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블 영웅들이 세계를 구하는 방법
이소연 지음 / 비일비재 / 2024년 11월
평점 :
[My Review MCMLIV / 비일비재 1번째 리뷰] 마블 영웅들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어벤져스 : 엔드 게임> 이후로 그 인기는 점점 시들해지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세계관이 점점 확장하면서 마블히어로들은 '이상한 행보'를 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의 행보가 아주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백인 일색의 히어로들'에서 '유색인종 히어로들'이 등장하고, '소수인권'을 보호하는 영웅들의 서사가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캡틴 마블>의 히어로는 백인이긴 하지만 '여성 히어로'라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 이전에도 여성 히어로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당당히 주인공으로 나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언맨 2>의 '블랙 위도우'가 그렇다. 나중에 '엔드 게임' 이후에 영화상영을 하긴 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간판'을 일찍 내리는 수모를 겪었다.
왜 여성 히어로가 등장하자마자 비판을 받은 걸까? 여성은 지구를 구하는 영웅으로 적합하지 않기 때문인가? 하긴 '엔드 게임'에서도 캡틴 마블은 뒤늦게 등장하긴 했지만 등장하자마자 '게임 체인저' 역할을 했고, 아예 '전쟁 종결'을 확정 짓기까지 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선보였다. 그렇게 능력이 뛰어나지 초반부터 나올 수(?) 없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토록 강력한 능력의 소유자가 '페미니즘'을 옹호하는 배우라며 맹비난을 받더니, 영화내용에서조차 '우주인 난민 보호'라는 헛짓거리를 한다며 비난의 수위를 높였다. 이런 내용은 <더 마블스>에서 더욱 짙어졌다. 여기 등장하는 <미즈 마블>의 주인공은 '인도-파키스탄 난민 후손'이기까지 했다. 이렇듯 '소수자들을 위한 영웅'의 등장은 마블 영화팬들에게 마냥 반가운 일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세계관의 확장은 당연한 일 아닌가? 인권은 '특정 인종'과 '특수 계층'만을 위해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으로 확대되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소수자'이면서 '약자'인 사람에게도 인권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히어로 배역'이 주어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니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도 비판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은 것은 'MCU의 세계관 확장'이 설득력을 갖추지 못한 '일방적'이었다는 점에서 그럴 수도 있다는 쪽으로 선회하게 만든다. 왜냐면 '엔드 게임' 이후의 마블영화들이 하나같이 '복잡한 서사'를 갖고 있고, 단 한 번의 영화관람으로 그 서사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심지어 여러 번 돌려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오히려 '엔드 게임'에 등장했던 빌런들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릴 정도다. 타노스가 전 우주의 생명체를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주는 '공멸'할 수밖에 없다면서 생명체가 거주하는 행성을 방문(?)하며 학살을 자행한다. 누가 봐도 '학살'은 나쁜 짓이니 타노스는 '악당'이 분명하다. 그런데 그런 악당이 저지르는 행위가 묘하게도 '설득력'을 갖췄다. 왜냐면 당장 지구에서조차 '인간'이 너무 많아서 몸살을 앓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80억 인류를 지구는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는 시점에서 '타노스의 주장'은 묘한 공감을 선사한다. 그런데 쉽게 동의할 수는 없다. 과연 40억 인류를 학살할 명분이 어디서 찾는단 말인가? 명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누구'를 명단에 올릴 수 있겠는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작위 학살'밖에 없다. 그런데 인류 역사를 되짚어봐도 그런 적이 있었던가? 정말 '무작위'였었나? 여기에 '약육강식'이라는 무시무시한 논리가 작동한다는 끔찍한 설계가 감춰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타노스'가 튕긴 손가락으로 타노스 쪽 군대도 절반이 날아가 버린 것은 사실이다. 허나 이를 지켜보면서 '공평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들조차 '자발적 희생'이 아니라 '무원칙 학살'의 희생자였기 때문에 마음속에선 화를 감추지 못했을 것이다. 단지 '타노스의 힘'이 무서워서 감히 말을 하지 못한 것일 뿐이었다.
