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독서평설 2026.2 독서평설 2026년 2월호
지학사 편집부 지음 / 지학사(잡지)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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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독서평설 2026년 2월호> 지학사 편집부 / 지학사 (2026)

[My Review MMCXCIX / 지학사 2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스물여덟 번째 리뷰는 대입논술 글쓰기 교재로 탁월한 <고교 독서평설 2026년 2월호>다. 원래 잡지책 출간이 월말에 있기 때문에 늦어도 지난주 1월 마지막주에는 리뷰를 올렸어야 했는데, 1월호 교재를 늦게 접하고 리뷰도 늦게 쓴 바람에 2월호도 조금 늦게 리뷰를 쓰게 되었다. 3월호부터는 빠르게 리뷰를 올릴 것을 약속 드린다.

<고교 독서평설 2026년 2월호> 관점 포인트 : 사실상 '탁월한 논술 교재'로 정평이 나있기 때문에 논술 글쓰기를 하기 위해서 꼭 읽어야 할 잡지임에 틀림없다. 웬만한 논술학원비용은 가히 천문학적이라 얘기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말씀은 굳이 드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런데 그걸 '잡지 1권 값'으로 뽕을 뽑을 수 있다면 얼마나 '가성비'가 높겠느냔 말이다. 특히나 고3수험생들은 그저 부르는게 값이다. 그러니 본격적인 '대입논술시험'을 대비하기 위해서 시험직전 한두 달은 다닐 생각을 하더라도 '기본기'를 익히기 위해서, 틈틈이 글쓰기 연습을 하기 위해서라도 이 교재를 적극 활요하시길 바란다.

앞서 1월호 리뷰에는 '개요짜기'의 요령과 중요성에 대해서 잠시 설명을 드렸다. 그럼 개요짜기를 한 뒤에 논술글을 쓰는 요령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평상시 글쓰기 연습을 할 때에는 1000자 분량의 글을 쓰는 연습을 하면 좋다. 기본적인 개요는 [서론 (200자)-본론 1, 2, 3 (각 200자씩)-결론 (200자)]로 구성하면 좋다. 200자 원고지 5매 정도의 분량이니 각각 1장씩 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게 습관이 되면 자연스럽게 서론-본론-결론의 완성된 글 한 편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한 문단에는 '중심 문장'이 한 개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뒷받침 문장'으로 채우면 된다. 대개는 [중심 문장-뒷받침 문장1-뒷받침 문장2-뒷받침 문장3]으로 보통 3~4개의 문장을 쓰면 200자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각각의 문단에 뭘 써야 할지가 난감할 것이다. 어떤 주제에 대한 '나의 생각(주장)'을 정리해서 글을 써야한다는 것은 잘 알지만, 막상 쓰려고 들면 써지지 않는 것이 글(논술)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월호 '글로벌 경제정책 이모저모'에 실린 '중국의 도약과 한계 : 흑묘백묘'에 관한 제시글로 한 편의 글을 쓴다면 어떻게 쓰겠는가? 먼저 '흑묘백묘'가 뭔지 알아야 할 것이다. 이를 '배경지식'이라고 한다. 배경지식을 쌓기 위해서는 엄청난 독서량과 더불어서 '최신 뉴스/이슈'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어야 한다. 먼저 제시글에는 중국의 경제성장 배경으로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를 꼽고, 현재 중국의 경제정책으로 '시진핑의 일대일로'와 대비시켜 미래의 중국 경제성장을 전망하고 있다. 보통 이런 제시글에는 '비판적인 논설문'보다 '배경지식을 넓힐 설명문' 형식으로 작성하는 것이 낫다. 물론 논술글에는 '나의 생각'이 담겨야 하기 때문에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로 마오쩌둥의 경제실패를 극복하고 중국 경제가 '두 자리 성장'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만, 현재에는 중국의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암울한 현실만 보일 뿐이다. 그 이유로 '시진핑의 일대일로'가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바로 '자신의 생각'을 담아서 비판을 하면 좋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전망하기를 써내려간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그럼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란 무엇인가? 직접적인 뜻은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마오쩌둥 시절에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굶어죽는 인민들이 너무 많아진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마오쩌둥에 이어 주석 자리에 오른 덩샤오핑은 '공산주의' 체제에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하여 굶주린 인민들을 살려낼 묘안을 내놓는다. 그러자 중국 경제는 매년 '두 자리 수' 성장을 거듭하며 빠르게 정상화가 되었고 90년대에는 중국 경제가 선진국을 넘볼 정도로 급성장하게 되었다. 이를 실현가능케 한 것이 바로 '자본주의' 체제의 도입으로 중국은 '전세계의 공장'이라는 수식어로 불릴 정도로 수많은 선진국의 기업들이 앞다퉈 중국에 '제조공장'을 지어 생산에 박차를 가했던 것이다.

허나 이렇게 경제성장에 성공한 중국은 '시진핑의 일대일로'를 야심차게 준비하고 시작하지만, 이로 인해 중국 경제는 다시 휘청거리게 되었다. 영어로는 'One Belt One Road'로 쓰이며, 우리말로는 '하나의 벨트, 하나의 길'을 뜻한다. 이는 과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것처럼 21세기 경제 벨트를 '중국으로 향하게' 만들고, 전세계 모든 물량을 하나의 길, '중국을 중심으로' 모이게 만들겠다는 야심을 내비친 것이다. 이는 과거 중국과 서양을 연결했던 '실크로드'를 다시 재건함과 동시에 '해상 실크로드'까지 구축해서 '제2의 실크로드'까지 활성화하여 전세계 경제 중심국으로 새로워진 중국을 내세우겠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이다. 그래서 시진핑은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비롯해서 중남미까지 범위를 확대하여 강력한 '경제권'을 내세우려 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중국은 '일대일로 참여국'을 날로 늘여나갔고, 참여를 희망하는 국가에게 엄청난 '경제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일대일로 참여국가'는 하나같이 경제침체를 겪었고, 이로 인해 중국은 엄청난 지원금을 회수조차 하지 못해 '파산'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런 경제적 부채는 고스란히 '중국 인민들'에게 전가되어, 과거 마오쩌둥 시절과 마찬가지로 헐벗고 굶주리는 중국 인민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이런 '흑묘백묘'와 '일대일로'는 묘한 대비점을 비춘다. 전자는 중국 경제성장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후자는 중국 경제에 비상등을 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대로 중국 경제는 폭망하고 말 것인가? 우리는 흔히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고 말한다. 이를 반대로 해석하면 '이웃나라가 망하면 우리나라가 득을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한다. 진짜 그럴까? 결과는 정반대다. 우리를 둘러싼 나라들이 다들 선진국이고 잘 사는 나라라면 우리는 어떤 혜택을 볼까? 전쟁을 대비할 것 없이 평화체제에서 오직 경제발전에만 올인하며 성장가도를 달릴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전세계의 이목과 물량이 잘 사는 우리 주변국가들을 향할테니, 우리나라도 별다른 홍보 없이도 덩달아 이득을 챙길 수 있게 된다. 중국을 방문한 관광객이 자연스레 한국과 일본을 방문할 것은 당연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더구나 평화로운 시국이라면 자유로운 왕래는 더욱더 활성화 될 것이다. 그런데 중국 경제가 폭망해서 거지꼴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 여파가 이웃나라인 우리에게도 끼치게 된다. 중국에서 살기 힘든 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우리나라에 들이닥칠 것이며, 경제침체로 인한 중국내 사회불안으로 시위와 폭동이 연일 일어나게 된다면 이웃나라에도 그 불똥이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경제가 폭망한다고 우리가 박수를 치며 좋아할 일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중국의 경제가 정상화되고 성장가도를 달리는 것이 훨씬 더 큰 이득을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일대일로'가 이대로 폭망하는 것을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마냥 '시진핑의 일대일로'가 성공하는데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까? 시진핑이 '독재자'가 아니고,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위험이 없다면 상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시진핑의 속내가 괘씸하기 때문에 마냥 협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시진핑의 독재와 중국의 독주를 막고 엇나가지 않도록 '조율'을 할 수 있는 카드를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중국 경제의 정상화는 '대한민국의 협력' 없이는 힘들다는 말이다. 더구나 중국이 '대만침공' 등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를 억지할 수 있는 실력도 '대한민국'이 갖고 있다. 물론 대한민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중국을 압도할 만큼은 아니지만, 적어도 중국이 '정상국가'로서 해서는 안 될 법한 행동을 취했을 때, 대한민국이 그 반대에 서서 중국의 견제할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중국이 필요로 하는 '반도체'와 'LNG선' 등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첨단기술력으로 만든 제품을 중국이 공급받지 못한다면 중국 경제의 숨통은 점점 조여올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중국의 시진핑은 현재 대한민국과 긴밀한 협조를 아끼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전망인 것이다.

