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세계사 7 - 프랑스 혁명과 시민 사회의 발전 처음 세계사 시리즈 7
초등역사교사모임 글, 한동훈.이희은 그림, 서울대 뿌리깊은 역사나무 감수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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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정치체제'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왕이 다스리든, 귀족이 다스리든, 여러 의원을 뽑아 합의하든, 국민들이 직접 정치를 하든, 그저 모두가 만족할 만한 '정치체제'가 등장하기만 한다면 그럭저럭 굴러가기 때문이다. 정작 문제는 '경제체제'에 있다. 다수가 넉넉하고 여유로운 삶을 보장받는 경제상황이라면 인류 역사상 큰 문제가 일어난 적이 없었다. 하지만 대다수가 굶주리는 상황에 처하면 사회는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혼란에 휩쓸리기 마련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당연한 절차'라고 할만큼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프랑스 혁명'이다.

 

  흔히 '프랑스 혁명'은 '앙시엥 레짐(구체제 몰락)'을 원인으로 꼽고 '시민계급의 성장'을 혁명의 주체로 본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굶주리는 절대다수'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배가 고파서 빵을 달라는 사람들에게 빵을 제공할 수 없는 '정치체제'는 결국 몰락할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결과란 말이다. 우리는 이를 전문용어(?)로 '무능한 정권'이라고 말하고, 경제를 회생시킬 수 없는 정치체제에는 어김없이 몰락이라는 결말로 치닫는다는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프랑스 혁명' 이후에 나폴레옹이 집권했다 몰락한 뒤에 민족주의와 자유주의가 유럽사회를 뒤흔든 것도 주목할 점이다. 구체제를 몰락시킨 '프랑스 혁명군'의 자유, 평등, 박애 사상이 퍼지자 나폴레옹을 몰아낸 각국의 왕정들이 오스트리아 빈에 모여 '프랑스 혁명 이전'으로 되돌리려 했으니, 결국 실패했기 때문이다. 새로 등장한 '시민계급'은 왕족과 귀족들의 '혼인'으로 결속된 과거로의 회귀를 거부한 것이다. 특히, '합스부르크 제국'은 산산히 부서지고 말았다. 그 대신에 각각의 민족끼리 국가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역사는 진행된 것이다. 왜냐면 못 살더라도 '우리 민족끼리'라면 견딜 수 있으니 억압과 압제, 그리고 차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식으로 시민의식이 성장한 것이다. 물론 빵도 빼놓을 수 없고 말이다. 아무리 같은 민족끼리 살더라도 '경제상황'이 악화되면 혼란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처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가 된 시민들은 더이상 딱딱한 '계몽주의'를 탈피하고 '낭만주의'에 물들게 되었다. 한마디로 '이성'보다는 '감성'에 젖어들게 된 것이다. 이런 시기에 위고의 <레 미제라블>, 안델센의 <인어 공주> 등과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낭만주의는 오래 가지 못했다. 곧이어 스탕달의 <적과 흑>,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등과 같은 작품이 나와 가난한 하층민들의 끔찍한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였기 때문이다. 이제 세상은 더이상 높으신 양반들의 세상만이 아니게 되었다. 가난한 서민들의 의식수준이 성장함에 따라 사회문제는 점점 고차원적이고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한편, 바다 건너 미대륙에서는 독립운동이 한창이었다. 영국과 프랑스가 지금의 캐나다를 두고서 벌인 '프랑스 인디언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하자, 전쟁을 하면서 들인 막대한 비용을 '식민지인들'에게 부과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불만을 품은 미국시민들은 '보스턴 차 사건'을 일으키며 영국이 부과한 세금에 강력하게 저항을 했고, 영국은 이를 빌미로 군대를 파견하며 '독립 전쟁'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전쟁 초기에는 영국의 연전연승이었다. 영국은 정규군인데 비해 미국은 '미니트맨'이라 불리는 '1분 대기조' 수준에 불과한 오합지졸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독립전쟁이 시작되었는데도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이들이 많았던 것이 전쟁을 불리하게 만들었다. 왜냐면 미대륙에 정착한 이들은 상당수가 '영국'에서 건너온 이주민이었던 탓에 과도한 과세정책에 불만은 있었지만 아직도 '영국인'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토머스 페인이 쓴 <상식>이라는 글이 널리 퍼지게 되면서 더는 '영국인'이 아니라 '미국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국민이 인정한 권력만이 정당하다. 대륙이 조그만 섬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라는 간단한 핵심내용이 미국시민들에게 큰 울림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조지 워싱턴이라는 걸출한 장군이 군대를 이끌고, 영국에게 딴지 거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프랑스의 전격적인 지원이 도착하면서 영국을 상대로 대등하게 맞서 싸울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게 되었고, 미국은 왕이 아닌 세계 최초의 '공화국'을 건설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독립선언서는 프랑스 시민들을 각성시켜 '프랑스 혁명'으로 이끌고 말았던 것이다.

 

  허나 어렵게 얻은 독립이지만 경제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삶은 어려웠고 자신들을 이끌어주던 영국이 떠난 빈자리는 크게 느껴졌던 것이다. 이에 미국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는데, 미국의 남부는 '목화농장'으로, 북부는 '오대호 운하'를 개척하면서 경제의 활로를 열게 되었다.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남부는 엄청난 수의 흑인노예를 공짜로 부리면서 경제적 부를 쌓게 되었고, 북부는 운하건설로 대서양과 교통이 원활해지면서 풍부한 지하자원을 활용한 공장에서 만든 물품을 대서양 건너 상품을 유통시키게 되면서 경제발전을 모색했던 것이다. 이로써 미국은 경제부흥을 맞이하게 되었지만, 노예로 전락한 '흑인들의 삶'은 비참하기만 했다.

