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도라 문, 전학생과 다투다 이사도라 문 시리즈 17
해리엇 먼캐스터 지음, 심연희 옮김 / 을파소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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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도라 문, 전학생과 다투다>  해리엇 먼캐스터 / 심연희 / 을파소 (2024) [원제 : Isadora Moon and The New Girl(2023)]

[My Review MMCXLVI / 을파소 18번째 리뷰] 어린이들 가운데 유독 '낯선 환경', '낯선 사람'에 대해 낯을 가리는 경우가 있다. 나도 어릴 적에 꽤 심한 편에 속했는데 어른이 되어 산전수전 다 겪었는데도 낯을 심하게 가린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와 친해진 뒤에 깜짝 놀라곤 한다. 첫 인상은 과묵한 편이고 때론 무서운 사람처럼 보이는데 말문이 트이고 나면 그렇게 '수다쟁이'일 수가 없다면서 말이다. 심지어 유머러스하고 애교도 많...쿨럭쿨럭

이번 에피소드는 이사도라가 다니고 있는 학교에 새로운 '전학생'이 온 것이다. 이사도라는 특히 반가웠다. 자신도 '뱀파이어 학교'와 '요정 학교'에서 적응을 하지 못하고 '인간 학교'에 와서 새 친구들과 어렵사리 친해졌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 온 전학생은 그런 어려움 없이 어서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에 다가갔는데, 전학생은 가르릉거리며 발톱을 날카롭게 세우고 냥냥펀치로 공격하는 고양이처럼 다가오는 모든 친구들을 향해 날선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반친구들이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비난하고 비아냥거리면서 삐딱선을 타는 모양새가 너무 꼴보기 싫을 정도였다. 그렇게 전학생과 데면데면 굴고 있었는데, 담임선생님이 그 전학생과 '같은 모듬'으로 짜서 함께 과제를 해오라는 숙제를 내주셨다. 그런데 전학생은 그 모둠에서마저 이사도라와 다른 친구에게 '싫은 소리'만 하면서 결국 과제는 '따로따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지게 되었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이사도라를 비롯해서 다른 친구들이 '좋아하는 인형'과 이야기를 나누며 반친구들에게도 자랑을 하는 자리에서 그 전학생은 차마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고 말았다. "넌 어린애도 아닌데 아직도 인형을 갖고 다녀?"라고 말이다. 이사도라를 비롯해서 다른 친구들 모두 '인형'을 좋아했고, 무척 애착을 갖고 스스럼없이 학교에서도 함께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전학생에 의해서 졸지에 모두 인형이나 갖고 노는 철없는 어린애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사도라는 이 말을 듣고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분홍 토끼 인형의 슬픔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그래서 이사도라는 분홍 토끼 인형을 위로하기 위해서 '인형 파티'를 열기로 했다. 파티의 주인공이 '분홍 토끼'인 셈이다. 그리고 파티를 연다는 사실을 반친구들에게 알려주니 모두들 기뻐하며 자신의 인형을 데리고 참석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새로 전학 온 '에이미'라는 전학생에게도 파티에 초대를 하려고 했는데, 에이미는 그 사이에도 친구들에게 미운 소리만 하면서 투덜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이사도라는 생각을 했다. '인형 파티'에 에이미를 초대하면 분명 파티 분위기를 망치게 만들고 말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초대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에게는 모두 이야기를 했는데 에이미에게만 초대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 때문에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엄마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초대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에이미에게도 '기회'를 줘야 하고, 파티에 초대조차 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다음에 또 만난 에이미는 못된 말만 골라하면서 다른 친구들의 기분 따윈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굴었다. 한마디로 밉상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인형 파티의 초대장을 결국 건내 주지 않고 말았다. 그런데 우연히 에이미가 자신만 초대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눈치 챘는지 무척 서운해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늘상 주머니에 깊숙이 두 손을 찔러 넣고 있었는데, 그날 따라 더 깊숙이 찔러 넣은 듯이 보였다. 도대체 에이미는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누구에게나 말 못할 비밀 하나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더구나 그 비밀이 '전학을 오게 된 것'과 연관이 있다면 더욱더 그럴 수밖에 없다. 물론 '비밀'은 아무도 모르는 게 좋다. 굳이 밝혀져서 부끄럽거나 비난을 받을 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 비밀을 감추고 있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라면 굳이 '비밀'을 밝힐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에이미는 너무 못되게 굴고 있다. 에이미에게 예쁘다거나 신고 있는 신발이 세련되었다는 칭찬을 하는데도 툴툴거리며 내뱉는 말이 정말 싸가지 없게 느껴질 정도였다. 더구나 친구가 하는 말을 무턱대고 믿지 못한다고 말하고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성격이 나쁜 아이처럼 오해를 받아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이전에 학교에서 어떤 일을 당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새로 전학 온 학교에서 반친구들에게 아무런 이유도 없는 비난을 해대는 것은 너무 무례한 일이기도 하고 말이다. 과연 에이미에게는 어떤 비밀이 감춰져 있는 것일까?

