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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4 - 난세의 인걸들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20년 9월
평점 :
<만화로 읽는 사마천의 사기 4 : 난세의 인걸들> 사마천 / 이희재 / 휴머니스트 (2020)
[My Review MMXCVII / 휴머니스트 46번째 리뷰]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한마디로 '어지러운 시대'다. 흔히 말하는 '난세'를 이르는 말이다. 특히, 전국시대로 불리던 시절에는 매년 전란이 이어지다시피해서 수많은 재물이 파괴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농사를 지을 젊은이들이 전쟁통에 동원되는 바람에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어서 흉작이 되어 한 마을 통째가 굶어 죽는 일이 다반사라 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제자백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재'를 소중히 여기던 시절이기도 했다. 군웅할거가 일상처럼 여겨지던 때라 한 나라를 부국강병으로 이끌고, 적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라면, 비록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통치권을 맡기고 재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서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들 하는 것이다. 능력만 갖추고 있다면 누구라도 능력에 걸맞은 출세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국시대에는 단연코 '진(秦)나라'가 가장 강성했다. 그래서 진 나라를 뺀 나머지 여섯 나라가 '합종책'을 마련하여 진 나라의 강한 힘에 대항하여 여섯 나라가 힘을 합치는 모양새를 보여주었다. 이를 강력하게 주장했던 이가 바로 지난 3권에서 소개했던 '소진'이다. 이에 맞서 진 나라는 여섯 나라가 합종하는 것을 막고, 한 나라씩 각개격파를 하기 위한 계책을 내세웠는데, 그게 바로 '연횡책'이다. 바로 '장의'가 주장했던 방법인데, '연, 제, 조, 위, 한, 초'를 따로 개별적으로 연합을 맺어서 다른 나라와의 결속력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러나 여섯 나라 중에서도 진 나라와 당당히 맞서 싸울 수 있는 국력을 가진 나라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초 나라'와 '제 나라'였다. 이 두 나라는 드넓은 영토와 비옥한 곡창지대를 갖고 있었기에 탄탄하였고, 특히나 걸출한 '인재'가 참 많은 나라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시절에는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능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스카우트(영입)'를 할 수 있던 때였기에 '자국의 인재풀'만으로 국력을 논할 수는 없었지만, 초 나라와 제 나라는 인구 면에서도 풍요로운 지역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 덕분에 진 나라는 초와 제를 공략하기 위해서 주변 국가였던 조, 위, 한, 연 나라를 자주 구워 삶게 되는데...
가장 먼저 제 나라의 맹상군 전문이란 인물을 소개한다. 맹상군이 유명한 까닭은 바로 3000여 명이 넘는 식객을 거느릴 정도로 유명세를 탔기 때문이다. 고대의 '한 집안'에 3000명의 여행객이 투숙할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만 해도 놀랄 일인데, 그들이 한 데 모인 까닭은 바로 '맹상군'을 진심으로 존경하기 때문이란다. 그렇기에 맹상군은 제 나라의 왕족도 아니지만 왕족보다 더 높은 위세를 떨치는 귀족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제 나라 임금이 맹상군을 좋아할 수 있었을까? 임금인 자신보다 더 인기도 많고, 재산은 더욱더 많은 것처럼 보일 정도인데 말이다.
