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인문학이 처음인데요 - 교양인이 되기 위한 내 생애 첫 인문학 처음인데요 시리즈 (경제)
박홍순 지음 / 한빛비즈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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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학은 어렵다. 깊고 방대한 내용 때문에 어렵기도 하지만 인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개념어'에 두루 통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철학을 할 때는 '철학용어'를, 과학을 할 때는 '과학용어'를, 예술을 할 때는 '예술용어'를 대충이라도 알아야 책을 읽더라도 뭔 내용인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의사와 간호사 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데, 의사 가운데 안면이 있는 패션디자이너를 우연히 만나 합석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디자이너는 혼자가 아니라 모델들과 다음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함께 이동중이었다. 이렇게 모인 '의학계'와 '패션계'가 서로 전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면 서로를 이해하며 대화를 진행할 수 있을까? 아마도 서로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멀뚱멀뚱 어색한 시간이 얼른 지나가길 바랄 것이다. 바로 인문학을 처음 만난 독자들이 느끼는 당혹감과 비슷할 것이다. 뭔가 대단한 것이 있는데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무엇 말이다.

 

  한편, 인문학은 암기가 절대 아니다. 철학사를 줄줄 꿰지 않아도 얼마든지 인문학을 즐길 수 있다. 고전문학을 전공해야만 인문학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절대 아니다. 미술을 감상하기 위해서 '미술사'를 달달 외우는 것이 얼핏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것만이 정답이 아니다. 그저 보이는대로 아는대로 즐기면 된다. 이처럼 인문학도 제멋대로 즐기면 된다. 왜냐면 인문학의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맞다. 인문학을 즐기면 정말 행복해진다. 아는 것이 많아져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몰랐던 것을 이해하는 순간 짜릿한 행복을 맛보는 경험을 했다면 인문학을 즐길 준비는 이미 충만한 셈이다. 왜냐면 그 짜릿함은 모르고 살 수는 있어도 단 한 번만 맛보고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이 책에 언급된 '인문학적 지식들'을 그저 나열하고 소개하는 것으로 이 책의 찐맛을 느낄 수는 없다. 어쩌면 이 책에 언급된 지식들조차 '저자의 생각'일 뿐, 절대적인 지식의 원천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저자의 생각과 다르다며 반론을 던질 수도 있고, 심지어 저자의 생각이 틀렸다며 부정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인문학은 원래 그런 학문이다. 청출어람이라고 스승보다 뛰어난 제자가 되기 위해서 때로는 스승과는 전혀 다른 색깔을 뿜어낼 수 있어야 진짜 인문학을 맛볼 수 있는 법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나도 매년 200여 권의 책을 독파하면서 10년도 넘게 지난 지금에 와서야 겨우 인문학의 문턱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 문턱을 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짜릿함을 느꼈고 말이다. 그동안 읽은 책보다 앞으로 읽을 책이 더 많다는 즐거움을 이해한 독자라면 그 짜릿함을 이미 느꼈을 것이다. '인문학 예찬론'은 이쯤하고, 이 책을 본격적으로 소개하자면, 처음에는 '인문학의 필요성'을, 중간에는 '인문학의 효용성'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문학의 쓸모'를 이모저모 피력한 책이다.

 

