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선생의 시끌벅적 과학교실 11 : 태양계 - 태양계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 용선생의 시끌벅적 과학교실 11
사회평론 과학교육연구소 지음, 김인하 외 그림, 맹승호 감수, 이우일 캐릭터 / 사회평론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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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선생 시리즈를 처음 읽었다. 그간 '한국사', '세계사'도 출간했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정작 읽지는 않았다. 내가 그쪽 분야는 꽉 잡고 있기에 책표지만 보아도 무슨 내용인지 감이 잡혔기..쿨럭쿨럭. 암튼 '누리호 발사 소식'을 접하고서 아이들에게 '우주'에 관련된 논술책을 고르다 이 책이 적당하다 생각되어 선정해보았다. 물론, '로켓'에 관한 책을 고르는 것이 가장 좋을 테지만, 그쪽 분야가 워낙 난해하고, 관력책도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에 '과학초보자'를 위해서 선정하게 되었다.

 

  책의 내용은 '초등교과 5학년'와 '중등 2, 3학년'에 수록된 교과서 내용을 중요내용으로 선별해 '태양계에 관한 기본 상식'을 소개하고 있다. 이런 책을 읽을 때의 관건은 '교과서의 내용'을 얼마나 잘 간추려 깔끔하게 정리했느냐를 으뜸으로 삼고, 책에 '정리된 내용'이 얼마나 눈에 잘 들어오느냐를 마무리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어차피 내용은 '교과서'나 웬만한 '참고서'에 다 나와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다 알고 있는 내용'인데, 얼마나 쉽고 재미나며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인상적'으로 구성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류의 책으로 '학습만화'인 <WHY?> 시리즈가 이미 있다. 그리고 학습만화가 훨씬 더 쉽고, 재미나며, '인상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학습만화'가 가지고 있는 한계도 분명히 있다. 그건 아이들이 '만화형식'에 꽂혀서 정작 '학습지식'을 배우고 익히는데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하는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즉, 만화속의 주인공이 엉뚱발랄한 행동으로 배꼽을 빼놓는 재미에 푹 빠져서 가장 중요한 '교과학습지식'을 쌓는데 소홀히 한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그런 재미와 함께 학습적인 내용도 잘 익히는 까닭에 아무 상관 없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만화적인 재미'는 덜 하지만, '교과지식'을 심층적으로 집중할 수 있도록 구성된 '용선생 시리즈'가 훨 낫다는 평가를 내릴 수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좀 밋밋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좀 '교과서스러운 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알찬 느낌'은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었다. 꼭 알아야 할 지식을 바탕으로 '잡다한 지식'은 쏙 빼버려서 매우 깔끔하고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내용 구성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과학지식책들 가운데에는 '여백의 미'를 살리지 못하고 눈을 어따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빼곡하게 채워넣기 급급한 책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책들이 진짜 알짜배기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정작 그 책을 읽어야 할 초중등생은 책을 펼치자 마자 졸음이 쏟아지는 지루한 책이기 십상이라 좋은 책은 결코 아닐 것이다.

 

  인류가 쏘아올린 탐사선이 '태양계의 끝자락'에 도착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우주'에 대한 관심을 쏟아야 할 때가 되었다. 더구나 대한민국이 독자적으로 우주발사체(누리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했다는 점에서 '우주강국의 시발점'이 되는 역사적인 순간이니 조금 더 관심을 두어야 마땅할 것이다. 누리호 발사 성공이 갖는 의미는 이제 우리 손으로 '인공위성'을 마음껏 쏘아올릴 수 있다는 점이고, 국제적인 달탐사 프로젝트에 당당한 일원으로 참가함은 물론, 향후 달에 있는 자원(헬륨-3 등)을 선점하는데 유리한 고지에 도달했다는 점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명실상부한 '우주강국'으로 발돋움해야만 한다. 이는 마치 '대항해시대'에 미지의 대륙에 누가 먼저 깃발을 꽂느냐 꽂히느냐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볼작시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핑크빛일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서구열강들의 경쟁이 해피엔딩으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우리는 적어도 이런 식으로 '우주개발'에 뛰어들면 안 된다. 어디까지나 '인류공영'을 이바지하기 위한 선도국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대항해시대의 결말이 끝내 세계대전이었던 것과는 달리 '우주개발의 결말'이 우주전쟁의 서막이 되어서는 곤란하단 말이다. 대한민국이 이런 전쟁에 휘말리는 것은 더더군다나 노땡큐고 말이다. 우리는 '문화강국'으로 세계를 이끌어나가는 모범국으로 성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모든 면에서 '강대국'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아이들이 읽는 책에서는 꿈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암기할 사항이 아니라 원대한 포부를 담는 '그릇 같은 책'이어야 하고 말이다. 그리고 나 같은 선생이 해야 할 일은 책 속에서 그 '꿈의 조각'을 찾아내어 아이들이 마음껏 꿈을 꿀 수 있게 펼쳐 보여줘야 하고 말이다. 이 세상엔 그런 선생님이 참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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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코노미 - 돈도 벌고 세상도 바꾸는 밀레니얼 경제 공식
크레이그 킬버거.홀리 브랜슨.마크 킬버거 지음, 이영진 옮김 / 한빛비즈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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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착한 일을 했는데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면 누구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자선사업'을 말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자선사업의 두 얼굴'을 종종 맞대곤 하기 때문에 덜컥 의심부터 들기도 하지만, '오프라 윈프리'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달라질 것이다. 선한 일을 하면서 유명세와 돈방석에 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것이 바로 착한 기업의 대명사인 '위코노미'가 되겠다.

