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오늘도 떠나지 않습니다 - 코드블루 현장에 20대 청춘을 바친 중환자실 간호사의 진실한 고백
이라윤 지음 / 한빛비즈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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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호사는 어떤 직업일까? 정작 병원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도 잘 모르겠다. 물론 나는 '비정규직'에 '비의료진'인 탓에 커다란 병원의 부속품처럼 근무를 하고 있으니 그럴 법도 하지만, 의료진들조차 '간호사'에 대한 인식이 나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모르고 있는 것 같기에 하는 말이다. 그저 '백의의 천사가 아니다'라는 사실만 확실히 알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간호복이 '하얀색'에서 벗어난 것은 오래 되었다. 그리고 '치마'를 입은 간호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간호라는 업무가 매우 '고강도'인 까닭에 불편한 복장은 방해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간호사들은 대개 '딱딱한 말투'를 쓴다. 간호사 복장을 하고 있다고 해서 천상의 목소리로 응대해줄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 말길 바란다. 그들이 받는 업무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웃는 얼굴'을 하고 있어도 말투는 신경질적인 경우가 많으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길 바란다. 그게 그들을 덜 피곤하게 만들테니 말이다. 그나마 코로나19 이후에는 마스크로 가리고 있어서 웃는 얼굴조차 볼 수 없게 되었다.

 

  이 책을 쓴 글쓴이는 '중환자실'에서 10년을 버텼다고 한다. 중환자실을 비유하자면 '전쟁영화 초반 5분'이 적절할 것이다. 생과 사의 갈릴길에 선 환자를 둘러싸고 수십 명의 의료진이 달려들어 말 한마디 없이 눈빛만으로 각자의 할 일을 하고, 들리는 것이라고는 귀에 거슬리는 의료기구들의 신호음과 의료진들의 거친 숨소리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그 어느때보다 번뜩인다. 누가 뭣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필요한 것이 전달되고, 심지어 다음 상황이 어떻게 벌어질지 예상하고 움직이기도 한다. 간혹 고성이 오가는 경우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얼떨떨하게 바라만 보고 있는 '신입들'의 몫이고, 뒤늦게 '응급상황'을 전달받은 보호자들이 찾아와 살려내라고 소리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코드블루(성인환자) 또는 레드(소아환자)[이런 색깔구분은 병원마다 다른 것 같다] 상황에서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경우에는 온 병원의 의료진들은 그 장소로 우르르 달려갈 뿐이다. 그 뒤에 벌어지는 상황은 아까와 똑같다. 환자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총동원하고, 필요한 경우 보호자의 동의서를 받기 위해 촌각을 다퉈 달려가는 일이 무한히 반복된다. 그런 중환자실에서 10년 넘게 근무를 선다는 것은 '전장터 한복판'에서 버티고 살아남았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무엇이 글쓴이를 그 극한환경에서 버티게 만들었던 걸까? 고액의 연봉일까? 물론 간호사 연봉도 꽤 높은 편이다. 하지만 큰 병원이 아니라면 그리 높은 축에도 끼지 못할 뿐더러, 큰 병원이라면 일의 강도는 가히 '살인'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니 돈을 많이 준다는 꾐(?)에 빠져 '중환자실'에서 10년 동안 버티는 이는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간호업무의 소명감 때문일까? 아픈 환자를 돌보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소명의식'을 부여하는 일은 흔하지만, 소명의식은 각자 마음에서 스스로 우러나오는 것이지 남들이 왈가왈부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기에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시 말해, 너는 간호사 복장을 하고 간호업무라는 '숭고한 일(?)'을 하고 있으니 뛰어난 사명감을 발휘해서 죽은 사람도 살릴 각오로 봉사하라고 그 누구도 '강요'할 수 없단 말이다. 그러니 간호사 복장을 하고 있으니 당연히 '소명의식'도 있을 거라고 강요하지 말란 말이다. 그저 직장인일 뿐이다. 일한 만큼 돈을 벌러 온 사람이란 말이다. 그러니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를 붙잡고 무조건 살려내라고 큰소리 칠 '권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소명의식' 따위를 함부로 떠들지는 말자.

 

  마침맞게 글쓴이도 말한다. 자신은 애초에 꿈이 '간호사'도 아니었고, 우연찮게 '간호업무'를 직업으로 삼게 되었으며, 10년이 넘은 지금도 '천직'이라는 생각따위는 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한마디로 하는 일이 힘들어서 지금 당장이라도 '그 자리'를 떠난다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말이다. 그런데도 이 책의 제목이 <저는 오늘도 떠나지 않습니다>란다. 천직도 아니고, 소명의식도 없는 간호사가 그 힘들다는 '중환자실'을 떠나지 않겠단다. 심지어 '코로나19'로 병상의 환자는 넘쳐나고 업무강도는 한계를 초월했을 때도 그저 버텨냈을 뿐이란다. 물론 힘듦에 지쳐 '후회' 한 적도 많다고 하지만, 만약 그랬으면 '지금의 나'로 존재할 수 없었을 거라고, 다른 일을 하고 있었더라면 '단단해진 나의 모습'에 만족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 인생을 잘 살아온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만족감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토록 단단해진 간호사를 힘들게 하는 일은 이제 없을까? 아니다. 여전히 많다. 바로 인성이 글러 먹은 모자란 사람들, 전문용어로 '진상들'이 있기 때문이다. 비의료진인 나조차도 병원에서 일하다보면 이런 '진상들' 때문엔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요즘 말끝마다 "감사합니다"라고 한다. '괄호'를 붙여서 말이다. 이를 테면, 세 가지 유형으로 써먹곤 한다. 첫 번째는 "(진상 부릴만큼 부린 것 같은데 이제 좀 꺼져 주시면) 감사합니다", 두 번째는 "(진상을 요만큼만 부려주셨으니) 너무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머! 진상을 많이 부릴 줄 알았는데 하나도 부리지 않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용도로 써먹고 있단 말이다. 세상에서 박멸해야 할 것은 해충 뿐만 아니라 바로 이런 '진상들'이기 때문이다. 글쓴이도 오죽했으면 책의 첫머리를 바로 이런 '진상들의 사례'로 장식했을까?

