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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2 - 태평천국 라이징 ㅣ 본격 한중일 세계사 2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평점 :
배운 듯 하지만 안 배운 것과 진배 없을 정도로 깜깜한 '동북아시아의 근현대사'는 <한국사>에서조차 드문드문 배울 뿐, 우리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한꺼풀 들춰보면 분명히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은 날 것이다. 왜냐면 '배우긴 배웠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걸까? 그건 역사는 '단편적'으로만 배울 뿐, '맥락'과 '흐름'이라는 거대한 차원에서는 전혀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한국사>는 한반도에서만 일어난 일만 다루고, <세계사>는 백인들이 주인공이 되어 벌인 일만 써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나마 '단편적인 역사적 사건'을 가르치고 배우긴 하지만 '암기'하기 좋게 사건이 일어나게된 원인과 결과만을 '요약'해서 시험문제로 다루니, 웬만큼 역사에 통달하지 않고서는 '교과서'만 읽고서 역사의 맥락과 유구한 흐름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이런 역사는 그만 배워야 하지 않을까.
1권에 이어 2권에서는 1840년대 한중일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을 토대로 전세계적인 '움직임'을 들여다볼 수 있다. 당시, 중국에서는 아편전쟁의 패배의 쓰라림 속에서 민중들의 반란인 '태평천국의 난'이 벌어진다. 일본에서는 이양선과 서양인이 출몰하면 몽땅 파괴하고 죽이는 쇄국을 하면서도 네덜란드 상인만은 출입을 허가하며 서양의 문물을 배우며 '난학열풍'을 벌인다. 그러는 한편, 청이 아편전쟁에서 패배하고 서구열강들에게 쳐발리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개항'을 하기에 이르고, 이런 흐름에 미국이 '태평양시대'를 맞아 고래잡이하는 포경선의 안전한 활약을 보장받기 위해 동북아시아 3국에 접근하기 시작한다. 물론, 그 길목인 일본이 가장 먼저 주목 받고 말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세도정치 시기'의 대혼란을 겪으며 민중들이 핍박 받는 일이 자행되지만, 상대적으로 중일에 비해서 서양의 관심을 덜 받은 까닭에 아직은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 평온함(?)은 오래 가지 않고 격변의 시기를 맞이할 거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계실 것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책 <본격 한중일 세계사 2>의 핵심은 '태평천국의 난'을 다룬 것이다. 그동안 역사책에 종종 거론되긴 하지만 잘 알지 못했던 까닭에 이 책만큼 자세하고 흥미진진하게 알아볼 수 있는 책이 없기 때문이다. 고작 14년(1851~1864)만에 수억의 인명이 살상 당한 비극을 초래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대한 사안으로 다룰 수밖에 없는데도,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을 접할 수 있는 책이 드물다는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왜 그럴까?
태평천국운동은 홍수전이 "나는 상제님(하나님)의 둘째 아들이다"라는 예언을 들었다는 얼토당토 않은 사건으로 시작하지만, 아편전쟁을 겪으면서 대국의 자존심이 꺾인데다가 이후 서양의 침략에 변변한 대안도 마련하지 못한 채, 백성들의 수탈에만 열을 올리는 무능력한 청조정에 대항하고(반봉건), 서양의 침략에 단호히 맞서며(반외세), 사회주의 색채를 띤 '사유재산 금지', '배급제 실시', '남녀평등 정책', '도덕을 앞세운 행정시스템' 등등 시대적으로도 대단히 앞선 사상을 내세웠던 탓에 당시 핍박받던 수많은 백성들의 지지를 받으며 '남경'을 점령하고 화남일대를 다스리며 청조정이 있는 북경까지 공략하는 등 청왕조를 뿌리채 흔들리게 만든 역사적인 운동이었다. 그러나 '태평천국의 난'으로 진압되고 만 까닭은 지도부의 분열과 타락으로 구심점을 잃고 오히려 백성들을 수탈하고 학살을 자행하는 등의 만행을 일삼았던 탓에 '반봉건', '반외세',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수많은 이들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멸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물론, 태평천국운동 이후에 손문(쑨원)이 똑같은 사상으로 중화민국을 건국하기에 이르고, 모택동(마오쩌둥)의 공산당 이념과도 유사한 사상을 내세웠던 탓에 역사적으로도 그 중대한 사건으로 다룰 수밖에 없다. 그러나 태평천국이 '종교적 성향'을 내세웠던 것이 커다란 오점을 남기게 된 원인으로 보인다. 왜냐면 종교운동은 성스럽고 도덕적으로 흠이 없어야 성공할까 말까인데, 홍수전을 비롯한 왕을 자칭한 지도부가 먼저 상스럽고 부도덕적인 일로 서로 갈등을 일으키더니 끝끝내 저들끼리 치고 받는 과정에 상대편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르며 민심을 잃고 뿔뿔히 흩어지고 말았다. 용두사미란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말이다. 이처럼 '태평천국운동'의 평가는 극과 극을 오가기 마련이라, 한편으론 대단하다고 평하면서도 막장보다 더한 부끄러움에 감추기 급급한 역사로 치부하곤 한다.