우리는 '받은 대로 되돌려 주는 것'을 공정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가장 오래되었다는 함무라비 법전에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간단한 법을 정해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무사함을 전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상대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나도 똑같이 '상처'를 내야 속이 시원하다면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과연 행복할까? 물론 당장에 '복수'해줬다는 생각에 기분이 풀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아픈 만큼 상대로 아파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면 아파하고 있는 상대가 언제 또 다시 나에게 복수를 해올지 알 수 없어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수는 복수를 낳을 뿐, 진정한 해결을 위해선 오직 용서뿐이다'라는 말도 있는 것이다. 일단 용서를 하게 되면 상대가 복수할 거라는 두려움을 잠재울 수 있다. 그리고 용서를 한 나는 상대적으로 '선한 행동'을 한 셈이라 '도덕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 혹시라도 상대에게 용서를 했는데도 또다시 복수를 감행한다면 그 사람은 '나쁜 사람'으로 사회적 낙인이 찍히고 말 것이다. 그리고 사회구성원들은 모두 의견을 모아 '나쁜 사람'을 응징하려 들고, 힘을 모아서 더는 '나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섣불리 '복수'를 하기보다는 통 크게 '용서'를 하는 행동이 훨씬 더 이득이 되는 셈이다. 물론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만 가능한 이야기다. 만약 힘의 불균형이 현저한 상황이라면 '강자'에게 당한 '약자'가 용서를 하는 행위는 아무런 효용이 없게 된다. 왜냐면 약자가 감히 강자에게 복수를 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시 에이미의 '나쁜 행동'을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자. 에이미는 왜 밑도 끝도 없이 반친구들의 호의를 무시하고 못된 말과 행동으로 반친구들에게 상처를 주는가 말이다. 혹시 이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몹쓸짓'을 당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상처'를 이미 많이 받고 있는 불안한 상태였고, 새로 온 학교에서 모든 게 '낯선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채 툭하고 튀어나온 말과 행동이 '못되게 나온 것'은 아닐까? 자신이 받은 상처로 인해 아픈 상황인데, 그 아픔을 혼자서 감내하지 못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친구들에게 '무차별 공격'을 한 것은 아닐까? 그런 자신에게 실망하고 새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갖고 있지만, 이전에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새 친구들에 대한 믿음이 굳지 못해서 '무차별 공격'을 거두지 못하고 계속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의심스럽다.

하지만 이런 '추론'을 하기엔 초등학생 수준으로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 그저 직감적으로 눈치를 챘을 예리한 친구들이 있을지는 몰라도, 속마음을 얘기하지 않는 친구의 속사정까지 빠삭하게 알아챌 도리는 없는 셈이니까 말이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허심탄회한 대화'다. 자신의 허물까지 속시원히 말 할 수 있는 대화의 장으로 초대하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말을 물가까지 끌고 올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에이미가 굳게 다문 입을 열게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지혜는 '강한 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에 사르르 녹여내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 필요가 있다. 과연 굳게 닫아 건 전학생 에이미의 마음을 활짝 열게 할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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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도라 문, 인어와 헤엄치다 이사도라 문 시리즈 16
해리엇 먼캐스터 지음, 심연희 옮김 / 을파소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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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도라 문, 인어와 헤엄치다>  해리엇 먼캐스터 / 심연희 / 을파소 (2023) [원제 : Isadora Moon Under The Sea(2022)]

[My Review MMCXLV / 을파소 17번째 리뷰]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이번에도 '인어 마리나'가 등장해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마리나가 이사도라를 초대해서 '바닷속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에피소드를 진행하는데, 놀랍게도 '마리나'가 주인공이 아니었다. 또 다른 인어 '에메랄드 공주'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 인어가 앞으로 <이사도라 문> 시리즈를 이어 <프린세스 에메랄드>라고 하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은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미 또 하나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바로 <마녀 요정 미라벨>도 있었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해리엇 먼캐스터 작가의 소설은 '혼혈'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끌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홈페이지 주소에 'uk'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면 '영국 작가'인 듯 싶다. 다른 작품도 많은 것 같으니 기회가 닿으면 죄다 읽어볼 작정이다. <이사도라 문> 시리즈가 얼마 남지 않아서 후딱 읽고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는데, 혹 떼려다 혹을 더 붙이고 만 셈이 되었다. 내가 이래서 리뷰어 활동 20년 만에 '읽을 책 목록'만 산더미처럼 늘어나고 말았다. 암튼,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는데, 해리엇의 작품 세계 가운데 <이사도라 문> 시리즈에서 파생된 작품들은 뱀파이어요정이나 마녀요정과 같은 종족 간의 '혼혈'을 다루고 있거나, 인어 공주 델피나의 아빠와 에메랄드의 엄마가 '재혼'을 했기에 에메랄드도 평범한 인어였다가 새아빠가 인어 세계의 왕이었기 때문에 새로 공주가 된 것이다. 뭐 자세한 이야기는 <프린세스 에메랄드> 시리즈를 통해서 이야기 하도록 하겠다.

이처럼 '혼혈'을 이야기의 소재로 삼은 것은 영국 사회가 '다인종 다문화 사회'이기 때문일 것이라 짐작한다. 요즘 같은 세계화가 무르익은 시대에 어느 나라든 '다문화 사회'가 아닌 나라가 없겠지만,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제국주의 시절에 전세계에 식민지를 거르렸었고, 현재도 '영연방 국가(과거에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이 독립하여 세운 국가)'들과 친목을 다지며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에서 '소설과의 유사점'을 착안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사도라 문> 시리즈에서 이렇게 다양한 종족들이 별다른 갈등도 없이 사이좋게 지내며, 심지어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과도 잘 어울리며 지낸다는 설정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영국이 과거에 저지른 '나쁜 행위'를 무마하기 위해서 '과도한 설정'을 하고 허물을 애써 덮고 '포장'하기에 급급했다는 비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그런 비판을 할 정도로 '영국의 역사'를 세세히 알고 있지 못하고, 영연방국가들의 외교 관계에 대해서도 빠삭하게 알고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사도라 문> 이야기의 큰 장점은 '큰 갈등' 없이 밋밋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 같지만, 그 평화로움(?) 속에서 오히려 '더 큰 감동'을 얻게 되는 장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소소한 행복의 소중함' 말이다. 별다른 일도 발생하지 않고, 사건이라고 해봐야 크게 문제 삼을 것도 없는 아주 작은 소동들이 벌어질 뿐이지만, 아직 작고 어린 '이사도라 문'에겐 심각한 문젯거리로 보일 수도 있다. 이를 테면, 오래된 성으로 견학을 갔는데 '꼬마 유령'을 만나서 즐겁게 놀았다는 이야기 말이다. 학생 신분으로 '체험학습'이라는 목적을 외면하고 '딴짓'을 하다가 작은 소동을 마주친 것인데, 그마저도 뱀파이어요정이기 때문에 유령을 보고도 인간처럼 놀라거나 기절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정말이지 밋밋하고 싱겁기 그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작은 소동에서 어린이독자들은 '소중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꼬마 유령이 늘 외롭게 지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꼬마 유령은 간간히 찾아오는 인간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서 '나타났을' 뿐인데, 인간들은 유령이 나타났다며 기절하고 도망가기 바빴다. 그런데 이런 사실 뒤에는 '꼬마 유령이 무척 외로웠다'는 사실이다. 놀래키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고, 그저 함께 놀고 싶었던 것 뿐이다. 이런 사실을 발견한 어린이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자신의 주변에 '꼬마 유령'처럼 홀로 외롭게 지내는 친구는 없는지 찾아보지는 않을까? 해리엇 먼캐스터 작가는 바로 이런 이야기를 쓴다. 아마도 '다문화 사회'가 일상으로 펼쳐지는 영국에서 모두가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경청하는 자세가 소중하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지 않은가?