 

  위코노미가 말하는 것은 명확하다. 비즈니스에 성공하기 위해선 '사회적 대의'를 도모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경제, 환경에 영향을 받고 살고 있으며 지독한 가난과 열악한 환경에 처한 이웃을 위해 사회복지를 강력하게 추진해야 할 '사명감'을 느끼곤 한다. 그런데도 그런 사명감을 느끼면서도 '어찌 해야 할 바'를 몰라 어쩔 줄을 모르기 일쑤다. 심지어 '가난은 나랏님도 못 고친다'라는 부자들의 어처구니 없는 변명에 휘둘려서 가난을 '게으름병'으로 치부하며 나몰라라 방치하고 있는 실정이다. 조금만 도와주면 가난을 스스로 물리치고 일어나 건강하고 건전한 사회 일원으로 얼마든지 복귀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렇다. 문제는 도와주고 싶어도 적절한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적절한 도움이 되고자 '금전적인 기부'를 가장 손쉽게 접하기 일쑤지만, 이 방법은 그다지 효율적이지도, 실천적이지도 못한 방법이다. 또한 대부분의 자선단체들도 적극적 활동을 하기보다 소극적으로 '기부'만 받아 '물품'을 전달하고 '사진'을 찍어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에만 집중하기 마련이다. 정작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지도 않고서 말이다. 이를 테면, 연말이면 '연탄'을 배달하며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라는 정성을 아끼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당장의 급한 불은 끌 수 있다. 허나 방바닥만 따뜻하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추운 날씨에 오그라든 손발은 녹일 수 있을지언정 매서운 칼바람에 꼭 닫아버린 마음의 문은 열지 못하고 '사회일원'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소일거리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것에 그치고 말 뿐이다. 이래서는 제대로 된 자선사업이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보다는 가난으로 내몰린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사람 사는 동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골목골목에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들리게 해야 하고, 하루 일과에 지친 아빠엄마들이 아늑한 집에 돌아와 함께 저녁을 준비하며 오순도순 살아가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동네로 만들어야 한다. 또한 자영업자들이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마을로 만들어야 한다. 이런 찐도움이 되는 사업을 벌여야 진짜 자선사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차가운 달동네로 방치하면서 연탄 몇백 장 쟁여 놓는다고 해결될 사업이 아닌 것이다.

 

