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5 - 일통으로 가는 길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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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5 : 일통으로 가는 길>  사마천 / 이희재 / 휴머니스트 (2020)

[My Review MMXCVIII / 휴머니스트 47번째 리뷰] 기원전 221년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 제국이 탄생한다. 하, 은, 주 이후 '춘추전국'으로 뿔뿔히 흩어졌던 제국을 다시 하나로 일통한 최초의 황제가 등장한 것이다. 그래서 진왕 영정은 '최초의 황제'라는 뜻으로 '시황제'라 불렀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진시황제'가 바로 그다. 하지만 통일의 업적을 '진시황제'에게서만 찾으려고 하면 안 된다. 그가 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기 위한 기틀을 닦아 놓은 '진왕'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진 효공은 '상앙'을 등용해 변법을 시행해서 진나라를 강대국으로 발돋움하게 만들었다. 그 다음, 진 혜문왕은 '장의'로 하여금 연횡책으로 '소진'이 추진한 6국의 합종책을 차례차례 무너뜨렸다. 그리고 진 소왕은 '범저'를 기용해 '원교근공 정책'을 추진했고, 이를 기회로 삼아 '장평대전'에서 조나라를 상대로 대승을 거두어서 사실상 진나라가 일통을 하기 위한 기선제압을 다 이루었다. 이런 역대 왕들의 업적이 없었다면 시황제의 발빠른 '통일 업적' 또한 이루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나라가 중국 최고의 통일 제국을 완성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많은 것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가장 근원적인 원인은 바로 '뛰어난 인재'를 바로 등용하고, '좋은 정책'이라면 바로 써먹을 수 있었던 '실용주의'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전국시대에는 전국칠웅들이 시도 때도 없이 야욕을 충당하기 위해 '전쟁'을 일삼던 시기였다. 그렇기에 가장 절실했던 것이 바로 '뛰어난 인재'였다. 그 중에서도 진나라는 '상앙', '장의', '범저', 그리고 '이사' 등 역대 재상을 지낸 인물만 거론해도 얼마나 제대로 영입했고, 곧바로 정책추진을 실행했는지 잘 알 수 있다. 더구나 이들은 모두 '외국인 출신'이었다는 점이다. 춘추전국시대에는 '능력'을 펼 수 있는 곳이면, 그곳이 '조국'이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해 최고의 능력을 펼쳐냈었다. 그만큼 각국 간의 경쟁이 심화된 탓도 있었지만, '최고의 능력'을 선보이지 않으면 바로 죽임을 당하던 엄혹한 시절이기도 했다. 앞서 열거했던 상앙도, 장의도, 그리고 이사마저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지 않았던가 말이다. 겨우 범저 한 명만이 '물러날 때'를 알고 천수를 누리다 병들어 죽었을 뿐이다. 단지 그들의 운수가 사납고 시절이 하수상한 탓에 그랬다기보다는, 그 시절에는 능력 있는 인재끼리의 경쟁도 심했고, 그 덕분에 나에겐 쓸모가 없더라도 남에게 좋은 일을 시켜줄 수 없다는 논리가 강하게 작용한 덕분에, 권력에서 내쳐지는 순간 그냥 '죽음'을 선사하는 것이 국가로서도 최고의 이득이라는 계산(?)이 나름 섰기 때문일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한비자>의 주인공 '한비'다. 그는 순자의 문하에서 이사와 함께 동문수학한 사이였지만, 학업경쟁에서는 이사보다 한비가 늘 우수했더란다. 그가 쓴 <한비자>는 상앙이 내세운 '법가사상'을 뛰어 넘을 정도로 우수하다고 정평이 났던 터라 진시황도 일찍이 '한비'와 만나 도움을 얻고 싶다고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한비에게는 큰 약점이 있었는데, 심한 말더듬이였다고 한다. 그래서 수려한 '글발'에 비해서 어눌한 '말발'을 사용하는 모습에 실망한 진시황의 마음의 빈틈을 파고들어, 당시 재상으로 있던 이사는 한비를 향한 시샘을 감추고, '한나라 첩자'라는 누명을 씌워 감옥에 가둬버리고 만다. 하지만 영민한 임금이었던 진시황이 한비를 첩자로 내몬 정황의 수상함을 눈치챌 것을 우려해서, 이사는 친구였던 한비에게 '독약'을 슬그머니 건네준다. 한비는 감옥에서 독약을 받아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잠깐의 치욕을 참지 못하고 독약을 먹고 자결하고 만다. 이사는 친구였던 한비의 '꼿꼿한 성격'까지 간파하고 일을 저지른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라도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만이 자신이 살 길이라 여겼던 살풍경한 당시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중국인들이 고대사를 자랑하면서 대놓고 드러내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의협'이다. 진시황이 통일의 위업을 발빠르게 달성하게 만든 것도 바로 '의협의 대명사'로 불리는 형가의 진시황 암살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형가에 관한 이야기는 앞서 장예모 감독의 중국영화 <영웅>을 이야기하며 자세히 풀어놓았기에 이번엔 패스하겠다. 형가 이야기를 빼놓고도 '의협'을 논할 수 있는 대목은 너무 많으니까 말이다. 이 책에서도 소개된 '위 신릉군'과 '초 춘신군'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조나라를 구하고자 원군을 보내 '조, 위, 초 연합군'이 진나라가 자랑하는 무적의 군대를 상대로 대승을 거둔 일은 사마천도 <사기>에서 매우 극찬한 대목이기도 하다. 사실 이 연합군이 탄생하기까지 진나라와 조나라 간에 벌인 '장평대전'은 너무나도 참혹한 역사를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대전에서 승리를 거둔 진나라의 장수는 '백기'였는데, 조나라 군대 40만 명을 산 채로 포로로 잡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대승이었다. 이런 참패를 겪기까지의 과정도 참으로 긴 사연이 있지만, 여기선 결론만 얘기해서, 대승을 거둔 '백기' 장군은 수많은 포로를 재우고 먹이며 진나라로 돌아가는 길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여기고, 조나라 포로 40만 명을 산 채로 땅에 매장을 시켜버리는 잔혹한 짓을 벌였기 때문이다. 전쟁에 나서서 맞서 싸우다 죽이고 죽었다면 그저 치열했고, 힘겨운 승리였다고 평가하고 말았을 것을, 패배를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포로가 된 조나라 장병들을 저항하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생매장'을 해 죽여버리는 만행을 저질렀으니, 조나라 사람들의 원한이 어느 정도였겠느냔 말이다.

