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삼국지 톡 - 세상에서 제일 빠른
심 쌤 지음 / 한빛비즈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삼국지>가 재밌다는 것은 두 말 하면 입 아플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그 재밌는 책이 시중에서는 대부분 '10권 분량'으로 나왔으니 긴 호흡이 필요한 장시간의 독서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참으로 많다. 물론 정말로 재밌기 읽는 분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안다. 허나 아직 '대작의 맛'을 접해보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무조건 재밌으니 읽어보라고 권하는 건 실패할 확률이 더 크다. 실제로 '유비의 매력'에 흠뻑 빠진 학생이 호기롭게 <삼국지>를 읽다가 '조조'나 '손권'의 이야기가 나오자 맥이 풀려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포기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청소년만의 문제는 아닐테고, 성인독자들도 쉬이 겪는 어려움일 것이 분명하다.

 

  이럴 때, '한 권'으로 정리가 잘된 <요약집>이 있다면 매우 유용할 것이다. 실제로 시중에 '그런 책'들이 종종 눈에 띄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책'의 대다수는 '줄거리'만 축약해서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 정작 '삼국지의 매력'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마련이고, 걸작 영화를 '미리보기, 예고편'만 보고서 다봤다고 우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잘 정리된 <요약집>도 골라서 보는 센스가 필요한 법이다. 여기 <3분 삼국지 톡>은 그런 점에서 부족함이 없는 책이라 소개드린다.

 

  내 경우엔 이 책을 실제 '논술수업'에 써 본 경험도 있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수업'에 차질이 생기자 대부분은 '줌수업'으로 온라인 수업을 준비했더랬는데, 나는 책제목이 그렇기도 해서 실제로 '톡수업'을 진행했더랬다. 약 5일간 정해진 수업시간에 '단톡방'을 열어놓고 아이들을 초대한 뒤에 <삼국지>의 줄거리를 톡으로 올리면서 중간중간에 '독서퀴즈'를 내어 아이들이 집중력을 놓치지 않도록 수업 커리큘럼을 짰고, 실제로 톡수업을 진행했다. 그 당시 '필독서'가 바로 이 책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높은 집중력을 발휘해서 퀴즈를 풀려고 노력했고, 정답은 모두 '이 책' 안에 있으니 실시간으로 아이들이 책을 뒤적거리며 '정답'을 맞추려 했으니 지금도 아이들은 그 당시 수업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물론 <삼국지>에 대한 호감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사실, 책내용도 <삼국지>를 잘 아는 남편과 잘 모르는 아내의 '대화체(카톡체)' 형식이라서 질문과 대답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스토리를 전개시켜 나갔기 때문에 '이해도'가 매우 높아지는 <요약집>이 분명하다. 그래서 <삼국지>를 잘 모르는 사람이 읽으면 대작의 맥락과 이야기 전개의 흐름을 파악해서 읽지 않았는데도 읽은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이고, 잘 아는 사람이 읽으면 방대한 내용에서 핵심적인 내용만을 잘 정리했다는 느낌이 들어 꽤나 호감이 갈 책이라 여길 것이다. 더구나 중간중간 '간략한 지도'와 '도표'를 첨가한 덕분에 낯선 지명이나 복잡한 세력구도로 난삽한 정황묘사로 집중력이 흐트러질 때마다 시의적절하고 이해쏙쏙하게 길라잡이를 하고 있어 '초심자'들에게 매우 유용한 책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삼국지>는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꼭 읽어야만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 번 드렸지만, '꼭 읽어야 한다'고 다시 답을 드리고 싶다. 물론 세상에 읽어야 할 책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그 책들을 힘이 닿는데까지 다 읽으라고 권하는 바지만, 그 가운데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책이 있다면, 단언컨대 <삼국지>라고 말하고 싶다. 한때 '중국4대기서'라고 해서 시내암의 <수호지>, 오승은의 <서유기>, 난능소소생의 <금병매>, 그리고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를 필독서로 삼기도 했지만, 시대가 흘러도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것은 <삼국지> 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다름 아니라 '시대불문 필독서'라는 자리매김을 하할 정도의 매력이라는 점이다.