  이 책에는 유명한 자선사업가와 자선기업들을 소개하고 있다. 일일이 이름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그보다는 그들이 하는 '적극적인 자선활동'에 주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하는 공통적인 활동은 바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저소득층이 살고 있는 열악한 환경에 '학교 짓기'와 '수도관 사업' 등과 같은 일을 벌이는 것이다. 학교를 짓는 것은 개발도상국 이하의 나라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이 '아동 노동착취'에 심하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은 '가난'이라는 굴레에 갇혀 미래를 빼앗긴 채, 당장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최전선'으로 내몰리기 십상이다. 그래서 10대 이전에 '밥벌이'라는 명목으로 구걸을 하거나 저임금 노동현장에 강제로 들어가거나 힘든 농사를 해야만 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만다. '학교에 갈 나이'가 되어도 이런저런 이유로 배우지 못하고, 배움이 없기에 성인이 되어서도 가난한 농민이나 노동자가 되어 가난을 되물림하는 악순환에 빠져버리고 만다. 그래서 '무료교육'이 절실하다. 그리고 자녀가 학교를 졸업하면 온가족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다름 아닌 자기 나라와 자기 사회가 말이다. 그래야 온나라가 빈곤을 떨치고 경제성장을 이루어 먹고 살만한 나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가난한 나라에 '인재'가 얼마나 소중한 자원인지는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또한, 식수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도 저소득국가에서는 '마실 물'이 없어서 어린아이들이 죽어가는 안타까운 현실이 펼쳐지곤 한다. 그리고 어른들이 돈벌이를 하러 나가면 아이들은 '마실 물'을 길러오기 위해 하루에 수십 킬로를 물통을 이고지고 밀고끌고가며 몇 번이고 왕복해야 한다. 그러니 '학교'는 고사하고 집에서도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없는 것이다. 그보다 더 절실한 문제는 '건강'을 위해서 깨끗한 물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물부족국가에서는 우물을 파기 위해서 땅속 깊이 파고들어가야 하는 어려움을 공통적으로 겪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땅속 깊은 곳의 지하수까지 '수도관'을 뚫는 기계가 절실한데, 그 기계를 마련하지 못해 마실 물을 구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펼쳐지곤 한다. 그래서 자선사업 가운데 '수도관 사업'이 많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 자선사업이 집중하고 있는 것은 '여성인권'이다. 여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에 비해서 더욱더 열악한 환경에 처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여자아이들은 어린 나이부터 집안일을 비롯해서 농사일, 심지어 공장노동자가 되어 '노동착취'를 쉽게 당한다. 또한, 열악한 환경에서는 '성착취'도 종종 벌어지곤 하는데, 10살도 안 된 '어린 신부'가 아버지 손에 이끌려 늙은이들의 첩 가운데 한 명으로 팔려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또, 그렇게 길들여진(?) 여자아이들이 엄마가 되어서 자신의 딸이 헐값에 노동을 착취 당하고, 성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뜬눈으로 지켜봐야 하는 지옥 같은 현실 앞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이처럼 '여성인권'이 유린되는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여자아이'에게 도움을 손길을 지속적으로 주는 것이 자선사업이 해야 할 '일순위'인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여성의 경제독립'이 절실하다. 여성도 얼마든지 경제적 활동을 통해서 자기 인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만 한다. 그러지 못한 사회에서는 '발전가능성'조차 없으며, 나아가 '정상국가'로 발돋움할 수조차 없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 정권의 손아귀로 되돌아가자 벌어진 참혹한 현실이 그것이다. 여성에게 족쇄를 채우고 강요를 일삼는 국가는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제대로 생길 수 없는 것이다. '절반의 엔진'만으로 어떻게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하단 말인가. 양성평등은 선진국, 나아가 선도국가가 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것이다.

 

  그밖에도 자선기업이 할 일은 많다.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환경을 되살리는 일이라든지, 자연재해로 일순간에 터전을 잃어버린 국가나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는 일, 누구에게나 부여받은 평등할 권리를 빼앗긴 채 '소수자'로 전락해 온갖 사회적 불평등을 한몸으로 겪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 등등 '할 일은 많고 일손은 부족한 것'이 자선사업의 숙명과도 같은 일이다. 물론,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일에 앞장서는 것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모든 자선사업가가 '오프라 윈프리'가 될 필요는 없다. 남을 돕고는 싶은데 천성적으로 남 앞에 나서는 것을 힘들어 하는 이들도 얼마든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착한 일에 많고 적음이 따로 없고, 적극적이냐 소극적이냐도 따질 것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착한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멋진 '자선사업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쳐보이는 것으로 남을 도울 수 있다. 연예인들의 '재능기부'도 바로 그런 일환의 하나다. 자신의 재주를 '많은 이들과 나누려는 마음'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가능할 것이다. 기부금을 전달하는 방법도 아주 좋은 일이다. 자선사업에는 항상 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저 돈만 전달하는 것으로 그치고 나면 아무런 보람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도움을 주고 싶은 이들에게 분명히 전달될 수 있도록 '확실한 기부'를 해야 한다. 이를 테면, 생리대가 없어서 신발깔창을 쓴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도움을 주고 싶다면 그 소녀에게 확실히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자선단체를 찾아 '정확하게' 기부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왜냐면 기부에는 함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길거리에서 화상 자국을 보여주며 구걸하는 어린아이에게 돈을 쥐어주면 안 된다. 그 돈이 그 어린아이에게 쓰이기보다는 그 아이에게 일부러 화상을 입혀 '앵벌이' 시키는 나쁜놈들에게 선량한 마음을 이용당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기부금만 전달하는 자선사업도 마찬가지다. 정작 '그 자선기업'이 기부금을 대신 모아 정확한 용도에 맞게 쓰이고 있는지 '투명도'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맹목적인 기부만으론 '사기' 당하기 딱 좋다.