그런 까닭에 진 소왕이 범저를 앞세워서 '원교근공책'을 밀어붙이며 6국을 차례차례 압박을 가하다 '장평대전'에서 대승을 거둔 뒤에 조나라는 그야말로 허약해져서 후하고 불면 바로 꺼져버릴 것 같은 바람 앞의 촛불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 가려린 목숨줄을 끊어버리기 위해 진 소왕은 조나라를 침공했는데, 조나라 군대는 무기가 떨어지자 나무를 깎아 창을 만들고, 화살이 떨어지자 돌을 손에 들고서 진나라 군대와 맞서 싸웠다. 또한 조나라 백성들은 성 안의 식량이 떨어져 굶주리자 서로의 아이를 바꾸어서 배고픔을 달래며 처절하게 버티고 또 버티고 있었다. 그러자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위나라의 '신릉군'과 초나라의 '춘신군'은 조나라와 합종 약속을 맺은 것을 주장하며 속히 '원군'을 보내자고 주장하지만, 강대국 진나라의 눈치를 보던 위나라와 초나라의 '친진파 세력'에 의해서 원군 보내는 일을 망설이게 된다. 그러자 신릉군과 춘신군은 '의협'을 내세우며 자국의 군대가 아닌 '개인적인 식객들'을 동원하여 이른바 '의로운 군대'를 조직해서 위나라와 초나라의 임금과 반대세력을 적으로 만들면서까지 도우려 한다. 그렇게 '조, 위, 초 연합군'이 조성되자 낙승을 거둘 것으로 여겼던 진나라 군대는 거듭 패배를 당하며 물러나게 된다. 이렇게 조나라는 신릉군과 춘신군의 '의협'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게 된다.

그런데 이게 정녕 위나라와 초나라에 도움이 되었을까? 결론만 말하자면, 조나라를 멸망시키지 못한 진나라 군대는 방향을 틀어서 초나라를 향했고, 그로 인해 초나라는 엄청난 영토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진왕 영정(훗날 진시황제)이 13살에 왕위에 오르고 난 뒤에 10여 년 뒤인 기원전 230년 한나라, 기원전 225년 위나라, 기원전 223년 초나라, 기원전 222년 조나라와 연나라, 그리고 기원전 221년에 제나라를 마지막으로 차례차례 멸망하고 만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인물열전'을 통해서 의협을 높이 사고, 의로운 일에 대해 호평을 남기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그렇게 높이 샀던 '의협의 결과'는 결국, 조국의 멸망만 앞당겼을 뿐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분석하는 도구로 '현미경'과 '망원경'을 예시로 드는 까닭이 있다. '부분'을 강조할 때와 '전체'를 아우를 때 '같은 역사'일지라도 '다른 평가'가 내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형가도 칭찬하고, 진시황도 칭찬하는 대목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형가의 의협도 좋아보이고, 시황제의 일통 위업도 엄청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망원경으로 전체를 살펴보면, 형가는 암살자로 시황제를 죽이려 들었다. 그렇다면 누구를 어떻게 평가하는 것이 옳은 것이냔 말이다. 양쪽 모두를 극찬한 사마천의 관점에서 보면, 좋은 사람이 훌륭한 사람을 암살하려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훌륭한 사람이 좋은 사람에게 죄를 물어서 죽여버리게 된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평가 기준은 다르다. 그때 그때 달라지는 기준을 기준이랄 수 있겠는가 말이다. 물론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사안이긴 하지만 말이다.

물론, 이랬다 저랬다 헷갈리게 서술하긴 했지만, 이런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 사마천에게 웬지 더 많은 정감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뭐, 나중에 서술되겠지만 '이릉전투'에서 항복을 한 장수를 편들다 죽음보다 치욕스런 '궁형'을 받게 된 사마천이 그 '항복한 장수의 아버지'도 편들면서 엄청 훌륭한 인물이라고 서술한 내용을 읽다보면, 사마천, 자신이 억울한 형벌을 받았다는 변명을 늘어놓기 위해 특정 인물에게 도에 넘치는 과찬을 하는 느낌마저 들곤 한다. 그렇게 뛰어난 업적 같지는 않은데도 칭찬에 칭찬을 거듭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음 책에서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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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4 - 난세의 인걸들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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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4 : 난세의 인걸들>  사마천 / 이희재 / 휴머니스트 (2020)

[My Review MMXCVII / 휴머니스트 46번째 리뷰]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한마디로 '어지러운 시대'다. 흔히 말하는 '난세'를 이르는 말이다. 특히, 전국시대로 불리던 시절에는 매년 전란이 이어지다시피해서 수많은 재물이 파괴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농사를 지을 젊은이들이 전쟁통에 동원되는 바람에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어서 흉작이 되어 한 마을 통째가 굶어 죽는 일이 다반사라 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제자백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재'를 소중히 여기던 시절이기도 했다. 군웅할거가 일상처럼 여겨지던 때라 한 나라를 부국강병으로 이끌고, 적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라면, 비록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통치권을 맡기고 재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서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들 하는 것이다. 능력만 갖추고 있다면 누구라도 능력에 걸맞은 출세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국시대에는 단연코 '진(秦)나라'가 가장 강성했다. 그래서 진 나라를 뺀 나머지 여섯 나라가 '합종책'을 마련하여 진 나라의 강한 힘에 대항하여 여섯 나라가 힘을 합치는 모양새를 보여주었다. 이를 강력하게 주장했던 이가 바로 지난 3권에서 소개했던 '소진'이다. 이에 맞서 진 나라는 여섯 나라가 합종하는 것을 막고, 한 나라씩 각개격파를 하기 위한 계책을 내세웠는데, 그게 바로 '연횡책'이다. 바로 '장의'가 주장했던 방법인데, '연, 제, 조, 위, 한, 초'를 따로 개별적으로 연합을 맺어서 다른 나라와의 결속력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여섯 나라 중에서도 진 나라와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는 국력을 가진 나라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초 나라'와 '제 나라'였다. 이 두 나라는 드넓은 영토와 비옥한 곡창지대를 갖고 있었기에 탄탄하였고, 특히나 걸출한 '인재'가 참 많은 나라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시절에는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능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스카우트(영입)'를 할 수 있던 때였기에 '자국의 인재풀'만으로 국력을 논할 수는 없었지만, 초 나라와 제 나라는 인구 면에서도 풍요로운 지역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 덕분에 진 나라는 초와 제를 공략하기 위해서 주변 국가였던 조, 위, 한, 연 나라를 자주 구워 삶게 되는데...

가장 먼저 제 나라의 맹상군 전문이란 인물을 소개한다. 맹상군이 유명한 까닭은 바로 3000여 명이 넘는 식객을 거느릴 정도로 유명세를 탔기 때문이다. 고대의 '한 집안'에 3000명의 여행객이 투숙할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만 해도 놀랄 일인데, 그들이 한 데 모인 까닭은 바로 '맹상군'을 진심으로 존경하기 때문이란다. 그렇기에 맹상군은 제 나라의 왕족도 아니지만 왕족보다 더 높은 위세를 떨치는 귀족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제 나라 임금이 맹상군을 좋아할 수 있었을까? 임금인 자신보다 더 인기도 많고, 재산은 더욱더 많은 것처럼 보일 정도인데 말이다. 

