믿고 싶다. 이제 본격적인 애니메이션이 속속 나오기에 앞서 '마지막 개정 작업'에 들어갔고, 심지어 <외전 3권>도 동시에 출간된다고 하니 정말 기대가 크다. 그럼 <퇴마록> 리뷰를 시작한다.

원작소설이 93년에 연재되기 시작했다. '국내편'을 시작으로 '세계편', '혼세편', 그리고 '말세편'으로 완간을 한 때가 무려 2001년이다. 그리고서 이번 애니메이션이 나온 것이 2025년이니 둘 사이의 간극이 무려 32년이나 생겨버렸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의 첫 장면은 아이러니하게도 박신부가 '스마트폰'으로 통화하는 장면이어서 격세지감이 들 정도였다. 93년 당시에는 '핸드폰'이 대중화되기 전이었고, 크기도 '벽돌'만 해서 '벽돌폰'이라 불릴 정도였는데 말이다. 아무튼 영화버전은 '현재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 같으니, '원작소설'을 읽을 때 그런 '간극'을 잘 여미면서 읽으시길 바란다.

그리고 '스포일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자세한 리뷰를 할 작정이니, 아직 '원작소설'과 '애니메이션'을 즐기지 못하신 분들은 감안을 하시고 읽으시길 바란다. 그러나 '영화감상'만으로 원작의 감동을 모두 다 이해할 수 없는 분들이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하기에 정확한 결말을 까발린다기보다는 '원작'과 '신작'의 차이점을 알고서, 영화를 더 잘 즐기기 위해서 '원작소설'에서 이 부분은 좀더 심여를 기울여서 읽어주시길 바라는 마음까지만 담아보려 한다. 그래도 너무 많은 스포는 자제하도록 하겠다.

기본적으로 애니메이션의 스토리는 4명의 퇴마사가 첫 만남을 하게 되는 장면을 중심으로, 각각의 퇴마능력이 무엇인지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그리고 첫 번째 퇴마록으로 '해동밀교의 서교주'를 최종빌런으로 삼았다. 원작소설에서도 서교주가 등장하는 <하늘이 불타던 날>을 꼼꼼히 읽어보시길 바란다. '해동밀교'는 <퇴마록>의 전편에서 아주 중요한 모티브가 되며, 국내편 1권부터 말세편 5권 마지막까지 계속 연결되는 고리 역할을 한다. 비록 첫 등장과 함께 '해동밀교의 본산'은 서교주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고 말지만, 해동밀교가 남겨놓은 유산인 <해동감결>이 말세의 도래를 예언하고 있기에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뭐, 어쨌든 영화는 4명의 퇴마사를 한꺼번에 소개하고 있다. 원작소설에서도 해동밀교에 내려오는 예언이라고 하면서, 장차 혼돈에 빠질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는 네 명의 큰 손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동방명인, 서방진인, 남방신인, 북방도인이 그들이고, 그중 남방신인은 해동밀교에 찾아오지는 않는다고 전한다. 여기서 동방명인은 온갖 주술을 모두 쓸 줄 아는 장준후이고, 서방진인은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아우라를 뿜어내는 박윤규 신부, 남방신인은 밀교의 8대명왕 가운데 애염명왕의 아바타라로 몸속에 신이 깃들어 있는 현승희, 그리고 마지막 북방도인은 도교적 힘을 바탕으로 한 태극기공과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파사신검을 수련한 이현암을 가리킨다. 원작소설을 이미 독파하신 분들은 이런 설명이 낯설지 않겠지만, 소위 MZ세대들에겐 익숙치 않은 설명일테니 조금 쉽게 다시 소개하겠다. 흔히 앱게임을 하면 '팀구성 조합'을 잘 짜야 한다. 여기에 '탱커', '딜러', '힐러'가 적절히 조합 되어야 게임을 쉽게 클리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박윤규 신부'는 탱커, '현승희'는 힐러, 그리고 '장준후와 이현암'이 각각 딜러가 되겠는데, 장준후는 '마법형 딜러'이고 이현암은 '물리력 딜러'라고 보면 아주 쉽다.

