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20 : 춘향전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20
김창회 글, 현광영 그림, 손영운 기획, 작자미상 원작 / 채우리 / 2013년 5월
평점 :
절판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20 : 춘향전>  작자미상 / 손영운 / 김창회 / 채우리 (2013)

[My Review MMCIX / 채우리 22번째 리뷰] 역시 고전의 백미는 '사랑이야기'다. 더구나 청춘남녀의 불 같이 뜨거운 사랑을 엿볼 때에는 누구나 가슴이 설레기 마련이다. 영국에는 셰익스피어가 쓴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다면, 한국에는 '판소리계 소설'인 <춘향전>이 있다. 사실 널리 알려지기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겠지만, 재미와 완성도로 본다면 우리 <춘향전>이 훨씬 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는 걸 인정할 것이다. 마침 '케데헌'의 인기로 전세계가 '한국문화의 진입장벽'이 허물어졌으니, 호랑이 '더피'가 유행을 했을 즈음에 우리에겐 '판소리'라는 것이 있었고, '판소리 12마당' 가운데 가장 으뜸이 바로 <춘향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누구라도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왜냐면 <로미오와 줄리엣>은 새드엔딩이지만, <춘향전>은 해피엔딩이기 때문이다. 엔딩계의 승자는 언제나 '해피'였으니 틀림 없을 것이다.

<춘향전>의 줄거리는 간략하다. 전라도 남원을 배경으로 성춘향이 그네를 타다가 새로 부임한 사또의 자제 이몽룡의 눈에 띄었고, 둘은 그렇게 첫 만남과 동시에 '백년가약'을 맺으며 뜨겁게 사랑을 불태웠다. 허나 젊은 청춘의 불 같은 사랑은 늘 위기를 맞기 마련이다. 이몽룡의 아버지가 임금께 동부승지로 승진하라는 교지를 받아 한양으로 상경해야 했기 때문에 이몽룡도 함께 한양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허나 성춘향은 기생이 낳은 딸이라 '정실부인'으로 들일 수 없는 처지였고, 훗날 이몽룡이 관직에 오르면 '첩'으로 들일 수는 있었으나, 아직 과거급제도 하지 못한 서생이 '첩질'부터 할 수는 없다며 양반 망신시키지 말고 당장 춘향과 헤어지라는 어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이에 춘향은 몽룡과 헤어짐을 애달파 하며 서럽게 울지만, 춘향에게 닥친 현실이 그러하매 어쩔 도리가 없다며 눈물로 몽룡과 기약 없는 이별을 한다.

이제 이야기는 방향전환을 하며, 새로운 남원 고을 사또로 '변학도'가 등장한다. 그리고 변사또가 처음으로 한 공식업무는 '기생점고'였다. 조선시대 관리에게는 '관청에 속한 노비'를 단속하는 것도 주요 업무 중 하나였기에 당연히 해야 마땅할 업무였다. 그러나 변사또의 목적은 천하일색으로 소문이 자자한 '춘향'으로 하여금 자신을 수청 들게 하는 것이었다. 허나 춘향은 이를 단호히 거절한다. 왜냐면 춘향에겐 이미 '지아비'가 있다면서, 충신이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것처럼 열녀도 두 지아비를 둘 수 없다며 완강히 버틴 것이다. 이에 변사또는 자신의 명령에 따르지 않는 춘향에게 모진 형벌을 가한다. 더구나 천한 기생 주제에 양반들이나 할 법한 '열녀' 흉내를 낸다는 것에 괘씸죄를 더해서 말이다.

그렇게 춘향은 모진 형벌을 받고 변사또의 끝없는 회유를 당하며 고초를 겪고 있는 사이에, 몽룡은 별시에 장원급제하여 '암행어사'로 남원에 내려가고 있었다. 허나 어사인 신분을 감춰야 했기에 춘향의 앞에는 거지꼴로 나타나지만, 결국 변사또의 생일잔칫날에 "이 술은 천 백성의 피요, 이 고기는 만 백성의 기름이다"라는 시로 호령을 내리며 "암행어사 출두야'를 온 사방에 메아리 치게 한다. 그렇게 춘향이 죽을 위기에서 살려내고, 임금께서는 춘향에게 '정렬부인'을 내리니,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살았다는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 한다.

<춘향전>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춘향이 목숨을 걸고 정절을 지켜낸다는 서사다. 더구나 '천한 신분'인데도 높은 신분인 양반들도 하기 힘든 '정절'을 지켜내어 끝내 행복하게 산다는 결말을 보여준 것은 18세기 조선시대를 크게 울릴 정도로 '파급력'이 어마어마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조선시대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였기 때문에 이야기 속에서처럼 '기생'이 '양반'으로 신분상승을 허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었다. 한마디로 합법적인 '신분상승'을 할 수 있는 계층사다리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신분사회'는 기둥부터 흔들리기 시작했고 양반 신분을 돈으로 사고 파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경제적 성장을 한 '부농'과 '거상' 들 가운데에는 양반 신분을 사서 '신분상승'을 할 수 있는 기회로 삼기도 했다고 한다. 더구나 <춘향전>에서 '기생'인데도 열녀의 반열에 오른 여인들을 줄줄이 읊는 대목에서 춘향이 허튼소리를 하는 것이 절대 아님을 당당히 주장하고 있다.

