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나라 이웃나라 시대를 넘어 세대를 넘어 1 : 네덜란드> 이원복 / 김영사 (2024)
[My Review MMCXCVI / 김영사 35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전문리뷰지 <책이 있는 구석방> 스물다섯 번째 리뷰는 4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학습만화계의 원조' 이원복 교수가 쓴 <먼나라 이웃나라>의 최신개정판(2024) 가운데 1권인 '네덜란드 편'이다. 이번 개정판의 가장 큰 특징은 '영국의 브렉시트 이후의 현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인도의 IT강국이지만 너무 큰 빈부 격차'를 다룬 것이다. 그간 <먼나라 이웃나라>는 1987년 '고려원미디어'에서 초판을 찍은 이후 93년과 95년에 두 번의 '개정판'을 낸 이후, 2000년에 출판사를 '김영사'로 옮기고서 새롭개 출간을 냈고, '21세기(2008)', '새로 만든(2012)', '업그레이드 먼나라 이웃나라(2018)', '시대를 넘어 세대를 넘어(2024)'라는 조금씩 다른 타이틀을 달고서 꾸준히 출간을 하였다. 그러니 2026년 현재 만 40년이 훌쩍 넘었다. 그리고 10대에 이 책 초판을 읽었던 학생이 벌써 50대를 훌쩍 넘긴 세월을 <먼나라 이웃나라>라는 한결같은 이름으로 계속 출간해왔던 것이다. 처음에는 6권으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24권으로 확장했으며, '유럽'이라는 공간적 한계를 넘어 '아시아', '아메리카'까지 전세계에 걸친 그야말로 '먼나라 이웃나라' 모두를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어린이 세계사 입문서적으로 탄탄하게 자리매김을 하였다. 서론은 이쯤하고 본격적인 책내용으로 몰입을 해보련다.
<먼나라 이웃나라 시대를 넘어 세대를 넘어 1 : 네덜란드> 관점 포인트 : 초판 때부터 의아한 부분은 왜 1권이 '네덜란드'냐 하는 것이다. 네덜란드가 특별히 '유럽'을 대표하는 나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럽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도 아니며, 우리의 기억속에 네달란드하면 떠오르는 것은 고작 '풍차'와 '튤립'이 고작이고, 2002년 이후 한일월드컵 4강 진출 이후 '히딩크 감독의 나라'로 기억할 뿐인 네덜란드가 하필이면 가장 먼저 만나는 유럽의 나라냐는 말이다. 이런 의문은 책을 넘기면 더욱 확고해진다. 왜냐면 책의 절반 가량이 '유럽사 전반'에 대한 내용으로 나열되어 있고, '네덜란드'에 관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절반 이후부터 짤막하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국 네덜란드에 관한 내용이 고작해야 전체 분량의 '절반'뿐이란 말이다. 이는 '초판'때부터 현재 최신 '개정증보판'까지 여전하다.
사실 이런 부분에 대한 독자들의 지적도 상당하다. 어차피 '각 나라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유독 '네덜란드 편'에 이렇게 많은 분량을 할애해서 개괄적인 설명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차라리 이 부분을 확실히 개정해서 '각 나라별'로 조금씩 더 할애를 하고, '네덜란드 편'은 네덜란드에 관한 내용으로 좀더 충실하게 꾸며달라는 요구 말이다. 하지만 큰 변화는 없다. 개정판이 나올 때마다 조금씩 '내용수정'이 가미되거나 삭제되긴 하지만 첫 시작의 '이 부분'만큼은 큰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막상 '네덜란드'에 관한 내용으로 충실히 보충을 하려해도 그만큼 할 만한 내용이 없기 때문일 수 있다. 한편, 이러한 '서문'이 꼭 필요한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애초에 <먼나라 이웃나라>를 집필한 의도도 '유럽의 선진 모델'을 우리 어린 독자들에게 선보여주기 위함이었으니 피치 못하게 '유럽사 전반'에 대한 개괄적 내용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렸을 거란 말이다. 그런 까닭으로 <먼나라 이웃나라>의 시작은 큰 변화 없이 이렇게 시작하고 있는 듯 싶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면 이 '유럽사 전반'에 관한 내용이 <먼나라 이웃나라>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데 아주 유용한 점이 없지 않다. 우리가 '서양사'로 국한된 관점으로 '개론(서문)'을 읽을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적인 발자취'를 최대한 간추려 본다는 관점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일단 서구사회의 역사를 살펴본 뒤 대략적으로 이해를 한 뒤에 '각 나라별'로 그 이해한 내용을 맞춰보면 일종의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을 서로 비교분석하면서 읽기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밑그림을 그릴 줄 알게 된 뒤에는 얼마든지 '자기만의 관점'으로 독서를 할 수 있을테니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단 말이다.
