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플 세븐 킬러 시리즈 3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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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XXXVI / 알에이치코리아(RHK) 1번째 리뷰] 이사카 고타로(伊板幸太郞)는 일본추리작가란다. 물론 난 처음 접한 추리작가다. 내가 주로 읽었던 추리소설가들은 대개 '고전작가'에 속한 탓이다. 애드가 앨런 포, 코난 도일, 아가사 크리스티, 모리스 르 블랑, 앨러리 퀸 등등 말이다. 그나마 일본추리소설가로는 '에도가와 란포' 정도가 있는데, 이마저도 옛날 분이긴 마찬가지다. 이유는 한 가지다. 근래의 추리소설들이 그닥 내 취향이 아니었던 탓이다. 나름 추리에 '반전'을 주고, '교묘한 살인사건'을 일으켜 관심을 일으켜 세우긴 하지만, '추리소설의 맛'은 뭐니뭐니해도 독자로 하여금 범인을 잡으려고 '단서'를 쫓아 한발 한발 다가가듯 쪼이는 맛이 최고인데, 고전추리소설에 비해서 최근의 추리소설은 '기발함'에만 초점을 맞춘 탓인지 고전추리소설보다 그 맛이 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그 유명하다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도 읽지 않았다. 읽으면 왠지 기대이하일 것만 같아서 말이다.

뭐, 조만간 읽게 될 것 같다. 그의 책을 몇 권 구했기 때문이다. 암튼 <트리플 세븐>이라는 추리소설을 읽었다. 헌데 읽다보니 '킬러 시리즈'라는 문구가 보였다. 과연 읽어보니 '킬러들'이 수두룩하게 등장했다. 킬러들에 대해선 강지영 작가의 <살인자의 쇼핑몰>에서 제대로 접해보긴 했다. '쇼핑몰'에서 등장한 킬러들은 전문업자라는 느낌보다 '용병'에 가깝게 느껴졌지만, 요즘에 등장하는 '킬러'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사체들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청소부'와 함께 한다는 점에서 그런 비슷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하긴 옛날과 다르게 요즘엔 '신원정보'가 너무도 자세하게 들통나기 때문에 공공장소 뿐 아니라 그 어디에서도 '사체'가 나타나면 금세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니, 킬러들도 활동하기가 난감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과거의 킬러들은 그야말로 '피바다'를 만들어놓아도 나몰라라하고 '현장'에서 내빼버리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그런 무책임(?)한 킬러들은 자격이 없다. 깔끔한 뒷처리를 도맡아서 하는 '청소부'와 함께 해야 미스테리가 완성된다.

어쨌든 <트리플 세븐>에서는 수많은 킬러들이 등장한다. 전설급으로는 피해자의 어깨를 탈골시킨 뒤에 꼼짝달싹할 수 없게 꽁꽁 묶은 뒤에 샌드백을 치듯 피해자가 괴로워하는 광경과 비명소리를 즐기면서 살해하는 킬러2인조가 있고, 피해자를 살아있는 채로 묶어놓은 뒤에 생선회를 떠내듯이 살점을 벗겨서 온몸을 시뻘건 살덩이로 만들어 죽이는 살인마가 있다. 그 아래급으로 '바람총'을 이용하는 꽃미남꽃미녀로 구성된 '6인조 킬러'가 있다. 일본에선 '총기'를 소지하는 것이 불법이기 때문에 총을 이용해서 살해하는 것이 쉽지는 않단다. 그래서 입으로 바람을 불어 '독침'을 날려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마비시킨 뒤에 죽을 때까지 축구공을 차고 놀듯 피해자를 두들겨팬 뒤에 죽이는 미치광이 살인마들이다. 거기다 복권에 당첨된 듯 갑작스레 '갑부'가 되어서 돈을 물 쓰듯 써버리는 악취미를 가진 '폭탄제조범 2인조'도 있다. 그리고 청소부 역할도 하는 2인조 여자킬러가 등장하는데, 살해하는 방법이 독특하다. '청소부'답게 호텔메이드로 분장을 하고서 피해자를 침대시트로 뒤집어 씌운 다음에 목을 비틀어 죽인 뒤에 그대로 사체를 청소용 트레이에 담아 깔끔하게 처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주 '불운한 킬러'가 하나 있다. 가는 곳마다 '사건사고'를 일으키기도 하고, '사건사고'에 휘말려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부지기수다. 그럴 정도로 재수가 없는 킬러인데도, 그는 운 좋게 끝까지 살아남는다.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재수탱이가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절체절명의 현장속에서도 끝끝내 살아남곤 한다. 과연 이 킬러는 재수가 없는 걸까? 억수로 운이 좋은 걸까?