허나 똑똑한 임금이라면 이런 맹상군을 신하로 거느릴 수 있는 자신의 위치를 탄탄하게 만들어서, 감히 적국이 제 나라를 함부로 넘보지 못하게 만드는데 힘을 모았을 것이다. 그러나 진 소왕이 어질기로 유명한 맹상군의 소식을 듣고서 맹상군을 굳이 보고 싶다고 초청장을 보낸다. 강대국인 진 나라가 하는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전쟁'이 틀림 없다. 그렇다고 맹상군을 순순히 보낸다면 진 나라는 맹상군에게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씌어서 죽여버리고 말 것이다. 그래야 진 나라에 위협이 될 소지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는 계산에서 말이다. 그걸 아는 제 민왕이지만, 그 말을 따르자니 자존심이 상하고, 따르지 않자니 보복이 두렵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약소국의 설움에 고민에 빠지고 만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맹상군은 자청하여 진 소왕의 초청을 받겠다고 나선다. 분명 강대국의 횡포일 게 뻔하고, 간다면 거의 죽은 목숨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직접 가지 않는다면 일을 해결할 수 없으니 직접 나선 것이다. 그렇게 진 나라에 도착한 맹상군은 진 소왕의 눈치밥을 먹으며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결국엔 진 소왕과 진 나라 신하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서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어질기만 하고 지혜가 부족했던 맹상군은 진 나라를 온전히 탈출할 묘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렇게 속수무책에 빠진 것은 맹상군과 동행했던 식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계명구도'라는 고사성어가 나온다. '계명'은 닭 울음소리를 잘 내던 식객이었고, '구도'는 개소리를 잘 내던 도둑 출신 식객을 일컫는다. 맹상군은 이런 비천한 사람들에게도 자신이 먹는 밥과 똑같은 음식을 내어주며 극진히 대접했기에 어질다는 명성을 쌓았던 것이다.

그럼 맹상군이 위기에 처하자 이처럼 비천한 신분의 두 사람에게 목숨을 살릴 방도를 찾게 되었던 것일까? 그건 바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상황에 처하게 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급할 때 잡은 지푸라기가 때로는 큰 힘을 발휘하는 일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맹상군이 진 소왕의 명령에 의해 억류되자 맹상군은 진 소왕의 애첩에게 달려가 살려달라 애원을 하게 된다. 그때 애첩은 맹상군이 가져왔다는 '여우 가죽 외투(호백구)'를 입어 보고 싶다면서 달라고 한다. 그런데 이미 그 선물은 진 소왕에게 받친 뒤였기에 난감했던 것이다. 똑똑하다는 인재들이 골머리를 썩히고 있을 때, 도둑 출신이었던 '구도'가 나서며 호백구를 다시 훔쳐서 가져오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구중궁궐의 삼엄한 경계를 뚫고서 호백구를 들고서 유유히 빠져나온다. 그렇게 애첩에게 선물공세를 하고 나서야 간신히 억류 상태에서 벗어난다. 애첩이 진 소왕의 침실에 들어서 맹상군을 살리라고 애원한 덕분이다. 간신히 억류된 몸에서 벗어난 맹상군은 그 길로 한밤중에 진 나라 국경관문인 '함곡관'에 도착해서 문이 열리기만 기다렸지만 진 나라의 법에는 '첫 닭이 울기 전'에는 성문을 절대 열 수 없다고 한다. 진 나라 법은 사소한 것이라도 어기면 죽음이었기에 맹상군이 아무리 문지기에게 뇌물을 주어도 요지부동이었던 것이다. 그때 '계명'이 나서며 닭 울음소리를 내자 온 동네 닭이 깨어나 함께 울었다고 한다. 그러자 문지기도 아침이 온 줄 알고 관문을 열어주었고, 그 길로 맹상군은 국경을 넘어 제 나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진 소왕도 뒤늦게 맹상군을 풀어준 일을 후회하고 급히 군대를 보내 다시 잡아들이라고 보냈는데, 굳게 닫혀 있어야 할 함곡관이 활짝 열려 있어서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맹상군은 어떤 인물인 것 같은가? 대단한 인물임에 틀림 없다. 오늘날에도 권력과 재물을 엄청나게 가진 이들이 많은데, 이들이 맹상군 같이 수많은 '인재풀'을 가동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맹상군이 뛰어난 인물인 까닭은 수많은 식객을 대접하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정도 힘을 가지고 있으면 누구나 했을 법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맹상군이 뛰어난 인걸인 까닭은 다름 아니라 인재를 가리지 않고 소중하게 대우했기 때문이다. 바로 '계명'과 '구도' 같은 별 볼 일 없는 사람에게까지 소홀히 하지 않고 두터운 '투자(!)'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도 모면할 수 있는 길을 제공받게 된 셈이다. 넷플릭스가 '케데헌'에 투자한 것도 이와 비슷한 면모가 있다. '케데헌'의 제작기간은 무려 7년이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이면 2018년으로 '팬데믹 이전'이었고, 그때에는 '케데헌의 성공 가능성'을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넷플릭스가 직접 제작한 것도 아니고 '소니'라는 외주업체에서 기획투자를 제안받고 제작비의 일부만 지원했다고 한다. 그러다 팬데믹을 겪으며 제작은 난항을 겪게 되고, '일본회사'의 '중국계 임원들'은 한국의 케이팝과 한국 문화가 노골적으로 등장하는 케데헌의 내용에 딴죽을 걸며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고, 이를 견디지 못한 몇몇 인사들은 퇴사를 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흥행을 예측하지 못한 '소니'는 판권의 대부분을 넷플릭스에 넘기는 조건으로 재계약을 하게 되고, 넷플릭스는 퇴사한 인재들을 다시 불러들여서 '케데헌'을 완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25년 6월에 첫방송을 한 지 두 달 동안 전세계에서 대흥행을 거두며 어마어마한 수익창출을 해낸 것이다. 어떤가? 넷플릭스가 오늘날의 맹상군의 기지를 발휘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편, 진 나라는 초 나라에도 야심을 뻗치게 된다. 이에 맞서 초 나라는 제 나라와 '합종 맹약'을 맺고 진 나라와 맞서게 되는데, 이 동맹을 무력하게 만들기 위해서 진 나라를 계략을 짜게 되고 초 나라 내부에서는 '친진파'와 '친제파'로 갈라져서 갈등을 겪게 되는데, 이때 청산리 벽계수처럼 청렴결백한 인걸이 등장하는데, 바로 '굴원'이다. 굴원은 친진파들이 내세우는 '강대국의 논리'에 맞서서 초 나라도 진 나라에 못지 않은 강대국인데 어찌하여 당당히 맞설 생각은 하지 않고 진 나라와 굴욕적인 외교를 해야 하느냐며 반박을 하면서 끝까지 주장했다. 허나 초 나라의 임금 회왕은 '장의'가 나불거리는 세 치 혀에 속아넘어가 '작은 이익'을 탐하다 끝내 맹약을 맺었던 제 나라와 싸우게 되고, 진 나라에 굴종한 끝에 얻은 것도 없이 전쟁에서 참패까지 하며 수많은 영토를 진 나라에 빼앗기고 만다. 이렇게 굴원의 충정 어린 마음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소탐대실한 상황속에서 굴원은 자신의 충정을 믿지 못하고 도리어 욕을 하는 왕과 신하들에게 보란 듯이 '멱라수'에 몸을 던지며 죽음으로 결백을 증명한다. 초 회왕과 친진파 신하들은 진 나라에게 휘둘릴대로 휘둘리다 전쟁에서도 지고, 땅도 빼앗긴 채, 뒤늦게 굴원이 했던 말이 모두 진실이었음을 확인하고 부끄러워 한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깨끗한 굴원은 참 인재였을까? '독야청청'이란 말이 있다. 혼자 깨끗한 척 해봐야 별 소용 없다는 뜻으로 곧잘 쓰이지만, 한결 같이 푸르고 깨끗하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 것 같은가? 물론 '전지적 시점'에서 모두의 속마음을 알 수만 있다면 굴원 같은 사람은 모두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속'을 어찌 훤히 꿰뚫어볼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자신이 결백하다고 주장하더라도 제 잇속만 챙기는 속 시커먼 쓰레기 같은 놈들 때문에 '결백한 사람'마저 구렁텅이에 허우적거리다 개망신을 당하기 일쑤다. 분명 굴원의 청렴결백은 본받을 만하다. 그러나 그것을 만인 앞에 증명할 길이 없다는 점에서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믿음'을 심어주어야 한다. 당장의 이익에 눈이 먼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해봐야 통할 리가 없다. 이익을 쫓는 사람에게는 더 큰 이익을 보여주어야 겨우 마음을 되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굴원이 '친진파'들에게 제 나라와 맹약을 유지하는 것이 더 큰 이익이라는 점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어필했다면 초 나라가 겪은 참극은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굴원은 그리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고, 겨우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 '하나 뿐인 목숨'을 아낌 없이 버리는 것으로 증명하려 했다. 이게 굴원이 대단한 점이면서 동시에 '깜냥 부족'이었다는 점이다.

