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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도라 문, 인어와 헤엄치다 ㅣ 이사도라 문 시리즈 16
해리엇 먼캐스터 지음, 심연희 옮김 / 을파소 / 2024년 1월
평점 :
<이사도라 문, 인어와 헤엄치다> 해리엇 먼캐스터 / 심연희 / 을파소 (2023) [원제 : Isadora Moon Under The Sea(2022)]
[My Review MMCXLV / 을파소 17번째 리뷰]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이번에도 '인어 마리나'가 등장해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마리나가 이사도라를 초대해서 '바닷속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에피소드를 진행하는데, 놀랍게도 '마리나'가 주인공이 아니었다. 또 다른 인어 '에메랄드 공주'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 인어가 앞으로 <이사도라 문> 시리즈를 이어 <프린세스 에메랄드>라고 하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은 뒤에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미 또 하나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바로 <마녀 요정 미라벨>도 있었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해리엇 먼캐스터 작가의 소설은 '혼혈'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끌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홈페이지 주소에 'uk'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면 '영국 작가'인 듯 싶다. 다른 작품도 많은 것 같으니 기회가 닿으면 죄다 읽어볼 작정이다. <이사도라 문> 시리즈가 얼마 남지 않아서 후딱 읽고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는데, 혹 떼려다 혹을 더 붙이고 만 셈이 되었다. 내가 이래서 리뷰어 활동 20년 만에 '읽을 책 목록'만 산더미처럼 늘어나고 말았다. 암튼,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는데, 해리엇의 작품 세계 가운데 <이사도라 문> 시리즈에서 파생된 작품들은 뱀파이어요정이나 마녀요정과 같은 종족 간의 '혼혈'을 다루고 있거나, 인어 공주 델피나의 아빠와 에메랄드의 엄마가 '재혼'을 했기에 에메랄드도 평범한 인어였다가 새아빠가 인어 세계의 왕이었기 때문에 새로 공주가 된 것이다. 뭐 자세한 이야기는 <프린세스 에메랄드> 시리즈를 통해서 이야기 하도록 하겠다.
이처럼 '혼혈'을 이야기의 소재로 삼은 것은 영국 사회가 '다인종 다문화 사회'이기 때문일 것이라 짐작한다. 요즘 같은 세계화가 무르익은 시대에 어느 나라든 '다문화 사회'가 아닌 나라가 없겠지만,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제국주의 시절에 전세계에 식민지를 거르렸었고, 현재도 '영연방 국가(과거에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이 독립하여 세운 국가)'들과 친목을 다지며 잘 지내고 있다는 사실에서 '소설과의 유사점'을 착안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사도라 문> 시리즈에서 이렇게 다양한 종족들이 별다른 갈등도 없이 사이좋게 지내며, 심지어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과도 잘 어울리며 지낸다는 설정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영국이 과거에 저지른 '나쁜 행위'를 무마하기 위해서 '과도한 설정'을 하고 허물을 애써 덮고 '포장'하기에 급급했다는 비판을 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그런 비판을 할 정도로 '영국의 역사'를 세세히 알고 있지 못하고, 영연방국가들의 외교 관계에 대해서도 빠삭하게 알고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사도라 문> 이야기의 큰 장점은 '큰 갈등' 없이 밋밋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 같지만, 그 평화로움(?) 속에서 오히려 '더 큰 감동'을 얻게 되는 장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소소한 행복의 소중함' 말이다. 별다른 일도 발생하지 않고, 사건이라고 해봐야 크게 문제 삼을 것도 없는 아주 작은 소동들이 벌어질 뿐이지만, 아직 작고 어린 '이사도라 문'에겐 심각한 문젯거리로 보일 수도 있다. 이를 테면, 오래된 성으로 견학을 갔는데 '꼬마 유령'을 만나서 즐겁게 놀았다는 이야기 말이다. 학생 신분으로 '체험학습'이라는 목적을 외면하고 '딴짓'을 하다가 작은 소동을 마주친 것인데, 그마저도 뱀파이어요정이기 때문에 유령을 보고도 인간처럼 놀라거나 기절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정말이지 밋밋하고 싱겁기 그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작은 소동에서 어린이독자들은 '소중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꼬마 유령이 늘 외롭게 지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꼬마 유령은 간간히 찾아오는 인간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서 '나타났을' 뿐인데, 인간들은 유령이 나타났다며 기절하고 도망가기 바빴다. 그런데 이런 사실 뒤에는 '꼬마 유령이 무척 외로웠다'는 사실이다. 놀래키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고, 그저 함께 놀고 싶었던 것 뿐이다. 이런 사실을 발견한 어린이독자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자신의 주변에 '꼬마 유령'처럼 홀로 외롭게 지내는 친구는 없는지 찾아보지는 않을까? 해리엇 먼캐스터 작가는 바로 이런 이야기를 쓴다. 아마도 '다문화 사회'가 일상으로 펼쳐지는 영국에서 모두가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들의 목소리'에 경청하는 자세가 소중하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지 않은가?
