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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 스마트 소설 ㅣ 스마트소설 외국작가선 1
주수자 옮김 / 문학나무 / 2021년 6월
평점 :
'짧음'이 주는 강렬한 느낌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정도다.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미니스커트를 '누가' 입었느냐는 논란이 있는지는 그닥 중요하지 않다. 종아리는커녕 발목이 보이는 것조차 부끄러워하던 여성들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면 온 나라가 들썩였기 때문이다. 또, 걸그룹 AOA가 <짧은 치마>를 부를 땐 어땠는가. 흥겨운 비트에 온 몸을 들썩임과 동시에 두 눈이 번쩍 뜨이는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이처럼 '짧음'은 대단히 매력적인 무엇을 갖고 있다.
'단편소설'도 그렇다. 원고지 50매 안쪽의 짧은 글 속에 '기승전결'을 담아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이다. 비록 전달하는 메시지는 짧을지언정 그 안에 담긴 '깊이'까지 허술하진 않은 작품들이 꽤나 많기 때문이다. 교과서에도 수록된 <화수분>과 <운수 좋은 날> 등이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제목과는 정반대의 운명을 살아가는 주인공의 비극적인 결말은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스마트소설'은 더욱 짧다. 고작 '원고지 4매~20매' 안쪽의 분량이 전부다. 무명작가의 작품도 아니다. <변신>의 프란츠 카프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나쓰메 소세키, <댈러웨이 부인>의 버지니아 울프,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오스카 와일드, <정글북>의 키플링, 그리고 <검은 고양이>의 에드가 앨런 포우 등등 이름만 들어도 익숙한 유명작가의 '짧은 소설들'이 수록된 책이기도 하다.
원래 라틴 문학의 '미니픽션'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을 우리 나라 <문학나무> 출판사가 '스마트소설'이라 이름 붙였다고 하는데, '손바닥소설'이나 '짧은소설', '미니서사' 등 다양한 이름을 붙인 것 가운데서 골랐다고 한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스마트폰'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으므로 적당하다 할 수 있겠으나, 개인적으론 '손바닥소설'이 마음에 든다. 어차피 '스마트폰'도 손바닥 위에 놓여 있는 '스마트'한 도구일 뿐이니 말이다.
하긴 '젊은 세대들'에게 '스마트소설'이 제격이란 생각도 든다. 긴 서사를 즐겨 읽기보다는 '가볍고', ' 강렬한' 것에서 더 많은 것을 끄집어내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덕분(?)에 '깊이'와 '여운'을 느끼기 힘든 세대인 것도 문제점으로 꼽긴 하지만, 그럼에도 수많은 정보속에서 '보석'보다 더 반짝이는 것을 '빠르게' 선별해내는 능력은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기 때문이다. 훗날 '인공지능'과 대결(!)을 해야할 세대인만큼 빛의 속도로 '무언'가를 해내는 젊은 세대들이 더욱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 짧은 소설을 더욱 맛깔나게 해주는 것은 '스마트소설'의 풍미를 더해주는 '평설'이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간절해지는 것이 '다른 사람의 생각'인 탓도 덧붙여 말하고 싶다. 왜냐면 주변에 책 읽는 이들이 별로 없는 관계로 '독서한 뒤에 대화'를 나눌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설'을 읽으면서 사뭇 반가웠다. "내 생각은 이런데, 네 생각(평설)은 저렇구나"하고 말이다. 서로 사뭇 다른 생각이 적혀 있을 땐 더욱 즐겁기까지 했다. '젊은 시절'에는 느껴보지 못한 '또 다른 감상법'이기도 했고 말이다.
물론, 모든 소설이 재밌지 않고 '기대이하'일 수도 있는 것처럼 이 책에 수록된 30편의 '스마트소설' 전부가 진한 감동과 끝없이 밀려오는 감동을 주진 않았다. 다시 말해서 '생뚱맞은' 느낌도 상당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대가(大家)들의 '스마트'한 번뜩임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몇 개만 간략히 소개하자면,
카프카의 <법 앞에서>는 평범한 소시민이 '법의 문턱'에서 평생을 서성거리다 끝내 문턱을 넘지 못하고 생을 마치는 모습을 연상케 하면서, 권력이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법은 시민 모두를 위해 엄중하고 엄정해야 하지만, 시민을 위해서 '존재'할 때에만 그 존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카프카는 '법의 문턱'을 가로막고 있는 문지기 앞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평범한 시민을 보여주면서, '법'도 아닌 고작 '문지기'가 그러한 위엄을 보이고 있는 현실을 비꼬고 있다.
울프의 <유모 럭튼의 커튼>에서는 '판타지'를 보여주고 있다. 늙은 유모가 한가로이 낮잠을 자고 있는 풍경을 묘사하더니 갑자기 '살아있는 동물들'을 선보여준다. 곧이어 그 생생한 풍경은 활기찬 동물들의 모습에서 '어두운 저주'를 받고 감옥에 갇혀 마녀의 감시를 받는 슬픈 곡조로 바뀌고 만다. 활기 넘치는 동물들을 한순간에 꼼짝 못하게 만드는 공포의 마녀는 다름 아니라 '유모 럭튼'이었다. 늙은 유모 럭튼이 수를 놓고 있는 앞치마의 풍경이 묘사되면서 그 동물들의 정체가 밝혀진다. 그리고 그 동물들은 늙은 유모가 잠이 든 때에만 자유로울 수 있다는 판타지적 세계관이 꼴랑 원고지 10매 안팎의 '스마트'함에 담겨 있다.
이 책에는 '젊은 감각'이 수록되어 있다. 물론 작품들은 모두 '옛것'이지만 '스마트한 세대'에게 더욱 강렬하게 전달되는 '무엇'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의 취향에 따라 '읽는 맛'은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평범한 '메인 디쉬'보다는 매력적인 '디저트'를 맛보기 위해서 고급 레스토랑을 찾을 때도 있는 것처럼 이 책의 매력을 맛보는 것도 탁월한 선택일 것이다.
책드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