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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운몽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2
김만중 지음, 송성욱 옮김 / 민음사 / 2003년 1월
평점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2] <구운몽> 김만중 / 송성욱 / 민음사 (2003) [원제 : 九雲夢(1687)]
[My Review MMCXII / 민음사 26번째 리뷰] <구운몽>을 서포 김만중이 지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현재 남아 있는 필사본과 목판본, 그리고 구활자본 가운데 원작자가 직접 쓴 '원본'은 현존하지 않고 있단다. 나도 이 책을 읽고서 처음 안 사실인데, 원래 대부분의 '한국고전문학'이 작자미상인 경우가 많아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것을 '판소리'와 만나 <판소리계 소설>도 거듭 났고, 필사에 또 필사를 거쳐서 '있던 내용'이 사라지거나 '없던 내용'이 덧붙여지는 등 수많은 '이본(異本)'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구운몽>처럼 원작자가 명박한 경우에도 애초에 쓰여진 '원본'이 유명무실해진 탓에 현재까지 '필사에 필사'를 거친 필사본으로, '한문'으로 적혀져서 목판본으로 남거나, 근현대로 넘어와 구활자본으로 남겨질 때까지 수없이 많은 변형을 거쳐왔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런 탓에 김만중이 애초에 유배 당시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서 <구운몽>을 썼을 때, '한문'으로 썼는지, '한글'로 썼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고 한다. 다만, 김만중이 쓴 또 다른 소설 <사씨남정기>를 그의 종손인 김춘택이 '한문'으로 번역했던에 비추어보면 <구운몽>도 애초에 한글로 썼다가 훗날 누군가에 의해 한문으로 뒤쳐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현재 수없이 많이 출간된 <구운몽>도 수없이 많은 '버전'으로 나왔단다. '한문본'이나 '한글본' 모두 현대어로 뒤쳐졌고, 거기에 상세한 '주석본'까지 나와 있는 상황이라 한다. 헌데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이 '일반인'과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뒤쳐진 관계로 '원래의 작품'과는 상당히 달라진 것이 많다고 여겨진다고 지적한다. 그러고 보니 그렇다. 나도 '어린이책'으로도 수차례 거듭해서 <구운몽>을 읽어보았지만, '똑같은 책'은 없었다. 내용이 아주 다르지도 않았지만, '옮긴이(뒤친이)'가 의도한 대로 조금씩 변형이 가해졌을 것은 부득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점은 일찍이 알고 있었지만, 그건 '어린이책'에 담을 교훈적인 내용에서 어느 부분을 '강조'할 것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현상으로 이해했었는데, 그보다 훨씬 확장된 문제를 안고 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그래도 그건 어디까지나 '전문가의 고뇌'에 해당하는 영역이고, '원작'의 내용이 애초에 어땠는지는 '원본'이 등장하지 않고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황이므로 크게 논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다만 <구운몽>이 생각보다 쉽게 읽히지 않는 책이라는 사실만큼은 짚어야 할 것이다. 익히 알고 있듯이 '줄거리'는 그닥 어려울 것이 없다. 성진 스님이 '팔선녀'를 희롱하며 불가에서 허락하지 않은 '욕망'을 품자, 성진의 스승인 육관대사가 성진을 꾸짖으며 잠에 빠져들게 하니, 꿈속에서 성진은 '양소유'라는 인간으로 태어나 한 평생을 욕망대로 살게 한다. 이에 팔선녀에게도 앞날이 촉망 받는 불제자를 '유혹'한 죄를 물어 인간세계로 환생하게 하니, 여덟 모두 양소유의 부인과 첩이 되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온갖 환락을 다 누릴 수 있게 한다. 그렇게 모든 여한을 다 풀도록 다 누린 '아홉 명'은 천수를 누리다 잊고 있던 하늘의 뜻을 각성하고 '인간의 삶'을 죽음으로 다하고 나니, 그 모든 것이 '일장춘몽'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꿈속에서 깨어난 아홉 명은 서로 마음속에 품고 있던 '욕망'이 더 없이 허망하다는 큰 깨달음을 얻고 속세를 벗어나 해탈하게 된다는 전형적인 '환몽소설'의 구조를 띠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소설을 김만중은 왜 어머니께 보여드린 것일까? 잘 알려진 바로는 '유복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유달리 효심이 깊었다는 데서 이유를 찾는다. 김만중의 어머니 윤씨는 선조의 부마였던 윤신지의 손녀라고 한다. 왕가의 혈통을 이은 실로 대단한 집안의 자손인 셈이다. 