이번 에피소드에서도 '재혼 가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새아빠의 딸 델피나 공주와 새엄마의 딸 에메랄드가 재혼을 해서 '새로운 가족'이 형성되었다. 더구나 새아빠가 인어 세계의 왕이기 때문에 이번 재혼으로 새엄마는 '왕비'가 되었고, 에메랄드도 '공주'라는 신분을 새로 받게 된 것이다. 물론 에메랄드에게는 '친아빠'가 살고 있다. 그리고 친아빠의 새여자친구도 있고 말이다. 꽤나 복잡한 구조를 이야기하는 것이 해리엇 작가의 특색인 듯 싶지만, 그런 복잡한 구조가 '큰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바로 '에메랄드'와 '이사도라'의 갈등이 크게 부각 되었다. 에메랄드가 심한 장난을 치고 성격도 이상하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델피나 공주와 사사건건 부딪히는 장면이 연출되었고, 델피나와 친한 마리나는 델피나를 위로하면서 에메랄드를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로 몰아붙이기까지 한다. 마리나가 초대한 이사도라도 영문도 모른 채 '이상한 행동'만 일삼는 에메랄드를 전혀 이해할 수 없어 그저 '못된 아이'로 오해하고 말이다. 그러다 파티가 끝나고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에메랄드가 혼자 울고 있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이사도라는 에메랄드를 위로해주게 되고 둘은 '이상한 사건(?)'에 휘말려 깜깜한 바닷속으로 모험(?)을 떠나게 되는데...

어린이에게 어른들의 세계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특히 '이혼과 재혼'이라는 제도는 어린이들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올 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뒤바뀌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분명 '아빠와 엄마'는 있는데, 더는 '함께 살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첫 번째 충격을 준 것으로 모자라, 본 적도 없는 낯선 사람을 '새아빠와 새엄마'로 불러야 한다고 두 번째 충격을 준다. 그리고 세 번째 충격은 '본 적도 없는 형제자매'가 새가족이랍시고 등장하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천천히 진행되고 아이가 직접 '선택'하게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기도 하지만, 대개는 돌발상황처럼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재빨리 처리해버리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 과정은 어린이에게 정말 감당하기 힘든 충격일 뿐이다. 에메랄드의 경우가 바로 이렇다. 엄마와 아빠가 왜 헤어지는 결정을 한 것인지 이해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엄마에게 새아빠라는 존재가 등장하고, 아빠에겐 새여자친구가 등장한다. 에메랄드는 졸지에 두 명의 아빠와 두 명의 엄마가 생기는 셈이다. 그리고 엄마가 낳지 않은 형제자매를 받아들여야 하고, 엄마가 낳은 형제자매라도 아빠는 다른 '씨 다른 형제자매'다. 또한 아빠쪽에서도 '본 적도 없는 형제자매'를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고, 새엄마가 낳은 형제자매도 엄마가 다른 '배 다른 형제자매'를 인정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쯤 되면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지 않은가. 그런데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에메랄드, 본인'은 너무나도 혼란스러운데 어른들은 나름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혼란 상태가 지속되면 어린 자녀는 어른들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고 '불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해리엇 작가의 작품속에서는 '이런 복잡한 일련의 사건'은 싹 사라지고, '복잡한 구조'만 남아 혼란스러움을 전해주지만, 그 속에서 나름의 평화와 소소한 행복을 찾아내며 아름다운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이것이 해리엇 작가만의 매력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어린이 독자들도 해리엇 작가의 이런 점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복잡한 어른들의 세계에서 탈출해서 '아름다운 요정과 놀라운 뱀파이어가 함께 어울어져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곳에서 포근함을 느끼고, 그 속에서 소소한 행복감을 찾아내어 마음의 평안을 얻고 따뜻해진 마음을 만끽하게 해주는 즐거움을 맛보고 있는 것은 아닌 지 새삼 느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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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2041 - 10개의 결정적 장면으로 읽는 인공지능과 인류의 미래
리카이푸.천치우판 지음, 이현 옮김 / 한빛비즈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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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2041 : 10개의 결정적 장면으로 읽는 인공지능과 인류의 미래>  리카이푸, 천치우판 / 이현 / 한빛비즈 (2023) [원제 : AI 2041 : Ten Visions for Our Future]