책의 제목이 <트리플 세븐>이라 '도박장'이나 '카지노'가 주요 배경일 것이라 짐작했는데, 그런 것하고는 일절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살해사건의 '복선'에 해당하는 주요 소재이니 그냥 알아만 두면 읽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말그대로 '7'이 연속으로 3개가 나타난다는 뜻으로 카지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슬롯머신'의 잭팟(큰 상금을 얻게 되는 것)을 터뜨리는 것을 일컫는다. 슬롯머신이 뭔지 모르는 독자라면 책의 앞표지를 보면 된다. 오른쪽의 손잡이(레버)를 아래로 잡아당기면 앞으로 보이는 가운데 3개의 회전판이 빠르게 돌아가고 아래에 있는 빨간색 버튼을 누를 때마다 회전판이 한 개씩 멈추고, '같은 그림'을 짝짓게 되면 그에 해당하는 상금이 쏟아지는 게임기다. 그 가운데 '7'이라는 숫자가 가로로 세 개가 짝지어지면 잭팟이라는 글자와 함께 요란한 사이렌이 울리면서 엄청난 액수의 동전이 아래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게 된다. 그런데 책 속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 장난감 슬롯머신을 가지고 노는데, 단 한 번도 '7'이라는 숫자가 단 한 개도 나온 적이 없다며 자기만큼 불운한 사람도 없을 거라도 속상해 했단다. 그 사람의 아버지는 속상해하는 마음을 달래주려고 "이런 곳에 운을 쓸 필요 없어. 더 중요한 순간에 운이 따를 거야. 걱정하지마"라고 답해주었단다.

흔히, 평생에 3번의 행운이 찾아온다고들 한다. 그 감당 못할 행운이 '초년'에 올지, '중년'에 올지, '장년'이나 '노년', 언제 찾아올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단다. 중요한 것은 그 3번이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가정한다면, 여러분은 감당할 수조차 없는 큰 행운이 언제 찾아오면 좋다고 생각하는가? 기왕에 찾아온다면 '초년'에 3번이 한꺼번에 찾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왜냐면 그래야 중년 이후에도 그 행운을 오래도록 누릴 수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최고의 행운'은 건강하게 오래도록 부족함 없이 평온하게 살다 죽는 것이었다. 첫 번째 행운은 '건강'이었고, 두 번째 행운은 '장수'였으며, 마지막 행운은 '돈 걱정'하지 않고 사는 여유로움이었기 때문이다. 굳이 부자일 필요도 없다. 몸만 건강하다면 돈은 필요한 만큼 얼마든지 벌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모아놓은 돈을 다 쓸 때까지 죽지 않고 오래 사는 것도 큰 행운이고, '돈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사건사고에 휘말리지 않고 잔잔하게 여생을 누리는 것이 마지막 행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행운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고서 사람을 죽이는 '킬러 소설'에서 행운을 운운하는 것이 살짝 의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는 사람을 잔혹하게 죽이는 방법을 자세하게 나열하는 대목에서 눈쌀이 찌푸려지곤 했다. '나쁜놈'을 '죽어 마땅한 놈'으로 만들려는 작가의 의도는 알겠는데, 굳이 그렇게나 잔혹한 방법을 '자세하게' 묘사할 필요까지 있었을까? 어린 독자들의 '모방범죄'의 가능성을 따질 필요도 없이 일반 독자들의 '정신건강'에 해롭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킬러들은 '살해목적' 따위에는 하등 관심이 없다는 식으로 사람들을 죽여나갈 뿐이라서 더욱 반감이 들곤 했다. 왜 죽는지도 모른 채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는 것과 똑같지 않냔 말이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탁월한 점은 '호텔'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살기 위해 탈출한다는 스토리 전개였다.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면서도 끝내 살아남아 그때의 '무용담'을 별것 아닌 것처럼 나레이션을 읊조리는 장면을 상상할 때는 내 몸속에 얼마 없는 근육세포에 전율이 일 정도였다. 잔혹한 킬러들에게 쫓기는 주인공이 엘리베이터와 계단을 통해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말이다. 결국 1층 로비를 통해서 '단 하나 뿐인 로비 게이트'로 나가 탈출하면 되는데, 그게 그리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백미를 꼽으라면 바로 이런 흥미진진한 '탈주장면'이었다.

간만에 읽은 '추리소설' 덕분에 내 몸속 호르몬들이 요동을 치고 있다. 조만간 '또 다른 추리소설'을 꺼내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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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다가, 뭉클 - 매일이 특별해지는 순간의 기록
이기주 지음 / 터닝페이지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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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XXXV / 터닝페이지 1번째 리뷰] 시, 에세이를 그리 즐겨 읽는 편은 아니다. 그보다는 긴 '산문'을 즐겨 읽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소설도 단편보다는 긴 호흡이 필요한 '장편소설'을 즐긴다. 특별한 까닭은 없다. 그저 '한 번 꽂히면, 쭉 가는 길'을 선호하는 개인적인 취향일 따름이다. 그래서 '에세이'도 오랫만에 읽는다. 그렇지만 이 책도 '그림'이 첨가되지 않았다면 진득하니 읽지 못했을 거다. 수많은 에세이 모음집이 그렇듯이 대개 '비슷비슷한 감상이 나열되는 공식(?)'이 반복되는 일종의 패턴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공식(!)'이 발견되는 순간 에세이 책을 덮어버리곤 한다. 그런데 이 책은 달랐다. 한 폭의 '그림엽서'가 연상되는 거리의 풍경이 담긴 수채화가 내 시선을 사로 잡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림 한장 한장에 대한 '감상'을 수필로 남겨 놓은 이 책에 그만..흠뻑 젖어들고 말았다. 어느덧 계절은 '가을'이 되었으니 말이다.