그건 윤씨가 사대부 가문의 교양을 몸에 벨 정도로 닦고 있었다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점이고, 숙종 때 도승지, 대제학, 대사헌을 거쳐 예조판서까지 역임할 정도였기에 김만중의 실력 또한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당시 양반들이 천대하던 '소설'을 짓고, 얕잡아 보던 '한글'로 직접 썼으며, 그 내용조차 금기시하던 '불교의 이념'을 담아 어머니께 보여드린 것이다. 의아하지 않은가? 김만중도 '서인 세력'이었으니 '율곡 이이'가 아홉 번이나 장원급제(구도장원)할 정도의 실력자였음에도 어머니의 죽음(신사임당)으로 삶을 비관하여 스스로 머리를 깎고 불가에 입문했다가 환속한 것을 두고두고 손가락질 한 것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도 말이다. 아무리 일반인에게 읽히려는 목적이 아니라 단 한 명의 독자, 어머니를 위해서 쓴 것이라 할지라도 엄연히 사대부 가문의 규수로 지내온 여인에게 <구운몽>은 썩 온당치 못한 내용으로 보인다. 물론, 조선 전기 때에는 왕실에서조차 여인들이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숙종 때면 조선 후기이고 '예송논쟁'이 일단락이 되어 더욱 철저한 '유교이념'을 강박하던 시절이 아니었느냔 말이다. 도대체 김만중은 어머니 윤씨에 무엇을 의도한 것일까? 많은 학자들은 <구운몽>에 담긴 요지가 '일체의 부귀영화가 모두 몽환에 불과하니' 아들의 귀양살이도 살아서도 생이별이고, 죽어서도 곧 이별일 따름이니 이 책을 소일거리로 삼아 너무 심려하지도, 너무 슬퍼하지도, 그리고 너무 눈물 짓지도 마시라는 뜻으로 직접 지었을 거라고 분석한다. 정말 그뿐인 것일까?
당대 성리학자로 유명한 '도암 이재(1680~1746)'는 <구운몽>을 읽고, 세상의 부귀영화가 한순간 꿈과 같이 허무한 것임을 느꼈다고 소회를 밝혔단다. 그러면서 불교적인 색채가 녹아 있지만 초나라 충신 굴원이 지은 <이소(離騷 : 근심에서 벗어나다)의 분위기가 느껴진다고 했단다. <구운몽>의 독자가 어머니 한 분 뿐만이 아니었고, 창작 당시에 이미 '베스트셀러'로 널리 읽혔다는 사실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김만중도 '정치적인 목적'을 담아 '주위의 시기와 음모로 끝내 뜻을 펴지 못하고 불우하게 생을 마감한 굴원'과 동일시하며, 자신의 귀양살이가 억울하다(?)는 의도도 의심해볼 수 있을 것이다. 허나 그러거나 말거나, 현대에 와서 <구운몽>은 김만중의 정치적 의도를 고려하며 읽는 독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김만중의 어머니 윤씨의 심경이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여성독자'를 대변할 윤씨가 남긴 '기록'이 없으니 억지로라도 짐작해볼 따름이다.
교과서에서 분석하는 내용에 따르면, <구운몽>은 유교적인 현실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불교와 도교의 색채를 가미해서 이색적인 분위기를 입혔다고 본다. 다시 말해, <구운몽>에는 '세 가지 인생관'이 모두 담겨 있다는 말이다. 그 가운데 어느 것을 중점적으로 읽을 것인지는 '독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럼에도 <구운몽>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대목은 '유교적 이념'인 현세구복적인 인생관이다. 유가의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것이 '입신양명'이다. 바로 해석하면 '몸을 세우고 이름을 날린다'는 뜻이다. 여기서 '입신'이라함은 '수신제가'에 해당할 것이고, '양명'이라함은 '치국평천하'에 해당할 것이다. 내 한 몸 일으켜 세워서 온세상을 다 누리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는 것이다. 헌데 <구운몽>에서 양소유의 모습을 보면 '입신양명'의 의지는 보이지만 '수신제가치국평천하' 같은 거창하고 원대한 목표는 분명치 않다. 이는 그가 과거시험을 보러 어머니의 품을 떠나는 장면에서부터 여실히 드러난다. 양소유가 집을 떠나면서 가장 처음 한 일이라고는 '미녀(진채봉)'와 백년가약을 약속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전쟁이 나서 과거시험은 뒤로 미뤄지지만 냑양에 도착하고서도 한 짓이라곤 '미녀(계섬월)'과 노니는 것이었다. 도대체 공부는 언제 했단 말인가? 더구나 계섬월은 '또 다른 미녀(정경패)'와 혼인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선까지 해줬고, 양소유도 그말을 쫓아 여염집 규수인 정경패의 얼굴 한 번 보겠다고 '여장'을 하고 몰래 잠입하기에 이른다. 이에 중매쟁이까지 정경패와 혼인할 요량이면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공부에 매진하라 꾸짖지만, 온통 미녀(정경패) 생각 뿐이다. 운 좋게(?)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정경패와 혼인 하지만 곧바로 전쟁터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토번을 정벌하려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허나 양소유의 능력이 워낙 출중했던 탓인지 전쟁에 대한 준비 또한 아무렇지 않게 해버리고, '또 다른 미녀(자객 심요연과 용왕딸 백능파)'와 운우지락을 즐기는데 전념한다. 그리고 그 전념을 통해서 전쟁은 승리로 종결된다.
