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 : 자본주의, 왜 변할까? - 책가방문고 29 내인생의책 세더잘 시리즈 6
데이비드 다우닝 지음, 김영배 옮김, 전국사회교사모임 감수 / 내인생의책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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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 6 : 자본주의, 왜 변할까?>  데이비드 다우닝 / 김영배 / 전국사회교사모임 / 내인생의책 (2011) [원제 : Political and Economic Systems: Capitalism (2010년)]

[My Review MMCXLIII / 내인생의책 13번째 리뷰] 전세계적으로 '공산주의'는 무너졌다. 아니 애초에 '공산주의'는 실현된 적도 없다. 공산주의 이념은 너무 매력적이었지만, 그 이념으로 실현한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는 21세기를 맞이하지 못하고 1990년대 무너졌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공산주의 국가'를 표방한 나라들은 남아 있다. 중국, 북한, 쿠바 등이 그렇지만, 이들 나라조차 완전한 공산주의 이념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자본주의'를 도입하거나, 일부 이념적인 부분만 남겨 놓은 채 실상 '자본주의'와 다를 바 없는 경제체제를 도입해 국제무역의 일원으로 합류하고 말았다. 공산주의는 왜 실패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고립된 채'로 한시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은 돌아야 하고, 경제는 굴러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일상적인 삶을 살 수 없고, 한 나라의 경제는 폭망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이러한 당연한 사실을 외면하고 '이념'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하다가 끝내 무너지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공산주의가 무너졌으니 자본주의의 '완전한 승리'로 귀결된 것일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공산주의에 장단점이 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도 장점과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났고,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아주 심각한 피해를 준 것은 마찬가지였다. 자본주의의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은 다름 아닌 '대공황'이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패전국에게 막대한 배상금을 요구한 것이 원인이 되어 '패전국들의 경제'가 폭망하자 천문학적인 배상금을 갚을 길이 없었고, 그래서 승전국도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경제를 되살리지 못하고 '경기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자, 경제 주도권은 영국(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은 자본주의의 힘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정부(정치인)의 간섭 없이 잘 굴러갈 것이라 굳게 믿었다. 허나 잘 굴러갈 것이라 믿었던 미국 경제는 '눈부신 성장'을 하는 듯 싶었지만, 그 성장은 '거품'에 불과 했었고, 마침내 1929년에 주식시장에 엄청난 대폭락이 일어났고, 그로 인해 유망한 듯 싶었던 회사와 공장 들이 줄줄이 폐업을 하자, 이들에 대출을 해준 은행들도 줄줄이 도산을 했고, 투자자는 한 순간에 전 재산을 다 잃어버렸고, 실업자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기만 했다. 악순환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지자 자본주의의 성장엔진은 멈춰버렸고, 무역도 끝내 붕괴하고 말았다. 자본주의의 대실패였던 것이다.

이렇듯 '초기 자본주의'는 애덤 스미스가 주장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율적으로 굴러가며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끝은 '경제 대공황'이었고, 전세계는 경제가 멈춰버리고 만 것이다. 그렇게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맞이한 '자본주의의 대실패'를 극복하고자, 전세계는 새로운 경제체제를 발판 삼아 내놓기 시작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러시아에서 일어난 공산혁명과 함께 '공산주의'가 시작되었고, 다른 한 쪽에서는 무너진 자본주의를 되살리려는 '수정 자본주의'를 내세웠고, 또 한 편으로는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파시즘(독일의 나치즘, 일제의 군국주의)'이 등장했다. 그 덕분에 전세계는 '또 한 번의 세계대전'을 경험해야만 했다. 경제 문제는 이처럼 큰 파급력을 보여주곤 했다.

