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화의 사기 5 : 역사에 이름을 새기다 장자화의 사기 5
장자화 지음, 전수정 옮김, 사마천 원작 / 사계절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장자화의 사기 5 : 역사에 이름을 새기다>  사마천 / 장자화 / 전수정 / 사계절 (2018)

[My Review MMXCIV / 사계절 15번째 리뷰] 이 책은 사마천 이 쓴 <사기>에 실린 내용 가운데 '작가 장자화'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다고 여기는 대목을 '간추려서' 옮겨 놓은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마천이 쓴 '원작' 그대로를 옮기지 못하고, 대략적인 얼개가 어그러지지 않을 정도로 '축약본' 형태로 5권을 추려 놓았다. 그래서 어린이 독자들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지만, '원작'의 내용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으면, 짤막해진 줄거리만으로 각각의 역사적 인물의 진면목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 편이다. 혹여 이 책을 재밌게 읽고서 <사기>에 관심이 생겼다면 '원본'을 꼭 읽어보길 권한다. 아무래도 이 책만으로는 살짝 부족하다. 딴에는 '원전 <사기>'에 잘못된 점을 바로 잡고, '다른 역사서'를 참고하여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어 완성도를 높이긴 했지만, 이 책 자체가 '축약된 내용'이라 인물의 됨됨이를 이해하기에는 부족하고, 널리 유명한 사건만 추려서 늘어놓은 탓에 '변죽'만 들끓는 듯한 느낌을 주어서 아쉬웠다.

암튼, 이 책의 시리즈는 5권으로 마무리했다. 그럼 총정리를 해보자. 사마천은 한 나라 때 사람으로 '역사'를 편찬했지만, 그가 쓴 <사기>는 '유가'적 느낌보다는 '법가'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왜 그랬을까? 아무래도 '국가기관'에 속하지 않고 '개인 관점'으로 역사를 서술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사기>가 쓰여진 뒤에 집필된 반고의 <한서>나 좌구명의 <좌전> 등이 모두 '유가'적 관점으로 쓰여진 것만 보아도 그렇다. '국가기관'을 대표해서 집필했거나 '한 나라의 충신 자격'으로 역사를 기술했을 때에는 '유가'를 강조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조금은 '실리적 관점'으로 서술하는 경향을 보여주는 '법가'를 강조하는 기술이 엿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한 고조 유방'이 진시황이 세운 진(秦)을 멸망시키고 한(漢)을 건국했으나, 진시황이 기틀을 세운 '법가사상'을 완전히 몰아내고 '유가사상'만으로 나라를 다스리기 어려웠던 탓에 국가의 큰 틀은 '유가사상'을 따랐지만, 자질구레한 일상의 것들은 여전히 진시황이 터를 닦은 '법가사상'을 크게 고치지 않고 그래도 써왔기에 사마천도 그런 식으로 '역사'를 서술했을 거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어쨌든, 그런 까닭에 사마천의 <사기>는 유가적으로 숭상 받는 이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유가사상에서는 욕을 들어도 좋을 인물들을 높이 평가한 경향을 엿볼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협객'을 칭송한 대목인데, 다른 역사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점이라도 봐도 좋을 것이다. 이를 테면, 사람을 죽인 살인자, 남을 다치게 한 강도, 남의 물건을 훔치는 도적, 심지어 불량배나 깡패와 다를 바 없는 인물이라도 '의(義)'를 행했다면 '성인(聖人)' 못지 않은 칭송을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형가'다. 그는 진시황을 암살하려다 실패하자 자결을 한 사람이다. 과연 이런 사람을 높이 평가할 수 있을까?