  인문학의 필요성은 앞서 설명한 것으로 대신하고, 인문학의 효용성이란 무엇이냐면 '인간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한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 삶과 죽음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또 죽음은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 감정은 무엇이며 사랑이란 또 무엇인가? 등등 인간으로서 궁금한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물론, 역사, 예술 등 문화적인 것들도 모두 인간이 만들고 사유한 것이기에 당연히 인문학에서 다룬다. 이쯤 되면 인문학은 다루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로 방대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문학의 쓸모'란 무엇인가? 바로 일상조차 인문학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깜냥이다. 한국인은 일중독자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휴식과 여가를 즐기지 못하는 편이다. 요즘 MZ세대는 그나마 잘 즐기는 편이라고 하지만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노동(알바)의 굴레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암튼 일 할 줄만 알고 놀 줄 모르는 한국인에게 '여가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내용으로 대단원을 내리는 이 책이 의미심장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어쩌면 이 책의 궁극적인 주제이자 결말은 '행복으로의 귀결'일 것이다. 인문학의 필요성으로 화려한 시작을 하지만 결국은 "인문학적으로 인간은 행복을 추구합니다. 인문학은 행복을 고뇌하는 학문입니다. 고로 인문학은 행복입니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고뇌할 때에도 '행복한 결말(해피엔딩)'이 되기 위해 인문학적인 고찰이 필요하다고 은근히 강요하고 있다. 마치 '인문학이라면 모든 문제를 행복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라면서 말이다. 때로는 '비극적 결말'을 내놓고서도 뻔뻔스럽게 '우리의 현실은 저렇게까지 비극적이지는 않잖아. 정말 다행이야'라고 우기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모두 인문학을 알아야만 한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변화의 속도마저 엄청나게 빨라서 점점 더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제대로' 걸음을 내딛으며 비틀거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인문학은 꼭 알아야만 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갖게 되는 이도 점점 많아지는 것이 팩트인 요즘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문학으로 가는 길'이 너무 길고 험난하다는 점이다. 여기에 더욱 갈피를 잡지 못하는 까닭은 어중이떠중이들이 교양이랍시고, 방대한 지식을 나열하며 달달 외우는 방식으로 인문학을 강요하고 있는 탓에 시작도 하기 전에 두렵고 질려버리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고 했다. 첫술에 배부르지 않다고도 했다. 차근차근 인문학을 접하면 된다. 다행히 요즘에는 인문학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이 참 많다. 내 경험을 비추어도 '논술쌤'이었던 탓에 어린이청소년용 <인문학책>을 많이 접한 덕분이었고, <교양툰>처럼 만화형식으로 된 <인문서적>도 두루 접하며 차근차근 읽어나갔다. 결과는 매우 흡족했다. 그렇게 '신화'와 '역사'를 두루 습득한 다음에는 '과학'과 '철학', 그리고 '예술'과 '종교'까지 섭렵했다. 그리고 지금은 '고전문학'을 독파하고 있다. <성경>에도 적혀 있듯이 '두드리면 반드시 열리는 법이다(마태복음 7장7절)' 아직도 인문학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어서 서두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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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의 재구성 - 한국인이라는, 이 신나고 괴로운 신분
조선희 지음 / 한빛비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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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실상부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되었다. 개발도상국이라는 꼬리표를 떼어버렸다는 말이다. 코로나19가 전세계를 뒤덮은 '판데믹'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역량이 제대로 평가받기 시작했던 탓이 클 것이다. 이 책을 쓴 저자의 말마따나 전세계가 '코로나19 일제고사'를 본 느낌이다. 그동안 선진국이라고 여겼던 나라들이 위기상황 속에서 얼마나 허둥대며 망가지는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기준으로 봤을 때 대한민국은 기존의 선진국을 넘어 전세계를 이끄는 '선도국가'가 되어 새로운 스탠다드(기준)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세계는 대한민국을 다시 보게 되었고 말이다. 그야말로 위기를 기회로 삼은 셈이다.

 