 

  우리 나라에서도 '형제복지원' 같은 비극적인 일이 벌어졌었다. 거리의 부랑아를 거두어 건전한 사회일꾼으로 만들어 사회에 환원시킨다는 명목으로 벌어진 '인권유린'과 '노동착취'로 수십 년간 노예처럼 부려진 끔찍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이런 '형제복지원'이 정부의 지원과 수많은 후원가들의 기부금마저 착복한 사실이 밝혀져 우리 사회의 경종을 울렸지만, 악마 같은 원장은 구속은커녕 법적처벌도 미미하게 받은 뒤 그 돈으로 호의호식하며 살았더라는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지금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것 같지만 지하철역 앞에서 하루종일 엎드린 채 구걸을 하는 불쌍한 사람도 '나쁜놈들'에게 사지를 절단 당하고 새벽에 출근해 밤늦게 퇴근(!)하는 '기업형 구걸꾼'으로 이용당한 나쁜 사례다. 장님 행세를 하며 구걸한 이들도 사기꾼들이고 말이다.

 

  이처럼 선량한 마음이 상처 받지 않고, 사기 당하지 않으려면 '자선사업'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착한 기업이 하는 일에 주목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방법도 알아야 하며, 자선사업가로 활동하는 것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만 할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그런 사람들을 정부가 알아서 척척 도와주면 좋으련만, 정부를 꾸려나가는 돈은 '세금'으로 쓰이는 탓에 특정한 사람에게만 세금을 펑펑 쓴다면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자선사업가가 필요한 법이다. 그렇게 쓰이는 세금이 절대 아까운 돈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일도 자선사업가가 할 일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각해지고 있다. 부자에게 쏠리는 돈이 가난한 이들에게 적재적소에 쓰이는 것이 우리 사회를 건전하고 건강하게 만드는 지름길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분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만인 분들이 있다. 세금을 많이 내야만 하는 부자들의 볼멘소리 말이다. 그들은 권력을 이용해서라도 세금을 덜 내고 '자신들의 몫'이 더 많이 돌아가도록 법마저 바꾸려고 지랄발광을 한다. 법인세 감면, 상속세 인하 따위 말이다. 종부세는 더더군다나 내기 싫은지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안 내겠다는 각오가 정말 대단하다. 우리 나라에도 "세금을 더 많이 거둬달라"고 외치는 착한 부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분들이 이 책을 꼭 읽어줬으면 좋겠다. 그분들이 착해지면 정말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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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트 Trust - 신뢰는 시장을 어떻게 움직이는가
벤저민 호 지음, 조용빈 옮김 / 한빛비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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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학자가 '신뢰'라는 변수를 고려하는 것이 당연하면서도 의아스럽기 그지 없다. 아닌 게 아니라, 경제의 근본은 '믿음'이기 때문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무역이나 조약 뿐만 아니라 개개인이 시장에서 돈을 내고 물건을 사는 일에도 '신뢰'는 필수불가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 누굴 얼마큼 '믿고' 거래를 하는지는 너무나도 불확실한 일이다. 더구나 '이론'을 세우고 '수치'를 정확히 내세워야 할 경제학자가 이론은커녕 수치조차 정확히 내세울 수 없는 불확실한 변수를 들이밀면서 경제학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 '어불성설'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신뢰'는 대단히 중요하다는 데 모두 공감할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공감에서 출발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신뢰'는 수치화할 수 없다. 대략적으로 얼마 정도 믿을 수 있다. 그래서 거래를 성사시키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투자를 얼마나 할 것인지 정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개별적인 사안'이고, 개개인마다 다른 '수치'를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경제이론'으로 신뢰를 내세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대단히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신뢰'를 정량화하고 정확한 수치를 내려서 공식에 적용시킬 수 있는 '이론'으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불가하다. 그래서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없을까? 그건 절대 아니다. 왜냐면 그만큼 우리가 '신뢰(trust)'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정량화할 수조차 없는 '신뢰'를 왜 대단히 여겨야만 하는가? 그건 '신뢰'가 무너지면 경제도 무너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화폐의 가치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말이다. 당근 말밥, '신뢰'다. 이 돈(화폐)을 가지고 '동일한 가치'의 물건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화폐의 가치는 논할 필요조차 없고, 화폐로 쓰일 수 없다. 반대로 '믿을 수만 있다'면, 실제로는 본 적도 없는 바닷속의 돌조차 '거래'에 사용할 수 있다. 실제로 얍섬에서는 '돌 돈'을 화폐로 사용했었단다. 화폐로 쓰이는 돌의 크기에 따라 액수도 달랐는데, 거액에 해당할수록 크기도 엄청나게 컸단다. 그러던 어느 날, 거래를 성사시키고 큰돌을 거래대금으로 쓰기 위해 배에 싣고 옮기는 중 배가 뒤집히며 큰돌이 바다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그렇지만 얍섬사람들은 그 큰돌의 '가치'를 믿었기 때문에 거래는 믿고 성사되었다. 그 뒤로 그 큰돌의 주인이 누구인지만 밝히면 언제든 거래를 할 수 있는 '화폐의 가치'로써 여전히 쓰였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달러화폐'를 쓰고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화폐'가 어떻게 가치를 갖게 되고 쓰이는지 알 수 있는 훌륭한 예로 '얍섬사람들의 큰돌'을 통해 알 수 있다.