그렇다면 '시진핑의 일대일로'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시진핑은 '경제지원'을 한다는 핑계로 지원국의 경제 뿐만 아니라 정치, 군사, 안보 등등 모든 면에서 '중국의존도'를 높이려는 꼼수를 부리려 하고 있다. 그 꼼수가 '악의적'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거대한 중국 자본으로 대대적인 사업을 펼쳤지만, 그 사업으로 인해 전혀 수익을 얻지 못하고 '부채'만 늘어나서 중국에게 경제적 의존만 더욱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를 간파한 국가들이 '중국의 자금'을 빌려쓰긴 했지만 '중국'을 싫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식의 '일대일로'가 제대로 진척될 턱이 없다. 중국은 다른 나라에 경제지원을 한만큼 지원 받는 국가의 경제성장까지 보장하는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일대일로'가 성공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성공한 덕을 우리나라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세계의 이목과 물량이 중국으로 쏠리는데, 그 '경로'에 있는 대한민국을 그냥 스쳐지나갈 리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류열풍은 전 세계적인 흐름이 되었고, K-팝, K-뷰티, K-방산, 그리고 K-한식에 이르기까지 '한국'이란 브랜드가 트랜드가 되어 버렸다. 이런 흐름에 중국도 경제성장으로 보탬을 한다면 전세계의 중심은 유럽과 미국에서, 다시 한국과 중국이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중국은 정신 차리고 전 세계의 '신뢰'를 얻는데 이바지해야 한다. 야심과 탐욕만 가득한 '일대일로'를 걷어내고, 인류공영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공생일로(共生一路)'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나가는 글 : '배경지식'의 중요성과 '배경지식 쌓는 방법'을 일깨우기 위해서 분량이 넘치도록 글을 써보았다. 어떤가? 하나의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아서 글을 쓰는 연습을 해본다는 것에 감이 조금 왔는지 모르겠다. 논술글쓰기는 '교과서적인 지식'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함을 느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지런히 '배경지식'을 쌓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정돈해서 차곡차곡 '주제별'로 쌓아놓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대입논술시험'에 임박해서 부랴부랴 논술학원에 등록한다고 '고득점'과 '합격'을 보장받을 수는 없다. 진짜 한달 전에 논술학원에 등록하고 '명문대 합격했다'는 성공사례는 철저히 '논술준비'를 해온 학생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다. 결코 '논술학원'이 우수하기 때문에 합격률이 높은 것이 절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논술만큼 '명강사', '일타강사'라는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는 것도 없다. 논술 성적은 '연습'과 '노력'에 정비례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꾸준히 쓰고 또 쓰는 연습을 해보길 바란다. 그래야 실력도 쑥쑥 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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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길 - 소년공에서 대선후보까지, ‘그들의 악마’ 이재명이 걸어온 길
박시백 지음 / 비아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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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길 : 소년공에서 대선후보까지, '그들의 악마' 이재명이 걸어온 길> 박시백 / 비아북 (2025)

[My Review MMCXCVIII / 비아북 22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스물일곱 번째 리뷰는 박시백 화백의 <이재명의 길>이다. 현재는 21대 대한민국 대통령인 이재명의 일대기를 엿볼 수 있는 만화책이다. 솔직히 역대 대통령을 역임한 이들의 만화책을 잘 보지 않는다. 왜냐면 대부분 그들을 '미화'하는데 중점을 둔 만화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특히 보수를 자칭하는 이들의 만화는 더더군다나 안 본다. 물론 전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웬만하면 거르려고 한다. 허나 '박시백 화백'이 쓴 책이라서 이 책을 골랐다. 비록 대선이 임박한 시점에서 내놓은 책이라서, 비상계엄에 이은 탄핵정국이란 혼란한 시점에 내놓은 책이어서 자칫 '편파적'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멈칫했지만, '박시백' 세 글자만 믿고, 늦었지만, 읽었다. 그리고 '이재명'이란 인물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동안 그의 정치행보를 보면서 '노무현'을 떠올리곤 했지만, 너무도 많은 구설수 때문에 '진의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재명'을 절대적 신뢰도 하지 못하고 망설였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면서도 그들의 정치행보에 전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다. 당시에 나의 정치이해도가 많이 떨어졌고, 기존의 정치인(3김 시대)과는 사뭇 행보를 보면서 '저게 맞나?' 싶어서 의심부터 했기 때문이다. 허나 노무현 대통령이 '자신의 진심'을 보이기 위해서 하나 뿐인 목숨을 내놓았을 때 많이 부끄러웠다. 믿어야 할 사람을 전적으로 믿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앞섰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 내 마음속 유일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남았다. 이제 그 뒤를 이어 '이재명'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올 수 있을 것인가? 지켜볼 일이다. 나는 '정치인'을 전적으로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책속으로 들어가보자.

<이재명의 길> 관점 포인트 : 이 책에 앞서 이재명의 <결국 국민이 합니다>를 읽었다. 그리고 비상계엄부터 탄핵정국까지 그가 한 '연설' 모음을 하나하나 들여다 보았다. 마음에 들었다. 정치인은 '국민을 위한 머슴'이라는 말을 올곧게 실천한 듯 싶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 말만 듣어 어떻게 온전한 믿음을 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말본새'라는 것이 있다. 사람 말을 경청해서 듣다보면 그 사람의 '진심'이 묻어나는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인'들은 더더욱 그렇다. 워낙 말이 많고 길게 하다보니 끝까지 듣다보면 '본심'을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재명의 연설 가운데서 '진심'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은 그의 연설에서 '주어'가 늘 '국민'이기 때문이다. 대개 '권위적이며 권력에 찌든 정치인'들의 말본새에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법이다. 자신의 기분이 나쁘고, 자신의 이익에 심대한 손해를 끼친다면 불같이 화를 내고 자신의 감정을 거칠게 표현하기 십상이다. 특히 정치초보자(입문자)들이 그렇다.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 없어서 흥분하고, 횡설수설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재명의 연설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오직 '국민의 기분',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 정치인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거침없이 발언한다.