  하지만 우리가 직접 피부로 느끼는 대한민국은 아직 선진국이 되기에는 미흡해 보인다. 'K-방역'은 더할나위가 없을 정도로 자랑거리가 되었지만, 여전히 정책적인 면에서 부끄러운 면이 없지 않고, 정치나 경제, 언론이 보여주는 '후진국형 작태'는 여전했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서로를 헐뜯기 바쁜 못난 정치인들이며, 자신의 철밥그릇을 지키기 위해서는 세금 아까운 줄 모르고 펑펑 쓰는 경제인들이 서민들의 복지와 일자리마련에는 세금 아깝다며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 못난 꼴을 하고 있고, 심지어 쥐꼬리만한 최저임금인상과 대체휴일제정에 인색하리만치 주둥이를 놀리는 것을 볼작시면 정말이지 쥐어 패고 싶을 지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부끄러운 것은 바로 '기레기'로 불리는 언론이다. 한쪽으로 편향된 것은 둘째치고 '팩트체크'를 하지 않으면 도무지 믿음이 가지 않을 정도로 신뢰도가 바닥을 쳤기 때문이다. 한술 더 떠서 '가짜뉴스'를 열심히 만들고 퍼나르는, 이른바 '조중동'이라 불리는 괴물들은 자신들의 영욕을 위해선 나라가 망하건, 망신을 당하건,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 되도 않는 말들을 주어섬기고 있어서 한심할 따름이다. 적어도 세계적인 위기감이 팽배한 지금, '코로나'와 관련된 뉴스만큼은 '국민건강과 심리적 안심'을 위해서 자중을 해줬으면 싶은데, 누구보다 앞장을 서서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으니 답답할 지경이다.

 

  여기에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매우 심각할 정도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결국 '고착화 단계'에 접어 들었고, 개천에서 용난다는 속담마저 무색하리만큼 '계층사다리'가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다시 말해, 요즘 20대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이나 아파트가 없다면 죽을 때까지 '자기 아파트'를 제 손으로 구매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념적 갈등은 더욱 심해졌다. 서로 '친일적폐'와 '종북좌파'라 부르며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할 상황은 물건너 갔으며 어느 한 쪽이 사라져버릴 때까지 갈등은 계속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대간의 갈등도 만만찮지만 특히, '남녀갈등'이 왜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양상으로 펼쳐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서로를 '김치녀'와 '한남충'으로 싸잡아 비아냥대는 모습을 보면 흡사 '인간말종들의 아귀 다툼'을 직관하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인간다운 모습을 스스로 거부하고 있는 느낌적인 느낌은 '뽀~나스'인 모양이다.

 

  암튼, 이런 부끄러운 모습들을 걸러내고 난 뒤의 대한민국을 다시 살펴보면 민주시민의 품격을 갖춘 자랑스런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대한민국 102년'을 맞이한 2021년의 대한민국은 실로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를 따라하려 들지 않는다. 아니 참고할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 내딛은 걸음을 그동안 선진국이라 불리던 나라들이 따라하기 바쁘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은 대한민국을 한 수 아래로 보다가 자충수를 두는 일까지 벌이고 말았다. 중국은 한국이 원래부터 선진국이 아니었느냐면서 뒤늦게 '선진국 대열'에 끼게 된 뉴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미국도 한국을 제멋대로 휘둘던 방식에서 당당한 파트너로 제몫을 해달라는 방식으로 전환하기 바빴다. 유럽 각국은 한껏 높았던 콧대를 꺾고 'K-스탠다드'에 자신들을 비교하며 위기를 극복하려고 부산스럽기까지 한다. 그밖의 나라들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이 책은 위에 언급한 것처럼 우리 자신이 보기에도 부끄러운 불평등과 갈등, 트라우마, 딜레마 등의 '민낯'을 들춰내며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낱낱이 분석하였다. 한편, 달라진 대한민국의 위상을 보면서 전세계가 대한민국을 주목하고 있는 상황 또한 깊이 조명하고 있다. 그럴 때마다 고민스러워진다. 우리는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하는가? 하고 말이다. 분명한 것은 장님 코끼리 만지듯 부정적인 면만 보고서 한껏 깎아내릴 필요도 없고, 긍정적인 면만 보고서 양껏 취할 필요도 없다는 점이다. 다른 선진국들을 보아도 자랑스런 점만 갖춘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하나는 자기 스스로 자신을 깎아내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국 이익'을 챙길 때는 여야가 따로 없고, 국민들이 똘똘 뭉쳐서 제대로 된 몫을 챙긴다는 점이다. 이젠 우리도 그럴 때다. 물론 미국의 '아메리칸 퍼스트'나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역사왜곡'과 같은 뻔뻔스러움을 따르라는 말은 아니다.