물론, 절대로 오해하면 안 될 점은 '서양 중심의 세계사'를 공부하는 목적이 '서구 사회의 우월성'을 뒷받침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때는 서양이 전세계를 석권하고 점령하다시피 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약소하고 빈곤한 나라의 처지에서는 '서구사회의 뛰어남'을 하루빨리 배우고 익혀서 그들의 발전상을 따라잡고 싶던 시절이 있었다. 허나 지금의 우리를 보라. 21세기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선진국이자 강대국으로 초일류국가로 발돋움했다. 그런데도 저물어가는 '서구사회의 현주소'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선망의 대상으로 삼고 우러러 보는 식으로 '그들만의 세계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 단언컨대 절대로 그렇게 공부해서는 안 된다. 세계사를 공부하면서 유독 '유럽사'에 포커스를 맞추고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 공부하는 까닭은 그것이 인류 보편적인 방법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현재의 유럽 등 서구사회 언론은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 발전상을 극찬하면서도 그 유래가 자신들의 민주주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을 들면서, 자신들은 민주주의를 '대한민국'처럼 발전시키지 못했는데, 대한민국은 자신들이 만든 '민주주의'를 교과서처럼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을 보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의 발전된 민주주의 모습을 보면서 그 원조격인 서구 사회를 찬양해야 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한 민주주의는 '서구식'이 아닌 '한국식'이었다는 것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기원은 그들에게 있으나 우리의 실정에 맞게, 우리의 필요에 맞게 뜯어고쳐 '한국식'으로 만들었더니 전세계적으로 귀감이 되고 '교과서'로 삼아도 손색이 없다는 식으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 세계사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역사가 설명하기 쉽게 되어 있으니 차용해서 배울 뿐이다. 허나 그들의 방식이 우리에게 꼭 맞지는 않으니 '한국식'으로 바꿔서 이해해야 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는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네덜란드'의 내용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점은 무엇이 있을까? 네덜란드는 주변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도 당당히 실력으로 독립을 쟁취했으며, 살기 어려운 자연환경에 굴하지 않고 척박한 땅에서도 살기 좋은 터전을 일구며 살았다는 점을 배울만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네덜란드 사람의 어려움에 굴하지 않는 '저항 정신'과 척박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살기 좋은 터전으로 일구어 바다를 통해 전세계와 무역을 하여 상업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한 '개척 정신'을 배워야 할 것이다.
네덜란드는 서유럽에 위치해 있으면서 북쪽으로 영국, 남쪽으로 프랑스, 그리고 동쪽으로는 독일을 접하고 있다. 이런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벨기에와 룩셈부르크와 더불어서 '베네룩스 3국'이라 불릴 정도로 작고 조막만한 나라일 뿐이다. 그런 탓에 네덜란드는 오랫동안 주변 강대국들의 지배와 약탈속에서 크게 번영하지 못하고 '속국'으로 지내야 하는 시일이 더 길었다. 하지만 '30년 전쟁' 이후 네덜란드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아 '신교의 나라(믿음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로 당당히 인정받고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다. 허나 기쁨도 잠시 주변 강대국이 오랫동안 점거하고 있던 동안 사회문화적으로 '다름'이 역력했던 남부의 벨기에 지방은 따로 독립시켜줄 수밖에 없었다. 벨기에는 언어도 '프랑스어'를 썼고, 종교도 '가톨릭(구교)'을 쓰는 이들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떻게 쟁취한 독립인데 따로 분리독립을 시켜줄 수 없다는 생각에 '내전'에 돌입했지만, 결국 갈라서기로 했던 것이다. 그렇게 현재의 네덜란드가 탄생했다.
이런 불굴의 저항 정신이 강했던 네덜란드이기에 척박한 자연환경도 쉽게 굴하지 않고 '바다'였던 곳을 '육지'로 바꾸는 '간척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여 전체 영토의 2/3가 바닷물 높이보다 더 낮은 땅에서 살고 있다. 그렇기에 좁고 척박한 땅에서 안주하며 살기보다 일찍부터 인접한 바다를 통해서 더 넓은 곳으로 진출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그래서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영국과 함께 깨부순 뒤에는 '해상무역'을 발판 삼아 전세계에 식민지를 만들기보다 '무역거점'을 확보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더구나 종교도 가톨릭이 아니라 신교였기 때문에 진취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고, 자랑으로 삼을만한 유구한 역사도 없었기에 '자기 것'을 고집하지 않고 유연한 생각으로 손익계산에 빠른 '경제적 사고방식'이 남달랐다고 한다. 그래서 네덜란드 상인은 전세계를 식민지로 삼으려 들었던 포르투갈과 대영제국과는 달리 전세계 바다를 누비며 '상업활동'에 매진한 것이 부를 쌓고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데 큰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이러한 유연하고 실리적인 사고방식은 네덜란드가 '안락사'나 '성매매', '마약' 등에 대한 '합법화'를 시도하는 것을 봐도 꽤나 진취적인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첨예한 사안을 '실용적인 사고방식'으로 불법으로 간주하여 드는 천문학적 사회비용을 '합법화'하여 획기적으로 줄이는데 쓰자는데 국민적 선택에 합의하기에 이른다. 특히 마약 합법화는 마약 중독자가 마약을 구입하려 불법을 자행하고 급기야 범죄까지 저지르는 일이 늘어나자 차라리 국가가 합법적으로 '마약 관리'를 하고 싼값에 제공을 하면 마약을 구입하는데 음성적 행동을 취하지 않고 '양성화'가 되어 마약중독자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를 할 수 있어 '마약 중독'까지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계산에 이른 것이다. 물론, 네덜란드의 이런 '실용화 정책'은 오늘에 이르러 모두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약중독자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며, 안락사나 성매매도 원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악의적이고 변칙적으로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그로 인한 사회적 폐해는 점차 늘어나고 말이다. 하지만 비록 실패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더라도 네덜란드의 이런 '실용주의 노선'은 개선을 통해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이렇게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진 것이 네덜란드의 무한한 장점일 것이다.