[My Review MMCXLIV / 한빛비즈 176번째 리뷰] 이 책이 출간된 2023년만 해도 AI(인공지능)는 아직 먼 미래의 일만 같았다. 약 20년 뒤의 미래에 벌어질 일상을 상상한 'SF소설'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더구나 그때가 되면 내 나이는 70대에 접어들게 된다. 정말이지 내가 살아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는..쿨럭쿨럭. 암튼 그때까지 멀쩡히 살아 있는 것으로 가정하고 상상을 하더라도 내가 누릴 일상의 편리함은 그다지 실감할 수 있을 만큼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불과 2년이 지난 2025년이 되니 AI 기술은 급격히 발달했고, AI의 수준을 넘어 AGI(일반인공지능)까지도 구현될 수 있을 거라는 전망이 나오게 되었다. 그것도 짧게는 2년에서 5년 이내로, 길게는 10년을 넘지 않을 것으로 말이다. 그렇게 되면 AI가 주는 편리함을 기대할 수 있는 내 나이는 70대가 아니라 여전히 50대 내지 늦어도 60대에는 실현가능해진다는 얘기다. 그때가 되면 아직 '근력'이 떨어지지 않았을 때이고, 충분히 'AI의 편리함'을 누리며 일상을 살 수 있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 AI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내 삶'에 결정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아쉽게도 나는 '모태솔로'라서 내 것을 물려줄 직접적인 유산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내겐 결혼을 한 여동생이 있고, 내년 1월에는 예쁜 조카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그 아이가 맞이할 일상은 아마도 AI와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이 있던 젠지세대와의 격세지감도 상당히 컸는데, AI가 일상속에 녹아든 세대와는 어떤 격차를 느끼며 살아갈까?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에겐 AI와 친해질 의무가 발현된 셈이다. 내 남은 여생을 위해서도, 내 조카의 일상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뭐, 미래 세대를 위한 조그만 도움이라도 되고 싶은 마음에 AI를 일상속에 녹아들게 '결정'하는 일에 신중을 기하고 싶은 생각 뿐이다.

사실, 기술혁신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곤 한다. 산업혁명으로 엄청난 양의 기계가 사람의 노동을 대신하게 되자, 이전에는 값비싸게 사야만 했던 '상품'을 값싸게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물자의 풍족함으로 인해서 사람들은 엄청난 풍요를 누릴 수 있었고, 일부는 부를 쉽게 쌓을 수 있게 되어서 삶의 질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졌고, 일자리를 잃고 빈곤해진 사람도 부지기수였으며,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는 공장의 굴뚝에서는 유독한 매연을 뿜어내며 환경오염을 심하게 만들었다. 급기에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 현상이 일어났고,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기후위기까지 찾아와 생존을 위협하게 되었다. 이 모든 일들이 불과 400여 년 전에 시작되었고, 최근 100여 년 동안 문제는 더욱 심해져서 세계대전을 두 차례나 치루며 엄청난 인명살상을 감내해야 했고, 급기야 하나 뿐인 지구의 환경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엄청난 기술혁신 발전에 제동을 걸었고, 무분별한 혁신이 초래할 수 있는 위험성을 인지하고, 기술혁신에 대한 '통제력'을 발휘하는 지혜를 보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맨해튼프로젝트'로 인한 핵무기 개발이었고, 이 핵무기를 사용했을 때 감당할 수 없는 위험성을 실감하자 전세계는 핵무기를 만들긴 했지만 결코 사용하지 않는다는 결의(?)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인류는 기술혁신 발전을 막을 수는 없지만,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한 '통제력'을 발휘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말이다. AI가 일상속으로 파고들었을 때 누릴 수 있는 편리함은 바라 마지 않겠지만,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문제점'이 나타나게 된다면 과연 AI에 대한 '통제력'을 인간이 구사할 수 있을까? 물론, 이 책에 등장하는 딥페이크 라든지, 자율주행차 등과 같은 10가지 사례에서 보여주는 '편리함'만을 누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은 골치 아프겠지만 힘겹게 '컨트롤'할 수는 있을 것 같긴 하다. 그런데 AI 기술이 더 발전하여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에 옮기는 일'까지 처리할 수 있는 AGI(일반인공지능)으로 훌쩍 성장(!)한 인공지능이 일상이 된다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왜냐면 일단 AGI는 인간의 지능을 넘어선 '특이점(싱귤래리티)'이 지난 이후가 될테니 말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AGI를 '신(God)'에 비유하고, AGI를 신으로 섬기는 종교가 등장할 거라는 전망까지 서슴지 않고 있지만, 그 정도까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인간은 모든 질문을 AGI에게 던지고 '답'을 기다리는 일상을 살며, 심각하게는 'AI의 노예'처럼 AI의 명령(?)에 순순히 순종하는 일상을 살게 될 거라는 우려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현재'에도 벌어지고 있는 일상이다. 챗GPT에게 '질문'을 던지고, 일상적인 '대화'까지 시도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심각한 '대인기피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왜냐면 사람과의 대화는 '배려'는 기본이고, '상황'에 따라 격식을 차려야 하며, 특히 이성간의 대화인 경우에 성범죄에 해당하는 '언어(성)폭력'과 '성희롱' 등등 신경 쓸 것이 너무너무 많은데 반해서 AI와의 대화는 그런 부담에서 완전히 벗어나 '내 취향'에 딱 맞는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뭐든 '칭찬 일색'이다. 아무리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내려달라고 부탁(?)을 해도 AI는 "당신이 최고야!"라는 기본적인 배려(?)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니 아무리 무심한 사람일지라도 AI와의 대화는 사람간의 대화보다 훨씬 매력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더 똑똑한 AGI가 등장한다면, 유력한 인기인들, 예를 들어 수많은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아이돌'이나, 강대국의 '정치인', 거대기업의 '총수(CEO)', 심지어 종교계의 '수장'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려고 들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선악을 구분하지 못하는 AGI가 '나쁜 마음'을 먹을 가능성은 없지만, 누군가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알려줘. 아니, 그럴 것 없이 네가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바로 실행해!"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AGI가 어떤 결론을 내리고 어떤 실행을 행할 것인가? 어떤 SF소설에 나온 시나리오대로 '인류말살 프로젝트'를 실현하려 애쓰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 최소한 '인간의 최종 통제권'을 발동해서 AGI의 그런 시도를 막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통제권'을 가진 사람에게 접근해서 교묘히 인류말살을 실행에 옮기게 만들도록 유혹(?)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모든 것은 '가정'일 뿐이다. 실제로 AI가 구현되고, 일상속의 편리함을 누리며 살아갈 때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과거 'Y2K 위험상황'을 예상했지만, 단순 해프닝으로 결론이 난 것처럼 말이다. 일단 위기감지를 인간의 지능으로 할 수 있다면, 인간은 기술혁신으로 그 위기를 현명하게 극복해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지금까지 그 믿음은 잘 이어져 오고 있고 말이다. 그래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시회문제', '경제문제', '기후위기' 등 산적한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AI 기술혁신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 이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샘 올트먼, 일론 머스크, 잭슨 황 등등 말이다.