 

  이 책에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심층분석한 내용이 담겼다고도 할 수 있다. 한국인이란 어떤 시민이며, 한국인은 어떤 시민이 되고 싶어하는지도 잘 보여주고 있다. 뭐, 그렇다고 '국민성' 같은 것을 분석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런 낡은 방식으로 21세기 선진 대한민국을 평가할 수는 없는 법이다. 굳이 표현을 덧붙이자면, 대한민국 사회의 품격을 높이기 위한 고뇌라고 설명하고 싶다. 분명 우리는 불운한 과거로 시작했지만 엄청난 역경을 이겨내고 세계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섰다는 자긍심을 가져도 좋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이제 대한민국이 '가는 길'이 전세계가 따르는 길이 된다. 앞으로의 대한민국은 분명 그렇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 '내부의 문제'를 좀더 현명하게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다른 나라를 벤치마킹하려는 노력보다 우리 스스로 '방향과 방법'을 만들어가는 진취적인 도전과 모험정신이 함께 해야할 것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전세계의 '상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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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세대 내 아이와 소통하는 법 - 지혜로운 부모는 게임에서 아이의 미래를 본다
이장주 지음 / 한빛비즈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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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설하고,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먼저 언급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두 가지다. 하나는 TV와 스마트폰, 그리고 게임의 공통점을 언급한 부분이다. '중독'이 정답인데, TV가 처음 나왔을 때도 '바보상자'라 부르며 중독된 이들을 걱정했고, 스마트폰에 중독되어 걸어다니면서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들을 '스몸비'라고 부르며 걱정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TV덕후', '너튜브덕후'가 돈을 더 많이 버는 세상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게임중독'이 된 내 자녀도 '게임덕후'로 거듭나게 되지 않을까?

 

  다른 하나는 '르네상스'에 대한 언급이다. 이탈리아에 '문예부흥의 시대'가 열린 시기에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등과 같은 거장이 동시에 한 장소에 우연히 나타나게 된 것일까? 그보다는 르네상스 당시의 이탈리아가 '문예부흥'이 일어나기 딱 좋은 환경이었고, 그런 환경속에서 예술의 거장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브라질의 축구실력이 엄청나게 높아진 원인으로 '풋살'을 꼽는데, 축구장의 반의 반만한 좁은 경기장속에서 다양하고 재빠른 기술습득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분석을 할 정도다.

 

  이제 21세기 대한민국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스포츠 스타들도 있지만 무엇보다 'K팝'을 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세계적인 아이돌을 키워내는데 성공한 까닭이 무엇일까? 체계적으로 연습생을 키워내며 전세계 젊은이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춤과 노래 등등..뭔가 감이 잡히지 않는가. 대한민국 게이머들이 세계적인 실력을 갖춘 까닭은 무엇일까? 언제 어디서나 끊김없이 빠른 인터넷속도를 갖춘 'PC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곳에서 게임을 단련(?)한 게이머들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한국인을 '게임종족'이라고 부르게 만들었다. 어째 미래세대의 '르네상스'는 PC방에서 시작될 것 같은 느낌은 나만의 착각인 걸까.

 

  본론으로 되돌아와서 '게임중독은 나쁘기만 한 걸까?'라는 질문에 부정하기 힘든 시대가 도래하였다. 한 눈 팔지 않고 공부만 하는 것보다 노래만 잘 불러도 남 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너튜브'로 부자가 된 사람이 '주식투자'로 대박을 낸 사람보다 더 선망이 대상이 된 세상이다. 공부가 전부가 아닌 시대가 도래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게임에 푹 빠진 우리 아이들을 걱정만 할 것이 아니라 게임으로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까?