한편, '캡틴 마블'이 갖고 있는 힘을 빼앗기 위해서 '크리인들'은 자신들의 역량을 총동원했다. 그렇게 앞선 기술력으로 전우주를 점령하고 식민지로 삼아 학살을 자행했으면서도 반성이라는 것을 모르고 계속 그짓거리를 한다. 그래서 캡틴 마블이 '각성'한 뒤에 크리인들의 인공지능을 박살내버렸다. 그 사이에 지구를 침공한 타노스가 손가락을 튕기는 바람에 '또 다른 학살'은 막지 못했고 말이다. 만약, 그 손가락에 캡틴 마블마저 사라졌으면 어쩔 뻔 했겠는가? 암튼, 크리인들의 잔혹한 통치에 희생을 당해서 우주 난민 처지로 전락한 이들이 바로 '스크럴인'들이다. 이들의 외모가 끔찍하고, 감쪽같은 변장술(?)은 기분 나쁠 정도지만, 그런 이유로 그들을 학살할 권리가 온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래서 그런 불쌍한 이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없지는 않은데, 막상 도우려니 이게 또 쉽지 않다. 학살자 크리인들이 주장한 것이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싶은 것이다. 만약 '스크럴의 변신'이 악용되어 크리인들이나 인간의 '지도자 행세'를 한다고 생각해보면, 그들의 능력을 마냥 반길 수만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평화롭게 공존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지만, 눈 뜨고 당할 '위협(?)'이 아주 없고, 또 그런 '안전'을 위해하지 않고 '평화'를 보장하겠다는 말을 누가 보증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렇듯 아주 민감한 주제로 'MCU'가 확장을 하자 마블영화를 편하게 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언급하지 않지 않았지만, 올해 개봉한 <캡틴 아메리카 : 브레이브 뉴 월드>에서는 '흑인 영웅(팔콘)'이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로 등장했다. 일단 성공적인 데뷔로 마감하긴 했지만, 과연 '흑인'이 미국을 지키는 영웅이라는 것을 얼마나 반길지는 앞으로 '미지수'일 것이다. 백인 영웅은 이런 고민 따윈 하지 않겠지만, 흑인 영웅은 그런 고민을 해야 하는 것이 현재의 미국이다. 비단 미국만의 '시선'은 아니다. 전세계인들이 열광하던 '마블 영웅'은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마블 영화는 '엔드 게임'으로 종결되었다는 목소리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런 시점에서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저 심심풀이로 보던 '마블 영화'에 이토록 심오한 인문학적 관찰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줄 것이다. '계몽'은 이럴 때나 쓰는 말인데...
사족이지만, <이터널스>에 대한 이 책의 명쾌한 설명은 얼마간 도움이 되긴 했다. 엔드 게임에도 참여하지 않은 '신들의 이야기'에 타당한 이유를 선사하긴 했지만, 애초에 '인류'를 파멸로 이끌기 위해 존재했던 히어로 서사물을 만들어서 무엇하려 한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점으로 남았다. 마동석이 맡았던 '길가메시'의 대사가 너무 인상적이지 않던가. "우리가 영웅인줄 알았는데, 악당이었네"...이런 서사를 만들어놓고 과연 <이터널스 2편>을 기대할 수 있을까? 나온다 한들, '만들어진 신들'이기에, 또 다른 '종결자(터미네이터) 이터널스'가 등장할 뿐일텐데 말이다. 당췌 이해할 수 없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행보에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세계관의 확장'을 시도하는 것에는 환영한다. 비록 지금 시점에서는 '불편한 것들' 투성이일지라도 그런 불편함을 감수해낼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새는 알에서 태어난다'는 <데미안>의 문구를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