 

  어쩌면 <삼국지>는 '역사'라기보다는 '신화'에 가깝다고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삼국지>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들의 모습과 상당히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적이 분명 '역사'에 등장하긴 하지만 200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는 베일에 살짝 감춰진 '이질감'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각축을 벌이는 여러 군웅들의 손발놀림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듯한 '생동감'이 넘쳐나지만, 너무 오래된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낯선 느낌'도 들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쟁이 일상인 극심한 혼란의 시대를 그린 작품이기에 전쟁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평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더욱 그렇다. 그러니 '신화'를 읽듯 재미나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삼국지>를, '신화'에 열광하는 오늘날 읽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일 것이다.

 

  그뿐 아니다. <삼국지>에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지혜가 담겨 있다. 아니 '지혜롭지 못한 인물'은 절대로 살아남지 못하는 험악한 세상이 펼쳐져 보이는 것이 바로 <삼국지>라는 말이 더 자연스러울 정도다. '사람 가운덴 여포, 말 가운덴 적토'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여포'는 인물 중에 인물이었다. 허나 그의 끝이 어땠는가? 허무하다할 정도로 '비굴한 죽음' 아니었느냔 말이다. 영웅답게 제 뜻을 이루지도 못했고, 무사답게 전장에서 맹렬히 싸우다 죽은 것도 아니고, 조조의 공격을 받던 중에 '부하의 배신'으로 포로로 끌려와 비굴하게 목숨을 구걸하기까지 한다. 일찍이 자식처럼 거두어 길러준 은혜를 배신으로 되갚더니 정작 자신도 배신을 당해 그 지경에 이른 것이다. 만약 여포에게 '지혜'까지 겸비하는 재능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니 지혜로운 책사가 여포를 도와 대업을 이룰 수 있도록 '보통의 지혜'만 갖추었더라도 비참한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 세상을 살면서 '지혜로운 사람'이 가장 부럽다면 <삼국지>를 배우고 익히는 것이 꼭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삼국지>를 접하지 못한 이들이 있다면, 이 책을 권한다. 재미와 교훈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책이라 '선택'한 뒤에도 후회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흔히 <삼국지>를 세 번 읽지 않은 사람과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이야기에 '부담'을 느끼는 독자분이 계시다면, 이 책으로 '도전'해보길 권한다. 단언컨대, 이 책만 '세 번' 읽어도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일 수 있을 것이다. 난 벌써 '두 번' 읽었다. 물론 '10권'짜리로도 이미 세 번 넘게 읽은 나지만..쿨럭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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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 - 아르고 원정대의 모험.완결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5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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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이윤기의 책'만 읽던 시절이 있었다. 그가 뒤침이(번역가)로 오래 활동한 까닭에 오비디우스의 <변신>, '토마스 벌핀치의 신화책'을 비롯해서 <장미의 이름>, <푸코의 추>, <그리스인 조르바> 등의 소설도 소장하고 보니 모두 '이윤기의 손'을 거친 책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EBS강의를 통해서 '신화강연'을 시청한 뒤에, 이 책의 시리즈를 만나고서야 비로소 '이윤기'라는 이름을 각인하게 되었다. 특히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1>을 만났을 때의 충격은 여운이 오래 갈 정도였다. 신화를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구나'라는 색다른 관점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 시리즈의 리뷰를 다시금 정리하고자 '1권'을 찾아보았지만, 어느 구석에 쳐박혀있는지 당최 보이질 않는다. 아쉬운대로 '거꾸로 리뷰'를 쓰련다. 쓰다보면 온 책장을 다 뒤적일 수 있을테고, 그럼 1권도 찾게 될 것이니 말이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이 책이 고인의 '마지막 책'이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편집'도 세련되지 못하고 거친 흔적이 엿보이고 '내용'에도 서툴고 들쭉날쭉한 부분이 보인다. 그래도 이윤기만이 뽑아낼 수 있는 '신화의 매력'은 충분히 맛볼 수 있으니 그리 큰 아쉬움은 아니다.

 

  5권의 내용은 '영웅 이아손의 모험'이다. 신화에는 영웅들의 모험이야기가 많이 등장하지만 이아손의 모험이 특별한 까닭은 '죽음을 초월한 존재'가 아닌 인간의 모험을 다뤘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알려진 것이 없는 미지의 공간으로 목숨을 걸고 떠나는 인간의 고뇌와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에 특별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사랑이야기'가 담겨 있다. 바로 에로스(큐피드)와 아프로디테(비너스)가 뿌려놓은 '달콤한 덫'이기도 하다. 그 '사랑'은 인간이기에 거부할 수 없고 영웅이라도 헤어나올 수 없는 숙명이다. 그래서 이야기는 재미나다. 하지만 사랑이 어찌 달콤하기만 할까? 쓰디쓴 '배신'이 단짝처럼 뒤따르고 사랑이 깊었던 만큼 분노 또한 깊을지니 '연인의 배신'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안겨줄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이아손의 모험을 한낱 '금양모피'를 얻는 것에 한눈을 팔 수 있단 말인가?