나는 젊은 시절을 '3김 시대의 끝물'즈음에 보냈다.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을 일컫는 말인데, 그 가운데 두 명이 대통령을 지냈다. 그 가운데 김영삼은 군사독재시절 민주화운동을 이끈 주역이었는데도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변절'하고 말았다. 집권욕이 너무 강해서 '나 아니면 안 돼'라는 의식이 너무 강했던 것이다. 그래서 노태우에게 정권을 빼앗기고, '3당 합당'으로 대통령을 꿰찬 야욕을 숨기지 않았다. 그나마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의 안위보다 대한민국의 안위를 더 걱정한 빼어난 정치인이었다. 허나 '가까운 사람의 비리'를 눈감아 주려다 함께 나락으로 가버리고 말았다. 정치인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았으나 '주변 정리'에 철저하지 못해 끝내 대한민국에 폐를 끼치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내 기준으로는 '반쪽짜리 대통령'이다.

그러다 뜻밖에 만난 인물이 바로 '노무현'이었다. 5공 청문회 때 살인마 전두환을 향해 일갈을 던졌던 바로 그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정치인'으로 눈여겨 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정치인의 표본'으로 삼을 만한 준걸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허나 그동안에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유형'의 정치인이라 온전히 지지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가 내뱉는 말 하나하나에 '국민'을 주어로 내세우는 것을 보면서, 올바른 정치인이라면 노무현 대통령처럼 해야 한다는 계산이 섰다. 아주 뛰어나게 잘 했다는 이미지로 강렬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에 없던 새로운 스타일이라 '적응'하는데 오래 걸렸다. 주위에 시기하는 무리들도 너무 많았고, 너무 앞선 정치스타일에 따라오지 못하는 이들도 천지빼깔이었다. 그렇게 우당당거리며 국정을 운영하는데도 꽤나 잘 이끌어가고 '대한민국 정치'에 새 바람을 불어 일으켰던 것이다. 그런데 퇴임 직후에 어이없는 '논두렁 시계'로 인해 너무 일찍 서거하고 말았다. 더러운 정치가 펼쳐지고 있는 현장을 여실히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 뒤를 잇는 이명박근혜 정권은 말할 것도 없다. 부패와 무능으로 점철된 부끄러운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기어코 박근혜는 탄핵 당하고 말았다.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부패정치인, 그리고 종교(신천지)가 국정에 개입하는 시작을 알리는 비극적 사건이었다. 탄핵 이후에 대통령이 된 문재인은 제법 잘했다고 평가한다. 인수위조차 없이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나름 최선을 다해 국정을 정상화시키고 노무현이 못다한 꿈을 친구이자 동료였던 문재인이 이룬다는 '국정과제'도 나름 선방했다. 새로운 대한민국은 이래야 한다는 스타트를 잘 끊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재인을 둘러싼 인물들 가운데 '제대로 된 인물'이 없었다. 이른바 문재인을 지지하는 정파인 '문파'가 다음 대통령 후보로 제대로 된 인물을 지지하지 못하고 만 것이다. 이런 오판은 윤석열이라는 희대의 막장 개또라이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거든 셈이 되었다. 왜 문파들은 '이재명'이란 인물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일까?

이 책에서 본 이재명의 어린시절은 지금의 50대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추억'내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대부분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을 살아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가난해서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없고, 당연히 누려야 할 것조차 '당연히' 누릴 수 없게 만든 가난을 경험했던 세대이기 때문이다. 이재명은 그런 점에서 친숙한 인물이다. 그런데도 참 똑똑하고 올곧게 성장했다. 불우한 시절을 보냈음에도 삐뚫어지지 않고 올곧게 성장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그 시절을 겪어본 이들은 다 알 것이다. 그럼에도 그 시절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재명처럼 '깨끗하게' 살아가는 것을 자부심으로 생각했다. 비록 '가난'해서 가진 것은 하나 없었지만, 깨끗한 '양심'과 콩 한 쪽도 나눠 먹으려는 착한 '마음'을 자긍심으로 삼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가려 무던히도 애썼기 때문이다. 이재명은 그런 올곧은 성정에 '똑똑한 머리'까지 타고난 셈이다.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가족들을 위한 돈벌이를 하는 '소년공'으로 살며 공장을 전전했을텐데도 '검정고시'로 고등학교까지 졸업을 하고, 대학진학은 물론 '사법고시 패스'까지 성공했기 때문이다. 웬만한 수재가 아니었다면 해내지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 이재명이 대학을 진학하고 사법고시를 패스하던 시절이 바로 '전두환/노태우' 시절이다. 다른 동료 학우들은 독재타도를 외치며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재명은 '가난'에서 간신히 벗어나 겨우 '자기 인생'을 살고자 첫 발을 내딛었는데 그 모든 것을 내놓고 시위에 참여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런 '마음의 빚'을 사법연수를 우수한 성적으로 패스한 이재명이 무겁게 느꼈기 때문에 '판검사'가 아닌 '변호사의 길'을 선택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의 진심을 무엇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가 변호사 시절의 행보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힘이 없어서 억울한 처지에 놓인 이들을 변론해주는 '인권 변호사'로 거듭 났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청년 이재명이 노무현을 만난 인연을 소개하고 있다. 노무현의 한마디가 이재명을 '판검사'가 아닌 '변호사'로 이끌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변호사는 뭘 해도 밥 안 굶습니다"라는 말이었단다. 어린 시절 가난이 사무쳤던 이들에겐 구원같은 말이었을 것이다. 뭘 해도 굶을 일이 없다니 얼마나 기뻤겠느냔 말이다.

그렇게 변호사의 삶을 살다 '정치'로 발을 내딛는 사건이 생겼다. 성남시민들이 발의한 '성남의료원 요구'가 정치권의 횡포로 인해 무산된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세상 일은 '정의감'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마음에 새겼을 것이다. 그래서 정치판에 뛰어들었단다. 국민들의 열망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뭐라도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국민들이 원하는 것', '국민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꼭 필요한 '힘'이었던 것이다. 이걸 '권력욕'으로 오해사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언제나 주어를 '나'가 아닌 '국민'으로 삼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이 바라는 것, '국민'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재명은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 '성남시장' 시절부터 무던히도 애를 썼던 모양이다.