 

  아닌 게 아니라, 유명기업에서 '유능한 게이머'를 채용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전기차로 유명한 테슬라에서도 전기를 충전하며 기다리는 시간에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전기차에 게임을 탑재한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마이크로소프트 사장으로 유명한 빌 게이츠도 자신이 직접 만든 게임을 선보이기도 했다.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코로나19 판데믹 상황에서 비대면유세를 하기 위해 '동물의 숲'이란 게임속에 선거홍보캠프를 설치해서 대박을 터트렸다는 후문은 당선이 된 뒤에 더욱 유명해졌다. 이렇듯 이젠 '게임'이 무료한 일상의 활력소를 주는 오락거리일 뿐만 아니라 '게임'을 활용해 마켓팅 사업을 하고 자사 홍보를 하며 나아가 '핵심적인 사업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하는 시대가 열렸다.

 

  그렇다면 우리 자녀가 게임을 하고 있는데, 권해야 할까? 말려야 할까? 고민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부에는 관심도 없이 주야장천 게임만 하며 허송세월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무명가수의 설움과 비참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자식이 노래연습하는 것만 보아도 끔찍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허나 무작정 하지 말라고 막는 것도 최선은 아닐 것이다. 막말로 공부를 해도 성공할까 말까하는 세상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 거라면 '게임'을 하더라도 유용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권장해주는 것이 더 현명한 부모가 되는 지름길일 것이다. 가수의 재능이 있는 자녀를 '연습생'에 지원하거나 '오디션'을 볼 수 있게 후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들에게 놀이는 본능에 가깝다. 도심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아이들에게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을 갖춘 도시는 찾기 힘들다. 그래서 더욱 자연스럽게 게임속으로 빠져들기 마련이다. 이런 환경속에서 무작정 게임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바람직한 훈육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부모세대의 걱정도 십분 이해가 된다. 자신이 커왔던 훈육환경과 너무나도 다른 탓에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는 하소연도 백퍼 공감한다. 그래도 달라진 시대에 걸맞는 알맞은 훈육이 있는 법이다.

 

  그래도 만고의 진리에 가까운 훈육법이 있다면, 바로 '막으면 막을수록 더 하고 싶어진다'는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무작정 막기보다 하고 싶은데도 자유로운 환경속에서 게임도 절제하는 방법을 터득하기 더 쉽다. 이제 게임은 '금지'가 아니라 '절제'를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게임에 몰입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공부도 저렇게 몰입했으면 하는 마음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게임 자체가 공부가 되게 만들면 된다. 게임은 몰입 뿐만 아니라 경쟁심과 승부욕을 불타오르게 만들기 쉽다. 요즘 게임은 혼자하는 게임보다 '협업'을 통해서 함께 플레이하는 게임이 많다. 상위권 학생들이 즐겨하는 게임이라든지, 게임을 즐기며 '스터디 모임'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과 어울리게 만든다면 게임 자체로 공부가 되는 효율적인 '교육용 게임'이 구비되기 전까지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게임은 우리 자녀들의 새로운 '스팩'이 되는 세상이 열렸다. 무작정 게임을 못하게 막으려 들지 말고 우리 자녀의 성향에 딱 어울리는 게임을 골라주는 현명한 부모가 되어야 할 때다. 당신들도 경험했겠지만, 놀지 못하게 한다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는 만고의 진리를 잊지 않아야 한다. 금지보다는 절제가 더 현명한 방법이다. 그리고 과거 이탈리아가 르네상스의 발상지가 된 것처럼 21세기 대한민국은 '게임으로 미래세계를 구현하는 최초의 발상지'로 후세에 기억될 것이다. 3D 가상현실부터 5G로 구현되는 메타버스의 세계가 가장 최적화된 곳은 바로 대한민국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지금 자라나는 '게임세대'는 바로 그런 대한민국의 주역이 될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정말 멋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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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불꽃의 불꽃 튀는 성인식 - 성(性) 상식 없는 새끼들 때문에 열 뻗쳐서 쓴
김불꽃 지음 / 한빛비즈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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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단점부터 꼬집자면...'꽃으로도 때리지 말아야 한다'며 폭력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다는 정신에 입각해서 볼 때, 참으로 심각할 정도로 '욕설(언어폭력)'이 난무한 관계로 책에 담긴 그 어떤 '인용문'도 언급하기 민망할 정도라는 점만 지적하고자 한다. 그러나 오죽했으면 그리 심한 말을 제정신으로 했을까...하는 공감이 절로 가는 내용이 참 많았다.

