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 이야기 - 물·불·흙·공기부터 우리의 몸과 문명까지 세상을 만들고 바꾼 118개 원소의 특별한 연대기
팀 제임스 지음, 김주희 옮김 / 한빛비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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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원소'라 한다. 그 원소를 '주기'와 '특성'으로 반듯하게 줄세워 놓은 것은 '주기율표'라고 부르고 말이다. 그렇게 우리가 찾아낸 118개의 원소에서 벗어나는 물질은 온 우주를 통틀어도 찾아볼 수 없다. 왜냐면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원소는 92개 뿐이고, 그 이상의 원소는 인간이 억지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소는 118개보다 더 많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덩치(?)가 커져버린 원소들은 매우 불안정한 탓에 만들어지자마자 소멸해버리는 의미없는 원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주기율표에 나열된 118개의 원소가 우리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과연 어떤 것일까.


  먼 옛날에는 물과 불, 공기, 흙 따위를 '원소'라 불렀다. 이 네 가지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를 '4원소설'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들은 원소가 아니다. 오늘날의 상식으로 물은 '수소'와 '산소'가 결합해서 만들어졌기에 '순수함'을 잃어 버렸고, 불과 공기, 흙도 원소가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의 상식에 비춰보면, 원소는 '양성자'와 그 양성자를 붙들어매는 '중성자', 그리고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진 핵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로 구성된 순수한 물질이다. 그리고 이 순수한 물질들은 저마다 '고유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세상의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본물질'로 삼았다는 것이 가장 핵심이다. 따라서 우리는 '원소'를 모르고서 살 수는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원소'에 대해서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아니, 오히려 '원소'와 관련된 '화학'이라는 말을 너무 싫어하고, 심지어 혐오하기에 이를 정도다. 어떤 음식에 '화학조미료'를 넣었다는 문구만 적혀 있어도 먹지 말아야 할 음식으로 여기고, 여느 물건에 '화학처리'를 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값어치가 떨어질 정도니까 말이다. 그래서 '화학'이란 낱말 대신, '천연'이라는 말을 대신 써넣곤 한다. 그러나 사실은 '화학'이나 '천연', 모두 똑같은 '원소'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 몸을 이루는 '구성물질'도 원소의 집합체일 뿐이다. 다만, 그 원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조합을 잘 이루고 있는지에 따라 저마다 다른 개성을 뽐내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심지어 구성물질도 수소, 산소, 탄소, 질소, 칼슘, 인, 황, 소듐(나트륨), 포타슘(칼륨), 염소, 마그네슘, 규소, 철, 아연, 구리, 망간, 불소, 크롬, 셀레늄, 몰리브데넘, 코발트..로 모두 똑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화학을 비롯해서 '원소'에 대해서 잘 알아야만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시중에 '원소'에 관한 책들이 정말 많다. 그 가운데 어느 책을 읽어도 과학상식을 얻는데 많은 도움을 줄 테지만, 이 책 <원소이야기>에만 담겨 있는 이야기가 있다. 그건 바로 '과학'을 넘어 '일상'에서 만나는 원소상식이 아주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른 책은 '원소에 대한 과학책'에 가깝지만, 이 책은 '원소에 관한 한 편의 에세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만큼 쉽고 재밌다는 점이다. <원소사냥꾼에 대한 이야기>, <완벽한 원자모형을 찾기 위한 과학자들의 고군분투>, <한 눈에 쏙 들어오는 깔끔한 주기율표는 누가 완성했을까>, <전기로 완성되는 금속원소의 짜릿하고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생명을 구성하고 세상을 뒤바꾼은 원소에 감쳐진 속사정>까지 읽고 나면 학창시절에 화학을 싫어하던 독자였을지라도 책장 하나하나를 넘길 때마다 숨죽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 책이 아주 쉽지 만은 않다. 양자물리학과 다를 바 없는 양자화학과 양자전기학의 세계로 이끌며, 툭하면 우주로 날아가버리는 저자의 설명에 어이가 없다가, 정반대로 쿼크와 힉스보손, 광자, 그리고 미립자의 세계로 초대해버리는 광란의 원자이야기에 넋을 놓고 일쑤요,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런 걱정할 것이 없다. 그런 '고차원적인 이야기'는 둘째치고 오직 '원소이야기'에만 집중하면 어렵거나 말거나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가 뭘 설명하든 결국엔 "원소란 그런 것이다. 그 원소로 우리는 요리를 하고, 티비를 보며,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고, 밤하늘에 우주쇼를 관측할 수 있다"는 것만 이해하면 된다.