만약 굴원이 좀 덜 깨끗한 사람이었다면, '친진파'가 저들의 잇속을 챙기려 나라꼴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으로도 모자라 '매국 행위'를 하려는 것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파헤쳤을 것이다. 물론 그 방법이 더럽고 치사한 방법이었을지언정 진정으로 국가를 위하는 마음이 더 앞섰다면 모든 능력을 발휘해서라도 '매국노'들의 저열한 비리를 밝혀내고 막아내는 방법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굴원의 능력을 더욱더 출중하다고 칭송했을 것이다. 이는 뒤에 소개할 '인상여'와 '범저'의 활약과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다.

인상여는 조 나라의 충신이었고, 범저는 위 나라 신하였다. 하지만 인상여는 죽을 때까지 조 나라에 충성을 다하며 진 나라가 감히 조 나라를 침략하지 못하게 막아서는 업적을 남겼지만, 범저는 위 나라 조국에서 헌신하기도 전에 능욕을 당한 뒤에 진 나라의 재상이 되어 위 나라 멸망에 앞장 선 인걸이었다. 허나 둘의 공통점은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목적한 바'를 달성했으며, 죽어서도 치욕을 당하지 않고 존경받는 위인으로 남았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할 수 있다. 단지, '세 치 혀'의 재주만을 믿고 설레발을 치다가 최고의 영광을 누렸으나 비참한 말로를 겪었던 인재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더욱 칭송받아 마땅하다. 그렇다면 굴원도 칭송받아 마땅한 인재일까? 개인적으로는 아니라고 본다. 개인적으론 존경받아 마땅하였기에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그의 조국인 초 나라는 '굴원의 죽음'과는 별개로 엄청난 치욕을 당했기 때문이다. 굴원의 뛰어난 능력으로 거의 완벽할 정도로 정확한 '예측'을 했음에도, 초 나라는 치욕을 당했다. 물론 굴원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다. 굴원이 지은 죄가 없기 때문이다. 정작 죄를 지은 것은 '매국노'들이다. 그러나 죄를 묻지 않으니 굴원을 칭송해야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굴원의 능력이 부족해서 매국 행위를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굴원은 '동정의 대명사'가 되었다. 뛰어난 능력을 갖췄으나 비극을 막지 못한 '비극의 주인공'으로 말이다. 그래서 위인으로 손꼽기엔 살짝 아쉬울 따름이다. 그나마 '굴원처럼 청렴결백한 사람이 되자'는 캐치프레이즈를 권할 수는 있겠으나, '깨끗함'을 증명할 길도 없는데, 누가 굴원의 됨됨이를 본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단 말인가. 그저 '개인적 성찰' 정도에서 권할 따름이다. 또다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말이다. 그걸 아름답다고 포장하는 것도 위험천만한 일이니 말이다.

마무리하며, 전국시대의 끝은 진시황의 천하통일이다. 그리고 천하통일의 대업을 결정적으로 이룬 것은 바로 '인재영입'이었다. 진 나라가 빠르게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인재등용'에 어느 나라보다 앞장 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인재활용을 제대로 할 수 있었던 뛰어난 안목의 임금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가 <사기>를 읽으면서 수많은 인물들의 활약상을 엿보는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다. 뛰어난 인재는 '고귀한 신분', '엘리트 코스', '부유한 재물'에서 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적나라하게 목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춘추전국시대'였다. 또한, 뛰어난 인재는 '타고난 실력'보다 '끈질긴 노력'이 더 중요하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갈고 닦은 실력'보다 '그 실력에 걸맞은 훌륭한 인품'이 뒤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하나라도 부족한 인재는 한결같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점도 꼭 명심해야 할 점이다. 고전적인 역사서에는 늘 이런 교훈이 담겨 있기에 유념하며 읽어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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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3 - 전국 칠웅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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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3 : 전국칠웅>  사마천 / 이희재 / 휴머니스트 (2020)

[My Review MMXCVI / 휴머니스트 45번째 리뷰] 역사책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수많은 이들이 묻는 질문이고, 그에 대한 해답도 제각각이지만, 꼭 하나로 귀결되는 의견은 있다. '역사는 객관적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쓰는 것이기에 완벽하게 주관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 바로 뒤이어 나오는 반박이다. 그래서 역사책은 될 수 있으면 누가 보더라도 객관적으로 읽을 수 있게 쓰이지만, 독자들은 어쩔 수 없이 '주관적인 역사관'을 고려하면서 되도록 객관적으로 읽으려 수고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상의 모든 역사책이 다 그렇기 때문이다.