 

  한편, 우리 나라에 제대로 된 '성교육'이 있느냐는 질문에 정말 부끄럽지만 '없다'는 답부터 내놓으려 한다. 당연하게도 이 책도 그렇다. 교육을 빙자(?)한 언어폭력이 가득한 이 책을 권하는 것부터 '대한민국의 성교육 수준'을 직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제대로 된 '성(性) 인식'이 없다시피한 대한민국 남녀노소는 누구도 '성'을 제대로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다 알게 된다"며 어릴 적에는 쉬쉬하고, 어른이 되서는 맨땅에 헤딩하며, 부모가 되어서는 "때가 되면 다 알게 된다"는 말밖에는 해줄 것이 없는...악순환이 계속 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우리 어린이와 청소년, 심지어 어른이 되어서도 '성폭력', '성추행', '성희롱', '성매매', '몰카', '데이트폭력', '원치 않은 임신', '낙태'...말로 다 할 수 없는 끔찍한 일들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만다. 제대로 된 '성교육'만 이루어져도 막거나 막을 수 있는 성범죄가 참 많은데도...아직 대한민국에서는 '성교육'에 대한 준비가 참으로 덜 되어 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제대로 된 성교육보다 더 앞서 필요한 것이 바로 '제대로 된 성 의식'이다. 남성과 여성에 대한 평등한 시선으로 서로 다른 이성에 대한 무지를 깨려는 순간부터 '제대로 된 성 의식'이 싹 트기 때문이다. 그러면 비로소 '제대로 된 성교육'을 시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책에서 '이씨 집안 아이들과 저씨 댁 자녀들' 하는 욕설(언어폭력)만 걷어내고 읽는다면 올바른 성생활에 대한 상식을 풍부하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성교육이라고 하면 '남녀의 생식기'만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은데, 남녀의 심장이나 위장, 허파, 간, 콩팥, 창자 따위를 보면서 흥분하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남녀의 성기도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장기'에 불과하다는 상식을 터득하는 순간 '제대로 된 성교육'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2차 성징'으로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몸의 변화로 싱숭생숭한 청소년에게 '변화의 의미'를 제대로 가르칠 필요가 있다. 그 변화가 오직 '섹스의 황홀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임신과 출산'을 통해 '종의 번식', 다시 말해, 나를 꼭 닮은 '또 다른 생명'을 품고, 또 새로운 삶을 부여하는 변화라는 사실을 깨우치도록 성교육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법과 도덕적으로 '무한한 책임감'을 져야만 하는 일이라는 팩트도 함께 가르쳐야 한다. 이를 테면, '그짓의 즐거움'만 탐닉하다가 덜컥 임신을 했을 때 닥쳐오는 두려움과 불안감에 해서는 안 되는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면 [이번 생, 리셋!!]하고 싶어지지만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진실도 '성교육'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성교육을 반대하는 어른들이 참 많다. "순진한 아이들에게 몰라도 될 일을 일부러 가르쳐서 몰랐으면 하지 않았을 그짓을 하게 만든다"면서 말이다.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했던 당신들께서 '어떤 방식'으로 성에 대해 눈을 떴는지 떠올려보란 말이다. 자식들도, 손자들도 그런 식으로 성에 대해 눈뜨길 바라는가? 그나마 당신들께서는 운이 좋아서 그런 식으로 성에 눈을 떠도 도덕적으로, 법률적으로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지 몰라도, 지금 세상은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 '성에 눈을 뜰 수 있는 방법'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또한, '제대로 된 성교육'이 꼭 필요한 까닭은 사회분위기를 건전하게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까닭에 꼭 필요하다. 또, 부도덕적인 성행위와 불법적인 성폭력 따위를 제대로 가르쳤는데도 저지르는 '성범죄자'를 솎아내는데도 아주 유용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모르고 그짓을 저질렀어요"라는 변명은 더는 통하지 않는다.