  그만큼 화학(원소)은 일반상식에 가깝고 우리 일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니 꼭 알아야 한다. 그래야 '가습기살균제'로 일어난 피해 따위와 같은 불행한 일이 재차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가습기'는 물분자를 기화시켜서 수증기로 만드는 장치다. 그런데 그런 가습기를 '소독'하겠다고 '살균제'를 넣고 함께 기화시켰으니 '수증기'가 아니라 '독성기체'를 흡입하는 장치를 만든 셈이다. 그것도 환기도 시키지 않은 채 말이다. 우리가 간단한 과학상식이 없을 때 벌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참사였다. 어디 이 뿐이랴.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는 자연재해와 인공재해도 모두 '원소상식'만 가지고 있으면 피해를 줄이고, 대책을 마련할 수도 있다. 이렇게나 유익한 '원소이야기'를 아직도 읽지 않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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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3 - 일본 개항 본격 한중일 세계사 3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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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엔 '일본개항'이다. 19세기말, 일본이 쇄국에 이어 개항을 하기까지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 청나라가 '아편전쟁의 패배' 이후에 굴육적인 개항과 '태평천국의 난'이란 대혼란을 맞은 것처럼 일본도 실질적인 권세를 누리던 막부가 굴욕적(?)인 개항 이후에 '존왕양이의 대혼란'을 겪으면서 권력의 핵심이 막부에서 일왕으로 넘어가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엿볼 수 있다. 같은 시기 조선에서도 '세도정치의 폐해'가 극심해지면서 혼란기를 맞이하지만 서구열강의 침략이 '같은 시기' 중국과 일본에 비해 덜했던 터라 말도 못할 정도로 국력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던 것은 '동북아 삼국'이 공통으로 겪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서양의 중세 이전까지만 해도 국력이 하늘을 찌를 기세였던 '동북아 삼국'이 몇 백년만에 역전해서 맥을 못추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일까? 하루가 멀다하고 피 튀기는 싸움과 함께 '근대화'를 맞이할 만큼 이성이 깨이는 '계몽주의'와 '과학의 발달', 그리고 그 정점이었던 '산업혁명'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면서 서양의 괴력이 뿜어져나오고 있었는데도,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는 상대적으로 '근대화'가 뒤쳐졌던 탓에 '서양의 제국주의 팽창'을 막을 방도도 찾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 것이다. 그런 까닭에 '문명국'으로 앞서던 동양의 여러 대국들이 차례차례 서양의 제국주의 침략에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맥없이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암튼, 작금의 세계화를 이끄는 서양의 선진국들이 주춤하는 사이에 발빠르게 선도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보면서 이 책 <본격 한중일 세계사> 시리즈를 볼작시면, 우리가 얼마나 뒤쳐졌다가 '대역전'을 이루며 앞서나가고 있는지 한 눈에 비교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경험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 책 시리즈의 참 매력일테고 말이다. 자, 지금부터 '일본개항'을 소개하겠다.


  일본은 일찍이 포르투갈 상인을 통해서 '조총'을 수입하며 서양의 앞선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취한다. 허나 서양의 문물과 함께 '그리스도교'라는 종교까지 들어오게 되자 '살아있는 신'이라 불리는 일왕을 모시는 일본인들의 정신적 건강(?)에 심히 해롭다는 결론을 내리고 '쇄국'에 돌입하고 만다. 서양을 향한 유일한 통로는 '네덜란드(화란)'를 파트너로 삼는 것으로 만족하고 말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쇄국을 이어오며 외국인을 철저히 못 들어오게 하였는데, 중국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서구열강의 공격에 맥없이 패배하고 굴육적인 '불평등 조약'을 맺고 후덜덜해진 상황이라는 소식을 접하고서는 곧바로 태세를 전환하게 된다.


  바야흐로 '쇄국'을 철회한 것이다. 당시 일본의 실세는 '막부'에 있었다. 막부를 이끄는 '쇼군'이 지방영주인 '다이묘'들을 다스리며 일본 전역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외국인들도 그런 '막부'와 조약을 맺고 이권을 챙기려 했다. 허나 일본은 '막부'가 다스리고 있긴 하지만 형식적으로나마 '일왕'이 다스리는 '만세일계의 신(神)국'이었기에 쇼군은 일왕에게 승인을 밟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유예기간'을 달라고 한다. 이때가 바로 페리제독이 이끄는 '흑선'이 함포를 발사한 뒤에 서양과 첫 외교를 시작한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일본 내부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았던 터라 '외세의 압력'에 개항을 결정했더라도 수월하게 진행될 수는 없었다. 당시 실질적 권력을 쥐고 있던 '막부의 권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왕'에게 충성을 다하며 일본의 자존심(?)을 바로 세우겠다는 '존왕양이 운동'이 지방 사무라이들을 중심으로 널리 퍼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에게 충성하겠다는 것은 '왕조국가'의 당연한 진리이며, 유교국가에서는 으뜸으로 취급받던 자연스런 사상이었지만, 일본은 '일왕'에게 충성을 받치되 '권력의 중심'은 막부의 우두머리인 '쇼군'에게 있었기에 일본의 무사집단은 일제히 쇼군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일본의 '이중적인 행태'가 일본의 개항을 맞아 대혼란의 빌미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 서양의 위협에 막부가 오금을 지리며 무력하게 개항 조약을 맺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의 자존심'이 짓밟혔다는 여론이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 이참에 무력한 막부를 탓하고 못난 짓을 서슴지 않는 쇼군을 타도하자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단숨에 '일왕파'와 '막부파'로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갈라서게 된 셈이다. 여기에 '막부파'는 쇼군자리를 놓고 '개혁파'와 '구세력'으로 갈라져 권력승계 다툼을 벌이게 되니, 개항조약에 사인을 받으러 미국을 비롯한 서구열강들이 찾아올 날짜는 다가오는데, 일본 내부에서는 혼란만 가중되어 해결될 기미가 좀처럼 보이질 않으니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서양 세력에 맞설 수 있는 실질적인 힘도 '막부'에게만 있는 상황이고 보니, 문명개화가 덜 된 일본은 '닥치고 막부에 충성'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허나 서양의 힘을 제대로 알기는커녕 대충이라도 가늠할 줄 모르던 '일왕'과 '존왕양이 지사들'은 이 기회에 막부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며 '막부 흔들기'에 열중했던 것이다. 서양의 강력한 힘을 감지하고 '당장'은 납작 엎드려서 소나기는 피해가자는 현실적인 대안을 실천중이던 막부로서는 답답할 상황이 펼쳐진 셈이다. 그 와중에 권력의 구심점이 되어야 할 '쇼군'이 병약하고 무능한 어린아이들로 명맥을 이어나갔다는 것도 불운이라면 불운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일본은 '막부의 나라'였기에 막부는 '내우외환'을 맞아 어찌어찌 버틸 뿐이었다.