 

  그렇다면 진상들을 애초부터 박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고객'이라는 말부터 없앴으면 한다. 바로 '손님은 왕이다'라는 사고방식이 문제인데, 언제까지 손님은 '무한권리'를 누리고, 직원은 '무한의무'만 져야 한단 말이냔 말이다. 병원을 찾아온 내원객들의 '민원업무'만 해도 정말 산처럼 많다. 해결해도 끝나지 않는 것이 '민원업무'의 특징이다. 하루종일 쏟아지는 내원객들의 불평불만은 어처구니 없는 것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면 단박에 이해가 갈 것이다. 병원은 환자들의 안전을 위해 '보호자 1인'만 허용하곤 한다. 병실이 좁기도 하고 외래환자의 경우에도 너무 많은 내원객으로 인해 불미스런 일을 겪을 수도 있으니 불필요한 병원방문으로 병원업무를 마비시키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환자 1명에 보호자 2~3명이 찾아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면서 '자기 환자'는 특별하니(?) 허락해달라고 떼를 쓰곤 한다. 그래도 규정상 그럴 수 없으니 '보호자 1인'만 허용하겠다고 하면, 그때부터 어거지를 쓰기 시작한다. "너희가 뭔데 병원출입을 하라 마라야, 언제부터 병원이 이딴식으로 불친절했어? 아픈 환자를 상대로 장사를 하니 환자를 봉으로 아는 거야 뭐야? 니들이 늙은 환자들 상대로 '과잉진료' 청구해서 병원비 장난 아니게 비싼 게 하루이틀이냐구, 내가 니들 속셈 모를 줄 알아. 환자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기만 해봐, 당장 고소할테니. 감히 니까짓것들이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데, 오호라~ 아주 잘 걸렸어. 니들 밥줄 내가 끊어지게 만들어줄테니 각오하고 있으라고, 알았으면 당장 내가 원하는대로 다 해달라고!!" 이 정도의 언행은 그나마 '보통수준'이다. 더 심한 경우도 많고, 다 들리는 혼잣말로 '육두문자'를 날리는(!) 경우는 너무 흔해서 말할 거리도 못된다.

 

  왜 지들만 '왕'일까? 한낱 백화점 상술에서 비롯되었다는 '손님은 왕'이다라는 것이 어찌하여 저들의 '신념'으로 승화되었냔 말이다. 입장 바꾸어 보란 말이다. 아픈 환자를 치료하고 싶은 의료진이 '환자'에게 집중하는 일은 당연한 것이다. 근데 보호자들이 감놔라 배놔라 '간섭'을 하면 집중을 할 수가 없다. 6인실 병동에 보호자가 열댓 명이 진을 치고, 병실로도 모자라 복도까지 점거하고 있으면 의료진이 어떻게 원활히 진료를 보겠느냔 말이다. 몰지각한 보호자들은 '환자이송'을 위해 마련한 엘리베이터까지 차지하고서 긴급한 상황에 오도가도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못들어오게 하는 것이고 제한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하나쯤이야'라는 식으로 다 알겠으니 나만 좀 '예외'로 해주세요라면서 생떼를 쓸 수 있느냔 말이다. 지킬 건 지켜야 '손님대접'도 제대로 받는 법이다. 그러니 '손님이고 지랄이고 누구도 왕이 아니다'라는 상식이 지켜졌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끝으로 자기 삶에 열심인 이들을 응원하려 한다. 이 책이 '간호사'에 관한 에피소드로 가득할지언정 간호사를 지망하는 이들만을 대상으로 쓴 책은 아닐 것이다. 힘들고 고된 간호업무를 통해서 인생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는 글쓴이를 응원함과 동시에 각자 자신의 일에서 쏠쏠한 돈맛과 일하는 보람을 얻고 있는 전세계의 모든 이들을 응원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나뿐인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흔들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힘들고 지쳐서 마냥 쉬고만 싶을 때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다만 포기하지만 않으면 언젠가 '만족'이라는 결승선을 넘어서게 될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어차피 인생은 포기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다음 생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힘들 땐 잠시 쉬어도 좋다. 하지만 당신을 응원하는 이가 분명히 있을 거라는 사실만은 기억해주길 바란다. 난 오늘도 이세상 모든 열심이들을 응원할테니 말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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