 

  이때 해리엇 비처 스토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수많은 미국 백인들에게 충격을 전해주었다. 경제발전으로 먹고 살만해지니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에 대한 반성이 뒤따르게 된 것이다. 흑인노예 톰의 삶을 통해서 '노예의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적나라하게 고발되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미국사회는 '노예해방'에 관심을 쏟게 되었고, 끝내 링컨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전격적인 '노예해방정책'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허나 이런 결정은 남부 농장주들에겐 큰 타격일 수밖에 없었다. 대농장에서 생산된 목화를 바다 건너 유럽에 값싸게 공급을 하며 엄청난 수익을 올리던 남부 농장주들에겐 거의 공짜로 부려먹을 수 있는 '흑인노예'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북부 공장주들은 노예를 해방시켜 '노동자'로 부리면 일정한 수익을 벌면서 상품소비도 할 것이니 노예해방정책에 그닥 반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미국연방은 '노예해방'을 두고 남북갈등으로 치닫게 되었고, 아주 치열한 내전을 벌이게 되었다. 결과는 북군의 승리였지만, 그 손실은 어마무시했고,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흑인노예'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 오늘날까지도 '인종차별'은 미국사회의 큰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동양에서는 청나라와 영국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산업혁명의 여파로 영국의 '면직산업'이 크게 발흥해서 전세계에 수출을 하며 톡톡히 수익을 내고 있었는데, 청나라에서만은 엄청난 '무역적자'를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름 아니라 영국은 청으로부터 '차'를 수입했고, '면직물'을 수출하려 했는데, 청나라에서는 일찍부터 '면 수공업'이 엄청난 물량을 자랑하고 있던 터라 영국의 면직물이 전혀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영국은 매우 불명예스러운 꼼수를 부리는데 엄청난 무역적자를 메우려고 청나라에 '인도산 아편'을 팔았던 것이다. 이에 청나라는 점점 '아편중독'에 빠져 나라 경제가 파탄이 나서 영국이 들여오는 아편을 금지시키기에 이르렀는데, 영국은 자유로운 무역을 막는다면서 군함을 보내 전쟁을 일으키니, 바로 '아편전쟁'이다. 영국이 승리를 거둔 이후에도, 영국은 마약을 팔아서 얻은 수익의 짭짤함에 몰염치한 짓을 멈추지 못하는데, 그로 인해 청나라는 크나큰 내부 혼란에 빠지게 되니, 바로 '태평천국의 난'이 그것이다. 이런 혼란을 수습하려던 청 조정은 태평천국에게도 패배하고, 외국 열강에게도 침탈을 당하면서 흔들리다 못해 망하기 직전이었다. 오랜 혼란이 이어지며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진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웃한 청나라가 이 지경에 빠졌는데도 조선은 나라 문을 닫아 걸고 알량한 '양반천국'을 지키기 위해 갖은 꼼수를 부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영정조 시대를 '조선의 르네상스'로 맞이하며 반짝 부흥의 기미를 보이기도 했지만, 정조의 이른 죽음으로 어리고 어리석은 임금을 허수아비처럼 내세운 '세도가문들'에 의한 세도정치가 깽판을 쳤기 때문이다. 홍경래의 난을 비롯해서 무수한 농민봉기가 벌어진 것이 바로 이 때다. 때마침 아일랜드 대기근을 부른 '소빙하기'로 인해 조선의 경제도 연이은 흉년으로 백성들의 삶은 절단이 났는데, 매관매직을 일삼은 세도가문들은 탐관오리의 횡포를 진정시키기는커녕 더욱 부추기는 '삼정의 문란'이 60년가 이어졌다.

 

  반면에 일본은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패배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서둘러 '개조작업'에 들어갔다. 때마침 흑선을 몰고 나타난 페리 미제독에 의해 '강제개항의 굴욕'을 당한 일본의 지식인들은 무능한 막부체제를 종식시키고 '일왕정치의 부활'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이에 되살아난 일왕은 막부의 장군과 맞짱을 뜨기 시작하고, 결국 막부가 일왕에게 전권을 위임(?)하게 되면서 일본은 새롭게 태어났다. 이른바 '명치유신(메이지유신)'이다.