작가 이기주는 '그림 그리는 너튜버'로도 활동을 하는 모양이다. 이 책 <그리다가, 뭉클>에도 그림 그리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조목조목 나열되어 있고, 작가도 은근슬쩍 자신의 너튜브 활동담을 자랑스럽게 늘어놓고 있는 걸 보니 말이다. 비아냥거리는 것이 절대 아니다. 난, '그림, 잘 그리는 재주'를 아주 존경하기 때문이다. 나도 글을 쓰다보면 간혹 '이건, 글이 아니라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이 더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백에다가 깨적깨적 서툰 솜씨로 그림을 그려넣어본 적도 있지만, 언제나 '실패'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발꼬락'으로 그려도 이보다는 잘 그리겠다는 수준보다 한참 떨어지리는지라 두 번 다시 그런 '무모한 시도'는 하질 않았다. 그래도 여러 번 시도를 하면 잘 할 수도 있다는 조언을 십분 받아들여 노력도 해보려 했으나, 번번이 발꼬락보다 못생긴 그림을 그려놓고 후회하길 반복하니 더는 그릴 용기조차 생기질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글보다 그림에 더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듬뿍 담아서 말이다.

그림 실력이 신통치 못하니, 한때는 '사진'을 찍는 연습을 해본 적도 있다. 그런데 이번엔 너무 '솔직하게' 찍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맘에 쏙 드는 '피사체'를 매번 찾아다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고, 때와 장소에 따라서 '노출'이나 '각도와 구도'를 일일이 사진기에 '입력'해야만 좋은 사진이 찍힌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슬슬 귀차니즘이 발동하더니 결국 '자동카메라'에 의지하게 되었고,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또다시 분류하고 거르는 작업도 해야 해서, 결국엔 그마저도 때려치고 말았다. 결정적으로 '사진'에는 '상상'을 담을 수 있는 여지가 남겨져 있지 않아 매번 불편을 겪다보니 멀리하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은 그저 '글'에 몰두하고 있다. 결국에는 '읽고, 쓰는 것'이 가장 편한 방법이었던 셈이다. 그런 까닭에 머릿속에 떠오른 영감을 붓이나 펜으로 쓱쓱 그려내는 실력을 갖춘 사람을 정말 부러워하게 되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이 반가웠던 모양이다. 책을 접하자마자 곧바로 끝까지 읽어나가고 말았다.

그리고 작가의 연배가 '나'와 비슷하다는 것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림감상에 해당하는 글의 내용이 하나같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정확한 출처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고 읽은 적이 있는듯한 낯익음이 물씬 풍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는 재주'를 바탕으로 인생을 철학적으로 논하는 담론들이 그 옛날 TV프로그램 중에 하나였던 <사랑방중계>를 연상시켜서 참 좋았다. 당시의 난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에 밤11시쯤에 시작하던 그 프로그램을 매번 시청할 수는 없었지만, 어린 나의 눈에는 어른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꽤나 철학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작 철학이 뭔지도 모르던 나이에 말이다.

이 책에서 그런 느낌이 나는 대목은 '외워 그리는 그림'과 '빛은 어둠으로 그린다'였다. 인생을 살다보니 '대충' 살아지기도 했고, 터무니 없는 실수를 해서 '망신살'이 뻗치던 적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자신을 채찍질하며 열심히 살아야지, 물러터진 정신력으로 어찌 이 험난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냐고 다그치는 자신을 발견한 적이 많았다. 나이가 어릴 적에는 더욱더 많이 그랬고 말이다. 물론 자발적인 다그침보다는 주위의 책망 때문에 그랬던 적이 많았다. 참으로 쪽팔렸다. 그런데 마흔살이 넘으니 그럴 필요가 있겠느냔 생각이 부쩍 들었다. 앞으로 '살 날'보다 이제까지 '살아온 나날들'이 더 많아지는 나이가 되니, 사알짝 '내려놓기'를 해도 괜찮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인생 뭐 있어?'라는 철학적 질문에 나름의 답이라고나 할까. 살다보면 '대충' 살아도 괜찮을 때가 더 많고, 실수를 해야 '인간미'가 넘치는 것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매번 성공하는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삶인지 느낄 때쯤에야 겨우 깨우친 '나만의 철학'이었던 것이다.