  이처럼 경제의 밑바탕이라 할 수 있는 '화폐'도 신뢰할 수만 있으면 유형이든, 무형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계약은 어떨까? 투자는 어떻고 말이다. 모두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법이다. 신뢰가 없으면 경제는 말할 것도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학자인데도 '신뢰'에 주목하게 된 것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그러면 신뢰를 높이기 위해선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여기서부터가 관건이다. 이는 '지리적환경'뿐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사람이 살고 있는 곳마다 '다양한 원인'으로 '여러 형태의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누가 누굴 얼마큼 믿느냐는 정말이지 대단히 복잡한 과정의 결과인 까닭이다. 다시 말해, 똑같은 상황이라도 외모에 따라, 사회적 지위에 따라, 말한마디, 그날의 컨디션, 심지어 거래장소에 놓인 음식이나 탁자의 색깔에 따라서도 '신뢰도'는 달라지고, 거래의 성사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뢰를 '수치화'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경제의 핵심은 '신뢰'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뢰를 '높일 수 있는 방법'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이 매우 복잡다단하다는 사실도 함께 명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뢰는 더욱 세심하게 대해야 마땅하다. 따라서 신뢰는 '선택'에 달렸다고 할 수 있고, 그것이 가장 큰 목적이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경제발전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다. 대한민국 경제가 20세기 이후 전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기적적인 발전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다름 아니라 '신뢰' 덕분이었던 셈이다. 우리는 믿었다. 식민지였던 나라가, 해방 뒤에도 전쟁으로 나락으로 떨어졌던 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동력은 바로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대한민국'이었기 때문에, 무에서 유를 창출한 것과 다를 바 없는 '한강의 기적'을 성사시켰던 것이다. 신뢰가 이만큼이나 중요했던 것이다.


  아쉽게도 이런 성공적인 예를 이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신뢰의 중요성'만 강조할 뿐이었다. 앞으로도 우리는 믿어야 한다. 선진국을 넘어 '선도국'이 될 대한민국의 위상을 말이다. 그리고 그 원동력은 다름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한명 한명의 '믿어 의심치 않는 신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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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피니티 - 만화로 배우는 우주와 블랙홀의 비밀 한빛비즈 교양툰 17
로랑 셰페르 지음, 이정은 옮김, 과포화된 과학드립 물리학 연구회 감수 / 한빛비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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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호텔에 대한 이야기를 아는가? 이 호텔엔 룸이 '무한 개'나 있어서 무한호텔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이 호텔에 투숙할 수 있는 손님은 몇 명이겠는가? 답은 '무한 명'이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손님을 투숙할 수 있고, 룸도 무한히 많다. 그런데 말이다. 이 호텔에 '새로운 투숙객'이 찾아와서 빈 방을 달라고 하면 언제든 받을 수 있을까? 무한 개의 룸에 무한 명의 투숙객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말이다. 수학적으로는 [∞+∞=∞]이기 때문에 당연히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물리적으로 방은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차례대로 무한 명의 손님을 받고 순서대로 1번방부터 키를 배급해준다고 하면 '무한 번째 방'은 걷고 또 걷고 빛의 속도로 달려가도 '무한 번째 방'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무한호텔에서는 어떻게 매번 새로운 투숙객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


  정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1=∞]이기 때문에 1번방의 손님에게는 2번방으로 옮기라고 방송을 하고, 2번방의 손님에겐 3번방으로 옮기라고 하는 식으로, 'n번방의 손님에게 (n+1)번방으로 옮기라'는 방송을 하면서 '새로운 손님'에게는 늘 1번방으로 안내하면 된다. 이것이 바로 '무한호텔의 영업비밀'이다. 이제 머리속에서 대충이나마 '무한에 대한 개념'을 잡으셨다면, 이 책을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이 책은 크게 '우주의 무한'과 '양자의 무한'에 대한 상상실험을 주요 내용으로 전개하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우주와 꼭 닮은 세계가 바로 무한히 작은 양자(미립자)의 세계라는 명백한 사실을 두고 펼쳐내는 '현대물리학의 최전선'을 소개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전선'이라고 하니까 살벌하고 잔혹한 전장을 떠올리는 분들도 계실테지만, 뭐 틀린 말은 아니다. 무한의 개념으로 바라본 우주와 양자의 세계는 생각하기에 따라서 '극한의 환경'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먼저, 우주부터 바라보자.