당시 '판소리'는 서민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서민들 뿐만 아니라 양반들도 판소리를 즐겨 듣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판소리'도 양반들의 취향에 걸맞는 '한시'나 '중국 고사' 같은 내용을 곁들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춘향의 목소리'는 단지 서민들의 열망만을 담은 것이 아니고 양반들에게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향력을 행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도 양반들이 그토록 중시하던 '유교적 예법'을 철저히 따르고 지키는 것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양반들도 춘향 같은 열녀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열린 생각'을 갖게 했을 것이다. 물론 '신분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더 중하다는 꼬장꼬장한 양반들이 훨씬 더 많았기에 쉬이 허물어질 질서는 아니었을 것이고 말이다.

그렇기에 <춘향전>은 백성들의 열망으로 작용했고, 또 한가지 '탐관오리'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에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것이다. 천한 기생도 '열녀'가 되어 존중 받는 사람이 되고자 저렇게 열심인데, 양반이란 작자가 하는 짓이라고는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서 자기 잇속만 챙기는 것'이라니 정말 너무 하지 않는가? 라는 푸념 섞인 비판을 <춘향전>을 통해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들의 지배자인 '고을 원님'을 사사로이 혼쭐 낼 수는 없다. 물론 '농민봉기'를 통해서 자신들의 불만을 호소할 수도 있었겠으나 역사적으로도 '농민봉기'를 해서 양반들의 목숨을 빼앗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대신 '탐관오리'를 일시적으로 내쫓을 수 있었고, 봉기를 선동했던 '주동자' 몇 명의 희생으로 잠시나마 백성들을 탄압하는 일을 멈추게 하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춘향전>에서는 '농민봉기'를 꾀하기보다 더 합법적인(?) 방법인 '암행어사 출두'로 탐관오리를 벌하는 방식을 택했다. 더구나 그 암행어사로 춘향의 정인인 '이몽룡'이 등장하니 관객들의 환호성은 더욱더 크게 날 것이 틀림 없다. 정말 속이 다 후련하지 않았겠느냔 말이다.

이렇게 <춘향전>에는 '청춘남녀의 사랑', '신분상승에 대한 열망', 그리고 '탐관오리 축출'이라는 이야기가 아주 잘 어우려져 있기에 남녀노소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좋아했다. 더구나 '판소리'와 '필사본'이라는 표현적 한계로 인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때마다 '원래의 이야기'에서 더할 것은 더하고, 뺄 것은 뺐으며, 고치고 바꾸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이루어지며 수많은 '100여편이 넘는 이본(異本)'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춘향전>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으니, 그 책들을 읽고 또 읽을 때마다 색다른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다고 한다. 그 가운데 서울(한양)에서 돌았던 '경판본 <춘향전>'과 전주에서 제작한 '완판본 <춘향전>'이 가장 유명하다고 한다. 경판본의 특징은 '문장이 간결하고 묘사가 적어 빠른 스토리 진행'이 으뜸이며, 완판본의 특징은 '전라도 사투리'가 잘 반영되어 있고, 주요 독자층이 서민이었던 관계로 '사건 묘사가 자세히 담겨' 있어서, 춘향의 출생과 성장까지 잘 알 수 있다고 한다.

또한, 각각의 이야기마다 '춘향의 묘사'가 사뭇 다르다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인데, 가장 큰 공통적인 묘사는 춘향을 '팔방미인형 인물'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이는 춘향을 당시 조선사회가 요구하는 가장 완벽한 여인상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며, 그녀가 양반이든, 기생이든 상관할 것 없이 당시 여인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 '정절'을 소중히 지켜내어 더욱 완벽해진다는 설정을 눈여겨 볼 만하다. 그렇다면 21세기 춘향은 어떤 여성상이어야 할까? 그건 오늘날에 가장 완벽한 여성상이 어떠한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여성상은 아직 '과도기적 성향'을 띠고 있는 것 같다. 현재의 여성들조차 가장 완벽한 여성성을 '정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성평등을 주장하면서 '여성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부정하거나 포기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으며, 여성만이 누려야 할 '특권'마저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그 특권을 제대로 누리기 위해서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 해도 저마다 중구난방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분명 '여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실현되기도 하고 있지만, 모든 여성들의 의견이 통일되지 못하는 것도 그런 경향을 한 몫하고 있는 것 같다. 모쪼록 21세기 춘향은 "여자라서 행복해요"라는 말이 절로 나오길 바란다. 여성들이 행복한 사회를 추구해야 세상은 좀 더 아름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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