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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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CMLVI / 이봄 5번째 리뷰] 중학생이었던 수짱(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이 서른네 살의 노처녀로 바뀌었다. 이 책이 '수짱 시리즈의 1편'이라고 한다. 책표지에 그런 것을 좀 적어두면 좋으련만 웬만한 '마니아'가 아니면 알아 볼 수 없게 만드는 이런 것을 좀 좋아하진 않는다. '입문자'들에겐 여간해선 넘기 힘든 벽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걸 '넘사벽'이라고 하던가. 이제 좀 '마스다 미리'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싶었는데, 뭔가 알아야 할 것들이 넘쳐날 때 '입문자'들은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물론 '팬덤 현상'이 주류가 되었을 땐 그런 '일정 선'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 '선'을 넘어야만 볼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것이 있어야 기꺼이 지불할 용의(?)도 생기는..뭐 그런 것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진입장벽'은 좀 낮춰주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발을 넣고 빼고 하는 것도 쉬워질테고, '특권의식(갑질)'도 애초에 생기질 않을 것이고 말이다. 암튼 이 책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가 '수짱 시리즈 1편'이란다. 참고로 '개정판'이다.

서른네 살의 여성은 과연 '노처녀'일까? 21세기 '현대'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절대 '늙은 여자'가 아니다. 초중고 12년에 대학교육 4년까지 마치면 도합 16년간 '기본교육'을 다 마치면 만 23세에 대학을 졸업하게 된다. 곧바로 취업활동을 하고 직장에 들어간다면 24살에 '신입사원' 2년 뒤 '주임'을 달고, 또 2년 뒤에 '대리'를 달고, 5년 뒤에 '과장'을 달면 초고속 승진을 한 셈이다. 그렇게 어느 정도 '사회생활'에 커리어를 달게 된 나이가 서른네 살인 셈이다. 나름 경력직 사원으로 손색이 없는 당당한 커리어 아닌가? 그런데 왜 '서른네 살의 여성'을 노처녀 취급하는 걸까? 반대로 남성의 경우에 똑같은 '경력'을 쌓아 서른여섯 살(군대2년을 보탬)의 노총각을 떠올려보자. 따져 볼 것도 없이 한창 나이 아닌가? 근데 왜 여성의 경우엔 '늙은 여자' 취급을 하느냔 말이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생물학적 나이'를 감안할 수밖에 없다. 남성의 경우엔 어른이 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자녀가 생겨도 '열심히 일하는데' 방해요소가 전혀 없다. 오히려 어른이 되었으니 '직장 구해야'하고, 연애하니 '어엿한 직장생활 해야'하고, 결혼할라치면 '당당한 샐러리맨이 되어 있어야'하며, 자녀가 생기면 '당당한 가장이 되어야 하니 더욱더 격려 차원에서 승진까지 고려 대상이 되어야'한다고 여긴다. 이렇듯 남성의 경우엔 '생물학적 나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 심지어 외모 따윈 그닥 중요하지도 않다. 오직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만을 따질 뿐이다.

그런데 여성의 경우엔 다르다. 어른이 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할라치면 '나이'부터 따지고 든다. 우리 사회가 그렇다는 말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은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을 통해서 당당히 인권을 누리고, 그에 따른 혜택을 누리게 되었는데도, 이상하게 '손해보는 장사'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이다. '똑같은 교육'을 받았는데, 왜 여성은 예뻐야 하고, 정절을 지켜야 하고, 일부종사를 해야 하고, 가사일은 기본적으로 '만능'이어야 하고, 맞벌이는 '필수'여야 하며, 임신과 출산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왜 육아까지 '독박'을 써야하는지...이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 이어진다. 그래서 현대여성들은 이런 '고단함'에서 벗어나고자 연애도 기피하고, 결혼도 기피하고, 육아도 기피하며, 그나마 만만한(?) '직장여성'으로 살아가려 한다. 그런데 또 그러면 안 된다고 '사회구조적인 압박'이 가해진다. 어쩌란 말인가?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시몬 드 보부아르는 <제2의 성>에서 주장했다.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강제로 짊어지게 한 압박에 의해서 여성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현대여성에게 얽매어 있는 이런 '구속'을 스스로 벗어던질 수나 있는가? 있긴 하지만, 그렇게 하면 스스로 '여성'임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 맹점이다. 여성이 여성이길 원하면 여성임을 포기해야 한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아니, 말이 된다. 현대여성은 '결혼, 임신, 출산, 육아'를 포기하면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강요하고 있다는 얘기다. 과연 이런 사회를 요구하고도 우리 인류가 '존속 가능한 사회'를 이루며 유지할 수 있다고 보는가? 단언컨데 '절멸'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사회구조적으로 완전한 '여성해방'을 이루어야만 한다. 30대 여성들이 전혀 고민을 하지 않고 마냥 즐겁고 씩씩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들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여성들에게 '의무'만 요구하지 말고, 누릴 수 있는 '권리'도 보장해주어야만 한다. 만약 '이대로' 30대 여성들의 고민만 산적해간다면 인류는 끝내 비참한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작 30년동안 '한 세대'만이라도 30대 여성들이 '결혼,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모든 의무와 권리마저 포기해버린다면, 그 사회는 결코 유지는커녕 '존속'조차 불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고민'에 빠져들게 하지 않아야 한다. 삶을 즐길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인류는 답이 없게 된다.