그렇지만 '파시즘'을 내세웠던 이들은 전쟁을 일으켜서 무너진 경제를 단번에 되살리려는 시도를 했으나,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경제 회복력'에 비해 효과적이지 못했다. 더구나 무너진 경제를 '전쟁'과 같은 폭력적인 방법으로 되살리려 하는 '비도덕적인 방법'이 전세계인들에 호감을 얻을 리도 만무했고 말이다. 그 결과 '파시즘'을 해결책으로 내세운 국가들은 차례대로 패배를 했고, 살아남은 경제체제는 두 가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체제였다. 그리고 이 두 체제는 뜨거운 열전 뒤에 '경제력'으로 우위를 가르는 '냉전'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이 세기의 대결은 앞서 언급한대로 '자본주의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대결의 초기에는 '공산주의'가 우세를 점했다.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대비는 전 세계적으로 격차가 컸고, 후진국에서는 이 격차가 너무 극명했기에 이를 타파할 수 있는 해결책을 가진 듯한 '공산주의'는 정말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그 방법 또한 '가진 자의 것'을 국유화시켜 '못가진 자'에게 공평하게 나눠준다니 얼마나 간단한 방법이고, 공평한 방법이냔 말이다. 그런데 공산주의는 이렇게 공평하게 만드는 것까지는 잘 했지만, 공평한 선에서 출발한 이들의 '공정한 경쟁 욕구'마저 꺾어버렸기 때문에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경제성장'은 눈에 띄게 더뎠고, 성장발전으로 얻을 이익이 줄어드니 공산국가에서는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몫'을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기에 급급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성장은 점점 하락했고, 사람들은 불만이 늘었지만, 공산국가에서는 이런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경제발전'에 공을 들이는 것보다 '불만세력'을 숙청하고 감시해서 '공산주의 이념'만 강요하는 꼴을 보여줄 뿐이었다. 그래서 20세기 후반 공산주의 국가들은 거의 대부분 못사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같은 나라는 '자본주의'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등소평(덩샤오핑)의 '흑묘백묘 이론'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최고라는 뜻인데, 풀이하면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경제를 살릴 방법이라면 가리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면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받아들여 사유재산을 활용해서 부를 축적하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국가의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자 중국의 경제성장은 눈에 띄게 되살아났고,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며 국제무역에도 합류해서 엄청난 경제성장을 달성하게 되었다. 그렇게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수많은 외국기업들을 자국내에 유치할 수 있었고, Made in China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며 자유무역을 선도하는 국가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자본주의가 승리한 것 같은 시기에 WTO에 반대하는 시위가 전세계 금융의 중심 뉴욕 월가에서 시작되었다. 이런 시위는 곧 확장 되었고 전세계 경제대도시에서 세계무역에 반대하는 시위가 연이어 발생한 것이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분명 사람들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먹고 사는 문제'는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말이다. 그들이 시위를 벌인 까닭은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닌 '정의와 공정'이었다. 세계경제가 발전하고 성장할수록 지구는 병들어 갔고, 숲은 황폐해졌으며, 대기업 프랜차이즈에서 만들어내는 상품은 엄청난 동물의 희생을 통해서 만들어졌고, 이들이 만든 체인점에서 내놓은 '정크 푸드'는 수많은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을 부유하고 윤택하게 만든 '자본주의'가 매우 부도덕한 일을 감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더군다나 선진국의 부는 후진국들을 착취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자본주의의 민낯에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부를 창출하는 가장 효율적인 동력원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본주의 때문에 부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극소수였고, 대다수의 사람들의 희생이 없다면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살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말해, 잘사는 나라의 국민들은 못사는 나라의 국민들의 희생을 담보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이고, 잘사는 나라 속에서도 몇몇 부자들의 풍요를 위해서 대다수 국민들의 희생을 강요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모두가 함께 잘살 수는 없는 것일까? 모두가 공평한 부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시 '공산주의의 부활'이 필요한 것일까? 마르크스는 일찍이 '자본주의 성자의 끝'은 완전한 공산주의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정답이 아니고, 올바른 대안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렇다고 다시금 '전쟁의 광기'를 되살려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도 잘 안다. 유일한 방법은 '기술 혁신'뿐이다. 쉽게 말해, 이익을 창출하는데 이전보다 더 효율적인 기술을 도입해서 '원가 절감'하고, '성능 향상'을 도모해서 다른 상품보다 '경쟁력'을 높여 수익을 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는 것을 잘 안다. 단지 그게 힘들기 때문에 골머리를 썩히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전세계는 엄청나게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우려스러운 점은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경쟁력을 선점한 '기존의 강대국'들이 최근 경제위기를 맞이하면서 '기술 혁신'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펼쳐지고 있어 문제다. 미국의 트럼프는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관세수입'으로 극복(?)하겠다며 연신 똥볼을 차고 있고, 러시아의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서 경제위기를 감추고 국뽕으로 국민들의 눈을 가리려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중국의 시진핑은 패권국가로 거듭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지만 부도덕적인 이미지를 개선하지 못해 국제적 밉상으로 낙인이 찍혀 왕따를 당한 화풀이로 만만한 나라를 상대로 힘자랑하기 바쁘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 이후로 별다른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지만, 다카이치 총리는 극우보수의 결집을 돌파구로 삼아 '전쟁 가능한 국가'로 되돌아가기 위해 일본 국민들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그로 인해 일본 국민들은 더욱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런 어려움 뒤에 '위대한 일본'을 만드는 일에 일조(?)하고 있다는 세뇌를 당한 듯,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묵묵히 국가정책을 따를 뿐이다. 과연 깨어 있는 일본국민은 몇이나 있을까? 그리고 있더라도 그들이 일어나서 국가에 저항하는 일에 앞장을 설까? 일본의 선택은 과연 어떨지 궁금하지만, 기대는 하지 않는다. 애초에 일본은 그런 저항을 해본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대로 일본이 전쟁 가능한 국가로 변신하는데 지켜보기만 해야 할까? 그건 아니다. 가장 가까운 대한민국이 결코 호락호락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실력'으로 보여주면 된다. 일본은 강한 자 앞에서 철저히 복종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약한 모습을 보여주면 절대 안 된다. 일본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면 그 순간 잡아먹히기 때문이다.

이게 자본주의의 실체다. 오직 '실력'만이 이득을 챙길 수 있게 해주고, '도덕'은 알고도 애써 눈을 감는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폐기처분해야 마땅할까?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재까지 '부를 창출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딴에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비정한 경제체제를 좌시할 수는 없다. 실력을 키워 더 많은 부를 얻게 만들지만, 도덕적으로 해이해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나만 잘살기를 바라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모두가 잘살 수 있는 방법을 도모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하나뿐인 지구의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 동식물을 비롯해서 약자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해서 얻는 수익창출 방법은 되도록 지양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피치 못하게 '약자의 희생'이 발생했다면, 마땅히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도 당연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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