그렇게 '경기도지사', '국회의원', '당대표', 그리고 '대선후보'까지 오로지 '국민'을 위해서 정치인으로서 해야 할 일을 찾아헤매던 '이재명의 길'이 이 책에 잘 나타나있다. 물론 모든 것을 다 신뢰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재명과 관련된 수많은 '구설수'도 마찬가지로 의심해 볼만하다. 이재명이 해낸 '성남시민'을 위한 것들, '경기도민'을 위한 행정결정들, 그리고 국회의원과 당 대표를 하며 '국민'들을 위한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없듯, 이재명을 둘러싼 각종 구설수도 마찬가지로 의혹을 품고 의심을 해봐야 할 일이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그렇게나 수없이 많은 '검찰조사'와 '사법부판결'을 받고 난 현재를 본다면, 이재명의 진심은 굉장히 높은 수준으로 신뢰할 수 있다고 보여진다. 그간 언론매체와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국민의힘'에서 얼마나 정치적 매도를 하고 질타를 했느냔 말이다. 그런데도 이재명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대장동에서도 살아남았고, 김부선 가짜뉴스에서도 살아남았고, 형수xx막말/친족정신병원행이란 인신공격에도 살아남았다. 수많은 정적들이 '이재명은 악마다'라고 외치지만 이재명은 '진실'을 밝히고 당당히 살아남았다. 그럼에도 이재명을 발목 잡기 위해 '전과4범'이라고 몰아갔지만, 이재명을 직접 겪어보고 지켜본 국민들은 이재명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이래저래 안 되겠다 싶은 '국민의힘'과 '신천지/통일교' 광신도, 그리고 '윤석열 정권'은 급기야 이재명을 암살할 목적으로 테러하기에 이르렀다.

나가는 글 : 그런데도 이재명을 살아서 돌아왔다. 결국 '21대 대통령'이 되어 대한민국을 세계에 우뚝 서게 만들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를 꼼짝 달싹 못하게 만들었고, 중국 시진핑과 일본의 다카이치 사나에를 함박 웃음 짓게 만들었고, 미중일 정상 모두를 '한국 없이'는 자국의 이익과 안위를 지키지 못할 정도로 단단한 위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콧대 높던 유럽정상들도 너나할 것 없이 '한국의 손'을 서로 먼저 잡으려고 안달나게 만들었다. 태국과 캅보디아,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주제 파악도 못하고 깝치던 동남아시아 각국에게 '자기 분수'를 깨치게 만들었으며, 윤석열 정권을 대놓고 까대던 북한마저 이재명 정부 앞에선 말을 아끼고 몸을 사리고 있다. 겨우 대통령 하나 바뀌었을 뿐인데 이런 변화가 찾아오고 있는 것일까?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이재명'이 아니다. 이재명은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그간 '윤석열 검찰독재'가 망가뜨린 대한민국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이재명'이란 도구가 유용하게 쓰이고 있는 셈이란 말이다. 이건 이재명 대통령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다. 자신을 '머슴'으로 부르며, '국민'을 떠받들며 모시겠다고 말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정치는 '정치인'이 하는 것 같아도 결국 '국민'이 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자신은 '머슴'이 되어 대한민국 국정에 최선을 다해 '정상'으로 바꿀테니, '국민'들 모두가 이재명이 잘 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감시하고 지켜봐 달라고 말이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은 똑똑해져야 한다. 훌륭한 머슴을 대통령 자리에 뽑아놓은 것으로 '국민의 책임'을 다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머슴이 제대로 국정 운영을 해서 대한민국을 더욱 빛내고 국민의 삶을 삐까뻔쩍하게 만들 수 있도록 제대로 부려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는 윤석열처럼 '자격'도 없고, 박근혜처럼 '무능'하고, 이명박처럼 '부패'한 정치인이 두 번 다시 발도 붙이지 못하도록 말이다. 어찌보면 현재의 시점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장미빛으로 바꿀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셈인 듯 싶다. 우리가 이재명 같은 대통령을 언제 또 겪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다음 대권주자로 꼽을 사람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재명이란 유용한 '도구', 똘똘한 '머슴'을 제대로 한 번 부려보아야 할 것이다. 이재명도 국민들이 그걸 바라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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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 끊기 - 반복된 문제를 부수는 최소한의 행동 설계법
빌 오한론 지음, 김보미 옮김 / 터닝페이지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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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페이지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관성 끊기 : 반복된 문제를 부수는 최소한의 행동 설계법> 빌 오한론 / 김보미 / 터닝페이지 (2026)

[My Review MMCXCVII / 터닝페이지 3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지 <책이 있는 구석방> 스물여섯 번째 리뷰는 오프라 윈프리가 극찬했다는 <관성 끊기>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오프라 윈프리 쇼'는 2011년에 막을 내렸기 때문에 이 책은 적어도 십여 년 전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이 책은 무려 20년 동안이나 베스트셀러로 꾸준히 읽힌 유명한 책이라고 한다. 저자의 여러 책 가운데서도 꾸준히 출간되고 있는 책이기도 하고 말이다. 저자의 이력을 짧게 이야기하자면, '상담사'이자 '가족 치료 전문가'라고 한다. 실제로 '정신의학과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의사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현재는 전문적인 치료에 앞장서기보다는 '문제해결'을 위해 상담치료와 강연을 더 많이 하고 있다. 특히 수많은 사람들이 '문제해결'에 큰 효과를 봤다면서 그가 강연을 할 때마다 늘 자신의 '상담경험'을 근거로 내보이고 있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바로 그 수많은 성공사례 가운데 일부다.

<관성 끊기> 관점 포인트 : 우리는 '문제해결'을 하기 위해서 정식적인 절차를 따르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 권위가 있는 사람의 치료를 받기를 원한다. 즉,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일상에서 번번히 '실패'를 경험한다면 어떤 절차를 따라야 할까? 해마다 새해를 맞이하면 '금연'을 다짐하고, 건강을 위해 '살빼기'를 결심하고 헬스장에 큰 돈을 아끼지 않곤 하는데,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담배를 피고, 살이 더 쪄 있는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이럴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애초의 목표를 '포기'하고, 예전처럼 살아가면서 '어차피 난 안 돼'라는 푸념만 늘어놓기 일쑤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새롭게 다짐을 하고 또다시 노력하지만, 또 얼마 못가서 담배를 피고, 살 빼기에 실패한 자신의 모습을 저주하며 분노하기에 이르기도 한다. 왜 자꾸 실패하는 걸까?

이렇게 자꾸 반복되는 실패를 경험한 이들이 찾는 것이 '자기계발서' 같은 책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자기에게 딱 맞는 '계발서'를 찾아서 성공을 하고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기쁨을 만끽하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또다시 실패를 경험하며 애꿎은 '자기계발서' 탓만 하는 경우도 많다. 여기서 <관성 끊기>의 저자 빌 오한론은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한다. 결국 실패할 것을 뻔히 알고, 이미 실패한 경험도 했으면서 '같은 행동'만을 하고 또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를 테면, 담배를 끊겠다는 사람은 새해만 되면 늘 결심하지만, '담배가 피고 싶은 상황'을 제거할 생각은 못하고 그저 결심하고, 또 결심만 할 뿐이기 때문에 제대로 성공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제대로 담배를 끊을 수 있을까? 저자는 무작정 결심만 하지 말고, 꼴초였더라도 '담배'를 순간적이나마 피우지 않았던 상황을 떠올려 보라고 권한다. 그러자 그 남자는 절대로 담배를 피우지 않는 순간이 있다면서 바로 '자신의 아내와 아기가 있는 장소'에서는 절대 피운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저자는 왜 피우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남자의 대답은 이랬다. "왜냐면 나는 아내와 이제 두 살이 된 아기를 정말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사실 아내가 담배연기를 무척 싫어하거든요. 그리고 아기에게도 담배가 해로울 것이 틀림없구요. 그래서 아내와 아기가 있는 집안에서는 절대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정말 피우고 싶을 때에는 몰래 집밖으로 나가서 피우곤 했어요. 담배연기가 몸에 배지 않도록 조심도 했고요."