  한편, 서양은 왜 일본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을까? 아직 영국은 두 차례에 걸친 '아편전쟁'을 치르며 청나라를 요리하기에 바빠 일본까지 넘볼(?) 기회를 찾지 못했다. 그 사이에 미국과 러시아가 먼저 일본을 선점하려 했는데, 미국은 '고래잡이의 전진기지'로 삼고자 했으며, 러시아는 영국의 눈을 피해 '부동항'을 차지하려고 각각 일본을 최적의 장소로 손꼽았던 것이다. 당시 '고래기름'은 석유가 나오기 전까지 '산업의 에너지원이자 윤활유'였던 탓에 태평양에서 원활한 고래잡이를 하기 위해선 일본에 안전한 정박지를 만들어놓는 것이 미국에게 절실했던 것이다. 반면에 러시아는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의 난'으로 정신이 없는 청나라를 대신해서 '연해주 일대'를 러시아가 다스리겠다면서, 어차피 영국이나 프랑스에게 빼앗길(?) 바에야 오랜 친분(?) 관계에 있는 러시아가 대신 차지하는 것이 청나라에게도 이득이 아니겠냐는 해괴한 논리를 펴서, 그토록 염원이었던 '부동항'을 차지하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한 셈이다. 그러기 위해서 러시아는 만주를 비롯해서 사할린과 그 아래에 있는 여러 섬들을 차지함과 동시에 일본의 항구를 기착지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조약을 맺길 원했던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일본은 미국과 '불평등 조약'을 맺는 것으로 시작해서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와도 '최혜국대우'를 포함한 불평등한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된다. 이후에 펼쳐질 내우외환의 깊은 내막이 곧 펼쳐지게 될 것이다. 그에 앞서 4권에서는 '태평천국, 그 이후'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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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
멜빈 버지스 지음, 정해영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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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나 내 취향은 '텍스트'였다. 영상이 주는 감동과 아름다움에 가려져서 읽어낼 수 없었던 '숨겨진 내용'을 소설을 읽으면서 곱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긴 '영화'가 원작이고, 영화의 인기를 반영해 지어낸 '소설'로 또다시 그 인기를 증명하였기 때문에 '원작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감동은 여전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해도' 면에서는 확실히 소설이 월등히 나았다.


  내가 원작영화를 보면서 놓쳤던 부분은 '광부들의 파업'과 '대처 수상의 똥고집'이 가지고 온 영국 저소득층의 슬픔이었다. 대영제국으로 영광을 누리던 시절, 석탄을 캐는 광부는 '산업역군'이었으며 영국을 명예를 지켜낸 영웅들이었다. 허나 '석탄산업'이 저물고 대영제국이라는 타이틀도 내려놓을 즈음에는 광부들은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광부들은 그저 먹고 살기 위해서 석탄을 캐려고 했지만, 석탄산업은 저물고 석탄을 캐내면 캐낼수록 적자를 보는 퇴물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에 마가렛 대처는 과감한 개혁드라이브를 시행했으니 퇴물이 되어 버린 탄광을 아예 폐기처분하는 방법으로 영국경제를 되살리려 했던 것이다. 당연히 광부들은 파업을 하며 강경하게 대처했다. 생존권이 달린 '나쁜 정책'을 지지할 멍청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처는 막무가내였다. 광부들을 살리려면 영국 전체가 죽어야 한다면서, 광부들에게 스스로 '희생양'이 되어 줄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빌리네 아빠(재키)와 형(토니)는 이런 일련의 경제정책의 희생자였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빌리는 '발레'를 접하게 된다. 막연하게 권투를 배우며 '남성성(?)'을 익혀가던 빌리는 권투에 집중하기보다는 '춤'에 가까운 권투를 하다가 얻어맞기 일쑤였다. 마침 권투연습을 하는 장소에 발레수업이 동시에 펼쳐지는 우연이 겹치면서 빌리는 자신의 내면에 감춰진 '춤에 대한 본능'을 깨닫게 된다. 다시 말해, 권투 동작에 발레(춤)를 접목시킨 것이다. 이런 해괴망측한 짓을 거쳐 빌리는 '발레동작'에 매료되어 갔고, 결국엔 권투수업은 때려치우고 발레수업을 몰래 듣게 된다. 아무도 모르게 말이다. 물론 '발레선생님'과 '그 딸'은 빼고 말이다.