그럼 사마천이 쓴 <사기>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고대에 쓰여진 역사책은 대부분 '국가기관'의 주도로 쓰여지기 마련인데, 사마천은 '국가기관'에서 쫓겨난(?) 처지에 있을 때 '개인적인 명예회복(?)'을 위해서 <사기>를 편찬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다른 역사책과 비교해봤을 때에도 사마천의 개인적인 주관이 상당히 많이 서술되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물론, 비교분석을 하기 위해선 '동시대의 역사서술'을 여러 책을 읽고 난 뒤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요즘에는 웬만한 책의 주석에 그러한 비교분석이 수록되어 있는 책들이 많이 있기에 덜 수고스럽게 그러한 사실들을 알아챌 수 있다. 다만, 주의할 점은 그런 '주석'조차 각각의 역사책을 읽고 분석한 저자들의 '주관'이 담겨 있을 수 있으니, 책에 쓰여 있다고 철썩 같이 믿고 그러면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기>를 읽어야 비교적 객관적인 관점으로 쓰여진 역사를 알 수 있단 말인가? 사실 이에 대한 정답은 없다. 수없이 읽고 검토하고, 비판하면서 얻을 수 있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개인적인 의견을 살짝 어필해본다면, 같은 <사기>라도 적어도 3명의 다른 저자가 풀어쓴 역사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까닭은 공자가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三人行이면 必有我師라'고 말이다. 이는 세 사람이 있다면, 그 가운데 나보다 잘난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나보다 못난 사람도 있을 것인데, 잘난 사람에게는 좋은 점을 본받고, 못난 사람에게는 나쁜 점을 경계한다면, 자신에겐 더할 나위 없는 지혜를 얻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를 책에 적용하면, 첫 번째로 읽은 책은 '기준점'이 될 것이고, 나머지 책들은 그 기준점으로 인해 '상중하'로 평가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훗날 자기만의 잣대가 될 지혜로 삼기에 아주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최적의 독서법은 아닐 것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데, 언제 그 정보의 옥석을 일일이 가리며 살아가느냔 말이다. 매우 비효율적이고, 실제로 그럴 시간도 없다는데, 딱히 반박한 답은 없다. 매우 옳은 지적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학문을 하면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오픈AI 시대를 넘어 '자율형 인공지능(AGI) 시대'가 곧 도래한다고 하는데, 모든 판단을 인공지능에게 맡겨버리고 말 것이냔 말이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똑똑해지더라도 '최종 판단'은 인간의 몫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더욱더 정교하고 완벽하게 답을 내릴 수 있는 지혜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인간은 미래사회가 될수록 더 많은 옥석을 가릴 수 있는 혜안을 가지도록 요구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기왕 학업을 한다면 진심을 담아서 올바르게 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지난 번에 '대만작가 장자화'가 집필한 <사기>를 읽었으니, 이번엔 '한국작가 이희재'가 쓴 <사기>를 살펴보려 한다. 두 책 모두 '청소년'을 독자로 상정하고 출간한 책이니 비교하기에도 딱 좋을 것이다. 먼저 대략적인 총평을 한다면, 사마천의 <사기>를 '이해'하기 쉬운 기준으로 책을 고른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무릇 역사책을 읽은 뒤에 감흥을 논하기에 앞서서 '내용이해'가 절대적으로 중요할텐데, 고대 역사의 내용을 읽고 난 뒤에 '무슨 뜻'으로 쓰인 것인지 이해조차 난해하기 십상인데 반해,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전7권)는 만화형식으로 쓰여져 있고, 주요 줄거리에서 바로 '주제'를 뽑아내어서 이해하기에 아주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 챕터마다 맨 마지막에 '사마천의 평가'에 관한 내용이 짤막하게 수록되어 있어서 '사마천의 <사기>'에 담긴 대략적인 '편찬의도'가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고서 <사기>에 담긴 교훈과 더불어 사마천의 집필의도까지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장자화의 사기>(전5권)는 중국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기>에 대한 감상을 충분히 엿볼 수 있고, '3분 키워드' 같은 토막내용을 통해서 '잘못 수록' 되거나 '잘못된 상식' 등의 오류를 바로 잡아주고 있기 때문에 사마천의 <사기>뿐 아니라 다른 역사책도 함께 읽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단지 아쉬운 점은 '대만작가'인 까닭에 중국청소년의 상식선만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때때로 '낯설게만' 느껴지는 대목을 아주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뜬금 없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런 '낯섦' 또한 다수의 정보가 쌓이면 깨알 정보가 되어서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지만, 이제 막 독서를 시작하는 청소년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런 군더더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국 작가의 책을 읽을 땐 이런 점을 고려하며 읽으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자, 서론이 길었다.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3>의 내용이다. 중국의 고대사는 '하, 은, 주'로 시작해서 주 나라를 중심으로 한 봉건체제가 쭉 이어지면서 '춘추전국시대'가 펼쳐졌다가 기원전 221년 진(秦)나라로 통일 되었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그 이전에 삼황오제 시절부터 거론하고 있지만, 그조차 그냥 '하은주'로 퉁쳐도 무방하다. 암튼 대략적으로 기원전 11세기에 주나라가 건국되고, 도읍을 호경에서 낙양으로 옮긴 때부터 '동주시대'라 불리며, 이때를 '춘추시대'라고 부른다. 기원전 770년 경이다. 이때는 수많은 제후국이 등장하는데, 그 중심에는 주나라 천자를 으뜸으로 모시긴 하지만, 일종의 허수아비 왕으로 여길 뿐이었고, 실질적인 권한은 '패자'라고 하는 강성한 제후가 실질적 권한 행세를 하던 시절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그 뒤를 잇는 시대가 바로 '전국시대'인데, 실질적으로 주나라도 사라지고, 전국칠웅이라는 일곱나라의 왕이 서로 패권다툼을 본격적으로 하던 시대라고 이해하면 좋다. 전국칠웅에는 '연, 제, 조, 위, 한, 초, 그리고 진' 있다. 이 시절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전국시대'라고 부른다. 그 가운데 3권에는 크게 '병가', '법가', '종횡가'의 대표적인 인물들의 열전이 수록되어 있다.

먼저, 병가로는 '무패의 전략가, 오기'와 '다리를 잃은 지략가, 손빈'을 다루고 있다. 오기와 손빈 두 사람은 전쟁에 나가서는 패배할 줄 모르는 무서운 지략과 싸웠다 하면 승리를 꿰차는 용맹함까지 갖추고 있는 무장이었지만, 오기는 출세하기 위해서 부모도 모른 척하는 불효를 저질렀고, 심지어 헌신하는 아내마저 죽음으로 내몰았던 '냉혈한'이었다. 그런 그가 전쟁에 나가서는 장군의 몸으로 졸병과 한데잠을 자고, 거친 식사를 하며, 병든 병사의 종기를 입으로 빨아내 병졸들의 신임을 한몸에 사서 오기 장군을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아까워하지 않는 강병을 조련하는데 능수능란한 재능을 선보인 인물이다. 한편, 손빈은 동문수학을 했던 친구 방연에게 속임을 당해 '두 무릎'을 도려내는 욕을 당하고, 불구의 몸이라도 살리기 위해서 돼지똥까지 먹으며 미치광이 짓을 했다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 뒤에는 방연을 향한 처절한 복수를 해내는 처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지혜는 무엇인가? 완벽한 승리를 위한 완전한 계책을 엿보며 '전략적인 지혜'를 깨달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완전무결한 지혜를 가지고 있으면서 어찌 하여 '자신의 신변'을 소중히 하는 데에는 써먹지 못하고, 최소한의 인간관계조차 어그러지게 만들었단 말인가? 병가의 사상이 승패에는 크게 효용가치가 있을지 몰라도,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별다른 지혜를 얻을 수 없다는 점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법가 사상가로 '상앙'을 선보였다. 법치주의를 내세워서 진 나라를 짧은 기간에 다른 제후국보다 월등히 앞선 부강한 나라로 만드는데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런 상앙이 '자신이 만든 법' 때문에 목숨조차 부지하지 못했다는 결말을 마주하면서 법치주의라는 것이 '실용'을 앞세우다보니 '최소한의 인간관계'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대원칙을 고수하다보면, 피치 못하게 '적'을 만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음 왕위'를 이을 태자의 죄까지 공정하게 형벌을 내려서 법의 엄중함을 내세운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태자가 왕위에 오르고 난 뒤에 상앙을 어찌 대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서 조량이란 인물은 상앙에게 조언하길, 덕을 행하고 힘을 멀리하라는 옛말을 들먹이며 상앙의 처지가 아침 이슬처럼 위태롭다고 귀띔해주지만, 상앙은 이조차 무시하고 '법치주의'만 고집하다가 끝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법의 엄정함을 누가 탓하겠는가?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대원칙이 지켜지길 바라마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법이 '공정함'을 잃고, 더 나아가 '도덕'과 '인륜'마저 저버리는 상황을 만든다면 차라리 지켜지지 않는 것만 못한 경우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또한 법을 악용해서 '소수'가 다수를 군림하는 악법을 자행하게 된다면, 그 나라는 필멸하기 마련이다.