허나 똑똑한 임금이라면 이런 맹상군을 신하로 거느릴 수 있는 자신의 위치를 탄탄하게 만들어서, 감히 적국이 제 나라를 함부로 넘보지 못하게 만드는데 힘을 모았을 것이다. 그러나 진 소왕이 어질기로 유명한 맹상군의 소식을 듣고서 맹상군을 굳이 보고 싶다고 초청장을 보낸다. 강대국인 진 나라가 하는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전쟁'이 틀림 없다. 그렇다고 맹상군을 순순히 보낸다면 진 나라는 맹상군에게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씌어서 죽여버리고 말 것이다. 그래야 진 나라에 위협이 될 소지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는 계산에서 말이다. 그걸 아는 제 민왕이지만, 그 말을 따르자니 자존심이 상하고, 따르지 않자니 보복이 두렵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약소국의 설움에 고민에 빠지고 만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맹상군은 자청하여 진 소왕의 초청을 받겠다고 나선다. 분명 강대국의 횡포일 게 뻔하고, 간다면 거의 죽은 목숨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신이 직접 가지 않는다면 일을 해결할 수 없으니 직접 나선 것이다. 그렇게 진 나라에 도착한 맹상군은 진 소왕의 눈치밥을 먹으며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결국엔 진 소왕과 진 나라 신하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서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어질기만 하고 지혜가 부족했던 맹상군은 진 나라를 온전히 탈출할 묘책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렇게 속수무책에 빠진 것은 맹상군과 동행했던 식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계명구도'라는 고사성어가 나온다. '계명'은 닭 울음소리를 잘 내던 식객이었고, '구도'는 개소리를 잘 내던 도둑 출신 식객을 일컫는다. 맹상군은 이런 비천한 사람들에게도 자신이 먹는 밥과 똑같은 음식을 내어주며 극진히 대접했기에 어질다는 명성을 쌓았던 것이다.
그럼 맹상군이 위기에 처하자 이처럼 비천한 신분의 두 사람에게 목숨을 살릴 방도를 찾게 되었던 것일까? 그건 바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상황에 처하게 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급할 때 잡은 지푸라기가 때로는 큰 힘을 발휘하는 일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맹상군이 진 소왕의 명령에 의해 억류되자 맹상군은 진 소왕의 애첩에게 달려가 살려달라 애원을 하게 된다. 그때 애첩은 맹상군이 가져왔다는 '여우 가죽 외투(호백구)'를 입어 보고 싶다면서 달라고 한다. 그런데 이미 그 선물은 진 소왕에게 받친 뒤였기에 난감했던 것이다. 똑똑하다는 인재들이 골머리를 썩히고 있을 때, 도둑 출신이었던 '구도'가 나서며 호백구를 다시 훔쳐서 가져오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구중궁궐의 삼엄한 경계를 뚫고서 호백구를 들고서 유유히 빠져나온다. 그렇게 애첩에게 선물공세를 하고 나서야 간신히 억류 상태에서 벗어난다. 애첩이 진 소왕의 침실에 들어서 맹상군을 살리라고 애원한 덕분이다. 간신히 억류된 몸에서 벗어난 맹상군은 그 길로 한밤중에 진 나라 국경관문인 '함곡관'에 도착해서 문이 열리기만 기다렸지만 진 나라의 법에는 '첫 닭이 울기 전'에는 성문을 절대 열 수 없다고 한다. 진 나라 법은 사소한 것이라도 어기면 죽음이었기에 맹상군이 아무리 문지기에게 뇌물을 주어도 요지부동이었던 것이다. 그때 '계명'이 나서며 닭 울음소리를 내자 온 동네 닭이 깨어나 함께 울었다고 한다. 그러자 문지기도 아침이 온 줄 알고 관문을 열어주었고, 그 길로 맹상군은 국경을 넘어 제 나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진 소왕도 뒤늦게 맹상군을 풀어준 일을 후회하고 급히 군대를 보내 다시 잡아들이라고 보냈는데, 굳게 닫혀 있어야 할 함곡관이 활짝 열려 있어서 실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맹상군은 어떤 인물인 것 같은가? 대단한 인물임에 틀림 없다. 오늘날에도 권력과 재물을 엄청나게 가진 이들이 많은데, 이들이 맹상군 같이 수많은 '인재풀'을 가동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맹상군이 뛰어난 인물인 까닭은 수많은 식객을 대접하고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정도 힘을 가지고 있으면 누구나 했을 법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맹상군이 뛰어난 인걸인 까닭은 다름 아니라 인재를 가리지 않고 소중하게 대우했기 때문이다. 