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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22 : 데카메론 ㅣ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22
조남진 글, 이세계 그림, 윤순식 감수, 손영운 기획, 조반니 보카치오 원작 / 채우리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22 : 데카메론> 조반니 보카치오 / 손영운 / 조남진 / 윤순식 / 채우리 (2013)
[My Review MMCXI / 채우리 24번째 리뷰] 조반니 보카치오가 쓴 <데카메론>은 어린이가 읽기에 부적절한 고전인 것은 틀림 없다. 인간의 '솔직한 면모'를 진솔하게 보여주는 위대한 문학작품인 것을 부정하는 이는 없겠지만, 너무나 솔직했기에 '성(性)적 표현'이 너무 노골적이라는 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다 큰 어른들이 읽어보아도 낯뜨거울 정도의 섬세한 묘사에 아무리 훌륭한 문학이라고는 하나 어린 자녀에게 읽혀서 '삶의 교훈'을 직접 배우라고 권하기가 정녕 민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데카메론>은 어른들조차 읽었다는 표시를 낼 수 없어 몰래 읽었고, 대부분은 그런 제목의 유명한 책이 있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을 정도로 외면 받은 책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단테가 쓴 <신곡>에 빗대어 '인곡(人曲)'이라 불릴 정도로 수많은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는 문학이 바로 <데카메론>이다. 보카치오는 <신곡>에서 다룰 수 없었던 '인간의 본성'에 대해 솔직하게 묘사했고, 14세기 르네상스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정도로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엄청난 영감을 선사한 인류 최고의 문학으로 소개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데카메론>이 처음 출간 되었을 때에도 '반 기독교적'인 윤리관이 문제가 되어 푸대접을 받기도 했지만, 오히려 일반 대중들은 어려운 어휘가 아닌 '이탈리아 속어'로 쓰여 읽기 쉬운 <데카메론>에 푹 빠져들었고, 그 인기를 등에 업고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 널리 읽혔을 정도의 영향력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인쇄술 혁명'이 있기 전에 벌어졌던 일이니, <데카메론>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고 신분상 고위 계층 뿐만 아니라 서민 계층에게도 교양과 지혜를 누릴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작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하필이면, 그토록 고마운 책이 '외설스럽고 추잡스런' 성(性)을 매개로 하여 쓰여져서 점잖은 사람들이 읽고 즐기기에 부적절한 책이 되었단 말인가? 이는 학창시절의 여러분을 떠올리면 좋지 않을까 싶다. 지루한 내용의 수업이 이루어지다가도 선생님이 기분전환용으로 '선생님의 첫사랑' 이야기를 꺼내면 두 눈이 말똥말똥 해지고 솔깃해진 귀가 쫑긋거리던 순간을 말이다. 지금이야 '인권 문제'로 인해서 성폭력과 성희롱에 가까운 '음담패설(일명 EDPS)'을 수업시간에 입에 올리기 힘들지만 말이다. 암튼 '야한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본연의 '최고 관심사'였었다. 그보다 더한 '솔직담백한 이야기'가 또 있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성에 대한 개념조차 모르는 '유아'들조차 똥 이야기와 방귀 이야기만 나오면 자지러지게 웃음꽃을 피우지 않느냔 말이다. 암튼 '팬티 안의 두 글자'에 관한 이야기는 전 인류의 최대 관심사이기 때문이라는 것만 기억해두고 <데카메론>을 한 번쯤 읽어보면 기대하지 않은 깊은 감명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럼 <데카메론>은 어떤 줄거리를 담고 있을까? 먼 옛날의 책들은 모두 '성인용'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책의 '내용'이나 '수위조절'은 염두의 대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이라면 '어린이용'의 경우엔 '심의'를 거쳐서 비교적 '순화'된 내용만을 다룰 수도 있겠지만, 보카치오는 7명의 귀부인과 3명의 남자들, 모두 10명이 하루에 한 편씩 '열흘 동안' 야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용이다. 그럼 이들이 왜 한데 모이게 되었을까? 그건 바로 14세기 당시에 유럽을 뒤흔들었던 '흑사병(페스트)'을 피해서 외딴 성에 모여 들었던 것이다. 흑사병이 어떤 병이던가? 한 번 걸렸다하면 치료방법도 몰라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바라던 병이었고, 천행으로라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발병된 지역에서 되도록 멀리 도망가는 방법밖에 없던 '천벌'로 여기던 끔찍한 전염병이 아니던가. 