 

  우리는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갖가지 사건/사고 들만 달달 외우려 든다. 또 학창시절 시험에 나오는 것들도 사건들의 앞뒤 맥락과 흐름을 파악하는데 집중하다보니, 정작 '그 시절 그 사건'이 왜 일어나고 어떻게 진행된 것인지 알쏭달쏭하게 만들기 일쑤다. 역사는 그런 식으로 공부하면 그냥 '암기과목'에 불과하다. 그리고 일정시간이 지나면 휘발작용에 의해 까맣게 잊혀지고 만다. 그런 역사공부는 하나마나다. 역사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기에 인간이 '무엇'에 이끌리고 '무엇' 때문에 일을 벌이는지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한 법이다. 그리고 그 무엇은 다름아니라 '경제'라는 사실도 깨우쳐야만 한다. 먹고 사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경제력'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는 배부를 때 벌어지지 않는다. 배고픔에 눈이 뒤집혀야 혁명이고 전쟁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미국의 독립운동이나 프랑스의 혁명도 '세금' 때문에 벌어졌다. 먹고 살기도 팍팍한데 세금까지 더 걷어가니 빡친 셈이다. 영국도 무역적자를 매꾸기 위해서 '아편전쟁'을 벌이지 않았는가 말이다. 세도정치기의 '삼정의 문란'도 마찬가지다. 넉넉한 삶에 세금을 올려도 빡치는 마당에 없는 살림에 각종 세금을 강제로 걷어가니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선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경제'를 무너뜨리지 않아야 한다. 정치체제가 무엇이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경제가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다시 말해, 먹고 사는 걱정만 하지 않게 한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 허나 경제를 망가뜨리면 '없던 문제'도 생기기 마련이다. 단순히 '경제지표'를 가지고 장난질을 쳐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서민들이 체감하는 경기가 살아나야 제대로인 것이다. 대한민국이 위기에 빠졌다고 느껴진다면 '경제'를 살펴보면 된다. 그리고 역사책을 들여다보면 답이 나온다. 우리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무엇인지 말이다.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뼈아픈 역사는 더 자주 반복된다는 사실도 유심히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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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세계사 6 - 절대 왕정과 산업 혁명 처음 세계사 시리즈 6
초등역사교사모임 글, 한동훈.이희은 그림, 서울대 뿌리깊은 역사나무 감수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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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사의 변곡점 17~18세기였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전까지는 동서양의 균형추가 동양에 기울어져 있었다. 왜냐면 몽골의 팽창으로 서구세력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고, 칭기즈칸 사후 네 개의 '칸국'으로 나뉘어 서로 균형을 이루며 안정세를 유지하는 경향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물론 곳곳에서 힘 센 나라들이 발흥하여 주변국을 점령해나가는 양상은 멈추지 않았지만, 19세기 '제국주의의 팽창'이 펼쳐지기 전까지는 동양의 안정세가 서양보다 빠르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7세기 서구사회가 '절대왕정시대'로 접어들면서 서양은 비약적인 발전의 디딤돌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서양은 이른바 '문명'을 전세계에 퍼뜨릴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절대왕정은 한마디로 '중앙집권체제'다. 서양 중세시대에는 왕이나 황제가 있었음에도 그 아래 '영주'가 더 큰 힘을 가지기도 했기 때문에 '왕권'이 그닥 강하지 못했다. 하지만 절대왕정시대에는 강력한 왕권을 지닌 '절대군주'가 등장해서 지방의 영주들을 신하로 삼는 중앙집권체제를 갖췄던 것이다. 그 비결은 바로 '관료제'와 '상비군'이었다. 다시 말해 , 왕이 강력한 군대를 직접 보유하고 지방의 영주들을 중앙으로 불러들여 신하로 삼거나 중앙에서 파견한 관료가 직접 왕의 명령대로 지방을 다스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를 가능케 한 사상은 '왕권신수설'이었으며, '중상주의' 정책으로 국가의 부를 증강시켰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왕이 한 나라의 부와 힘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되니 '절대군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유럽의 각 나라마다 절대군주가 등장하면서 자국의 역량을 키워나가니 '계급간의 갈등'이나 '종교적, 사상적 갈등'이 서서히 고조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곳곳에서 무분별한 탄압이 자행되었고, 그로 인해 혁명도 잦아졌다.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시민혁명들 말이다. 특히 이 책에서는 영국의 청교도 혁명과 명예 혁명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으며, 뒤이어 일어난 '산업혁명'도 아울러 소개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이런 혁명들로 인해 서구사회는 '근대'를 맞이하고 발빠르게 경제력을 키울 수 있었고, 그렇게 쌓은 부로 발달시킨 문명을 전세계로 퍼뜨릴 만반의 준비를 하게 된 것이다.

 

  한편, 17세기 중국에서는 바야흐로 '명청교체기'에 접어들었다. 오랜 전란을 마무리하고 마침내 풍신수길이 일본을 통일하자, 그 여세를 몰아 조선침략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임진왜란'이 시작되자 동북아 최대의 격전이 물꼬를 트게 되었다. 마침 명나라는 쇠락해가는 형편이었고, 그 틈을 타 여진족의 누르하치가 후금을 세우게 되었는데, 조선은 일본의 침략을 받아 전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말았던 것이다. 이 소용돌이가 명나라를 참전하게 만들었고, 후금은 이 전쟁을 틈타 힘을 기르더니 급기야 명나라를 치고 만 것이다. 이제 막 '7년전쟁(임진왜란)'을 마친 조선은 명나라의 원군요청(강홍립)에 응했지만, 이미 기세는 기울어져 후금에 항복해버리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이는 광해군이 강홍립 장군에게 내린 밀명으로 밝혀졌고, 이로 인해 조선에서는 '인조반정'이 일어났다. 광해군의 '실리외교'가 인조의 '친명배금' 정책으로 뒤바뀌게 된 것이다.