이런 철학적 깨달음과 비슷한 것이 바로 '외워 그리는 그림'이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일수록 '순간포착'을 잘 해서 '찰나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 천재적인 재주를 지닌 것이 아니라 늘상 그리던 것을 외워서 이 화폭, 저 화폭에 '대충' 찌끄려놓고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게 만들면 훌륭한 작품이 완성된다는 이야기 말이다. 또한, '빛은 어둠으로 그린다'는 것도 하얀 도화지에 새하얀 빛을 그릴 때는 엉뚱하게도 '그림자'나 '음영'을 그려넣는 것으로 빛을 표현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 인생을 살면서 '화려한 성공'을 실현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바로 '평범한 실수'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림 뿐만 아니라 '위인전'에서도 자주 나오는 단골 수법 아닌가 말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수많은 환자들의 생명을 구한 '페니실린 항생제'가 사실은 실수로 '푸른곰팡이'를 배양했기 때문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인생을 살다보면 '어둠'만 가득한 우울한 나날을 보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지만, 그 우울함을 '음영'으로 삼아 주위를 더 밝게 표현할 수만 있다면 쥐구멍에 볕들듯이 희망찬 '밝음'을 그려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누구나 살면서 나름의 철학을 신념으로 삼는다. 하지만 대개는 금방 잊고 다시 원상복구되는 일상을 반복하며 산다. 누구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듯이 '화려한 성공'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어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한몸에 받겠지만, 그로 인해서 내가 슬퍼할 까닭은 절대 없다. 부러우면 지는 것이기 때문이 아니다. 부러운 건, 그냥 '부러울 뿐'이다. 딴에는 조금쯤 '부러워'하며 살아가는 것이 내가 부족한 '욕심'을 심어주고, 그 욕심이 '내 삶의 활력소'가 되기도 하니 마다할 까닭도 없다. 다만 '시샘'할 필요는 없다. 남이 가진 걸 못 가졌다고 배 아파하면, 결국 '내 배'만 아플 뿐이다. 그러니 결국은 '자기만족'을 하며 살아가면 그게 최고의 행복인 셈이다. 살짝 부족한 듯 살아야 행복하다고 믿는다. 그게 내 정신건강에도 좋으니까 말이다. 다만, 한 가지! 살짝 아니라 많이 부족한 '내 그림실력' 때문에 이기주 작가가 부러운 것은 '인정'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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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수의사, 희망을 처방합니다
린리신 지음, 차혜정 옮김, 홍성현 감수 / 모모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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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XXXIV / 모모 1번째 리뷰] <낭만 닥터 김사부>, <슬기로운 의사 생활> 같은 '의학드라마'를 즐겨 봤다. 물론 그 이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들도 곧잘 보았지만 그다지 감흥이 없었는데 '김사부'와 '슬기로운' 시리즈는 판이하게 달라서 봤던 편이다. 이전의 의학드라마는 그저 '의술'을 펼치는, 어찌 보면 '잘난척하는 엘리트 집단의 광기(?)'라고도 할 수 있는 무거운 주제를 풀어냈다면, '김사부'와 '슬기로운' 의학드라마는 '인술'을 보여주는 의학드라마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의학이라는 '어려움'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기보다는 의사도 결국 '사람'이라는 '따뜻함'이 전달되는 메시지가 좋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하얀거탑>류의 의학드라마보다는 <낭만 닥터>류의 김사부에게 반해버린 열렬한 팬이다. 그런 탓에 이 책의 제목이 <낭만 수의사>라는 것에 먼저 호감이 갔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대만 작가가 풀어내는 '의학드라마'는 꽤나 낯설게 다가왔다. 기대했던 '낭만 닥터 김사부' 같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슬기로운 의사들'처럼 끈끈한 우정을 과시하는 동기 의사들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보다는 '중국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코믹 멜로'가 연상이 되어 내가 기대했던 낯익고 낭만적인 의학드라마는 찾아볼 수 없었다. 더구나 사람을 고치는 의사가 아닌 '수의사'라는 것에 좀 더 낯선 느낌만 들 뿐이었다. 딱히 동물을 싫어하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사람이나 동물이나 '아픈 환자'로 등장하면 가슴 한 켠부터 아파오는 탓에 책속에 등장하는 '환자의 케이스' 하나하나가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아픈 동물들의 '죽음'을 다루는 내용에선 읽기를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이 책의 원제가 <獸醫五年生(수의5년생)>이라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말로 곧바로 뒤치면 '수의대 졸업생'쯤일 것이다. 한마디로 '의대 졸업생'의 고충과 애환이 담겨 있는 소설이란 생각에 책속의 줄거리가 머릿속에 딱 정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대학이나 '졸업생'은 힘들고 고달픈 일로 눈코 뜰새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낼 것이다. 더구나 '의대 졸업생'이라면 졸업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졸업 후 '전공의'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 로 정신이 없을 시기인 탓이다. 사람을 치료하는 '의대생'도 이럴진대, 동물을 치료하는 '수의대생'은 어떨까? 아픈 사람은 어디가 어떻게 아프다고 말이라도 하지, 동물은 '수의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도맡아야 한다. 그렇다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고 목숨이 둘이거나 덜 소중한 것도 아니기에 잘못된 진단(오진)이나 명백한 실수를 저지르면 사람보다 약하고 수명이 짧은 동물들은 바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죽음을 맞이하는 수의사들은 사람이 죽은 것이 아니라더 충격이 덜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모든 생명이 똑같이 소중한 것처럼 '동물의 죽음'도 사람처럼 고귀하게 다루어야 마땅하다. 더구나 '반려동물의 죽음'인 경우엔 보호자(반려자)의 슬픔까지도 수의사가 감당해야 하며, 적절한 치료를 하지 못한 '의료사고 케이스'인 경우엔 법적 소송이나 고발까지 당할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한마디로 '수의사'도 의사 못지 않은 중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직업인 셈이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아픈 동물'에 대해서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사람의 경우에는 '건강보험' 같은 치료비를 경감시킬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어서 보호자들의 부담이 덜한데 반해서, 동물의 경우에는 단순한 치료나 검사를 했을 뿐인데도 '엄청난 액수의 의료비 청구'로 인해 진료는커녕 아픈 동물을 그대로 방치하고 죽게 만드는 경우도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에 나오는 '수의대 졸업생'들이 겪는 실습과정에서 아픈 동물을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방치하거나 주인(보호자)에게조차 버림을 받고 병원에 눌러앉은 동물들이 많고, 심지어 치료중이던 동물이 죽음에 이르렀는데도 그저 수수방관만 하는 매정한 사람들을 보면서 겪게되는 '수의대생들의 심적 고충'이 아주 잘 드러나 있다.