그러자 저자는 해결방법을 제시했다. 지금 당장 아내와 아기랑 '함께 있는 시간'을 늘리라고 조언했다. 그럼 담배를 절대 피울 수 없을 것 아니냐면서 말이다. 또한, 담배가 피우고 싶을 때마다 '아내와 아기 사진'을 꺼내보라고 조언한다. 그래도 피우고 싶어진다면 아예 '담배케이스'에 아내와 아기 사진을 함께 넣어 자주 볼 수밖에 없게 만들라고 조언했다. 그렇게 하면 당신은 원하는대로 담배를 끊을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러자 그 남자는 그 방법은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며 당장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한 달 뒤, 그 남자는 다시 저자를 찾아와서 말한다. 지난 한 달 간 정말로 담배를 단 한 개피도 피우지 않았다고 말이다. 저자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고 되물었다. 그 남자는 아내와 함께 있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늘렸다고 한다. 퇴근시간이 되면 곧바로 집으로 향했으며, 주말에는 아내와 함께 가까운 여행을 떠나거나 가벼운 산책을 하면서 하루종일 함께 했단다. 물론 아기도 동행을 했고, 정말 담배가 피우고 싶을 때에는 아기를 품에 안고 놓아주질 않았단다. 처음 1~2주는 정말 힘들었지만, 이제는 정말 어렵지 않게 담배를 피우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했단다.

위의 사례는 책속에 있는 '실제 사례'가 아니다. <관성 끊기>에 나오는 핵심적 문구인 '해결 지향적으로 행동하기'라는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 나라에서도 쉽게 연상할 수 있는 소재로 살짝 바꿔서 재구성해 본 것이다. 책속의 내용은 유독 '성생활 문제'에 대한 사례가 정말 많이 나왔다. 이는 '서구사회'에서는 일상일 수 있겠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조금은 이질감이 느껴지는 대목들이 많아서 살짝 바꿔보았다. 하지만 핵심 포인트를 이해하는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어떤가? 이런 방식이라면 '금연'에 성공할 가능성이 정말 높아보이지 않는가? 새해가 되면 금연 결심을 하던 방식 그대로 '매해 결심'만 해서는 좀처럼 성공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해결 가능성'이 높은 방법으로 실질적인 행동을 꾸준히 하게 된다면 분명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가? 이게 바로 저자가 말하는 '해결 지향적 행동하기'의 핵심이다. 물론 해결 방법이 '하나'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해결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면 얼마든지 다른 패턴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담배 생각이 간절할 때마다 좋아하는 취미생활에 흠뻑 빠지거나,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거나 말이다. 중요한 것은 '담배를 끊겠다'는 결심이 흔들리지 않고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구체적인 상황'을 떠올려서 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나가는 글 : <관성 끊기>가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가 된 데에는 높은 성공률에 있다. 책속에서 저자의 조언대로 했더니 문제해결에 성공했다는 사례가 끝없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너무 성공확률이 높아서 도리어 의심이 들고, 전형적인 사기수법과도 유사한 점이 없지 않다고 느껴질 정도로 많지만, 이처럼 성공확률이 높은 까닭은 딱 한 가지였다. 바로 '실행 가능성'이 높은 방법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보통의 의사였다면 자신을 찾아온 환자에게 '의학적인 조언'을 하고, 병증에 딱 맞는 '처방전'을 내주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 그것이 의사의 '직업윤리'에도 맞고 말이다. 그런데 저자는 달리 생각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의학지식'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으면 과감히 배제하고, '실행 가능성' 높은 문제 해결방법을 제시하며 상황을 개선하는 것에 집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적중했다. 이게 저자가 의사 활동보다 '강연'과 '상담'을 더 많이 하는 까닭일 것이다.

이런 '해결 지향적 삶'은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을 다양하게 하고,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 '실행 가능성'을 따져 본 뒤, 가능한 큰 목표가 아닌 '최소한의 목표'를 잡아 꾸준히 실천할 수 있게 하는 삶이다. 책 제목인 <관성 끊기>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상황을 '관성'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그 관성을 단칼에 끊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 어렵고 끊기 힘든 '나쁜 습관'을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바로 '작은 실천'이 답이다. 최소한으로 '할 수 있는 행동'을 찾고, 그 행동을 꾸준히 반복함으로써 잘못된 방향으로 굴러가던 '관성'마저 올바른 방향으로 바꿀 수 있게 하는 힘이 바로 '작은 실천'으로 봤던 것이다.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작은 행동' 하나 바꿨을 뿐인데, 결국엔 '문제 해결'을 해내는 실마리로 작용한 셈이다.

엉망진창으로 뒤엉킨 실타래를 풀 수 있는 방법은 '화려한 검술'을 힘들게 익혀서 단칼에 베어내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는 실타래를 제대로 풀 수 없고, 결국 잘려나간 실은 제대로 쓸 수도 없게 된다. 하지만 엉킨 실타래를 유심히 살펴본 뒤에 살짝 튀어나온 '실마리'를 붙잡고 끈기있게 차근차근 풀어내다보면 어느새 실오라기 하나 손실 없이 온전히 실타래를 풀 수 있고, 풀어진 실타래를 온전하게 다시 감으면 얼마든지 원하는대로 실을 써먹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관성 끊기>는 그렇게 뒤엉킨 실타래를 푸는 심정으로 읽어내면 좋을 것이다. 2026년 새해가 밝았다. 그간 절대 풀 수 없을 것 같았던 '나쁜 습관'이 있다면 이번엔 이 책으로 한 번 제대로 풀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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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라 이웃나라 시대를 넘어 세대를 넘어 1 : 네덜란드 먼나라 이웃나라 시대를 넘어 세대를 넘어 1
이원복 지음 / 김영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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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라 이웃나라 시대를 넘어 세대를 넘어 1 : 네덜란드> 이원복 / 김영사 (2024)

[My Review MMCXCVI / 김영사 35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스물다섯 번째 리뷰는 4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학습만화계의 원조' 이원복 교수가 쓴 <먼나라 이웃나라>의 최신개정판(2024) 가운데 1권인 '네덜란드 편'이다. 이번 개정판의 가장 큰 특징은 '영국의 브렉시트 이후의 현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인도의 IT강국이지만 너무 큰 빈부 격차'를 다룬 것이다. 그간 <먼나라 이웃나라>는 1987년 '고려원미디어'에서 초판을 찍은 이후 93년과 95년에 두 번의 '개정판'을 낸 이후, 2000년에 출판사를 '김영사'로 옮기고서 새롭개 출간을 냈고, '21세기(2008)', '새로 만든(2012)', '업그레이드 먼나라 이웃나라(2018)', '시대를 넘어 세대를 넘어(2024)'라는 조금씩 다른 타이틀을 달고서 꾸준히 출간을 하였다. 그러니 2026년 현재 만 40년이 훌쩍 넘었다. 그리고 10대에 이 책 초판을 읽었던 학생이 벌써 50대를 훌쩍 넘긴 세월을 <먼나라 이웃나라>라는 한결같은 이름으로 계속 출간해왔던 것이다. 처음에는 6권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24권으로 확장했으며, '유럽'이라는 공간적 한계를 넘어 '아시아', '아메리카'까지 전세계에 걸친 그야말로 '먼나라 이웃나라' 모두를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어린이 세계사 입문서적으로 탄탄하게 자리매김을 하였다. 서론은 이쯤하고 본격적인 책내용으로 몰입을 해보련다.