 

  이에 나라 이름을 '청'으로 고친 청태종은 조선을 침공하는데, 바로 '병자호란'이다. 조선은 급작스런 청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도 못하고 연전연패를 거듭하고 남한산성에서 최후를 맞으며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고 만다. 조선의 항복을 받은 청나라는 다시 명나라를 치려는데 산해관을 지키는 원숭환에 의해 발목이 잡히고 만다. 허나 명나라는 명운이 다했는지 농민반란군 이자성이 청나라보다 먼저 자금성을 차지하고 만다. 원숭환이 간신들의 모함으로 죽고 산해관을 지키던 오삼계는 청나라 군대와 이자성의 군대 사이에서 갈등을 하다 청에 항복하고 청나라 군대와 함께 자금성 탈환에 앞장서고 만다. 이로써 명나라는 망하고 청나라가 중국 대륙을 차지하게 된다.

 

  대륙을 차지하게 된 소수의 '만주족(흩어졌던 여진족을 통합한 뒤에 누르하치가 이름 붙임)'이 다수의 '한족'을 다스리는 것이 힘들 것이라 여기기도 했지만, 청나라는 발빠르게 민생정책을 쏟아내고 경제를 발전시켜서 중국백성들은 안정시켰다. 그리고 민족을 가리지 않고 '인재등용'에 앞장섰기에 만주족이 아니라 한족일지라도 '실력'만 있으면 벼슬에 오를 수 있었기에 청나라의 힘은 점점 커져가기만 했다. 이렇게 강력해진 힘을 바탕으로 '서양의 문물'로 적극적으로 수용한 덕택에 청나라는 명실공히 '대륙의 주인'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런 판국인데도 조선에서는 '북벌론'이 우세했고, 이를 효종이 앞장서서 추진했다. 허나 효종이 일찍 승하하는 바람에 복수할 실력을 키우기도 전에 '추진력'을 잃게 되었고, 도리어 자의대비의 상복을 몇 년 입는 문제로 양반사회가 시끄러워지게 되었다. 이른바 '예송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겠다던 양반들은 실력을 키워 부국강병의 기틀을 마련하는 일보다 고작 '가례(옛중국의 예법)'를 지키는 일에 목숨 걸고 싸우기 바빴던 것이다. 한편, 일본에서는 풍신수길이 죽고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 덕천가강(도쿠가와 이에야스)이 권력을 잡게 되면서 다시 재통합을 이룩하였다. 그리고 수도를 '에도(지금의 도쿄)'로 옮기고 사회를 안정시키니 바야흐로 '에도 막부시대'가 펼쳐지게 되었다.

 

  이렇게 청나라와 일본은 혼란했던 17세기를 나름 안정시키며 국력을 크게 신장시켜 나가는데 반해, 조선은 다시 예전으로 되돌아가는 헛발질을 하고 만다. 이는 전란 이후에 '기득권 세력'이 뒤바뀐 청과 일본과 달리 조선은 왕조가 바뀌지도 않았고, 권력계층도 달리 바뀐 것이 없었던 탓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서양도 중세사회에서 절대왕정을 지나 '근대의 시대'로 접어들고, 중국과 일본도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며 새로워진 세상을 맞이하는데 반해 우리는 큰 변화를 제대로 맞이하지도 못하고 세상 돌아가는 형국도 파악하지 못한 채 18세기를 맞이하고 만다. 우리에게도 아주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영정조 시대'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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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요 강귀찬 - 20년 차 만화가의 밥벌이 생존기
김한조 지음 / 파란의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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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들수록 자본주의사회에 환멸을 느낀다. 부익부빈익빈 현상은 날로 심각해지고 대한민국 1%의 금수저 반열에 오르는 '성공적인 환상'에 찌들어 사는 중장년층들로 넘쳐나기 때문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10대, 20대조차 돈 많이 벌어 넉넉한 노후를 살아가려는 '나약한 꿈'으로 가득하다는 점이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국가가 발벗고 나서서 '노후보장'을 책임져 준다면 좀 더 활기찬 삶을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고 있노라니 그런 생각이 더욱 간절해진다. 만화가로 성공적인 삶을 꿈꾸던 젊은이가 '생존'을 위해 밥벌이 걱정만 하고 사는 중년(40대 가장)이 되어 날마다 창문 너머로 뛰쳐나갈 '엔딩'만 그려대고 있으니 말이다.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온 국민에게 100만 원씩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원해준다면, '아빠+엄마+자녀=300만 원'이라는 생활비가 보장이 되니, 아빠도 꿈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고, 엄마도 생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자녀도 미래를 설계하며 부푼 꿈에 나래를 펼칠 수 있지 않겠느냔 말이다. 책의 내용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기본소득'을 가지고 왈가왈부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대한민국에 만연한 '중년의 위기'로 고통받는 주인공을 보니 슬퍼져서 꺼낸 이야기니까 말이다.