그렇다고 그런 경우를 당한 동물들을 수의대생들이 '애정'으로 돌봐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의대 졸업생들이 밤잠을 설쳐가며 학업과 실습을 이어나가고 있는데, 그렇게 버려지고 방치된 동물까지 떠맡아 돌봐줄 시간적, 체력적, 경제적 여력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물론 동물을 유달리 사랑하기 때문에 선택한 '직업'이긴 하지만, 아픈 동물 뒤치닥거리하면서 학업을 등한시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말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버려지는 동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수의대생'이기도 하다. 어디까지나 학생이지 않은가. 현실이 비록 '이상'과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자신들이 꿈꾸던 이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불철주야 희망을 키워나가는 미래의 주역들 말이다. 이런 애환이 잘 갖춰있기에 이 책의 '한국어 제목'이 <낭만 수의사, 희망을 처방합니다>인지도 모르겠다.

동물을 키우는 분들은 그야말로 '애정'으로 키우고 평생을 함께하는 '반려자'가 되길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삶의 기쁨과 행복까지 모두 함께 할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애정을 쏟던 동물이 아플 경우에는 어찌 하겠는가? 병원비는 말도 할 수 없이 비싸고, 아파하는 모습을 볼 때면 가슴은 찢어지고, 그러다 죽음이라도 마주하게 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겪게 될 것이다. 여기엔 경제적인 문제, 윤리적인 문제, 그리고 도의적인 문제까지 여러 가지 문제가 총체적으로 맞닥뜨리게 된다. 이 가운데 어느 한가지도 쉬운 문제는 없다. 길에서 '다친 동물'을 병원에 데려가도 마찬가지다. 주인도 아닌데, 그저 불쌍해서 병원에 데려줬을 뿐인데. 엄청난 치료비를 청구해서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그럴 때에 '수의사'에게 덤터기를 씌우기도 한다. 나는 그저 불쌍해서 데려왔을 뿐이니 수의사인 당신이 생명을 살려야 할 의무가 있는 것 아닌가 하고 말이다. 이럴 땐 수의사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물론 아픈 동물의 생명을 구하는 고귀한 행동을 하는데 있어 '치료비 청구' 등을 꺼내는 것이 매정해보일 수도 있지만, 수의사도 '공짜'로 수술해주는 비영리단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럴 경우에는 어찌해야 할까? 돈이 없으면 아픈 동물을 봐도 그저 외면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동물을 사랑해서 '동물들의 의사'가 되었으니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책임을 다해서 '공짜 진료'를 행해야 하는 걸까?

그래서 딴에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직업인 '의료진'들이 누구보다 더 많은 죽음을 마주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겪게 된다. 사람이나 동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그 어려운 공부를 마다하지 않는데도 막상 '죽어가는 생명' 앞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는 반면에, 충분히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도 경제적인 이유로, 도의적인 이유로, 때론 법적인 문제가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그저 죽는 것을 방관할 수밖에 없는 일도 겪는 것이 '생명을 다루는 직업인'이 겪는 고충이다. 그리고 사람들끼리 부대끼다보면 사소한 감정 때문에 겪게 되는 어려움도 직면하게 된다. 그럴 때에는 아무리 똑똑한 의사라도 결국 '평범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애환을 느끼며 살아가게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의사들도 마찬가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 때문에 겪는 고충과 애환도 많지만, 거기에 '동물' 때문에 그 모든 것들이 [1+1]이 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수의대'를 졸업하는 사람보다 '수의사'가 실제로 되는 사람의 수가 현저히 적다고 한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극복해야 할 수 있는 직업인 까닭이다.