그런데 이런 완벽한 조합이 명분까지 잘 살려야 '퇴마행위'를 하는데 있어서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기에 '악령'이나 '마귀'는 아무 이유도 없이 무찌르면 된다고 여기지만, 퇴마사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 이게 <퇴마록>의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다. 아무리 사악한 악령일지라도 일단 '사람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함부로 죽이지 않는 것이 4명의 퇴마사들이 다른 '악령퇴치사'와 완벽하게 다른 점이다. 심지어 악령도 퇴치하지 못하고 자신들도 죽게 생길 정도로 절체절명의 순간까지 '사람의 목숨'을 살리려 한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가장 기본적인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때로는 자신들의 목숨까지 기꺼이 희생하려 한다. 이렇게 선한 사람들이기에 악마들조차 '퇴마사'들을 꺼릴 정도다. 이들의 선한 행위는 곧 '신의 의지'와도 같기에 그만큼 숭고하여서 '절대악'으로 똘똘 뭉친 사악한 존재들은 더더군다나 몸서리를 치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퇴마사들의 모습에 독자들은 환호를 보냈고 말이다. '한국형 오컬트 장르'를 개척한 셈이다.

다른 나라의 오컬트 장르는 그야말로 '피범벅'이지 않은가. 그런데 <퇴마록>은 다르다. 피가 넘쳐흐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넘쳐흐르는 피를 보면서 눈물도 함께 쏟는다. 그 많은 피들이 모두 선량하고 애꿎은 사람들이 저지른 죄악의 결과이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지은 죄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어린 양이기 때문이다. 악행을 저지르는 그들조차 '구원의 대상'으로 보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길 바라며, 비록 잘못된 길에서 다시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구원의 손길'을 머뭇거리지 않는 퇴마사들의 행동을 보며 '올바른 길'을 걷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형 오컬트'의 정수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이런 명장면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원작내용에 충실한 '소개'를 하고 있긴 하지만, 각각의 퇴마사들이 가지고 있는 '사연'을 짧은 영상으로 다 보여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원작소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먼저 국내편 1권에 수록된 <하늘이 불타던 날>(장준후), <파문당한 신부>(박윤규), <초상화가 부르고 있다>(현승희), <태극기공>(이현암), <귀검 월향>(이현암)을 꼭 읽어봐야 할 것이다. 이 다섯 작품에서 4명의 퇴마사들이 각각 어떻게 '능력'을 부여받게 되고, 어떤 '사연'으로 퇴마행을 걷게 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수적이지만 <퇴마록 외전 1편>에서 <그들이 살아가는 법>(박윤규, 이현암, 장준후)을 알아두면 애니메이션 1편에서 잠깐이나마 나온 장면들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런 내용을 몰라도 영화를 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전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애니메이션 영화는 '그 자체'로 완벽한 작품성을 갖추고 있으니 말이다. 올드팬들의 추억에 흔들리지 않고 이번 애니메이션 영화를 끝까지 완성했으면 하기 때문이다. 무려 30년이다. 강산이 3번이나 바뀌는 시간이 지났는데, '과거'에 발목이 붙잡혀서는 곤란할 것이다.