<먼나라 이웃나라 시대를 넘어 세대를 넘어 1 : 네덜란드> 관점 포인트 : 초판 때부터 의아한 부분은 왜 1권이 '네덜란드'냐 하는 것이다. 네덜란드가 특별히 '유럽'을 대표하는 나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도 아니며, 우리의 기억속에 네달란드하면 떠오르는 것은 고작 '풍차'와 '튤립'이 고작이고, 2002년 이후 한일월드컵 4강 진출 이후 '히딩크 감독의 나라'로 기억할 뿐인 네덜란드가 하필이면 가장 먼저 만나는 유럽의 나라냐는 말이다. 이런 의문은 책을 넘기면 더욱 확고해진다. 왜냐면 책의 절반 가량이 '유럽사 전반'에 대한 내용으로 나열되어 있고, '네덜란드'에 관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절반 이후부터 짤막하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네덜란드에 관한 내용이 고작해야 전체 분량의 '절반'뿐이란 말이다. 이는 '초판'때부터 현재 최신 '개정증보판'까지 여전하다.

사실 이런 부분에 대한 독자들의 지적도 상당하다. 어차피 '각 나라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유독 '네덜란드 편'에 이렇게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개괄적인 설명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차라리 이 부분을 확실히 개정해서 '각 나라별'로 조금씩 더 할애를 하고, '네덜란드 편'은 네덜란드에 관한 내용으로 좀더 충실하게 꾸며달라는 요구 말이다. 하지만 큰 변화는 없다. 개정판이 나올 때마다 조금씩 '내용수정'이 가미되거나 삭제되긴 하지만 첫 시작의 '이 부분'만큼은 큰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막상 '네덜란드'에 관한 내용으로 충실히 보충을 하려해도 그만큼 할 만한 내용이 없기 때문일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서문'이 꼭 필요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애초에 <먼나라 이웃나라>를 집필한 의도도 '유럽의 선진 모델'을 우리 어린 독자들에게 선보여주기 위함이었으니 피치 못하게 '유럽사 전반'에 대한 개괄적 내용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렸을 거란 말이다. 그런 까닭으로 <먼나라 이웃나라>의 시작은 큰 변화 없이 이렇게 시작하고 있는 듯 싶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면 이 '유럽사 전반'에 관한 내용이 <먼나라 이웃나라>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데 아주 유용한 점이 없지 않다. 우리가 '서양사'로 국한된 관점으로 '개론(서문)'을 읽을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적인 발자취'를 최대한 간추려 본다는 관점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일단 서구사회의 역사를 살펴본 뒤 대략적으로 이해를 한 뒤에 '각 나라별'로 그 이해한 내용을 맞춰보면 일종의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을 서로 비교분석하면서 읽기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밑그림을 그릴 줄 알게 된 뒤에는 얼마든지 '자기만의 관점'으로 독서를 할 수 있을테니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단 말이다.

물론, 절대로 오해하면 안 될 점은 '서양 중심의 세계사'를 공부하는 목적이 '서구 사회의 우월성'을 뒷받침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때는 서양이 전세계를 석권하고 점령하다시피 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약소하고 빈곤한 나라의 처지에서는 '서구사회의 뛰어남'을 하루빨리 배우고 익혀서 그들의 발전상을 따라잡고 싶던 시절이 있었다. 허나 지금의 우리를 보라. 21세기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선진국이자 강대국으로 초일류국가로 발돋움했다. 그런데도 저물어가는 '서구사회의 현주소'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선망의 대상으로 삼고 우러러 보는 식으로 '그들만의 세계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 단언컨대 절대로 그렇게 공부해서는 안 된다. 세계사를 공부하면서 유독 '유럽사'에 포커스를 맞추고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 공부하는 까닭은 그것이 인류 보편적인 방법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현재의 유럽 등 서구사회 언론은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상을 극찬하면서도 그 유래가 자신들의 민주주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을 들면서, 자신들은 민주주의를 '대한민국'처럼 발전시키지 못했는데, 대한민국은 자신들이 만든 '민주주의'를 교과서처럼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을 보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의 발전된 민주주의 모습을 보면서 그 원조격인 서구 사회를 찬양해야 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한 민주주의는 '서구식'이 아닌 '한국식'이었다는 것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기원은 그들에게 있으나 우리의 실정에 맞게, 우리의 필요에 맞게 뜯어고쳐 '한국식'으로 만들었더니 전세계적으로 귀감이 되고 '교과서'로 삼아도 손색이 없다는 식으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 세계사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역사가 설명하기 쉽게 되어 있으니 차용해서 배울 뿐이다. 허나 그들의 방식이 우리에게 꼭 맞지는 않으니 '한국식'으로 바꿔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는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네덜란드'의 내용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이 있을까? 네덜란드는 주변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도 당당히 실력으로 독립을 쟁취했으며, 살기 어려운 자연환경에 굴하지 않고 척박한 땅에서도 살기 좋은 터전을 일구며 살았다는 점을 배울만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네덜란드 사람의 어려움에 굴하지 않는 '저항 정신'과 척박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살기 좋은 터전으로 일구어 바다를 통해 전세계와 무역을 하여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한 '개척 정신'을 배워야 할 것이다.

네덜란드는 서유럽에 위치해 있으면서 북쪽으로 영국, 남쪽으로 프랑스, 그리고 동쪽으로는 독일을 접하고 있다. 이런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와 더불어서 '베네룩스 3국'이라 불릴 정도로 작고 조막만한 나라일 뿐이다. 그런 탓에 네덜란드는 오랫동안 주변 강대국들의 지배와 약탈속에서 크게 번영하지 못하고 '속국'으로 지내야 하는 시일이 더 길었다. 하지만 '30년 전쟁' 이후 네덜란드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아 '신교의 나라(믿음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로 당당히 인정받고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 허나 기쁨도 잠시 주변 강대국이 오랫동안 점거하고 있던 동안 사회문화적으로 '다름'이 역력했던 남부의 벨기에 지방은 따로 독립시켜줄 수밖에 없었다. 벨기에는 언어도 '프랑스어'를 썼고, 종교도 '가톨릭(구교)'을 쓰는 이들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떻게 쟁취한 독립인데 따로 분리독립을 시켜줄 수 없다는 생각에 '내전'에 돌입했지만, 결국 갈라서기로 했던 것이다. 그렇게 현재의 네덜란드가 탄생했다.