단지 수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만이 극복해야 할 문제는 아니다. 사람 못지 않은 동물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 뒤따라하며, 무엇보다 사람을 위한 '인권'과 동등한 수준으로 '동물권'까지 보장하는 사람들의 인식부터 개선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바로 '관심'이다.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동물들부터 유심히 관찰해보면 어떨까? 그리고 가까운 동물병원을 견학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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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런 킹덤스쿨 1 - 부자 쿠키 vs 거지 쿠키 쿠키런 킹덤스쿨 1
김언정 지음, 이태영 그림, JA Korea(국제비영리청소년교육기관) 감수 / 서울문화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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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XXXIII / 서울문화사 4번째 리뷰] '주제별 독서'를 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좋은 책을 만나는 경우가 있다. 전혀 알지 못했던 책인데도 말이다. '경제관련 어린이책'을 찾다가 찾던 책 근처에서 새로 발견한 책이 있는데, 바로 이 책이다. 제목은 <쿠키런 킹덤스쿨>이다. '쿠키런'..그렇다. 마녀의 오븐에서 탈출하는 쿠키들의 모험담을 게임으로 담아낸 바로 그거다. 그 '쿠키런'이 다양한 버전의 게임으로 발전하더니, 어느새 '학습만화시장'으로까지 확장팩을 내놓게 된 것이다. 더구나 '경제교육'으로 널리 알려진 Junior Achievement(JA)가 직접 참여해서 야심차게 내놓은 '초등 경제학습만화'란 말이다. 단순히 경제개념을 일러주는 것뿐만이 아닌 '기업가 정신'까지 깊이 있게 경제교육을 시켜주는 국제단체라고 하니 '경제커리큘럼'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높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책의 내용도 꽤나 '실전용'이라고 느껴질 만큼 내용이 '직설적'이다. 으레 '교육용'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것들은 꽤나 진부한 스토리로 전개되기 마련인데, <킹덤스쿨>에서는 시작부터 주인공이 '거지꼴'이 되어 '밑바닥'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로 인한 '교훈'마저 처절할 정도다. 그렇다고해서 과격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초등 경제교육'을 모토로 삼고 있기 때문에 초등학교 1학년이 읽어도 바로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직설적으로 순화시켰'기 때문에 책 내용을 문제 삼을 것은 전혀 없다. 오히려 너무 실감나는 이야기 전개로 '학부모'와 함께 읽어도 절대 진부하지 않을 정도다.

그렇다면 '경제 조기교육'은 반드시 필요한 것일까? 나는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어린 시절부터 '돈씀씀이'를 제대로 배우지 않는다면 어른이 되어서 개고생하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초등학생에게 적절한 '적절한 규모의 경제'로 올바른 경제개념을 심어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이를 테면, 용돈은 너무 많지 않게, 정기적으로 지급해주고, 용돈으로 '합리적인 소비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것은 매우 필수적이라고 본다. 이때 주의할 사항은 지급하는 용돈의 액수가 너무 적어서도 안 되고, 너무 많아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각 가정마다 '경제적인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적당한 용돈의 액수'는 가정마다 다르겠지만, 용돈이 부족해서 아이가 망신을 당하거나 물건을 훔치는 습관이 생기면 곤란할 것이고, 정반대로 용돈이 너무 많아서 '돈씀씀이'가 해퍼지거나 충동구매하는 습관이 생긴다면, 애초에 주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늠하기 힘들다면, 용돈으로 '쓸만큼 소비하고, 절반 정도는 저축도 할 수 있는 금액'이라고 귀띔을 해주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은행에 '저축'을 하면 '이자'도 생긴다는 것을 꼭 알려주길 바란다. 비록 적은 액수일지라도 '돈이 돈을 버는 자본주의의 핵심'을 깨달아야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 유능한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젠 '노동'만으로 '부자'가 되는 기적을 기대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은행이나 주식, 부동산 같은 것들이 '알아서 점점 불어나는 재산'이 된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어린이들은 '10년 이상의 기간'동안 자산을 묻어둘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 어린이들은 부모님이 '경제적 뒷받침'을 해주는 천금 같은 '시간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자산을 활용하여 '몫돈'을 만드는데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 천금 같은 경험을 어린이 스스로 '자산'을 불려나가게 된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그 돈을 절대로 허투루 쓰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랜 기간동안 불려놓은 소중한 자산인데 함부로 홀랑 써버리고 만다면 '경제관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이 분명할 것이다. 허나 1년이 지날 때마다 점점 불어나는 자신의 재산을 직접 관리까지 하면서 불려나간다면 틀림없이 훌륭한 '경제관념'을 갖출 것이다.