 

  신화의 매력은 '목적달성'에 있지 않다. 오히려 목적은 '핑계'에 가깝다. 영웅들이 모험을 떠나는 '과정'에 집중해야 신화의 진면목이 제대로 보인다. 이아손을 주축으로 한 '아르고 원정대'는 황금빛 양털을 되찾아 이아손에게 돌아가야할 왕좌가 정당하고 당연한 것임을 증명하는 것이 원래의 목적이다. 진정한 영웅이란 '주위의 떠받듬'이 아니라 '스스로 증명'하는 것으로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왕국의 백성들에게, 아니 세상 사람들에게 진정한 영웅으로 인정받을 수 있고, 되찾은 왕위에 올라서도 '안정적인 통치'를 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코 쉽지 않은 모험을 받아들였고, 죽을 위험이 가득한 모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당당히 떠나려 한 것이다. 물론 '보험'은 들어야겠기에 '그리스 영웅'을 죄다 긁어모았다. 헤라클레스를 비롯해서 이름만 들으면 모두 알만한 영웅들을 말이다.

 

  그리고 그 영웅들이 제각각의 능력을 펼쳐보이는 것으로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게 흘러간다. 하지만 그런 영웅들의 힘찬 발걸음도 '사랑'이라는 달콤한 덫에 빠지면서 지지부진하게 된다. 아프로디테의 저주를 받은 렘노스의 섬의 여인들과 미소년 휠라스를 데리고 가버린 물의 요정들, 그리고 조국을 배신하고 사랑을 선택한 여인 메데이아의 마법 등이 '아르고 원정대'를 온통 휘감듯 덮어버리고 그들의 운명조차 한치 앞도 알 수 없게 만든다. 원래 '사랑'에 빠지면 눈이 멀어버리기 마련이다. 사랑은 결말이 어떨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게 만들고 '죽음'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폭발적인 황홀함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사랑'에 눈 먼 이들이 끊임없이 생겨나는 모양이다. 난 아직 그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무구무구

 

  암튼, 영웅 이아손은 당시 그리스인들에게 '미지의 영역'이었던 흑해 탐험에 성공했다는 '역사적 가치'를 안겨주는 인물인 동시에 이올코스의 왕위와 금양모피라는 보물을 찾은 뒤에 파멸에 이르는 '신화적 가치'를 증명하는 인물이다. 다시 말해, 얻고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모험에 뛰어든 용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지만, 정상에 안주하지 못하고 더 많은 탐하는 욕망의 부추김을 외면하지 않아 끝내 비극으로 결말을 맺고 마는 어리석음에 눈물을 쏟게 만든다. 우리는 과연 '이아손의 모험담'을 통해 무엇을 얻을 것인가?

 

  신화를 접하다보면 '세옹지마'라는 고사성어가 떠오르곤 한다. 좋은 일 뒤에는 나쁜 일이 찾아온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아무리 강렬하게 보내도 어리석은 인간은 끝내 '비극이 잉태함'을 막지 못하고 만다. 또, '유혹'에는 어찌 그리 쉽게 빠져들고 마는 것일까? '내 것'이 아니면 탐하지 않으면, 그뿐인 것을...이처럼 '신화'는 우리네 인생에 큰 가르침을 전하며 그 속에 지혜가 있음을 넌지시 가르쳐준다.

 