  우주라고 해서 광활한 우주공간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바로 '시공간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인데, 음...쉽게 설명하면, '공간'속을 빠르게 이동하면 '시간'은 느려지고, 반대로 '공간'속을 느리게 이동하면 '상대적'으로 시간은 빨라진다는 것이 '상대성이론의 핵심'이당. 더 쉽게 설명하면, 빛의 속도에서 '시간'은 멈추게 된다는 상식만 이해하면 된다. 그 반대로 정지된 속도에서 '시간'은 무한히 빨라지게 되고 말이다. 인간이 항성간 우주여행이 가능해진다면 이를 극명하게 증명할 수 있을텐데, 한마디로 빛의 속도에 가깝게 비행하는 우주선 안에 있는 우주인의 시간과 지구에 남겨진 가족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고, 우주여행을 마치고 지구로 돌아왔을 때 우주인의 시간이 '하루'가 지났다면 지구에 남겨진 가족에게는 '수백 년'이 흘러갔을 거라는 얘기다. 이렇게 공간을 지나는 속도가 달라지면 시간도 다르게 흐른다는 과학적 사실이 현대물리학에서는 명백하게 사실로 밝혀졌단다.


  그렇다면 이런 '상대성이론'이 지구 안에서도 통용이 될까? 물론이다. 걸어서 출근하는 사람보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사람이 '시간'을 덜 소비하여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굳이 따지자면 '0.1 나노초'만큼 젊다. 느리게 걷는 것보다 한 걸음이라도 빠르게 다니는 사람이 더욱 오래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되는 셈이다. 남들보다 하루에 만 보를 더 빠르게 걷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0.000001초'만큼 젊어지는 셈이니 매일 만보를 빠르게 걷는 사람이 80년을 산다고 했을 때, 그러지 않은 사람보다 무려 0.0292초만큼 젊게 사는 셈이다. 한마디로 별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상대성이론'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셈이다.


  따라서 시간은 누구에게나 '다르게' 흐르지만 지구안에 사는 사람은 마치 '동시간대'에 사는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주로 나가면 다르다. 가장 빠른 빛의 속도(초속 30만킬로미터)로도 1년이 걸리는 '광년 단위'로 세는 우주에서 시간은 현저히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구에서 관측하는 여러 곳의 우주는 마치 '서로 다른 시간'이 흐르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 있으면 큰 차이를 못느낀다. 마치 KTX를 바깥에서 바라본 사람은 KTX가 엄청나게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보지만, KTX 안에 있는 승객은 제자리에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 반대로 '양자의 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주에서 벌어지는 무한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원자'를 하나하나 분리해서 보면, 양성자와 중성자, 그리고 전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몸 뿐만 아니라 세상을 이루고 있는 모든 물질이 그렇다.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작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광경은 이렇듯 '미립자'들로 이루어진 세계가 펼쳐진다. 그 작은 세상은 놀랍게도 '텅텅 빈 공간'이 펼쳐진다. 하나의 원자를 구성하고 있는 핵(양성자+중성자)과 전자 사이가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원자를 '축구장'만하게 확대를 하면, 축구장 한 가운데 '골프공'을 놓고 '원자핵'이라고 가상을 한다면 먼지보다 작은 전자가 축구장의 나머지 공간을 구름처럼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나 텅빈 공간을 가지고 있는 '원자'들이 모여서 우리 몸과 모든 물질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저마다 서로 다른 성질을 띠고 있을까? 그건 원자속의 양성자가 전자를 하나를 얻거나 잃을 때마다 '전기(전자기)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고, 그 전기적 반발력이 저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원자마다 '다른 특성'을 띠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나 상대적으로 넓고 '텅빈 공간'을 갖고 있음에도 탁자 위에 놓인 물컵이 스르륵 통과해서 떨어지지 않고, 물컵 안의 물이 물컵 아래로 흘러나가지 않는 것도 바로 이런 '전기현상' 때문이다.