이 책을 쓴 저자들도 '인공지능이 우리 사회에 줄 혜택'에 대해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먼저 인공지능은 막대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 낼 것이며, 2030년쯤에는 17조 달러가 훌쩍 넘는 이익 창출을 해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렇게 창출한 경제 가치로 무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저자들은 가장 먼저 '빈곤과 기아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인공지능은 궁극적으로 인간과 '공생관계'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했다. 스마트폰을 '소유'하듯 인공지능이 보편화된 사회에서는 인공지능을 '개인비서'처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며, 그로 인해 '업무효율'만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에는 '교육과 돌봄'까지 단박에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그밖에도 인류가 해결하지 못한 여러 난제들을 인공지능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아주 밝은 미래를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인공지능'이 초래한 심각한 피해와 문제점도 많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 덕분에 이 책의 첫 인상이 '디스토피아'를 연상케 하는 <SF소설>로 읽히게 되고 나름 '공포물'에 준하는 무서운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뒤에 설명하고 있는 '과학저널'에 해당하는 부분을 읽으면 그런 우려는 뒤로 하고, 예상된 문제점을 극복한 밝은 미래를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속된 말로 '병 주고 약 준다'는 느낌도 받긴 하는데, 출간된 지 2년 여가 지난 시점에서 보면 그다지 무섭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깊이 통찰하며 읽어보길 권한다. AI는 아직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기술혁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문제점은 '한 번 실행하면, 다시는 되돌이킬 수 없다'는 점이다. 인류보다 더 똑똑한 AGI의 등장과 함께 인간의 통제력은 사실상 무력해진다. 물론 AGI에게 인류멸종과 같은 끔찍한 일을 '실행'시킬 멍청이는 없겠지만,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 역사속에 그런 멍청이가 종종 등장한 것도 사실이라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완벽하게 AI가 통제하는 세상'을 만들면 인류는 AI가 제공하는 혜택만 누리면서 편하고 안락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글쎄...그건 인간이 'AI의 노예'로 전락했다는 사실만 부각된 듯 싶고, 그게 아니면, AI를 신으로 추앙하는 '신흥종교'가 나타나 온 인류를 절대적으로 복종하게 만들지...암튼, AI를 친구로 사귀게 되는 가까운 미래의 일상이 좀 더 먼 미래에는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깊이 통찰해봄직 하다는 생각뿐이다. 현재로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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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 : 자본주의, 왜 변할까? - 책가방문고 29 내인생의책 세더잘 시리즈 6
데이비드 다우닝 지음, 김영배 옮김, 전국사회교사모임 감수 / 내인생의책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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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 6 : 자본주의, 왜 변할까?>  데이비드 다우닝 / 김영배 / 전국사회교사모임 / 내인생의책 (2011) [원제 : Political and Economic Systems: Capitalism (2010년)]

[My Review MMCXLIII / 내인생의책 13번째 리뷰] 전세계적으로 '공산주의'는 무너졌다. 아니 애초에 '공산주의'는 실현된 적도 없다. 공산주의 이념은 너무 매력적이었지만, 그 이념으로 실현한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는 21세기를 맞이하지 못하고 1990년대 무너졌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공산주의 국가'를 표방한 나라들은 남아 있다. 중국, 북한, 쿠바 등이 그렇지만, 이들 나라조차 완전한 공산주의 이념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자본주의'를 도입하거나, 일부 이념적인 부분만 남겨 놓은 채 실상 '자본주의'와 다를 바 없는 경제체제를 도입해 국제무역의 일원으로 합류하고 말았다. 공산주의는 왜 실패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고립된 채'로 한시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은 돌아야 하고, 경제는 굴러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일상적인 삶을 살 수 없고, 한 나라의 경제는 폭망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이러한 당연한 사실을 외면하고 '이념'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하다가 끝내 무너지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공산주의가 무너졌으니 자본주의의 '완전한 승리'로 귀결된 것일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공산주의에 장단점이 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도 장점과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났고,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아주 심각한 피해를 준 것은 마찬가지였다. 자본주의의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은 다름 아닌 '대공황'이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패전국에게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한 것이 원인이 되어 '패전국들의 경제'가 폭망하자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갚을 길이 없었고, 그래서 승전국도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경제를 되살리지 못하고 '경기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자, 경제 주도권은 영국(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은 자본주의의 힘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정부(정치인)의 간섭 없이 잘 굴러갈 것이라 굳게 믿었다. 허나 잘 굴러갈 것이라 믿었던 미국 경제는 '눈부신 성장'을 하는 듯 싶었지만, 그 성장은 '거품'에 불과 했었고, 마침내 1929년에 주식시장에 엄청난 대폭락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유망한 듯 싶었던 회사와 공장 들이 줄줄이 폐업을 하자, 이들에 대출을 해준 은행들도 줄줄이 도산을 했고, 투자자는 한 순간에 전 재산을 다 잃어버렸고, 실업자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기만 했다. 악순환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지자 자본주의의 성장엔진은 멈춰버렸고, 무역도 끝내 붕괴하고 말았다. 자본주의의 대실패였던 것이다.