암튼, 이 책 <쿠키런 킹덤스쿨 1>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주인공인 '용감한 쿠키'가 부자 삼촌 덕분에 호화로운 삶을 살지만 정작 '돈에 대한 소중함'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이 사실을 안 부자 삼촌은 용감한 쿠키에게 '경제교육'을 시키기 위해 모든 재산을 감춰버리고 사라져버리고 마는데, 용감한 쿠키는 이러한 현실을 맞이하고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왜냐면 단 한 번도 '돈이 없는 생활'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루 아침에 '거지 쿠키'가 되어 버린 용감한 쿠키는 '돈이 없는 설움'을 제대로 겪게 된다. 그리고 삼촌이 남긴 편지속에서 '킹덤스쿨에 입학해 경제교육을 제대로 받으라'는 메시지를 확인하지만, 정작 용감한 쿠키는 '킹덤스쿨'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킹덤스쿨'은 킹덤빌리지라는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그곳으로 가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과 지금 자신의 수중에 한 푼의 돈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직업'을 구하게 된다. 왜냐면 돈을 벌기 위해선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이번에 처음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생 처음 직업을 구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용감한 쿠키는 과연 '킹덤빌리지'까지 갈 수 있는 차비를 마련할 수 있을까? 무사히 '킹덤스쿨'에 입학을 한 뒤에 제대로 된 경제교육을 받고 다시 부자 쿠키로 거듭나게 될 것인가? 궁금한 이야기들은 다음 편에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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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무인 편의점 이상한 무인 가게 시리즈 3
서아람 지음, 안병현 그림 / 라곰스쿨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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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Review MDCCCXXXII / 라곰스쿨 3번째 리뷰] 이번엔 '무인 편의점'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말 많고 이상한 아저씨가 운영하던 편의점을 성실한 젊은이에게 물려주면서 이야기가 끝났다. 아이스크림 가게와 문구점에서는 없었던 에피소드다. 그리고 '그림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누구'라는 물음이 더 적당할테지만 그보다는 '무엇' 때문에 이런 이상한 일을 벌이는 것인지 궁금해져서 말이다. 다음 가게는 '무인 사진관'이라는 사실만 확인한 채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련다.

'무인 편의점'에서는 [당신에게 딱 필요한 물건을 팝니다!]라는 문구를 적어 놓았다.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와 '무인 문구점'에서는 [웃는 얼굴을 보여 주면 문이 열려요!]라고 적혀 있었는데 말이다. 이런 변화는 '이상한 가게 시리즈'가 장편으로 이어질 것을 예고(?)하는 변화일까? 아니면, '편의점'이라는 성격상 '꼭 필요한 물건을 판매한다'는 컨셉으로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일 뿐일까? 하지만 애초에 '이상한 가게들'에선 아이들에게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보다 더 소중한 '웃는 얼굴', '자기만 간직한 비밀', 그리고 '즐거운 놀이 한 판'을 하면 아이들은 갖고 싶어하는 물건을 가지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자 원하는 소원을 이루게 된다. 물론 그 소원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말이다. 오히려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때가 더 소중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줄 뿐이다. 그래서 '이상한 가게'는 그저 아이들이 '웃는 얼굴'만 보여주면 들어올 수 있게 했더랬다. 그랬는데 '편의점 편'에선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것을 전달하는 방법이 달라진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컨셉으로 갈 것인지, 아님 '편의점 편'에서만 그럴 것인지 관심이 기울어진다. 하지만 '무인 사진관'에서는 다시 '웃는 얼굴'을 요구할 것으로 짐작된다. 사진이란 것은 늘 '소중한 추억'을 담을 수 있는 것이기에 그렇다.

한편, 편의점은 우리의 일상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단지 허름한 '구멍가게'가 최신식의 '편의점'으로 바뀐 것이 아니라 소규모 영세상인의 몫이었던 자리를 대기업의 체인점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편의점'이라는 말처럼 단지 물건을 사고 파는 장소가 아닌 '일상생활의 편리함'을 제공하는 곳으로 활용도가 바뀌었다는 점에서 참으로 큰 변화를 맞이한 곳이다. 더구나 영업시간이 '24시간', '연중무휴'이기 때문에 한밤중에도 정말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 간단한 먹거리부터 응급처지를 할 수 있는 의약품, 그리고 택배를 보내고 맡을 수 있는 장소제공까지 우리 일상에서 꼭 필요하다고 여기는 모든 것들을 '편의점'에 설치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바꿀 수도 있는 셈이다. 그런데다가 최근에는 실제로 운영되는 '무인 편의점'이 생겼다고 한다. 뭐, 아직은 '무인 판매'가 용이한 '자판기'를 주로 도입한 수준이지만, 건물에 입주할 필요도 없이 '컨테이너 박스'에다가 편의점을 꾸미고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설치할 수도 있다는 장점까지 도입했다고 한다.