  우리가 <신화>를 읽어야 하는 까닭도 마찬가지다. 과학적 방법으로 증명할 수 없었던 '신화시대'에는 신화만큼 과학적인 지식을 담고 있는 것도 없었다. 수 천년이 지난 지금도 그 오랜 지식은 우리의 일상에 꼭 필요한 지혜로 전해준다. 단지 그 지혜가 '암호화' 되어 있기에 적절히 풀어서 설명해줄 '신화전문가'가 필요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 이런 전문가는 너무나도 많기에 걱정할 것이 없다. 오히려 너무 많은 전문가들 가운데 '누굴' 골라야 할지 난감할지경이니 문제다. 그 문제에 난 '이윤기'를 추천한다. 비록 전문적인 신화학자는 아니지만 신화를 정말 사랑해서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신화적 메시지'로 읽는 힘을 전달해주는 분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이윤기의 신화이야기 속으로 함께 여행해볼 것이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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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겔프라이 프롤레타리아 북클럽 자본 시리즈 12
고병권 지음 / 천년의상상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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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빌어서 '잔혹동화'를 들려준다. 농민에게서는 '땅'을 빼앗고, 노동자에게선 '생산물'을 빼앗은 자본가들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채 생산자들의 이득을 가로채는 '자본주의'라는 괴물을 만들었다고 말이다. 더욱 끔찍한 일은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는 이 모든 수탈이 '합법'이라는 점이다. 더욱더 잔혹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자본가는 '생산자(농민과 노동자)'들을 이리 끔찍한 자본주의 체제로 억지로 끌어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제 발로' 스스로 그 끔찍한 곳으로 들어와 사지가 찢겨나가고 온몸이 으스러질 때까지 고통스런 노동을 한 뒤에 헌신짝처럼 버리지더라도 그저 '순응'하는 것밖에 모르는 바보처럼 행동할 뿐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문제를 제기하고 '생산자들'에게 현실을 자각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자본론>을 썼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정확히 무엇인지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서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리고 '자본주의'에 맞서 생산자들을 위한 체제를 직접 구현해 보여주기까지 한다. 우리는 이를 '공산주의'라고 말한다. 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매겨 자본가들이 함부로 노동을 착취하지 못하는 세상을 꿈꾸며 '프롤레타리아들이여, 단결하라'고 외치기도 했다.

 

  허나 우리 시대에는 '공산주의'가 철저히 실패했다는 것을 잘 안다. 그 체제는 생각보다 잘 굴러가지 않았던 것이다. 노동의 가치를 중시하는 것은 '최선'이었지만, 생산물이 커져 '자본'을 이루어야 경제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다는 기본을 지키지 못하고, 그저 '자본가'를 때려잡는 일에만 열중이었기 때문이다. 자본가는 나쁘지만 '자본, 그 잡채'가 나쁜 것은 아닌데 말이다. 인간의 욕망이 '자본'으로 향한다는 기본 전제를 배제한 공산주의는 그렇게 망하고 말았다.

 

  이렇게 '공산주의'는 답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가 정답이었을까? 역시나 정답은 아니었다. 자본가들은 점점 살을 찌우며 잘 살게 되었지만, 농민과 노동자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여전히 못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근래에는 '계층사다리'마저 없어진 듯, 부익부빈익빈 현상은 극심할 지경에 이르렀고, '노동의 가치'는 더욱더 푸대접을 받으며 '노동의 생산물'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손에 만져볼 수조차 없게 된 것도 여전하다. 대기업에서 20년을 넘게 밤낮없이 일을 해도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으로 만들어진 '생산물'은 전부 자본가의 것이다. 노동자는 그저 '자신의 노동'을 판 대가로 월급(임금)을 챙겨갈 뿐이다. 그 임금마저도 대부분 CEO가 가져가고 그 밑에 있는 직급은 푼돈을 받을 뿐이다. 그런 푼돈일망정 정규직은 그나마 만족할 정도지만, '비정규직'은 동일한 노동을 했는데도 '더 적은 임금'을 받는다. '하도급 직원'이라면 더더 적은 임금'으로 만족해야 한다. 볼멘소리라도 하면 '해고'를 당한다. 부당한 대우에 대한 합법적인 권리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그저 '윗선의 비위'에 거슬리면 근태점수를 깎아 해고하면 그뿐이다. 이러니 자본가들에겐 '자본주의, 만만세'인 셈이다. 아직도 자본주의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가?

 

  물론, 전세계가 '자본주의 체제'를 이행하고 있다. 이 경제체제에서 벗어난 '다른 대안'이 없을 정도로 빈틈없이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의 자본주의'가 삐걱거린다는데 있다. 분명 문제가 심각한데 별다른 대안이 없으니 '그냥, 그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문제제기를 하고 '수정'을 하면서 나름 처방을 내리고 있지만, 조그마한 변수에도 삐그덕삐그덕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이 때문에 전세계 경제학자와 수많은 석학들이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일찌감치 예언하고 지적했던 마르크스를 다시곰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시대에 <자본론>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읽어야만 한다. 우리는 '공산주의'가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마르크스의 대안'은 건너띄고 '마르크스의 지적'에 집중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의 폐해가 이렇게 시작했기 때문이니, 그 폐해의 근원을 파헤치고 근본부터 뜯어 고치면 '자본주의의 병폐 현상'을 고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필요한 시점이란 말이다.