이렇듯 '초기 자본주의'는 애덤 스미스가 주장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율적으로 굴러가며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끝은 '경제 대공황'이었고, 전세계는 경제가 멈춰버리고 만 것이다. 그렇게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맞이한 '자본주의의 대실패'를 극복하고자, 전세계는 새로운 경제체제를 발판 삼아 내놓기 시작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러시아에서 일어난 공산혁명과 함께 '공산주의'가 시작되었고, 다른 한 쪽에서는 무너진 자본주의를 되살리려는 '수정 자본주의'를 내세웠고, 또 한 편으로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파시즘(독일의 나치즘, 일제의 군국주의)'이 등장했다. 그 덕분에 전세계는 '또 한 번의 세계대전'을 경험해야만 했다. 경제 문제는 이처럼 큰 파급력을 보여주곤 했다.

그렇지만 '파시즘'을 내세웠던 이들은 전쟁을 일으켜서 무너진 경제를 단번에 되살리려는 시도를 했으나,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경제 회복력'에 비해 효과적이지 못했다. 더구나 무너진 경제를 '전쟁'과 같은 폭력적인 방법으로 되살리려 하는 '비도덕적인 방법'이 전세계인들에 호감을 얻을 리도 만무했고 말이다. 그 결과 '파시즘'을 해결책으로 내세운 국가들은 차례대로 패배를 했고, 살아남은 경제체제는 두 가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체제였다. 그리고 이 두 체제는 뜨거운 열전 뒤에 '경제력'으로 우위를 가르는 '냉전'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이 세기의 대결은 앞서 언급한대로 '자본주의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대결의 초기에는 '공산주의'가 우세를 점했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대비는 전 세계적으로 격차가 컸고, 후진국에서는 이 격차가 너무 극명했기에 이를 타파할 수 있는 해결책을 가진 듯한 '공산주의'는 정말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 방법 또한 '가진 자의 것'을 국유화시켜 '못가진 자'에게 공평하게 나눠준다니 얼마나 간단한 방법이고, 공평한 방법이냔 말이다. 그런데 공산주의는 이렇게 공평하게 만드는 것까지는 잘 했지만, 공평한 선에서 출발한 이들의 '공정한 경쟁 욕구'마저 꺾어버렸기 때문에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경제성장'은 눈에 띄게 더뎠고, 성장발전으로 얻을 이익이 줄어드니 공산국가에서는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몫'을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기에 급급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성장은 점점 하락했고, 사람들은 불만이 늘었지만, 공산국가에서는 이런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경제발전'에 공을 들이는 것보다 '불만세력'을 숙청하고 감시해서 '공산주의 이념'만 강요하는 꼴을 보여줄 뿐이었다. 그래서 20세기 후반 공산주의 국가들은 거의 대부분 못사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같은 나라는 '자본주의'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등소평(덩샤오핑)의 '흑묘백묘 이론'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최고라는 뜻인데, 풀이하면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경제를 살릴 방법이라면 가리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면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받아들여 사유재산을 활용해서 부를 축적하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국가의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자 중국의 경제성장은 눈에 띄게 되살아났고,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며 국제무역에도 합류해서 엄청난 경제성장을 달성하게 되었다. 그렇게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외국기업들을 자국내에 유치할 수 있었고, Made in China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며 자유무역을 선도하는 국가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자본주의가 승리한 것 같은 시기에 WTO에 반대하는 시위가 전세계 금융의 중심 뉴욕 월가에서 시작되었다. 이런 시위는 곧 확장 되었고 전세계 경제대도시에서 세계무역에 반대하는 시위가 연이어 발생한 것이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분명 사람들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먹고 사는 문제'는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말이다. 그들이 시위를 벌인 까닭은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닌 '정의와 공정'이었다. 세계경제가 발전하고 성장할수록 지구는 병들어 갔고, 숲은 황폐해졌으며, 대기업 프랜차이즈에서 만들어내는 상품은 엄청난 동물의 희생을 통해서 만들어졌고, 이들이 만든 체인점에서 내놓은 '정크 푸드'는 수많은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을 부유하고 윤택하게 만든 '자본주의'가 매우 부도덕한 일을 감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선진국의 부는 후진국들을 착취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자본주의의 민낯에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부를 창출하는 가장 효율적인 동력원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본주의 때문에 부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극소수였고, 대다수의 사람들의 희생이 없다면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살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말해, 잘사는 나라의 국민들은 못사는 나라의 국민들의 희생을 담보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고, 잘사는 나라 속에서도 몇몇 부자들의 풍요를 위해서 대다수 국민들의 희생을 강요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모두가 함께 잘살 수는 없는 것일까? 모두가 공평한 부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시 '공산주의의 부활'이 필요한 것일까? 마르크스는 일찍이 '자본주의 성자의 끝'은 완전한 공산주의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정답이 아니고, 올바른 대안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렇다고 다시금 '전쟁의 광기'를 되살려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도 잘 안다. 유일한 방법은 '기술 혁신'뿐이다. 쉽게 말해, 이익을 창출하는데 이전보다 더 효율적인 기술을 도입해서 '원가 절감'하고, '성능 향상'을 도모해서 다른 상품보다 '경쟁력'을 높여 수익을 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는 것을 잘 안다. 단지 그게 힘들기 때문에 골머리를 썩히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전세계는 엄청나게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우려스러운 점은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경쟁력을 선점한 '기존의 강대국'들이 최근 경제위기를 맞이하면서 '기술 혁신'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펼쳐지고 있어 문제다. 미국의 트럼프는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관세수입'으로 극복(?)하겠다며 연신 똥볼을 차고 있고, 러시아의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서 경제위기를 감추고 국뽕으로 국민들의 눈을 가리려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중국의 시진핑은 패권국가로 거듭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지만 부도덕적인 이미지를 개선하지 못해 국제적 밉상으로 낙인이 찍혀 왕따를 당한 화풀이로 만만한 나라를 상대로 힘자랑하기 바쁘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 이후로 별다른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지만, 다카이치 총리는 극우보수의 결집을 돌파구로 삼아 '전쟁 가능한 국가'로 되돌아가기 위해 일본 국민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그로 인해 일본 국민들은 더욱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런 어려움 뒤에 '위대한 일본'을 만드는 일에 일조(?)하고 있다는 세뇌를 당한 듯,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묵묵히 국가정책을 따를 뿐이다. 과연 깨어 있는 일본국민은 몇이나 있을까? 그리고 있더라도 그들이 일어나서 국가에 저항하는 일에 앞장을 설까? 일본의 선택은 과연 어떨지 궁금하지만, 기대는 하지 않는다. 애초에 일본은 그런 저항을 해본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대로 일본이 전쟁 가능한 국가로 변신하는데 지켜보기만 해야 할까? 그건 아니다. 가장 가까운 대한민국이 결코 호락호락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실력'으로 보여주면 된다. 일본은 강한 자 앞에서 철저히 복종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약한 모습을 보여주면 절대 안 된다. 일본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면 그 순간 잡아먹히기 때문이다.