이런 시선으로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에 등장하는 서른네 살 동갑내기 '수짱과 마리코의 삶'을 지켜보면 우울해진다. '잃어버린 20년'을 관통하고 있던 당시의 일본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수짱은 '연애'도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프리타(알바)' 형태의 직장에서 '정직원'으로 채용되어 일을 하고 있다. 물론 만족스럽지 않은 삶이다. 친구인 마리코는 '영업사원'으로 경력을 인정받고 있는데, 역시 미혼이다. 그러나 '유부남'과 불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왜냐면 외롭기 때문이다. 여성으로서 '사랑'받고 '인정'받고 '행복'해지고 싶지만, 삶이란 무게가 그녀들을 녹록치 않게 만들고 있고, 그녀들은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며 그저 살아가고만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수짱에게도 '연애'하고 싶은 대상이 생겼다. 같은 직장에 새로 온 매니저가 '훈남'이기 때문이다. 젊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 남성과 달콤한 연애를 꿈꾸지만 '사귀자'는 솔직한 말을 전할 용기는 없다. 그렇게 미적미적거리다가 같은 직장의 어여쁜 동생뻘 여직원이 '훈남 매니저'와 사귀고 있고 곧 결혼도 할꺼라고 고백을 받는다. 얼마 있으니 '임신'도 했단다. 수짱이 달콤한 상상에 빠져 있을 때 이미 그 둘은 사귀고 있었고, 수짱은 혼자서 헛물만 들이킨 셈이다. 속상하다. 더 외로워졌다. 삐뚫어지고 싶어질 찰나에 '점주'로부터 '점장을 맡아서' 해보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는다. 사랑엔 실패했지만, 일에는 성공한 셈이다. 그런데 이게 정말 괜찮은 걸까?

수짱의 친구 마리코는 나름 잘나가는 '영업사원'이다. 경력도 빵빵하고 수완도 좋아서 '성과'를 쑥쑥 올려서 여직원인데도 직장상사(늙은 남자)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는(?) 당당한 커리어우먼이다. 물론 예쁘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여성 영업사원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칭찬이지만, 예쁘다는 말이 늘상 칭찬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그로 인해서 '관리해야 할 것'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서른네 살의 여성이 예쁘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 '메이크업(화장)'만으로는 부족하다. '피부관리', '헤어관리', '몸매관리', '의상관리', 그밖의 온갖 치장치장치장...해야 할 것들이 수두룩빽빽이다. 한 순간이라도 방심(?)을 했다간 바로 지적(!)이 들어오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해보지 못했다. 사랑이라 생각했던 남성은 '유부남'이었고, 비밀스런 연애를 이어나가다보니 '주말연애'는 할 수도 없다. 불륜남도 주말에는 '가정적인 남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헤어질 용기가 생기지 않는 것은 '외롭기' 때문이다. 맘에 맞는 남자와 밀담을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친밀해지기 위해선 '새로운 만남과 충분한 시간'이 투자되어야 하는데, 서른네 살이란 나이가 그럴 용기를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일을 하고 있지만, 헛헛한 마음은 채워지질 않는다. 그러다 불륜남과 헤어지고 '중매결혼'을 하게 되었다. 어쩌다보니 말이다. 그런데 이게 정말 괜찮은 걸까?

수짱과 마리코는 각각 '승진'과 '중매결혼'으로 '제2의 인생'을 맞이하려 한다. 그게 또 어떤 '행복'을 맞이하게 해줄 것인지는 미지수로 남겨둔채 말이다. 어쩌면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변화'는 긍정적인 시그널이다. 변화하지 않고서는 인생을 살아간다고 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 변화는 누구나 마뜩찮게 여길 것이다. 행복을 어디에다 맡겨두고서 원할 때 꺼내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중한 행복을 믿고 맡겨주셔서 감사의 의미로 '이자'까지 꼬박꼬박 챙겨서 불려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고 말이다. 하지만 행복을 남에게 맡겨둘 수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내 안에 고이 간직했다가 꺼내 쓰는 것이다. 행복이란 말이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라는 물음은 얼마든지 해도 좋다. 하지만 지금의 난 행복하지 않다는 말을 단정적으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건 '내 안에 있는 행복'을 찾아보지도 않고서 '없다'고 단정짓는 것만큼이나 어리석기 때문이다. 찾아보았는데도 잘 보이지 않는다면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럼 '보일 수도 있다'. 행복은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잘 안 보인다면 잘 보이도록 크게 키우는 것도 오직 '자신의 몫'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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