암튼, 한 편의 영화를 즐기는데 소개해야 할 것은 다 한 것 같다. 디테일한 설명은 나중에 영화 '후속편'이 나오거나 <뉴 퇴마록(가제)>이 출간된 이후로 미루어야겠다. 짐작컨데, '2편'은 더 크게 흥행할 것이다. '쿠키 영상' 속에서 나온 현승희의 아빠가 '초능력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승희조차 애염명왕의 아바타라가 봉인된 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에 대단한 힘을 숨기고 있다. 거기다 원래는 '세계편' 말미에나 등장하는 대악마 아스타로트가 영화 초반부터 등장해버렸다. 이렇게 되면 2편에서 등장해야 할 인물이 대략 윤곽이 나오게 된다. 짐작컨데 '현승희'의 퇴마사 합류로 시작해서, '이현암'의 귀검 월향이야기가 서브스토리로 진행될 것이며, '국내편 1, 2권'에 수록된 <생명의 나무>에서 등장하는 '브리트라'라는 뱀 형상의 빌런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이런 식이면 <퇴마록 애니 영화 3편>에서는 <초치검의 비밀>이 나올 것이다. 이렇게 '국내편'에서만 영화 3편이 나온다면, '세계편'에선 4편, '혼세편'에선 런닝타임 3시간 짜리 대작이 적어도 3편은 나올 것이며, '말세편'에 가면 매순간 순간이 흥행대작의 소잿거리가 될 것이다. 갈수록 등장인물을 방대해지고, 퇴마사들의 능력도 한층 업그레이드 되어 볼만한 액션이 정말 화려해질테니 말이다. 이런 기대만으로도 벌써 도파민 최대치를 찍고 말았다. 어떻게 나 좀 말려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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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영웅들이 세계를 구하는 방법
이소연 지음 / 비일비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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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IV / 비일비재 1번째 리뷰] 마블 영웅들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어벤져스 : 엔드 게임> 이후로 그 인기는 점점 시들해지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세계관이 점점 확장하면서 마블히어로들은 '이상한 행보'를 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의 행보가 아주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백인 일색의 히어로들'에서 '유색인종 히어로들'이 등장하고, '소수인권'을 보호하는 영웅들의 서사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캡틴 마블>의 히어로는 백인이긴 하지만 '여성 히어로'라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 이전에도 여성 히어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당당히 주인공으로 나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언맨 2>의 '블랙 위도우'가 그렇다. 나중에 '엔드 게임' 이후에 영화상영을 하긴 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간판'을 일찍 내리는 수모를 겪었다.

왜 여성 히어로가 등장하자마자 비판을 받은 걸까? 여성은 지구를 구하는 영웅으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인가? 하긴 '엔드 게임'에서도 캡틴 마블은 뒤늦게 등장하긴 했지만 등장하자마자 '게임 체인저' 역할을 했고, 아예 '전쟁 종결'을 확정 짓기까지 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선보였다. 그렇게 능력이 뛰어나지 초반부터 나올 수(?) 없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토록 강력한 능력의 소유자가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배우라며 맹비난을 받더니, 영화내용에서조차 '우주인 난민 보호'라는 헛짓거리를 한다며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이런 내용은 <더 마블스>에서 더욱 짙어졌다. 여기 등장하는 <미즈 마블>의 주인공은 '인도-파키스탄 난민 후손'이기까지 했다. 이렇듯 '소수자들을 위한 영웅'의 등장은 마블 영화팬들에게 마냥 반가운 일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세계관의 확장은 당연한 일 아닌가? 인권은 '특정 인종'과 '특수 계층'만을 위해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으로 확대되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소수자'이면서 '약자'인 사람에게도 인권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히어로 배역'이 주어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은 것은 'MCU의 세계관 확장'이 설득력을 갖추지 못한 '일방적'이었다는 점에서 그럴 수도 있다는 쪽으로 선회하게 만든다. 왜냐면 '엔드 게임' 이후의 마블영화들이 하나같이 '복잡한 서사'를 갖고 있고, 단 한 번의 영화관람으로 그 서사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심지어 여러 번 돌려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오히려 '엔드 게임'에 등장했던 빌런들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릴 정도다. 타노스가 전 우주의 생명체를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주는 '공멸'할 수밖에 없다면서 생명체가 거주하는 행성을 방문(?)하며 학살을 자행한다. 누가 봐도 '학살'은 나쁜 짓이니 타노스는 '악당'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런 악당이 저지르는 행위가 묘하게도 '설득력'을 갖췄다. 왜냐면 당장 지구에서조차 '인간'이 너무 많아서 몸살을 앓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80억 인류를 지구는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는 시점에서 '타노스의 주장'은 묘한 공감을 선사한다. 그런데 쉽게 동의할 수는 없다. 과연 40억 인류를 학살할 명분이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명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누구'를 명단에 올릴 수 있겠는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작위 학살'밖에 없다. 그런데 인류 역사를 되짚어봐도 그런 적이 있었던가? 정말 '무작위'였었나? 여기에 '약육강식'이라는 무시무시한 논리가 작동한다는 끔찍한 설계가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타노스'가 튕긴 손가락으로 타노스 쪽 군대도 절반이 날아가 버린 것은 사실이다. 허나 이를 지켜보면서 '공평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들조차 '자발적 희생'이 아니라 '무원칙 학살'의 희생자였기 때문에 마음속에선 화를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단지 '타노스의 힘'이 무서워서 감히 말을 하지 못한 것일 뿐이었다.