마지막으론 '종횡가'의 최후를 아주 잘 보여주었다. 바로 '합종연횡'의 대가로 잘 알려진 소진과 장의다. 사실 '종횡가'라는 이름도 소진이 주장한 '합종'과 장의가 펼친 '연횡'에서 한 글자씩 따와서 만든 이름이다. 이처럼 종횡무진하며 입을 놀려서 권세를 한 몸에 다 가지게 된 부류를 통틀어서 모두 '종횡가'라고 명명한다. 이들을 흔히 '유세객'이라고도 부르는데, 빈털털이 주제에 각국을 떠돌며 그럴 듯한 '입'만 놀려서 출세가도를 달린 사람들이기에 그렇다. 일례로 소진은 여섯 나라의 재상에 오르기 이전에 오랜 유학생활(귀곡자에게 수학했다고 함)을 한 뒤에 무일푼으로 고향에 돌아오니 부모도 실망하고, 형수는 백수라며 놀렸다고 한다. 그 덕분에 온 동네사람들이 소진이 가족친지에게까지 개무시를 당한다며 놀려대곤 했단다. 장의도 귀곡자에게 수학을 한 뒤에 고향에 돌아와 똑똑함을 자랑하다가 한 재상의 잔치에 참가했다가 도둑으로 몰려 죽기 직전까지 몰매를 맞았다고 한다. 그렇게 만신창이가 된 뒤에 집에 도착해서 부인에게 '혀'가 온전한지 묻고서 '혀만 말짱하다'는 대답을 듣고서는 '좋다'를 연발했다고 한다. 소진과 장의는 이런 무시를 절치부심 삼아 '재상의 자리'에까지 오르는데 반석으로 삼았으니, 종횡가의 수완이 정말 좋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수완이 좋은 것과 그들의 최후가 일치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재주가 좋다면 운수도 좋아야 할 것을, 종횡가들은 대부분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경우가 허다하다. 왜 그랬을까? 많은 역사가들은 그들의 신분이 비천한데서 원인을 찾곤 한다. 낮은 신분이었다가 졸지에 '벼락 출세'를 하니 기고만장하고, 그로 인해 주위에 적을 많이 만들어서 권력의 자리에서 내몰리는 순간, 참극을 면치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말이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말재주가 좋은 사람의 최후가 모두 그러하다면, '좋은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은 때때로 행복한 여생을 살기도 한다는 점을 보면 반박하기 쉽다. 그러니 종횡가들이 끔살을 곧잘 당하는 까닭으로 '말재주' 탓만 하기엔 부족함이 많다. 그 좋은 '말재주'로 벼락 출세를 했다면, 자기 주위에 '자기 편'을 많이 만들어 놓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음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결정적 원인이었을 것이다. 무릇 말재주가 좋은 사람들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말재주를 끊임없이 써먹으며 말로써 설득하길 즐기곤 한다. 그로 인해 '권력자의 이익'을 챙겨주는 공을 세운다면 권력자는 종횡가를 중히 쓰곤 하지만, 반면에 그 종횡가와 '말씨름'을 했다가 패배한 이들은 어찌 했을까? 속으로 부글부글 하면서 복수를 다짐하거나, 때로는 종횡가의 주둥이에 휘둘려서 '국가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게 만들었다면 국가적 망신을 당하기 때문에, 그 원한 또한 결코 작지 않다. 그렇게 크고 작은 원한들이 쌓이고 나면 결국엔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종횡가의 사상'을 경계해야 하는 까닭이다.

다음 책에는 '난세의 인걸들'을 소개한단다. 어지러운 세상에 걸출한 인물들은 과연 누가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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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도라 문, 휴가를 즐기다 이사도라 문 시리즈 11
해리엇 먼캐스터 지음, 심연희 옮김 / 을파소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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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도라 문, 휴가를 즐기다>  해리엇 먼캐스터 / 심연희 / 을파소 (2021) [원제 : Isadora Moon Goes on Holiday]

[My Review MMXCV / 을파소 12번째 리뷰] 어린이책을 읽으며 논술수업을 준비하다 보면 늘 두 가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기 마련이다. 첫째는 '재미'다. 물론 어른을 위한 수업도 재미가 없으면 수업의 효과는 반감이 되고 만다. 하지만 어린이들은 '재미가 전부다'. 모든 수업은 '재미'가 없으면 시작도 할 수 없고, 아무리 좋은 수업 목표를 잡았다고 하더라도 말짱 꽝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재미난 책을 고르고 또 고르지만, 문제는 또 하나가 있다. 바로 책의 주제가 어린이들에게 딱 들어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린이도 깊이 공감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바로 잡기 위한 의지를 불태울 수 있게 하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그래서 둘째는 다름 아닌 '교훈'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좋은 교훈이라도 '교장선생님 훈화'처럼 한 귀로 듣고 한 귀를 흘려버려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어린이도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주제가 담긴 어린이책을 골라야 비로소 논술수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재미와 교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책이 무엇일까? 다름 아닌, <이사도라 문, 휴가를 즐기다>다. 이 책의 재미는 벌써 11번째 시리즈라는 점만 보아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한 번도 안 읽은 어린이는 있어도, 딱 한 권만 읽은 어린이는 없다"는 책이 바로 '이사도라 문' 시리즈다. 이번에는 오랜만에 이사도라의 가족 모두가 즐거운 휴가를 떠나게 되었다. 그것도 온 가족이 공짜로 비행기를 타고 해변을 낀 호텔로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여름, 바닷가, 그리고 아름다운 호텔! 이 정도면 최고의 여름 휴가 아니겠는가? 나는 모솔이라 가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쿨럭쿨럭