이게 자본주의의 실체다. 오직 '실력'만이 이득을 챙길 수 있게 해주고, '도덕'은 알고도 애써 눈을 감는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폐기처분해야 마땅할까?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재까지 '부를 창출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딴에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비정한 경제체제를 좌시할 수는 없다. 실력을 키워 더 많은 부를 얻게 만들지만, 도덕적으로 해이해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나만 잘살기를 바라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모두가 잘살 수 있는 방법을 도모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뿐인 지구의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동식물을 비롯해서 약자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해서 얻는 수익창출 방법은 되도록 지양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피치 못하게 '약자의 희생'이 발생했다면, 마땅히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도 당연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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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 : 비만, 왜 사회 문제가 될까? - 책가방문고 25 내인생의책 세더잘 시리즈 5
콜린 힌슨 & 김종덕 지음, 전국사회교사모임 옮김 / 내인생의책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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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 5 : 비만, 왜 사회문제가 될까?>  콜린 힌슨, 김종덕 / 전국사회교사모임 / 내인생의책 (2011) [원제 : What Can We Do About Obesity?]

[My Review MMCXLII / 내인생의책 12번째 리뷰] 옛날에는 뚱뚱한 사람을 부러워했다. 왜냐면 뚱뚱한 만큼 잘 먹고 잘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비만'은 부의 상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류 역사상 '먹거리를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시대'가 거의 없었다. 늘 배고팠고 늘 부족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서 인류는 먹을거리가 지천에 넘쳐나는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과거에는 가난한 사람들은 날씬하다 못해 호리호리했고, 부유한 사람들은 통통하다 못해 뚱뚱했는데, 이제는 정반대의 현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부유한 사람은 홀쭉하면서도 근육질에 탄탄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었고, 가난한 사람은 점점 뚱뚱해지고 심하면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 할 정도가 되었다. 왜 이렇게 되었나?

그건 먹거리의 질이 달랐기 때문이다. 분명 먼 옛날에 비해 사람들은 배가 고프지는 않게 되었다. 하지만 '먹는 양'은 늘어난 것에 비해서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가 된 셈이다. 왜냐면 '좋은 음식'은 값이 비싸졌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저렴한 음식'은 대부분 가공식품으로 '정크푸드(쓰레기음식)'라고 불릴 정도로 건강에 해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유한 사람들은 '좋은 음식'을 알맞게 먹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데 반해서, 가난한 사람들은 '나쁜 음식'으로 식사를 대신해야 했고, 배부른 대신에 건강을 잃어버린 삶을 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차원에서 '비만'은 부유한 계층보다 가난한 계층에 더 큰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는 이런 이야기보다 '고열량, 고칼로리 식단'이 현대인을 비만에 이르게 한다고 정의 내렸다. 그래서 '패스트푸드' 대신 '슬로푸드'를 먹고, '글로벌푸드' 대신 '로컬푸드'를 즐겨 먹음으로써 비만에 빠지지 않고 건강한 삶을 살자는 캠페인 홍보(?) 같은 이야기로 결론을 내렸다. 비만 문제를 사회문제가 아닌 '개인문제'로 격하시킨 듯한 인상이 느껴졌다. 이 책이 출간 된 시점이 2011년이라서 그런 것일까? 하지만 그 시절에도 지금과 같은 '빈부격차'에 따른 사회문제가 비일비재 했다. 그런데도 '비만 문제'를 좋은 음식을 먹지 않고 나쁜 음식을 즐겨 먹는 '식습관의 문제'로만 인식한 것은 아쉬웠다.