한편, '캡틴 마블'이 갖고 있는 힘을 빼앗기 위해서 '크리인들'은 자신들의 역량을 총동원했다. 그렇게 앞선 기술력으로 전우주를 점령하고 식민지로 삼아 학살을 자행했으면서도 반성이라는 것을 모르고 계속 그짓거리를 한다. 그래서 캡틴 마블이 '각성'한 뒤에 크리인들의 인공지능을 박살내버렸다. 그 사이에 지구를 침공한 타노스가 손가락을 튕기는 바람에 '또 다른 학살'은 막지 못했고 말이다. 만약, 그 손가락에 캡틴 마블마저 사라졌으면 어쩔 뻔 했겠는가? 암튼, 크리인들의 잔혹한 통치에 희생을 당해서 우주 난민 처지로 전락한 이들이 바로 '스크럴인'들이다. 이들의 외모가 끔찍하고, 감쪽같은 변장술(?)은 기분 나쁠 정도지만, 그런 이유로 그들을 학살할 권리가 온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래서 그런 불쌍한 이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은데, 막상 도우려니 이게 또 쉽지 않다. 학살자 크리인들이 주장한 것이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싶은 것이다. 만약 '스크럴의 변신'이 악용되어 크리인들이나 인간의 '지도자 행세'를 한다고 생각해보면, 그들의 능력을 마냥 반길 수만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평화롭게 공존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지만, 눈 뜨고 당할 '위협(?)'이 아주 없고, 또 그런 '안전'을 위해하지 않고 '평화'를 보장하겠다는 말을 누가 보증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렇듯 아주 민감한 주제로 'MCU'가 확장을 하자 마블영화를 편하게 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언급하지 않지 않았지만, 올해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 브레이브 뉴 월드>에서는 '흑인 영웅(팔콘)'이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로 등장했다. 일단 성공적인 데뷔로 마감하긴 했지만, 과연 '흑인'이 미국을 지키는 영웅이라는 것을 얼마나 반길지는 앞으로 '미지수'일 것이다. 백인 영웅은 이런 고민 따윈 하지 않겠지만, 흑인 영웅은 그런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 현재의 미국이다. 비단 미국만의 '시선'은 아니다. 전세계인들이 열광하던 '마블 영웅'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마블 영화는 '엔드 게임'으로 종결되었다는 목소리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점에서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저 심심풀이로 보던 '마블 영화'에 이토록 심오한 인문학적 관찰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줄 것이다. '계몽'은 이럴 때나 쓰는 말인데...