자, 그럼 이렇게 완벽한 낭만이 가득한 '휴양지'에서 이사도라 문이 마주하고, 어린이들에게 심어줄 '교훈'은 과연 무엇일까? 그걸 밝히기에 앞서 이사도라 문은 바닷속에서 이미 만났던 '인어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된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둘은 마법 소라의 도움을 받아 바닷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게 된 이사도라와 마음껏 수영을 즐기며 신 나는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그때 도움이 필요한 바다거북을 만나게 된다. 온 몸에 그물을 휘감고서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마지막 숨을 몰아쉬고 있는 가엾은 바다거북을 발견한 것이다. 이사도라와 인어 친구는 서둘러 그물을 끊어버리고 바다거북을 살려내지만, 조금만 늦었다면 어떤 광경을 보게 되었을까? 상상하기도 싫은 장면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이쯤 되면 어린이들이 마주할 '교훈'이 무엇인지 감이 오지 않는가? 바로 바다에 함부로 버려진 어마어마한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로 이 책의 주제다. 지금도 태평양 한가운데 커다란 섬처럼 이리저리 떠다니는 '쓰레기섬'에 관한 뉴스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물론, 이 책에는 그런 '정보'가 담겨 있지는 않다. 그러나 논술수업을 준비할 때는 그런 '최신뉴스'도 함께 곁들여서 배경지식으로 쌓을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 바다에 버리는 쓰레기 양이 얼마나 많으면 그 광활한 태평양 한가운데 '쓰레기섬'이 만들어졌겠느냔 말이다. 그것도 한 개가 아니라고 한다. 지금까지 보고된 것만 해도 3개나 된다고 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점점 커지고 갯수가 더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쓰레기섬은 왜 생겨난 것일까? 그건 인간이 쓰레기를 엄청나게 버린다는 사실로 결론 내릴 일이 아니다. 왜냐면 '썩지 않는 쓰레기'를 함부로 버린 결과가 이런 재앙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바로 '플라스틱' 말이다.

그럼 '쓰레기섬'을 발견했으니 치우고 없애버리면 될 일 아니겠는가? 어차피 '쓰레기'로 만들어졌으니 불태워버리면 깔끔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쉬운 일이 아니다. 플라스틱을 함부로 태우면 어떤 결과를 낳겠는가? 바로 '유독 가스(다이옥신)'가 대기에 그대로 방출될 것이며, 거대한 섬 크기를 불태운다면 그 유독 가스의 양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리고 그 유독 가스를 아무런 조치도 없이 흡입한 '생태계의 생물들'은 아주 적은 양만으로도 죽음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럼 불태우지 않는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수거'해서 안전하게 처리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점이 단점이다. 그리고 그 막대한 비용을 어느 나라가 치뤄야 할까? 한두 국가가 해결하기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라 감당할 수 없을테고, 전세계가 모두 합심해서 그 비용을 대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전세계가 얼마씩 걷어야 할지 논의하는데만 수 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쓰레기섬을 수거해서 치우려는 의지도 없어서 결국엔 토론만 하다가 아무런 성과 없이 흐지부지 끝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다고 아무런 대책도 없이 방치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까? 그렇지 않다. 썩지 않고 바다에 그대로 방치된 플라스틱 쓰레기의 운명은 결국 '미세 플라스틱'이 되어 모든 생태계 생물의 몸속으로 돌고 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엄마의 뱃속'에 있는 태아까지도 미세 플라스틱을 품고 있다고 한다. 왜냐면 엄마가 섭취한 음식에 포함된 '미세 플라스틱'이 태아에게까지 전달된 것이라는데, 그게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으면 좋겠지만, 크기가 작은 태아일수록 상대적으로 '미세 플라스틱'조차 미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정말 운이 좋아야 한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엄마가 '해양의 음식'을 섭취하지 않으면 안전할까? 안타깝지만 바닷속 플랑크톤까지 이미 미세 플라스틱이 점령했고, 그 플라크톤을 섭취한 물고기를 바닷새가 먹고, 바닷새가 싼 똥이 육지를 오염시켰고, 육지에서 자란 풀에 미세 플라스틱이 함유되어 있으며, 그 풀을 뜯어 먹은 초식동물과, 그 초식동물을 잡아 먹은 육식동물에 이르기까지 미세 플라스틱이 없는 곳은 존재하지 않을 정도다. 맞다. 이미 '대기중'에도 미세 플라스틱은 가득 찼다. 그래서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우리 몸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 '쓰레기섬'에 이미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을 정도란다. 그 섬에 쥐떼도 살고 있으며, 그 플라스틱 섬은 둥지 삼아 온갖 작은 해양생물들이 서식하고 있어, 그 쓰레기섬을 주변으로 수많은 생물종들이 살아가고 있단다. 더 최악인 것은 그 '쓰레기섬'이 햇볕에 그대로 노출되어서 자연스럽게 파괴되고, 분해되어 '미세 플라스틱'이 점점 늘어나고, 그 안의 생태계를 통해서 점점 더 짙게, 점점 더 광활하게 오염되고 있단다. 이쯤 되면 벌써 재앙 수준으로까지 위험수위가 올라간 상태다. 이런 상태인데도 세계 각국은 아무런 조치도 하고 있지 않다. 지금도 어업활동을 통해서 버려지는 '해양 쓰레기'는 바닷속과 저 깊은 해저까지 차곡차곡 쌓이고 있으며, 태풍과 홍수로 인해서 육지에 방치되었던 '쓰레기'들이 한꺼번에 바다로 밀려와서 그대로 환경오염을 시키고 있다.

그런데 아주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책 <이사도라 문, 휴가를 즐기다>에서도 해결 방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고사리손 같은 어린이들이 직접 나서서 말이다. 바로 이사도라 문 가족과 인어 친구의 가족들이 힘을 합쳐서 '해변 호텔 앞'에다 바닷속 쓰레기를 건져다 쌓아 놓은 것이다. 이렇게 쌓아 놓은 엄청난 양의 쓰레기산을 보면서 무엇을 깨달으면 좋을까? 우리 어린이 친구들은 이미 그 해답을 알고 있다. 문제는 어른들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 우리 어린이들이 커서 어른이 되면 '해결'할 수 있을까? 우리 어린이들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분명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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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화의 사기 5 : 역사에 이름을 새기다 장자화의 사기 5
장자화 지음, 전수정 옮김, 사마천 원작 / 사계절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장자화의 사기 5 : 역사에 이름을 새기다>  사마천 / 장자화 / 전수정 / 사계절 (2018)

[My Review MMXCIV / 사계절 15번째 리뷰] 이 책은 사마천 이 쓴 <사기>에 실린 내용 가운데 '작가 장자화'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다고 여기는 대목을 '간추려서' 옮겨 놓은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마천이 쓴 '원작' 그대로를 옮기지 못하고, 대략적인 얼개가 어그러지지 않을 정도로 '축약본' 형태로 5권을 추려 놓았다. 그래서 어린이 독자들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지만, '원작'의 내용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으면, 짤막해진 줄거리만으로 각각의 역사적 인물의 진면목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편이다. 혹여 이 책을 재밌게 읽고서 <사기>에 관심이 생겼다면 '원본'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아무래도 이 책만으로는 살짝 부족하다. 딴에는 '원전 <사기>'에 잘못된 점을 바로 잡고, '다른 역사서'를 참고하여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어 완성도를 높이긴 했지만, 이 책 자체가 '축약된 내용'이라 인물의 됨됨이를 이해하기에는 부족하고, 널리 유명한 사건만 추려서 늘어놓은 탓에 '변죽'만 들끓는 듯한 느낌을 주어서 아쉬웠다.