 

  '만화가의 삶'은 고단하다. 몇몇 인기 만화가는 남부럽지 않은 풍요로운 삶을 살지만 대다수의 만화가들은 '성공의 반열'에 오르기 전까지 무일푼의 삶을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단 만화가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점이 위로가 될까 싶지만, '창작의 고통'까지 짊어져야 하는 만화가의 삶은 시작부터 결코 쉽지 않다. 그런데도 지은이는 그런 고통을 20년 간 짊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 만화의 혹독한 생태계에서 생존하기까지 했다. 비록 '완벽 적응'으로 대단한 성공은 하지 못했고, 지금은 '절필선언'까지 해야 하는 처량한 처지에 놓여 있지만, 그렇게 홀로 쌓은 금자탑만큼은 누구도 뭐라 할 수 없을만큼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하긴, 돈벌이도 제대로 하지 못한 '금자탑'이 뭐 대단하다고 폄하할 수도 있을테다. 허나 그렇게 돈벌이도 제대로 못했는데 '20년 외길인생'을 살면서 버틴 것만으로도 대단하지 않느냔 말이다. 이것이 대단한 까닭은 또 있다. 우리네 삶이 대부분 이러하기 때문에 그렇다. 대한민국 90%에 달하는 '흙수저의 삶'이 이렇다. 아무리 힘들어도 버티고 또 버티는 '존버의 삶' 말이다. 언젠가는 대박을 터뜨릴 것이라는 믿음조차 산산히 부서진 '존버의 삶'은 어느새 우리가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일상이 되어 버린 지 오래 되었기에 하는 말이다. 이를 대단하다 추켜세우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혼란의 시대'를 겪게 될 것이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길고 긴 혼돈으로 빠져들어서 말이다.

 

  이젠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대신 '티끌은 모아도 티끌'이라는 말을 쓴다.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사회가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아빠찬스'가 없으면 성공은 꿈도 못 꾼다. 다시 말해, 돈이 없으면 '좋은 돈벌이'도 얻지 못한단 말이다. 그런 기회조차 '돈'이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는 어떤 꿈과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것만 귀띔해주어도 살만한 세상이 될터인데, 그런 귀띔조차 해주는 이가 없다. 왜? 모든 해결방안은 '돈'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대한민국은 오직 '돈'만 꿈꾼다. 돈돈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헬게이트'가 열려버렸기 때문이다.

 

  그럼 그 '지옥문'으로 들어가지 않을 방법은 정녕 없단 말인가? 이 책의 주인공 '강귀찬'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의외의 해결방안이 보일 것이다. 돈 벌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자신의 모습'마저 에피소드 감으로 삼아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존력'을 보란 말이다. 정말 처량하지 않은가 말이다. 오늘날의 중년의 모습이자, 대한민국 가장들의 웃픈 민낯이다. 돈 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릴 것이 없다지만, 정녕 이처럼 '슬픈 자화상'을 그려가며 동정심을 자극할 일인가 말이다. 여기에 '구독'과 '좋아요', 그리고 '많관부' 따위를 준다고 해서 해결될 성 싶은가? 강귀찬의 모습이 바로 대한민국 90%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해결방법이 보인다.

 

  돈이 절실한 이들에겐 돈을 넉넉히 주면 해결된다. 많이 벌면 돈이 간절해지지 않게 된다. 아니 모자라지 않을 정도만 있어도 돈벌이에 영혼을 팔 생각도 하지 않게 된다. '기본소득'이 포퓰리즘이고 망국의 지름길이라 비난할 요량이면, 세금이라도 넉넉히 내란 말이다. 그럼 대한민국 '위기의 가정'이 험난한 삶을 벗어날 수 있는 기금이라도 마련해서 살기 위해 뭐라도 하려는 열심이들에게 '기회의 장'이라도 마련해줄테니 말이다. 이런 '복지정책'이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 금수저, 은수저 들에게 적극적인 과세정책을 밀어붙이란 말이다.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 정당과 정치인에게 적극적인 투표를 해서 '대한민국 90%'가 기운을 낼 수 있게 만들란 말이다. 그런데 현실은 '대한민국 90%'가 금수저와 은수저 들이 내야할 세금을 깍아주는 일에 적극적이다. 저들이 부자가 아니면서 '부자감세'에 한 표를 던지고, 서민들의 등골만 빼먹는 정당과 정치인에게 열광을 한다. 미친 거 아니냔 말이다.

 

  물론, 이 책은 '정치이야기'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내용이다. 그런데 강귀찬의 인생을 보고 있으면, 가난은 게으른 자의 몫이라는 잘못된 인식만 심어주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정작 지은이 자신은 누구 못지 않게 열심히 살아왔으면서 말이다. 오히려 그런 자신을 '실패작'이라 자학을 하며, '실패한 삶'을 글감으로 삼아 '돈벌이'를 하고 있다고 말이다. 그렇게 살아간 20년이 정말 슬프고 비관적이었다면, 감히 이 책을 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역설적으로 자신의 삶이 자랑스러웠을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은 20년간 별볼일 없이 살았지만, 지금도 이렇게 살아있노라고 외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비록 대단히 성공적인 삶을 살지는 못했지만, "나, 아직 안 죽었어요"라고 말이다.

 