나가는 글 : <먼나라 이웃나라>를 읽을 때 주의할 점이 있다. 유럽 국가들은 전통적으로 '보수우파적 성향'이 두드러지긴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혁명'을 주도하는 진보적 정치구호가 강성할 때도 있고, 경제적으로 성장을 추구하는 '우파'적 경향도 보이지만, 성장한 만큼 분배를 강조하는 사회주의적 성향이 강한 '좌파'적 경향도 만만치 않다. 그래서 <먼나라 이웃나라>를 읽으면서 이런 경향들이 빈번하게 바뀌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이것이 대한민국에서는 '진보'와 '좌파'를 나쁘게 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보니 이 책에서도 은연중에 보수와 우파가 옳고, 진보와 좌파는 나쁘다는 취지로 설명하는 대목이 간간히 보이기 때문이다. 허나 그런 것들은 엄연히 '유럽의 상황'에 따른 평가일 뿐, 대한민국 정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린이 독자들이 읽을 때에는 '유럽의 상황'으로 인지하는 것이 아닌 '대한민국 현 상황'으로 이입을 하여 잘못된 해석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때로는 어른인 학부모도 함께 읽는 책이다보니 이원복 교수의 개인적인 '정치색'으로 잘못 이해하고 이 책의 평가를 단정짓고 매도하는 일도 잣다.
물론, 이는 이원복 교수의 책임을 먼저 물을 수밖에 없다. 만화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 너무 복잡한 현실상황을 '도식적'으로 욱여 넣다보니 그런 오해를 불러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시절 그 당시의 '유럽 상황'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하면 자칫 오해할 수도 있는 대목을 독자들이 현명하게 해석해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프랑스 혁명 같은 것을 '좌파세력들의 난동'으로 치부하고 왕의 목까지 잘라내는 극악무도한 세력의 준동으로 매도하고 '혁명의 주역'인 제3신분(부르주아)의 사람들을 무지렁이들이 감히 국가최고책임자와 높은 신분의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는 바람에 나라꼴을 우습게 만들고 급기야 외국의 침략까지 불러일으켜서 나라를 망하게 만든 망국의 원흉으로 해석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런 무지렁이들을 통솔해서 프랑스를 구해낸 나폴레옹의 등장을 '영웅화'하는 어리석음으로 잘못 확대해석할 수도 있다. 나폴레옹이 외국이 프랑스를 침략하는 위기에서 재주를 발휘해서 나라를 구한 위대한 업적을 남긴 것은 사실이지만, 나폴레옹에 대한 프랑스인의 평가는 그리 높지 않은 것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대한민국에 빗댄다면 '박정희'를 영웅화하는 것과 매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에서라면 나폴레옹이 위대한 영웅이 되어야 맞는데 왜 프랑스인들은 나폴레옹을 낮게 평가하는 것인지 제대로 된 배경지식이 필요한 셈이다. 그런데 <먼나라 이웃나라>에서는 이런 부연설명이 좀 약한 편이다. 그래서 어린 독자를 의아하게 만들고 잘못된 선입견을 갖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주의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현재의 유럽 국가들은 현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심지어 정치, 경제, 외교, 문화, 안보, 군사 등 여러 면에서 '대한민국의 협조'를 바라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이 없으면 유럽은 망한다'는 논리로까지 해석할 수 있는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으며, 유럽 각국은 어떤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한국과 손을 잡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단 말이다. 심지어 콧대 높던 유럽의 수장 국가인 프랑스와 독일, 그리고 영국까지 대한민국을 국빈 대우를 하며 서로 모시려 안간힘을 쓰고 있을 정도다. 물론 그렇다고 유럽 각국이 대한민국에 '굴종'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40년 전에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유럽을 공부하기 위해서 <먼나라 이웃나라>를 읽을 필요가 있을까?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필연적이다. 망했다가도 흥하고, 흥하더라도 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유럽이 엉망이 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때 잘 나가던 유럽이 왜 망했으며, 망했을 때 유럽이 어떤 방식으로 다시 살아났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현재 대한민국이 잘나가고 있더라도 언제든지 하루 아침에 폭망할 수도 있다. 불과 1년여 전에도 폭망할 뻔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럼에도 기적처럼 다시 회생하고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고 바야흐로 선도국가로 세계를 잘 이끌어가기 위해서라도 여러 나라의 '국가경영방식'에 대한 지혜를 배워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 어린이들에게 이 책은 필독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