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3 - 전국 칠웅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7월
평점 :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3 : 전국칠웅> 사마천 / 이희재 / 휴머니스트 (2020)
[My Review MMXCVI / 휴머니스트 45번째 리뷰] 역사책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수많은 이들이 묻는 질문이고, 그에 대한 해답도 제각각이지만, 꼭 하나로 귀결되는 의견은 있다. '역사는 객관적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쓰는 것이기에 완벽하게 주관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 바로 뒤이어 나오는 반박이다. 그래서 역사책은 될 수 있으면 누가 보더라도 객관적으로 읽을 수 있게 쓰이지만, 독자들은 어쩔 수 없이 '주관적인 역사관'을 고려하면서 되도록 객관적으로 읽으려 수고를 해야 한다는 점이다. 세상의 모든 역사책이 다 그렇기 때문이다.
그럼 사마천이 쓴 <사기>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고대에 쓰여진 역사책은 대부분 '국가기관'의 주도로 쓰여지기 마련인데, 사마천은 '국가기관'에서 쫓겨난(?) 처지에 있을 때 '개인적인 명예회복(?)'을 위해서 <사기>를 편찬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다른 역사책과 비교해봤을 때에도 사마천의 개인적인 주관이 상당히 많이 서술되었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물론, 비교분석을 하기 위해선 '동시대의 역사서술'을 여러 책을 읽고 난 뒤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요즘에는 웬만한 책의 주석에 그러한 비교분석이 수록되어 있는 책들이 많이 있기에 덜 수고스럽게 그러한 사실들을 알아챌 수 있다. 다만, 주의할 점은 그런 '주석'조차 각각의 역사책을 읽고 분석한 저자들의 '주관'이 담겨 있을 수 있으니, 책에 쓰여 있다고 철썩 같이 믿고 그러면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기>를 읽어야 비교적 객관적인 관점으로 쓰여진 역사를 알 수 있단 말인가? 사실 이에 대한 정답은 없다. 수없이 읽고 검토하고, 비판하면서 얻을 수 있는 지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개인적인 의견을 살짝 어필해본다면, 같은 <사기>라도 적어도 3명의 다른 저자가 풀어쓴 역사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 까닭은 공자가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三人行이면 必有我師라'고 말이다. 이는 세 사람이 있다면, 그 가운데 나보다 잘난 사람이 있을 것이고, 나보다 못난 사람도 있을 것인데, 잘난 사람에게는 좋은 점을 본받고, 못난 사람에게는 나쁜 점을 경계한다면, 자신에겐 더할 나위 없는 지혜를 얻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를 책에 적용하면, 첫 번째로 읽은 책은 '기준점'이 될 것이고, 나머지 책들은 그 기준점으로 인해 '상중하'로 평가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훗날 자기만의 잣대가 될 지혜로 삼기에 아주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최적의 독서법은 아닐 것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는데, 언제 그 정보의 옥석을 일일이 가리며 살아가느냔 말이다. 매우 비효율적이고, 실제로 그럴 시간도 없다는데, 딱히 반박한 답은 없다. 매우 옳은 지적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학문을 하면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오픈AI 시대를 넘어 '자율형 인공지능(AGI) 시대'가 곧 도래한다고 하는데, 모든 판단을 인공지능에게 맡겨버리고 말 것이냔 말이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똑똑해지더라도 '최종 판단'은 인간의 몫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은 더욱더 정교하고 완벽하게 답을 내릴 수 있는 지혜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인간은 미래사회가 될수록 더 많은 옥석을 가릴 수 있는 혜안을 가지도록 요구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기왕 학업을 한다면 진심을 담아서 올바르게 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지난 번에 '대만작가 장자화'가 집필한 <사기>를 읽었으니, 이번엔 '한국작가 이희재'가 쓴 <사기>를 살펴보려 한다. 두 책 모두 '청소년'을 독자로 상정하고 출간한 책이니 비교하기에도 딱 좋을 것이다. 먼저 대략적인 총평을 한다면, 사마천의 <사기>를 '이해'하기 쉬운 기준으로 책을 고른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무릇 역사책을 읽은 뒤에 감흥을 논하기에 앞서서 '내용이해'가 절대적으로 중요할텐데, 고대 역사의 내용을 읽고 난 뒤에 '무슨 뜻'으로 쓰인 것인지 이해조차 난해하기 십상인데 반해,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전7권)는 만화형식으로 쓰여져 있고, 주요 줄거리에서 바로 '주제'를 뽑아내어서 이해하기에 아주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 챕터마다 맨 마지막에 '사마천의 평가'에 관한 내용이 짤막하게 수록되어 있어서 '사마천의 <사기>'에 담긴 대략적인 '편찬의도'가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청소년들이 이 책을 읽고서 <사기>에 담긴 교훈과 더불어 사마천의 집필의도까지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장자화의 사기>(전5권)는 중국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기>에 