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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트 Trust - 신뢰는 시장을 어떻게 움직이는가
벤저민 호 지음, 조용빈 옮김 / 한빛비즈 / 2022년 7월
평점 :
경제학자가 '신뢰'라는 변수를 고려하는 것이 당연하면서도 의아스럽기 그지 없다. 아닌 게 아니라, 경제의 근본은 '믿음'이기 때문이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무역이나 조약 뿐만 아니라 개개인이 시장에서 돈을 내고 물건을 사는 일에도 '신뢰'는 필수불가결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 누굴 얼마큼 '믿고' 거래를 하는지는 너무나도 불확실한 일이다. 더구나 '이론'을 세우고 '수치'를 정확히 내세워야 할 경제학자가 이론은커녕 수치조차 정확히 내세울 수 없는 불확실한 변수를 들이밀면서 경제학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 '어불성설'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신뢰'는 대단히 중요하다는 데 모두 공감할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공감에서 출발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신뢰'는 수치화할 수 없다. 대략적으로 얼마 정도 믿을 수 있다. 그래서 거래를 성사시키는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투자를 얼마나 할 것인지 정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개별적인 사안'이고, 개개인마다 다른 '수치'를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경제이론'으로 신뢰를 내세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대단히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신뢰'를 정량화하고 정확한 수치를 내려서 공식에 적용시킬 수 있는 '이론'으로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불가하다. 그래서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없을까? 그건 절대 아니다. 왜냐면 그만큼 우리가 '신뢰(trust)'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정량화할 수조차 없는 '신뢰'를 왜 대단히 여겨야만 하는가? 그건 '신뢰'가 무너지면 경제도 무너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화폐의 가치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말이다. 당근 말밥, '신뢰'다. 이 돈(화폐)을 가지고 '동일한 가치'의 물건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화폐의 가치는 논할 필요조차 없고, 화폐로 쓰일 수 없다. 반대로 '믿을 수만 있다'면, 실제로는 본 적도 없는 바닷속의 돌조차 '거래'에 사용할 수 있다. 실제로 얍섬에서는 '돌 돈'을 화폐로 사용했었단다. 화폐로 쓰이는 돌의 크기에 따라 액수도 달랐는데, 거액에 해당할수록 크기도 엄청나게 컸단다. 그러던 어느 날, 거래를 성사시키고 큰돌을 거래대금으로 쓰기 위해 배에 싣고 옮기는 중 배가 뒤집히며 큰돌이 바다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그렇지만 얍섬사람들은 그 큰돌의 '가치'를 믿었기 때문에 거래는 믿고 성사되었다. 그 뒤로 그 큰돌의 주인이 누구인지만 밝히면 언제든 거래를 할 수 있는 '화폐의 가치'로써 여전히 쓰였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달러화폐'를 쓰고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화폐'가 어떻게 가치를 갖게 되고 쓰이는지 알 수 있는 훌륭한 예로 '얍섬사람들의 큰돌'을 통해 알 수 있다.
이처럼 경제의 밑바탕이라 할 수 있는 '화폐'도 신뢰할 수만 있으면 유형이든, 무형이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렇다면 계약은 어떨까? 투자는 어떻고 말이다. 모두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법이다. 신뢰가 없으면 경제는 말할 것도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학자인데도 '신뢰'에 주목하게 된 것이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그러면 신뢰를 높이기 위해선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여기서부터가 관건이다. 이는 '지리적환경'뿐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사람이 살고 있는 곳마다 '다양한 원인'으로 '여러 형태의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누가 누굴 얼마큼 믿느냐는 정말이지 대단히 복잡한 과정의 결과인 까닭이다. 다시 말해, 똑같은 상황이라도 외모에 따라, 사회적 지위에 따라, 말한마디, 그날의 컨디션, 심지어 거래장소에 놓인 음식이나 탁자의 색깔에 따라서도 '신뢰도'는 달라지고, 거래의 성사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뢰를 '수치화'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경제의 핵심은 '신뢰'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뢰를 '높일 수 있는 방법'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이 매우 복잡다단하다는 사실도 함께 명심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신뢰는 더욱 세심하게 대해야 마땅하다. 따라서 신뢰는 '선택'에 달렸다고 할 수 있고, 그것이 가장 큰 목적이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경제발전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다. 대한민국 경제가 20세기 이후 전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기적적인 발전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다름 아니라 '신뢰' 덕분이었던 셈이다. 우리는 믿었다. 식민지였던 나라가, 해방 뒤에도 전쟁으로 나락으로 떨어졌던 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동력은 바로 '믿음'이었기 때문이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대한민국'이었기 때문에, 무에서 유를 창출한 것과 다를 바 없는 '한강의 기적'을 성사시켰던 것이다. 신뢰가 이만큼이나 중요했던 것이다.
아쉽게도 이런 성공적인 예를 이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신뢰의 중요성'만 강조할 뿐이었다. 앞으로도 우리는 믿어야 한다. 선진국을 넘어 '선도국'이 될 대한민국의 위상을 말이다. 그리고 그 원동력은 다름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한명 한명의 '믿어 의심치 않는 신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