  그렇게나 '작은 세상'을 이루고 있는 미립자의 세계에서 '무한'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놀랍게도 그건 '진공(공간)'이 펼쳐내는 마법을 관람할 수 있다. 원자(미립자)라고 하는 그 작은 공간에 엄청나게 큰 '텅빈 공간'이 있고, 그 '텅빈 공간'에서 '진공의 마법'이 펼쳐진다고 상상을 해보잔 말이다. 상상이 가는가?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보통 '진공'이라고 표현할 때는 '아무 것도 없는 공간상태'를 말하지만, 미립자 안의 진공에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엇'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이쯤해서 다시 우주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우주에 대해서 얼마만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놀랍게도 별과 별 사이도 '텅텅 빈 공간'으로 꽉 차있다. 태양계 항성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이 약 4광년 떨어져 있고, 태양이 속한 우리 은하와 가장 가까운 안드로메다 은하까지 250만 광년 떨어져 있다. 그럼 그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놀랍게도 아무 것도 없다. '텅텅 빈 공간'이란 말이다. 그런데 그 텅텅 빈 공간에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무언지도 모르지만 분명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말이다. 그 뭔가를 일으키는 물질을 우리는 '암흑물질'이라고 부른다. 응큼하고 음흉한 무엇이라서가 아니라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암흑이라 부르는 것이다.


  다시 미립자의 세계에서도 똑같이 '진공' 상태에서 뭔가가 일어난다. 이것을 현대물리학자 가운데 천재라고 불리는 '리처드 파인만'이 '가상입자'를 통해서 진공의 비밀을 밝혀냈고, 그 비밀 덕분에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현상이 '진공에서 발생하는 요동'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물론, 관측할 수조차 없는 그 요동을 '무한의 개념'으로 이해한다면 말이다.


  이처럼 현대물리학의 핵심은 '말이 안 되는 일'을 증명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속에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음을 밝혀내는 것에 있다. 그래서 불편한 진실이지만 우리는 '무한'이라는 개념과 좀 더 친숙해질 수밖에 없다. 알아도 알 수 없고 알려해도 좀처럼 알 수 없는 '인피니티(무한)'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금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몰라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하지만 궁금하긴 할 것이다. 새로 산 최신 스마트폰에 탑재된 '최신기능'이 있기는 한지 말이다. 굳이 몰라도 쓰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고, 신기능을 이해하려고 애를 쓸수록 복잡해서 쓰고 싶어지지 않게 되는 것이 바로 '인피니티(무한)' 때문이다. 현대물리학의 최신기술의 집합체인 스마트폰이 우리 손에 들려 있지만 그 '암흑'과도 같은 메뉴얼을 뒤적이며 일일이 찾아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점점 두꺼워지던 그 메뉴얼이 요즘엔 사라졌다. 대신 스마트폰 속 어딘가에 탑재되어 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립자'처럼 말이다. 어떤가 '무한(인피니티)'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생겼는가? 그렇다면 이제 이 책을 읽을 준비가 다 된 셈이다. 재미나게 읽으시길 바란다. 분명 재밌다. 그것도 엄청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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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정의를 향한 여정 - RBG가 되기까지 북극곰 그래픽노블 시리즈 6
데비 레비 지음, 휘트니 가드너 그림, 지민 옮김 / 북극곰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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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역사를 논할 때, 내가 늘 빼놓지 않는 것이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 학살, 유색인(흑인) 인종차별, 그리고 남녀 불평등, 세 가지다. 지금의 초강대국 미국이 있기까지 미국이 공공연하게 감추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 '흑역사'가 바로 이 세 가지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어쩌라고?" 라는 태도로 견지하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은커녕 '불편한 문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해결하지 않아도 별 문제는 없어. 괜히 들쑤셔서 큰일 만들지 말고 그냥 알아서 적응해. 그게 미국사회니까...이런 느낌을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강력하게 규탄하려 한다. 그런 '차별'이 존재하는 한 미국은 절대로 '아름다운 나라(美國)'일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사회에서 'RBG'는 여성인권 신장을 위해 한 평생을 다 바친 위인이며, 미국사회가 존경해마지않는 '여성 대법관'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비단 '여성인권' 뿐만 아니라 모두가 평등하고 존중받아 마땅한 사회가 정당하고 당연하다고 여긴 까닭에 미국사회에서 '소외'받아 불공정한 판결을 받은 소수자를 위해 힘쓴 법조인이었다. 지금도 '소수자의 인권'이 희생을 강요당하는 사건이 벌어지는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거의 모든 법조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이름이 바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바로 줄여서 RBG다.