이쯤 되면, 양소유라는 인간을 통해서 바라본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전혀 노력하지 않고 천운에 기대는 것이 전부인 것으로 읽히지 않은가? 그는 이름 그대로 한 평생을 '노닐다(少遊)'가 갈 운명인 셈이다. 그렇게 전쟁에서 승리한 공을 얻고서 황제의 딸인 '난양공주 이소화'와 짝을 이루니, 2처 6첩(정경패, 이소화 / 가춘운, 계섬월, 적경홍(계섬월의 친우), 진채봉, 심요연, 백능파)을 완비(?)하게 된다. 조선은 '일부일처제' 국가로 단 한 명의 정실부인만을 인정했으며, '일처다첩제'도 용인했기에 한 남자가 수많은 처첩을 거느리는 건 흠이 아니라 자랑(!)으로 삼을 정도였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구운몽>이 김만중의 어머니 윤씨에게 진상(!)하기 위해 지어진 소설이라는 점이다. 과연 일찍 남편을 잃고 평생을 수절한 아녀자가 읽으면서도 이 책이 슬픔을 잊고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책이었을까?
이는 <구운몽>에 등장하는 미녀들의 면면을 살펴볼 필요를 느끼게 한다. 분명 겉으로 읽으면 남성작가에 의해 쓰여진 '한 남자와 여덟 여자'의 가성비(?) 맞지 않은 이야기로 읽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미녀로 등장하는 여인들의 말과 행동이 다분히 '여성작가'가 쓴 소설처럼 섬세한 면이 보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남성 등장인물은 밋밋할 정도다. 하긴 대표적인 남성으로는 양소유만 등장하기 때문에 비교대상이 없을 정도지만, 여성 등장인물의 소개부터 그녀들이 하는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여성독자'들이 읽기에도 무난한 것을 쉬이 알 수 있다. 더구나 조선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그녀들 모두가 당당하고, 당돌하기까지 하다. 여자라고해서 남성들에게 매달리는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베필'을 손수 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명확한 근거'를 대며 퇴짜를 놓기 일쑤고, 적장의 목을 벨 정도로 용맹하고, 어려운 난제를 능히 풀어낼 정도로 지혜롭기까지 하다. 물론, '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 것을 최선으로 여기는 '사회적 한계'도 여실히 드러내 보이긴 하지만, 당시 억눌리고 억압만을 강요받던 여인들에게는 '그만큼의 자유'조차 목숨을 내놓고 남자들의 처분만을 기다려야 했는데, <구운몽>에서는 그보다는 훨씬 더 자유분방한 여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아마도 김만중의 어머니 윤씨는 이런 면모까지 읽으며 흡족해했던 것은 아닐까 싶다. 겉으로는 남성들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였지만, 그 내부에 들어서면 '여인들의 치마폭'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연약한 남성의 모습을 보며 흐뭇해했고, 여인들의 진정한 힘이 '외유내강'에 있음을 섬세한 붓끝으로 그려낸 아들의 소설을 읽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을지도 모른다. 집밖으로 나갈 수 없는 '한계'를 집안에서의 친목을 도모하며 가문의 번창을 모색했던 여인네들의 삶, 또한 새삼스럽게 해석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양소유의 아내들이 딱 '한 명의 자녀'만을 두었다는 점에서도 의미심장하다. 현실에서 여덟 명의 아내가 한 집에 살고 있으면 시기와 질투로 인해 난장이 벌어질 것이며, 그 자식들의 우열(!)을 따지며 암투가 벌어질 것이 자명하지만, <구운몽>에서는 그런 모습이 일체 보이질 않는다. 이게 그저 '한계점'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절묘한 비책'을 선보인 것이라면 어쩔 것인가? 구중궁궐 속에서 펼쳐지는 피비린내 나는 암투가 아니라 여인들끼리 친목과 화목을 내세워서 '한 가문의 평화'를 이뤄 '치국평천하'까지 내다본 것이었다면 말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거의 실현불가한 일이었겠으나 허구를 다루는 소설에서 이런 '유토피아'를 꿈꿨다는 점에서 의미를 높이 살 근거로는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