  발레선생님은 한눈에 빌리의 천재성을 알아본다. 그리고 개인수업을 해주며 '발레 오디션'을 준비하게 한다. 하지만 생계조차 버거운 빌리네 가족은 빌리가 오디션에 참가하기 위해 필요한 '참가비'조차 마련하기 힘들 정도다. 아빠와 형 뿐만 아니라 (탄광)마을사람 모두가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마당에 모두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대가로 생계를 꾸릴 수 있는 '대안'을 대처가 제시하기는 했지만, 파업참가자들은 그런 대안을 선택한 사람들을 '배신자'라고 부르면서 온갖 모욕적인 말과 린치까지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험악한 분위기에 자신들의 생계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빌리의 발레 참가비'를 선뜻 내어줄 사람은 있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정말 절박했던 것이다. 어쨌든, 이런 어려움을 뚫고 빌리는 '로열발레학교'에 당당히 입학하였고, 발레리노(남자무용수)로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어렸을 적에 흠뻑 빠졌던 <백조의 호수>의 주연을 당당히 맡아 '비상'하게 되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 된다. 물론 '원작영화'도 그렇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와 소설이 대박을 치자, 실존 인물이 궁금한 것은 당연지사다. 필립 모리스가 바로 그 사람이다. 언론에는 '필립 말스덴'으로 소개되곤 했지만, 그의 본명은 '모리스'가 맞단다. 그의 일생은 영화에서 보여준 것이 대부분 맞다고 한다. 발레를 몰래 배우지 않고 3살부터 여동생과 함께 배웠다는 것과 발레보다는 '탭 댄스'를 추고 싶었다는 점이 다를 뿐, 가난한 탄광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도 사실이고, '로열발레단'에 입학한 것도 모두 사실이란다. 참, 그리고 '가난한 애'가 '고급학교'에 다니면서 열등감을 느꼈던 적도 없단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그런 '열등감'을 살짝 언급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보다는 '동성애자'라는 오해가 가장 큰 고충이었다고 한다. 발레 같은 것은 여자들이나 하는 것인데, 남자가 '여자의 춤'을 춘다는 것 자체가 그런 오해를 불러오기 마련이라고 말이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 그를 가장 괴롭게 했단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소수자에 대한 편견'은 자연스런 현상인 모양이다. 특히나 '동성애자'는 비정상인으로 취급 받으며 온갖 나쁜 짓을 받아 마땅한 불결한 존재로 취급하였으니, 발레를 배운다는 것조차 '몰래' 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었으리라.


  그러나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 어떤 편견과 시련도 한방에 날려버리기 마련이다. 빌리가 무대에 등장하면서 세상 그 어떤 '백조'보다 강렬한 인상을 보여주며 그 어떤 점프와도 비교할 수 없는 '비상'으로 관객들을 매혹시켜버리자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도 한 방에 날아가 버린 것이다. 정상인들이었을 '관객'들이 한 눈에 반해버린 존재가 '비정상인(소수자)'가 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고 보면 세상은 참 얄궂다. 반푼 쯤 모자란 바보들이 '천재'를 바라보면서 박수갈채를 보내곤 하지만, 그 천재가 진정으로 '비상'하기 전까지는 '날개짓'도 할 수 없게 꺾어버리려 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바보들은 자신들의 재주없음을 한탄하며 '천재들의 날개짓'을 시샘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온갖 편견을 내비치며 '또 다른 천재'들의 등장을 일사분란하게 막아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자신과 '다름'에 매우 불편한 심기를 표출하는 바보들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나조차도 그런 바보같은 짓거리를 서슴지 않고 뿜어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보들의 행진'을 멈춰야 한다. 여자가 축구하고 남자가 설거지하는 '일상'이 평범해질수록 우리 사회는 건전해지기 때문이다. 여자는 '집안일', 남자는 '바깥일'을 해야 한다는 시대적 오류는 과거에 묻어두어야 한다. 그땐 그랬지..라면서 추억할 꺼리도 못되는 것을 애써 끄집어 내어서 '사회적 편견'의 소재로 쓰이면 참으로 곤란하다. 그냥 '인간'일 뿐이다. 남자든 여자든 '똑같은 인간'이란 말이다. '인간차별'이 어색하고 모욕적으로 들린다면 '남녀차별'이라는 말도 써서는 안 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할 수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으리라 본다.