사족이지만, <이터널스>에 대한 이 책의 명쾌한 설명은 얼마간 도움이 되긴 했다. 엔드 게임에도 참여하지 않은 '신들의 이야기'에 타당한 이유를 선사하긴 했지만, 애초에 '인류'를 파멸로 이끌기 위해 존재했던 히어로 서사물을 만들어서 무엇하려 한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점으로 남았다. 마동석이 맡았던 '길가메시'의 대사가 너무 인상적이지 않던가. "우리가 영웅인줄 알았는데, 악당이었네"...이런 서사를 만들어놓고 과연 <이터널스 2편>을 기대할 수 있을까? 나온다 한들, '만들어진 신들'이기에, 또 다른 '종결자(터미네이터) 이터널스'가 등장할 뿐일텐데 말이다. 당췌 이해할 수 없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행보에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세계관의 확장'을 시도하는 것에는 환영한다. 비록 지금 시점에서는 '불편한 것들' 투성이일지라도 그런 불편함을 감수해낼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새는 알에서 태어난다'는 <데미안>의 문구를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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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 7 - 새로운 나라 미국의 탄생과 위기 극복 벌거벗은 세계사 7
최호정 그림, 김우람 글, 김봉중 감수, tvN〈벌거벗은 세계사〉제작팀 기획 / 아울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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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III / 아울북 30번째 리뷰] 미국이 이상해지고 있다. 비단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다들 이상하긴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상한 지도자들에게도 한결같은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자국이기주의'를 무한대로 늘리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세계화'를 외치며 전세계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만들어 '자유무역'을 확대하자고 똘똘 뭉치더니, 어느 순간부터 '자유무역'에 대해서 손절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미국이고 말이다. 더구나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재선을 하자마자 '관세카드'를 꺼내들고 연일 경제적 압박을 하고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는 구호를 내세우며 미국 안에 '공장'을 세우지 않으면 미국은 '무역적자'를 면치 못할테니, 미국에 물건을 팔고 싶으면 미국인 노동자를 고용해서 미국인들을 부자로 만들든지, 아니면 '관세폭탄'을 받든지, 알아서 설설 기어라라는 고압적인 자세로 날마다 엄포를 늘어놓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미국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정책인 것인지 잘 모르겠다. 무역이라는 것이 '서로 이익'을 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지, '일방적인 이익'을 내는 쪽이라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뭐, 당장이야 초강대국 미국에게 어깃장을 대놓고 놓을 나라는 없을 테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꼴랑 4년밖에 안 될 것인데, 막상 미국내 공장을 짓겠다고 하더라도 '실효성'이 있을 것인지 의심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껏 공장을 지었더니 그에 상응하는 '이익'을 얻을 수 없거나, 경제정책 기조가 바뀌기라도 하면 '막대한 손실'을 볼 수도 있을테니 어쩔 수 없이 신중한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어디로 튈지 예상도 되지 않는 인물인데, 막말처럼 내뱉은 말을 그저 밀어붙이기만 하고 있으니, 전통적인 미국 동맹국들조차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과연 미국의 이런 정책들이 향후 전세계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 것인지 궁금해진다.