바로 '계명'과 '구도' 같은 별 볼 일 없는 사람에게까지 소홀히 하지 않고 두터운 '투자(!)'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도 모면할 수 있는 길을 제공받게 된 셈이다. 넷플릭스가 '케데헌'에 투자한 것도 이와 비슷한 면모가 있다. '케데헌'의 제작기간은 무려 7년이었다고 한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이면 2018년으로 '팬데믹 이전'이었고, 그때에는 '케데헌의 성공 가능성'을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넷플릭스가 직접 제작한 것도 아니고 '소니'라는 외주업체에서 기획투자를 제안받고 제작비의 일부만 지원했다고 한다. 그러다 팬데믹을 겪으며 제작은 난항을 겪게 되고, '일본회사'의 '중국계 임원들'은 한국의 케이팝과 한국 문화가 노골적으로 등장하는 케데헌의 내용에 딴죽을 걸며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고, 이를 견디지 못한 몇몇 인사들은 퇴사를 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 흥행을 예측하지 못한 '소니'는 판권의 대부분을 넷플릭스에 넘기는 조건으로 재계약을 하게 되고, 넷플릭스는 퇴사한 인재들을 다시 불러들여서 '케데헌'을 완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25년 6월에 첫방송을 한 지 두 달 동안 전세계에서 대흥행을 거두며 어마어마한 수익창출을 해낸 것이다. 어떤가? 넷플릭스가 오늘날의 맹상군의 기지를 발휘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편, 진 나라는 초 나라에도 야심을 뻗치게 된다. 이에 맞서 초 나라는 제 나라와 '합종 맹약'을 맺고 진 나라와 맞서게 되는데, 이 동맹을 무력하게 만들기 위해서 진 나라를 계략을 짜게 되고 초 나라 내부에서는 '친진파'와 '친제파'로 갈라져서 갈등을 겪게 되는데, 이때 청산리 벽계수처럼 청렴결백한 인걸이 등장하는데, 바로 '굴원'이다. 굴원은 친진파들이 내세우는 '강대국의 논리'에 맞서서 초 나라도 진 나라에 못지 않은 강대국인데 어찌하여 당당히 맞설 생각은 하지 않고 진 나라와 굴욕적인 외교를 해야 하느냐며 반박을 하면서 끝까지 주장했다. 허나 초 나라의 임금 회왕은 '장의'가 나불거리는 세 치 혀에 속아넘어가 '작은 이익'을 탐하다 끝내 맹약을 맺었던 제 나라와 싸우게 되고, 진 나라에 굴종한 끝에 얻은 것도 없이 전쟁에서 참패까지 하며 수많은 영토를 진 나라에 빼앗기고 만다. 이렇게 굴원의 충정 어린 마음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소탐대실한 상황속에서 굴원은 자신의 충정을 믿지 못하고 도리어 욕을 하는 왕과 신하들에게 보란 듯이 '멱라수'에 몸을 던지며 죽음으로 결백을 증명한다. 초 회왕과 친진파 신하들은 진 나라에게 휘둘릴대로 휘둘리다 전쟁에서도 지고, 땅도 빼앗긴 채, 뒤늦게 굴원이 했던 말이 모두 진실이었음을 확인하고 부끄러워 한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깨끗한 굴원은 참 인재였을까? '독야청청'이란 말이 있다. 혼자 깨끗한 척 해봐야 별 소용 없다는 뜻으로 곧잘 쓰이지만, 한결 같이 푸르고 깨끗하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 것 같은가? 물론 '전지적 시점'에서 모두의 속마음을 알 수만 있다면 굴원 같은 사람은 모두의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며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속'을 어찌 훤히 꿰뚫어볼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자신이 결백하다고 주장하더라도 제 잇속만 챙기는 속 시커먼 쓰레기 같은 놈들 때문에 '결백한 사람'마저 구렁텅이에 허우적거리다 개망신을 당하기 일쑤다. 분명 굴원의 청렴결백은 본받을 만하다. 그러나 그것을 만인 앞에 증명할 길이 없다는 점에서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믿음'을 심어주어야 한다. 당장의 이익에 눈이 먼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해봐야 통할 리가 없다. 이익을 쫓는 사람에게는 더 큰 이익을 보여주어야 겨우 마음을 되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굴원이 '친진파'들에게 제 나라와 맹약을 유지하는 것이 더 큰 이익이라는 점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어필했다면 초 나라가 겪은 참극은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굴원은 그리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고, 겨우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 '하나 뿐인 목숨'을 아낌 없이 버리는 것으로 증명하려 했다. 이게 굴원이 대단한 점이면서 동시에 '깜냥 부족'이었다는 점이다.