  누가 뭐라든 '나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당당히 드러낼 수 없을만큼 부끄러운 짓은 살인과 같은 '폭력'을 저지르는 짓이다. 그 어떠한 폭력도 용납할 수 없는 까닭이 바로 '부끄러운 짓'이기 때문이다. 허나 '동성애'가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동성애자'를 범죄자 취급하며 마녀사냥하듯 몰아붙일 일이 전혀 아닌 것이다. 딴에는 '동성애'가 종족번식을 차단하는 '사회악'으로 작용한다며 거품을 물고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아기를 갖지 못하는 '불임부부'와 '난임부부'도 마찬가지로 사회악으로 대우할 셈인가? 외모에 편견을 갖고 '변형된 유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잘 생기고 예쁘면 '무죄', 못 생기면 '유죄'와 무엇이 다를 것이냔 말이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방영하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인해 '자폐스펙트럼 환자(일명 '자폐증')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다고 한다. 세상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똑같은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보통사람'을 정상으로 놓고 '평범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재주를 지녔다. 분명히 '다른 사람'인데도 '똑같지 않으면 불편해 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단 얘기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도 평범해 보이려 애쓰지는 말길 바란다.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성숙한 사회를 꿈꾸는 건 인지상정 아니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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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6 - 1936-1940 결전의 날을 준비하라 (박시백의 일제강점기 역사만화) 35년 시리즈 6
박시백 지음 / 비아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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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대 후반, 일제는 폭주하기 시작한다. '민족말살정책'이 시작한 것이다. 중일전쟁의 발판으로 삼은 '식민지 조선'은 일제의 '병참기지'로 전락하고 말았고, 일제는 침략전쟁을 '서양의 침략에 맞서기 위한 아시아의 단결'이란 뜻의 '대동아공영'이란 미명으로 포장하고, 수많은 조선인을 침략전쟁에 참전토록 하였다. 허나, 일본제국에 의해서 일본제국만을 위한 전쟁에 '조선인'이란 이름으로 참전할 리가 만무할 따름이다. 이에 일제는 조선인들을 '2등 국민'으로 차별하면서도 '내선일체'를 내세워 희생양, 아니 총알받이로 이용하려 들려 했다. 나라를 빼앗기고 힘 없는 백성이 된 조선인은 '창씨개명' 따위로 억지로 일본인이 되어 전장으로 끌려가 짐승만도 못한 처우를 받으며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이용 당하고 또 이용 당했다. 이겨도 자랑스럽지 않은 '남의 나라 전쟁'에 말이다.

 

  물론, 이에 맞서 맹렬히 저항하는 세력은 많았다. 독립운동의 기치는 결코 사그라들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일제는 분명 그 힘이 다하고 있었다. 분명 '전쟁의 시작'은 늘 승전이라는 빛나는 전과로 장식했지만, 이는 '기습공격'이라는 비겁한 술수에 불과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 될수록 일제는 초반의 승기가 무색할 정도로 무력한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독립운동세력이 '게릴라전'을 펼칠 때마다 일제는 번번히 패배하곤 했기 때문이다. 비록 게릴라전이라서 '소규모 전투'의 승전일 뿐이었고, 곧이어 '대토벌'이라 불릴 정도로 엄청난 물량으로 보복을 해와서 독립운동세력 뿐만 아니라 이들을 물신양면으로 도와주던 민간인들의 피해가 점점 불어나고 있었지만, 일제의 빈틈은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일전쟁'의 양상은 전선이 점점 확대되어 가기만 했고, 연이은 일본군의 승리에도 전쟁은 쉽사리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일제가 중국을 점령하기에는 중국이 너무 컸던 탓이다. 거기다 '공산주의 세력'은 날로 확대되어 갔다. 소련에 이어 중국까지 '공산화'가 뚜렷해지고, 세계대공황에서도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보다 경제회복이 빠르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자 전세계 수많은 인민들이 '공산주의의 매력'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제의 만행은 '제국주의의 민낯'을 낱낱히 밝혀주는 꼴을 면치 못했고, 공산당의 일원으로 활약하는 것이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는 정정당당한 일이 되어 버리는 통에 '공산주의자=애국자'로 통용되는 일로 커져만 갔다.

 

  이는 우리측 독립운동가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에 수많은 독립운동이 활기를 잃고 '변절자'가 속출하는 와중에도 '공산주의'는 노동자와 농민 들의 시위와 파업에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 일제에 저항하는 방법을 가르쳤고, 독립전쟁에 참여한 이들 가운데서도 '공산주의자'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독립운동세력은 열악한 환경에 처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공산국가인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공산주의자'로 전향하는 일도 흔한 일이 되었다. 그렇게 '독립운동의 명맥'을 이어온 이들 가운데 유독 돋보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보천보 전투'로 유명한 김일성이다.