  우리는 대부분 '강귀찬'처럼 살아간다. 나 역시 그렇다. 지난 18년간 '리뷰'를 써오면서 별다른 돈벌이도 못했지만, '코로나19'에도 살아남았다. 돈벌이가 궁해져 월 30만 원으로 근근히 버티기도 했지만, 결국 살아남았다. 물론 여전히 돈벌이 안 되는 '리뷰'는 계속 쓸 작정이다. 언젠간 나의 리뷰가 빛을 발해 성공하리라는 기대까지는 안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끊임없이 써갈 작정이다. 이젠 리뷰쓰기가 내 삶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제이펍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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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 중립이 뭐예요? 미래를 여는 키워드 1
장성익 지음, 방상호 그림, 윤순진 감수 / 풀빛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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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한민국은 '기후 악당 국가'라고 한다. 전세계가 기후 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율 1위'를 달성했기 때문이란다. 이제 대한민국도 '기후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만 하는 결정적인 이유인 것이다. 갑자기 뭔소리냐고 되묻는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냐면 '인류 멸망 시나리오'가 착착 진행중인데도 아무런 경각심을 갖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두서 없이 끔찍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얼떨떨한 분들도 많이 계실 것이다. 하지만 '대멸종'이라는 지구역사를 들어본 적이 있다면 반드시 관심을 가져야만 하기에 충격적인 소식부터 전달했던 것이다. 인류는 산업혁명 이후 석탄과 석유 등의 화석연료를 너무 많이 사용했고, 그로 인해 '이산화탄소(CO2)', '메탄(CH4)', '아산화질소(N2O)' 등 온실가스를 마구잡이로 배출한 결과 지구 평균 기온을 1.5도 이상 올려버리고 말았다. 그로 인해 21세기에 전세계는 '기후 변화'로 몸살을 앓았고, 2020년부터는 '기후 위기'라는 말을 쓸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닥치고 말았다.

 

  사실 지구는 더웠다 추웠다를 반복하며 오늘날에 이르렀기에 '기후 변화'는 자연적인 현상임에 틀림없다. 허나 그로 인해 '극심한 변화'가 찾아올 땐 어김없이 '대멸종'이 찾아왔고, 그때마다 생물종 가운데 '최상위계층'을 차지하고 있던 종이 절멸에 이르는 것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고, 이제 '기후 변화'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여섯 번째 대멸종이 찾아올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 대멸종의 대상은 다름 아닌 '인류'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 시기는 점점 앞당겨져서 2050년 즈음이라던 것이 현재는 2035년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를 두고 '기후 위기'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 다른 사실은 '극심한 기후 변화'로 인해 달라지는 것은 지구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크게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 추웠던 곳이 더워지고 비가 내리지 않아 건조했던 지역이 비가 많이 내린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지구 전체적으로 뜨거워진 탓에 극지방의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몇 미터 상승하고, 그로 인해 태풍이나 허리케인이 좀 더 강력해지고 자주 발생하고...뭐 그 정도의 변화만 있을 뿐이다. 문제는 '적응할 시간'보다 더 빠르게 변한다는 것이다. 예년과 다른 기후에 적응해서 '도시' 전체를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옮기면 되고, 해수면이 상승하니 '도시' 전체를 조금 더 고지대로 옮겨 놓으면 되고, 식량생산을 하던 곡창지대도 '다른 곳'으로 옮겨서 재배를 하면 될 일이다. 허나 인간은 그렇게 빠르게 적응할 시간도, 돈도, 그밖의 다른 여력도 없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이를 테면, 한반도 남쪽의 곡창지대는 평균기온 상승과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더는 재배할 수 없는 환경이 될테니, 북쪽의 개마고원...그때쯤이면 고원도 아니고 따뜻해질테니 '개마평원'으로 곡창지대를 옮기면 될 일이다. 문제는 국경과 난민일텐데...그걸 해소하지 못하면 전지구적인 대혼란은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물론 아직까진 '가상 시나리오'일 뿐이다. 지구가 더 뜨거워진다고 해서 꼭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허나 여태까지 '지구의 역사'는 그래왔다. 앞으로 그러지 않을 것이란 '낙관'도 절대 보장 받기 힘들다는 각성이 필요하단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더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안 된다. 지구가 뜨거워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까닭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에너지원'으로 화석연료 사용을 절대적으로 줄여야 한다. 그래서 '대체에너지'가 절실한데, 그건 이미 우리가 확보해놓고 있다. '태양열', '태양광', '바람', '물' 따위의 천연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전환해서 쓰는 것이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대체에너지를 2050년 이전에 완벽하게 대체해서 더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겠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까닭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현재는 어떨까? '대체에너지' 활용을 늘리기는커녕 오히려 '화력발전소'를 추가건설하는 어처구니 없는 짓을 저지르고 있다. 줄여도 시원찮을 마당에 말이다. 그런 이유에서 우리나라를 '기후 악당 국가'라고 부른다고 한다. 온실가스 배출은 더 늘리면서 에너지 소비율은 줄이지 않고 오히려 더 펑펑 쓰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제 대한민국은 기후 위기에 큰 책임을 져야만 한다. 더는 '지속가능한 발전' 따위의 허울 좋은 변명이나 늘어놓을 수 없는 상황을 직면하게 되었다. 이제는 '탄소중립', 다시 말해, 탄소배출량 제로를 실현시켜야 한단 말이다. 어정쩡하게 실현 불확실한 기술 따위로 다른 나라를 현혹하거나, 대한민국의 숲은 경제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파괴하면서 다른 나라에 숲을 조성하는데 열을 올리는 요상한 짓도 그만 두어야 한다. 현재의 대한민국의 기술력과 자본이라면 '탄소중립'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단지, 기업들의 '이윤감소'라는 짐을 떠안기 싫어서 차일피일 미루고, 정치인들도 기업의 눈치를 보며 '탄소중립정책'을 미적거리고 있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오히려 대한민국 국민들은 준비가 다 되어 있는데 말이다.