그러니 외딴 성에 모인 이들도 병이 물러날 때까지 하루도 안심하며 살 수 없는 '최악의 공포' 속에서 숨만 쉬며 버티는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이런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이들이 한 행동이 바로 '야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위안으로 삼았던 것이다. 만약 이런 공포 속에서 '야한 이야기'가 아니라 '교양과 기품이 넘치는 이야기'를 주고 받았더라면 어땠을 것 같은가? 그들이 겪고 있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는커녕 '광기와 광증'으로 인해 미쳐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히려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나누며 '삶을 이어갈 원초적인 힘(?)'을 부여받기 위해서라도 더욱더 야한 이야기에 몰입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여지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책은 '어린이(청소년)'를 위해서 출간하였기에 원작의 수준에 버금가는 '야한 이야기'는 솔직하게 다 뺐다. 그럼 재미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성적 묘사'를 쫙 빼고 읽으니 <데카메론>에 담겨 있는 본연의 교훈적이고 교양적인 메시지가 더 잘 드러나게 되었다. 그동안 '야한 이야기'에 매몰되어 있던 교양이 총천연색으로 확연하게 드러나 보였다. 그렇기에 원작에서는 살짝 가려졌던 '인본주의 색채'가 더 잘 드러나 보이는 효과가 극대화된 셈이다. 물론 원작의 '수위'가 워낙 높아서 모두 100편의 이야기 가운데 고작 10편 밖에 담지 못한 이 책을 읽고서 <데카메론>을 완독하였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건전(?)한 내용으로 재탄생한 <데카메론>을 읽고 '원작'에 대한 관심을..아니 '인상'을 좋게 가질 수 있다면 훨씬 더 좋은 일이 아닌가 싶다.
<데카메론>에 담겨 있는 핵심 내용은 단연 '사랑'이다. 사랑에 울고 웃는 다채로운 인간들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많은 '삶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데카메론>은 '애로티즘'에 입각한 것처럼 인식되기 일쑤지만, 그보다는 더 찐한 '휴머니즘'을 읽어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휴머니즘이 때때로 '남을 속이는' 사기와 불륜으로 점철되는 묘사가 밥 먹듯이 등장하기 때문에 자못 헷갈릴 수도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는 사기를 당하거나 불륜의 피해자가 된 사람들을 '동정'하기보다 사기꾼과 불륜 당사자조차 '관용'으로 포용하고 진정한 용서를 구하는 내용을 보여 준다. 왜냐면 죄 지은 사람에게 '벌'을 내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니라 진정으로 '잘못'을 뉘우치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데카메론>은 인간이 사는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관용 정신(일명 똘레랑스)'이라는 점을 새삼 강조하고 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멸시하거나 차별하는 것이 아닌 '상대를 존중하는 문화'가 오롯이 살아있어야 그 사회가 살기 좋게 바뀔 수 있다는 내용을 품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어느 한 쪽을 죽여야' 자기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는 사회가 보여주는 잔혹성과 끔찍함을 우리는 직접 경험하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물론, '맹목적인 관용'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죄를 짓고도 '벌'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 일은 있어선 안 된다. 그리고 그건 '관용'이라 말할 수도 없다. 관용은 말하기는 쉽지만 결코 쉽게 행동으로 옮기기는 힘들다. 그러나 관용을 행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관용이기도 하다. 그리고 '관용'을 뭐라 딱 정의 내리기는 힘들지만, 진정한 관용을 행하게 되면 누구라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것이 관용이기도 하다. 또한 성숙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미덕이기도 하고 말이다.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너그러운 관용과 진솔한 사랑이 꼭 필요하다. 이 두 가지를 절묘하게 섞어 놓은 <데카메론>을 제대로 읽어낼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