만약 굴원이 좀 덜 깨끗한 사람이었다면, '친진파'가 저들의 잇속을 챙기려 나라꼴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으로도 모자라 '매국 행위'를 하려는 것을 더욱더 적극적으로 파헤쳤을 것이다. 물론 그 방법이 더럽고 치사한 방법이었을지언정 진정으로 국가를 위하는 마음이 더 앞섰다면 모든 능력을 발휘해서라도 '매국노'들의 저열한 비리를 밝혀내고 막아내는 방법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굴원의 능력을 더욱더 출중하다고 칭송했을 것이다. 이는 뒤에 소개할 '인상여'와 '범저'의 활약과 비교해보면 더욱 그렇다.
인상여는 조 나라의 충신이었고, 범저는 위 나라 신하였다. 하지만 인상여는 죽을 때까지 조 나라에 충성을 다하며 진 나라가 감히 조 나라를 침략하지 못하게 막아서는 업적을 남겼지만, 범저는 위 나라 조국에서 헌신하기도 전에 능욕을 당한 뒤에 진 나라의 재상이 되어 위 나라 멸망에 앞장 선 인걸이었다. 허나 둘의 공통점은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목적한 바'를 달성했으며, 죽어서도 치욕을 당하지 않고 존경받는 위인으로 남았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할 수 있다. 단지, '세 치 혀'의 재주만을 믿고 설레발을 치다가 최고의 영광을 누렸으나 비참한 말로를 겪었던 인재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더욱 칭송받아 마땅하다. 그렇다면 굴원도 칭송받아 마땅한 인재일까? 개인적으로는 아니라고 본다. 개인적으론 존경받아 마땅하였기에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그의 조국인 초 나라는 '굴원의 죽음'과는 별개로 엄청난 치욕을 당했기 때문이다. 굴원의 뛰어난 능력으로 거의 완벽할 정도로 정확한 '예측'을 했음에도, 초 나라는 치욕을 당했다. 물론 굴원에게 죄를 물을 수는 없다. 굴원이 지은 죄가 없기 때문이다. 정작 죄를 지은 것은 '매국노'들이다. 그러나 죄를 묻지 않으니 굴원을 칭송해야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굴원의 능력이 부족해서 매국 행위를 막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굴원은 '동정의 대명사'가 되었다. 뛰어난 능력을 갖췄으나 비극을 막지 못한 '비극의 주인공'으로 말이다. 그래서 위인으로 손꼽기엔 살짝 아쉬울 따름이다. 그나마 '굴원처럼 청렴결백한 사람이 되자'는 캐치프레이즈를 권할 수는 있겠으나, '깨끗함'을 증명할 길도 없는데, 누가 굴원의 됨됨이를 본받고 있는지 알 수 있단 말인가. 그저 '개인적 성찰' 정도에서 권할 따름이다. 또다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서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말이다. 그걸 아름답다고 포장하는 것도 위험천만한 일이니 말이다.
마무리하며, 전국시대의 끝은 진시황의 천하통일이다. 그리고 천하통일의 대업을 결정적으로 이룬 것은 바로 '인재영입'이었다. 진 나라가 빠르게 강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인재등용'에 어느 나라보다 앞장 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인재활용을 제대로 할 수 있었던 뛰어난 안목의 임금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가 <사기>를 읽으면서 수많은 인물들의 활약상을 엿보는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다. 뛰어난 인재는 '고귀한 신분', '엘리트 코스', '부유한 재물'에서 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적나라하게 목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춘추전국시대'였다. 또한, 뛰어난 인재는 '타고난 실력'보다 '끈질긴 노력'이 더 중요하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갈고 닦은 실력'보다 '그 실력에 걸맞은 훌륭한 인품'이 뒤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하나라도 부족한 인재는 한결같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점도 꼭 명심해야 할 점이다. 고전적인 역사서에는 늘 이런 교훈이 담겨 있기에 유념하며 읽어봄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