 

  잠깐의 편리함을 참고 지구를 지키는 일이라면 우리만큼 열심인 사람들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제 '기후 위기'를 넘어 '인류 멸종 위기'에 직면했다는 경고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이제 더 미루는 것은 더 끔찍한 현실을 맞이할 수밖에 없게 만들 것이다. 국민들은 줄일대로 다 줄였으니, 이제 '기업'과 '정부'가 줄여야 한다. 펑펑 쓰는 에너지부터 획기적으로 줄이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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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도 떠나지 않습니다 - 코드블루 현장에 20대 청춘을 바친 중환자실 간호사의 진실한 고백
이라윤 지음 / 한빛비즈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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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호사는 어떤 직업일까? 정작 병원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도 잘 모르겠다. 물론 나는 '비정규직'에 '비의료진'인 탓에 커다란 병원의 부속품처럼 근무를 하고 있으니 그럴 법도 하지만, 의료진들조차 '간호사'에 대한 인식이 나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모르고 있는 것 같기에 하는 말이다. 그저 '백의의 천사가 아니다'라는 사실만 확실히 알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간호복이 '하얀색'에서 벗어난 것은 오래 되었다. 그리고 '치마'를 입은 간호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간호라는 업무가 매우 '고강도'인 까닭에 불편한 복장은 방해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호사들은 대개 '딱딱한 말투'를 쓴다. 간호사 복장을 하고 있다고 해서 천상의 목소리로 응대해줄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 말길 바란다. 그들이 받는 업무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웃는 얼굴'을 하고 있어도 말투는 신경질적인 경우가 많으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길 바란다. 그게 그들을 덜 피곤하게 만들테니 말이다. 그나마 코로나19 이후에는 마스크로 가리고 있어서 웃는 얼굴조차 볼 수 없게 되었다.

 

  이 책을 쓴 글쓴이는 '중환자실'에서 10년을 버텼다고 한다. 중환자실을 비유하자면 '전쟁영화 초반 5분'이 적절할 것이다. 생과 사의 갈릴길에 선 환자를 둘러싸고 수십 명의 의료진이 달려들어 말 한마디 없이 눈빛만으로 각자의 할 일을 하고, 들리는 것이라고는 귀에 거슬리는 의료기구들의 신호음과 의료진들의 거친 숨소리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그 어느때보다 번뜩인다. 누가 뭣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필요한 것이 전달되고, 심지어 다음 상황이 어떻게 벌어질지 예상하고 움직이기도 한다. 간혹 고성이 오가는 경우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얼떨떨하게 바라만 보고 있는 '신입들'의 몫이고, 뒤늦게 '응급상황'을 전달받은 보호자들이 찾아와 살려내라고 소리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코드블루(성인환자) 또는 레드(소아환자)[이런 색깔구분은 병원마다 다른 것 같다] 상황에서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경우에는 온 병원의 의료진들은 그 장소로 우르르 달려갈 뿐이다. 그 뒤에 벌어지는 상황은 아까와 똑같다. 환자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총동원하고, 필요한 경우 보호자의 동의서를 받기 위해 촌각을 다퉈 달려가는 일이 무한히 반복된다. 그런 중환자실에서 10년 넘게 근무를 선다는 것은 '전장터 한복판'에서 버티고 살아남았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무엇이 글쓴이를 그 극한환경에서 버티게 만들었던 걸까? 고액의 연봉일까? 물론 간호사 연봉도 꽤 높은 편이다. 하지만 큰 병원이 아니라면 그리 높은 축에도 끼지 못할 뿐더러, 큰 병원이라면 일의 강도는 가히 '살인'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 돈을 많이 준다는 꾐(?)에 빠져 '중환자실'에서 10년 동안 버티는 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간호업무의 소명감 때문일까? 아픈 환자를 돌보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소명의식'을 부여하는 일은 흔하지만, 소명의식은 각자 마음에서 스스로 우러나오는 것이지 남들이 왈가왈부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기에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시 말해, 너는 간호사 복장을 하고 간호업무라는 '숭고한 일(?)'을 하고 있으니 뛰어난 사명감을 발휘해서 죽은 사람도 살릴 각오로 봉사하라고 그 누구도 '강요'할 수 없단 말이다. 그러니 간호사 복장을 하고 있으니 당연히 '소명의식'도 있을 거라고 강요하지 말란 말이다. 그저 직장인일 뿐이다. 일한 만큼 돈을 벌러 온 사람이란 말이다. 그러니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를 붙잡고 무조건 살려내라고 큰소리 칠 '권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소명의식' 따위를 함부로 떠들지는 말자.

 