물론, '편의점'이 마냥 편리한 곳만은 아니다. 밤새 일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아르바이트 일꾼들에겐 정말 고된 일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한밤중에 편의점을 이용하는 불량한(?) 손님들이라도 찾아온다면 참으로 곤란이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에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거나 강도짓을 일삼기라도 하면 크나큰 낭패를 보기도 한다. 무인 편의점이라고 고충이 없는 것은 아니다. CCTV가 있다고해도 '관리자'가 없다는 틈을 타서 마구잡이로 음식을 먹고 도망가거나 '물건'이나 '현금'을 훔쳐 달아나는 강도짓을 일삼는 무리도 심심찮게 나타난다는 뉴스가 방송에 나오기 때문이다. 대개는 경찰에 덜미가 잡혀 혼쭐이 나는 모양이지만 말이다.

이런 '무인 편의점'에서 아이들은 '이상한 잡화'를 통해서 자신이 갖고 있는 '나쁜 습관들'을 하나하나 고쳐 나갔다. 자신감이 없어 엄마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소심함부터 충치로 인해 이가 뽑혀져 나가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치과에서 사용하는 기계들이 무서워서 충치치료를 거부하고 도망가는 일까지 이 책을 읽으면 자신의 그런 '나쁜 습관들'이 있다는 부끄럼 때문에 볼이 빨개질테지만, 다 읽고 나면 그런 '나쁜 습관들'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깨닫게 될 것이 틀림없다. 어떻게 그런 확신을 하냐면, '나'도 어릴 적에는 그런 나쁜 습관을 갖고 있던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나쁜 습관들은 '나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가짐'을 갖는 계기를 통해서 하나씩 고쳐나갈 수 있었다.

이를 테면, '스컹크 뿡뿡 너로구나 군고구마' 이야기에선 물건값도 치르지 않고 제것인냥 마음대로 슬쩍하는 나쁜 습관을 가진 학생이 등장한다. 이 학생이 '훔치는' 물건은 편의점 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소중한 물건도 아무렇지 않게 슬쩍 가져가버리곤 한다. 먼 옛날 배고프던 시절에는 아이들의 '서리'를 어른들이 눈감아주기도 했다. 쪼그만 녀석들이 얼마나 배가 고프면 그랬을까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농작물 손실'이 엄청나거나 '논밭'을 망치기라도 하면 어른들이 노발대발해서 혼쭐이 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대체로 눈감아주는 분위기였다. 그런 시절에서 조금 지나 '도시의 어린이들'은 문방구나 구멍가게에서 슬쩍하는 일이 빈번했다. 워낙 다양한 물건을 진열해놓기도 했고, 주인어른이 한눈을 파는 사이에 물건을 슬쩍하는..그 시절에는 '뽀리'라고 불렀다. 물론 그때에도 주인어른이 눈감아주었다가 '물건값'이 터무니없이 비싼 경우이거나 여러 차례 그런 일이 반복될 경우에는 학생들의 부모님에게 '따로' 연락을 취해서 주의를 주는 일도 있었다. 왜냐면 그 시절에는 '한 동네에서 벌어진 헤프닝'인 경우가 많아서 다 알고 지내던...그 집에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알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엔 다르다. 모두가 배고프던 시절도 아니고, 한 동네에서 서로 다 알고 지내던 시절도 지났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린 시절에는 그런 '나쁜 습관들'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다. 아직 '도덕적 관념'이 제대로 심어지기 전이기 때문에 '부끄러운 행동'을 일삼으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학생의 나쁜 습관을 바로 잡겠다고 '도둑놈 취급'을 해버리면 크나큰 충격을 받고 도리어 삐뚫어지는 경우도 있으니 어른들이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어린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을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부끄러운 행동을 뉘우치고 잘못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을 일러주어야만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잘못을 뉘우칠 수 있고, 부끄러운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것도 깨우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도둑놈이란 낙인'을 함부로 찍어버리면, 그 아이는 평생토록 '죄인'으로 살게 될 수도 있고, 잘못을 뉘우칠 방법도 찾지 못하고 또래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되어 평생을 '사회부적응자'로 살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물건을 훔치고도 거짓말을 늘어놓는 아이에게 '고약한 방귀'를 뀌게 하는 방법을 통해서 스스로 잘못을 뉘우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방귀를 뀌는 이유가 '소화'를 시키지 못해서가 아니라 '양심'이 썩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여주니 스스로 한 짓들이 정말로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치유방법'도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쳐서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되면 저절로 낫게 된다고 했으니 얼마나 멋진 방법이냔 말이다. 현실에서는 그런 '양심 군고구마'가 있지는 않겠지만, 양심에 부끄럽지 않도록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인지 깨닫게 된다면, 그런 고구마가 없더라도 올바른 윤리의식을 깨닫게 될 것이 틀림없다.

우리에게 '딱 필요한 물건'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자기존중'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모든 것일테다. 우리는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회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며 사랑할 줄 아는 멋진 사회구성원이 되어야만 한다. 그렇게 '남'을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자기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할 줄 알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해서 무리해서 자기를 꾸밀 필요까지는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존중하면 그뿐이다. 자기 양심에 부끄럽지도 않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멋진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상한 무인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딱 필요한 물건들'이 대개 그런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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