 

  우리는 김일성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일찌기 공산당의 일원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는 것에 부인하지는 않고 있으나, 그가 '청산리대첩'과 같은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김일성의 독립운동을 깎아내려버리면 '또 다른 독립운동가들'도 동시에 폄하하는 일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김일성의 독립운동 참여 '사실'은 인정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해방 후에 '한국전쟁'을 일으킨 원흉이라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그렇기에 북한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남한에서는 그를 곱게 볼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김일성은 '제한적인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해방 이전의 활약에 대해서만 논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암튼, 김일성은 동북항일연군에서 활약 했다. 동북항일연군은 중국공산당이 주제해서 만든 항일조직으로 일단은 '중국군'에 소속되어 있지만, 조선인들로 이루어진 부대가 따로 운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일제의 계략으로 인해 밀정이 파견되어 독립운동세력을 와해하거나 주축인물을 일제에 투항시켜 변절시키거나 '또 다른 밀정'이 되어 더 많은 독립운동가를 색출해내려 했기 때문에 중국공산당은 조선인들로 이루어진 부대를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불안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백척간두의 상황에서도 '김일성'만큼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혹독한 고문을 견디지 못한 밀정이 '김일성'을 배신자, 변절자라고 실토하더라도 중국공산당 뿐만 아니라 조선공산당원들도 모두 '김일성'만큼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한다. 이런 사실만 보아도 김일성이 인맥관리에서부터 활동의 청렴성까지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도 '자기관리'만큼은 철저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자기 주위에 '적'을 두지 않고 두루 명망을 갖추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김일성의 인기는 이를 반증하는 확고한 증거로 작용했던 것이다.

 

  허나 김일성이란 '예외사항'을 빼고 나면, 조선인은 나라를 빼앗기고 온갖 설움을 받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한 것이 맞다.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에 따라 친일을 하지 않거나 변절을 하지 않는 한 조선에서는 목숨 붙이고 살 수 없는 세상을 만들었고, 이웃나라로 잠시 몸이라도 피하자고 떠난 이들도 '일제부역자', '일제의 스파이'로 오인되어 머나먼 타지로 쫓겨나는 푸대접을 받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조차 '조선인과 일본인'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푸대접을 하는 마당에 소련에서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로 인해 스탈린은 '고려인 이주정책'을 강제로 밀어붙였고, 그로 인해 수많은 고려인들은 빈곤과 불모의 땅이던 '중앙아시아'로 내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이유도 궁색한 '일제의 스파이' 혐의를 받고 말이다. 소련의 공산혁명의 최일선에서 활약했던 영웅들조차 이런 푸대접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우리가 '독립운동가'를 기리고, 그분들의 업적을 뒤늦게나마 드높이는 일에 공을 들여야 하는 까닭은 지금의 대한민국이 바로 그분들 덕분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미국의 핵폭탄이 일제의 항복을 끌어냈고, 그로 인해 조국이 해방될 수 있었다 하더라도 궁극적으로 '독립운동' 자체가 없었다면 '독립'은 있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독립운동가'를 한분 한분 찾아서 그들이 받고 누려야 마땅한 공로에 아낌없는 감사를 드리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그래야 이 땅에 또다시 불운이 찾아와 나라를 빼앗길 위기에 처해도 당연히 '나라를 지키는 애국자'로 나서 싸울 것이다. 이처럼 너무도 당연한 일인데도 망설이는 까닭이 있다면, 해방정국의 혼란과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을 연이어 겪으면서 '친일파'들이 '구국의 영웅'으로 거듭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또 전쟁이 끝난 뒤에도 오랫동안 독재정권이 들어서서 '이들'을 감싸고 경제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포장'하고 키워주고 거짓까지 일삼으며 '쉴드'를 쳐주는 못된 이들이 많았던 탓이라 하겠다. 이런 비극속에서 되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숨죽이며 살아야 했으니 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이란 말인가.

 