미래가 궁금해지면 어쩔 수 없이 '과거'를 되돌이켜 보아야 한다. 현재시점이 '과거의 미래'로 가정한다면 과거시점은 '과거의 현재'일 수 있으니,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되돌이켜 보는 것으로 미래의 역사가 어떻게 만들어가는지 '예측가능한 검증'을 시도해볼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가능한 미래로 가정하고, 조금이나마 불확실성을 낮추고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마련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초강대국 미국'이 만들어진 과정을 살펴보고, 미국의 앞날을 점쳐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점쳐본 미래가 꼭 맞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아주 틀리다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면 우리네 역사가 완전 똑같지는 않지만 늘 '반복적인 모습'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공부는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이 책 <벌거벗은 세계사 7>에서는 미국의 탄생과 경제 발전, 그리고 대공황의 극복까지 다루고 있다. '미국 혁명'이라고도 불리는 미국의 독립전쟁 과정은 세계 최초의 '대통령제 국가'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아 자유와 평등의 사상을 바탕으로 세상에 없던 새 나라를 건국했지만, 어렵사리 건국한 초창기의 미국은 가시밭길이 매우 험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은 '명백한 운명'이라는 계시를 받은 듯이 영토를 넓혀가며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가히 '신의 축복'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광활한 대륙과 비옥한 토지를 바탕으로 미국인들의 마음속에 '프론티어 정신'을 심어주게 된다. 단순한 '도전정신'을 넘어선 미국인만의 자부심이 녹아 있는 사상으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은 경제발전의 길목에서 '남북전쟁'이라는 위기를 맞이 한다. '노예제도 존폐 문제'로 촉발되었다고도 오해하지만, '노예 해방'이 주목적은 절대 아닌 '미국내 경제문제'로 인한 갈등이 심화된 탓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링컨 대통령이 당선될 당시의 미국은 남북으로 첨예한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었다. 미국의 남부는 전통적으로 '목화 농장'과 같은 농경을 주력산업으로 하고 있었기에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서라도 '노예제도'가 절실히 필요했다. 이에 반해 미국의 북부는 공장제 산업이 급속히 발달하여 날마다 '공산품'이 쏟아져 나오던 때였다. 이렇게 물품이 많이 양산된 경제체제에서는 물건을 소비할 수 있는 '노동자 확보'가 절실했다. 그래서 무일푼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예를 없애는 것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이렇게 미국내에서는 상반된 시선을 갖고 있을 즈음, 유럽에서는 '노예해방'을 주장하는 사상가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과거 제국주의시절의 폐해에 대한 일련의 반성적 분위기가 싹 튼 것인데, 문명을 전파하는 입장에서 비윤리적인 노예제도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식이 싹트고 있던 시절이었기에 미국내에서도 이런 분위기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져 간 것이다.

하지만 미국 남부의 농장주들은 반갑지 않은 분위기였다. 힘든 노역을 값싼 노동력으로 착취할 수 있는 '노예제도'를 반대한다면 애써 재배한 '생산물'을 유럽에 수출하는 것으로 경제적 부를 유지하던 남부 농장주들에겐 큰 타격이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내에서 '노예제도 폐지'에 대한 여론이 점점 늘어나자 '남부 7개주'가 연방 탈퇴라는 강한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에 '미국의 분열'을 방관할 수 없었던 링컨 대통령은 전쟁을 선포했다. 하지만 전쟁 초기에는 '북부군'이 불리했다. 전쟁물자는 풍족했으나 전쟁을 지휘할 지휘관들이 대부분 '남부 출신'이라 남부군을 지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은 어파피 '물량공세'를 이길 수 없는 법이다. 전황은 다시 북부군에게 유리하게 돌아섰다. 그러자 남부군은 '유럽'에 군사지원요청을 한다. 영국과 프랑스의 도움을 받는다면 '북부군'은 양쪽에서 협공을 받아 불리해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링컨 대통령은 그 유명한 '노예해방선언'을 해버린다. 당시 유럽에선 '노예제도 폐지론'이 우세했는데, 미국내 전쟁에서 '노예제도'를 찬성하는 남부군을 돕게 된다면 여론의 뭇매를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링컨의 예상은 적중했고, 유럽은 '남북전쟁'에 불참하게 된다. 그렇게 '게티스버그 전투'를 승리하며 전쟁은 북부가 차지하게 된다. 이로써 '노예제도 폐지'는 명문화하게 된다.