암튼, 이 책의 시리즈는 5권으로 마무리했다. 그럼 총정리를 해보자. 사마천은 한 나라 때 사람으로 '역사'를 편찬했지만, 그가 쓴 <사기>는 '유가'적 느낌보다는 '법가'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왜 그랬을까? 아무래도 '국가기관'에 속하지 않고 '개인 관점'으로 역사를 서술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기>가 쓰여진 뒤에 집필된 반고의 <한서>나 좌구명의 <좌전> 등이 모두 '유가'적 관점으로 쓰여진 것만 보아도 그렇다. '국가기관'을 대표해서 집필했거나 '한 나라의 충신 자격'으로 역사를 기술했을 때에는 '유가'를 강조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조금은 '실리적 관점'으로 서술하는 경향을 보여주는 '법가'를 강조하는 기술이 엿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한 고조 유방'이 진시황이 세운 진(秦)을 멸망시키고 한(漢)을 건국했으나, 진시황이 기틀을 세운 '법가사상'을 완전히 몰아내고 '유가사상'만으로 나라를 다스리기 어려웠던 탓에 국가의 큰 틀은 '유가사상'을 따랐지만, 자질구레한 일상의 것들은 여전히 진시황이 터를 닦은 '법가사상'을 크게 고치지 않고 그래도 써왔기에 사마천도 그런 식으로 '역사'를 서술했을 거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런 까닭에 사마천의 <사기>는 유가적으로 숭상 받는 이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유가사상에서는 욕을 들어도 좋을 인물들을 높이 평가한 경향을 엿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협객'을 칭송한 대목인데, 다른 역사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점이라도 봐도 좋을 것이다. 이를 테면, 사람을 죽인 살인자, 남을 다치게 한 강도, 남의 물건을 훔치는 도적, 심지어 불량배나 깡패와 다를 바 없는 인물이라도 '의(義)'를 행했다면 '성인(聖人)' 못지 않은 칭송을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형가'다. 그는 진시황을 암살하려다 실패하자 자결을 한 사람이다. 과연 이런 사람을 높이 평가할 수 있을까?

물론, 진시황을 폭군으로 상정하고, 폭정을 일삼는 나쁜 임금이 천심을 잃고서 나라꼴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으로도 모자라 백정들마저 편히 살지 못하는 무능력한 임금이라면, '암살'을 해도 괜찮다는 논리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개인적인 원한에서 시작한 일이 아니라 천하의 대세를 따르고 만민의 평화를 위해서 결행한 구국의 결단이니 높이 평가해야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인 셈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히틀러, 트럼프, 윤석열, 때려 잡자는 구도와 다를 바가 없으니 마땅한 일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나쁜 놈들은 법과 원칙도 없이 제 맘대로 사람을 죽이고, 나라를 망쳐버릴 수 있어도 착한 사람도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나쁜 놈들을 처단(?)하려 든다면 똑같은 폭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형가가 죽이고자 한 인물이 진정 '폭군'이 맞는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 진시황은 죽어 마땅한 암군이자, 폭군인가? 춘추전국시대는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탄생한 멋진 시대이지만, 영웅의 탄생이 평화로운 시대가 아닌 혼란스런 시대에 등장하기 마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춘추전국시대는 백성들이 평안하게 살기에는 너무 혹독한 혼란기였던 셈이다. 그런 혼란을 일거에 잠재우고 천하통일을 이룩한 진시황, 도량형을 통일하고, 문자를 통합하는 과정을 강행하여 얻은 이득이 분명 더 크다는 점을 들어서 진시황을 폭정을 일삼은 폭군으로 보기보다 희대의 영웅으로 평가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약 그렇다면 '형가'는 위대한 성군을 암살하려 한 '암살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이 갖고 있는 원한도 아닌 '연나라 태자 단'의 원한을 대신 실행에 옮긴 '살인청부업자'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마천은 아무런 원한도 갖지 않은 형가가 아무런 이득도 얻지 않고, 오직 '의'로움만 앞세워서 태자 단과 맺은 언약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암살을 시행하려 했다는 점을 들어서 참으로 뛰어나다고 극찬을 한 것이다. 이런 예는 자주 반복 되고 '중국의 역사학자'들은 은연중에 사마천과 비슷한 논리를 내세워서 '의협의 영웅들'을 양산(?)하는 경향까지 내비칠 정도다. 그 대표적인 예가 <수호전>에서 양산박의 108 도적들을 영웅으로 평가하는 것이고, 일반대중에게는 '무협지'로 대변되는 영웅들이 대개가 다 그런 살인을 눈 감고도 해내는 실력자들이다. 물론, 무협지나 무협영화를 즐겨 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이기에 '의협'을 내세워서 불구대천의 복수를 완수하는 주인공의 고군분투에 열광하던 시절도 있었음을 부정하진 않는다. 솔직히 멋지긴 하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그런 영웅들의 행보가 자못 '유치'하다는 느낌이 부쩍 들곤 했다. 사람의 목숨보다 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 까닭으로 <사기>를 비롯해서 고전에서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대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의로운 죽음으로 오래도록 이름을 날리는 경우가 참 많고 다양하다. 백이와 숙제처럼 두 임금을 모시지 않는 충성스런 행동으로 죽기를 각오한 결의는 고개가 절로 숙연해지기도 하지만, 주인을 살리고자 '천한 목숨'을 희생시켜 '귀한 목숨'을 구하는 행위를 온당케 여기는 대목은 삐딱하게 읽힐 수밖에 없었다. 특히, 여자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행태는 <고전>을 읽으면서도 경계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무튼, 사마천은 <사기>를 집필하면서 유가사상에서 중시하는 '충'을 무턱대고 강조하지 않았다. 임금도 임금다워야 충성을 바칠만 하지, 그렇지 못한 임금은 '의협'의 이름으로 죽여도 좋다는 메시지를 뿌리 깊게 담아놓았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역사서에서는 잘 발견되지 않는 색다른 점으로 봐도 좋다. 허나 '의협'의 이름이라도 해도 될 것이 있고, 해서는 안 될 것이 있는데, <사기>에서는 이를 명확하게 구분 짓지 않아서 <사기>를 제대로 읽지 못한 어중이떠중이들은 '의협'의 이름으로 불의를 저지르면서도 영웅행세를 하는 얼토당토 않는 일이 자행되고 있는 점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오늘날에는 '중국의 고전'을 더욱 제대로 읽어야 한다. 어설픈 중국 '찬양'도 볼 품 없지만, 무지한 중국 '비난'도 꼴불견인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잣대'는 안에서든 밖에서든 올곧아야 쓰임새가 톡톡하기 때문이다. 또한 시대적 한계를 이해하고, '그 시대' 상황에 알맞게 이해하려는 노력은 기울이되, 오늘날에 맞지 않는 것에는 과감히 철퇴를 내릴 자세도 필요하다. 그때 맞다고 지금도 맞지는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때 틀렸다고 지금도 틀리지는 않을 수도 있음을 알고, 올곧은 '잣대'로 <고전>을 즐기면 좋겠다.

이쯤해서 장자화의 <사기>는 마무리하고, 못다한 이야기는 이희재의 <사기> 시리즈에서 하겠다. 아무래도 '대만 작가'가 풀어놓은 관점보다는 '한국 작가'가 풀어놓은 관점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 수월할 듯 싶어서 그런다. 조만간 다시 이야기 물꼬를 터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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