이런 불굴의 저항 정신이 강했던 네덜란드이기에 척박한 자연환경도 쉽게 굴하지 않고 '바다'였던 곳을 '육지'로 바꾸는 '간척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여 전체 영토의 2/3가 바닷물 높이보다 더 낮은 땅에서 살고 있다. 그렇기에 좁고 척박한 땅에서 안주하며 살기보다 일찍부터 인접한 바다를 통해서 더 넓은 곳으로 진출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그래서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영국과 함께 깨부순 뒤에는 '해상무역'을 발판 삼아 전세계에 식민지를 만들기보다 '무역거점'을 확보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더구나 종교도 가톨릭이 아니라 신교였기 때문에 진취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고, 자랑으로 삼을만한 유구한 역사도 없었기에 '자기 것'을 고집하지 않고 유연한 생각으로 손익계산에 빠른 '경제적 사고방식'이 남달랐다고 한다. 그래서 네덜란드 상인은 전세계를 식민지로 삼으려 들었던 포르투갈과 대영제국과는 달리 전세계 바다를 누비며 '상업활동'에 매진한 것이 부를 쌓고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데 큰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이러한 유연하고 실리적인 사고방식은 네덜란드가 '안락사'나 '성매매', '마약' 등에 대한 '합법화'를 시도하는 것을 봐도 꽤나 진취적인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첨예한 사안을 '실용적인 사고방식'으로 불법으로 간주하여 드는 천문학적 사회비용을 '합법화'하여 획기적으로 줄이는데 쓰자는데 국민적 선택에 합의하기에 이른다. 특히 마약 합법화는 마약 중독자가 마약을 구입하려 불법을 자행하고 급기야 범죄까지 저지르는 일이 늘어나자 차라리 국가가 합법적으로 '마약 관리'를 하고 싼값에 제공을 하면 마약을 구입하는데 음성적 행동을 취하지 않고 '양성화'가 되어 마약중독자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를 할 수 있어 '마약 중독'까지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계산에 이른 것이다. 물론, 네덜란드의 이런 '실용화 정책'은 오늘에 이르러 모두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약중독자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며, 안락사나 성매매도 원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악의적이고 변칙적으로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그로 인한 사회적 폐해는 점차 늘어나고 말이다. 하지만 비록 실패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더라도 네덜란드의 이런 '실용주의 노선'은 개선을 통해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이렇게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것이 네덜란드의 무한한 장점일 것이다.

나가는 글 : <먼나라 이웃나라>를 읽을 때 주의할 점이 있다. 유럽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보수우파적 성향'이 두드러지긴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혁명'을 주도하는 진보적 정치구호가 강성할 때도 있고, 경제적으로 성장을 추구하는 '우파'적 경향도 보이지만, 성장한 만큼 분배를 강조하는 사회주의적 성향이 강한 '좌파'적 경향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먼나라 이웃나라>를 읽으면서 이런 경향들이 빈번하게 바뀌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이것이 대한민국에서는 '진보'와 '좌파'를 나쁘게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보니 이 책에서도 은연중에 보수와 우파가 옳고, 진보와 좌파는 나쁘다는 취지로 설명하는 대목이 간간히 보이기 때문이다. 허나 그런 것들은 엄연히 '유럽의 상황'에 따른 평가일 뿐, 대한민국 정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린이 독자들이 읽을 때에는 '유럽의 상황'으로 인지하는 것이 아닌 '대한민국 현 상황'으로 이입을 하여 잘못된 해석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때로는 어른인 학부모도 함께 읽는 책이다보니 이원복 교수의 개인적인 '정치색'으로 잘못 이해하고 이 책의 평가를 단정짓고 매도하는 일도 잣다.

물론, 이는 이원복 교수의 책임을 먼저 물을 수밖에 없다. 만화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 너무 복잡한 현실상황을 '도식적'으로 욱여 넣다보니 그런 오해를 불러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시절 그 당시의 '유럽 상황'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하면 자칫 오해할 수도 있는 대목을 독자들이 현명하게 해석해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프랑스 혁명 같은 것을 '좌파세력들의 난동'으로 치부하고 왕의 목까지 잘라내는 극악무도한 세력의 준동으로 매도하고 '혁명의 주역'인 제3신분(부르주아)의 사람들을 무지렁이들이 감히 국가최고책임자와 높은 신분의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는 바람에 나라꼴을 우습게 만들고 급기야 외국의 침략까지 불러일으켜서 나라를 망하게 만든 망국의 원흉으로 해석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런 무지렁이들을 통솔해서 프랑스를 구해낸 나폴레옹의 등장을 '영웅화'하는 어리석음으로 잘못 확대해석할 수도 있다. 나폴레옹이 외국이 프랑스를 침략하는 위기에서 재주를 발휘해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은 사실이지만, 나폴레옹에 대한 프랑스인의 평가는 그리 높지 않은 것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대한민국에 빗댄다면 '박정희'를 영웅화하는 것과 매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에서라면 나폴레옹이 위대한 영웅이 되어야 맞는데 왜 프랑스인들은 나폴레옹을 낮게 평가하는 것인지 제대로 된 배경지식이 필요한 셈이다. 그런데 <먼나라 이웃나라>에서는 이런 부연설명이 좀 약한 편이다. 그래서 어린 독자를 의아하게 만들고 잘못된 선입견을 갖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현재의 유럽 국가들은 현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심지어 정치, 경제, 외교, 문화, 안보, 군사 등 여러 면에서 '대한민국의 협조'를 바라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이 없으면 유럽은 망한다'는 논리로까지 해석할 수 있는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으며, 유럽 각국은 어떤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한국과 손을 잡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단 말이다. 심지어 콧대 높던 유럽의 수장 국가인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영국까지 대한민국을 국빈 대우를 하며 서로 모시려 안간힘을 쓰고 있을 정도다. 물론 그렇다고 유럽 각국이 대한민국에 '굴종'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40년 전에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유럽을 공부하기 위해서 <먼나라 이웃나라>를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필연적이다. 망했다가도 흥하고, 흥하더라도 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유럽이 엉망이 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때 잘 나가던 유럽이 왜 망했으며, 망했을 때 유럽이 어떤 방식으로 다시 살아났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현재 대한민국이 잘나가고 있더라도 언제든지 하루 아침에 폭망할 수도 있다. 불과 1년여 전에도 폭망할 뻔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럼에도 기적처럼 다시 회생하고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고 바야흐로 선도국가로 세계를 잘 이끌어가기 위해서라도 여러 나라의 '국가경영방식'에 대한 지혜를 배워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어린이들에게 이 책은 필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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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의 특권
아멜리 노통브 지음, 허지은 옮김 / 문학세계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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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의 특권> 아멜리 노통브 / 허지은 / 문학세계사 (2009) [원제: Le Fait du Prince(2008)]

[My Review MMCXCV / 문학세계사 8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스물네 번째 리뷰는 벨기에 국적이지만 '프랑스어'를 구사하기 때문에 '프랑스 문학'으로 취급 받는 아멜리 노통브의 열일곱 번째(공식발표상) 소설인 <왕자의 특권>이다. 그동안 내가 읽은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이 한 십여 권 정도 되는데, 그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소설이 아닌가 싶다. 왜냐면 그녀의 소설이 특징인 '적(敵)'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막무가내로 미워해야 할 '이유'도 없었고, 답답하고 갑갑스러기만 한 '억지'도 없었다. 그저 두 남녀가 등장했고 아주 비싼 '샴페인'을 홀짝이며 마시며 알콩달콩한 이야기를 전개시킬 뿐이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아멜리 팬들은 '그녀만의 맛'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그저 밋밋한 소설이라는 평도 늘어놓았다. 그렇지만 나는 그게 오히려 좋았다. 너무 자극적이고 선정적이기까지한 '저속한 표현'이 거의 없기에 '로맨스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 정도로 감미로운 감상에 젖어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로맨스 소설'도 퍽 좋아하는 편이다. 언젠가 꼭 시간을 할애해서 <로맨스 소설>(특집)을 다뤄야겠다. 조만간 찾아갈 것이다.