 

  이런 병폐 현상을 고치기 위해선 몇몇 선각자의 가르침만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농민봉기'나 '노동자파업'과 같은 혁명적인 움직임도 대단히 위험하다. 그보다는 <자본론>이 모든 시민의 교양으로 자리잡는 것이 최우선이다. 시민 모두가 자본주의의 '병폐현상'에 대해 일반상식처럼 직시하고 직관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고, '어떤' 목소리가 올바른 목소리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저 못 살겠으니 갈아엎고, 그저 불만이 있으니 뒤집어엎어야겠다는 발상은 무모하다. '교양시민'으로 성장한 농민과 노동자가 사회적 모순과 문제의식을 제대로 정곡을 찌르면서 비난이 아닌 비판의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다면 '자본가들의 억압과 착취'는 발붙일 곳이 없게 될 것이다.

 

  생각보다 <자본론>은 어려웠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이해를 얻고자 <북클럽 자본>을 읽었다. 물론, 단 한 번의 일독으로 완벽히 이해했다고 자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점이 무엇이고, 무엇을 직시해야 할지는 얼추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쌓은 작은 지식으로 더 많은 '마르크스의 저작물'을 접해볼 작정이다. 기회가 닿는대로 <북클럽 자본>도 다시 읽을 것이다. 그때는 한발짝 더 나아간 '교양시민'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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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요양병원으로 모시게 되었다.

설연휴 직후에 상태가 나빠지셔서 지난 주말에 급히 병원으로 모셨다.

다행히 빠르게 안정을 취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지만 퇴원은 힘들 것 같다.

여기저기 신경 쓸 일이 많아졌다. 마음도 심란해졌다.

어쨌든 독서는 계속되고 리뷰는 쓰여진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설연휴 동안 마무리 되었어야 할

<삼국지> 리뷰는 조금 뒤로 미뤄야겠다.

바빠진 개인사정과 다른 책 리뷰가 시급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틈틈이 읽을 계획이니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벌써 2월이다.

계절은 점점 바뀌어가는 것 같은데

나는 어떻게 바뀌어 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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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인문학 수업 : 전환 - 지금과는 다른 시선으로 나를 돌아보기 퇴근길 인문학 수업
백상경제연구원 지음 / 한빛비즈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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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처럼 먹고 살기 힘든 시기에 '인문학'이 다시 유행으로 자리 잡아가는 현상은 참 보기 좋은 현상이다. 사실 '먹고 사는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까닭에 앞으로도 그닥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지식과 교양을 갈고 닦는 일은 '물질적인 풍요'와는 별개로 사람이 살아가는데 '기본 소양'으로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탈무드>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 배에 탄 사람들이 저마다 '가진 것'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엄청나게 많은 금화와 값비싼 보석, 그리고 진귀한 물건들을 자랑했더란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은 겉모습이 초라해서 자랑할 것이 없는 줄 알았는데, 여러 곳을 다니면서 다양한 지혜를 얻었다는 말한마디만 하더란다. 사람들은 그것은 값진 것이 아니니 자랑할 것이 못 된다고 타박을 주었는데, 때마침 해적이 배에 올라타 목숨이 아깝거든 '가진 것'을 다 내놓으라고 했다.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진 것'을 다 빼았기고 빈털털이가 되었는데, 오직 한 사람 '지혜'를 가진 이만이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고 온전한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어쩌면 이것이 요즘 '인문학 열풍'의 궁극적인 이유가 아닐까.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인문학'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은 '단순지식'을 얻기 위해 공부하기에는 심오하고 깊은 학문이다. 물론, 단순지식을 쌓는 것도 나름 의미 있는 일이긴 하다.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도 '아는 것이 힘'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렇지만 '아는 힘'을 얻은 뒤에는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다. 갓난아기가 '뒤집기'에 성공한 뒤에 '배밀기'를 하고, 그 뒤엔 엉금엉금 '기어가기' 시작하고, 무엇이든 잡고 '일어서기'를 하다 수없이 엉덩방아와 머리쿵을 한 뒤에 최초로 '두 발로 서기'에 성공하고 나면 뒤뚱뒤뚱 '걷고', 걷는 것이 수월해지면 '뛰기'를 하며, 일단 뛰기 시작하면 '방안'을 누비는 것으로 모자라 '집안'을 뛰어다니고, 집밖에 나서기가 무섭게 '온동네'를 주름잡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아는 힘'을 경험하고나서는 멈출 수 없고 나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아는 맛'을 스스로 구별해낼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르면, 드디어 '인문학' 좀 다룰 줄 아는 지식인이 된다. 그러면 '인문학'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좀 더 분명해지기 시작한다. 결국, "나는 왜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단 말이다. 이런 물음에 '정답'이 있을 턱은 없다. 그저 누군가의 '견해'만 있을 뿐이고, 어떤이의 '해석'만 존재할 뿐이다. 그 수많은 견해와 해석 가운데 '이거다!'라는 모범답안은 누구도 정할 수 없단 말이다. 그러니 인문학 좀 공부한 이들은 겸허하게 '다른이의 생각'을 경청할 따름이다.