  우리가 진정으로 미워해야 할 것은 '외세의 힘'에 기대어 '자신의 안위'만 돌보는 매국노들이다. 나라의 위기를 눈앞에 두고서도 제 한 몸만 살려보겠다고 민족을 배반하는 놈들을 미워해야 마땅하다. 또한 자기 스스로 제 나라가 '약소국'이라 떠들고, 강대국에 '빌붙어야만' 살 수 있다며 떠벌리는 '노예근성' 쩌는 놈들은 밟아죽여도 시원치 않으리라. 그 못난 놈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란 것도 '힘 있는 나라에 납죽 엎드려 사죄를 해야 한다'는 얼토당토 않은 말들 뿐이다. 들을 가치가 있는가? 자기 한 몸 노예가 되는 것으로도 모자라 '제 자식'마저 총알받이로, 성노예로 갖다 받쳐도 그 큰 은혜(?)를 갚을 길이 없다고 떠들어대는 헛소리에 현혹될 것이냔 말이다. 이젠 진짜 미워할 놈들을 미워하자.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염치없는 것들에게 단단히 혼쭐내주는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마지막 7권에서 그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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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2 - 태평천국 라이징 본격 한중일 세계사 2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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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운 듯 하지만 안 배운 것과 진배 없을 정도로 깜깜한 '동북아시아의 근현대사'는 <한국사>에서조차 드문드문 배울 뿐, 우리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한꺼풀 들춰보면 분명히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은 날 것이다. 왜냐면 '배우긴 배웠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걸까? 그건 역사는 '단편적'으로만 배울 뿐, '맥락'과 '흐름'이라는 거대한 차원에서는 전혀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한국사>는 한반도에서만 일어난 일만 다루고, <세계사>는 백인들이 주인공이 되어 벌인 일만 써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나마 '단편적인 역사적 사건'을 가르치고 배우긴 하지만 '암기'하기 좋게 사건이 일어나게된 원인과 결과만을 '요약'해서 시험문제로 다루니, 웬만큼 역사에 통달하지 않고서는 '교과서'만 읽고서 역사의 맥락과 유구한 흐름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이런 역사는 그만 배워야 하지 않을까.

 

  1권에 이어 2권에서는 1840년대 한중일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을 토대로 전세계적인 '움직임'을 들여다볼 수 있다. 당시, 중국에서는 아편전쟁의 패배의 쓰라림 속에서 민중들의 반란인 '태평천국의 난'이 벌어진다. 일본에서는 이양선과 서양인이 출몰하면 몽땅 파괴하고 죽이는 쇄국을 하면서도 네덜란드 상인만은 출입을 허가하며 서양의 문물을 배우며 '난학열풍'을 벌인다. 그러는 한편, 청이 아편전쟁에서 패배하고 서구열강들에게 쳐발리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개항'을 하기에 이르고, 이런 흐름에 미국이 '태평양시대'를 맞아 고래잡이하는 포경선의 안전한 활약을 보장받기 위해 동북아시아 3국에 접근하기 시작한다. 물론, 그 길목인 일본이 가장 먼저 주목 받고 말이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세도정치 시기'의 대혼란을 겪으며 민중들이 핍박 받는 일이 자행되지만, 상대적으로 중일에 비해서 서양의 관심을 덜 받은 까닭에 아직은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 평온함(?)은 오래 가지 않고 격변의 시기를 맞이할 거라는 사실은 익히 알고 계실 것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책 <본격 한중일 세계사 2>의 핵심은 '태평천국의 난'을 다룬 것이다. 그동안 역사책에 종종 거론되긴 하지만 잘 알지 못했던 까닭에 이 책만큼 자세하고 흥미진진하게 알아볼 수 있는 책이 없기 때문이다. 고작 14년(1851~1864)만에 수억의 인명이 살상 당한 비극을 초래하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매우 중대한 사안으로 다룰 수밖에 없는데도, 실상을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을 접할 수 있는 책이 드물다는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왜 그럴까?

 

  태평천국운동은 홍수전이 "나는 상제님(하나님)의 둘째 아들이다"라는 예언을 들었다는 얼토당토 않은 사건으로 시작하지만, 아편전쟁을 겪으면서 대국의 자존심이 꺾인데다가 이후 서양의 침략에 변변한 대안도 마련하지 못한 채, 백성들의 수탈에만 열을 올리는 무능력한 청조정에 대항하고(반봉건), 서양의 침략에 단호히 맞서며(반외세), 사회주의 색채를 띤 '사유재산 금지', '배급제 실시', '남녀평등 정책', '도덕을 앞세운 행정시스템' 등등 시대적으로도 대단히 앞선 사상을 내세웠던 탓에 당시 핍박받던 수많은 백성들의 지지를 받으며 '남경'을 점령하고 화남일대를 다스리며 청조정이 있는 북경까지 공략하는 등 청왕조를 뿌리채 흔들리게 만든 역사적인 운동이었다. 그러나 '태평천국의 난'으로 진압되고 만 까닭은 지도부의 분열과 타락으로 구심점을 잃고 오히려 백성들을 수탈하고 학살을 자행하는 등의 만행을 일삼았던 탓에 '반봉건', '반외세', '새로운 세상'을 꿈꾸던 수많은 이들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멸해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물론, 태평천국운동 이후에 손문(쑨원)이 똑같은 사상으로 중화민국을 건국하기에 이르고, 모택동(마오쩌둥)의 공산당 이념과도 유사한 사상을 내세웠던 탓에 역사적으로도 그 중대한 사건으로 다룰 수밖에 없다. 그러나 태평천국이 '종교적 성향'을 내세웠던 것이 커다란 오점을 남기게 된 원인으로 보인다. 왜냐면 종교운동은 성스럽고 도덕적으로 흠이 없어야 성공할까 말까인데, 홍수전을 비롯한 왕을 자칭한 지도부가 먼저 상스럽고 부도덕적인 일로 서로 갈등을 일으키더니 끝끝내 저들끼리 치고 받는 과정에 상대편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르며 민심을 잃고 뿔뿔히 흩어지고 말았다. 용두사미란 말이 딱 어울릴 정도로 말이다. 이처럼 '태평천국운동'의 평가는 극과 극을 오가기 마련이라, 한편으론 대단하다고 평하면서도 막장보다 더한 부끄러움에 감추기 급급한 역사로 치부하곤 한다.