<왕자의 특권> 관점 포인트 : 아무리 로맨스 소설 같은 감미로운 느낌을 선사하더라도 아멜리 노통브는 어딜 가지 않는다. 첫 소절부터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독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기 때문이다. <왕자의 특권>에서는 '자기 집에 방문한 사람이 심장마비 따위로 갑자기 죽게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면, 자신은 곧바로 택시를 불러 '시체'를 싣고 병원으로 향할 것이라고 말한다. 느닷없는 이런 질문에 왜 '경찰'이나 '119 구급대'를 부르지 않느냐고 반문을 던지니, 그렇게 된다면 아무리 자신의 무죄를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무죄가 밝혀지기 전까지 '경찰'이 신고한 사람을 살인사건 용의자로 구금을 하거나 수사를 핑계로 '현장'을 통제할 것이고, '용의자'로 지목된 당신은 수사를 빌미로 시달림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렇기에 가장 깔끔한 방법은 '택시'를 불러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사망'했다는 것으로 처리(?)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는 것이다.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그런데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 며칠 뒤, 이 집 앞에서 자동차가 고장이 났다며 전화 한 통화만 할 수 있게 부탁드린다고 방문한 사람이 자신의 집에 들어와 전화를 걸고 "여보세요"를 말하는 순간 그 자리에 쓰러져 죽는 일이 발생했던 것이다. 주인공인 밥티스트는 깜짝 놀랐지만, 곧 침착하게 쓰러진 남자를 흔들면서 깨우려 시도했다. 하지만 죽은 것이 분명했다. 심장이 멎었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밥티스트는 침착하게 며칠 전에 한 대화를 떠올리며 생각에 빠졌다. 그러면서 '택시'를 부르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쓰러진 남자의 주머니를 뒤져 '신분증'을 확인한다. 올라프 질더. 그 사람의 이름이었다. 국적은 스웨덴. 그런데 묘하게도 그의 나이와 밥티스트의 나이가 똑같았다. 그러고보니 눈 색깔도, 머리카락 색깔도, 그리고 키도 똑같았다. 다른 것이라곤 '덩치(체격)'뿐이었다. 올라프가 밥티스트보다 더 뚱뚱하고 건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갑에 1000유로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주소는 베르사유...이런 걸 확인하다가 그만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그 순간 밥티스트는 뒤늦게나마 '경찰'에 신고하고, '119 구급대'를 부를까 하다가 자신이 너무 늦장을 부린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또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가기에도 적절한 타이밍은 아니었다. 그러다 문득 '신분'을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죽은 자의 신분'을 자신의 것으로 삼고, '산 자의 신분'은 이렇게 쓰러져 죽은 이에게 주고서 서로의 삶을 맞바꾸는 것이다. 어차피 자신의 집에서 썩어버린 시체가 발견된다면 '밥티스트'가 자연스럽게 죽은 것으로 될테니 덩치가 좀 차이가 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고장난 차'가 있다는 곳으로 나가보니 차도 고급 차량이었다. '재규어' 말이다. 밥티스트..아니, 올라프는 그 차를 타고서 '자기 집'인 베르사유로 떠났다.

그러다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올라프가 자신의 집 초인종을 누른 이유가 다름 아닌 '자동차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고장난 차를 자신이 직접 몰고 있다. 하지만 고장난 차치고는 아무런 문제도 없이 잘만 달렸다. 뭔가 찜찜했지만, 베르사유에 도착해서 올라프의 집을 확인하니 그런 찜찜함도 단박에 사라졌다. 집이 '호텔 별장'만큼이나 호화로웠기 때문이다. 밥티스트..아니 '올라프'는 자신의 집에 당당하게 들어갔다. 그리고 집주인답게 주방 식탁에 차려져 있던 음식을 자연스럽게 주워 먹기 시작했다. 한참을 맛나게 먹고 있는데 주방에 아름다운 금발 미녀가 들어왔다. 올라프는 깜짝 놀랐지만 최대한 자연스럽게 음식을 씹었다. 금발 미녀는 그런 올라프를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샴페인'을 홀짝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고 대화를 하다보니, 그 금발 미녀는 다름 아닌 '자신의 아내'였던 것이다. 정확히는 '올라프의 아내'였지만 말이다. 이렇게 두 사람은 으리으리한 집안에서 단 둘만이 거주를 하게 된다. 과연 신분을 바꿔치기한 것은 '신의 한 수'였을까?

나가는 글 : 이야기 설정 자체는 말도 안 된다. '사망사건'이 발생했는데, 경찰이 '신원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을 턱이 없고, 자신의 집안에 '낯선 사람'이 들어와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동거 생활'이 시작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그래서 억지로 껴맞춰 넣은 것이 '올라프'가 스파이나 국정원, 또는 범죄조직의 보스급 인물일 거라는 설정이다. 그러나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런 집단들의 특징이 바로 '엄청난 정보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밥티스트'가 '올라프'로 바꿔치기를 했는데, 그냥 아무런 일이 없었던 듯이 자연스럽게 며칠을 보낼 수 있단 말인가? 아무래도 아멜리 노통브가 '범죄스릴러' 같은 장르의 소설을 써보지 못한 탓에 '치밀함'을 갖추지 못하고 어설프게 흉내만 낸 것으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그런데 이런 덜 치밀한 설정이 오히려 나는 좋았다. 아니 어찌 되었든 아리따운 '금발 미녀'와 한 지붕 아래에서 산다는 것 아닌가. 이보다 더 훌륭한 '로맨스 소설'이 어딨단 말인가? 더구나 올라프는 엄청난 부자였던듯 돈을 쓰고 또 써도 '화수분'마냥 돈이 펑펑 나왔다. 이런 행운이 가득한 곳에서 '밥티스트'와 '지그리드'..금발 미녀의 이름이다.. 두 사람의 기묘한 동거가 이어진다. 하지만 불안한 점이 없지 않다. 지그리드는 왜 '낯선 남자'인 자신을 아무런 의심도 없이 '자신의 집'에 거주하게 허락하는가 말이다. 거기다 올라프가 죽기 직전에 걸었던 전화가 마음에 걸렸다. 분명 전화기 저 편에서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올라프가 스파이나 국정원, 또는 범죄집단의 보스라면 '전화기 속 상대'가 자신을 죽이러 쫓아다니는 것은 아닐지 걱정거리가 생긴 것이다. 소설은 급작스럽게 '로맨스'에서 '첩보물'로 바뀌며 이야기가 쏜살같이 전개된다. 그리고 드디어 찾아낸 '전화기 저 편의 목소리'의 주인공과 통화에 성공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는 올라프..아니, 밥티스트에게 '죽지 않게 조심하라'고 경고를 한다. 가짜 올라프의 정체가 들통나는 순간이었다. 과연 밥티스트는 올라프의 아내 지그리드와 로맨스를 완성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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