 

  이 책, <퇴근길 인문학 수업> 시리즈의 매력이 느껴지는 포인트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한 명의 글쓴이가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의 저마다의 생각이 담긴 책'이 바로 '이 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주먹구구식으로 마구잡이 쓰여진 책은 결코 아니다. 이 시리즈의 1부에 해당하는  세 책의 제목이 [멈춤]-[전환]-[전진]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살면서 과거를 돌아보거나 주위를 둘러보기 위해서 반드시 '멈춤'이라는 단계를 거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 자신을 돌아봄'과 동시에 '나아갈 방향'을 새롭게 정하는 '전환' 단계를 거쳐, 무겁게 멈춘 발걸음을 다시 움직여 보다 활기차게, 그리고 확고한 결심으로 '전진'하여야 한다. 이 책은 그런 단계 가운데 [전환]에 대한 주제를 선정해 '인문학적 소양'을 펼쳐내었다.

 

  물론, 제작의도가 그렇다는 것 뿐, 이 책을 '전환기'를 맞이한 이들만이 꼭 읽어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앞서도 말했듯이 '인문학'은 다양한 견해를 저마다의 생각으로 읽어나가며 교양을 쌓아가는 과정으로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정답'으로 인지하고 달달 외울 생각은 말고, 다른이의 명석한 견해를 '나의 소양'을 끌어올리는 지렛대로 삼으면 참 좋다.

 

  그런 의미에서 <퇴근길 인문학 수업>은 매우 적절한 '생각의 지렛대'라고 할 수 있다. 먼저, 글의 양이 너무 적지도 않고 많지도 않은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너무 적으면 지렛대로 삼기에 너무 무르고, 너무 많으면 지렛대를 잡고 힘을 주기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또, '다양한 주제'를 날마다 접하게 해주니 폭넓은 교양을 쌓을 기회를 제공해서 '관심분야'를 접하면 흥미진진해질 것이고, '비관심분야'를 접하면 생각의 지평을 넓힐 기회가 되니 어떻게 보아도 장점투성이다. 마지막으로 피곤할 수밖에 없는 '퇴근길'을 인문학으로 물들이게 해주는 기획의도가 너무나도 기발하다. 아직 '인문학의 맛'을 모르는 이가 들으면 '꼰대들의 청천벽력 같은 헛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하루의 피곤을 싹 잊게 만들어주는 '퇴근길 토론회'를 경험한 이들에겐 희소식일 것이다.

 

  이게 뭔소린 고하니, 수다를 떨더라도 교양이 넘치고 품격 높은 주제로 서로의 의견을 나누면, 수다참석자들도 즐거울 뿐만 아니라 그들의 고품격수다를 듣는이들도 덩달아서 수준 높아지는 경험을 갖게 된다는 말이다. 퇴근길에서 펼쳐지는 '대중교통 포럼', 퇴근길에 술 한 잔 걸치면서 벌이는 '호프바 심포지엄', 그리고 뚜벅뚜벅 걸으며 펼쳐지는 '교양수다의 향연' 따위를 이 책을 읽은 이들과 서로 나눌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얼마나 멋진 '퇴근길'이냔 말이다. 딴에는 '홀로' 읽으면서 내 안에 깃든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는 것도 좋다. 일명 '나 자신과의 대담'이랄 수 있겠다. 요즘처럼 '인문학 열풍'이 부는 시절에 딱 어울리는 풍경 아니겠는가.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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