 

  이쯤해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도대체 그당시 백성들은 '사이비교주'와 다를 바 없는 홍수전과 그 일당의 꼬임에 넘어가 내전을 방불케 한 전쟁에 참여하며 서로 죽고 죽이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연출했던 것일까? 그건 정부세력(청왕조)이나 반정부군(태평천국)이나 썩을대로 썩어빠졌기 때문이었다. 백성들 처지에서는 조금이라도 먹고 살 희망이 큰 쪽에 붙고 싶었을 뿐이다. 청의 관료들은 서양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면서도 백성들을 수탈하는데에는 도가 텄기에 일찌감치 민심을 잃었고, 그나마 태평천국운동의 초기에는 '살만한 세상'을 꿈꾸게 해줄 것만 같은 기대감이 부풀어 올라 사기충천하였고, 반봉건, 반외세라는 기치를 내세울 수 있었기에 기꺼이 전재산을 걸고 한 판 승부를 걸었던 셈이다. 다시 말해, 백성들은 이쪽에 붙으나 저쪽에 붙으나 굶어죽기는 매한가지라서 큰 고민할 것도 없을 지경이었단 말이다. 그러니 알만 한 사람은 다 알면서도 '사이비교주'의 편을 들어 새로운 세상을 꿈꿨고, 이들을 상대로 큰 공을 세우면 청왕조에서 한 자리 내어준다고 약속을 하니, 백성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이쪽이나 저쪽에 붙어서 죽고 죽이는 비극을 연출한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민심'을 거스른 나라가 잘 된 예가 없으며, 선량한 백성들이 먹고 살기 힘들 정도로 정치, 경제, 사회적인 혼란이 지속되면 큰 전쟁을 겪을 수밖에 없는 비극이 펼쳐지기 일쑤다. 백성이 유랑걸식을 하며 도적으로 바뀔 때 세상은 경천동지의 대격변을 맞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중국의 역사에도 잘 나와 있다. 황건적이 그랬고, 홍건적이 그랬다. 그리고 서구열강의 침탈에 청왕조의 무능이 여실히 드러나자 또다시 백성들은 들고 일어날 때를 기다린 셈이다. 그런데 '사이비교주'와 다를 바 없는 인물이 등장해 백성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말았으니 이때 죽은 수많은 백성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태평천국의 난'을 제대로 조명하면,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또 하나 늘어나게 된다. 특히 '나쁜 역사'는 반드시 반복되고, 역사를 잊은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는 까닭에 딱 걸맞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사이비교주'와 같은 이가 등장해서 '가짜뉴스'로 선동하고, 혹세무민한 일이 드물지 않기에 더욱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종교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그들만의 천국'을 만들려는 못된 무리를 절대 용서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들이 목놓아 외치는 '종교의 자유'는 온국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집단이기주의'와 다를 바가 없기에 관용을 베풀어서도 안 된다. 특히 '광신도 집단의 행패'가 이웃에게 주는 피해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다. 그렇기에 애초부터 '사이비 종교'에 심취해서는 안 되지만 '사이비의 마수'가 손을 내미는 곳은 알게 모르게 우리 사회가 소외를 시키고, 우리에 의해 소외받은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내 이웃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지며 우리 모두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갈 때 사이비가 발을 붙일 곳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태평천국운동은 청왕조 아래서 신음을 하던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일어선 것이 아니다. 백성들의 불만이 들끓던 시기에 혹세무민하며 자신들의 잇속을 단단히 챙기려는 무리가 백성들을 부추겨서 발생한 안타까운 사건이다. 그러니 태평천국운동을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내세웠고, 공산주의보다 앞서서 백성(약자)들의 편에 서서 '이른 사회주의 사상'을 펼쳤다는 등 좋은 말로 포장해서도 안 될 것이다. 설령, 태평천국운동이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하더라도 준비도 안 된 무능한 지도부에 의해 곧바로 무너져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주목해야 할 점은 '중국민중의 의식성장'이다. 비록 피바다를 물색하게 만들 정도로 비극으로 치달은 운동이었지만, 훗날 '중화민국'이란 민주주의 국가를 설립하는 중추적인 역할을 민중들 손으로 해냈기 때문이다. 물론, 중화민국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고 외세의 침략과 세계대전이라는 소용돌이속에서 공산당이 민중을 장악하고, 공산당이란 독재세력에 의해 중국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리지 못하고, 중국이 '세계 최고'라고만 주입된 무뇌충 집단이 되어 이성을 잃고 야욕만 내세우는 꼴이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태평천국의 여파가 2권에서 끝난 것은 아니다. 4권에서 다시 이어지니 그때 다시 정리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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