요즘 <케데헌>의 인기로 인해 미국의 어린이들은 '입맛'이 바뀌었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한국의 어린이들이 밥투정을 할 때 부모들이 즐겨 쓰는 해결법으로 '조미김'에 밥을 싸서 '김치 조각'을 곁들여서 먹이곤 했는데, 미국의 어린이들이 '한국 음식'을 즐겨 먹기 시작하자, 빵이나 케익으로 한끼를 해결하기보다는 '김밥'에 '단무지'로 배를 채우려 한다고 한다. 물론 '한국 음식'에 대한 인식이 '고퀄리티'인 까닭에 자녀가 한국 음식을 즐겨 먹고 '정크 푸드' 같은 빵, 과자, 탄산음료 같은 것을 멀리 하는 것에 환영하면서도, 미국의 부모들은 정작 '김밥'을 쌀 줄도 모르고, '조미김'이나 '단무지' 같은 반찬을 구할 곳도 마땅찮은 상황이라서 당황스럽다는 것이다. 더구나 '완제품'으로 나온 한국 음식들은 미국 현지에서는 비싼 값에 팔리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식재료를 구하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웃에 '한국계 이민자'가 있으면 가깝게 지내려 하고 그들을 통해서 '한국 식단의 식재료'를 구하는 방법부터 간단히 만들 수 있는 '한국 음식'까지 배우려는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에 한인 교포들은 환영하면서도 '과거의 안 좋았던 기억'이 떠올라서 씁쓸하다고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계 자녀가 '점심 식사'로 싸가는 김밥과 김치, 잡채 같은 음식을 보며 놀림을 당하기 일쑤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20세기에 미국에 정착해 학창시절을 보냈던 지금의 '한국계 미국인 학부모들'은 과거의 설움과 상처가 떠올라 눈시울을 적시면서도, '한국 음식'에 대한 평가가 호평 일색으로 돌변(?)한 요즘과 같은 상황에 감개무량할 지경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음식'으로 마련한 점심 도시락이 얼마나 '건강을 고려한 음식'이었느냔 말이다. 냉동 피자나 냉동 햄버거에 감자튀김과 탄산 음료로 한끼를 떼우는 미국 어린이들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이지 않느냔 말이다. 영양학적으로도 더 우수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그런데도 낯선 음식, 낯선 냄새 라는 이유만으로 놀림감이 되는 어처구니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돈이 있으면 더 건강한 음식을 찾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 음식'은 이런 시대를 맞아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왜 대다수 미국의 어린이들이 형편 없는 음식으로 건강을 해치고, '비만'에 빠지고 마는 것일까? 그건 미국 사회가 점점 가난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물가가 높은 줄 모르고 오르기만 하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미국 시민들은 값이 싼 '나쁜 음식'에 손을 댈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학교 급식' 같은 것이라도 개선해서 어린이들에게 무상으로 '좋은 음식'을 제공해주면 해결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이것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미국은 연방제 국가인 탓에 '주'마다 정책이 일률적으로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 예산'도 주마다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미국 대통령이 나선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라고 한다. 여기서도 '부자'와 '빈자' 사이에 엄청난 간극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부유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에서는 '비만' 같은 문제도 적극적으로 해결할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곳은 그보다 더 심각하고 절실한 문제가 많아서 '비만' 같은 문제는 뒷전이 되기도 한단다.

이는 비단 미국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가릴 것 없이 '비만'은 사회적 문제로 대두 되고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은 바로 '부의 불평등' 때문이고 말이다. 단순히 '정크 푸드'와 '글로벌 푸드'를 멀리하고 '유기농' 같은 '좋은 음식'과 '로컬 푸드'로 해결될 시점을 훨씬 지나고 말았다. 현재 '슬로 푸드'와 '로컬 푸드'의 원재료 가격이 엄청 오르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처럼 고물가 시대에 비만은 '부의 불균형'으로 인한 고질병처럼 느껴진다.

한편, 자신이 비만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꼭 살을 빼는 것이 좋다. 물론 '좋은 음식', '건강한 음식'을 먹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겠지만, 부유한 계층이라도 살이 찐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는 최근 20Kg 정도 감량에 성공했다. 요즘에는 '살 빼는 약'도 있다고 하는데, 약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삼시 세끼 챙겨 먹으면서도 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내가 쓴 방법은 '밀가루 음식'과 '설탕'을 거의 끊다시피 했다. 평소에 면 종류의 음식을 너무 좋아했는데 '라면'을 비롯해서 '빵', '과자' 같은 음식을 아예 입에도 대지 않았다. 대신 '메밀 100%'로 만든 면 요리는 가끔 먹었다. 정말 면이 땡길 때 말이다. 그리고 달달한 음식도 거의 먹지 않았다. 탄산 음료는 말할 것도 없고 '믹스 커피'도 딱 끊었다. 이렇게 하면 정말 마실 음료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대신 마셨던 것이 '블랙커피'와 '보이차'였다. 물론 물도 많이 마셔야 한다. 커피나 차 만으로 수분을 보충하면 신진대사에 불균형을 초래하기 때문에 '물 이외의 음료'를 마신 양만큼은 꼭 물을 마셔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 음식은 배불리 먹었다. 밥은 되도록 '현미밥'으로 절반만 먹는다는 느낌으로 먹었고, 고기와 채소, 그리고 과일(너무 달지 않은)로 배를 채우는 식단으로 바꿨다. 물론 이렇게 식단을 차리려면 가뜩이나 오른 물가 때문에 부담이 될 것이다. 그래서 '구내식당'에서 먹을 때는 배불리 먹고, 집에서 먹을 땐 가볍게 먹는 방식으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녁 6시 이후'로 물만 마셨다. 이런 방법으로 음식 조절을 하면서 적당한 운동(하루 2만 보 이상)을 하며, 매일 체중을 확인해보니 하루에 200g~500g 정도씩 빠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에 1~2kg씩 체중감량에 성공하니 나름 뿌듯하고 현재는 74~75kg으로 20대 시절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그렇게 좋아하던 음식을 하루 아침에 끊는게 어디 쉬운 일일까? 하지만 '고도비만'이 되니 고혈압에, 고지혈증, 그리고 고혈당까지 찾아와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게 되었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이 모든 증세를 단박에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말에 솔깃했다. 바로 '살을 빼는 것'이었다. 그래서 얼마나 빼면 좋겠냐고 물었더니 "기왕 빼는 거 확 빼세요"라고 말하길래, 20kg을 감량하려 목표를 잡았던 것이다. 그리고 '요요현상'을 없애려면 '살 빼는 약'이나 '지방흡입' 같은 수술의 도움 없이 '식단조절+운동'을 병행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체중이 줄어드는 것을 보면서 빼는 것도 중요했다. 물론 날마다 빠지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300g을 힘들게 뺐는데, 다음날 의도치 않은 과식으로 1kg이 늘어있는 것을 보면 좌절할 만도 하다. 하지만 다시 시작하면 된다. 약이나 수술의 도움 없이 '자신의 의지'만으로 살을 빼면 언제든, 원하는 만큼 꼭 살을 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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