  그녀는 미국계 유대인으로 유대인 부모 밑에서 착실하고 선량한 유대인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미국사회에서조차 '유대인'이라는 꼬리표로 '차별'을 받기 시작하면서 사회정의란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차별은 멈추지 않았다. 루스가 성장을 하면서 '유대식 예배'에 '여자'라는 이유로 예배에 배제되는 일도 겪고, 대학생일 때나 변호사로 활동할 당시에도 여자인 까닭에 '도서관 출입'조차 거부 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몸소 겪으면서, 루스가 한 평생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분명히 깨닫게 된 셈이다.


  그녀는 '여자'였지만, 우수한 성적으로 '아이비리그 대학의 법학과'를 합격했고, 역시나 졸업생 가운데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는 영광을 쟁취(!)했다. 그러나 '여자'라는 이유로 취업에서 배제되기 일쑤였다. 당연히 경력을 쌓기 힘들었고, 남성 법조인과의 경쟁에서도 밀려나기 일쑤였다. 더구나 여성으로서 '결혼'과 '출산', '육아'는 당연하고 아름다운 권리였지만, 그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모든 커리어'를 포기하고 한 남자와 아이들의 '전업주부'로 전락해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루스는 그런 사회적 편견에 일침을 가하면서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고 난 뒤에도 남성 경쟁자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뽐내며 탁월한 법조인으로 성큼성큼 성장하였다. 그리고 온갖 차별을 감내해야만 한다고 사회에서 내몰린 '소수자의 인권'을 위한 변호에 늘 앞장을 섰으며, 특히 '남녀평등'을 내세운 법안을 제출해 승인을 따내는 등 빛나는 업적을 남긴 전설적인 위인이기도 하다.


  그녀는 '남녀차별'을 당연시 여기는 사람들을 향해 당당히 외쳤다. "나는 가녀린 여성들을 동정해 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목을 밟고 있는 당신들의 더러운 발을 치워 달라고 말하는 겁니다" 정말 멋진 말이다. 남녀평등은 힘 없는 여성을 불쌍히 여겨 도와달라는 외침이 아니다.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도 당당히 '경쟁파트너'로 실력을 뽐낼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달라는 '인간'으로서 당연한 권리주장이다. 이토록 감동적이고 정중한 호소를 묵살할 용감하고 무식한 남성이 있다면 우리 사회에서 매장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아니, 반드시 매장을 시켜야 아름답고 멋진 사회가 될 것이다. 정의는 이럴 때 딱 어울리는 말이니까 말이다.


  물론, 루스가 여성법조인으로, 그리고 훌륭한 엄마로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동료 법조인'이면서 루스를 대신해서 '가사와 육아'를 톡톡히 도와준 남편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는 잘난 여성의 성공을 위해 '남편의 내조'를 강조하기 위한 말이 아니다. 집안일과 육아, 그밖의 결혼으로 발생하는 모든 일은 당사인 남편과 아내가 '공동'으로 분담하는 것이 맞다는 얘기다. 남자가 할 일, 여자가 할 일이 따로 없기에 '함께' 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계급'과 '차등'을 당연시하던 하던 전근대사회가 아니기에 반드시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부득이 집안일과 육아 등의 일을 남편과 아내 둘 중 '한 사람'이 전담하게 된다면 굉장히 미안해 해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혼'을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집안일과 육아는 인류가 반드시 해야 할 '노동의 고통' 가운데 가장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 사람의 위인'이 탄생하기까지 주변에서 도와준 많은 분들의 노고도 함께 조명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가족의 희생 없이 위인은 탄생할 수 없다. 천애 고아라 할지라도 '당당한 어른'으로 자라기까지 영향을 준 사람이 수도 없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 책이 여느 위인전과는 다르게 '루스의 주변 사람들'을 깊이 조명한 것도 그래서 대단히 인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루스의 부모님을 비롯해서 루스의 남편과 자녀, 그리고 학창시절 교수님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동료 법조인들의 헌신 없이는 'RBG의 위대한 업적'도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겠다. 유명 연예인의 수상 소감 가운데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었을 뿐"이라는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유난히 아름다운 까닭도 별 주변이 충분히 어둡기 때문인 것과 같은 논리일 것이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해준 고마운 분들이 없다면 '스타'는 반짝일 수조차 없다.


  간만에 깊이 공감가는 '위인툰(만화 형식의 위인전)'을 읽었는데, 읽기에 눈이 너무 불편했다. 단조로운 블루 계통으로 통일을 한 덕분에 눈의 피로도가 매우 심했고, 조명이 조금만 어두워도 그림과 글이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단색'을 고집할 것이었으면 '검정톤'으로 하는 것이 눈의 피로도를 줄여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이런 색감의 책은 기피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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