  마침맞게 글쓴이도 말한다. 자신은 애초에 꿈이 '간호사'도 아니었고, 우연찮게 '간호업무'를 직업으로 삼게 되었으며, 10년이 넘은 지금도 '천직'이라는 생각따위는 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한마디로 하는 일이 힘들어서 지금 당장이라도 '그 자리'를 떠난다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말이다. 그런데도 이 책의 제목이 <저는 오늘도 떠나지 않습니다>란다. 천직도 아니고, 소명의식도 없는 간호사가 그 힘들다는 '중환자실'을 떠나지 않겠단다. 심지어 '코로나19'로 병상의 환자는 넘쳐나고 업무강도는 한계를 초월했을 때도 그저 버텨냈을 뿐이란다. 물론 힘듦에 지쳐 '후회' 한 적도 많다고 하지만, 만약 그랬으면 '지금의 나'로 존재할 수 없었을 거라고, 다른 일을 하고 있었더라면 '단단해진 나의 모습'에 만족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 인생을 잘 살아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만족감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토록 단단해진 간호사를 힘들게 하는 일은 이제 없을까? 아니다. 여전히 많다. 바로 인성이 글러 먹은 모자란 사람들, 전문용어로 '진상들'이 있기 때문이다. 비의료진인 나조차도 병원에서 일하다보면 이런 '진상들' 때문엔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요즘 말끝마다 "감사합니다"라고 한다. '괄호'를 붙여서 말이다. 이를 테면, 세 가지 유형으로 써먹곤 한다. 첫 번째는 "(진상 부릴만큼 부린 것 같은데 이제 좀 꺼져 주시면) 감사합니다", 두 번째는 "(진상을 요만큼만 부려주셨으니) 너무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머! 진상을 많이 부릴 줄 알았는데 하나도 부리지 않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용도로 써먹고 있단 말이다. 세상에서 박멸해야 할 것은 해충 뿐만 아니라 바로 이런 '진상들'이기 때문이다. 글쓴이도 오죽했으면 책의 첫머리를 바로 이런 '진상들의 사례'로 장식했을까?

 

  그렇다면 진상들을 애초부터 박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고객'이라는 말부터 없앴으면 한다. 바로 '손님은 왕이다'라는 사고방식이 문제인데, 언제까지 손님은 '무한권리'를 누리고, 직원은 '무한의무'만 져야 한단 말이냔 말이다. 병원을 찾아온 내원객들의 '민원업무'만 해도 정말 산처럼 많다. 해결해도 끝나지 않는 것이 '민원업무'의 특징이다. 하루종일 쏟아지는 내원객들의 불평불만은 어처구니 없는 것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면 단박에 이해가 갈 것이다. 병원은 환자들의 안전을 위해 '보호자 1인'만 허용하곤 한다. 병실이 좁기도 하고 외래환자의 경우에도 너무 많은 내원객으로 인해 불미스런 일을 겪을 수도 있으니 불필요한 병원방문으로 병원업무를 마비시키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환자 1명에 보호자 2~3명이 찾아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면서 '자기 환자'는 특별하니(?) 허락해달라고 떼를 쓰곤 한다. 그래도 규정상 그럴 수 없으니 '보호자 1인'만 허용하겠다고 하면, 그때부터 어거지를 쓰기 시작한다. "너희가 뭔데 병원출입을 하라 마라야, 언제부터 병원이 이딴식으로 불친절했어? 아픈 환자를 상대로 장사를 하니 환자를 봉으로 아는 거야 뭐야? 니들이 늙은 환자들 상대로 '과잉진료' 청구해서 병원비 장난 아니게 비싼 게 하루이틀이냐구, 내가 니들 속셈 모를 줄 알아. 환자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기만 해봐, 당장 고소할테니. 감히 니까짓것들이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데, 오호라~ 아주 잘 걸렸어. 니들 밥줄 내가 끊어지게 만들어줄테니 각오하고 있으라고, 알았으면 당장 내가 원하는대로 다 해달라고!!" 이 정도의 언행은 그나마 '보통수준'이다. 더 심한 경우도 많고, 다 들리는 혼잣말로 '육두문자'를 날리는(!) 경우는 너무 흔해서 말할 거리도 못된다.

 

  왜 지들만 '왕'일까? 한낱 백화점 상술에서 비롯되었다는 '손님은 왕'이다라는 것이 어찌하여 저들의 '신념'으로 승화되었냔 말이다. 입장 바꾸어 보란 말이다. 아픈 환자를 치료하고 싶은 의료진이 '환자'에게 집중하는 일은 당연한 것이다. 근데 보호자들이 감놔라 배놔라 '간섭'을 하면 집중을 할 수가 없다. 6인실 병동에 보호자가 열댓 명이 진을 치고, 병실로도 모자라 복도까지 점거하고 있으면 의료진이 어떻게 원활히 진료를 보겠느냔 말이다. 몰지각한 보호자들은 '환자이송'을 위해 마련한 엘리베이터까지 차지하고서 긴급한 상황에 오도가도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못들어오게 하는 것이고 제한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하나쯤이야'라는 식으로 다 알겠으니 나만 좀 '예외'로 해주세요라면서 생떼를 쓸 수 있느냔 말이다. 지킬 건 지켜야 '손님대접'도 제대로 받는 법이다. 그러니 '손님이고 지랄이고 누구도 왕이 아니다'라는 상식이 지켜졌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끝으로 자기 삶에 열심인 이들을 응원하려 한다. 이 책이 '간호사'에 관한 에피소드로 가득할지언정 간호사를 지망하는 이들만을 대상으로 쓴 책은 아닐 것이다. 힘들고 고된 간호업무를 통해서 인생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글쓴이를 응원함과 동시에 각자 자신의 일에서 쏠쏠한 돈맛과 일하는 보람을 얻고 있는 전세계의 모든 이들을 응원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나뿐인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흔들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힘들고 지쳐서 마냥 쉬고만 싶을 때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다만 포기하지만 않으면 언젠가 '만족'이라는 결승선을 넘어서게 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차피 인생은 포기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다음 생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힘들 땐 잠시 쉬어도 좋다. 하지만 당신을 응원하는 이가 분명히 있을 거라는 사실만은 기억해주길 바란다. 난 오늘도 이세상 모든 열심이들을 응원할테니 말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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