이쯤해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도대체 그당시 백성들은 '사이비교주'와 다를 바 없는 홍수전과 그 일당의 꼬임에 넘어가 내전을 방불케 한 전쟁에 참여하며 서로 죽고 죽이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연출했던 것일까? 그건 정부세력(청왕조)이나 반정부군(태평천국)이나 썩을대로 썩어빠졌기 때문이었다. 백성들 처지에서는 조금이라도 먹고 살 희망이 큰 쪽에 붙고 싶었을 뿐이다. 청의 관료들은 서양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면서도 백성들을 수탈하는데에는 도가 텄기에 일찌감치 민심을 잃었고, 그나마 태평천국운동의 초기에는 '살만한 세상'을 꿈꾸게 해줄 것만 같은 기대감이 부풀어 올라 사기충천하였고, 반봉건, 반외세라는 기치를 내세울 수 있었기에 기꺼이 전재산을 걸고 한 판 승부를 걸었던 셈이다. 다시 말해, 백성들은 이쪽에 붙으나 저쪽에 붙으나 굶어죽기는 매한가지라서 큰 고민할 것도 없을 지경이었단 말이다. 그러니 알만 한 사람은 다 알면서도 '사이비교주'의 편을 들어 새로운 세상을 꿈꿨고, 이들을 상대로 큰 공을 세우면 청왕조에서 한 자리 내어준다고 약속을 하니, 백성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쪽이나 저쪽에 붙어서 죽고 죽이는 비극을 연출한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민심'을 거스른 나라가 잘 된 예가 없으며, 선량한 백성들이 먹고 살기 힘들 정도로 정치, 경제, 사회적인 혼란이 지속되면 큰 전쟁을 겪을 수밖에 없는 비극이 펼쳐지기 일쑤다. 백성이 유랑걸식을 하며 도적으로 바뀔 때 세상은 경천동지의 대격변을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중국의 역사에도 잘 나와 있다. 황건적이 그랬고, 홍건적이 그랬다. 그리고 서구열강의 침탈에 청왕조의 무능이 여실히 드러나자 또다시 백성들은 들고 일어날 때를 기다린 셈이다. 그런데 '사이비교주'와 다를 바 없는 인물이 등장해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말았으니 이때 죽은 수많은 백성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태평천국의 난'을 제대로 조명하면,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또 하나 늘어나게 된다. 특히 '나쁜 역사'는 반드시 반복되고, 역사를 잊은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는 까닭에 딱 걸맞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사이비교주'와 같은 이가 등장해서 '가짜뉴스'로 선동하고, 혹세무민한 일이 드물지 않기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종교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들만의 천국'을 만들려는 못된 무리를 절대 용서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이 목놓아 외치는 '종교의 자유'는 온국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집단이기주의'와 다를 바가 없기에 관용을 베풀어서도 안 된다. 특히 '광신도 집단의 행패'가 이웃에게 주는 피해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다. 그렇기에 애초부터 '사이비 종교'에 심취해서는 안 되지만 '사이비의 마수'가 손을 내미는 곳은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가 소외를 시키고, 우리에 의해 소외받은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내 이웃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지며 우리 모두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갈 때 사이비가 발을 붙일 곳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태평천국운동은 청왕조 아래서 신음을 하던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일어선 것이 아니다. 백성들의 불만이 들끓던 시기에 혹세무민하며 자신들의 잇속을 단단히 챙기려는 무리가 백성들을 부추겨서 발생한 안타까운 사건이다. 그러니 태평천국운동을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내세웠고, 공산주의보다 앞서서 백성(약자)들의 편에 서서 '이른 사회주의 사상'을 펼쳤다는 등 좋은 말로 포장해서도 안 될 것이다. 설령, 태평천국운동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하더라도 준비도 안 된 무능한 지도부에 의해 곧바로 무너져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점은 '중국민중의 의식성장'이다. 비록 피바다를 물색하게 만들 정도로 비극으로 치달은 운동이었지만, 훗날 '중화민국'이란 민주주의 국가를 설립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민중들 손으로 해냈기 때문이다. 물론, 중화민국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고 외세의 침략과 세계대전이라는 소용돌이속에서 공산당이 민중을 장악하고, 공산당이란 독재세력에 의해 중국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리지 못하고, 중국이 '세계 최고'라고만 주입된 무뇌충 집단이 되어 이성을 잃고 야욕만 내세우는 꼴이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태평천국의 여파가 2권에서 끝난 것은 아니다. 4권에서 다시 이어지니 그때 다시 정리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