대한 감상을 충분히 엿볼 수 있고, '3분 키워드' 같은 토막내용을 통해서 '잘못 수록' 되거나 '잘못된 상식' 등의 오류를 바로 잡아주고 있기 때문에 사마천의 <사기>뿐 아니라 다른 역사책도 함께 읽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단지 아쉬운 점은 '대만작가'인 까닭에 중국청소년의 상식선만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때때로 '낯설게만' 느껴지는 대목을 아주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뜬금 없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런 '낯섦' 또한 다수의 정보가 쌓이면 깨알 정보가 되어서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지만, 이제 막 독서를 시작하는 청소년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런 군더더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국 작가의 책을 읽을 땐 이런 점을 고려하며 읽으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자, 서론이 길었다.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3>의 내용이다. 중국의 고대사는 '하, 은, 주'로 시작해서 주 나라를 중심으로 한 봉건체제가 쭉 이어지면서 '춘추전국시대'가 펼쳐졌다가 기원전 221년 진(秦)나라로 통일 되었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그 이전에 삼황오제 시절부터 거론하고 있지만, 그조차 그냥 '하은주'로 퉁쳐도 무방하다. 암튼 대략적으로 기원전 11세기에 주나라가 건국되고, 도읍을 호경에서 낙양으로 옮긴 때부터 '동주시대'라 불리며, 이때를 '춘추시대'라고 부른다. 기원전 770년 경이다. 이때는 수많은 제후국이 등장하는데, 그 중심에는 주나라 천자를 으뜸으로 모시긴 하지만, 일종의 허수아비 왕으로 여길 뿐이었고, 실질적인 권한은 '패자'라고 하는 강성한 제후가 실질적 권한 행세를 하던 시절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그 뒤를 잇는 시대가 바로 '전국시대'인데, 실질적으로 주나라도 사라지고, 전국칠웅이라는 일곱나라의 왕이 서로 패권다툼을 본격적으로 하던 시대라고 이해하면 좋다. 전국칠웅에는 '연, 제, 조, 위, 한, 초, 그리고 진' 있다. 이 시절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에 '전국시대'라고 부른다. 그 가운데 3권에는 크게 '병가', '법가', '종횡가'의 대표적인 인물들의 열전이 수록되어 있다.
먼저, 병가로는 '무패의 전략가, 오기'와 '다리를 잃은 지략가, 손빈'을 다루고 있다. 오기와 손빈 두 사람은 전쟁에 나가서는 패배할 줄 모르는 무서운 지략과 싸웠다 하면 승리를 꿰차는 용맹함까지 갖추고 있는 무장이었지만, 오기는 출세하기 위해서 부모도 모른 척하는 불효를 저질렀고, 심지어 헌신하는 아내마저 죽음으로 내몰았던 '냉혈한'이었다. 그런 그가 전쟁에 나가서는 장군의 몸으로 졸병과 한데잠을 자고, 거친 식사를 하며, 병든 병사의 종기를 입으로 빨아내 병졸들의 신임을 한몸에 사서 오기 장군을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아까워하지 않는 강병을 조련하는데 능수능란한 재능을 선보인 인물이다. 한편, 손빈은 동문수학을 했던 친구 방연에게 속임을 당해 '두 무릎'을 도려내는 욕을 당하고, 불구의 몸이라도 살리기 위해서 돼지똥까지 먹으며 미치광이 짓을 했다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 뒤에는 방연을 향한 처절한 복수를 해내는 처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지혜는 무엇인가? 완벽한 승리를 위한 완전한 계책을 엿보며 '전략적인 지혜'를 깨달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완전무결한 지혜를 가지고 있으면서 어찌 하여 '자신의 신변'을 소중히 하는 데에는 써먹지 못하고, 최소한의 인간관계조차 어그러지게 만들었단 말인가? 병가의 사상이 승패에는 크게 효용가치가 있을지 몰라도,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별다른 지혜를 얻을 수 없다는 점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법가 사상가로 '상앙'을 선보였다. 법치주의를 내세워서 진 나라를 짧은 기간에 다른 제후국보다 월등히 앞선 부강한 나라로 만드는데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런 상앙이 '자신이 만든 법' 때문에 목숨조차 부지하지 못했다는 결말을 마주하면서 법치주의라는 것이 '실용'을 앞세우다보니 '최소한의 인간관계'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대원칙을 고수하다보면, 피치 못하게 '적'을 만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음 왕위'를 이을 태자의 죄까지 공정하게 형벌을 내려서 법의 엄중함을 내세운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태자가 왕위에 오르고 난 뒤에 상앙을 어찌 대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서 조량이란 인물은 상앙에게 조언하길, 덕을 행하고 힘을 멀리하라는 옛말을 들먹이며 상앙의 처지가 아침 이슬처럼 위태롭다고 귀띔해주지만, 상앙은 이조차 무시하고 '법치주의'만 고집하다가 끝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법의 엄정함을 누가 탓하겠는가?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대원칙이 지켜지길 바라마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법이 '공정함'을 잃고, 더 나아가 '도덕'과 '인륜'마저 저버리는 상황을 만든다면 차라리 지켜지지 않는 것만 못한 경우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또한 법을 악용해서 '소수'가 다수를 군림하는 악법을 자행하게 된다면, 그 나라는 필멸하기 마련이다.