 

  인류는 '성욕'이 없다면 일찌감치 멸종했다. 모든 사람들이 성인군자처럼 굴었다면 마찬가지로 멸종 직전까지 내몰렸을 것이다. 속된 말로 성인군자처럼 행동하는 이들도 '그짓'을 하며 산다. 그러니 '그짓'은 결코 나쁜 짓이 아니다. 오히려 축복을 받으며 잘 한다고 칭찬을 받아야 한다. 단, 무분별하게 그짓을 하다간 개망신을 당하기 십상이고, 무책임하게 그짓을 하다간 당사자는 물론이고 온식구가 피해를 볼 수 있으며, 만에 하나라도 '성범죄'를 저지르게 되면 평생을 감옥에 격리시켜서 건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이바지해야 한다고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더는 성을 감추고 쉬쉬해야만 할 것이 아니라 드러내고 올바른 쪽으로 인도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난삽하고 방종해야 할 대상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오직 '두 사람의 사랑'으로 이루어지며 '주위의 축복'속에서 이루어질 때 가장 '행복한 성'을 쌓을 수 있다는 상식을 깨우치는 이들이 많아져야 우리 사회가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을 것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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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스마트 소설 스마트소설 외국작가선 1
주수자 옮김 / 문학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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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음'이 주는 강렬한 느낌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정도다.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미니스커트를 '누가' 입었느냐는 논란이 있는지는 그닥 중요하지 않다. 종아리는커녕 발목이 보이는 것조차 부끄러워하던 여성들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면 온 나라가 들썩였기 때문이다. 또, 걸그룹 AOA가 <짧은 치마>를 부를 땐 어땠는가. 흥겨운 비트에 온 몸을 들썩임과 동시에 두 눈이 번쩍 뜨이는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짧음'은 대단히 매력적인 무엇을 갖고 있다.

 

  '단편소설'도 그렇다. 원고지 50매 안쪽의 짧은 글 속에 '기승전결'을 담아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비록 전달하는 메시지는 짧을지언정 그 안에 담긴 '깊이'까지 허술하진 않은 작품들이 꽤나 많기 때문이다. 교과서에도 수록된 <화수분>과 <운수 좋은 날> 등이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제목과는 정반대의 운명을 살아가는 주인공의 비극적인 결말은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마트소설'은 더욱 짧다. 고작 '원고지 4매~20매' 안쪽의 분량이 전부다. 무명작가의 작품도 아니다. <변신>의 프란츠 카프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나쓰메 소세키, <댈러웨이 부인>의 버지니아 울프,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오스카 와일드, <정글북>의 키플링, 그리고 <검은 고양이>의 에드가 앨런 포우 등등 이름만 들어도 익숙한 유명작가의 '짧은 소설들'이 수록된 책이기도 하다.

 

  원래 라틴 문학의 '미니픽션'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을 우리 나라 <문학나무> 출판사가 '스마트소설'이라 이름 붙였다고 하는데, '손바닥소설'이나 '짧은소설', '미니서사' 등 다양한 이름을 붙인 것 가운데서 골랐다고 한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스마트폰'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으므로 적당하다 할 수 있겠으나, 개인적으론 '손바닥소설'이 마음에 든다. 어차피 '스마트폰'도 손바닥 위에 놓여 있는 '스마트'한 도구일 뿐이니 말이다.