이번 에피소드에서도 '재혼 가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새아빠의 딸 델피나 공주와 새엄마의 딸 에메랄드가 재혼을 해서 '새로운 가족'이 형성되었다. 더구나 새아빠가 인어 세계의 왕이기 때문에 이번 재혼으로 새엄마는 '왕비'가 되었고, 에메랄드도 '공주'라는 신분을 새로 받게 된 것이다. 물론 에메랄드에게는 '친아빠'가 살고 있다. 그리고 친아빠의 새여자친구도 있고 말이다. 꽤나 복잡한 구조를 이야기하는 것이 해리엇 작가의 특색인 듯 싶지만, 그런 복잡한 구조가 '큰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바로 '에메랄드'와 '이사도라'의 갈등이 크게 부각 되었다. 에메랄드가 심한 장난을 치고 성격도 이상하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델피나 공주와 사사건건 부딪히는 장면이 연출되었고, 델피나와 친한 마리나는 델피나를 위로하면서 에메랄드를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로 몰아붙이기까지 한다. 마리나가 초대한 이사도라도 영문도 모른 채 '이상한 행동'만 일삼는 에메랄드를 전혀 이해할 수 없어 그저 '못된 아이'로 오해하고 말이다. 그러다 파티가 끝나고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에메랄드가 혼자 울고 있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이사도라는 에메랄드를 위로해주게 되고 둘은 '이상한 사건(?)'에 휘말려 깜깜한 바닷속으로 모험(?)을 떠나게 되는데...
어린이에게 어른들의 세계는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특히 '이혼과 재혼'이라는 제도는 어린이들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올 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뒤바뀌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분명 '아빠와 엄마'는 있는데, 더는 '함께 살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첫 번째 충격을 준 것으로 모자라, 본 적도 없는 낯선 사람을 '새아빠와 새엄마'로 불러야 한다고 두 번째 충격을 준다. 그리고 세 번째 충격은 '본 적도 없는 형제자매'가 새가족이랍시고 등장하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을 천천히 진행되고 아이가 직접 '선택'하게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기도 하지만, 대개는 돌발상황처럼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재빨리 처리해버리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 과정은 어린이에게 정말 감당하기 힘든 충격일 뿐이다. 에메랄드의 경우가 바로 이렇다. 엄마와 아빠가 왜 헤어지는 결정을 한 것인지 이해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엄마에게 새아빠라는 존재가 등장하고, 아빠에겐 새여자친구가 등장한다. 에메랄드는 졸지에 두 명의 아빠와 두 명의 엄마가 생기는 셈이다. 그리고 엄마가 낳지 않은 형제자매를 받아들여야 하고, 엄마가 낳은 형제자매라도 아빠는 다른 '씨 다른 형제자매'다. 또한 아빠쪽에서도 '본 적도 없는 형제자매'를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고, 새엄마가 낳은 형제자매도 엄마가 다른 '배 다른 형제자매'를 인정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쯤 되면 머리가 돌아버릴 지경이지 않은가. 그런데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에메랄드, 본인'은 너무나도 혼란스러운데 어른들은 나름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혼란 상태가 지속되면 어린 자녀는 어른들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고 '불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해리엇 작가의 작품속에서는 '이런 복잡한 일련의 사건'은 싹 사라지고, '복잡한 구조'만 남아 혼란스러움을 전해주지만, 그 속에서 나름의 평화와 소소한 행복을 찾아내며 아름다운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이것이 해리엇 작가만의 매력 포인트라고 할 수 있겠다. 어린이 독자들도 해리엇 작가의 이런 점을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복잡한 어른들의 세계에서 탈출해서 '아름다운 요정과 놀라운 뱀파이어가 함께 어울어져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곳에서 포근함을 느끼고, 그 속에서 소소한 행복감을 찾아내어 마음의 평안을 얻고 따뜻해진 마음을 만끽하게 해주는 즐거움을 맛보고 있는 것은 아닌 지 새삼 느껴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