마지막으론 '종횡가'의 최후를 아주 잘 보여주었다. 바로 '합종연횡'의 대가로 잘 알려진 소진과 장의다. 사실 '종횡가'라는 이름도 소진이 주장한 '합종'과 장의가 펼친 '연횡'에서 한 글자씩 따와서 만든 이름이다. 이처럼 종횡무진하며 입을 놀려서 권세를 한 몸에 다 가지게 된 부류를 통틀어서 모두 '종횡가'라고 명명한다. 이들을 흔히 '유세객'이라고도 부르는데, 빈털털이 주제에 각국을 떠돌며 그럴 듯한 '입'만 놀려서 출세가도를 달린 사람들이기에 그렇다. 일례로 소진은 여섯 나라의 재상에 오르기 이전에 오랜 유학생활(귀곡자에게 수학했다고 함)을 한 뒤에 무일푼으로 고향에 돌아오니 부모도 실망하고, 형수는 백수라며 놀렸다고 한다. 그 덕분에 온 동네사람들이 소진이 가족친지에게까지 개무시를 당한다며 놀려대곤 했단다. 장의도 귀곡자에게 수학을 한 뒤에 고향에 돌아와 똑똑함을 자랑하다가 한 재상의 잔치에 참가했다가 도둑으로 몰려 죽기 직전까지 몰매를 맞았다고 한다. 그렇게 만신창이가 된 뒤에 집에 도착해서 부인에게 '혀'가 온전한지 묻고서 '혀만 말짱하다'는 대답을 듣고서는 '좋다'를 연발했다고 한다. 소진과 장의는 이런 무시를 절치부심 삼아 '재상의 자리'에까지 오르는데 반석으로 삼았으니, 종횡가의 수완이 정말 좋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수완이 좋은 것과 그들의 최후가 일치하지 않은 까닭은 무엇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재주가 좋다면 운수도 좋아야 할 것을, 종횡가들은 대부분 비참한 최후를 맞는 경우가 허다하다. 왜 그랬을까? 많은 역사가들은 그들의 신분이 비천한데서 원인을 찾곤 한다. 낮은 신분이었다가 졸지에 '벼락 출세'를 하니 기고만장하고, 그로 인해 주위에 적을 많이 만들어서 권력의 자리에서 내몰리는 순간, 참극을 면치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말이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말재주가 좋은 사람의 최후가 모두 그러하다면, '좋은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은 때때로 행복한 여생을 살기도 한다는 점을 보면 반박하기 쉽다. 그러니 종횡가들이 끔살을 곧잘 당하는 까닭으로 '말재주' 탓만 하기엔 부족함이 많다. 그 좋은 '말재주'로 벼락 출세를 했다면, 자기 주위에 '자기 편'을 많이 만들어 놓아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음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결정적 원인이었을 것이다. 무릇 말재주가 좋은 사람들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말재주를 끊임없이 써먹으며 말로써 설득하길 즐기곤 한다. 그로 인해 '권력자의 이익'을 챙겨주는 공을 세운다면 권력자는 종횡가를 중히 쓰곤 하지만, 반면에 그 종횡가와 '말씨름'을 했다가 패배한 이들은 어찌 했을까? 속으로 부글부글 하면서 복수를 다짐하거나, 때로는 종횡가의 주둥이에 휘둘려서 '국가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게 만들었다면 국가적 망신을 당하기 때문에, 그 원한 또한 결코 작지 않다. 그렇게 크고 작은 원한들이 쌓이고 나면 결국엔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종횡가의 사상'을 경계해야 하는 까닭이다.
다음 책에는 '난세의 인걸들'을 소개한단다. 어지러운 세상에 걸출한 인물들은 과연 누가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