물론, 진시황을 폭군으로 상정하고, 폭정을 일삼는 나쁜 임금이 천심을 잃고서 나라꼴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으로도 모자라 백정들마저 편히 살지 못하는 무능력한 임금이라면, '암살'을 해도 괜찮다는 논리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개인적인 원한에서 시작한 일이 아니라 천하의 대세를 따르고 만민의 평화를 위해서 결행한 구국의 결단이니 높이 평가해야 마땅하다고 목소리를 높인 셈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히틀러, 트럼프, 윤석열, 때려 잡자는 구도와 다를 바가 없으니 마땅한 일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나쁜 놈들은 법과 원칙도 없이 제 맘대로 사람을 죽이고, 나라를 망쳐버릴 수 있어도 착한 사람도 그와 똑같은 방식으로 나쁜 놈들을 처단(?)하려 든다면 똑같은 폭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형가가 죽이고자 한 인물이 진정 '폭군'이 맞는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 진시황은 죽어 마땅한 암군이자, 폭군인가? 춘추전국시대는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탄생한 멋진 시대이지만, 영웅의 탄생이 평화로운 시대가 아닌 혼란스런 시대에 등장하기 마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춘추전국시대는 백성들이 평안하게 살기에는 너무 혹독한 혼란기였던 셈이다. 그런 혼란을 일거에 잠재우고 천하통일을 이룩한 진시황, 도량형을 통일하고, 문자를 통합하는 과정을 강행하여 얻은 이득이 분명 더 크다는 점을 들어서 진시황을 폭정을 일삼은 폭군으로 보기보다 희대의 영웅으로 평가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약 그렇다면 '형가'는 위대한 성군을 암살하려 한 '암살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이 갖고 있는 원한도 아닌 '연나라 태자 단'의 원한을 대신 실행에 옮긴 '살인청부업자'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마천은 아무런 원한도 갖지 않은 형가가 아무런 이득도 얻지 않고, 오직 '의'로움만 앞세워서 태자 단과 맺은 언약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암살을 시행하려 했다는 점을 들어서 참으로 뛰어나다고 극찬을 한 것이다. 이런 예는 자주 반복 되고 '중국의 역사학자'들은 은연중에 사마천과 비슷한 논리를 내세워서 '의협의 영웅들'을 양산(?)하는 경향까지 내비칠 정도다. 그 대표적인 예가 <수호전>에서 양산박의 108 도적들을 영웅으로 평가하는 것이고, 일반대중에게는 '무협지'로 대변되는 영웅들이 대개가 다 그런 살인을 눈 감고도 해내는 실력자들이다. 물론, 무협지나 무협영화를 즐겨 보며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나이기에 '의협'을 내세워서 불구대천의 복수를 완수하는 주인공의 고군분투에 열광하던 시절도 있었음을 부정하진 않는다. 솔직히 멋지긴 하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그런 영웅들의 행보가 자못 '유치'하다는 느낌이 부쩍 들곤 했다. 사람의 목숨보다 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 까닭으로 <사기>를 비롯해서 고전에서 사람의 목숨을 다루는 대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의로운 죽음으로 오래도록 이름을 날리는 경우가 참 많고 다양하다. 백이와 숙제처럼 두 임금을 모시지 않는 충성스런 행동으로 죽기를 각오한 결의는 고개가 절로 숙연해지기도 하지만, 주인을 살리고자 '천한 목숨'을 희생시켜 '귀한 목숨'을 구하는 행위를 온당케 여기는 대목은 삐딱하게 읽힐 수밖에 없었다. 특히, 여자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행태는 <고전>을 읽으면서도 경계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무튼, 사마천은 <사기>를 집필하면서 유가사상에서 중시하는 '충'을 무턱대고 강조하지 않았다. 임금도 임금다워야 충성을 바칠만 하지, 그렇지 못한 임금은 '의협'의 이름으로 죽여도 좋다는 메시지를 뿌리 깊게 담아놓았기 때문이다. 이는 다른 역사서에서는 잘 발견되지 않는 색다른 점으로 봐도 좋다. 허나 '의협'의 이름이라도 해도 될 것이 있고, 해서는 안 될 것이 있는데, <사기>에서는 이를 명확하게 구분 짓지 않아서 <사기>를 제대로 읽지 못한 어중이떠중이들은 '의협'의 이름으로 불의를 저지르면서도 영웅행세를 하는 얼토당토 않는 일이 자행되고 있는 점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오늘날에는 '중국의 고전'을 더욱 제대로 읽어야 한다. 어설픈 중국 '찬양'도 볼 품 없지만, 무지한 중국 '비난'도 꼴불견인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잣대'는 안에서든 밖에서든 올곧아야 쓰임새가 톡톡하기 때문이다. 또한 시대적 한계를 이해하고, '그 시대' 상황에 알맞게 이해하려는 노력은 기울이되, 오늘날에 맞지 않는 것에는 과감히 철퇴를 내릴 자세도 필요하다. 그때 맞다고 지금도 맞지는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때 틀렸다고 지금도 틀리지는 않을 수도 있음을 알고, 올곧은 '잣대'로 <고전>을 즐기면 좋겠다.

이쯤해서 장자화의 <사기>는 마무리하고, 못다한 이야기는 이희재의 <사기> 시리즈에서 하겠다. 아무래도 '대만 작가'가 풀어놓은 관점보다는 '한국 작가'가 풀어놓은 관점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 수월할 듯 싶어서 그런다. 조만간 다시 이야기 물꼬를 터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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