그렇지만 진정한 노예해방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실현되지 못한다. 법률상으로는 '흑인노예'는 있을 수 없었지만, 법률의 빈틈을 노리고 '흑인노예'는 계속 존속했으며, '흑인'은 미국시민권이 없다는 법률 판결을 내세워서 흑인들의 인권은 오래도록 보장받지 못했다. 이런 암울한 현실속에서 미국내 '흑백갈등'은 점점 고조되었고, 지금까지도 미국은 '인종차별'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한다. 프론티어 정신에 이은 '뉴프론티어 정신'으로 미국인들의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고 결국엔 우주정복까지 해낼 기세였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거두고서 새로운 '패권국가'로 거듭난 미국은 대영제국의 뒤를 이어 명실상부한 '세계제일 강대국'으로 등극하게 된다. 그리고 맞이한 경제호황은 미국인들에게 엄청난 부를 안겨 준다. 하지만 그런 호황은 오래가지 못한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유럽의 경제 사정'이 차츰차츰 나아지면서, 미국에서는 '과잉생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농업은 말할 것도 없고 공장 산업에서 쏟아지는 물품이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가는 기세가 점점 꺾여나갔기 때문이다. 주식 투자 붐이 일 때는 '사는 족족, 대박 행진'을 거듭했지만, 경기가 한풀 꺾이자 주식 시장에는 '거품'이 끼기 시작했다. 판매는 점점 감소하는데 투자는 계속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거품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꺼지기 시작하자 주가는 겉잡을 수 없이 곤두박질을 쳤고, 급기야 '검은 목요일' 사태가 발생했다. 이튿날 떨어진 주가에 '사자 열풍'으로 반등을 하기도 했지만, 주말이 지나고 월욜이 되어 뒤늦게 소식을 접한 투자자들의 투매현상이 일어나면서 주가는 다시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다. 이를 감당하지 못한 수많은 공장들은 문을 닫았고, 은행은 대출금을 돌려받지 못해 파산해버렸다.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된데다 저축한 돈마저 잃어버리고 투자한 주식은 휴짓조각이 되어 버리니 미국의 경제는 폭망해버렸다. 이를 '대공황'이라고 한다.

미국발 경제대공황은 전세계로 뻗어나갔다. 그나마 식민지를 갖고 있던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신들이 받을 경제적 타격을 식민지인들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 어찌어찌 버텼지만, 그마저도 없었던 '신흥제국주의국가'들은 여지없이 경제적 타격을 받게 되었다. 이때 의외로 경제대공황을 잘 버티던 국가가 바로 '소비에트 연방국가'였으니, 공산주의국가들이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비웃으며 자신들의 우위를 자랑할 수 있는 호시절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런 호시절도 오래 가지 못했다. 미국의 경제대공황은 '뉴딜 정책'으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뉴딜 정책'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능열쇠를 제공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물꼬를 마련하고, 경제회복의 신호탄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자본주의가 '회생할 수 있다'는 능력을 선보여 준 셈이다. 이에 반해 공산주의는 '제자리걸음'으로 더 큰 경제성장을 보여주지 못하고 답보상태에 빠져버렸고, 곧이어 터진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전세계는 다시 재편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전쟁이 끝난 뒤에 이어진 '냉전'은 경제체제를 양극화시켰고, 그 양극단에 있는 '이데올로기(이념) 대결 양상'으로 20세기 내내 크고 작은 전쟁을 일삼더니, 1990년대 공산주의는 완전한 패배를 선언하고 말았다. 소련연방이 해체되었고, 독일은 통일되었다. 그리고 맞이한 21세기는 바야흐로 '미국의 패권주의'가 판을 치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패권도 종종 흔들렸다. '팍스 아메리카나'로 영원할 것 같았지만 '9·11 테러', '금융위기사태', '아프가니스탄 패전' 등등 미국의 위상을 깎아내리는 일련의 사건들이 줄기차게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다시 '트럼프 시대'가 도래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가장 예측불가한 '지도자'가 미국의 행정부를 장악해버린 셈이다. 이제 미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비해야 한다. 그 대비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가 결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만 하고 있을 것도 아니다. 위기는 곧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미국에 대해서 철저히 공부하고 대비한다면, '미국발 위기'가 위기만은 아닐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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