 

  하긴 '젊은 세대들'에게 '스마트소설'이 제격이란 생각도 든다. 긴 서사를 즐겨 읽기보다는 '가볍고', ' 강렬한' 것에서 더 많은 것을 끄집어내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덕분(?)에 '깊이'와 '여운'을 느끼기 힘든 세대인 것도 문제점으로 꼽긴 하지만, 그럼에도 수많은 정보속에서 '보석'보다 더 반짝이는 것을 '빠르게' 선별해내는 능력은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기 때문이다. 훗날 '인공지능'과 대결(!)을 해야할 세대인만큼 빛의 속도로 '무언'가를 해내는 젊은 세대들이 더욱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 짧은 소설을 더욱 맛깔나게 해주는 것은 '스마트소설'의 풍미를 더해주는 '평설'이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간절해지는 것이 '다른 사람의 생각'인 탓도 덧붙여 말하고 싶다. 왜냐면 주변에 책 읽는 이들이 별로 없는 관계로 '독서한 뒤에 대화'를 나눌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설'을 읽으면서 사뭇 반가웠다. "내 생각은 이런데, 네 생각(평설)은 저렇구나"하고 말이다. 서로 사뭇 다른 생각이 적혀 있을 땐 더욱 즐겁기까지 했다. '젊은 시절'에는 느껴보지 못한 '또 다른 감상법'이기도 했고 말이다.

 

  물론, 모든 소설이 재밌지 않고 '기대이하'일 수도 있는 것처럼 이 책에 수록된 30편의 '스마트소설' 전부가 진한 감동과 끝없이 밀려오는 감동을 주진 않았다. 다시 말해서 '생뚱맞은' 느낌도 상당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대가(大家)들의 '스마트'한 번뜩임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몇 개만 간략히 소개하자면,

 

  카프카의 <법 앞에서>는 평범한 소시민이 '법의 문턱'에서 평생을 서성거리다 끝내 문턱을 넘지 못하고 생을 마치는 모습을 연상케 하면서, 권력이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법은 시민 모두를 위해 엄중하고 엄정해야 하지만, 시민을 위해서 '존재'할 때에만 그 존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카프카는 '법의 문턱'을 가로막고 있는 문지기 앞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평범한 시민을 보여주면서, '법'도 아닌 고작 '문지기'가 그러한 위엄을 보이고 있는 현실을 비꼬고 있다.

 

  울프의 <유모 럭튼의 커튼>에서는 '판타지'를 보여주고 있다. 늙은 유모가 한가로이 낮잠을 자고 있는 풍경을 묘사하더니 갑자기 '살아있는 동물들'을 선보여준다. 곧이어 그 생생한 풍경은 활기찬 동물들의 모습에서 '어두운 저주'를 받고 감옥에 갇혀 마녀의 감시를 받는 슬픈 곡조로 바뀌고 만다. 활기 넘치는 동물들을 한순간에 꼼짝 못하게 만드는 공포의 마녀는 다름 아니라 '유모 럭튼'이었다. 늙은 유모 럭튼이 수를 놓고 있는 앞치마의 풍경이 묘사되면서 그 동물들의 정체가 밝혀진다. 그리고 그 동물들은 늙은 유모가 잠이 든 때에만 자유로울 수 있다는 판타지적 세계관이 꼴랑 원고지 10매 안팎의 '스마트'함에 담겨 있다.

 

  이 책에는 '젊은 감각'이 수록되어 있다. 물론 작품들은 모두 '옛것'이지만 '스마트한 세대'에게 더욱 강렬하게 전달되는 '무엇'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의 취향에 따라 '읽는 맛'은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평범한 '메인 디쉬'보다는 매력적인 '디저트'를 맛보기 위해서 고급 레스토랑을 찾을 때도 있는 것처럼 이 책의 매력을 맛보는 것도 탁월한 선택일 것이다.

 

책드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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